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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학이(學而)편>12장. 禮之用和爲貴 有子曰 禮之用和爲貴, 先王之道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유자가 말하길 “예의 쓰임은 조화가 귀한 것이니 선왕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게 여겨, 작은 일과 큰 일이 모두 여기에서 말미암았다. 그러나 행하지 못할 것이 있으니 조화를 이루는 것만 알고 조화만 이루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공자 혹은 유가를 생각할 때마다 예법(禮法)의 까다로움이 먼저 떠오르고, 제례(祭禮) 절차를 비롯해 유교적 예법의 번거로움에 대해서는 조상들도 까다롭게 여겨 번문욕례(繁文縟禮)라 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상복을 1년을 입을 것(기년설)인지, 3년을 입을 것인지를 놓고 예송(禮訟)논쟁이 당쟁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했다. 『논어』를 공부하며 새삼 느끼는 것은 .. 더보기
천년의 그림 여행 - 스테파노 추피 지음 | 서현주 옮김 | 예경 『천년의 그림 여행』 - 스테파노 추피 지음 | 서현주 옮김 | 예경 세계적으로 이름난 출판사란 것이 있다. 프랑스의 갈리마르, 일본의 이와나미 같이 종합출판사로 명성을 얻은 출판사가 있는가 하면 예술관련 서적을 전문적으로 출판하여 명성을 얻는 전문출판사도 존재한다. 프랑스의 라루스, 영국의 파이돈, 독일의 타쉔은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명성을 얻은 출판사들이다. 이것을 그대로 한국에 대입해보면 우리의 출판 환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할 수 있는데, 작년 한 해 우리 사회를 대변할 만한 여러 키워드들이 있었지만, 문화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두드러진 것은 누가 뭐래도 "한류(韓流)"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란 말은 그 출처가 어디인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울.. 더보기
고은 - 대담한 낙서 대담한 낙서* - 고은 여름방학 초등학교 교실들 조용하다 한 교실에는 7음계 '파'음이 죽은 풍금이 있다 그 교실에는 42년 전에 걸어놓은 태극기 액자가 있다 또 그 교실에는 그 시절 대담한 낙서가 남아있다 김옥자의 유방이 제일 크다 출처 : 고은, 『순간의 꽃』, 문학동네(2007) * 본래 이 시엔 제목이 없지만 전체 구성으로 보아 내 임의대로 '대담한 낙서'란 제목을 붙여 보았다. ** 일본에는 “한 줄도 길다”는 짧은 정형시의 대명사 ‘하이쿠'가 있다. 시(詩)도 유행을 타는 지 요즘 나오는 시들 가운데는 수사학적인 기교로 충만한 긴 시편들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런 시들은 문학적 성취와 별개로 일단 정이 가지 않는다. 말씀언(言)에 절사(寺)가 붙어 시(詩)라 부르는 데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 더보기
연왕모 - 연애편지:주인님께 연애편지 - 주인님께 연왕모 어젯밤 내내 비가 왔어요 빗소리와 숨소리가 뒤섞여 귀가 자꾸만 먹먹해졌고요 빗줄기에 부딪히는 날숨들이 허둥대며 가슴으로 돌아 들어왔어요 울컥 쏟아진 붉은 잉크에 편지지는 붉다가 이내 검게 변해갔고요 어둠 속에 묻혀갔어요 아침이 오니 햇빛만 마냥 밝아요 놓여 있던 것들은 모두 하얗다가 이내 떠나버렸고요 책상 위엔 먼지만 들떠 있네요 출처 : 문학과사회, 2008년 가을호(통권83호) * 연왕모 시인의 신작시 3편이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실렸다. 시 제목이 인데 제목보다 “주인님께”라는 부제가 더 마음에 든다. 사랑에 대해서야 다종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난 가끔 연애란 건 누군가를 잠시 동안이든, 영원이든 주인으로 모시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은 이지만 내용은 실연(失戀.. 더보기
노튼영문학개관 - M.H. 에이브럼즈 지음 | 김재환 옮김 | 까치(1999) 『노튼영문학개관』 - M.H. 에이브럼즈 지음 | 김재환 옮김 | 까치(1999) 전공이 영문학이었던 사람들에게 『노튼영문학개관』을 읽었느냐고 묻는 건, 역사를 전공한 이들에게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느냐고 묻는 것과 흡사하다. 영문학전공자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책이고, 국내에서 출간된 책 가운데 이보다 더 좋은 책도 물론 있겠지만 아직까지 명성이란 측면에서 이 책을 능가하고 있는 책은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영문학 개론서이자 영문학통사라 할 수 있다. 책을 잘 읽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나는 저자 서문이나 옮긴이 서문을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는데, 불행히도 이 책엔 저자 서문은 아예 없고, 옮긴이의 서문이라는 건 분권된 2번째 책의 말미에 짤막하게 이 책.. 더보기
