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안녕


- 김은경



목욕탕에서 때를 밀다 속옷을 갈아입다

상처에 눈 머무는 순간이 있지
훔쳐봄을 의식하지 않은 맨몸일 때 가령 상처는
가시라기보다는 빨강 도드라진 꽃눈일 텐데
눈물로 돋을새김 한 천년의 미소래도 무방할 텐데


어디에 박혔건 내력이야 한결같을 테지만

죽지 않았으니 상처도 남은 것 그리 믿으면
더 억울할 일도 없을까


오래전 당신은 내게 상처를 주었고 나는 또 이름 모를

그대에게 교환될 수 없는 상처를 보냈네
403호로 배달된 상처 한 상자를 대신 받은 기억 있고
쓰레기 더미 속 상처를 기쁘게 주워 입기도 했네


지나갔으니 이유는 묻지 않겠어 당신

왜 하필 내게 상처를 주었는지
하지만 얇은 유리 파편으로 만든 그 옷
내게는 꽉 끼었지 그래 나는 아팠었지
천진한 햇살마저 나는 조금 아팠겠지


이제 그때만큼 아프지 않아

난 다 자랐으니까 폴리백처럼 가벼워졌으니까
(껴안고 사랑할 순 없어도
버릴 수도 없는 일이잖아!)


이제 난 눈물 없는 노래도 부를 줄 알아



生이 너무 즐거운 비명 같은 날이면 바람 부는

구름 속을 홀로 산책하겠어
새로 산 티베트풍 모자를 덮어쓰고 경쾌한
도트 무늬 스커트를 허리에 걸치고
한번쯤은 기꺼이, 가벼운 외투 같은 상처를
장롱에서 꺼내 입어볼게 옛날 옛적
당신에게 받은 상처를
선물인 듯 간직할게


세세만년 전 당신이여

그러면 정말 안녕


<출처> 김은경, 『실천문학』, 2009년 봄호(통권 93호)



*

시인의 생년을 보니 1976년생이다. 아주 나이가 많은 원로시인이 아닌 다음엔 시인들의 생년을 잘 살피지 않는데 어떤 까닭인지 모르지만 이 시인의 생년을 살피게 되었다. 나랑 여섯 살 차이다. 젊지도 그렇다고 어리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다.


사랑 때문에 아프기엔 어딘지 쪽팔리고, 사랑 없이 살기엔 아직 너무 뜨거운 나이다. 과연 그럴 나이가 있다면 말이다. 『실천문학』에 실린 두 편의 시 「오래된 골목」과 더불어 읽었는데 두 편 모두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왜? 왜 이 시들이 이토록 경쾌하게 받아들여지는 걸까.



그건 아마도 이 시에서 보이는 ‘아픔’이 의복의 심상 체계, 다시 말해 상품이나 패션 소품의 나열이란 방식으로 연계되고 때문이리라. ‘속옷’에서 ‘상처 한 상자’, ‘얇은 유리 파편으로 만든 그 옷’, ‘새로 산 티베트풍 모자’, ‘도트 무늬 스커트’, ‘가벼운 외투’에 이르는 연상들은 속옷에서 외투로 그리고 다시 상처 한 상자를 포장해서 반품해버리거나 쓰레기 더미 속에 던져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껴안고 사랑할 순 없어도 버릴 수도 없는 것’, 그것이겠지. 사랑의 흔적들과 안녕하는 방법이란….



'POESY >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기철 - 저물어 그리워지는 것들  (0) 2011.07.13
이하석 - 구두  (0) 2011.07.12
이문재 - 푸른 곰팡이  (0) 2011.07.11
김선우 - 목포항  (4) 2011.07.01
임현정 - 가슴을 바꾸다  (0) 2011.06.30
김은경 - 뜨거운 안녕  (0) 2011.06.29
정우영 - 초경  (1) 2011.06.28
나태주 - 지상에서의 며칠  (0) 2011.06.27
이병률 - 사랑의 역사  (0) 2011.06.23
고정희 - 강가에서  (0) 2011.06.22
백무산 - 경찰은 공장 앞에서 데모를 하였다  (0) 2011.06.21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초경 


- 정우영


  아직 봄이라 하기에는 조금 이른 저녁나절이었다.

