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의 문화공간화를 둘러싼 제언
- 명품도시를 지배하는 공간이데올로기를 전복하라





1. “정명가도(征名假道)” -  명품도시로 갈 테니 길을 내달라

‘명품도시’란 구호로 떠들썩한 인천은 인천도시엑스포, 인천아시안게임, 인천&아츠 등 연일 대규모 투자로 이루어지는 굵직굵직한 행사와 사업들이 쏟아져 나오며 전국 지자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런 인천에서 토박이들이 인천시의 개발 사업을 정면으로 가로막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배다리 사태’라 불리는 사건의 간략한 개요를 살펴보면, 인천시와 종합건설본부에서 추진 중인 인천 중구 신흥동 삼익아파트부터 왕복 16차선(너비 50m) 산업도로 건설을 지역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배다리 문제를 바라보면서 문득 선조 24년(1591)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 조선에 보내온 한 장의 서신에 들어있었다는 문구, “정명가도(征明假道)”란 말이 떠올랐다. 중국 명나라를 치는 데 필요하니 길을 빌려 달라는 말이다.

현재 ‘배다리 사태’의 내용을 살펴보면 명품도시로 가기 위해 필요하니 길을 내겠다는 시 당국의 사업계획과 요구를 배다리 일대의 원주민들이 불가하다며 온몸으로 막아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배다리 사태’는 1997년 IMF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 사회를 사로잡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모양새로 보인다. “정명가도(征明假道)”를 연상했다고 말했지만 조선과 일본은 명나라를 치기 위해 동맹을 맺을 수도, 일본의 숨겨진 의도가 실제 명나라를 정벌하려던 것도 아니었다는 점에서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없다. 비록 배다리 산업도로 공사가 중단된 상황이긴 하지만, 인천시 당국과 배다리 시민들 앞에는 인천을 보다 ‘잘 사는 도시,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자’는 공동의 목표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비록 공동의 목표이긴 하지만 “악마는 각론에 숨어있다”는 표현처럼 ‘잘 사는 도시, 살기 좋은 도시’의 구체적인 내용과 실천방식 등에 대해 시 당국과 시민사회 사이에는 그동안 거의 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민관 거버넌스 또한 형성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도시의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비전이나 컨센서스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배다리 문제에 인천시는 물론 인천의 시민사회가 다 함께 주목해보아야 할 점은 배다리 사태가 불거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인천 지역의 지식인, 문화운동가, 예술가들이 배다리 지역 주민들과 결합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 같은 양상은 평택 미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불거진 ‘대추리 사태’ 때 전국의 예술가들과 문화운동가들이 대추리로 모여들어 미군기지 건설의 부당함과 정부의 부적절한 추진 방식에 대한 맞대응과 흡사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대추리는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고, 배다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지만, 대추리에 모여들었던 예술가와 활동가들이 사태 이후 다시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간데 반해 배다리에 모인 사람들은 배다리 사태가 어떻게 해결되든 간에 여전히 그곳에 머무를 사람들이란 차이가 있다.

2. 잘 사는 도시, 살기 좋은 도시에 이르는 두 가지 방법

1) 명품도시와 두바이 프로젝트

‘잘 사는 도시, 살기 좋은 도시’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현재 그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이 잘 살게 되고, 그들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잘 살고 있는 시민들이 이주하여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세계의 주요도시들에 요구되는 핵심과제가 도시재생이고, 도시재생의 주요한 수단 중 하나로 제기되는 방식이 플레이스 마케팅(place marketing)이다.

최근 대구시 달서구청은 성당동 두류종합시장 46개 점포천막 등 노점상에 대해 철거 행정대집행을 통한 강제철거를 시행했고, 인근 지역에서도 계속해서 도시환경정비 차원에서 강제 철거 등의 작업을 지속할 계획임을 내비쳤다.

