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새면
- 벗이여 나는 이즈음 자꾸만 하나의 운명이란 것을 생각고 있다.
 


임화



자고 새면

이변을 꿈꾸면서
나는 어느 날이나
무사하기를 바랐다


행복되려는 마음이

나를 여러 차례
죽음에서 구해 준 은혜를
잊지 않지만
행복도 즐거움도
무사한 그날 그날 가운데
찾아지지 아니할 때
나의 생활은
꽃 진 장미넝클이었다


푸른 잎을 즐기기엔

나의 나리가 너무 어리고
마른 가리를 사랑키엔
더구나 마음이 애띠어


그만 인젠

살려고 무사하려던 생각이
믿기 어려워 한이 되어
몸과 마음이 상할
자리를 비워 주는 운명이
애인처럼 그립다.



임화, 다시 네거리에서, 미래사, 1991.


*


-
한국에는 미남 시인의 계보가 있다하는데, 언어를 표현의 매개로 사용하는 시인에게 얼굴이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있는 것을 보면 외모를 따지는 것은 이미지를 소비하는 지금만의 세태는 아닌 듯 싶다. 그런 꽃미남 계보의 시조이자 정점에 놓아야 할 시인이 있다면 우리는 동양의 루돌프 발렌티노란 별명을 지녔던 임화를 제외할 수 없다.


굴절많은 남북한 문학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극적인 생애를 살았던 시인. 임화.

다다이즘으로 출발해서 마르크스주의 문학운동의 핵심이론가 중 한 사람이 되었던 시인이자 영화배우, 문학평론가이자 혁명가를 꿈꿨던 임화는 박헌영을 따라 월북했으나 월북 이후 그의 문학적 행적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한국전쟁 시기에 월북 작곡가 김순남과 함께 인민항쟁가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한국전쟁 말엽이던 1953년 진행된 숙청작업에 밀려 박헌영을 비롯한 다른 남로당계 인사들과 함께 수감된다. 그는 수감 당시 끼고 있던 안경을 깨뜨려 그 파편으로 동맥을 끊고 자살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1953년 8월 6일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미국을 위한 간첩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고 총살당한다. 이때 함께 총살당한 이들은 김남천, 이승엽, 이원조, 이강국, 설정식 등이었다고 한다. 당시 그의 나이 45세였다.


시대를 잘못 만난 탓이었을까, 그의 유약함 때문이었을까. 프롤레타리아 문학 혁명을 꿈꾸었으나 일제의 탄압에 굴하여 친일 행적을 보이기도 했던, 지병이던 폐결핵으로 인해 나이 갓 40을 넘겼을 때 이미 머리카락은 하얗게 새어버렸다던... "자고 새면 이변을 꿈"꾸었던, 불량한 시대의 불온한 모던보이, 임화. 애인처럼 그리운 운명이 당신을 배신한 세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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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 최승자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 된다.
잡초나 늪 속에서 나쁜 꿈을 꾸는
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


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풀섶에서 일어난 어느 아침부터
긴 몸뚱아리의 슬픔이예요.


밝은 거리에서 아이들은

새처럼 지저귀며
꽃처럼 피어나며
햇빛 속에 저 눈부신 天性의 사람들
저이들이 마시는 순순한 술은
갈라진 이 혀끝에는 맞지 않는구나.
잡초나 늪 속에 온 몸을 사려감고
내 슬픔의 毒이 전신에 발효하길 기다릴 뿐


뱃속의 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구하듯

하늘 향해 몰래몰래 울면서
나는 태양에서의 사악한 꿈을 꾸고 있다.



출처 :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시인선16, 1989



*

최승자의 시에서 발견되는 - 이건 발견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니다. 이토록 줄줄 흘리고 다니는데 발견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 혹은 노출에 가까운 정조는 '자학'이다. 그런데 최승자의 시가 지닌 미학의 정점은 단순히 자학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학하듯 말하지만 최승자의 시에서 실제로 노래하는 것은 노출의 쾌감이다. 내 안의 어둠이 이렇게 매력적일 수 있다는 걸 최승자의 시는 보여준다. 봐라! 나는 어둡다. 봐라!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 된다." '하지만... 나는'이라고 반전될 때 최승자의 시는 영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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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림돌