  허접한 눈으로 헌 신문 뒤적거리고 있는데,
  여든 넘은 어머님이 불쑥 물으신다.
  자네는 봄이 뭐라고 생각하나?
  봄이요? 해 놓고 답변이 궁색하다.
  아지랑이야.
  눈부터 뽀얀 아지랑이 속에 빠져들며 어머님 스스로 대꾸했다.
내가 양지뜸에서 나물 뜯고 있던 열세 살 때야. 초록 아지랑이
가 다가와 속삭이더니 나를 살짝 휘감아선 날아가는 거야. 난 어
쩔 줄 몰라 아지랑이 꽉 붙잡고 있었지. 아지랑이는 한참을 날아
산등성이에 나를 내려놓았어. 그러고는 메마른 나뭇가지에 초록
저고리를 슬근 벗어 걸어 두는 것인데, 요상도 해라. 그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초록 싹이 돋는 거야. 깜짝 놀란 난 하초를 지렸는
데 초록 물이 배어 나왔어. 초경이야. 그 후로는 이상하게 봄보다
먼저 아지랑이가 찾아와. 그러면 난 어김없이 초경을 앓지.
  아지랑이와 어우러진 어머님 목소리 나른하게 멀어지더니
  내 허접한 눈에 초록 물 배어든다.


<시와 사상, 2007, 여름호>


*

아직 봄이라 하기엔 이른 저녁나절, 여든 넘은 노모 앞에서 신문을 읽는 시인에게
노모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봄이 뭐냐고?"


"무엇이냐? 왜?"
란 질문은 철학적인 질문이다.

알랭 바디우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철학에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길고 긴 우회로들을 거쳐야만 한다."고 말한다.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본성"이 무엇이냐는 다른 질문과 엮이게 되기 때문이다. 하
지만 그건 철학의 몫이다. 문학은, 특히 시(詩)는 철학과 비교했을 때 결코 우회하는 장르가 아니다. 시에서 드러냄은 숨김을 위한 것이고, 숨기는 것은 드러냄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숨김과 드러냄의 긴장의 숨바꼭질이 주는 긴장을 어떤 이는 "낯설게 하기"라고 부르지만 "낯설게 하기"가 주는 생경함은 시의 폭발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긴 어렵다.


시인은 봄이 무어냐고 묻는 노모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 대신
우리에게 노모가 생각하는 봄의 몸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말로 바꾸어 표현할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봄의 본성을 보여준다.


초경(初經)

'POESY >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하석 - 구두  (0) 2011.07.12
이문재 - 푸른 곰팡이  (0) 2011.07.11
김선우 - 목포항  (4) 2011.07.01
임현정 - 가슴을 바꾸다  (0) 2011.06.30
김은경 - 뜨거운 안녕  (0) 2011.06.29
정우영 - 초경  (1) 2011.06.28
나태주 - 지상에서의 며칠  (0) 2011.06.27
이병률 - 사랑의 역사  (0) 2011.06.23
고정희 - 강가에서  (0) 2011.06.22
백무산 - 경찰은 공장 앞에서 데모를 하였다  (0) 2011.06.21
조은 - 섬  (0) 2011.06.20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지상에서의 며칠


- 나태주



때 절은 종이 창문 흐릿한 달빛 한 줌이었다가

바람 부는 들판의 키 큰 미루나무 잔가지 흔드는 사람이었다가
차마 소낙비일 수 있었을까? 겨우
옷자락이나 머리칼 적시는 이슬비였다가
기약 없이 찾아든 바닷가 민박집 문지방까지 밀려와
칭얼대는 파도소리였다가
누군들 안 그러랴
잠시 머물고 떠나는 지상에서의 며칠, 이런 저런 일들
좋았노라 슬펐노라 고달팠노라
그대 만나 잠시 가슴 부풀고 설렜었지
그리고는 오래고 긴 적막과 애달픔과 기다림이 거기 있었지
가는 여름 새끼손톱에 스며든 봉숭아 빠알간 물감이었다가
잘려 나간 손톱조각에 어른대는 첫눈이었다가
눈물이 고여서였을까? 눈썹
깜짝이다가 눈썹 두어 번 깜짝이다가......


*

사람들은 누구나 즐거움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러나 슬픔과 고통은 영원할 것처럼 군다.
시인은 "누군들 안 그러랴"고 말한다.
그리고 또 말한다.


