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 낚시질 낚시질 - 마종기 낚시질하다 찌를 보기도 졸리운 낮 문득 저 물속에서 물고기는 왜 매일 사는 걸까. 물고기는 왜 사는가. 지렁이는 왜 사는가. 물고기는 평생을 헤엄만 치면서 왜 사는가. 낚시질하다 문득 온 몸이 끓어오르는 대낮,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중년의 흙바닥에 엎드려 물고기같이 울었다. * 나도 중년인가 보다. 이 시를 읽고 문득 눈물이 났다. 물고기 같아서.... 물고기 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눈물 흘리려고 했는데 슬픈 눈물 대신 늘어져라 하품이 나와서 슬펐다. 왜 먹먹한 거냐? 인생아! 더보기 다카하시 신 - 최종병기 그녀 최종병기 그녀 다카하시 신을 아는 만화 매니아들이 많을 텐데, 거기에 대해 뭐라고 말을 덧붙이는 것은 약간 우스운 일이 될까? 가끔 남성성, 여성성을 논하는 자리에서 남성성은 이렇다, 여성성은 이렇다고 거칠게 규정하거나 규정당할 때 약간 마음이 아파질 때도 있다. 가령, 내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니듯, 내가 남성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왕따 당하는 느낌을 즐기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럼 점에서 페미니즘 역시 선택적 사고라는 것은 일견 불행하면서 다행한 일이다. 가령, 난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뜻 말하지 못하지만 그 대의에 너무나 동의한다. 그런데 그런 문제는 넘겨두고라도 남성성, 여성성이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글쎄, 최소한 만화책을 .. 더보기 떠돌이 개 - 가브리엘 벵상, 열린책들(2003) 떠돌이 개 - 가브리엘 벵상, 열린책들(2003) 김중식의 시집 에는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이라는 다소 장황한 제목의 시 한 편이 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시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마다/ 하루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육체와/ 동시 상영관 두군데를 죽치고 돌아온 내 피로의/ 끝을 보게된다 돈 한푼 없이 대낮에 귀가할때면/ 큰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 나는 정확하게 20년간 헤어져 살던 어머니와 처음 대면했다. 그 이전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3살 때, 그리고 국민학교 1학년의 기억 속에 단 두 번 그렇게 남아.. 더보기 공광규 - 나를 모셨던 어머니 나를 모셨던 어머니 - 공광규 늙은 어머니를 따라 늙어가는 나도 잘 익은 수박 한 통 들고 법성암 부처님께 절하러 간 적이 있다 납작 납작 절하는 어머니 모습이 부처님보다는 바닥을 더 잘 모시는 보살이었다 평생 땅을 모시고 산 습관이었으리라 절을 마치고 구경삼아 경내를 한 바퀴 도는데 법당 연등과 작은 부처님 앞에는 내 이름이 붙어 있고 절 마당 석탑 기단에도 내 이름이 깊게 새겨져 있다 오랫동안 어머니가 다니며 시주하던 절인데 어머니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평생 나를 아름다운 연등으로 작은 부처님으로 높은 석탑으로 모시고 살았던 것이다. 출처 : 『황해문화』, 2008년 여름호(통권 59호) * “눈에 밟히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런 말을 흔히 관용구(慣用句)라 하는 데, 관용구란 본래.. 더보기 이영광 - 숲 숲 - 이영광 나무들은 굳세게 껴안았는데도 사이가 떴다 뿌리가 바위를 움켜 조이듯 가지들이 허공을 잡고 불꽃을 튕기기 때문이다 허공이 가지들의 氣合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껴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들의 손아귀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을 리가 없다 껴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가여운 것이 크고 쓸쓸한 어둠을 정신없이 어루만져 다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글거리는 포옹 사이로 한 부르튼 사나이를 有心히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필경은 나무와 허공과 한 사나이를, 딱따구리와 저녁 바람과 솔방울들을 온통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구멍 숭숭 난 숲은 숲子로 섰다 숲의 단단한 골다공증을 보라 껴안는다는 것은 이렇게 전부를 다 통과시켜주고.. 