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 김왕노
이별이나 상처가 생겼을 때는 백년이 참 지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로 쓰린 몸에 감각에 눈물에 스쳐가는 세월이 무심하다 생각했습니다.
백년 산다는 것은
백년의 고통뿐이라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상처고 아픔이고 슬픔이고 다 벗어버리고
어둠 속에 드러누워 있는 것이 축복이라 했습니다.
밑둥치 물에 빠트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엉거주춤 죽어지내듯 사는 주산지 왕버들 같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알고부터 백년은 너무 짧다 생각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익히는데도
백년은 갈 거라 하고 손 한 번 잡는데도 백 년이 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마주 보고 웃는데도 백년이 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백년 동안 사랑으로 부풀어 오른 마음이
꽃피우는데도 백년이 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랑 속 백년은 참 터무니없이 짧습니다.
사랑 속 천년도 하루 햇살 같은 것입니다.
*
원효와 의상. 불법을 구하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목숨을 걸고 먼 길을 나선 두 젊은 승려가 육로를 이용한 길이 막히자 다시 해로를 이용해 당나라로 가고자 당항성 인근에 도착했다. 밤이 깊어 잠시 몸을 쉬기 위해 우연히 찾아든 움막이 알고보니 무덤이었고, 밤에 시원한 감로수인 줄 알고 마셨던 물이 아침에 깨어보니 해골바가지에 담긴 골 썩은 물이었더라는 일화는 화엄경에 담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인 '一切唯心造'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너무나 짝이 맞는 이야기라 만들어낸 이야기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화를 거짓이라 폄하하는 사람이나 글을 읽어보지 못한 것을 보면 그 오랜 세월을 두고 이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 누구나 이 이야기에 담긴 진실에 공감한다는 뜻이리라.
김왕노 시인의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도 누군가는 분명히 엄살 혹은 과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랴. 당신이 사랑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그 순간, 이 엄살 혹은 과장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한 마음이 되는 것을...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 일체의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若人欲了知三世一切佛), 마땅히 법계의 본성을 관하라(應觀法界性).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一切唯心造)."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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