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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 - 사사키 다케시 지음 | 윤철규 옮김 | 이다미디어(2004)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 - 사사키 다케시 지음 | 윤철규 옮김 | 이다미디어(2004) 세상에 제 아무리 좋은 책이 널렸다 하더라도 그 책을 읽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인쇄된 종이에 불과하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도서관으로 대피한 청년들이 얼어죽지 않기 위해 벽난로 불쏘시개로 쓰는 것도 책이다. 그 도서관의 사서 역시 살아남기 위해 책을 불태운다. 이 때의 책이란 아무리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은 아니다. 하지만 사서는 한 권의 책만큼 자신의 품에 꼭 품은 채 내놓지 않는다. 쿠텐베르크가 인쇄한 고인쇄물인 "성서"였다. 이 책이 "성서"라 불태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류의 문명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할지라도 세상에 인류의 흔적으로 남기고 싶은 유물이었기 때문이.. 더보기
김선태 - 조금새끼 조금새끼 - 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냐고요?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을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더보기
안현미 - 음악처럼, 비처럼 음악처럼, 비처럼 - 안현미 새춘천교회 가는 길 전생처럼 패랭이꽃 피어 있을 때 흩뿌리는 몇 개의 빗방울 당신을 향한 찬송가 같았지 그때 우리에게 허락된 양식은 가난뿐이었지만 가난한 나라의 백성들처럼 가난하기에 더 열심으로 서로가 서로를 향한 찬송가 불렀었지 누구는 그걸 사랑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지만 우리는 그걸 음악이라고 불렀지 예배당 앞에 나란히 앉아 기도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담뱃불을 붙여줬던가 그 교회 길 건너편엔 마당에 잡초 무성한 텅 빈 이층 양옥집도 있었던가 그 마당에 우리의 슬픔처럼 무성한 잡초를 모두 뽑고 당신의 눈썹처럼 가지런하게 싸리비질하고 꼭 한 달만 살아보고 싶었던가 햇빛 좋은 날 햅쌀로 풀을 쑤어 문풍지도 바르고 싶었던가 그렇게 꼭 한 달만 살아보자고 꼬드겨보고 싶었던가 그럴까봐.. 더보기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 르 클레지오 지음 | 신성림 옮김 | 다빈치(2008)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 르 클레지오 지음 | 신성림 옮김 | 다빈치(2008) "이 출발이 기쁜 것이 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 프리다 칼로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에서 "석기 시대의 인간이 동굴의 벽에 그렸던 고라니 동물은 하나의 마법의 도구이다.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무엇보다도 신령들(Geister)에게 바쳐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벤야민의 이 말을 프리다 칼로에게 대입시켜 보면 그녀가 그렸던 스스로의 모습들은 고대 제의(Liturgia)의 주술들에 해당한다. 물론 이 작품들이 누구에게 바쳐진 것인가를 해독하는 건 우스운 일이며, 그 대상을 한정 짓는 행위 자체가 비난 받을 일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그 대상을 .. 더보기
아프리카 : 500만년의 역사와 문화 - 롤랜드 올리버 지음, 배기동 외 옮김 / 북피아(여강) / 2001년 아프리카 - 500만년의 역사와 문화 롤랜드 올리버 지음, 배기동 외 옮김 / 북피아(여강) / 2001년 5월 내가 처음 영어사전을 구입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본 단어는 "섹스sex"였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데, 중학교에 입학한 기념으로 막내 삼촌이 직접 서점에 데려가 골라 준 사전이 "혼비영영한사전"이었다. 영어공부를 열심히해야 한다는 다짐 끝에 골라준 사전이었다. 지금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범문사에서 나오던 이 사전은 더이상 출간되지 않는 모양이다. "영한사전"도 아닌 "영영한사전"이 이제 갓 중학교에 입학하던 나에게 과연 적절한 사전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영어단어를 영어로 우선 풀이한 뒤, 다시 한국어로 풀이하는 형태의 이 사전은 내게 영어뿐만 아니라 언어에 대해 접근하는 경로를 열어준 첫 열쇠였.. 더보기