- 공광규


잘 아는 스님께 행자 하나를 들이라 했더니

지옥 하나를 더 두는 거라며 마다하신다
석가도 자신의 자식이 수행에 장애가 된다며
아들 이름을 아예 ‘장애’라고 짓지 않았던가
우리 어머니는 또 어떻게 말씀하셨나
인생이 안 풀려 술 취한 아버지와 싸울 때마다
“자식이 원수여! 원수여!” 소리치지 않으셨던가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를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누구를 들이고 둔다는 것이 그럴 것 같다
오늘 저녁에 덜되 먹은 후배 놈 하나가
처자식이 걸림돌이라고 푸념하며 돌아갔다
나는 “못난 놈! 못난 놈!” 훈계하며 술을 사주었다
걸림돌은 세상에 걸쳐 사는 좋은 핑계거리일 것이다
걸림돌이 없다면 인생의 안주도 추억도 빈약하고
나도 이미 저 아래로 떠내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출처 : 『황해문화』, 2009년 봄호(통권63호)



*



술이 ‘땡기는’ 날, 마시는 술은 입에 착착 붙는다고 하더라만 시가 ‘땡기지’ 않는 날에 읽어도 착착 붙어주는 시가 있다. 내 경험으로 보면 공광규 시인의 시들이 그렇다.


불교의 연기설(緣起說)과 스님의 수행으로 시작하여 아버지 석가모니 이야기를 하더니 어느새 어머니의 “자식이 원수여!”로 슬그머니 넘어온다. 시적 정황은 금세 선술집 신세타령으로 넘어오는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럽다.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를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삶이 주는 것 중에 온전한 평온과 행복이 얼마나 되랴. TV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 등장하는 인생의
달인처럼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 본 적이 없으면 인생에 대해 말을 하지마!”라고 공광규 시인은 그렇게 입에 착착 붙는 시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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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소나기


- 허수경



재실댁은 아파트 파출부 그 집 아재 김또돌 씨는 하수구 치는 일을 했제 야반도주 고향을 베린 지 어언 십여 년 하루떼기 벌이에 이골은 났지만 날이 갈수록 왜 이리 쪼그라만 드는 살림 단칸 월세방에 내외간이 딴이불 거처를 하는데 김또돌 씨 술이라도 한잔 들이키는 날에는 이불 싸가지고 마루에 누웠제 옌장 마누라쟁이라고 암만 고달퍼도 할 일은 해야제 맨날 돌아누우니 살맛이 나 살맛이

쓴 담배만 뻑뻑 빨다 잠이 들었는데 이쿠 소나기야 마루까지 치받고 후둑거리는 소나기 피해 우당탕탕 챙겨 방으로 들어왔는데 소나기 핑계로 들어와 누웠는데
웬일로 재실댁이 먼저 안겨오지 않나 소나기 한번 장하데이 이녁도 장하게 한번 들어오소 김또돌 씨 소나기처럼 황소처럼 달려들었제 임자요 섭했지예 몸이 천근 같으니 내사 우찌 살붙일 정이 나것소
재실댁 마른 가슴 더듬다 잠이 든 김또돌 씨는 빚에 몰려 쫓겨온 고향 짼한 고향 보리밭에 또 한 번 재실댁을 넘어뜨리는 꿈을 꾸었지러 별 숭숭 말짱한데 도시 산동네 하루벌이 부부


*

'옌장 마누라쟁이라고 암만 고달퍼도 할 일은 해야제 맨날 돌아누우니 살맛이 나 살맛이'
'이녁도 장하게 한번 들어오소'
'임자요 섭했지예 몸이 천근 같으니 내사 우찌 살붙일 정이 나것소'


정(情) 중에 제일은 '살정'이라 했던가, 그런데 먹물잽이들은 이런 말 쓰면 촌스럽다거나 뭔가 음탕, 음란하게 여겨지는지
좀 유식하게 말해 꼭꼭 '스킨십'이란다(그런 제약이 더 음란하구만). 허수경 시인의 "밤 소나기"는 도시 산동네 하루벌이 부부의 일상 중 한 국면만을 살짝 옮겨 우리들 눈 앞에 살갑게 묘사한다. 굳은 살 박힌 묵은 정을 부끄럽게 일깨운다. 부럽다. 아마 그런 까닭에 처음 허수경 시인이 문단에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 시인의 입담에 질려버린 사람들이 시인이 이미 무수한 삶을 경험한, 노련한(?)  연배의 시인일 거라고 그렇게 넘겨짚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헐, 그건 그렇더라도... 허수경 시인은 어찌 젊은 나이에 저런 것들까지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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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
지금보다 어렸을 때... 이 시를 읽으며 나는 황순원의 단편 어느맨가에 나오는 겉늙어버린 동리 형처럼 끼룩끼룩대며 웃었다. 이상하게 세상을 다 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생리적 연령이 어리거나 마음이 어리다. 나도 그랬다.

