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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미학 - 진중권, 미와 쿄코 | 세종서적(2005) 성의 미학 - 진중권, 미와 쿄코 | 세종서적(2005) 내가 처음 진중권을 주목하게 된 것은 그의 요설스러운 독설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종종 그의 독설이 방향타를 잃었다고 비난 받을 때도(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 자신이 그렇다고 느껴질 때조차) 그에 대해서는 한 수 접어주고 보았다. 그만큼 그(의 글)에 대해 받은 첫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인데 나에게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준 책은 이 책 "성의 미학"이 나온 세종서적의 다른 책 "춤추는 죽음"1.2권이었다. 예전에 알라딘에 짤막한 서평을 올린 적이 있는데(그 무렵엔 500자던가 리뷰에 제한이 붙어서 길게 쓰질 못했지만, 다시 쓰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다) "춤추는 죽음"이 서양미술에 나타난 타나토스(Thanatos)에 대한 책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개.. 더보기
우리 궁궐 이야기 - 홍순민 | 청년사 | 1999 우리 궁궐 이야기 - 홍순민 | 청년사 | 1999 최근 모 계간지(?)에 실린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풍수지리학 혹은 환경심리학의 대가 최창조 선생의 글이 문제가 되었었다. 그 분의 개인적인 견해로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건 말건, 솔직히 내 개인적으로는 행정수도든, 본격적인 천도든 어떤 방향으로 결정되든 아직까지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대목은 아마도 그 글의 일부분이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청와대의 터가 좋지 않아서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가 썩 좋지 않았다. 청와대의 시작은 일제 시대 조선총독의 관저로 이용되면서부터였다. 1945년 일본의 패망 뒤엔 미 군정 장관 하지의 관사였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경무대'로 불리다가 4.19이후 .. 더보기
이승희 - 사랑은 사랑은 - 이승희 스며드는 거라잖아. 나무뿌리로, 잎사귀로, 그리하여 기진맥진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마른 입맞춤 그게 아니면 속으로만 꽃 피는 무화과처럼 당신 몸속으로 오래도록 저물어가는 일 그것도 아니면 꽃잎 위에 새겨진 무 늬를 따라 꽃잎의 아랫입술을 열고 온몸을 부드럽게 집어넣는 일 그리하여 당신 가슴이 안쪽으로부터 데워지길 기다려 당신의 푸르렀던 한 생애를 낱낱이 기억하는 일 또 그것도 아니라면 알전구 방방마다 피워놓고 팔베개에 당신을 누이고 그 푸른 이마를 만져보는 일 아니라고? 그것도 아니라고? 사랑한다는 건 서로를 먹는 일이야 뾰족한 돌과 반달 모양의 뼈로 만든 칼 하나를 당신의 가슴에 깊숙히 박아놓는 일이지 붉고 깊게 파인 눈으로 당신을 삼키는 일 그리하여 다시 당신을 낳는 일이지. * 이.. 더보기
루바이야트 -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 민음사(1997) 루바이야트 -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 민음사(1997) 오마르 카이얌(Omar Khayyam)은 11세기 중엽 페르시아 동북부 지방 코라싼주의 나이샤푸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나 출생연대는 정확치 않다. 오마르 카이얌이 살았던 시대는 셀주크 투르크 왕조가 문화적으로도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시대였다. 기독교인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순례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오마르 카이얌이 언제쯤 숨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교황 우르바누스2세가 처음 십자군을 일으킨 1096년 이전에 숨지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오마르 카이얌의 이름도 정확하게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는 11세기경에 살았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역사학자, 철학자(당시의 지식인이란 존재를 생각해볼 때 이렇듯 다.. 더보기
크리스토퍼 파크닝(Christopher Parkening) - Bach, Prelude 크리스토퍼 파크닝(Christopher Parkening) - Bach, Prelude 고등학교 때 친구 중에 클래식 기타를 정말 잘 치던 친구 한 명이 있었다. 학교에 클래식기타 써클이 있었음에도 그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 써클에 들지 않고, 혼자서만 기타를 쳤다. 축제 기간에 그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 연주회를 갖게 되면 꼭 이 친구를 불러 게스트로 초대한 것으로 보아도 그 녀석의 기타 솜씨는 터부나 아집이 세다면 셀 수 있는 아마추어 동호회 모임에서도 인정해줄 만한 정도였던 거다. 그런 그가 어째서 그렇게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나랑 더 잘 어울렸던가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 친구의 집에 갔다가 내 기억에 클래식 기타만 서너대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더보기
