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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 - 가난에 대하여 : 박재삼 시집 '비 듣는 가을나무'를 읽고 가난에 대하여 : 박재삼 시집 '비 듣는 가을나무'를 읽고 - 정양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이야 한낱 남루이므로 부귀공명이 끝끝내 그리운 타고난 살결까지는 다 가릴 수가 없었겠지만 아다시피 이 땅에는 가난이 너무 많아서 자랑도 슬픔도 부끄럼도 못 되었지만 밑이나 째지고 부황기 들고 모래밭에 혀나 빼물고 몸이나 팔고 맨주먹이나 파르르파르르 떨었었지만 모를 일이다 타고난 마음씨 하나로 어찌하여 그 가난이 이 세상에서 제일로 제일로 반짝이는지 다만 아직 만나지 못하고 사귀지 못한 그 많은 눈물까지를 해맑은 햇살로나 씻어 어떻게 반짝이게 하는지 정말로 정말로 모를 일이다 * 세상의 많은 길 중에서 커다란 대로를 놔두고, 굳이 비탈길, 돌무더기 켜켜이 쌓인 뒤안길로 가야 할 때, 혹은 그 길로 걸어가는 고행을 자처하.. 더보기
강은교 - 망와(望瓦) 망와(望瓦) - 강은교 한 어둠은 엎드려 있고 한 어둠은 그 옆에 엉거주춤 서 있다 언제 두 어둠이 한데 마주보며 앉을까 또는 한데 허리를 얹을까 * 가끔 내 안의 또다른 나와 분투를 벌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만화의 한 장면처럼 천사와 악마가 나타나 다투는 건 아니어도 우리는 매순간 수많은 생각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또다른 나와 그 또다른 나를 의식하며 존재하고 있는 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출몰한다. 우리가 프로이트에게 고마워 해야 할 것은 '내 안의 또다른 나'를 더이상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악귀나 악령이 아니라 그 어둠조차 또한 나라는 것을 긍정할 수 있도록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다. 강은교 시인의 에서 어둠은 서로 포개어진 기와 한 쌍이란 점에서 같은 존재이면서 개별적으로 호명된다. 이.. 더보기
사무라이 - 니토베 이나조 지음 | 양경미 옮김 | 생각의나무(2004) 『사무라이』 - 니토베 이나조 지음 | 양경미 옮김 | 생각의나무(2004) 왜구 혹은 사무라이 "사무라이", 본래 사무라이는 말은 귀족출신의 무사만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후대에 이르러 12세기부터 메이지 유신 때까지 일본정치를 지배한 무사계급에 속한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가마쿠라 막부 시대 이후 사무라이 문화는 왕실문화와는 일정한 차이를 지닌 그들만의 절도를 지닌 문화로 형성되었는데, 무로마치 시대부터는 선불교의 영향을 받아 다도 혹은 꽃꽂이와 같은 일본 고유의 예술을 탄생시키도 한다. 일본하면 저절로 벚꽃과 사무라이를 연상하게 되는 건, 단지 일본인들 스스로 "꽃 중의 꽃은 벚꽃이고, 사람 중의 사람은 사무라이"라고 말하기 때문은 아니다. 조선 시대 이래 "선비" 가 우리 문화와 뗄 수.. 더보기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 | 석기용 옮김 | 이마고(2003)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 | 석기용 옮김 | 이마고(2003)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역시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성공적인 수준의 독서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우리는 오랜 군사독재시대를 거쳐왔기 때문인지, 한국전쟁이라는 지긋지긋한 체험으로부터 아직 자유롭지 못한 탓인지, 오랜 문치 시대의 문약에 젖은 탓인지 몰라도 군사 문제 혹은 전쟁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경향이 있다. 새 사냥꾼들이 꿩을 잡는데는 꿩의 습성을 이용한다고 한다. 꿩은 갑자기 놀라면 머리를 땅에 박고 고개를 들지 않는 습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처럼 자기 시야를 스스로 가림으로써 공포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하는 습성을 이용해 사냥한다는 것이다. 전쟁 혹은 전쟁사에 대한 연구,.. 더보기
내 마음의 모래바람에게 : 네 번째 편지 내 마음의 모래바람에게 : 네 번째 편지 - 오세영의 시 를 읽으며 든 생각들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를 지운다는 것은 곧 너를 지운다는 것, 밤새 그리움을 살라 먹고 피는 초롱꽃처럼 이슬이 이슬을 지우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안개를 지우면 푸른 하늘이 되듯 산에서 산과 더불어 선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내 마음의 모래바람에게... 이상하게도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착 가라앉아 버립니다. 마치 내 안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반성문을 쓰고 있는 듯이... 늙은이에게 젊은이는 더이상 아무 것도 배우려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나.. 더보기