동구 신천동 동부소방서 일대도 사정은 비슷하다. 1989년부터 동대구로 체육공원 부근에서 장사를 해오고 있던 포장마차 25곳에 대해 동구청이 내년 2월 말까지 철거해줄 것을 통보한 상태. 이곳 상인들 역시 철거방침에 반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 구청은 달리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동구청 관계자는 “도시환경정비 잠정허용구역으로 지정했었지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와 동대구역세권개발 차원에서 철거가 불가피하다.”며 “노점에 대한 보상 규정이 없고 달리 도와줄 방법도 없어 계획대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1)


비단 대구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 고양시 등 여러 지역에서 도시재생이란 미명 아래 노점상 단속 및 강제 철거 등 도시환경 정비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지금 인천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명품도시 프로젝트 역시 일종의 도시재생사업이고,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절 만든 청계천의 창조적 복원(?)공사, 고양시의 노점상 단속을 통한 정비 사업 역시 명목상으로는 도시재생사업의 기초단계로서 이루어지는 사업들이다. 사실 국내에서 시행되었던 가장 큰 규모의 플레이스 마케팅은 강원도의 대표적인 탄광도시였던 정선이다. 잘 알려진 대로 강원도 정선 지역은 도시의 주요산업이었던 광산업이 몰락하면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카지노를 선택했다. 과연 정선의 이 같은 방식은 성공적이었을까.

그동안 국내에서 도시재생 혹은 도시재개발의 모델로 삼은 것들은 대개 부동산 개발을 이용해 도시의 부가가치를 높이거나 산업적인 측면이 두드러지게 강조되면서 단기간 내에 성과를 얻어내고자 하는 측면이 지나치게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작게는 지방정부로부터 크게는 국가를 책임지는 중앙정부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손쉽게 라스베이거스나 두바이를 말한다. 그러나 이들 도시의 사례에서 손쉽게 간과되는 것은 이들 도시들이 전통적인 정주 공간이 존재하는 가운데 건설된 도시들이 아니란 점이다. 사막의 빈 땅에 건설된 라스베이거스나 두바이와 같은 방식은 적은 인구와 넓은 땅덩어리를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이들 신도시는 원주민이 존재하지 않거나 사실상 매우 적은 지역에 새롭게 건설된 도시이지만 인천의 경우엔 이미 인구 270만이 거주하고 있는 거대도시이다. 이럴 경우 새롭게 건설되는 신시가지로 유입되는 외지인들과 구시가지에 거주하는 토박이들은 서로 분리된 채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도 없고, 결속력 있는 지역사회를 구축할 수도 없다.

인구 145만 명의 작은 왕정국가 두바이는 어느 순간부터 한국인들에게 뭔가 환상적인 곳, 상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한 낙원 같은 곳으로 표상되기 시작했고, 지난해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두바이는 한국이 모델로 삼을 만한 국가 중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의 중앙정부부터 지방정부에 이르기까지 ‘창조적 리더십’, ‘대외개방’의 산 증거로 입을 모아 칭송해 마지않는, 배우고자 애쓰는 두바이의 실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두바이 모델의 ‘창조적 리더십’이라는 것이 사실은 민주적 가치와 관련 없는 전제적 왕정국가의 리더십이며, 두바이의 대외개방 역시 20%의 자국민과 80%의 외국인으로 구성된 철저한 20대 80 사회의 결과물이란 사실에 대해선 대부분 함구한다.

