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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 별 헤는 밤 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 더보기
팜므 파탈 : 치명적 여인들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 - 이명옥 | 시공아트(시공사) | 2008 『팜므 파탈 : 치명적 여인들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 - 이명옥 | 시공아트(시공사) | 2008 인사동 미술갤러리 사비나의 관장 이명옥의 책 "팜므 파탈"은 이중적 재미를 제공한다. 하나는 요녀(妖女)의 이미지로서 팜므 파탈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을 채워주고, 다른 하나는 19세기 사진술의 출현 이후 일정 부분 그 위치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서구 신사들의 점잖은 포르노물(?)들을 대거 눈요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조금이라도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간의 누드가 예술이 된다는 점에, 여기에 도덕적 금기를 들이미는 것은 창작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거기에 약간의 의문을 들이대고 싶다. "당신은 언제부터 그렇게 느꼈나?"하고 말.. 더보기
한국 근대 작가 12인의 초상 - 이상진 | 옛오늘(2004) 『한국 근대 작가 12인의 초상』 - 이상진 | 옛오늘(2004) 대학에서 나는 1년간 김병익 선생에게 배운 적이 있었다. 개설된 과목 이름조차 기억이 희미하지만, 당신이 졸업을 앞둔 우리들에게 내어주었던 과제명만큼 확실히 기억한다. 그것은 "왜 글을 쓰는가?"하는 것이었다. 늘 그렇지만 "왜?"라는 질문은 "어떻게?" 혹은 "누가?"란 말로 시작되는 질문보다 어렵다. 그것은 "왜?"라는 질문이 대개는 근원에 대한 정직한 성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솔직(率直)과 정직(正直)을 구분하지 못한다. 사전적인 의미에서라면 이 둘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좀더 파고 들어갔을 때 "거느릴 솔"에는 '경솔하다, 신중하지 못하다, 대강, 대체로, 보기 좋다' 의 뜻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보기
김종삼 - 묵화(墨畵) 묵화(墨畵) -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 시인으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겠지만 어느 날 초등학교 다니는 딸 아이의 소풍에 동행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함께 점심을 잘 먹은 뒤 시인이 사라졌다. 어린 딸 아이는 아비를 찾아 여기저기를 찾아 헤맨 끝에 언덕 위에 잠들어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가슴에 큼지막한 돌 하나를 얹어놓은 채 잠이 들어 있었다. 깜짝 놀란 딸이 물었다. "아버지, 왜 그래?" 딸아이의 놀란 물음에 시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응,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아서 그래." 라고 답했다. "나 지은 죄가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라던 시인이 김종삼이다. 내가 생각하는.. 더보기
전쟁의 탄생 :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 - 존 G. 스토신저 | 플래닛미디어(2009) 『전쟁의 탄생 -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 KODEF 안보 총서 15 - 존 G. 스토신저(John G. Stoessinger) | 임윤갑 (옮긴이) | 플래닛미디어(2009) 전쟁 종전일이 아닌 전쟁 발발일을 기념하는 기묘한 국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동안 전쟁을 먼 나라, 남의 이야기처럼 여겨왔던 오만의 결과일까.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했던 2010년 한 해 동안 전쟁의 기운이 검은 안개처럼 한반도에 스며드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누가 왜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학자로 연구에 전념해왔고, 의 편집자로 국제연합(UN)에서 정치국 국장으로 활동하며 현장 경험도 풍부하게 쌓았던 존 G. 스토신저(John G. Stoessinger)의 『전쟁의 탄생 - 누가.. 더보기
