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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반칠환 - 은행나무 부부

은행나무 부부


- 반칠환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 되는 것도 이때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 발가락이 오늘쯤
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


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



<현대시학> (2004년 10월호)



*



어느 시인들 아름답지 않으련만은
반칠환의 시는 아름답기 보다 어여쁘다.
아니 아직 덜 여문 어린 아이 잠지처럼 예쁘다.


사랑이 온통 뜨겁기만 한 것인 줄 알았더니
사랑이 저리도 따순 것이기도 한 것이구나
사랑이 저리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리워도 되는 것이구나



반칠환의 시를 보니 알겠구나.
그 발치에 수북이 쌓인 노란 엽서들을 허투루이 밟아선 아니되겠거든
이 가을에 지구가 통째로 제비꽃 화분이라는
반칠환의 덜 여문 잠지 같이 어여쁜 시를 읽어라.

* 덜 여문 잠지 같이 어떤 시는 예쁘고, 어떤 시는 아직 풋풋하다.
문학적 성취와 상관없이 그래도 좋은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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