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매각론을 둘러싼 금융자본 입장과 산업자본의 입장의 차이>

김대중 대통령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즉시 대우차의 해외 매각, 특히 지엠(GM)으로의 매각을 해법으로 들고 나왔다. 미국식 주식시장 자본주의의 이념이 풍미하는 이 시대에 "실패한 기업은 M&A의 대상이고, 국내에 대기업을 구매할 주체가 마땅히 없는 까닭에, 해외 매각은 당연"하다는 결론이었다. 현재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경제관료와 경제학자들의 대부분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옹호하는 신자유주의의 이념은 산업자본을 이익을 희생시키면서라도 금융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그 요체이다. 기업과 산업, 나아가 국가경제의 사활을 좌우할 중대한 의사결정에서 이것은 오직 금융적 이해관계, 금융산업의 이해관계 하나만을 판단의 기준으로 놓는다.


금융자본은 바로 자본중의 자본 즉 돈 그 자체의 운동이다. "돈이 돈번다" 원리가 전부이며, 인간이 차지할 자리는 여기에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경제시스템은 돈(화폐)만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인간을 필요로 한다. "돈만으로는 않된다"는 원리는 금융자본이 아닌 산업자본의 영역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산업기업의 현장에는 공장의 노동자들, 연구소의 과학기술자들, 그밖에 관리자들, 세일즈맨들 등등 피와 살을 가진 인간들이 등장한다.
화폐 그 자체가 국적을 버리고 국경을 넘어 초국적화하는 것은 너무도 간단한 일이다. 원화를 달러화로, 엔화로, 마르크로 무제한으로 바꾸는 일은 각국 정부의 외환규제 장치를 법제도적으로 바꾸는 '간단한' 조치에 의해서도 실현 가능하다. 따라서 세계화(Globalization)의 주도세력은 바로 화폐자본, 금융자본이다. IMF 금융위기는 김영삼 정부가 무분별하게 실시한 외환자유화, 금융개방조치에 의해 야기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산업자본은 금융자본처럼 간단하게 국적을 버릴 수 없다. 물론 노동이 '순수한' 비숙련 노동 (주류경제학이 말하는 순수한 '생산요소'로서의 노동)으로서만 간주되는 그런 산업에서는 산업자본 역시 싼 임금과 최악의 노동조건을 찾아 세계 구석구석을 전전하는 것이 가능하다. 섬유, 가발, 신발공장들이 한국에서 방글라데쉬로 이전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산업자본이 반숙련, 숙련노동자와 나아가 연구개발 과학기술자들, 우수한 관리자들을 필요로 하고 이들 '인간'에게 의존하게 되면 자본은 더 이상 마음대로 국경을 넘을 수 없다.
예컨대, 독일과 일본의 장인적 숙련공들과 기술자들에 의존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품소재 제조업의 산업자본은 한국 혹은 미국으로 한순간에 이전될 수 없다. 이들 고급노동력의 존재는 그곳에 존재하는 전사회적 산업적 차원의 산업교육훈련 제도와 기술혁신 시스템과 뗄 수 없게끔 결부되어 있다. 이런 국가적 산업/기술 시스템 (national industrial and technological system)의 형성과 발전에는 수십 년간의 집요한 노력 혹은 백년대계가 요구된다.
김대중-이헌재가 한국에 이식하기를 꿈꾸는, 실리콘 벨리형 벤처기업이 주도하는 신경제 역시 실리콘 벨리와 결부된 미국의 과학기술 연구 및 교육시스템과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엄청난 국방연구와 비실용적 기초연구라는 '민족적'(결코 '지구적'이지 않은) 자산의 백년대계적 축적 노력 없이는 곧 한계에 부딪힌다.
금융자본과는 달리 산업자본의 지구화(Globalization)는 일정한 민족적, 시간적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산업자본의 세계는 매일 수조 달러가 더 높은 이윤을 찾아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 화폐의 세계, 매 시간 단타매매 (day trading)를 통해 주식시장을 전전하는 주식자본, 화폐자본의 세계와는 현격하게 다르다.