위로의 편지 오랜만이구나. **아! 그간 어려운 일들이 많았구나. 너에게 위로를 주고 싶지만, 나 역시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 이곳에서 희희낙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안에도 내 영혼은 계속 굶주림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랜 벗들에게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절교의 말들을 가다듬고 있다. **아, 이런 경우 대개의 위로란 이런 식으로 출발하기 마련이다. 내가 살면서 겪어왔던 여러 어려움들을 너에게 들려주면서 나는 이렇게 살았고, 그것들을 이렇게 극복했다고 말하는 방식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너와 같은 어려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동시에 너와 같은 괴로움을 안고 있다 해서, 같이 삶의 진구렁 속에서 뒹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어찌 서로에게 위안이 되겠느냐? 그래서 나는 네게 내가 과거에 .. 더보기
허영자 - 씨앗 씨앗 - 허영자 가을에는 씨앗만 남는다 달콤하고 물 많은 살은 탐식하는 입속에 녹고 단단한 씨앗만 남는다 화사한 거짓 웃음 거짓말 거짓 사랑은 썩고 가을에는 까맣게 익은 고독한 혼의 씨앗만 남는다 * 부드럽고 쓸모있는 것들이 오래 남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고 고집세서 쓸데 없는 것들이 오래 남는다 쓸모없어 찾는 사람도 없는 외롭고 쓸쓸하게 방치되어버린 오직 꼭 하나의 목적을 위해 남겨진 것 자신을 죽여야만 살릴 수 있는 것 죽기 전까지 고독하게, 쓸쓸하게 자신을 버림받도록 만든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고, 삭히지 못하고 저버러지 못하고, 내버리지 못하고 무엇 하나 썩도록 버려두지 못하고 온전하게 품어내야만 제 쓸모를 다하는 것 그것은 가장 나중까지 남아야만 알아 볼 수 있다 고독하게 오래도록 버림받은 당신의.. 더보기
테렌스 맬릭 - 씬 레드 라인(The Thin Red Line) 테렌스 맬릭 - 씬 레드 라인(The Thin Red Line) 나는 테렌스 멜릭이 어째서 거장으로 추앙받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어쩌면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이유는 이제서야 "씬 레드 라인"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씬 레드 라인" 2편 모두 극장에서 보았다. 나중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비디오로도 몇 번 더 보았다. 물론 좋았단 뜻은 아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최소한 "씬 레드 라인"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극장에서 "씬 레드 라인"을 보았을 때 나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감을 잡지 못했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나는 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테렌스 멜릭은 "황무지", "천국의 나날들" 단 두.. 더보기
등산교실 : 코오롱등산학교 이용대 교장의 배낭 꾸리기부터 해외 트레킹까지 - 이용대 | 해냄(2006) 등산교실 : 코오롱등산학교 이용대 교장의 배낭 꾸리기부터 해외 트레킹까지 - 이용대 | 해냄(2006) 신춘의 계절이다. 겨우내 좁은 방 안에서 오락가락하던 사람들도 봄이 오면 신발장에서 먼지 묻은 등산화를 꺼내보고, 옷장에서 배낭을 끄집어내 만지작거리게 된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니 철쭉이 만개한 강화 고려산 언저리라도 다녀올 일이다. 이용대의 『등산교실』은 이제 막 산(山)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은 물론 이미 수십 년씩 산에 다닌 사람들도 모두 흡족하게 읽어볼만한 등산의 귀중한 노하우와 ABC를 두루 갖추고 있는 책이다. 한 조사기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주 5일 근무의 확산과 더불어 매주 산을 찾는 사람들이 200만을 헤아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산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데 반해 정작 산에 대해 배울.. 더보기
권현형 - 푸른 만돌린이 있는 방 푸른 만돌린이 있는 방 - 권현형 나환자 마을이었다가 전쟁으로 불타버려 다시 들어섰다는 마을, 당신이 사는 그곳의 내력을 이야기할 때 문득 당신이 붉은 꽃잎으로 보였지요 나병을 앓고 있는 젊은 사내로 슬픈 전설의 후예로 나무 잎새들 당신의 머리카락 햇결처럼 물이랑 일던 초여름이었지요 꽃잎, 작디 작은 채송화들이 마당 가득 재잘거리고 있던 그 집, 그 방, 당신 방에는 작은 악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아무도 한 번도 켜본 적 없다는 흰 벽 위에 벙어리 만돌린이 내걸려 있던 방 당신이 좋아한다는 여자의 편지를 읽어주던 내가 없던 다른 여자가 있던, 햇살이 엉켜 어지럽던 그 골방처럼 모든 내력은 슬프지요 켤 수 없으므로 아름다운 푸른 만돌린에 대한 기억처럼 * 일본의 게이샤들이 누군가의 소실이나 반려로 간택되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