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글을 청탁받아 쓰긴 하지만 간혹 청탁한 매체의 성격이나 청탁받은 원고의 성격(지면)에 대해 오해해 실수하는 일도 있다(지금까지는 한 번). 예전에 어느 청소년교육관련잡지에서 '책에 대한 책 이야기'를 써달라고 해서 '책에 대한 책 이야기'를 써서 보냈는데 자기들이 원하는 글이 아니라고 수록을 거절해서(내 생각엔 편집자가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 그렇게 하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런 일에 대해 특별히 민감해 하는 편이 아니라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긴 했지만 처음 있었던 일이라 이후로는 청탁하는 편집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청탁에 응하게 되었다.

오늘자 <경향신문>에 내 글이 실렸는데, 원래 이 글은 <정동에세이>로 청탁받은 글이었다. 원고 내용이나 주제가 자유라고 해서 때마침 마감 직전에 터진 'MBC 알통 사건'에 대해 썼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정동에세이>는 에세이가 아니라 미셀러니를 게재하는 코너였다. 마감(20일) 다음날 글이 실리지 않았길래 살펴보다가 뒤늦게 이런 사실을 발견하고, 내 원고가 코너 성격에 맞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해 게재하지 않아도 좋다고 연락했더니 글이 재미있어서 그냥 버려두기 아깝다(?)며 <기고>로 오늘자에 실으려고 한단다. 다만, <정동에세이>는 15매 분량이고, 이건 10매라 5매를 줄이느라 이제야 연락했다고 해서 편집자가 10매로 줄인 원고를 받아서 읽어보고 내가 조금 수정한 다음 오늘자로 게재하게 되었다.

링크는 오늘 <기고>에 실린 글이고, 아랫 글은 원래 <정동에세이>에 실으려고 했던 원문이다. 두 편 다 읽어 보라고 할 순 없으나 관심 있는 분들은 대조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원문> 마봉춘(MBC) 씨! 팔뚝 참 굵다

“네 팔뚝 굵다”는 말을 칭찬으로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도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말은 본래 네덜란드 소년 한스 브링커(Hans Brinker)가 제방에 구멍이 나자 자기 팔뚝으로 구멍을 막아 비록 자신은 희생되지만 덕분에 저지대 주민들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자기를 희생해 이웃을 구한다는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어째서 ‘그래, 너 잘났다’ 정도의 의미로 평가 절하되었을까. 이처럼 감동적인 이야기라면 당연히 본고장 네덜란드 사람들 누구나 알 법도 하건만 어째서 그들은 한스 이야기를 잘 모를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이야기는 미국의 메리 멥스 닷지(Mary Mapes Dodge)라는 동화작가가 1865년에 펴낸 동화책 『The Silver Skates』에 수록된 이야기로 정작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이 소년의 이야기는 네덜란드에 와서 한스를 찾는 일본인들이나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관광 자원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메리 맵스 닷지가 이 책을 발표할 당시 미국은 1861년부터 4년여에 걸쳐 치열하게 진행된 남북전쟁이 종결되고 미합중국이라는 새로운 국가 만들기(state building) 분위기가 고조되던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메리 맵스 닷지의 이야기는 1886년 이탈리아의 소설가 데 아미치스가 이탈리아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펴냈던 『쿠오레』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국민 만들기(nation building) 차원에서 널리 유포되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어째서 이역만리 한국까지 퍼지게 되었을까.


일제에 의해 황국신민교육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오늘날까지 우리 어린이 교육에 이용되어온 결과다. 다시 말해 일제강점기 장충단 공원에 세워져 일본 군국주의 정신을 기리던 ‘육탄3용사(肉彈三勇士)'의 아동용 버전이었던 셈이다. 본래 장충단은 을미사변 당시 일본 낭인들을 가로막다 희생된 조선의 충신들을 기리는 곳이었으나 일제는 이곳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당한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博文寺)를 세웠고, 얼마 후에는 중국 침략 전쟁의 일환이었던 상해사변에서 숨진 육탄3용사 동상을 세웠다.