모래사막 한 가운데 역사나 전통, 문화유적은커녕 석유도 나지 않는 두바이모델의 실체는 부동산 개발과 관광으로 구축된 신기루이다. 세계 최고의 빌딩들과 다양한 인공섬 프로젝트, 그리고 세계의 불가사의는 다 모아 놓은 두바이랜드의 핵심은 결국 상징과 이미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사태 이후 이에 연동하여 두바이의 물가는 날이 갈수록 오르고 있다. 심지어는 건설자재 값의 폭등으로 인해 공사가 일시적으로 중단될 지경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높은 물가를 견디지 못한 외국인들도 더 이상 물가가 오르면 두바이를 떠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명품소비가 인간의 현존재를 증명하는 두바이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community)는 형성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두바이식 명품도시는 겉은 푸른 잔디로 뒤덮여 있지만 자연생태계는 존재하지 못하는 골프장을 ‘녹색사막’이라 부르는 것처럼, 높은 빌딩 숲과 화려한 쇼핑몰 등으로 채워져 있지만 지역공동체가 존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도시사막’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정권 아래에서 꿈틀거리는 부동산 개발을 통한 도시재생사업은 현재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을 새로운 게토, 슬럼으로 몰아내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즉, 두바이식 프로젝트는 ‘잘 사는 도시, 살기 좋은 도시’에 이르는 두 가지 방법 중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잘 살고 있는 시민들이 이주하여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두바이 모델 이전에도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마다 서로에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엇비슷한 기획과 구호들을 쏟아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문화도시’였지만 이 프로젝트는 엇비슷한 축제와 영화제들만을 양산해냈을 뿐 시민생활과 밀착된 문화프로그램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지난 정권에서 각 지자체들이 추진했던 ‘문화도시’ 담론이란 “문화적 권리가 최대한 존중되고 실천되는 도시”가 아니라 “문화로 먹고 사는 도시”를 만들자는 주장이었다는 점에서 ‘명품도시’ 담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지방정부에서 추진했던 수많은 프로젝트들의 대다수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분권과 자율’이란 구호에 걸맞은 합의와 민관 거버넌스 구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도시 발전의 원동력이 시민사회로부터 나온다는 주장, 주민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지만 개발을 위한 성장지향적 연합세력이 장악한 도시개발사업의 주체들 앞에 시민사회는 장애물일 수밖에 없었다. 주민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한 상태에서 추진되는 거대 규모의 프로젝트들은 지자체장의 독선과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명품도시 인천을 위해 준비되고 있는 일련의 국제행사들을 앞두고 지역적으로 낙후된 인천 중․동구 일대를 비롯해 인천시 당국에서 계획하고 추진하려는 도시재생사업들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천은 2009년에 세계도시엑스포를 개최하고, 2014년에는 아시안게임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와 같은 현실적 조건들 앞에서 배다리를 비롯해 인천의 여러 지역들은 도시재개발 사업의 대상으로 지역 사회의 새로운 갈등요소가 될 것이다. 『슬럼, 지구를 뒤덮다』의 저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도시를 아름답게’라는 구호가 유난히 빛을 발하는 시기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국제 행사들 - 컨퍼런스, 국빈방문, 스포츠행사, 미녀선발대회, 페스티벌 등 - 을 앞두고 도시재개발 사업들이 벌어질 때라고 말한다. 실제로 평화의 제전이라는 근대올림픽은 변두리 서민들에겐 결코 평화의 제전일 수 없었다는 것을 실증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근대 올림픽은 특히나 어두운, 그러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나치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노숙자들과 슬럼 주민들을 베를린 지역에서 무자비하게 쓸어버렸다. 이후 멕시코, 아테네, 바르셀로나 등의 올림픽에서도 도시재개발 및 강제퇴거가 수반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주택소유자, 스쿼터,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이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단연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남한의 수도권에서 무려 72만 명이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한 가톨릭 NGO는 남한이야말로 “강제퇴거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남아공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라고 했을 정도다.2)


2) 배다리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모델들
플레이스 마케팅이란 특정 장소나 지역의 이미지와 제도, 시설 등을 새롭게 개발해 장소(place)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것을 말한다. 대상 장소에 따라 도시마케팅, 지역마케팅, 공간마케팅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지역사회의 통합(integration), 장소판촉(promotion)을 통한 지역경제의 활성화, 문화 산업화(cultural industry)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한다. 인천의 명품도시 프로젝트가 지역사회의 역사성과 문화에 기초하기 보다는 신도시 건설에 치중하여 지역사회의 통합을 저해하고, 이주민들과 원주민들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는데 반해서 플레이스 마케팅의 본래 목표는 지역 정주민들의 자발적인 의지와 지역정부의 협치(governance)를 통해 지역사회에 합당한 목적을 달성한다는데 있다.

플레이스 마케팅은 그 특성상 지방자치의 역사가 짧고, 지방정부의 기능과 권한에 상대적으로 제약이 많은 국내보다는 해외의 성공 사례3)가 좀 더 많은 편이다.

1)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는 인구 45만 명의 중소 도시로, 에도시대부터 상공업의 중심지로 400년간 번성해왔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에서 소외되어 작은 마을로 쇠락했으나 그 덕분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참화로부터 역사적인 문화와 유물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런 가나자와시에서 도시재생 및 경관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 문화유산이 보존된 지역에 호텔 건립 계획이 발표되고, 인근에 방송탑 건립이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시민들과 지방 정부는 도시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함께 논의했고, 1968년 시의 경관을 제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전통환경보존조례를 채택했다. 이후 계속해서 마을보존조례, 옥외광고물 조례, 용수보존조례, 연도경관형성조례, 야간경관형성조례 등 다양한 제도를 마련했다.

