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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황지우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설레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사랑의 데칼코마니


왜,
너는 나에게 오지 않는 거지?
왜,
너는 나를 기다리게 하는 거지?
왜,
너는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거니?
VS.
왜,
너는 나에게 오지 않는 거지?
왜,
너는 나를 기다리게 하는 거지?
왜,
너는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거니?

사랑하는 평범한 연인들은 다들 이런 이유로 싸운다,
전자가 나의 말이면 후자는 그대의 말이다.
시인은 기다림조차 기다림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아니, 네가 나에게 오는 길이라 말한다.

닭살 돋는 연애시이면서 동시에 선문답처럼 오묘함이 깃든 시다.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황지우!
엄살도 떨 줄 알고, 청승맞게 넉살도 좋은...

**
사랑은 할 때보다 기다릴 때가, 기다릴 사람이 있을 때가 좋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을 때는 그런 희망과 열정이 이제 막 솟아오를 때다.
다시 말해 아직 그런 존재가 없을 때가 가장 좋은 것인지도... ㅋㅋ


연애와 사랑에 대한 나의 일관된 견해는
사심 없이 바라보고, 철 없이 행동하며, 욕심 없이 차지하되,
미련 없이 사랑하고, 후회 없이 헤어지란 거... 결론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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