99년 8월 이후 내가 대우차를 바라본 관점은 우선은 이와 같은 산업자본의 관점에서였다. 따라서 지엠으로의 대우차 매각은 철저하게 반대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미 80년대에 있었던 '종속이론' 관련 논쟁에서 이루어진 자동차산업에 관한 실증연구들을 통해, 독자기술의 발전을 추구했던 현대차와는 달리, 대우차에서는 독자 기술능력의 발전이 지엠에 의해 좌절되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또한 나는 대우차 직원들과의 면담을 통해 92년 결별 이전에 지엠이 어떤 방식으로 모델의 독자개발을 가로막았었고 또한 품질개선을 위한 제품/공정 설계변경이 어떻게 가로막혔는지에 관하여 추가적인 발견을 할 수 있었다. 김우중의 세계경영 전략은 대우차가 현재의 최악의 사태로 빠져들게 된 기본 요인이다. 하지만 20년간 계속된 지엠의 식민지 경영적 사업 행태는 바로 대우차의 현 취약성을 근저에서 만들어 냈다. 그런 원죄를 지닌 지엠이 다시 개선장군처럼 대우차에 무혈입성한다는 것은 한국자본주의의 합리적 발전을 위해서도 저지해야 하는 일이었다. .



<해외매각도, 재벌경영도 아닌 대안은 ? >

김우중의 재벌경영은 이미 파산했다. 해외 자본도 않된다. 그렇다면 누가 대우차를 맡아야 하는가 ?
이 의문에 대해 당시 대우차의 한 직원은 하나의 대안을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하였다 "대우차 회생의 깃발을 들 주체는 지엠도, 삼성도 아니며 김우중의 후계자들도 아니다. 우리 자신이 깃발을 들어야 한다". 나 역시 이 의견을 지지하였다. 대우차의 직원들과 노동자들이 대우차의 지배와 경영의 주체로서 나서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대우가 가진 문제는 단지 '화폐' 즉 재무금융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대우차의 '인간' 즉 조직과 기업문화 역시 큰 위기 상태에 있었다. 김우중의 1인 황제식 경영은 대우차 내부에 치명적인 조직상의 충돌, 마찰, 책임회피, 무기력, 좌절, 분노 등을 낳았다.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마티스의 4차종 동시개발과 함께 기술능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성장하는 기술능력(생산력)은 김우중 회장이 만들어놓은 기존의 조직체제와 기업문화(생산관계)과 충돌하여 더 이상의 발전이 가로막히고 있었다. 대우차 역사에서 신세대라고 할 수 있는, 4차종 동시개발을 경험한 젊은 중간급 관리자와 연구개발자, 기술자들은 김우중의 절대황제적 권위를 뒤에 업은 불합리한 경영진의 행태에 대한 좌절과 분노로 회사 전체의 조직은 이미 워크아웃 이전에도 마비증상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신세대 중간층 경영관리자, 연구개발자 등이 대우차의 기존 경영진을 대체하여 올라서고, 스스로의 비전에 맞게 새 최고경영진을 구성하여야 했다. 일본은 전쟁후 47년 재벌시스템을 해체함에 있어, 재벌과 연관된 상층 경영진 거의 모두가 퇴진하고 재벌경영과 무관한 젊은 중간층 경영자들이 최고경영진으로 일거에 상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에서도 역시, 재벌시스템을 해체함과 동시에 해외 매각에 의존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오직 이와 같은 방식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사무관리직 중간층과 현장 노동자들과들이 서로 단결하여 기존의 재벌식 경영진을 몰아내야 했다.
하지만 주어진 불리한 정치사회적인 세력관계에서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 나아가 과연 사무관리직 중간층에, 현장 노동조합에, 대우차의 기업권력(지배구조)을 혁명적으로 뒤바꾸는 이런 대범한 일을 행할 의지와 능력이 있을 것인가 ?
<200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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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대우자동차 노동자는 죄인이 아니다.

제2의 IMF니, 또다시 실업자 대란이니 하는 듣기도 싫은 이야기들이 2000년 연말의 우리나라를 유령처럼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울한 이야기들의 한 가운데 있는 것이 <대우자동차> 문제입니다.

