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캠핑을 즐기는 까닭
요즘 나는 이중고, 아니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회사 일만 해도 종류별로 서너 가지가 넘는 데 6주마다 고정으로 돌아오는 칼럼 쓰는 일이 있고, 쓰기로 약속만 해놓고 제대로 시작도 못한 일거리가 서너 가지다. 거기에 내년엔, 내년엔 하면서 역시 마무리짓지 못한 논문이 남았다.

하나는 밥벌이용으로 꼭 필요한 일이니 절대로 줄일 수 없고, 칼럼 쓰는 일은 지역사회의 공익근무요원으로 차출된 셈이라 원고료가 거의 없다시피 한 일인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거절할 수가 없었다. 못 하겠다고 하면 마치 적은 원고료 때문에 피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단 염려가 들었다.

한편으론 일을 줄여야 한다고 끊임없이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당장 처리해야 할 스케줄들이 줄지어 달려온다. 참다못해 탈출을 꿈꾼 것이 캠핑이었다. 캠핑이 등산과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는 등산이 어찌되었든 일단 산에 오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라면 캠핑엔 아무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도시를 벗어나 자연으로 잠시 삶의 근거를 옮기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다. 캠핑의 진정한 목적은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스포츠도 집을 들고 다니진 않는다. 우리는 본래 그러했던 것처럼 잠시라도 자연에서 살려고 하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그렇게 숨을 쉬고 싶었던 모양이다.



* 10월의 가을밤, 침낭 밖으로 나오기가 점점 더 싫어진다. 셀시우스 침낭은 가격대비 정말 좋은 녀석이다. 그린색이 국방색 같아 보이는 것이 한 편으론 마음에 걸리지만 다른 한 편으론 오래봐도 질리지 않는 수수한 맛이 있다. 다만 한 가지 4면 개방이 안 된다는 것은 캠핑퍼스트 공구침낭에 비해 다소 약점이긴 한데 3면 개방해놓고 이불처럼 써도 별로 거추장스럽지 않다.

산다는 번거로운 일 혹은 존재 방식
‘산다(삶)’는 건 참 번거로운 일이다. 그런데 산다는 것은 ‘행위(실천 방식)’ 같아 보여도 실제로는 ‘존재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왜 사느냐? 어떻게 살 거냐? 그런 질문들이 따라오게 된다. ‘산다’는 건, 몸에 배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습관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직장 생활이 힘들다고 말하지만 직장생활이 일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니, 그 사람이 말하는 일의 태반은 ‘관계’, 인간관계 때문이다.

인간은 나무 위의 생활을 정리하고 지상으로 내려와 직립 보행을 하고, 자유로워진 양 손을 사용하면서도 비로소 문명이란 걸 일구게 되었다. 문명이란 인간이 네 발로 돌아다니는 동물과 달리 자유로워진 양 손을 이용해 산다는 것의 편리를 추구한 결과다. 이동을 양 다리에 전적으로 맡긴 대신 보행으로부터 해방된, 여분으로 얻게 된 앞 다리를 이용하면서 인간은 새로운 존재양식, 다시 말해 삶의 방식을 만들었다. 여분으로 얻게 된 앞 다리 두 개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삶의 편리, 문명을 일구기 위해 늘 손이 부족했다. 그래서 다른 앞 다리들을 사냥하고 포획해서 노예로 부리기 시작한다.

짧은 생각이다. 문명은 원시공산제부터 현대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름으로 사회적 삶의 양식을 구분해 부르지만 뭉뚱그려 말하면 나무에서 내려온 뒤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팔과 다리를 조직적으로 이용하고, 스스로도 그에 못지않은 대가를 지불하는 시스템 속에 살고 있다.



* 밤늦게 도착해 아침에 부랴부랴 카메라들고 몇 장 찍어본다. 벌여놓고 치우질 않으니 난민 캠프 같다.

캠핑에는 있다. 보이지 않는 많은 매력들.
비록 이미 문명 속에서 돈을 주고 구입한 장비들을 이용하는 것이긴 하지만 자연 속에 집을 짓고, 나무를 줍고, 직접 식사를 해결한다. 물론 이미 문명화된 행위들이긴 하지만 사회 속에서 자신을 한 번 돌아보면 실제로는 평생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거나 평생 해볼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들 중 과연 몇 사람이나 직접 자기가 살 집을 지어볼 것이며 혹은 자신이 직접 긴긴 밤을 지새울 땔감을 준비하기 위해 장작을 팰 것인가. 하루 세 끼 중 몇 끼니나 아내 혹은 식당 아줌마의 손을 빌지 않고 자신이 직접 자신의 끼니를 차려내는 일을 할까?

야영을 하기 위해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 있는 유명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한 시간은 도시에서라면 그다지 늦지 않은 11시 45분 정도 되었다. 3주 연속으로 건너 뛴 편집회의를 마친 시간이 8시 10분 정도 되었는데, 나는 처음부터 이번 주엔 기필코 떠나리라 결심하고 장비를 트렁크에 챙겨왔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만약 내가 펜션 같은 곳에서 자겠다고 생각했다면 연휴가 시작되는 목요일 이 시간의 출발은 감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지만 강원도 방향으로 나가는 길은 서울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엔 서울을 거치지 않는 서해안 방향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막히는 시간까지 계산해도 서해안쪽 자연휴양림이나 야영장을 가는 시간보다는 적게 걸릴 것 같았다. 예상외로 서울을 통과하는 것이 약간 난관이긴 했지만 서울 외곽으로 갈수록 소통이 원활해졌다. 유랑객과 달리 행락객들은 밤에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단풍놀이라면 낮에 가야 할 터이니.


