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자동차 노동자는 죄인이 아니다.
제2의 IMF니, 또다시 실업자 대란이니 하는 듣기도 싫은 이야기들이 2000년 연말의 우리나라를 유령처럼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울한 이야기들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이 <대우자동차> 문제입니다.
지난 11월 9일 대우자동차가 결국 최종부도 처리된 가운데 우리 사회의 언론들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셈인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대우자동차 부도의 최종 책임이 마치 노조가 동의서를 써주지 않은 탓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대우자동차 노조의 잘못인가 우리는 한 번쯤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문제가 이렇게 까지 된 데에 노동자들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어른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 놓고, 동승한 어린이에게 그 책임을 미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물론 옆에 같이 탄 동승자에게도 책임을 묻는다는 차원에서라면 어느 정도 동의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라도 역시 음주운전을 한 어른에게 먼저 책임을 묻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념이자 정상적인 사회에서 할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모든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묻고 있습니다.(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프랑스 니스의 별장에서 베트남인 바둑 기사를 초빙해서 한가롭게 바둑을 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에)
다음은 대우자동차 매각과 관련하여 저희 잡지에 실린 글의 일부를 발췌하여 게재한 것입니다.(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저로서는 이 분의 글 이상 쓸 재주도 없고, 이 분의 글 내용에 대해 전면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약간의 이견은 있으나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므로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지식기반 경제와 대우차 문제
정승일
내가 대우차와 인연 아닌 인연을 갖게 된 것은 작년 봄부터였다. 박사논문으로 "한국 재벌 지배-경영구조의 붕괴과정 - 자동차 산업의 사례"에 관해 쓰기 위해서 현대차, 대우차, 기아차, 쌍용차, 삼성차 각각의 소유지배구조, 경영전략, 조직관행, 기술전략에 대한 실증조사에 나서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차 이외에는 거의 아무런 기성의 실증조사도, 문헌연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의 공업화 성공과정을 대표하는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포항제철 등등의 기업에 대한 실증조사와 연구논문들은 이미 많이 있었다. 그런데 소수에 불과한 이들 성공 대기업들의 사례 이외에, 잠재적 현실적으로 실패한 압도적 다수의 재벌계 대기업들에 관해서는 거의 연구가 없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성공을 이른바 "산업/기술적 추격과정(catching up)"으로 설명하는 기존의 지배적 학설이 지닌 불가피한 이론적 한계이기도 하였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연구논문과 실증조사가, 현대자동차를 한국자동차 산업과 동일시하면서, 마치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가 성공하고 있는 양 묘사하고 있다. 대우차와 기아차의 경영 전반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노동운동과 관련된 자료가 훨씬 풍부하였다. 각사 노동조합의 단체협상 관련 연구와 노동과정 연구, 그리고 관련 중소 부품납품기업의 하청구조에 관한 연구에 관해서는 상당한 자료가 있었다. 하지만 대우차와 기아차의 운명을 궁극적으로 좌우할 각 기업 재벌총수 최고경영자들의 경영전략, 조직전략 일반에 관해서는 홍보용 자료들 이외에는 체계적인 연구가 거의 없었다. 그 많은 경제학자, 경영학자들은 무엇을 그동안 한 것인지.
한국의 경제학 및 사회과학의 한계의 하나로, 산업 차원의 연구만이 있었을 뿐, 더 나아가 개별 기업 차원의 연구는 거의 이루진 것이 없었다. 이런 빈약한 지식기반 위에서, 예나 지금이나 대우차와 관련한 정부 정책은 아무런 체계적인 조사나 심층적 연구도 없이, 몇 몇 실세 있는 학자들 혹은 유명 국제컨설팅 업체들의 피상적인 조사보고서에 근거하여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김대중 정부의 경제관료와 정책결정자들은 국정 슬로건의 하나인 이른바 '지식기반 경제'의 상식적 기초원리를 스스로 짓밟고 있다. 대우차의 포드로의 매각 실패 이후 우왕좌왕하면서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경제관료들과 실세 학자들의 추태는 현 정부의 '지식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기성의 조사문헌이 없는 한, 직접 회사 내부로 들어가 조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연구조사를 목적으로 대우차 경영진에게 공식 면담과 자료제시를 신청하려 하였지만, "그들이 코웃음칠 것"이라는 주위의 충고를 듣고 그만두었다. '개인적인 연줄'을 이용하는 것 이외에, '공적인 연구조사'는 한국의 어떤 세계일류 기업도 흔쾌히 허락하지 않는다. 더구나 문제 많은 대다수 대기업들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른바 '지식경영'을 유행처럼 입에 올리고 있지만, 대기업 경영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지식기반의 창출과 이용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경영하고 있다.
