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게
- 이성부
섬 하나가 일어나서
기지개 켜고 하품을 하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느냐.
바다 복판에 스스로 뛰어들어
그리움만 먹고
숨죽이며 살아남던 지난 십여년을,
파도가 삼켜버린 사나운 내 싸움을,
그 깊은 입맞춤으로
다시 맞이하려 하느냐.
그대,
무슨 가슴으로 견디어 온
이 진흙투성이 사내냐 !
*
오래전 어느 시절 나는 내 삶에도 노래처럼 어떤 음계가 있다면
그것은 국악 장단 중에서도 가장 느리게 흘러간다는 진양조 장단에
발맞춘 슬픔이 아닐까 결론짓고 홀로 힘없이 미소지은 적이 있었다.
사람마다 제각각의 호흡과 리듬을 타고 난다면
나는 아마도 진양조 늦은 장단에 내 삶을 맞추고 싶었다.
내 삶은 언제나 손아귀에 가득 쥔 모래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너무 쉽고 빠르게 새어나가버리는 듯 했으니까.
그리하여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무 것도 없는데
그 흐름에 맞춰 날 적응시키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내 삶의 기본은 '서글픔'이란 걸 알게 되었다.
태어난 것이 서러워 울었고
사랑받지 못하는 삶이 서러워 울었다.
파도처럼 매일의 삶이 울음이었다.
간신히 두 발로 선 뒤엔 쓰러지지 않으려 살았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강인하다거나 인내심이 많다거나
매사에 눈치 빠르게 잘 적응하며 살아간다 했으니 나는 서글펐다.
"그대,
무슨 가슴으로 견디어 온
이 진흙투성이 사내냐 !"
그래서 나는 이 구절이 예사롭지 않다.
나는 진양조의 삶을 꿈꾸었으나 내 삶은 언제나 휘모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