어느 날엔가 나는 갑자기 고등학교 3학년생에게 메일 한 통을 받았었다. 미술을 하는 여학생이었는데 세상의 바닥까지 보아버린 어투였다. 그런 어투의 편지를 받으면 마음 한 켠이 싸아하면서도 흐뭇해진다. 그건 삶에 대해 진지하다는 반증이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세상을, 삶을 다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매우 중요했다. 그건 내가 기르고 있는 내 속의 작은 괴물들에 대해 당신들도 알아달라는 까탈이었으므로...

정작 세상을 안다는 건... 세상이 나에 대해 얼마나 무심하며 내가 세상을 알고 모르고 조차 전혀 상관없어 한다는 건데 그걸 몰랐으므로 온통 반항이었다. 따지고보면 그때도 그걸 알았지만,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왜 모두가 일어나겠는가. 일부는 그에 대항하느라, 뭐 국가주의니, 민족주의에 대한 반감 같은 고상한 까닭 같은 거 없어도 그저 싫어서 못 일어나겠다고
개기는 마음, 왜 없겠나...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그렇게 세상을 뜨는 흰 새떼들은 그렇게 자기들끼리 끼룩대면서 다른 어디론가 날아간다. 이 세상 밖 어디론가...그러나 세상은 그들이 떼어 맨 등 위에 있고, 그들이 떼어 맨 무거운 날개짓 안에 있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세상을 뜨는 존재들은 아무도 없다. 황지우의 열패감... 그것이 이 시의 매력이다. 오줌 누고 일어나면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속옷 어딘가엔 지린내가 배기 마련이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싶지만... 세상은 우리의 양어깨를 내리누르며 말한다. 자신이 똥 눈 자리에 그대로 주저 앉히며..."길이 보전하세로..."

내가 처음 알았던 무렵 싱싱한 포도송이 같던 계집 아이들이 이제 그 포도송이를 닮은 눈매를 가진 아이들의 어미가 되었음을 확인하며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읽으니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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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그 식당


- 함민복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 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

가끔 어떤 시들을 읽노라면 사람의 마음이 울컥해진다. 중요한 건 쌩하니 차가운 바람 소리 들리며 "벌컥" 문이 열리고 마음이 들고 나는 것이 아니라 울컥해진다는 거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벌컥보다 울컥이 좀 더 감정적인 표현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생각만큼 그렇지도 않다. 정 못 믿겠거든 국어사전을 찾아보라. 벌컥도 울컥 못지 않게 감정적인 단어다.


"울컥"과 "벌컥"은 갑작스럽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울컥이 좀 더 내장(內腸) 깊은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느낌을 담는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벌컥대며 물을 마실 수는 있어도 울컥대며 물을 마실 수는 없다.


시인 김지하가 밥이 곧 생명이라고 했던가 싶지만
시인 함민복은 밥이 곧 사랑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하는 시인.

시인이 그녀를 사랑하는 주된 이유는 결국 밥 주는 사람이라서다. 개는 밥주는 사람을 사랑한다던데 그러면 시인이 개냐? 우스개삼아 함민복 형은 한때 모두가 알아주는 개(?)였다. 당신이 술 마시고 일으켰던 온갖 사단들을 죄다 모으면 아마 트럭 한 대 분량의 이야기는 나왔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과 술을 마시고 당신의 사단을 목도했던 사람들 중에 당신 욕하는 사람을 나는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는 당신을 통해 숨을 쉬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결혼해서 간신히 평온해진 당신...

그러나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가 그를 미워할 수 없었던 건... 그가 천상 시인, 개나 사람이나 똑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천상 시인이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개나 사람이나 생명은 모두 구분없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하나는 시인과 나 사이에 얽힌 개인적 체험으로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위 시에서 말하듯 사랑에 굶주린 사람은 밥 주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안다. 세상 사람들이 개는 밥 주는 사람을 따른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고로 시인도, 나도 밥 주는 사람을 사랑한다. 밥이 생명이니 그 생명의 온기를 나눠주는 사람을 사랑하고, 밥이 모든 생명을 살리는 일이니 곧 사랑이기도 하다. 그게 뭐 이상한 일인가?

