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8시에 떠나네(The train leaves at eight)

- Song/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
- Music/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lkis Theodorakis,
- Word/ 마노스 엘레프테리우Manos Eleftheriou

때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기엔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는 대학을 남들보다 아주 늦은 나이에 들어갔습니다. 보통 여학생의 경우라면 대학을 졸업할 나이에 신입생이 되었으니 늦어도 이만저만 늦은 게 아니었지요. 대학에 그렇게 늦게 들어가게 된 이유야 그럴듯하게 둘러대자면 찾을 수 없는 건 아니겠지만 일단 공부를 열심히 안 한 탓이었다고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말이겠지요. 그런데 제게 이 노래 <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좀 유별난 감흥과 추억이 있는 노래입니다.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고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저는 단골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시험은 치렀고, 남는 시간 동안 소일 삼아 하는 일이었는데 이 서점은 주야장창 클래식 음악 아니면 국악을 틀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때 만해도 CD플레이어가 일반화되었을 때가 아니어서 LP를 주로 틀었는데 제가 좋아하던 음반은 아그네스 발차의 <내 조국이 가르쳐 준 노래 Songs My Country Taught Me>였습니다. 흔히 아그네스 발차의 <그리스 민요> 앨범이라고 하는 음반이었죠. 그날, 대학합격발표가 나던 날에도 저는 서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짐짓 입시에 대해 무심한 척 했지만 내심 불합격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에 두려워서 전화로 알려주는 ARS 서비스에 전화도 못 걸었지요. 그도 그럴 것이 본격적으로 시험을 치르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근 3년 동안 공부는 작파하고 여기저기 막노동판을 전전했던 처지라 내심 어느 정도 기대는 하면서도 두려웠습니다.

그때 친구가 찾아와서 제게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는 제 수험번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본인이 먼저 궁금했던 나머지 전화로 확인을 했던 거지요. 제 기억에 그때 흘러나왔던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 속에 <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그렇게 아로새겨져 있었습니다. 만약 그때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다면 저는 아마도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다시 대구로 내려갔을 겁니다. 그리고 얼마 전 신경숙 씨가 <기차는 7시에 떠나네>라는 소설을 냈다고 해서 다시 이 음악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경숙 씨가 이 곡을 번안해서 성악가 조수미 씨가 부른다고 하죠.

그래서 오늘 101번째 <유리병편지>는 <기차는 8시에 떠나네>라는 노래에 대한 이야기로 정해 봤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하면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지요. 어떤 이들은 쪽빛 바다와 이어지는 절벽 사이로 하얀색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달력 속의 그림을, 혹은 파르테논 신전과 올림픽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리스에 대해 흔히 갖게 되는 첫인상이겠죠. 그런데 저는 그리스하면 먼저 <나타샤>란 영화가 떠오릅니다. 아주 어려서 본 영화인데 항독 레지스탕스가 되기 위해 떠난 남자를 사랑하는 금발의 그리스 미녀가 맨발로  따라가는 모습, 그리고 한 동네에서 자란 다른 친구가 어느 날 나치 장교가 되어 나타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 구사일생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함께 레지스탕스가 되어 투쟁하다가 해방이 멀지 않은 어느 날 작전 중 독일군 복장 탓에 오인을 받아 빨치산들에게 공격을 받아 남자는 죽고 여자만 살아남은 뭐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꽤 여러 차례 해준 영화이기 때문에 기억하는 분들도 제법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상하게도 세상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지역들 중에는 반도가 많습니다. 발칸 반도가 그렇고, 아라비아 반도가 그렇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 역시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과 더불어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곳이라 그러리라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서구문명의 뿌리가 된 그리스 역시 여러 환란과 외침을 겪어왔습니다. 한 때는 로마의 속주로,  동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엔 오랫동안 투르크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죠. 그리고 그리스 해방전쟁을 치렀고, 이 때 유명한 시인 바이런 등이 그리스 해방을 위해 투르크와 싸웠습니다.

오랜동안 이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울분과 한을 안으로 삭이도록 강요받아 왔습니다. 우리들 역시 오랫동안 지배계급의 억압과 일제 식민지 치하를 경험하면서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발칸 지역 등의 민요를 들어보면 우리와 매우 유사한 정서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개의 민중가요(민요)들이 그러하듯이 이 곡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역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정서는 '실연'의 느낌이 강하지만 그 내용은 압제자의 눈을 피하기 위해 내용을 안으로 가다듬은 저항적인 노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저항의 표현조차 맘놓고 할 수 없었던 시절에 만들어진 노래들이 대개는 그렇습니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의 가사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죠. 우선 조수미가 부르고 신경숙이 번안한 가사를 먼저 보겠습니다.

카테리나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카테리나행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당신은 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가슴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상당히 세련된 형태로 다듬어져 있기는 하지만 저항적인 부분들이 탈색되고 서정적인 정조가 좀더 강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좀더 오리지널에 가깝게 된 번역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카타리니행 기차는 언제나 8시에 떠나는군요.
11월은 영원히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우오조(ouzo)를 마실 때 우연히 만났지요.
당신은 무슨 비밀인지를 간직한 채
밤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기차는 8시에 떠나지만,
당신은 카타리니에 혼자 남겠지요.