지난 1992년에는 “전통적·문화적 자산을 계승하는 경관과 환경과 조화로운 새로운 도시공간을 창조하는 경관 만들기에 노력하고 동참해야 한다”는 내용의 경관도시선언을 시의회가 채택하기에 이른다. 근대 전통 가옥들을 보존하고, 전통찻집 등으로 활용해 실제로 시민들이 거주하면서 내부 공간을 외부인들이 찾아와 함께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여 죽은 공간이 아닌 살아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통을 그대로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현대적 아름다움을 전통으로 만들어간다’는 발상을 통해 ‘21세기 미술관’을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를 통해 새롭게 건축하여 가나자와시의 새로운 명물로 키워가고 있다.

2) 일본 제2의 도시인 오사카는 교토 등 다른 지역의 도시에 비해 문화유적이 적은 편에 속하는 지역이다. 오사카에서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1970년대 지역주민들의 오랜 애환이 담긴 히라노 역사(驛舍)가 철거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역사 철거에 반대하여 보존방안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를 시정부에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부터였다. 지역 주민들은 히라노 역사가 사라지는 현장에서 ‘작별 행사’를 가졌고, 이것을 계기로 마을의 소중한 기억을 보존하고 가꿔나가자는 취지의 주민 협의회를 만들었다. 협의회는 계속해서 오사카시의 도시재생 사업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대안을 모색해왔고, 도시 리모델링 사업과 관련해 1998년에는 도시경관조례를 채택하도록 했다.

오사카의 시민협의회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지역의 자영업자, 상가조합 등과도 시민경관협약을 맺어 도시경관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일반 시민의 참여폭을 넓혀갔다. 이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와 한계에 부딪쳤지만 부족한 재원과 전문성은 지방정부가 지원해주는 형태로 협치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또한 미래의 시민이 될 어린이들에게 전통 지역에 대한 애정을 북돋우고, 자부심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3) 일본의 천년 고도, 교토는 역시 1990년대 일본을 휩쓴 버블경제로 인해 전통 가옥이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가 난립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오래된 역사의 거리에 난잡한 광고물과 조명경관 등으로 인해 교토 본래의 문화적 정체성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개발업자와 시민들 사이에서 갈등이 고조되었다. 결국 주민이 주체가 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의견 조율이 이루어지고, 교토시가 전액을 출연한 재단법인 교토시 경관조성센터가 건립되면서 교토시의 도시 경관에 대한 정책 실행을 지원과 지역 시민 사회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었다.

4) 1868년 개항된 고베는 외국인들의 업무와 거주를 위한 근대건축물의 산재해있는 도시였다. 그러나 1995년 고베시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인해 수많은 근대 건축물이 사라졌다. 고베시는 전통적인 건조물과 환경을 보존할 필요가 있는 지구를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하고 역사적인 건축물이나 지역의 상징이 되는 건축물 등을 ‘경관형성 중요건축물’로 정해 개발 행위를 엄격히 관리하는 한 편, 대지진 당시 붕괴된 건축물들을 원형 그대로 복원해 활용하고 있다.

5) 서울올림픽에 이어 1992년 올림픽을 이어받은 스페인 바로셀로나는 1970년대까지만 하도라도 유럽에서 낙후된 도시에 속했다. 올림픽 이전까지 주요 관광지는 문화유적이 산재해있던 구도심에 집중되었으나 신시가지는 난건축으로 인해 전체적인 도시경관을 해치고 있었다. 시 당국은 1992년 올림픽과 2004년에 개최된 문화포럼 행사를 계기로 대규모 행사개최를 위해 해안지역을 새로운 도시공간으로 만들었다. 바르셀로나는 해안고속도로의 일부를 지하에 건설하여 도시와 바다의 연결하고, 시민들의 친수공간을 확보하고자 했다. 해안의 불법가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공공성을 강화하여 바르셀로나 해안 지역은 새로운 관광산업의 명소로 부상했다.

6)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스페인 빌바오는 한 때 철강산업을 바탕으로 스페인의 손꼽히는 무역항이었으나 1980년대 철강산업이 쇠퇴하면서 점차 몰락하기 시작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바스크자치의회는 빌바오가 몰락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문화산업이라는 판단 아래 미국 구겐하임 재단과 접촉하여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을 빌바오에 유치하게 되었다. 빌바오시는 구겐하임 미술관 건립과정에서 무엇보다 시민들의 접근성에 대해 고민했고, 도시의 주체는 시민이지 관광객일 수 없다는 의식아래 네르비온강을 미술관의 일부로 끌어들이기 위해 미술관 앞 산책로 좌우를 잇는 2개의 보행자 전용다리를 만들었다. 또 전철이 강변을 따라 운행토록 했다. 그 결과 연간 100만 명이 미술관을 찾으며 지난 10년간 986만여 명의 관광객들이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다녀갔다.