그것이 내가 이 시를 읽으면 울컥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시인은 어째서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어야 할까? 그건 아마도 이제 그에게 사랑을 밥처럼 고봉으로 쌓아올려 퍼주셨던 그 분, 어머니, 사랑해주는 이가 없다는 사실을 그도 알기 때문이리라. 이제 다시 사랑으로 당신의 밥을 고봉으로 쌓아올려 줄 그 분을 만난 민복 형이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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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  천양희

한밤중에 혼자
깨어 있으면
세상의
온도가 내려간다.

간간이
늑골 사이로
추위가 몰려 온다.

등산도 하지 않고
땀 한 번 안 흘리고
내 속에서 마주치는
한계령 바람소리.

다 불어 버려
갈 곳이 없다.
머물지도 떠나지도 못한다.
언 몸 그대로 눈보라 속에 놓인다.


출처 : 천양희, 『마음의 수수밭』, 창작과비평사, 1994

*

깊은 밤 세상 만물이 모두 잠든 것 같은 시간에 홀로 깨어난다. 곁사람의 고운 숨소리도, 태어난지 이제 막 7개월 된 딸 아이의 뒤척임도 저 멀리 있다. 갑자기 깨어나 부우우하며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는 냉장고, 초침의 재깍이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저 멀리 한길로 밤새워 북으로 달리는 차량 불빛이 서치라이트처럼 희번득하는 밤에 문득 이제 다 살아버린 듯 갈 곳도, 머물 곳도 없는 세상이란 생각이 악마처럼 창가로 유인하는 밤이다. 머물지도 떠나지도 못한다. 차라리 눈보라도 불면 좋으련만. 한 여름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건, 땀인지, 눈물인지... 축축하게 젖은 얼굴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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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운대행(沒雲臺行)
  

- 황동규


1


사람 피해 사람 속에서 혼자 서울에 남아
호프에 나가 젊은이들 속에 박혀 생맥주나 축내고
더위에 녹아내리는 추억들 위로
간신히 차양을 치다 말고
문득 생각한 것이 바로 무반주(無伴奏) 떠돌이.
폐광지대까지 설마 관광객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길들의 고요.
지도를 펴놓고 붉은 볼펜으로 동그라미 하나를 치고
방학에도 계속 나가던 연구실 문에 자물쇠 채우고
다음날 새벽 해뜨기 전 길을 나선다.

  2

영월 청령포를 조심히 피해 31번 국도를 탄다.
상동 칠랑에서 국도를 버리고
비포장 지방도로로 올라선다.
중석 걸러낸 크롬 옐로우 물이
길 옆 시내 가득 흘러오고
저단 기어를 넣은 `프레스토'가
프레스토로 떤다.
차 고장 없기만을 길의 신(神)에 빌며
망초꽃이 모여선 길섶을 지나
아다지오로
덤프트럭 자국 깊이 파인 언덕을 오른다.
길의 신이 급커브를 약간 풀어놓으며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를 보여준다.
크롬 옐로우가 꿈결처럼 몸을 바꿔
흑인 영가로 흐르기 시작한다.
흑인 영가의 어두운 음을 끼고
에어콘 끄고도 헐떡이는 차를 천천히 몰아
온갖 생물학이 모여 썩고 있는 쓰레기 낟가리를 돈다.
아! 폐광 하나가 검은 입을 벌리고 비탈에 박혀 있다.
입술 위로 너와지붕이 튀어나오고
그 위엔 다듬지 않은 풀들이
수염처럼 자라고 있다.
빠지고 남은 이빨처럼 녹슨 쇠기둥 두 개가 박혀 있고
녹슨 밀차 한 대가 굴 밖으로 나오려다 말고
뒤틀린 선로 위에 심드렁하게 서 있다.
들이밀면 머리부터 씹힐 것 같아
목을 움츠리고 슬쩍 몸을 들이민다.
귀가 먹먹
아 사람 사라진 사람 냄새!
천정에서 물 한 방울이
정확히 머리 위에 떨어진다.

  3

고개가 가파르다.
자장 율사(慈藏律師)가 진신사리 봉안했다는 정암사 가는 길
그도 헐떡이며 넘었으리라.
앵앵대는 소형차를 길가에 그냥 내버리고 싶다.
가만, 자장이며 의상(義湘) 같은 쟁쟁한 거물들이
경주, 황룡사, 부석사를 버리고
왜 강원도 산 속을 방황했을까?