더보기 유하 - 뒤늦은 편지 뒤늦은 편지 - 유하 늘상 길 위에서 흠뻑 비를 맞습니다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떠났더라면, 매양 한 발씩 마음이 늦는 게 탈입니다 사랑하는 데 지치지 말라는 당신의 음성도 내가 마음을 일으켰을 땐 이미 그곳에 없었습니다 벚꽃으로 만개한 봄날의 생도 도착했을 땐 어느덧 잔설로 진 후였지요 쉼 없이 날개짓을 하는 벌새만이 꿀을 음미할 수 있는 靜止의 시간을 갖습니다 지금 후회처럼 소낙비를 맞습니다 내겐 아무것도 예비된 게 없어요 사랑도 감동도, 예비된 자에게만 찾아오는 것이겠지요 아무도 없는 들판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게으른 몽상만이 내겐, 비를 그을 수 없는 우산이었어요 푸르른 날이 언제 내 방을 다녀갔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리고 어둑한 귀가 길, 다 늦은 마음으로 비를 맞습니다 * "떠나야 .. 더보기 김선우 - 사골국 끓이는 저녁 사골국 끓이는 저녁 - 김선우 너를 보고 있는데 너는 나를 향해 눈을 끔뻑이고 그러나 나를 보고 있지는 않다 나를 보고 있는 중에도 나만 보지 않고 내 옆과 뒤를 통째로 보면서(오, 질긴 냄새의 눈동자) 아무것도 안 보는 척 멀뚱한 소 눈 찬바람 일어 사골국 소뼈를 고다가 자기의 뼈로 달인 은하물에서 소가 처음으로 정면의 나를 보았다 한 그릇…… 한 그릇 사골국 은하에 밥 말아 네 눈동자 후루룩 삼키고 내 몸속에 들앉아 속속들이 나를 바라볼 너에게 기꺼이 나를 들키겠다 내가 사랑하는 너의, 몸속의 소 , 2007년 봄호 * 최승자, 허수경, 김선우. 최승자, 허수경, 김선우는 내 연애의 대상이었다. 막노동판을 떠돌 때, 나는 최승자의 목을 비틀어 꺾으면 그 목에서는 이차돈의 흰 젖 같은 피 대신 시가 나.. 더보기 후배편집자 편집자 - 나의 동료 "쭈발이" 더보기 대문 - 2000.08.01. 첫 대문 처음 인터넷에 홈페이지란 것을 만들 생각을 했을 무렵의 나는 HTML은 커녕, GIF, JPG란 용어는 몰랐다. 내가 아는 건 오로지 HWP파일뿐이었다. 무턱대고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네이버에서 계정을 받았고, 당시 홈페이지는 네이버에서(현재 블로그가 그런 것처럼) 여러 이미지들 가운데 선택하여 메인 이미지로 만들 수가 있었는데, 이 그림이 내가 맨처음 올렸던 그림이다. 당시엔 이 그림 속의 소년이 어린 시절의 나와 가장 닮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지금 다시 보면 정말 어렸을 적의 나와 일부는 닮았을 수도 있었단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난 저렇게 웃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쨌거나 문화망명지의 첫 타이틀 롤을 맡았던 이미지다. 더보기 장영수 - 自己 自身에 쓰는 詩 自己 自身에 쓰는 詩 - 장영수 참회는 젊은이의 것이 아닌 것. 죽음은 젊은이의 것이 아닌 것. 젊은 시절엔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미, 있는 세상에 대해 죄악인 여러 날들이 지나가고. 그것은 대개 이 세상 손 안의 하룻 밤의 꿈. 하루 낮의 춤. 그러나 살게 하라. 살아가게 하라. 고 말하는 세상에 대해 조금씩 깨어나며 살아가게 하라. * 시인은 참회는, 죽음은 젊은이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 전 한 젊은이의 죽음을 보았다. 나와 동갑내기 청년이었다. 나는 내가 늙었다고 생각해왔는데, 그의 죽음을 보고 치밀어오르는 분노 혹은 슬픔의 켜켜이 쌓인 두께를 가늠하면서 아직 내가 젊다는 사실을 알았다.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미 죄악인 세상이다. 그렇게 치욕적인 여러 날들이 흘러간다. 가늠할 .. 더보기 이전 1 ··· 55 56 57 58 59 60 61 ··· 8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