이제까지 지역재생, 도시재생 프로젝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된 요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인천 배다리와 마찬가지로 개발 위기 혹은 필요성이 고민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도시재생 자체가 위기에 대한 대처로서 시작되었고,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공동체의 모색이 도시재생, 플레이스 마케팅이었다. 둘째. 성공적인 도시재생은 지역적 특색, 즉 해당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기초해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문화도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자체들이 추진했던 축제기획의 대다수가 성공적이지 못했던 여러 이유들 중 하나는 지역의 현재나 역사 ․ 문화에 기초한 특색을 살리기보다 산업적인 측면, 단기간에 사업성과를 얻기 위한 졸속 행정의 결과4)였기 때문이다. 셋째. 지역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자체의 지원, 전문가들의 협조 체제를 구축하여 도시재생이란 장기적 목표와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구체적인 실천으로 정책화하고, 시의회5) 등이 나서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한 결과였다. 지역 시민들이 참여 없이 진행되는 국가나 지방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하는 도시 재생 사업들은 그 특성상 하드웨어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주민과의 소통은 관심 밖의 일이 되기 십상이다. 일정한 규모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은 지역사회가 지니고 있는 기존의 문화적 자산과 욕구, 지역 시민들의 요구가 반영될 때에만 비로소 최소한의 성과를 담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민관 거버넌스 구조의 제도적 안착이 도시재생 프로젝트 성공의 핵심이란 것이다.