잠시 머물고 떠나는 지상에서의 며칠, 이런 저런 일들
좋았노라 슬펐노라 고달팠노라
그대 만나 잠시 가슴 부풀고 설렜었지
그리고는 오래고 긴 적막과 애달픔과 기다림이 거기 있었지



눈썹

깜짝이다가 눈썹 두어 번 깜짝이다가......


세상은, 지상에서의 며칠은 눈깜짝할 새에 지나간다고.

사람들은 '삶은 열심히 살기엔 너무 짧고, 막 살기엔 너무 길다'고 말하지만,
나는 천만에 삶은 열심히 살기엔 너무 길고, 막 살아 버리기엔 또 너무 짧다고 말하련다.


열심히 살기만 하면 뭐해? 

삶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다고 막 살아버리면 또 뭐 해? 남는게 있을라고...

'POESY >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문재 - 푸른 곰팡이  (0) 2011.07.11
김선우 - 목포항  (4) 2011.07.01
임현정 - 가슴을 바꾸다  (0) 2011.06.30
김은경 - 뜨거운 안녕  (0) 2011.06.29
정우영 - 초경  (1) 2011.06.28
나태주 - 지상에서의 며칠  (0) 2011.06.27
이병률 - 사랑의 역사  (0) 2011.06.23
고정희 - 강가에서  (0) 2011.06.22
백무산 - 경찰은 공장 앞에서 데모를 하였다  (0) 2011.06.21
조은 - 섬  (0) 2011.06.20
유안진 - 술친구 찾지 마라  (0) 2011.06.17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사랑의 역사


- 이병률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깊다 못해 수차례 스치고 부딪친 한두 자리는 아예 음합니다

맥없이 부딪쳤다 속상한 마음이나 챙겨 돌아가는 괜한 일들의 징표입니다

나는 그 벽 뒤에 살았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살고 오래라 믿고도 살았습니다

굳을 만하면 받치고 굳을 만하면 받치는 등뒤의 일이 내 소관이 아니란 걸 비로소 알게됐을 때

마음의 뼈는 금이 가고 천장마저 헐었는데 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내 목덜미에선 난데없이 여름 냄새가 풍겼습니다


<출처 : 이병률, 『바람의 사생활』, 창비, 2006>


*

그(녀)에게 갔던, 그(녀)에게 향했던 무수한 발 걸음, 말없이 되돌아 서야 했던, 거절당했던 막다른 벽에 버티고 서서 간신히 삶을 추어올리고 되돌아서야 했던 그리하여 말도 못하고 '음' 한 마디로 되돌아서야 했던 소리없이, 존재감도 없이 언제인가 알아주리라 믿었던 세월... 나는 모른다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강가에서


- 고정희


할 말이 차츰 없어지고
다시는 편지도 쓸 수 없는 날이 왔습니다
유유히 내 생을 가로질러 흐르는
유년의 푸른 풀밭 강뚝에 나와
물이 흐르는 쪽으로
오매불망 그대에게 주고 싶은 마음 한 쪽 뚝떼어
가거라, 가거라 실어 보내니
그 위에 홀연히 햇빛 부서지는 모습
그 위에 남서풍이 입맞춤하는 모습
바라보는 일로도 해저물었습니다
불현듯 강 건너 빈 집에 불이 켜지고
사립에 그대 영혼 같은 노을이 걸리니
바위틈에 매어놓은 목란배 한 척
황혼을 따라
그대 사는 쪽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

문득 인생이 허망하다.

"할 말이 차츰 없어지고
다시는 편지도 쓸 수 없는 날이 왔습니다."라고 시인이 적어놓은 싯귀를 그대로 옮겨 적으며 이것이 내게 하는 말 같다. 나는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힘주어 글을 적어 보냈다. 갈대같이 흔들리며, 하염없이 기다리며,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내 손으로 그들을 떠나보냈다.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역시 감당할 수 없었다. "바라보는 일로도 해" 저물었다. 모두 떠나보낸 뒤에야 나는 "황혼을 따라" 하염없이 손을 흔들어주는 일밖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차마 노 저어 갈 수가 없기에...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경찰은 공장 앞에서
데모를 하였다


- 백무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노동은 인질로 잡혀갔다

납치범들은 총칼로 인질을 위협하며
흥정을 하는데 써먹었다
그러다가 납치범들은 더 큰 마피아
소굴의 나라에 통째 납치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두 번씩 빼앗겼다


노동법도 빼앗겼다

노동삼권도 빼앗겼다
깃발도 빼앗겼다
함성도 빼앗겼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종이 되었다
그래서 납치범들은 주인을 자처했다


