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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WORK

인천, 어디까지 가봤니? <인천발전연구원 웹진 아뜨리에 - (2010.01월)>

인천, 어디까지 가봤니?


지난 해 TV를 보면서 심심찮게 맞닥뜨렸던 대한항공(KAL)의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광고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우리와도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이고, 이민, 유학생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오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광고가 참신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동안 미국하면 먼저 떠올리게 되는 뉴욕이나 LA,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의 풍광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잘 알지 못했던 미국의 작은 소도도시들을 찾아 소개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광고 덕분에 『오즈의 마법사』가 만들어진 배경이 되었던 캔자스 주의 와메고(Wamego), 『톰 소여의 모험』을 탄생시킨 한니발 같은 미국의 여러 곳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더불어 우리가 살고 있기에 너무나 익숙하지만 실은 잘 모르는 곳이 인천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인천 시민들이 만들고, 후원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문화재단인 새얼문화재단에서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인천 사람이 아니다. 인천에서 현재 일하고 있고, 분양받은 아파트가 완공되면 다시 인천에서 살겠지만 인천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인천에서 학교를 다니지도 않았다. 만약 새얼문화재단과 인연이 닿지 않았더라면, 고등학교 때부터 지역문화운동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지 않았더라면 나에게 인천이란 도시의 인상은 여느 타지방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996년부터 새얼문화재단에서 일하게 되면서 나는 태생이 인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인천에 대해 좀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 인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개항장 제물포, 인천상륙작전, 도크식 항만시설이 전부였다. 다행히 인천에 대해 잘 알고, 사랑하는 지역운동가들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인천 한세기』를 쓰신 신태범 박사님, 『개항과 양관역정』을 펴낸 최성연 선생님 등을 생전에 직접 뵙고 생생한 이야기들을 엿들을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인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더 많이, 더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는 인천의 약한 정체성과 문화에 대한 고민이었다.

현재 인천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는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덩달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했지만, 그 분들이 살아왔던 과거의 인천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지난 30여 년간 지속된 개발근대기 동안 많은 수의 인구가 일자리를 찾아 인천으로 유입되었고, 그 결과 타지에서 함께 이주한 문화가 본래의 인천문화와 혼종(混種)되면서 새로운 인천문화, 다양하고 역동적인 인천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이제 인천에 자리를 잡아 인천 시민이 되었고, 지금의 인천문화는 싫든 좋든 이들과 함께 만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인천을 문화가 없는 도시라고 폄하하지만 문화란 지역민의 생활, 풍토, 환경이 한데 어우러져 시간과 함께 쌓여온 것이기에 문화 자체의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인구 270만의 광역시인 인천에 공통된 지역문화와 단일한 정체성을 기대하는 것은 해불양수(海不讓水)의 도시 인천이 가진 풍부한 문화적 유전자를 배제할 위험성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인천은 아무도 가보지 못했고,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인천의 모습을 염려하게 만든다. 송도신도시와 청라지구가 완성되면 과거 개발근대 못지않은 제2의 대규모 인구이동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든 그렇지 않든 인천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시민들이 느끼는 공통된 염원은 한결 같다. 잘 사는 도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잘 사는 도시, 살기 좋은 도시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현재 그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들이 잘 살게 되고, 그들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잘 살고 있는 시민들이 이주하여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나무 한 그루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잎과 줄기뿐만 아니라 뿌리의 힘이 중요한 것처럼 하나의 도시가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

수많은 문화가 혼종되어 오면서도 현재의 인천을 만들고, 굳건히 지켜온 인천 문화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나는 그 뿌리가 곧 인천의 매력이며 우리가 그것을 새롭게 발견할 때 인천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리라 여긴다. 인천은 다른 여타 대도시들과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문화 ․ 생태적으로 다양하고 힘이 넘치는 역동성을 지닌 도시다. 인천은 하늘과 바다, 육지로 연결된 인적 ․ 물적 소통의 요지로 그 어떤 지역보다 다양하고, 풍부한 자연생태계와 문화생태계를 아우르고 있다. 수많은 생명의 아우성으로 바람 잘날 없는 세계 3대 갯벌과 아름다운 풍광이 돋보이는 연안도서들이 있는가 하면, 근대 개항장과 원 인천의 옛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화수부두, 북성동, 괭이부리말, 배다리 같은 지역이 있고, 부평, 관교 같은 신도심 지역은 근대화와 산업화의 터널을 통과하며 인천만의 독특한 문화벨트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를 가보아도 한 도시 안에 이처럼 풍부한 이야깃거리와 다양한 얼굴을 감추고 있는 도시는 많지 않다. 외부에서 유입된 것이든, 근대 이후 개항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든 이제 인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뿌리의 일부가 된 것들이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새롭게 인식할 때 인천의 뿌리는 더욱 단단하고, 튼튼하게 내려질 것이다.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는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고 했는데, 인천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가치를 재발견하고 새롭게 인식할 때 우리는 진정 인천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에 문화가 없다고 말하는 당신, “인천, 어디까지 가봤니?”

출처 : 인천발전연구원 웹진 아뜨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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