지난 11월 9일 대우자동차가 결국 최종부도 처리된 가운데 우리 사회의 언론들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셈인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대우자동차 부도의 최종 책임이 마치 노조가 동의서를 써주지 않은 탓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대우자동차 노조의 잘못인가 우리는 한 번쯤 찬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문제가 이렇게 까지 된 데에 노동자들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어른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 놓고, 동승한 어린이에게 그 책임을 미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물론 옆에 같이 탄 동승자에게도 책임을 묻는다는 차원에서라면 어느 정도 동의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라도 역시 음주운전을 한 어른에게 먼저 책임을 묻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념이자 정상적인 사회에서 할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모든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묻고 있습니다.(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프랑스 니스의 별장에서 베트남인 바둑 기사를 초빙해서 한가롭게 바둑을 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에)
다음은 대우자동차 매각과 관련하여 저희 잡지에 실린 글의 일부를 발췌하여 게재한 것입니다.(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저로서는 이 분의 글 이상 쓸 재주도 없고, 이 분의 글 내용에 대해 전면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약간의 이견은 있으나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므로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지식기반 경제와 대우차 문제

정승일

내가 대우차와 인연 아닌 인연을 갖게 된 것은 작년 봄부터였다. 박사논문으로 "한국 재벌 지배-경영구조의 붕괴과정 - 자동차 산업의 사례"에 관해 쓰기 위해서 현대차, 대우차, 기아차, 쌍용차, 삼성차 각각의 소유지배구조, 경영전략, 조직관행, 기술전략에 대한 실증조사에 나서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차 이외에는 거의 아무런 기성의 실증조사도, 문헌연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의 공업화 성공과정을 대표하는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포항제철 등등의 기업에 대한 실증조사와 연구논문들은 이미 많이 있었다. 그런데 소수에 불과한 이들 성공 대기업들의 사례 이외에, 잠재적 현실적으로 실패한 압도적 다수의 재벌계 대기업들에 관해서는 거의 연구가 없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성공을 이른바 "산업/기술적 추격과정(catching up)"으로 설명하는 기존의 지배적 학설이 지닌 불가피한 이론적 한계이기도 하였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연구논문과 실증조사가, 현대자동차를 한국자동차 산업과 동일시하면서, 마치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가 성공하고 있는 양 묘사하고 있다. 대우차와 기아차의 경영 전반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노동운동과 관련된 자료가 훨씬 풍부하였다. 각사 노동조합의 단체협상 관련 연구와 노동과정 연구, 그리고 관련 중소 부품납품기업의 하청구조에 관한 연구에 관해서는 상당한 자료가 있었다. 하지만 대우차와 기아차의 운명을 궁극적으로 좌우할 각 기업 재벌총수 최고경영자들의 경영전략, 조직전략 일반에 관해서는 홍보용 자료들 이외에는 체계적인 연구가 거의 없었다. 그 많은 경제학자, 경영학자들은 무엇을 그동안 한 것인지.

한국의 경제학 및 사회과학의 한계의 하나로, 산업 차원의 연구만이 있었을 뿐, 더 나아가 개별 기업 차원의 연구는 거의 이루진 것이 없었다. 이런 빈약한 지식기반 위에서, 예나 지금이나 대우차와 관련한 정부 정책은 아무런 체계적인 조사나 심층적 연구도 없이, 몇 몇 실세 있는 학자들 혹은 유명 국제컨설팅 업체들의 피상적인 조사보고서에 근거하여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김대중 정부의 경제관료와 정책결정자들은 국정 슬로건의 하나인 이른바 '지식기반 경제'의 상식적 기초원리를 스스로 짓밟고 있다. 대우차의 포드로의 매각 실패 이후 우왕좌왕하면서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경제관료들과 실세 학자들의 추태는 현 정부의 '지식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기성의 조사문헌이 없는 한, 직접 회사 내부로 들어가 조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연구조사를 목적으로 대우차 경영진에게 공식 면담과 자료제시를 신청하려 하였지만, "그들이 코웃음칠 것"이라는 주위의 충고를 듣고 그만두었다. '개인적인 연줄'을 이용하는 것 이외에, '공적인 연구조사'는 한국의 어떤 세계일류 기업도 흔쾌히 허락하지 않는다. 더구나 문제 많은 대다수 대기업들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른바 '지식경영'을 유행처럼 입에 올리고 있지만, 대기업 경영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지식기반의 창출과 이용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경영하고 있다.


