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SY/한국시'에 해당되는 글 244건

  1. 2010.09.09 기형도 - 그 집 앞
  2. 2010.09.09 이성복 - 그 여름의 끝
  3. 2010.09.09 김혜순 - 참 오래된 호텔
  4. 2010.09.04 박재삼 - 가난의 골목에서는


그 집 앞

- 기형도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너무도 가까운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사내들은 있는 힘 다해 취했네
나의 눈빛 지푸라기처럼 쏟아졌네
어떤 고함 소리도 내 마음 치지 못했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모든 추억은 쉴 곳을 잃었네
나 그 술집에서 흐느꼈네
그날 마구 취한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
사내들은 남은 힘 붙들고 비틀거렸네
나 못 생긴 입술 가졌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이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네
그토록 좁은 곳에서 나 내 사랑 잃었네


*

 '기형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80년대의 청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상처를 입었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참여한 까닭에, 그렇지 못하고 그 주변을 배회한 사람은 배회한 까닭에, 그들을 무시한 사람들은 무시한 까닭에, 억압하려 들었던 사람들 역시 어김없이 억압하려 한 까닭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런데 기형도가 죽었다는 소식에는 모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실 기형도의 등장과 퇴장은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가 처음 문단 데뷔를 하고, 첫시집을 내고 그리고 종로3가의 허름한 극장에서 죽었을 때, 우리들은 몇 가지 풍문을 들었다. 하나는 그 극장이 동성애자들이 자주 들락거리던 곳이란 것과 그가 어째서 심야의 그 극장에서 고개를 뒤로 꺽고 숨져야 했는가?하는 사실이 기묘한 씨줄날줄이 되어 풍문을 증폭시켰고, 그의 연애에 얽힌 이야기들이 또한 그의 전설에 먼지를 더했다. 소설가 강**씨와의 연애설 같은 것들이 그러한 것이었다.

기형도의 시는 80년대의 많은 상처입은 청춘들에게 알수없는 위안을 주었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풋풋한 자기성찰들로 가득했고, 따뜻했고, 외로와서 상처입었고, 그리고 사랑해주면 안될 것 같은 모성 본능을 자극했다.

그의 친우이자 문학적 동료였던 원재길은 기형도가 스스로의 스승을 보들레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를 "서울의 우울"을 노래한 한국의 보들레르라고 상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나는 이것은 칭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의 시가 우울하긴 했지만 그것이 단순히 서울의 우울을 노래한 것도 아니요. 보들레르의 그것과는 완연히 다른 우울이었기 때문이다.

기형도의 우울은 시대의 우울이자, 상처받은 양심과 청춘의 우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형도의 시는 윤동주의 시와 닮아 있다. 오히려 기형도에게는 그런 점에서 '80년대의 윤동주'로 비견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술자리에서는 분위기를 맞춰줄 줄 알고, 노래도 기똥차게 잘했고, 공부도 잘했고, 작곡까지 할 정도의 이 재기 넘치는 젊은 시인은 하지만 대학에서조차 교련을 배워야 했던 시대의 자식이었다.

그는 그런 시대의 우울을 몸소 견뎌야 했던 시인이다. 백혈병 초기 증세를 앓았고, 한 쪽 귀는 거의 청력을 잃을 지경이었고, 고혈압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는 기자였다. 그의 온몸은 시대의 우울을 감지하는 촉수였고, 레이더였고, 그런 우울은 그의 정신과 육신을 상하게 했다. 이 시 <그 집 앞>을 읽으면 어쩐지 윤동주의 자화상이란 시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집 앞'에서 한참동안 서성이던 내 젊은 날의 사랑이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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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 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