3. 배다리의 문화공간화가 지닌 의미
지난 2007년 12월 인천도시환경연대회의에서 주최한 제9차 인천도시문화포럼의 주제는 “배다리 일대의 역사․문화공간화를 위한 대안모색”이었다. 이날 청중의 대부분은 주제와 밀접한 이해당사자라 할 수 있는 배다리 주민들이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첫째. 과연 배다리는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 둘째. 여러분에게 현재의 배다리는 진정으로 살기 좋은 곳이었나? 셋째. 배다리 프로젝트는 배다리를 보존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가? 넷째. 누가 이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만들고 추진하며 지속시킬 것인가? 라는 네 가지 질문을 던졌고, 만약 현재의 투쟁이 단순히 ‘우리 이대로 살게 해주세요’란 차원에서만 진행된다면 다양한 이해관계를 품고 있는 시민사회 내외부의 합의와 추동력을 끌어내기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비록 인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현재의 사업들이 다분히 개발 이익을 기대하고 벌어지는 일종의 개발 사업이라 해도 이 같은 사업들이 벌어지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현재의 인천이 과거의 구도심 혹은 마을 공동체가 형성되었던 시대로 되돌릴 수 없는 현저한 변화들을 추동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배다리 사태’가 쉽게 풀리지 않을 뿐더러 앞으로 배다리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계속해서 문제들이 불거져 나올 소지를 품고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시 당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록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지역시민들과의 합의 과정이 부족했다는 문제는 있지만 낙후된 중․동구 일대의 도시재생사업의 필요성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과연 시와 시민들은 인천을 보다 ‘잘 사는 도시,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자’는 공동의 목표를 위한 합의를 도출할 수 없는 것일까?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 배다리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이란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이 주장하듯 “인천 사람들에게 ‘배다리’는 단순히 개발이 더디고, 낙후된 지역이 아니라 삶의 공동체가 살아있는 공간이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헌책방 골목이 있고, 80년 된 막걸리 공장, 인천 최초의 가마보꼬(어묵) 공장, 인천 근대교육(영화, 인명, 창영학교)의 발원지였다는 여러 기억들이 축적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 일대는 개항장 시절 조계지역을 차지한 외국인들과 일제 시대 식민지배계급에게 밀려난 조선인 노동자들의 거주지였고, 해방 이후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민초들이 가난한 노동으로 뿌리를 내린 터전”으로 수많은 근대 문화유산들이 잔존해 있는 지역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배다리 인근 지역의 무분별한 개발이 지양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천의 원주민들이 오래도록 뿌리내리고 살아온 힘을 보존하고, 그 힘을 통해 인천의 새로운 미래를 추동해 나갈 수 있는 시민 사회의 자발적인 역량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배다리에서는 그동안 인천의 미래를 독점해왔던 ‘개발을 위한 성장지향적 연합세력’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반성장연합세력’이 구축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그 기간 동안 인천에서 활동하고 있던 지역 문화운동가들과 예술가들이 배다리 인근으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삶의 터로 자리잡아가고 있기도 하다. 도시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및 지속가능한 도시개발문제는 단순히 정부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수많은 사례들이 입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도 배다리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지방정부와 시민사회의 합의 도출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천의 미래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비록 현재까지 표면적으로는 당국과 시민사회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양상으로 나타났지만, 반대로 당국과 시민사회가 합의를 도출해낼 수만 있다면 인천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내고, 정붙인 공간으로의 기억과 문화를 생산하는 공간으로의 재생 또한 가능하다는 점에서 다시없는 기회일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도시재생은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되어가고 있다. 인천은 머지않은 장래에 도시를 주제로 한 세계도시엑스포를 개최할 예정인데, 그런 차원에서라도 배다리는 인천시가 전 세계에 내놓을 만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전범이 될 만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국이나 일본, 유럽과 같이 작은 지역에 오랫동안 많은 인구가 거주하면서 생성된 공간의 특징은 자생성을 가진 공간으로, 그 자체로 이미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공간이란 점이다. 이때의 자생성이란 그냥 내버려두어도 지속될 수 있는 자족적인 공간이란 뜻이 아니라 주변의 신도심과 어울려 그 의미를 확대재생산해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자생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배다리와 인천은 이미 도시재생의 필요성, 다시 말해 위기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앞서 플레이스 마케팅, 도시재생프로젝트들의 성공 사례들에서 살필 수 있었던 것처럼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도시재생사업을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해당사자인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도시의 미래를 향한 장기적인 비전에 대한 시민사회와 지방정부의 합의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배다리의 문화공간화는 그동안 인천이란 도시가 쌓아왔던 역사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시민의 삶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성취하는 데 있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배다리 문화공간화를 추진해나가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사실 앞서 배다리 산업도로를 저지하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던졌던 네 가지 질문 속에 이미 담겨져 있다. 첫째. 과연 배다리는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 둘째, 현재의 배다리는 진정으로 살기 좋은 곳이었나? 셋째. 배다리 프로젝트는 배다리를 보존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가? 넷째. 누가 이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만들고 추진하며 지속시킬 것인가? 라는 질문은 결국 현재 그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이 잘 살게 되고, 그들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이며, 수 년, 수십 년,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정주공간의 미래 역시 현재 그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배다리의 문화공간화는 이미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의지로 시작되고 있다. 과제는 이들의 선택에 인천시는 물론 인천의 시민사회가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고, 추진력을 배가시켜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1) <매일신문>, 2007. 12. 17.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5184&yy=2007 (검색일 2008. 2. 26)
2) 마이크 데이비스, 김정아 옮김, 『슬럼, 지구를 뒤덮다』, 2007, 141~142쪽
3) <제민일보>, 2007. 9. 25 ~ 2008. 2. 23.
http://www.jemin.com/news/quickViewArticleList.html?sc_serial_code=SRN127 (검색일자 2008. 2. 26)해외의 성공 사례들은 <제민일보>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기획한 [제주를 새롭게 디자인하자, 경관이 미래다]란 제하의 기획 기사(2월 24일 현재 모두 23회)를 축약한 것이다.
4) 시인 랭보의 고향이기도 한 프랑스 샤를르빌에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마리오네뜨 인형 축제가 열리는 까닭은 이 곳에 국립마리오네뜨 학교가 있기 때문이며, 인구 4만의 작은 도시 앙굴렘에서 세계 최대, 최고(最古)의 만화 축제가 열리는 까닭은 이곳이 제지업이 발달했던 곳이며 이곳에 국립만화학교가 있다는 역사성, 현재의 조건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인천일보> 2008. 2. 27. 「구도심 개발사업 주민참여 의미」에서는 인천시의회가 ‘인천시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개정조례안’을 통해 구도심 개발사업의 초기단계부터 주민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조례안 공포가 멀지 않았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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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작가들/ 2008년 봄(24호) 302~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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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