새로운 성역 앞에 선 내부고발 - 2007년 11월 23일자 <경인일보> 김포외고 시험이 끝난 직후 문제가 유출된 것 같다는 게시물들이 해당 학교 게시판에 잇따라 게재되었다. 문제지 유출설의 발단이 된 게시물은 자신을 ‘김포외고 지망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쓴 글이었는데, 서울에 있는 특목고 전문 M학원의 관계자가 시험당일 학원버스에서 학생들에게 시험대비 유인물을 나눠줬다는 것이다. 정확치는 않지만 게시물을 올린 사람은 문제가 된 M학원에 다니지만 그날따라 버스에 타지 못한 중3 학생이라고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해당학교는 발끈하면서 이 학생의 부모에게 항의전화를 했고,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가 시험문제유출이 경찰 수사 결과 사실로 밝혀지자 지난 13일 고소를 취하했다. 경찰의 수사발표가 있기 전부터 많은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증언이 잇따랐다. 이들이 조직내부 사.. 더보기
논어(論語)-<학이(學而)편>11장. 其志其行 子曰 父在觀其志 父沒觀其行. 三年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공자가 말씀하길 “아버지가 살아계실 동안엔 그 뜻을 살피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 행적을 살핀다. 삼년동안 아버지가 하던 바를 바꾸지 말아야 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삼년상(三年喪)을 치르진 않아도 누구라도 삼년간의 시묘(侍墓)살이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다. 장례를 치르는 제도(喪葬制)는 그 자체가 하나의 관습이자 문화이기 때문에 한번 뿌리를 내리면 나름의 의미와 존재 이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속되는 제도이자 풍속이다. 사실 고려시대에는 삼년상을 치르지 않았다. 백일상(百日喪)을 치르거나 하루를 한 달로 계산해서 치루는 역월단상제(易月短喪制)를 시행하였다고 하는데, 이 역시도 일반적인 풍습이 아니라 지배계급에 .. 더보기
김민기 - 김창남, 한울(한울아카데미), 2004. 『김민기』 - 김창남, 한울(한울아카데미), 2004. 영화에는 오마주(hommage)란 말이 있다. 창작자인 감독이 자신의 특별한 존경을 담아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을 일컫는 말인 오마주는 불어로 존경과 경의를 뜻한다. 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오마주를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영화를 통해 드러내는 오마주의 방식인 "나는 당신의 인생을 닮고 싶습니다."라고 생각한다. "닮지 않았다"는 말을 한자로 쓰면 "불초(不肖)"가 된다. '불초'란 말은 "맹자(孟子) 만장편(萬章篇)"에 나오는 말로 "丹舟之不肖 舜之子亦不肖 舜之相堯 禹之相舜也 歷年多 施澤於民久 요(堯) 임금의 아들 단주는 불초하고, 순(舜) 임금의 아들 역시 불초하며, 순 임금이 요 임금을 도운 것과.. 더보기
1916년 부활절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황동규 옮김 / 솔출판사(1995) 『1916년 부활절』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황동규 옮김 / 솔출판사(1995) 예이츠는 1865년 더블린 외곽 샌디먼트라는 곳에서 영국계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나 평생을 아일랜드의 시인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가 영국계라고는 하나 그의 집안은 200년 이상 아일랜드에서 살았다. 그의 가계는 대대로 성직자 집안이었으나 부친 J.B 예이츠는 법률공부를 했다. 그러나 법률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부친이 화가였다고는 하나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고, 예이츠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화가를 포기하고 시업에만 전념했다. 내가 예이츠를 재인식하게 된 것은 지난 1991년 아직 대학생이지 못하던 시절 어느 후미진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때문이었다. 그 무렵의.. 더보기
삼국유사 -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 을유문화사(2002) 『삼국유사』 -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 을유문화사(2002) 벌핀치, 오비디우스의 『그리스로마신화』를 보노라면 천지창조, 신과 영웅이야기 그리고 트로이 전쟁의 세 가지 구분으로 나뉨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인도의 『바가바드 기타』를 읽어볼 생각으로 세 권의 『바가바드 기타』 관련서적을 구입했다. 함석헌 선생이 옮긴 『바가바드 기타』(한길그레이트북스 18권)와 간디의 해설로 된 기타를 이현주가 옮기고 당대에서 펴낸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간디가 해설한 바가바드 기타』 그리고 비노바 바베가 짓고, 김문호가 옮겨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천상의 노래』가 그것이다. 내 생각엔 이 정도면 ‘인도 정신의 꽃’이라는 『바가바드 기타』를 읽기 위한 준비 작업이 나름대로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좀 수월하게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