서정주 - 대낮 대낮 - 서정주 따서 먹으면 자는 듯이 죽는다는 붉은 꽃밭 사이 길이 있어 핫슈 먹은 듯 취해 나자빠진 능구렁이 같은 등어릿길로, 님은 달아나며 나를 부르고..... 강한 향기로 흐르는 코피 두 손에 받으며 나는 쫓느니 밤처럼 고요한 끓는 대낮에 우리 둘이는 온몸이 달아...... * 핫슈 : 아편의 일종 * 사람들을 인솔해 미당 서정주의 기념관에 갔을 때,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그의 시에 대한 찬탄을 거듭하며 그의 행적에 대해 눈감거나 그의 행적을 지적하며 이런 시인의 기념관을 세우고, 이런 사람을 기념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거나, 물론 그 사람들의 속내를 알지 못하니 내가 한 마디로 단정지어 왈가왈부하는 건 폭력적인 단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 분들의 속내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사람들은 두 가.. 더보기
황동규 - 더딘 슬픔 더딘 슬픔 - 황동규 불을 끄고도 어둠 속에 얼마 동안 형광등 형체 희끄므레 남아 있듯이, 눈 그치고 길모퉁이 눈더미가 채 녹지 않고 허물어진 추억의 일부처럼 놓여 있듯이, 봄이 와도 잎 피지 않는 나뭇가지 중력(重力)마저 놓치지 않으려는 쓸쓸한 소리 내듯이, 나도 죽고 나서 얼마 동안 숨죽이고 이 세상에 그냥 남아 있을 것같다. 그대 불 꺼지고 연기 한번 뜬 후 너무 더디게 더디게 가는 봄. * 어려서 할미를 어미인 양 여기며 살았다. 나 결혼하는 것까지는 보고 돌아가실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다던 할머니는 정말 나 결혼한 이듬해 봄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퇴근하고 돌아와 이제 막 잠들려는 찰나에 받은 전화로 할머니의 부음을 접했을 때 내가 느낀 황망함이란 당신의 죽음이 주는 황망함이 아니라 그 순간.. 더보기
허수경 -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 허수경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밭을 돌아 서로에게로 갈 때,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 시를 읽다보면 또, 또, 또냐? 또 '사랑'이냐?고 그렇게 말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대개의 좋은 시는 서정시고, 서정시는 곧 연애시고, 연애시는 곧 '사랑'에 대한 시이다. 사랑을 많이 체험해야만 좋은 시를 쓴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사.. 더보기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 그레이스(Grace) 1966년 11월 17일에 태어나 1997년 5월 29일에 세상을 떠난 뮤지션이 있다. 세상에 수많은 노래가 있듯 세상엔 별 만큼이나 수많은 가수가 있다. 그러니 단 한 장의 정규 앨범을 내고 세상을 떠나버린 30살의 뮤지션이 계속해서 기억에 남으리란 기대는 허망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기 한 명의 가수가 기억에 남는다. 제프 버클리.... 그의 노래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알 수 없다는 형용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그렇다면 우리 그의 목소리를 무책임하다고 해두자. 제프 버클리의 목소리는 무책임하게 고막을 후벼 판다. 들판을 헤매는 미친 고아 소녀를 그린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있다. 맨발에 헝클어진 머리 카락, 반쯤 벌려진 입, 허공을 가르는 희멀건 눈동자. 제프 버클리의 음성에서는 그런 고아의 느.. 더보기
김경미 - 바람둥이를 위하여 바람둥이를 위하여 - 김경미 1 걷지 못하는 민들레가 바람을 만나니 걷잖아 탁 ! 터져서 간음 없는 마음이 흔하랴 그런 거야 욕하지 마 바람둥이들 한번 누운 곳 정 못 들이는 지상에서 영원히 단잠 못 이루는 2 욕하지 마 먼지처럼 어디에나 몸을 묻히는 마음 아세톤처럼 어디에서나 쉽게 마음 휘발되는 몸의 사랑 고단하게 귀한거야 * '바람둥이'란 말은 치욕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김경미 시인은 그 고단함을 아는 모양이다. "한 번 누운 곳 정 못 들이는 지상에서 영원히 단잠 못 이루는" 바람둥이는 어쩐지 바그너의 오페라 같다.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아니 진정한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였으므로 그는 영원히 지상에 오를 수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떠돌이가 되어 폭풍우치는 바다 위를 떠돈다. 누군가에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