거리마다 여전히 4월의 피는 흐르고

거리마다 여전히 5월의 흰 뼈들은 굴렀다
6월의 거리를 소나기로 퍼부으며
우리는 납치범들을 몰아내고자 했다
우리는 빼앗긴 것을 돌려받기 위해 싸웠다


경찰은 데모를 하였다

납치범들의 졸개인 경찰은 무장을 하고
주인 앞에 몰려와서 데모를 하였다
최루탄을 쏘고 군화발로 짓이기며
과격시위를 하였다
쇠몽둥이를 들고 곤봉을 휘두르며
극렬시위를 하였다
공장 앞에 몰려와
극렬하게 데모를 하였다


노동자들은 진압에 나섰다

저들의 살상 무기를 막자고
지게차가 나섰다 포크레인이 나섰다
깃발을 들고 함성으로 나섰다
주인인 노동자들은 피흘리며 진압에 나섰다


<출처> 백무산, 『만국의 노동자여』, 청사



*


오래된 시집을 다시 꺼내 읽는다. 1993년 3월 23일. 나는 백무산의 『만국의 노동자여』를 구입하여 읽었다.
"경찰은 데모를 하였다 / 납치범들의 졸개인 경찰은 무장을 하고 / 주인 앞에 몰려와서 데모를 하였다"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느꼈던 통쾌함, 자본과 권력의 졸개가 된 언론은 언제나 불법, 폭력 시위의 주체로 노동자와 시민들로 몰아갔는데 백무산 시인은 경찰이 주인인 시민들과 노동자들 앞에서 데모를 한다고 말한다. 1987년까지 교과서는 4.19를 의거로, 5.16을 혁명으로 가르쳤고, 광주는 폭동이었다. 이 시가 선사하는 주체와 객체의 전복이 주는 쾌감이야말로 혁명의 맛이 아닐까.


21세기가 되어 다시 백무산을 읽는다. 젊은 백무산의 시를 내 나이 마흔줄에 다시 읽는다. 민중문학은 구호의 선명성으로 인해 문학성이 떨어진다고 가르쳤고, 그렇게 배웠다. 나 역시 이 시집을 잘 포장해서 교수님 눈치보며, 쪼그려 앉아 읽었다. 그럼에도 그 시절은 세상이 참 단순했다. 누구나 비분강개할 줄 알았고, 누구나 거리를 내달리는 쾌감을 알았다. 다시 백무산을 읽는다.





끓는 피는 이미 식어버린지 오래 다시 백무산을 펼쳐 읽는다. 세상은 참으로 복잡하고 내 마음도 따라서 복잡해진다.
생각이 복잡하면 주먹 휘두를 곳을 찾아내지 못하는 법인데... 87년 노동자대투쟁의 바탕에는 사무직과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격차와 차별이 깔려 있었다. 이제 그 천만 노동자는 다 어디로 가고  비정규직 노동자만 남았는가. 이제 그 함성에 답할 사람 어디에도 남지 않아 메아리조차 맥 없이 공허한데...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2011.06.20 09:29


- 조은

물이 나를 가둔다
물이 나를 조인다

새들은 내 몸에다 배설을 하고
바람은 커다란 독처럼 나를 묻는다

………

가자
이 햇빛 좋고 바람 서늘한 날에
나를 기어오르는 물길을 다른 곳으로 꺾으며
홀가분해지며


출처 : 조은, 무덤을 맴도는 이유, 문학과지성사, 1996


*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은 하이쿠를 연상케 하는 두 줄의 짧은 시 "섬"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했는데 조은 시인의 동명의 '섬'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지 않다. 정현종 시인의 '섬'이 온전히 '관념의 섬'으로 '환유(metonymy)'를 이용해 의미망을 확대한다면 조은 시인의 '섬'은 묘사를 통해 우리들을 섬으로 초대한다.

물로 사방이 막혀서 섬이다.
물은 길이지만 동시에 나를 가두는 장벽이다.

새들은 내 몸에다 배설을 하고
바람은 커다란 독처럼 나를 묻는다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 이 시의 백미(白眉)는 시적 묘사에 있지 않고, 도리어 그 반대로 3연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말줄임표(………)에 있다고 본다. "할 말을 줄였을 때나 말이 없음을 나타낼 때"에 쓰는 말줄임표는 침묵, 다시 말해 말 없음을 의미한다.