<대우 그룹의 붕괴>

다행히 93년을 전후하여 대우그룹에 입사한 친구들이 여러 명 있었다. 93년이라는 시점은 의미가 크다. 93년 3월, 김우중은 대우차 부평공장에서 이른바 "세계경영"을 선포하였다. 당시 연 40만대 생산에서 불과 4년 뒤인 97년에 대우차는 국내외 연 생산 200백만대로 사상 유례없는 대확장을 하였다.
99년 6월, 처음으로 부평공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대우차의 속사정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들이었다. 당시 신문과 방송에서는 삼성과 대우간의 자동차, 전자 빅딜에 관한 소식이 있었고, 98년 말 일본 노무라 증권의 보고서에 대우그룹 재무위기에 관한 소문이 내가 알고 있던 전부였다. 그런데 대우차 내부에서 나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대우차와 대우그룹 전체가 이미 재무금융과 조직, 인간관리, 해외경영 등 모든 측면에서 썩을 대로 썩어 곧 붕괴하리라는 놀랄만큼 만연된 체념이었다. 매달 1천억원이 넘는 상환불능 만기채무가 이미 도래하고 있었다. 기아그룹의 12조원 부실이 초래한 IMF 한파의 타격을 생각할 때, 70조원에 이르는 부실을 안고 대우그룹이 붕괴할 때 도래할 파국적 사태는 상상의 범윌르 넘어섰다. "설마,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겠지. 이들 직원들이 과장하는 것이겠지"라고 나는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런데 불과 한달 뒤인 8월 초, 현실은 가혹했다. 삼성과의 빅딜이 무산되자마자 대우그룹 전체는 부채상환 불능 상태에 빠져 전계열사들이 워크아웃 상태에 들어갔다. 대우차는 부채 18조6천억원, 자산 12조 6천억원으로, 마이너스 6조의 자본잠식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주)대우 역시 20조원이 넘는 부채를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김우중 회장은 23조원에 이르는 세계역사상 최악의 분식회계라는 범죄까지 저질렀다. 600억 달러의 대우관련 부실 채무는 채권은행들과 대우의 회사채를 보유한 투자신탁업체들을 연쇄 위기에 빠뜨렸다.


<해외 매각론을 둘러싼 금융자본 입장과 산업자본의 입장의 차이>

김대중 대통령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즉시 대우차의 해외 매각, 특히 지엠(GM)으로의 매각을 해법으로 들고 나왔다. 미국식 주식시장 자본주의의 이념이 풍미하는 이 시대에 "실패한 기업은 M&A의 대상이고, 국내에 대기업을 구매할 주체가 마땅히 없는 까닭에, 해외 매각은 당연"하다는 결론이었다. 현재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경제관료와 경제학자들의 대부분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옹호하는 신자유주의의 이념은 산업자본을 이익을 희생시키면서라도 금융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그 요체이다. 기업과 산업, 나아가 국가경제의 사활을 좌우할 중대한 의사결정에서 이것은 오직 금융적 이해관계, 금융산업의 이해관계 하나만을 판단의 기준으로 놓는다.


금융자본은 바로 자본중의 자본 즉 돈 그 자체의 운동이다. "돈이 돈번다" 원리가 전부이며, 인간이 차지할 자리는 여기에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경제시스템은 돈(화폐)만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인간을 필요로 한다. "돈만으로는 않된다"는 원리는 금융자본이 아닌 산업자본의 영역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산업기업의 현장에는 공장의 노동자들, 연구소의 과학기술자들, 그밖에 관리자들, 세일즈맨들 등등 피와 살을 가진 인간들이 등장한다.
화폐 그 자체가 국적을 버리고 국경을 넘어 초국적화하는 것은 너무도 간단한 일이다. 원화를 달러화로, 엔화로, 마르크로 무제한으로 바꾸는 일은 각국 정부의 외환규제 장치를 법제도적으로 바꾸는 '간단한' 조치에 의해서도 실현 가능하다. 따라서 세계화(Globalization)의 주도세력은 바로 화폐자본, 금융자본이다. IMF 금융위기는 김영삼 정부가 무분별하게 실시한 외환자유화, 금융개방조치에 의해 야기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산업자본은 금융자본처럼 간단하게 국적을 버릴 수 없다. 물론 노동이 '순수한' 비숙련 노동 (주류경제학이 말하는 순수한 '생산요소'로서의 노동)으로서만 간주되는 그런 산업에서는 산업자본 역시 싼 임금과 최악의 노동조건을 찾아 세계 구석구석을 전전하는 것이 가능하다. 섬유, 가발, 신발공장들이 한국에서 방글라데쉬로 이전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산업자본이 반숙련, 숙련노동자와 나아가 연구개발 과학기술자들, 우수한 관리자들을 필요로 하고 이들 '인간'에게 의존하게 되면 자본은 더 이상 마음대로 국경을 넘을 수 없다.
예컨대, 독일과 일본의 장인적 숙련공들과 기술자들에 의존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부품소재 제조업의 산업자본은 한국 혹은 미국으로 한순간에 이전될 수 없다. 이들 고급노동력의 존재는 그곳에 존재하는 전사회적 산업적 차원의 산업교육훈련 제도와 기술혁신 시스템과 뗄 수 없게끔 결부되어 있다. 이런 국가적 산업/기술 시스템 (national industrial and technological system)의 형성과 발전에는 수십 년간의 집요한 노력 혹은 백년대계가 요구된다.
김대중-이헌재가 한국에 이식하기를 꿈꾸는, 실리콘 벨리형 벤처기업이 주도하는 신경제 역시 실리콘 벨리와 결부된 미국의 과학기술 연구 및 교육시스템과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엄청난 국방연구와 비실용적 기초연구라는 '민족적'(결코 '지구적'이지 않은) 자산의 백년대계적 축적 노력 없이는 곧 한계에 부딪힌다.
금융자본과는 달리 산업자본의 지구화(Globalization)는 일정한 민족적, 시간적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산업자본의 세계는 매일 수조 달러가 더 높은 이윤을 찾아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 화폐의 세계, 매 시간 단타매매 (day trading)를 통해 주식시장을 전전하는 주식자본, 화폐자본의 세계와는 현격하게 다르다.