왜 자장은 강원도 산골에서 세상을 떴을까?
입적지(入寂地) 미상의 의상도
강원도 산골의 행려병자가 아니었을까,
이곳 어디쯤에서?
가파른 언덕을 왈칵 오르자
해발 1280m의 만항재.
태백시 영월군 정선군이 서로 머리 맞댄 곳.
자글자글대는 엔진을 끄고 차를 내려 내려다보면
소나무와 전나무의 물결
가문비나무의 물결
사이사이로 비포장도로의 순살결.
저 날것,
도는 군침!
황룡사 9층탑과 63빌딩이
골짜기 저 밑에 처박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없이도 마음이 온통 시원하다.
잠시 목숨을 잊고 험한 길 한번 마음놓고 차를 채찍질해
황룡사, 63빌딩, 정암사를 순식간에 지나서
정선 쪽으로 차를 몬다.

  4

화암약수터 호텔 여주인은 웃으며 말했다.
“제철인 데다 버섯 재배농가 회의로
정선군 모든 방이 다 찼지요.
몰운대 저녁노을이나 보시고
밤도와 영월이나 평창으로 나가시죠.”
표고버섯죽 한 그릇 비우고
길을 나선다.
신선하고 기이한 뼝대
저녁빛을 받아 얼굴들이 환했다.
그 위에 환한 구름이 펼쳐진 길
그 끝을 향해.

5

몰운대는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었습니다. 그 끝에서 저녁이 깊어가는 것도 잊고 앉아 있었습니다.
새가 하나 날다가 고개 돌려 수상타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모기들이 이따금씩 쿡쿡 침을 놓았습니다.
(날것이니 침을 놓지!)
온몸이 젖어 앉아 있었습니다.
도무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

너를 잃고 해마다 한두 번씩 찾아가던 몰운대, 구름도 가라앉아 지날 수 없다던 강원도 정선의 높은 뺑대(절벽) 위에 서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죽어버리자던 마음도 잊혀지곤 했다. 너를 잃고도 살아갈 수 있다던 내가 징그럽게 미웠으므로 나는 그곳에 설 때마다 미워하던 나에 대해 알 수 없는 위안을 얻어 돌아서곤 했다. 절벽 위 벼랑 끝에 서면 생(生)에 대한 지긋지긋한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간신히 기운을 차려 돌아서면 하늘 위로 구름이, 땅 위의 옥수수 밭이 스스스 소리를 내며 뱀처럼 움직인다. 바람이 혀를 날름거리며 '거봐, 이번에도 죽지 못하고 돌아섰지?'

삶이 세상에 갇혀 오도가도 알 수 없는 이라면, 도통 생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은 몰운대로 가라. 그곳 벼랑 위에 서면 네 삶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으리. 퉁퉁하게 부어오른 한꺼풀 살가죽에 갇힌 그대의 삶이 흐엉흐엉 소리를 내며 울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 지난 2010년 다시 찾은 몰운대, 벼락맞은 소나무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가지마저 삭아서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나무 둥치 속 보금자리를 찾은 벌들이 앵앵 울어대며 나그네의 등을 몰아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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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다리


- 신경림


다리가 되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스스로 다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내 등을 타고 어깨를 밟고
강을 건너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늘 서럽다
왜 스스로는 강을 건너지 못하고
남만 건네주는 것일까
깨고 나면 나는 더 억울해 지지만


이윽고 꿈에서나마 선선히

다리가 되어주지 못한 일이 서글퍼진다


*


언젠가 글에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감정 중 하나는 자존감, 즉 자기존재감이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도 지겨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나로 온전히 서지 못할 때, 사랑도 지겹고, 허무해집니다. 그런데 때로 사랑에 이 자기존재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마음이 도리어 장애가 될 때도 있습니다. 나를 온전히 주고 싶다는 마음은 때로 나를 온전히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나란 존재를 고스란히 그의 마음에 쌓아놓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만 있는 것도 아니라서
사람과 사람 사이엔 강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엔 산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엔 벽도 있습니다. 이곳에선 온전했던 것들도 저 섬으로 옮겨지면 병들기도 하고 상처입기도 하고, 온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사람은 그 마음으로부터 죽는 것을...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연인들