<대우 그룹의 붕괴>
다행히 93년을 전후하여 대우그룹에 입사한 친구들이 여러 명 있었다. 93년이라는 시점은 의미가 크다. 93년 3월, 김우중은 대우차 부평공장에서 이른바 "세계경영"을 선포하였다. 당시 연 40만대 생산에서 불과 4년 뒤인 97년에 대우차는 국내외 연 생산 200백만대로 사상 유례없는 대확장을 하였다.
99년 6월, 처음으로 부평공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대우차의 속사정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들이었다. 당시 신문과 방송에서는 삼성과 대우간의 자동차, 전자 빅딜에 관한 소식이 있었고, 98년 말 일본 노무라 증권의 보고서에 대우그룹 재무위기에 관한 소문이 내가 알고 있던 전부였다. 그런데 대우차 내부에서 나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대우차와 대우그룹 전체가 이미 재무금융과 조직, 인간관리, 해외경영 등 모든 측면에서 썩을 대로 썩어 곧 붕괴하리라는 놀랄만큼 만연된 체념이었다. 매달 1천억원이 넘는 상환불능 만기채무가 이미 도래하고 있었다. 기아그룹의 12조원 부실이 초래한 IMF 한파의 타격을 생각할 때, 70조원에 이르는 부실을 안고 대우그룹이 붕괴할 때 도래할 파국적 사태는 상상의 범윌르 넘어섰다. "설마,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겠지. 이들 직원들이 과장하는 것이겠지"라고 나는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런데 불과 한달 뒤인 8월 초, 현실은 가혹했다. 삼성과의 빅딜이 무산되자마자 대우그룹 전체는 부채상환 불능 상태에 빠져 전계열사들이 워크아웃 상태에 들어갔다. 대우차는 부채 18조6천억원, 자산 12조 6천억원으로, 마이너스 6조의 자본잠식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주)대우 역시 20조원이 넘는 부채를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김우중 회장은 23조원에 이르는 세계역사상 최악의 분식회계라는 범죄까지 저질렀다. 600억 달러의 대우관련 부실 채무는 채권은행들과 대우의 회사채를 보유한 투자신탁업체들을 연쇄 위기에 빠뜨렸다.
<해외 매각론을 둘러싼 금융자본 입장과 산업자본의 입장의 차이>
김대중 대통령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즉시 대우차의 해외 매각, 특히 지엠(GM)으로의 매각을 해법으로 들고 나왔다. 미국식 주식시장 자본주의의 이념이 풍미하는 이 시대에 "실패한 기업은 M&A의 대상이고, 국내에 대기업을 구매할 주체가 마땅히 없는 까닭에, 해외 매각은 당연"하다는 결론이었다. 현재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경제관료와 경제학자들의 대부분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옹호하는 신자유주의의 이념은 산업자본을 이익을 희생시키면서라도 금융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그 요체이다. 기업과 산업, 나아가 국가경제의 사활을 좌우할 중대한 의사결정에서 이것은 오직 금융적 이해관계, 금융산업의 이해관계 하나만을 판단의 기준으로 놓는다.
금융자본은 바로 자본중의 자본 즉 돈 그 자체의 운동이다. "돈이 돈번다" 원리가 전부이며, 인간이 차지할 자리는 여기에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경제시스템은 돈(화폐)만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인간을 필요로 한다. "돈만으로는 않된다"는 원리는 금융자본이 아닌 산업자본의 영역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산업기업의 현장에는 공장의 노동자들, 연구소의 과학기술자들, 그밖에 관리자들, 세일즈맨들 등등 피와 살을 가진 인간들이 등장한다.
화폐 그 자체가 국적을 버리고 국경을 넘어 초국적화하는 것은 너무도 간단한 일이다. 원화를 달러화로, 엔화로, 마르크로 무제한으로 바꾸는 일은 각국 정부의 외환규제 장치를 법제도적으로 바꾸는 '간단한' 조치에 의해서도 실현 가능하다. 따라서 세계화(Globalization)의 주도세력은 바로 화폐자본, 금융자본이다. IMF 금융위기는 김영삼 정부가 무분별하게 실시한 외환자유화, 금융개방조치에 의해 야기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산업자본은 금융자본처럼 간단하게 국적을 버릴 수 없다. 물론 노동이 '순수한' 비숙련 노동 (주류경제학이 말하는 순수한 '생산요소'로서의 노동)으로서만 간주되는 그런 산업에서는 산업자본 역시 싼 임금과 최악의 노동조건을 찾아 세계 구석구석을 전전하는 것이 가능하다. 섬유, 가발, 신발공장들이 한국에서 방글라데쉬로 이전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산업자본이 반숙련, 숙련노동자와 나아가 연구개발 과학기술자들, 우수한 관리자들을 필요로 하고 이들 '인간'에게 의존하게 되면 자본은 더 이상 마음대로 국경을 넘을 수 없다.