99년 8월 이후 내가 대우차를 바라본 관점은 우선은 이와 같은 산업자본의 관점에서였다. 따라서 지엠으로의 대우차 매각은 철저하게 반대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미 80년대에 있었던 '종속이론' 관련 논쟁에서 이루어진 자동차산업에 관한 실증연구들을 통해, 독자기술의 발전을 추구했던 현대차와는 달리, 대우차에서는 독자 기술능력의 발전이 지엠에 의해 좌절되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또한 나는 대우차 직원들과의 면담을 통해 92년 결별 이전에 지엠이 어떤 방식으로 모델의 독자개발을 가로막았었고 또한 품질개선을 위한 제품/공정 설계변경이 어떻게 가로막혔는지에 관하여 추가적인 발견을 할 수 있었다. 김우중의 세계경영 전략은 대우차가 현재의 최악의 사태로 빠져들게 된 기본 요인이다. 하지만 20년간 계속된 지엠의 식민지 경영적 사업 행태는 바로 대우차의 현 취약성을 근저에서 만들어 냈다. 그런 원죄를 지닌 지엠이 다시 개선장군처럼 대우차에 무혈입성한다는 것은 한국자본주의의 합리적 발전을 위해서도 저지해야 하는 일이었다. .



<해외매각도, 재벌경영도 아닌 대안은 ? >

김우중의 재벌경영은 이미 파산했다. 해외 자본도 않된다. 그렇다면 누가 대우차를 맡아야 하는가 ?
이 의문에 대해 당시 대우차의 한 직원은 하나의 대안을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표현하였다 "대우차 회생의 깃발을 들 주체는 지엠도, 삼성도 아니며 김우중의 후계자들도 아니다. 우리 자신이 깃발을 들어야 한다". 나 역시 이 의견을 지지하였다. 대우차의 직원들과 노동자들이 대우차의 지배와 경영의 주체로서 나서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대우가 가진 문제는 단지 '화폐' 즉 재무금융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대우차의 '인간' 즉 조직과 기업문화 역시 큰 위기 상태에 있었다. 김우중의 1인 황제식 경영은 대우차 내부에 치명적인 조직상의 충돌, 마찰, 책임회피, 무기력, 좌절, 분노 등을 낳았다.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마티스의 4차종 동시개발과 함께 기술능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성장하는 기술능력(생산력)은 김우중 회장이 만들어놓은 기존의 조직체제와 기업문화(생산관계)과 충돌하여 더 이상의 발전이 가로막히고 있었다. 대우차 역사에서 신세대라고 할 수 있는, 4차종 동시개발을 경험한 젊은 중간급 관리자와 연구개발자, 기술자들은 김우중의 절대황제적 권위를 뒤에 업은 불합리한 경영진의 행태에 대한 좌절과 분노로 회사 전체의 조직은 이미 워크아웃 이전에도 마비증상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200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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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록음악이 주류로 자리잡은 시기는 불과 50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으며 그 기간동안 록음악의 역사는 위대한 저항과 승리의 시간이자 동시에 패배와 굴종의 시간이기도 했다. 많은 음악평론가들이(특히 국내에서는 강헌 같은 음악평론가에 의해) 록(rock)이 마치 민중가요이자 저항가인 양 높이 추켜 세워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어쩌면 꿈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록음악이 반항적 메시지 전달자로서의 전성기는 사실상 60년대로 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후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 같은 인물은 일종의 오컬트(occult)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철저히 상업적이고 체제 내 반항적인 구두선(口頭禪)에 멈춰 있었다.