청년아 너희가 시대를 아느냐 - 민윤식| 중앙M&B(2003) 『청년아 너희가 시대를 아느냐』 - 민윤식| 중앙M&B(2003) 내가 소파 방정환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산5번지, 지붕엔 루핑천을 두른 만화방에서의 일이었다. 이 동네는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도 나오는 것처럼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다는 광주,성남 등지에 살던 사람들이 하나둘 새롭게 이주하여 터를 잡고 살아가는 변두리 동네였다. 비오는 날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고무 장화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이야기가 그럴 듯하게 받아들여지는 동네였다. 비만 오면 진구렁으로 변하는 마을 길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이라도 서울이라 할 수 없는 시골 촌구석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고, 어머니는 가까운 공장에 나가거나 아니면 집으로.. 더보기
재즈를 찾아서 - 성기완 | 문학과지성사(1996) 『재즈를 찾아서』 - 성기완 | 문학과지성사(1996) "성기완"이란 저자명을 넣고 검색했더니 너무 많은 책이 떠서 깜짝 놀랐다. 그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 "쇼핑 갔다 오십니까?","유리이야기"를 펴낸 시인이자, 음악 분야에 여러 글들을 쓰고, 책을 낸 저술가이자, 동시에 록밴드에 직접 참가하고 있는 뮤지션이자, 또한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호치민" 편 등을 번역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의 번역 작업엔 만화책 "아스테릭스"를 비롯해서 재즈 아티스트 "마일즈 데이비스"의 자서전 등도 포함된다. 다방면으로 재주가 뛰어난 사람인 건지, 돈이 궁한 건지(이런 불경스런 어투하곤)는 모르겠지만 직접 만났을 때의 느낌으론 짙은 눈썹에 크지 않은 눈, 펑퍼짐한 코에 약간 장발, 그리고 한쪽 귀에만 달린 귀걸이가 어쩐지.. 더보기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 - 이광주 | 한길아트(2001)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 - 이광주 | 한길아트(2001)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책에 대한 없던 애정이 샘솟거나 서재를 좀더 잘 꾸리게 되진 않을 게다. 지난 2004년 국민 1인당 독서량 6권 내외였다고 한다. 최악의 경기침체니, 불황이니 떠들 때마다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게 되는 곳이 출판사들인 걸 생각해보면, 지난 해 나름대로 선전했다고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실제로 몇몇 메이저 출판사들은 나름대로 매출 증대에 성공했다고 들었다). 이광주 선생의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은 책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교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광주 선생 자신이 "대학사"라는 뛰어난 저작을 남긴 학자이면서 또한 책에 관한 문필가로서 명성을 남긴 인물인 만큼.. 더보기
이면우 - 그 나무, 울다 그 나무, 울다 - 이면우 비오는 숲 속 젖은나무를 맨손으로 쓰다듬다 사람이 소리없이 우는 걸 생각해봤다 나무가 빗물로 목욕하듯 사람은 눈물로 목욕한다! 그 다음 해 쨍하니 뜨면 나무는 하늘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고 사람은 가뿐해져서 눈물 밖으로 걸어나오겠지 출처 : 이면우,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 물길시선 1 | 북갤럽 * 가끔 ‘슬픔’은 식물성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사람들은 곧잘 식물에 정성을 기울인다. 말없이 고요하게 화분에 담겨있는 식물의 잎사귀에 물을 대주고, 마른 걸레로 젖은 물기를 닦아내며 내 안에 가득한 슬픔으로 축축한 습기들도 함께 닦아내면서 우리도 그와 함께 말을 잊는다. 식물은 말을 하지 않으며 몸을 피하지도 않지만 벼가 부지런한.. 더보기
이문재 - 물의 결가부좌 물의 결가부좌 - 이문재 거기 연못 있느냐 천 개의 달이 빠져도 꿈쩍 않는, 천 개의 달이 빠져 나와도 끄떡 않는 고요하고 깊고 오랜 고임이 거기 아직 있느냐 오늘도 거기 있어서 연의 씨앗을 연꽃이게 하고, 밤새 능수버들 늘어지게 하고, 올여름에도 말간 소년 하나 끌어들일 참이냐 거기 오늘도 연못이 있어서 구름은 높은 만큼 깊이 비치고, 바람은 부는 만큼 잔물결 일으키고, 넘치는 만큼만 흘러넘치는, 고요하고 깊고 오래된 물의 결가부좌가 오늘 같은 열엿샛날 신새벽에도 눈뜨고 있느냐 눈뜨고 있어서, 보름달 이유는 이 신새벽 누가 소리 없이 뗏목을 밀지 않느냐, 뗏목에 엎드려 연꽃 사이로 나아가지 않느냐, 연못의 중심으로 스며들지 않느냐, 수천수만의 연꽃들이 몸 여는 소리 들으려, 제 온몸을 넓은 귀로 만드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