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A/문화망명지의 테마'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1.01.05 대문 - 2003.02.23. ~ 03.09. 다자이 오사무, 딜런 토마스
  2. 2011.01.05 대문 - 2003.11.26. (1)
  3. 2011.01.05 대문 - 2003.03.22. (1)
  4. 2011.01.05 대문 - 2001.08.03.
  5. 2011.01.05 대문 - 2000.08.07. 두 번째 대문
  6. 2010.11.13 대문 - 2000.08.01. 첫 대문


이 무렵부터 아카이브에서 다루는 인물들의 개별 타이틀을 만들기 시작했다.
"딜런 토마스"는 아주 초창기에 만들어진 것인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글도, 타이틀도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무척 사랑하는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을 찾아 그의 개인 타이틀을 만들다 느낀 것인데
카메라에 담긴 그의 표정은 거의 언제나 궁색해보인다.
이때의 궁색이란 그가 가난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는 작품이 아니라 실제의 얼굴 자체도 세상을 향해
어떤 표정을 내어보여야 할지 늘 고민하는 흔적이 보인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의 얼굴은 그가 가지고 있던
여러 카드 패 혹은 가면들 중 하나였을 것 같다.

다자이 오사무 - http://windshoes.new21.org/novel-dazai.htm
딜런 토마스 - http://windshoes.new21.org/poem-dyla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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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어느새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어쩌면 실제로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들 마음속에는 오래전부터 핵폭탄 하나쯤, 핵미사일 하나쯤 이미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화가 이현세가 겉으로는 반군국주의를 표방하며 발표했던 "남벌(南伐)"이 1994년, 이때 이미 우리들은 마음속으로 일본을 핵공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품 속에서 이현세는 일본에게 모두 12조의 항복문서를 받는다. 그 중 일부만 소개해보면 "<제8조> 독도와 그 반경 200해리를 완전한 한국영토로 인정한다. <제10조> 경도 130도에서 140도상, 위도 345도상의 바다를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표기할 것을 명문화하고 이를 전세계에 통보한다. <제11조> 방어적 개념 외의 자위대 군사기구를 대폭 축소하고 일 년에 한 번씩 한국 측의 공식 사찰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남북한이 합동으로 일본을 공격(공격의 내용 중에는 핵공격도 포함되어 있다)해 항복을 받아낸다는 만화의 내용은 심정적 좌우익을 막론하고 대중의 혐일 감정에 편승해 화제가 되었고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상처 입은 우리 민족에 대한 비틀림을 바로 잡고... 청소년들에게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고, 김태흥(독도수호 및 일본교과서 왜곡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추천사를 통해 "청소년들에게는 자부심과 희망을 주고, 다시금 침략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는 일본에게는 준엄한 경고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보다 조금 앞서 1993년엔 이휘소 박사의 이야기를 드릴러물로 변부한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3백만부가 팔려나갔다. 이 소설의 내용 역시, 박정희 대통령의 핵개발을 돕던 천재적인 재미 핵물리학자가 미첩보국의 음모로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국립묘지에 묻히지만 한 기자의 끈질긴 추적으로 10여 년만에 전모가 밝혀진다는 내용이다.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는 일본에 의해 한반도가 공격당하고, 그에 맞서 남북한이 일본에 핵공격을 가한다는 내용이 다뤄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내면 깊숙이 감춰진 곳에서 핵폭탄은 이미 개발완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북한의 민족주의가 대동단결하여 성취한 유일한 결과는 독재와 핵개발이다.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가장 소중한 이데올로기일까? 나는 그것이 이데올로기 시장에서 가장 값싸게 팔리는 박리다매 상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주의는 누가 팔아먹든 잘 팔린다. 마치 닌텐도 DS의 작동법과 게임 내용이 단순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처럼...

