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야 할 이유(why)가 있는 사람은 어떠한 방식(how)에도 견딜 수 있다."
- 빅터 프랭클
나는 극한의 상황에 처했던 인간들이 남긴 수기(혹은 에세이)를 즐겨 읽는 편이다. 인간이 남긴 대부분의 이야기는 한 인간(평범한 영웅들)이 원하지도, 예기치도 않았던 고난을 겪지만 결국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결국 거창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독하게 평범한 일상, 살림살이가 있을 자리에 정돈되어 있고, 가족이 모이는 저녁 나절의 밥상머리다. 이건 일상의 지극히 평범한 나사 하나가 빠지는 순간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교훈이다.
남의 고통을 즐긴다는 오해를 무릅쓴 더러운 유미주의자의 입장에서 히말라야나 안데스의 조난자들의 이야기나 나치 치하 유대인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같은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까닭은 우리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지극히 평범한 질문을 심사숙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강제노역을 하던 어느 날 한 수감자가 기막힌 일몰 광경을 바라보며 말한다.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 프랭클은 "모든 것을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 그토록 오랜 세월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던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모든 인간이 이런 태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똑같이 유대인 수용소를 경험했고 생환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만화로 옮긴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통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으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958년 무렵 뉴욕 레고 파크. 여름이었다고 기억된다. 내가 열 살인가 열 한 살이었을 때…. 난 하우이, 스티브와 어울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는데 그만 스케이트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야! 얘들아! 기다려.”
“꼴찌다! 꼴찌! 하하하”
“같이 가! 얘들아.”
아버진 마당에서 뭔가를 고치는 중이셨다.
“마침 들어오는구나. 이리 와서 이것 좀 잠깐 잡아주렴.”
“훌쩍, 네?”
“아티, 그런데 너 왜 우는 거니? 나무를 잘 붙들려무나.”
“제가 넘어졌는데요. 친구들이 절두고 가버리잖아요.”
아버진 톱질을 멈추셨다.
“친구? 네 친구들?”
“그 얘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
<아트 슈피겔만, 권희종 외 옮김, 쥐, 아름드리미디어, 1권, 본문 5-6쪽>
이것은 단지 역사 속 나치 치하의 유대인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일상이라는 거대한 감옥에 수용되어 있는 우리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삶이 자꾸만 히말라야 정상에 추락한, 안데스 고원에서 길을 잃은 조난자의 삶처럼 변해가고 있다. 죽은 자의 시신을 놓고 인간적인 장례를 치러줄 것인지 아니면 이들의 시신이라도 뜯어먹고 살아남아야 할지 이 사회가 점점 더 심각하게 강요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살아가야 할 이유는 주지 않으면서 살아남기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에게 남은 마지막 빵조각까지 다 주어버리던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만족할 만한 증거를 제시해 준다.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을 수는 있으나 단 한 가지 빼앗을 수 없는, 그것은 인간의 마지막 자유, 즉 어떠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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