가슴에 칼을 품고 안개 속에서 시계를 주시하며
5시에서 8시까지...
*우오조(ouzo):그리스지방의 anise라는 열매로 맛을 들인 음료

사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단순히 <저항가요>로 규정하기보다는 보다 폭이 넓은 우리 식으로 하자면 <아리랑>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좀더 옳은 해석이겠지만, 전체적인 가사 내용을 음미해보면 '기차를 타고 떠난 돌아오지 않는 연인'이 조국을 위해 뭔가 큰 일을 하기 위해 떠난 투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여인은 앞서 제가 인상깊게 보았다던 그리스 영화 <나타샤>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었던 거죠.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리스 출신 예술가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이는 아마 나나 무스쿠리와 조르주 무스타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고 FM영화음악을 즐겨 듣던 이들이라면 반젤리스, 그리고 좀더 연배가 있는 이들에게는 멜리나 메르쿠리(배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조금더 관심을 기울이시면 여기저기서 낯익은 이름 하나를 발견하게 되죠.

바로 이 곡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의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입니다. 영화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이라면 <제3의 사나이 The Third Man>(1949년)와 안소니 퀸 주연의 <그리스인 조르바>, 멜리나 메르쿠리 주연의 <죽어도 좋아(페드라)>, <형사 서피코>,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등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이 정도 알고 있다면 상당히 많이 알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그가 지난 2000년 노벨평화상 후보였다는 사실을 혹시 아시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1925년생인 테오도라키스는 음악가로서 뿐만 아니라 운동가로도 주목받은 인물입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어난 그리스 내전 중에 좌파로 활동했고, 그런 이유로 결국 조국을 떠나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음악 활동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자세하게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독일의 침공 이후 그리스의 국내외에서는 항독 투쟁이 매우 거세게 일어났고, 그리스 국내외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인 세력들은 대개 좌파였습니다. 44년 11월 그리스는 해방되었고, 한때 좌우 양파가 협조한 연립정부가 구성되었으나 곧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유럽에서 소련의 세력을 봉쇄하려는 미국은 그리스와 터키의 전략적 중요성을 생각해 이들 나라에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거액을 지원했습니다. 그 결과 좌파는 세력을 잃고 49년 10월 내란은 일단 진정됩니다. 그러나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왕당파와 공화파 사이의 정쟁(政爭)이 계속되었고, 그 와중에 군부 쿠데타 등이 일어나 강압적인 군사정권이 등장하는 등 서구민주주의의 고향은 오랜 세월동안 군홧발 아래 놓이게 됩니다.

테오도라키스는 1961년 조국 그리스로 돌아와 <희랍인 조르바> 등의 음악을 작곡하지만 1967년 4월 발생한 파파도풀로스의 우익 군사 쿠데타로 인해 70년까지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의 모든 음악은 그리스 안에서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제작한 정치적인 영화 (1969년)의 음악은 감옥에 갇힌 테오도라키스가 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작곡한 곡들을 이용한 것으로 그해 영국 아카데미는 감옥에 갇힌 테오도라키스에게 음악상을 안겨 주어 그리스 정부에게 항의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정치적으로 좌파라는 이유로 그리스에서 그의 음악이 금지곡이 된 것은 이해한다 손 치더라도 우리까지 한동안 그의 음악이 금지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국내 라디오에서는 그의 음악들을 즐겨 방송해주었는데 그의 정치 성향이 알려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의 음악들은 금지곡이 되었고, 5공 시절에는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음악이 삭제된 채 방송되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80년대 중반에는 그리스 출신의 샹송 가수이자 테오도라키스와 가까운 친구 사이였던 조르주 무스타키가 방한했을 때는 자신의 앨범에서 테오도라키스가 작곡한 곡들이 모조리 삭제된 데 대해 항의하는 해프닝도 있었죠. 하기사 이런 해프닝이 어디 테오도라키스 한 사람에게 국한된 일이었겠습니까? 그는 또한 클래식 음악가로도 널리 인정받았는데 그가 작곡한 제1모음곡은 1957년 모스크바의 competition에서 그랑프리를 수상(이 때의 심사위원은 쇼스타코비치와 한스 아인슬러 등)했고, 1963년에는 교향곡을 작곡해 영국에서 시벨리우스상을 받았습니다(이 때의 심사위원은 졸탄 코다이(Zoltan Kodaly),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 등). 테오도라키스는 지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주제음악인 <제우스 찬가>를 작곡하는 등 유럽에서는 손꼽히는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윤이상 선생은 그보다 훨씬 앞선 1972년 뮌헨 올림픽의 개막 축하곡으로 <심청>이 공연된 적이 있지만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그를 간첩으로 몰아 고문하고 투옥해버렸죠. 결국 윤이상 선생은 반성문을 쓰기 전에는 귀국할 수 없다는 우리 정부의 조처 때문에 결국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독일에서 숨지고 말았습니다.

민주주의의 본원으로 칭송 받는 그리스이면서 치열한 내전과 무자비한 폭력, 군부 쿠데타를 경험한 그리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죽음의 공포와 맞서 싸우면서 자신의 조국 그리스의 민주화와 억압받는 민중의 삶을 위로하는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우리 가슴에 깊이 와 닿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아그네스 발차의 음반을 이번 광화문 시위에 나가는 날 영풍문고 지하 음반 매장에서 구입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2002/12/13>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