 




1932년 2월 24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중국 상하이 특파원발로 육탄3용사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는데, 에시타 다케지(江下武二), 사쿠에 이노스케(作江伊之助), 기타가와 유주루(北川丞) 세 명의 병사가 차이팅카이(蔡廷锴) 장군이 이끄는 제19로군(路軍)이 구축한 진지 철조망을 돌파하기 위해 폭탄을 안고 몸을 던져 파괴했다는 기사였다. 이들이 사용했다는 폭약통(Bangalore torpedo: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오마하 해변에 상륙한 미군이 독일군 철조망을 파괴하기 위해 길게 연결된 쇠파이프에 TNT폭약을 장치한 폭약통을 이용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과 거의 동일한 장비)은 비록 고성능 폭약을 다루기는 하지만 본래 군사용 장비가 아니라 민간용 장비에서 출발한 것으로 1912년 인도 벵골 지방에서 복무 중이던 한 영국군 장교가 밀림 등에서 통로개척용, 도로 건설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 장비였던 만큼 시한장치가 있어서 실수나 고장이 아니라면 병사들이 철조망 위에 던져 넣은 뒤 대피할 만한 시간을 벌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죽었을까? 아니, 왜 죽어야 했을까?


2007년 7월 13일,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75년 전 자신들이 했던 보도가 사실은 조작이었음을 시인하는 반성문을 게재했다. 당시 이 기사를 쓴 특파원은 현장에 가지도 않았고, 전선에서 돌아온 한 장교의 이야기만 듣고 꾸며낸 미담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국립 문서 보관소에서 찾아 낸 당시 문서에 따르면 “3용사로 알려진 사람은 애초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여 철조망에 내던지고 재빨리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도중에 한 명이 쓰러져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그냥 돌아왔다. 그러자 상관은 ‘천황과 국가를 위해 가라’며 노발대발했고, 상관의 명령이 두려워 되돌아간 세 명의 병사가 철조망에 도착했을 즈음 폭탄이 터졌다”는 것이 사건의 실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 군부는 단순한 사고사를 일본 군국주의의 화신으로 선전했다. 어떤 이들은 전쟁 영웅을 만드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일본이 이들을 군국주의의 화신으로 만든 뒤, 군인은 물론 민간인들까지 국가를 위해 죽으라고 강요했다는 사실이다.


엊그제(2월 18일) MBC는 <뉴스데스크> 뉴스플러스 코너에서 ‘알통 크면 보수?, 보수 진보 체질 따로 있나’라는 보도를 해 여론의 뭇매를 받고 있다. 이후 MBC는 적극적으로 해명하길 편집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는 있었으나 각각의 사실(fact) 보도에는 잘못이 없다고 했는데 본래 연구가 주장하는 바는 ‘신체적 능력(근력)이 뛰어난 남성일수록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적 주장을 좀더 강하게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일 뿐, MBC가 보도한 것처럼 팔 근육의 두께와 그 사람의 신념이 진보냐 보수냐는 사실상 무관한 것이다. 그런데도 MBC는 알통 둘레가 35cm인 A씨와 알통 둘레가 32cm인 B씨에게 저소득층 소득분배를 질문한 뒤 A씨는 “더 어려운 사람 위한 과도한 세금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B씨는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는 입장을 보였다고 전하면서 “알통 굵기가 굵은 사람이 보수에 가깝다”며 무리한 연결을 시도했다. 이는 근력과 정치적 의사 결정의 상관성을 밝히려던 연구를 마치 팔뚝 굵으면 보수고, 팔뚝이 가늘면 진보라는 식으로 ‘보수·진보’ 프레임에 억지로 끼워 맞춘 결과일 뿐이다.
비록 MBC의 해명을 모두 받아들이더라도 앞서 미담과 교훈으로 포장된 한스 이야기가 대중의 통찰에 의해 결국 ‘그래, 너 잘났다’란 의미로 비하된 것처럼 김재철 사장 체제에서 그동안 MBC가 보인 수많은 그릇된 행태들은 이 해프닝을 MBC 스스로 자신의 팔뚝이 굵다, 굵어도 너무 굵다고 자인한 것으로 보게 만들 것이다.


독일 나치스 정권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는 “99%의 진실에 1%의 거짓을 섞으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고 했는데 지금 MBC는 몇 퍼센트의 진실을 보도하고 있는가.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