막스 피카르트는 "침묵의 세계"에서 "침묵이란 그저 인간이 말하지 않음으로써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침묵은 단순한 말의 포기 그 이상의 것이며, 단순히 자기 마음에 들면 스스로 옮아갈 수 있는 어떤 상태 그 이상의 것이다. 말이 끝나는 곳에서 침묵은 시작된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 때문에 침묵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때 비로소 분명해진다는 것 뿐이다."라고 했다.

침묵이 흐른 뒤... 과연 이 침묵은 무엇을 분명히 하였기에 "이 햇빛 좋고 바람 서늘한 날에 나를 기어오르는 물길을 다른 곳으로 꺾으며 홀가분해지며 가자"고 외치게 된 것일까. 시의 극적 반전 만큼이나 침묵(………)은 묵직하다.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술친구 찾지 마라

- 유안진


아무리 마음 맞는 여럿이
얼크러져 설크러져 마셔봐도
결국에는 저 혼자서 마시는 것이 되고
저마다 제각기
제 상처만 찾아가는 외로운 술자리
멱살 잡을 원수도
목을 안고 같이 울 그이도
결국에는 외동그래 저 하나일 뿐
가엾는 제 몸 밖에 누가 또 있다던가.


*


술 마시고 내게 신세 타령하다가 벼락 맞은 친구들이 꽤 많다.

평소 맨정신으로는 조곤조곤 이야기도 잘 들어준다는데
누군가 술 마시고 내게 신세 한탄 늘어놓으면 그걸 참아주지 못하고
버럭 성질부터 부린다.

그네들 알콜 기운을 빌려 평소 고이고이 들어주던 내 스트레스를
걔네들에게 푸는 걸지도 모른다.

이봐, 이봐! 술 마신 놈!
내가 승질 부린 거 기억 안 나지? 하고 말이다. 흐흐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사격클럽 안내책자 한 귀퉁이에서 안락사한 물고기


- 전기철

낯선 남자의 아이를 낙태한 후
동네 건달들이 수없이 건드려도 아이를 갖지 못한
누이는 물고기를 키웠다.

남태평양 어디쯤에서 왔다는 이름도 모르는 물고기를 키우는 누이
먹이를 줄 때마다 귀향을 약속하며 장난감 배를 띄웠다.
지푸라기와 헝겊과 연필로 만든 작은 배

사격클럽에 응모하지만 한 번도 연락을 받은 적이 없어
우울증에 시달리는 누이
어머니가 키우는 고양이만 보면 언젠가는 안락사를 시키겠다고 장담하면서
킬러가 되고 싶어하는 누이
놀이공원에서조차 총을 쏴본 적도 심지어는 만져본 적도 없으면서 탕, 탕, 탕, 실눈을 뜨고서
손가락 총을 쏘는
누이는 남태평양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제 안에 바다가 있어 늘 썩은 생선 냄새가 나는 누이는
바다를 베고 자기도 하고 토막 내 물고기에게 먹이기도 하고
저녁 무렵 고요한 물고기의 시간에 배를 띄우면서
애기 울음소리를 내는 고양이를 죽일 기회만 엿본다.

<출처: 전기철, 작가세계, 2008년 겨울호(통권79호)>
- 1988년 <심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비의 침묵』, 『풍경의 위독』, 『아인슈타인의 달팽이』 등이 있다.


*

개인적으로 시(詩)라는 것은 이미지와 내러티브 그리고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 어떤 시는 이미지(image)의 시가 되기도 하고, 내러티브(narrative)의 시가 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시는 존재(being)의 시, 혹은 존재에 대해 말하는 시다. 다만 어느 성향이 좀더 강하냐고 할 때, 전기철의 <사격클럽 안내책자 한 귀퉁이에서 안락사한 물고기>는 내러티브적 성향이 강하다.

불임(不姙).

모든 것이 유전자로 치환되는 시대에 불임은 자신의 근거를 세상 어디에도 남길 수 없다는 허무(虛無)다. 아무 것도 창조할 수 없는 것은 둘째고, 묘비명 하나 남기기 어려운 시절에 그는 존재의 흔적을 어느 곳에도 남길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사격클럽이란 그런 존재로 만든 세상에 대한 분노를 실현시킬 유일한 출구이지만, 이곳으로부터는 아무런 응답이 없다.