예컨대, 독일과 일본의 장인적 숙련공들과 기술자들에 의존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품소재 제조업의 산업자본은 한국 혹은 미국으로 한순간에 이전될 수 없다. 이들 고급노동력의 존재는 그곳에 존재하는 전사회적 산업적 차원의 산업교육훈련 제도와 기술혁신 시스템과 뗄 수 없게끔 결부되어 있다. 이런 국가적 산업/기술 시스템 (national industrial and technological system)의 형성과 발전에는 수십 년간의 집요한 노력 혹은 백년대계가 요구된다.
김대중-이헌재가 한국에 이식하기를 꿈꾸는, 실리콘 벨리형 벤처기업이 주도하는 신경제 역시 실리콘 벨리와 결부된 미국의 과학기술 연구 및 교육시스템과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엄청난 국방연구와 비실용적 기초연구라는 '민족적'(결코 '지구적'이지 않은) 자산의 백년대계적 축적 노력 없이는 곧 한계에 부딪힌다.
금융자본과는 달리 산업자본의 지구화(Globalization)는 일정한 민족적, 시간적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산업자본의 세계는 매일 수조 달러가 더 높은 이윤을 찾아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 화폐의 세계, 매 시간 단타매매 (day trading)를 통해 주식시장을 전전하는 주식자본, 화폐자본의 세계와는 현격하게 다르다.
99년 8월 이후 내가 대우차를 바라본 관점은 우선은 이와 같은 산업자본의 관점에서였다. 따라서 지엠으로의 대우차 매각은 철저하게 반대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미 80년대에 있었던 '종속이론' 관련 논쟁에서 이루어진 자동차산업에 관한 실증연구들을 통해, 독자기술의 발전을 추구했던 현대차와는 달리, 대우차에서는 독자 기술능력의 발전이 지엠에 의해 좌절되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또한 나는 대우차 직원들과의 면담을 통해 92년 결별 이전에 지엠이 어떤 방식으로 모델의 독자개발을 가로막았었고 또한 품질개선을 위한 제품/공정 설계변경이 어떻게 가로막혔는지에 관하여 추가적인 발견을 할 수 있었다. 김우중의 세계경영 전략은 대우차가 현재의 최악의 사태로 빠져들게 된 기본 요인이다. 하지만 20년간 계속된 지엠의 식민지 경영적 사업 행태는 바로 대우차의 현 취약성을 근저에서 만들어 냈다. 그런 원죄를 지닌 지엠이 다시 개선장군처럼 대우차에 무혈입성한다는 것은 한국자본주의의 합리적 발전을 위해서도 저지해야 하는 일이었다. .
<해외매각도, 재벌경영도 아닌 대안은 ? >
김우중의 재벌경영은 이미 파산했다. 해외 자본도 않된다. 그렇다면 누가 대우차를 맡아야 하는가 ?
이 의문에 대해 당시 대우차의 한 직원은 하나의 대안을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하였다 "대우차 회생의 깃발을 들 주체는 지엠도, 삼성도 아니며 김우중의 후계자들도 아니다. 우리 자신이 깃발을 들어야 한다". 나 역시 이 의견을 지지하였다. 대우차의 직원들과 노동자들이 대우차의 지배와 경영의 주체로서 나서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대우가 가진 문제는 단지 '화폐' 즉 재무금융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대우차의 '인간' 즉 조직과 기업문화 역시 큰 위기 상태에 있었다. 김우중의 1인 황제식 경영은 대우차 내부에 치명적인 조직상의 충돌, 마찰, 책임회피, 무기력, 좌절, 분노 등을 낳았다.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마티스의 4차종 동시개발과 함께 기술능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성장하는 기술능력(생산력)은 김우중 회장이 만들어놓은 기존의 조직체제와 기업문화(생산관계)과 충돌하여 더 이상의 발전이 가로막히고 있었다. 대우차 역사에서 신세대라고 할 수 있는, 4차종 동시개발을 경험한 젊은 중간급 관리자와 연구개발자, 기술자들은 김우중의 절대황제적 권위를 뒤에 업은 불합리한 경영진의 행태에 대한 좌절과 분노로 회사 전체의 조직은 이미 워크아웃 이전에도 마비증상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200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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