* 아침에 촬영한 유명산자연휴양림 주차장. 안개가 자욱하더니 낮이 되니 좀 덥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넓은 주차장이 잠시 후엔 정말 주차장이 된다.


캠퍼들의 성지(聖地), 유명산 자연휴양림
가평 유명산 자연휴양림은 서울 인근에 자리한 때문인지 자연휴양림으로 조성(1989년 개장)된 지 제법 오래되었다. 해발 862m로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고, 참나무가 주종인 천연림과 낙엽송, 잣나무 등의 인공림 지대가 한데 어우러져 아늑한 풍광이고, 갈수기에도 제법 수량이 풍족한 계곡이 있다. 무엇보다 자생식물원과 널찍한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서울 근교에서 자연을 즐기고 싶은 행락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유명산이 야영생활을 시작하는 초보자들부터 오래 경험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즐겨 찾고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야영객의 성지(聖地)다. 이처럼 인식된 원인은 시설이 빼어난 탓보다는 휴양림 입구에 오토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합소 오토캠핑장이 있고, 휴양림 내에도 넉넉한 규모의 오토캠핑장과 휴양림 데크들이 있는데다가 이 모든 곳들이 야영객들로 가득해도 인근에 중미산, 용문산 등의 다른 대안을 찾기 쉽기 때문이다.

유명산 자연휴양림은 세 군데에 야영장이 설치되어 있는데 한 곳은 휴양림 초입이고, 그리고 500m 정도 이동한 뒤 중턱 부분에 한 곳이 더 있고 가장 높은 곳에 오토캠핑장이 설치되어 있다. 워낙 늦은 시간에 도착한 탓도 있지만 오토캠핑장은 피하고 싶었다. 단독캠퍼에겐 가족 단위 오토캠핑장의 부지런함과 친절함도 때론 피곤한 일이다. 초행길이라 멋모르고 가장 낮은 곳에 사이트를 구축했는데 새벽녘까지 새로 도착하는 팀들이 있었고, 다음날 아침에 좀더 높은 곳으로 가지 않은 것을 약간 후회했다.


* 데크에서 1박하는 비용은 쓰레기 봉지값 포함해서 10,000원 정도다. 쓰레기 봉투가 떨어졌다고 해서 산 밑 매표소까지 나가 쓰레기 봉지를 직접 사왔다. 사진에서는 아직 정리하기 전이라... ㅠ.ㅠ 아마 왕복 기름값까지 포함해도 웬만한 펜션 하루 숙박비 정도면 1박 2일 캠핑의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행락객과 야영객
다음날 느지막한 아침을 마친 뒤부터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도착하는 것을 보았다. 행락객들이다. 앞서 등산과 야영을 구분한 것처럼 행락객(行樂客)과 야영객(野營客)도 다르다.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자고 부르짖고, 매너를 따지는 캠퍼들이 많기 때문에 당일치기 야유회를 나온 행락객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일들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행락객을 폄하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우리가 흔히 ‘아줌마’라고 부르는 그들이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어머니, 아내인 것처럼 자연의 입장에서 보자면 행락객이나 야영객이나 모두 손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야영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행락객에 비해 아직 소수이고, 말 장난 같지만 ‘삶의 여유’를 찾겠다는 삶의 여유가 그나마 있는 사람들이 좀더 많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만 야영의 사전적 의미가 자연에서 하루라도 자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큰 차이다. 숲 속이든 강변이든 도시가 아닌 자연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건 남다르다. 이건 말로 설명하기 참으로 어려운 느낌이지만 도시의 밤이 낮의 연장이라면 자연 속의 밤은 말 그대로 밤이다. 촛불 하나도 엄청나게 밝게 느껴지고, 침낭에서 돌아눕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인공조명으로 빛을 잃었던 하늘엔 별이 가득하고, 나무 사이로는 촉촉한 이슬이 밤새 내린다. 운이 좋다면 반딧불이도 만날 수 있다.

낮에 단풍놀이 나온 행락객들은 그걸 알 수 없다. 관광버스가 토해낸 사람들은 다시 그와 같은 목적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등산로를 오르고, 인근 매점에서 청량음료를 사서 마신다. 산 밑의 음식점에서 파전에 동동주를 사먹고 부랴부랴 버스에 올라 집으로 돌아간다. 마치 평일에 출근하는 사람처럼 차량으로 붐비는 외곽도로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이다. 사회에서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또다시 같은 버스를 타고,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함께 산에 오르고, 함께 음식을 먹고 마시며 산다. 그, ‘산다는 번거로운 일’을 연장시킨다.

물론 나의 이런 정의가 탐탁치않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캠핑동호회 정캠도 있고, 정모도 있고, 함께 사이트를 구축해서 즐기는 맛도 틀림없이 존중해야 하는 삶의 방식, 캠핑의 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단독캠핑을 더 좋아하고, 선호하는지 말하는 것뿐이다. 한 번 캠핑을 나갈 때마다 무얼 더 챙겨야 하고, 무얼 더 줄여야 할지 알게 되고, 느끼게 된다. ‘편리’라는 욕심을 줄이고, 불편을 더 챙긴다. 설거지하면서 세제 한 방울 안 쓴다고 알아주는 사람 없고, 가까운 계곡 대신 멀리 있는 세면장까지 가는 걸음이 다소 힘들어도 자연 앞에서 늘 손님의 자세로 왔다간 흔적 없이 세상 속 내 자리로 돌아간다.



* 텐트가 작으니 살림살이 정리가 안 된다. 오른쪽에 발가락이 찬조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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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