그러던 것이 국내에서는 80년대 학생운동의 전통을 이어받은 평론가들에 의해 록음악의 그런 정신이 최고의 미덕이자 시대에 반항하거나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음악은 반드시 록음악이어야 하고(이것은 사실과는 약간 다르지만), 록음악에서만 그런 반항 정신이 두드러져야 하는 것처럼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의 본질이지 형식이 아닌데 지금 서태지의 음악에 대한 이견들은 사실상 그런 맥락(형식주의에 치우친 것이고 과도한 애정에 의해 비뚤어져 있다.)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가령 서태지의 속성상 난 그것이 상업적인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서태지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서태지가 혜성처럼 등장하던 92년 무렵의 시기는 동구 현실사회주의권 몰락으로 많은 지식인들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시기였으며 이런 시기에 비록 미국의 랩(힙합)이라는 장르이긴 했으나(나름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서태지의 등장은 그들에게는 이 땅의 날라리들이 드디어 개과천선하는구나 하는 식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이른바 '자연발생적 사회주의자'인 셈이다. 불과 10년도 안된 시기의 일이니 그 시기를 기억할 수 있는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서태지의 팬들은 단순히 10대의 틴에이저 그룹만은 아니었다. 그에 대한 이론적이고 체계적인 지지는 오히려 이 땅의 소장파 지식인 그룹으로부터 강화된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70년대의 김지하와도 닮아 있다. 70년대 우리는 최초로 우리 민족문화란 것 그것도 왕실의 것이나 귀족적인 것이 아니라 소위 민중의 문화란 것에 자긍심을 느끼기 시작한 시기이다. 그것은 일제에 의해 가리워졌던 우리의 민중 문화에 대한 자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것인데, 동시에 이 시기는 급격한 도시화 확산과 함께 서구문물이 급증하던 시기로서 그에 대한 반동으로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던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김지하는 우리 민요적인 가락과 리듬(판소리적인 소리의 결과 메시지를 담은)을 이용한 일련의 시들을 발표하면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그러나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집어치우라"는 장문의 요설(饒舌)과 함께 그에 게 바쳐졌던 수많은 헌사(獻辭)의 제위에서 내려왔다. 서태지가 조선일보와 계속해서 인터뷰를 하고, 자신을 사회체제에 반항적인 가수로 보지 말아달라고 말한 것은 김지하의 경우와 비교하더라도 훨씬 더 온순한 것이다. 하긴 한 시대를 풍미한 지식인의 훼절 선언과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더라도 날라리의 그것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음, 그것이 우리나라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날라리는 그냥 날라리라는 식의)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서태지에 대한 평가는 분명 과도한 측면이 있으며 그런 거품을 거둬들이고 나서의 서태지는 그냥 노래 잘 하고, 유행을 잘 조합해서 곡을 만들어내는 가수일 뿐이다. 그에게 아직까지도 과도한 무게를 지워주고 싶어하는 일부 평론가들은 그만 정신차려 주길 바란다. 반항의 음악은 굳이 락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말이다.

<200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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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우리 사회의 '모랄 해저드(moral hazard) 혹은 도덕적 해이'라는 말은 이미 익숙해져 있다. 항상 드는 느낌은 법이 복잡한 나라일수록 그 사회에는 많은 범죄가 있다는 증거가 되며, 광고에서 100% 콩기름이란 말에는 그 콩이 수입콩이거나 유전자 조작콩일 것이라는 반증이라는 묘한 이야기가 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또한 사회에서 실시하는 공적인 성교육이 부족한 나라일수록 낙태율이나 청소년들의 성 실습(혹은 첫 경험?) 경험이 빨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행간을 읽어낼 것을 강제 받았다. 이것은 정보의 소통이 불확실할 뿐더러 수많은 오보와 아니면 의도된 왜곡 보도 속에 진실을 찾아 헤매야 하는 우리나라 언론 독자들의 고민거리이자 두통거리일 것이다.

위의 말과 마찬가지로 탈세니 고위 공직자의 기강 해이 문제를 가장 많이 언급하는 언론일 수록 내부적으로는 탈세나 모랄 해저드의 상황에 빠져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 되나? 우리 사회의 톨레랑스(관용)의 정신은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는 지경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이 스리슬쩍 <중앙일보> 회장 자리에 복귀했다는 것 때문이다. 홍석현 그가 누군인가?