김일영 - 바다로 간 개구리 바다로 간 개구리 - 김일영 창자가 흘러나온 개구리를 던져놓으면 헤엄쳐 간다 오후의 바다를 향해 목숨을 질질 흘리면서 알 수 없는 순간이 모든 것을 압수해갈 때까지 볼품없는 앞발의 힘으로 악몽 속을 허우적거리며 남은 몸이 악몽인 듯 간다 잘들 살아보라는 듯 힐끔거리며 간다 다리를 구워 먹으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도시로 헤엄쳐 갔다 출처 : 실천문학, 2008년 가을호(통권91호) * 시가 담아내고자 하는 것 자체가 형상화(image)는 아니어도 형상화되지 못한 시를 보는 것은 괴롭다. 김일영 시인의 가 그런 시란 뜻은 물론 아니다. 나에겐 정반대다. 내 안에서 너무 잘 형상화되어 도리어 가슴 아픈 시다. 우연치 않게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에서 서바이벌 생존전문가가 사막에서의 생존기술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더보기
계몽의 변증법 - 테오도르 아도르노 지음 | 김유동 옮김 | 문학과지성사(2001) 계몽의 변증법 - 테오도르 아도르노 지음 | 김유동 옮김 | 문학과지성사(2001) 『계몽의 변증법』은 인간을 계몽되지 못한 신화적 세계에서 빠져나오도록 한 ‘이성(理性)의 힘이 왜 오늘날 도리어 야만상태로 인류를 몰아가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정리한 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M.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은 어렵다는 평을 듣기는 하지만, 한 때 유행했던 포스트모던한 난해함과는 다른 성격의 어려움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읽는 일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첫째는 T. W. 아도르노를 다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과 싸워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책을 읽는 것 못지않게 문장 하나를 읽은 뒤 요구되는 사유의 시간을 견.. 더보기
루이 아라공 - 죽음이 오는 데에는 죽음이 오는 데에는 - 루이 아라공 (Louis Aragon, 1897 - 1982) 죽음이 오는 데에는 거의 일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 그때 알몸의 손이 와서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손은 되돌려주었다 내 손이 잃었던 색깔을 내 손의 진짜 모습을 다가오는 매일 매달 광활한 여름의 인간들의 사건에로 업무에로 뭐가 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에 항상 몸을 떨고 있었던 나에게 나의 생활에 바람과 같은 커다란 목도리를 두르고 나를 가라앉히는 데는 두 개의 팔이면 족했던 것이다 그렇다 족했던 것이다 다만 하나의 몸짓만으로 잠결에 갑자기 나를 만지는 저 가벼운 동작만으로 내 어깨에 걸린 잠 속의 숨결이나 또는 한 방울의 이슬만으로 밤 속에서 하나의 이마가 내 가슴에 기대며 커다란 두 눈을 뜬다 그.. 더보기
박주택 -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 박주택 여행자처럼 돌아온다 저 여린 가슴 세상의 고단함과 외로움의 휘황한 고적을 깨달은 뒤 시간의 기둥 뒤를 돌아 조용히 돌아온다 어떤 결심으로 꼼지락거리는 그를 바라다본다 숫기적은 청년처럼 후박나무 아래에서 돌멩이를 차다가 비가 내리는 공원에서 물방울이 간지럽히는 흙을 바라다보고 있다 물에 젖은 돌에서는 모래가 부풀어 빛나고 저 혼자 걸어갈 수 없는 의자들만 비에 젖는다 기억의 끝을 이파리가 흔들어 놓은 듯 가방을 오른손으로 바꾸어 들고 느릿한 걸음으로 돌아온다 저 오랜 투병의 가슴 집으로 돌아온다 지친 넋을 떼어 바다에 보탠 뒤 곤한 안경을 깨워 멀고 먼 길을 다시 돌아온다 출처 : 박주택, 방랑은 얼마나 아픈 휴식인가, 문학동네(1996) * 박주택 시인의 두 번째 .. 더보기
사랑하라! 희망도 없이, 말도 없이... 오늘(2008. 1.17.) 망명지를 살펴보니 1,634,035명의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카운터에 기록되어 있더군요. 처음 홈페이지를 만든 이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하루도 빠짐없이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제 이야기를 하며 살았습니다. 인터넷 공간에 작으나마 사람들과 소통할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던 건 지난 2000년 8월 1일의 일이었으니까, 햇수로는 올해가 9년, 다가오는 8월이면 만 8주년이 됩니다. 홈페이지 이름이 왜 하필이면 ‘망명지’일까? 때로는 스스로에게 반문합니다. 뭔가 대단한 고민이 있었다기 보다 점점 새로운 해몽을 저의 꿈에 덧대어갔던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꿈보다 해몽이었던 거죠. 아니면 최인훈 선생이 어디선가 들려주었던 말이 오래도록 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