- 김상미


내 몸에서 나가지 마
눈썹이 닿고 입술이 닿고
음부 가득 득실거리던 꿈들이 닿았는데
서릿발 같은 인생
겨우 겨우 달랬는데
나가지 마
시커멓게 열려 있는 비존재들.
그 허공 속으로
우린 연인들이야
날마다 새로워지는 마음
금빛 월계관처럼 육체에다 씌우며
몰아, 몰아, 그 뜨거운 파도
그 치열한 외침
인생이 보일 때까지
껴안고 또 껴안아야지
자지러지면 어때
신선한 육체의 광택
바다와 사막을 길어나르듯
땀 흘리며 몸부림치고 매달리면 어때
숨쉬는 육체의 수렁은
깊고도 깊어
나 네게서 떨어지지 않을래
쫙 쫙 쫙 입 벌리는 관능
몸이 몸을 먹는 경이,
경이 속으로
끝도 없이 흘러 흘러갈래
내 몸에서 나가지 마
우린 연인들이야
더러운 신의 놀라운 흔적들이야

땅이고
하늘이야


출처 : 김상미,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세계사, 1993.

*

아직 여자를 모를 때, 좀더 정확히 말해서 남녀가 몸을 섞는 순간의 쾌락에 대해 미처 알지 못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일찌감치 남들보다 조금 앞서며 읽던 소설들 가운데 황석영과 김성동은 내게 남녀교합의 여러 상황들을 알려주는 작품들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일어서 오랫동안 뻐근하고 불편한 순간들을 견뎌야만 하던 시절, 나는 성교의 클라이막스가 주는 순간이 어째서 불교에서 도를 깨우치는 순간에 비견되는지, 그 순간은 어째서 짧기만 한 건지 미처 알지 못했다. 남녀간의 교합이 주는 쾌락을 일러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 하는데 그것이 어째서 그리 슬프고 기막힌 인연인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운우지정을 일러 다른 말로 '무산지몽(巫山之夢)'이라 한다.

운우지정의 원출처가 되는 이야기인 셈이다. 중국 초(楚)나라 때의 시인 송옥(宋玉)이 지은 시가 중에 "고당부(高唐賦)"라는 것이 있는데, 이 시에는 전국시대 초나라의 양왕이 송옥과 함께 운몽(雲夢)이란 곳에서 풍류를 즐기다가 고당관에 이르렀다. 그곳에 매우 신비한 형상의 구름이 피어오르기에 양왕이 송옥에게 물었다. 이 때 송옥이 임금에 이르길 저 구름은 조운(朝雲)이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부르게 된 것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며 전해 올렸다.  

오래 전 어떤 왕이 고당관에 와서 연회를 베풀다가 피곤하여 잠시 오수를 즐기는데, 꿈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 말하길 "저는 무산에 사는 여인이온데, 왕께서 고당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잠자리를 받들고자 왔습니다"라 하였다. 왕은 여인의 아름다움에 빠져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는데, 정사를 마치자 여인이 말하길 "저는 무산 남쪽의 험준한 곳에 살고 있는 여인이온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 아래에서 아침 저녁으로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입니다(妾在巫山之陽 高山之岨 且爲朝雲 暮爲行雨 朝朝暮暮 陽臺之下)."라고 말한뒤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왕이 무산 쪽을 바라보니 과연 여인의 말대로 산봉우리에 신비로운 구름이 있었다. 그날부터 왕은 꿈속에 찾아온 여인을 그리워하여 그곳에  조운묘(朝雲廟)라는 사당을 세웠고, 이후 '무산지몽'과 '운우지정'은 남녀간의 정교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양대(陽臺)란 말 그대로 볕이 좋은 대를 뜻하지만 숨겨진 의미는 은밀한 사랑을 뜻한다. 무산지몽의 임금은 두 번 다시 그 여인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양대불귀지운(陽臺不歸之雲)'이란 말은 한 번 인연을 맺고,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알고보면 '운우지정'이란 매우 슬픈 이야기인 것이다.

시인이 "내 몸에서 나가지 마"라고 말하는 이유, 얼핏 매우 야한 듯 보여도 생각해보면 '사랑', '연인', '정교(情交)'의 허망함에 치를 떨어본 사람이면 안다. 돌아서면 남이 아니라 내 몸에서 나가면 모두가 다 남이다(흠, 자식은? 자식도 그런 것 같다~, 흐흐).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