그는 지난해(1999년) 검찰에 소환되는 그것도 언론 탄압이 아니라 탈세 혐의로 말이다.(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중에서 알 카포네가 무슨 죄목으로 알카트라즈 감옥에 수감되었는지 아시는 분 많으실 꺼다. 바로 탈세 혐의다.) 그때 중앙일보는 난리를 쳤더랬다. "사장님, 힘내세요." "흐,흐" 참말로 가관이었다. 내가 듣고 알기로는 언론사에서는 국장님이니 부장님이니 하는 호칭을 의도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기자면 다 같은 기자지 님자를 붙이기 시작하면 기자 고유의 반권력적 성향이 수그러들지도 모른다는 취지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기자들이 초등학교 학생들처럼 피켓을 들고 "사장님, 힘내세요."라니 이때 중앙일보에서는 오동명 기자(사진기자) 한 사람만 사람같은 목소리를 내고 자성하자는 발언을 하였고 결국 짤렸다.

다시 홍 아무개 씨에게 뽀인트를 맞춰보자. 그는 실형이 확정되었다. 탈세는 그들의 주장처럼 무고도 아니고 정치적 탄압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예전 같으면 구속은 무슨, 얼렁뚱땅 무마되고 말 일인데 구속까지 되었으니 그들로서는 정치적 탄압 운운할 만한 내부적 아픔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형을 선고받을 정도로 그 죄가 명백하고, 그로 인해 홍 사장은 죄값을 치르기 위해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몇 개월만에 8.15광복 특사로 풀려났다.(잘 하는 짓이다.) 그는 사면 복권이 목적이었겠지만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이 정말 반성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탈세에 대한 책임을 느껴 중앙일보 사장과 발행인 등의 직책을 사임했고, 상당기간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 또 그런 반성의 의미에서 2년 가량 외국에 나갈 계획이라는 등의 설을 유포시켰다. 그의 예감대로 특사에 사면복권까지 되자 그는 다시 중앙일보 회장직에 복귀해버렸다. 대마초 핀 연예인들이 자숙의 기간 어쩌구 하는 기간도 경우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 홍 아무개씨보다는 길다. 그는 10개월만에 다시 복귀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그를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감옥에 보낸 정부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박정희를 경제성장의 화신으로 자신을 민주,인권의 화신으로 착각하고 있는 DJ로서는 그럴만도 하다. 그래서 박정희기념관 건립 어쩌구 해서 국민화합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는 것이겠지만.... 김 대통령은 지난 9월 22일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중앙일보 창간 35주년 기념식에 비디오 테이프를 보내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중앙일보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큽니다. 뭐, 어쩌구 저쩌구" 그 자리에 홍 아무개 회장도 있었던 것은 당연했겠지. 중앙일보의 모든 사설은 이래서 거짓이다. 그 신문 사보는 독자들에게 엄숙히 충고하고 가르치고 고위 공직자들이,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어쩌주저쩌구 주절주절 하는 얘기들은 모두 자신들은 빼고 남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라는 것이다.

홍 회장은 물러나야 한다. 그것은 중앙일보가 제대로 된 언론으로서 해야 할 일이다. <200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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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는 어떻게든 살아가는 일이 인생에서 가장 큰 몫이란 생각을 종종 합니다.

리고 가끔 현재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실천 없는 반성을, 사유 없는 실천을 반성하고  또다시 실천 없는 일상을 되돌아 보며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곤 합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생활에 대해 의문을 가지곤 합니다. 어째서 나는 흙을 일구고 생명을 기르는 일을 택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아늑한 집을 짓는 일을 택하지 않았을까, 이른 새벽 아직 사람들이 거리에 나서기 전에 길을 닦고, 청소하는 일을 택하지 않았는지 반문해보곤 합니다. 어째서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책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택했는지, 종이를 만들기 위해 제 속살 다 내어 바치는 세상 나무들에게,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읽게 될 사람들에게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받아 챙기는 월급이 오로지 저 혼자 일 잘해서 받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세상에 책 한 권 펼쳐내는 일이 제 속살 내어 바치는 세상의 나무들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항상 되살펴 묻게 됩니다. 이를테면 제가 하루 세 끼 꼬박꼬박 챙겨먹는 밥값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학을 전공했고, 글쓰기와 책읽기, 책을 세상에 내놓는 일을 업으로 삼은 뒤로도 이런 일들을 직업으로 택한 데 대한 많은 회의를 품곤 했습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으며 자본주의의 음습한 기운이 전세계를 적시는, 희망이 사라진 세기를 살아가고, 비루한 일상 속에서 전망없는 발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속에서 문학이란, 글쓰기란,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일이란 얼마나 의미있는 일일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그러나 시인 함민복이 <긍정적인 밥>이란 시에서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라고 노래하는 것처럼 나의 글쓰기에 대한 마음은 이 시인에 비하면 아직 멀기만 합니다.