‘남태평양’은 구원의 바다가 될 수 있을까? 자기 안에 썩은 바다를 키우는 누이에게. 아무런 구원도 기대할 수 없는 누이는 그래서 아기 울음소리를 내는 고양이를 안락사 시킬 궁리 중이다. 제가 먼저 죽어가고 있으며 이미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 두고

- 이외수

살아 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 감싸 안으며
나지막히
그대 이름을 부른다
살아 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

시(詩)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될 때 한 번씩 걸리는 작가와 시인들이 있다. 이른바 순수문학, 평단에서 주목하고, 작품성을 널리 인정받는 작가와 시인이 있는가 하면 평단에선 거의 주목하지 않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가와 시인, 작품들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 꽤 유명한 작가 중에 한 분이 문예창작과의 존재가 문학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란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대체로 그 분 말씀이 옳다고 생각한다. 특히 등단이란 절차가 까다로운 게이트 키핑 구실을 하는 한국의 문학 현실을 두고보면 그건 더욱더 맞는 말이다. 얼마전 예전에 알고 지내던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시집을 엮어 책으로 보내온 일이 있다. 직업이 직업이라 가끔 시인, 소설가들의 저자 증정본을, 글 쓰고, 글을 엮어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몇몇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오곤 한다. 책 한 권 만드는 일의 어려움을 잘 알기에 되도록 감사하게 읽어보려고 애쓰지만 어떤 책 한 차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후일을 기약하기도 한다. 그래도 알던 사람이라 보내온 시집을 찬찬히 읽어본 뒤 혼자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 추억이라면, 추억이요, 자신의 보람이라면 보람일 테니 뭐라 더 긴 말은 하지 말자.

유명한 시인도, 작가도 졸작을 쓸 때가 있지만 그것이 시가 아니고, 소설이 아닌 적은 없다. 그러나 그건 유명하지 않아도, 한 번도 제대로 된 문학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시라고 생각하고 쓰면 시이고, 소설이라고 쓰면 소설이다. 어차피 문학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문학이 대단한 어떤 것이라고 여기는 분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건 그저 당신에게 그런 장르일 뿐인 거다. 물론 나는 여전히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을 대단한 것이라 여기지만 그건 그저 여러 사람들의 생각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기고 있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어떤 선생님은 이른바 참여시를, 참여시인들을 눈 아래로 깔고 있는 것이 역력하게 보였다. 당신에게 그건 시도 아니고, 문학도 아닌 뭣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시들을 읽고 때때로 감동을 받았다. 당신에게 무시당하던 시인들은 또 있었다. 소설도 쓰고, 시도 쓰는 문인이거나 함석헌, 문익환 선생같은 이들도 있었다. 당신은 시인, 소설가에게 반드시 선생이란 호칭을 붙이도록 우리들을 훈련시켰다. 요즘은 미용실 언니들도 서로 부를 때는 꼭 선생님이라 부르는데, 장차 문학을 업으로 삼겠다는 학생들이 문인들을 연예인 부르듯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의 그 의견에 동의했으므로(비평적 글쓰기를 할 때를 제외하곤) 지금도 버릇처럼 그들의 이름 뒤에 반드시 선생이란 호칭을 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여시를 좋아했고, 문학적으로 장수하거나 오래도록 읽힐 지는 알 수 없어도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외수 선생의 시를 읽을 때나 당신의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꽤 여러 번 감동하곤 했다. 최소한 문단에서 도외시할 만큼 그의 소설이 비문학적이었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시 역시 시인의 모든 시가 명작일 수는 없는 것처럼 그의 시가 널리 퍼진 것들이 모두 내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으나 걔중 어떤 것들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건 유명한 다른 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시인의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드는 경우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편차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외수는 거의 항상 희화화의 대상일 뿐이었다(나는 그런 작가 중 한 명으로 김홍신을 꼽는다. 그의 초기 단편들은 아주 훌륭했으므로). 나에겐 그런 것을 되돌릴 만한 힘이 없지만 때때로 그의 외형이나 삶으로 인해 그의 문학적 평가마저 지나치게 저평가되고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어쩌면 이들 작가들에 대한 대중의 때로 넘치는 호응은 문단의 박한 평가에 대한 보상일지 모르겠다.

흐흐, 시 이야기를 하려다가 딴 길로 샜으나 그냥 둔다. 그 역시 하나의 길이 될 터이니...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