* 당시 대문 이미지에 사용된 그림은 파블로 피카소의 판화 작품이다. 국제앰네스티에서 사용하는 것을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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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BGM : John Lennon - Imagine


우리 말 "속절없다"에서 "속절"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사전에도 잘 나와있지 않다. 다만 "속절(俗節)"이란 말은 제삿날을 제외하고도 세시나 추석, 한식, 단오 같이 철마다 조상을 받드는 제사를 의미한다. 예나지금이나 조상님 받드는데 으뜸인 민족이지만 예전에는 한다하는 집안에서는 달달이 돌아오는 '속절'에도 제사를 모셨다. 조상님 받들고자 하는 마음이야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매일반이겠으나 끼니조차 거르는 형편에 속절까지 챙기기 어려웠으리라.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속절에 조상님 모시는 일을 단념하거나 차라리 속절이 없었다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속절없이", "속절없다"는 말은 그렇게 나온 말이리라...

미국이 오랫동안 이라크에 금수조처를 취한 결과 수많은 어린이들이 영양결핍과 예방접종 등 기본적인 공중보건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숨져갔다. 그렇게 오랫동안 미국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는 구실로, 이라크에서 대량살상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드디어는 이라크를 침공했다. 온세계가 이것을 불의의 침략이라고 규탄했으나 우리는, 우리 정부는 이것을 승인했고, 지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제와 서구 제국주의의 침탈로부터 독립한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미국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고, 친미국가로 줄을 서고자 했던 것처럼 9.11테러 이후 세계는 다시 한 번 미국 앞에 줄을 섰다.

친구가 아니면 모두가 적(敵)이라는 무자비한 겁박 앞에서 우리는 국제연합(UN)의 승인도, 국제관계의 상식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윤리도 팽개치고 미국의 친구가 되기 위해 앞장섰다. 그 앞에서 나는 속절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자라서 속절없이가 아니었다. '속절없이'란 말은 자신이 그것을 행할 수도, 막을 수도 없어 체념하고 단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설움이 담긴 말이다. 나는 이미 벌어진 침략전쟁 앞에서 속절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다만 나는 이라크침략에 반대한다는 내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이라크 어린이들의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찾았다.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나의 무기력과 국제사회의 무력함 앞에 다시 한 번 가슴이 메어지는 듯 했다. 드디어 이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는 순간... 아니, 사진 속의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분노와 슬픔으로 목이 메어 책상에 머리를 박고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나는 썼다.

"나는 전범이다."
"무엇으로도 속죄할 수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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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누가 만들어주었는지 기억이 정확치 않은데...

문화망명지가 처음 생긴지 1주년을 기념하여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기념 배너다.

당시만 하더라도 바람구두연방공화국이라 불렀던 모양?
아니면 그 친구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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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앞서 이야기했던 것과 거의 동일한 경로로 만든 대문이었다.

닉네임을 '바람구두'로 정한 것은 좋았는데 그에 합당한 이미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무척 고심했었다. 지금처럼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몰랐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비가 와도 우산을 들고다닌 기억이 거의 없다. 늘 비를 맞고 다녔다. 아마도 그런 기억이 나에게 "바람구두"의 이미지로 장화를 택하게 만든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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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처음 인터넷에 홈페이지란 것을 만들 생각을 했을 무렵의 나는 HTML은 커녕, GIF, JPG란 용어는 몰랐다. 내가 아는 건 오로지 HWP파일뿐이었다. 무턱대고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네이버에서 계정을 받았고, 당시 홈페이지는 네이버에서(현재 블로그가 그런 것처럼) 여러 이미지들 가운데 선택하여 메인 이미지로 만들 수가 있었는데, 이 그림이 내가 맨처음 올렸던 그림이다.

당시엔 이 그림 속의 소년이 어린 시절의 나와 가장 닮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지금 다시 보면 정말 어렸을 적의 나와 일부는 닮았을 수도 있었단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난 저렇게 웃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쨌거나 문화망명지의 첫 타이틀 롤을 맡았던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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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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