울 첼란(Paul Celan)이란 시인이 있습니다.

울 첼란은 소련과 루마니아 접경지역에서 태어나 일평생 독일어를 모국어로 시를 쓴  유태계 시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모국어의 나라인 독일은 파울 첼란을 죽음이 춤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냈습니다. 인간의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고, 사람들을 총살하는 동안 동료 유태인 악단은 흥겨운 춤곡을 연주해야 하는 속에서도 파울 첼란은 시를 썼습니다. 파울 첼란은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지만 극심한 우울증과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에 시달리다 결국 세느강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맙니다.  

런 자신의 문학을 파울 첼란은 '유리병편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가 받을 것인지, 과연 무사히 전달될 수 있을 것인지 글을 쓰는 이는 알지 못하지만 지금 쓰는 이 글이 험난한 파도와 암초 사이를 뚫고, 깊은 심연에 가라앉지 않고 누군가, 어딘가에는 닿으리란 희망을 품고 망망대해에 띄우는 편지 말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이렇듯 당신의 해변 언저리에 무사히 도착한 '유리병편지'를 집어드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Ghetto)에서 봉기를 일으켰던 유대인들은 전멸의 위기에 직면하자 생존자들이 마지막 힘을 모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 줄 시인 한 사람을 피신시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유태인들의 마지막 희망을 한 몸에 품은 시인 이작 카체넬존은 자신들의 일을 담은 시들을 깨알같이 베껴 여섯 부를 만들어 파묻어 놓은 후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끌려가 끝내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중 유리병에 넣어 파묻었던 한 부와 가방 손잡이에 꿰매 숨겨 놓았던 한 부가 기적적으로 구해져서 몇 년 전 출판되었습니다.

런 까닭에 저는 거창하게도 '문학이란 세상 모든 이들에게 절망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에게 희망을 걸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가끔 이렇게 말하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데 당신 한 사람이 저 거대한 체제에 반대한다고 해서, 변화와 변혁을 꿈꾼다고 해서, 혁명을 꿈꾼다고 해서 세상이 변할 수 있겠는가' 같은 패배주의적인 말들이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시대의 급류를 잘 타기 위해 애쓰다가 끝내는 좌초하여 혹은 말은 그렇게 냉소적으로 했음에도 역시 괴로워하며 불만 많은 소시민처럼 술잔을 기울입니다. 우리는 운명이나 필연, 숙명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신탁(神託)에 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상사가 매양 1+1은 2의 결과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과학에 대한 것이 아니라 따뜻한 피가 흐르고, 늘 왼쪽 가슴에서 심장이 뛰는 인간에 관한 것입니다. 변하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고, 인간을 움직이는, 인간을 움직이고자 하는 학문이 바로 인문사회과학이고 예술입니다.

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한때 그 자체가 혁명적인 행위였습니다.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싶다는 마음, 남의 생각에 귀기울이겠다는 마음가짐의 표출이기 때문입니다.
일 중요한 것은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 내가 옳은 일이라고 믿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리는 불행히도 당대에 어떤 성과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해서 고대 사회의 노예들이, 중세의 농노들이, 근대의 시민들이 변화와 혁명을 포기했다면 우리는 현재까지도 귀족이나 양반 계급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했을 겁니다. 우리가 지금 불가능하다고 믿어지는 일들을 꿈꾸기 시작했을 때, 그것들을 일상에서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을 때 바로 그곳, 그 지점으로부터 세상은 변화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신에게 지금 이렇게 띄우는 '유리병편지'가 고스란히 잘 전달될 수 있을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러나 누군가에게 어느 순간에는 제 마음이 닿을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고 이렇게 편지를 띄웁니다.
약하지만 이곳에서 작은 출발을 다짐할 수 있습니다.

신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이룰 수 있습니다.
게바라는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리가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꿈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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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