우리 문학사에서 1980년대는 단연코 '시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사실 그 이면에는 이해하지 못할 몇 가지 사건들이 있는데 한 가지는 1960년의 초반 최인훈의 <광장>을 필두로 황석영의 <객지>, 윤흥길의 <장마>, 전상국, 이청준, 박완서 등등 많은 작가들이 소설 문학의 부흥이랄까 - 특히 <광장>은 남한의 작가적 시선이 드디어 고루한 민족주의 경계를 넘어 세계사적 인식의 범위까지 가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고, <객지>는 계급이라는 틀에 대해서 작가들의 발언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 하는 것들을 이끌었음에도 80년대에는 어째서 그런 소설 문학이 일제히(이것은 사실 약간의 과장이다.) 침묵했는가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제 조금씩 정리되고 있는 몇가지 설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80년 벽두에 벌어진 <광주 5.18>이 그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 엄청난 사건 앞에서 작가들이 끝없는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좀더 나아간 견해는 시문학이 이 엄청난 상황에서 좀더 발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르적 기민성이 있는 반면에 소설은 이런 상황을 분석하고 내면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1990년대 접어들면서 급격한 동구의 몰락 등으로 이데올로기적 혼선을 빚어, 이에 대해 말할 시기를 놓쳐버렸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물론 1980년대의 작가들이 시대적 의무를 방기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우리 공화국 건국 이래 가장 많은 작가들을 감옥에 보낸 시기가 그 무렵이 아니었던가 싶기 때문이다.(물론 이 자리에서 그것을 분석하자는 것은 아니므로 이쯤해두기로 하고.) 어쨌든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우리 문학의 전단계가 1980년 광주라는 숙제를 아직까지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지금 현재 21세기에 이르기 까지 비록 먼길(사소설 양식의 범람이나 엽기, 재기발랄 풍의 소설)을 돌아오고 있기는 하지만 언젠가 이 숙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의무를 다했다고 말하기 어려우리란 판단에서이다.

독일의 나치 정부는 하이네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로렐라이>라는 곡을 민요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하이네라는 민중 시인을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을지 모른다. 우리는 하이네를 단순히 서정시인으로 알고 있지만 하이네는 단순히 서정시만을 쓰지는 않았다. 반대로 김남주 시인이 민중시만 쓰지는 않앗던 것처럼…

그 '시의 시대'를 빛낸 대표적 시인 중 하나가 바로 이성복이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이 <그 여름의 끝>은 1990년 발간된 세번째 시집 <그 여름의 끝>에 수록되어 있는 시입니다. 어쩌면 여기에서 시인이 말하는 그 여름은 1980년대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1980년대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연이어 불어오는 '폭풍에도 백일홍 나무'는 꺽이지 않는 무언가였다. 그것은 그의 '절망'이었다. 그것은 과연 절망이기만 했을까. 그의 절망은 물론 시대의 잔혹함을 바라보아야 하는 시인의 가녀린 감수성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백일홍 나무는 꺽이지 않았고, 붉은 꽃들을 매달았다. 그는 절망을 통해 어쩌면 희망을 간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어려움 속에서 붉은 꽃을 매단다는 것이 시인의 눈에는 장난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장난은 오히려 반어이자 역설이 된다. 그 연이어지는 폭풍 속에서 꽃을 맺는다는 것이 어찌 장난처럼 손 쉬운 일이었을까?

이 시가 성취하고 있는 고도의 상징성은 두 차례 반복되는 '장난처럼'이라는 비유에서 획득되는 것이다. 그 붉은 꽃은 장난처럼 피었다가 장난처럼 저버리고 만다.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시인이 백일홍 나무에서 붉은 꽃이 피는 것을 거부했을까? 이 시의 외면에는 마치 시인이 백일홍 나무에서 붉은 꽃이 피는 것을 거부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시인이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은 라고 말하는 순간 장난처럼 그의 절망에, 그가 걸었던 희망이 꺽임을 마치 선사의 '할'과 같이 맥이 탁 풀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김수영 시인의 "혁명은 안되고 방만 바꾸어 버렸다"는 그 명제가 떠오른다. 저는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을 읽으며 어쩐지 4.19가 5.16으로 좌절되던 그 순간의 울분을 삼키지 못한 김수영 시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성복 시인은 1982년 <제2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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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된 호텔

- 김혜순

참 오래된 호텔. 밤이 되면 고양이처럼 강가에 웅크린 호텔. 그런 호텔이 있다. 가슴속엔 1992, 1993......번호가 매겨진 방들이 있고, 내가 투숙한 방 옆에는 사랑하는 그대도 잠들어 있다고 전해지는 그런 호텔. 내 가슴속에 호텔이 있고, 또 호텔 속에 내가 있다. 내 가슴속 호텔 속에 푸른 담요가 덮인 침대가 있고, 또 그 침대 속에 내가 누워 있고, 또 드러누운 내 가슴속에 그 호텔이 있다. 내 가슴속 호텔 밖으로 푸른 강이 구겨진 양모의 주름처럼 흐르고, 관광객을 가득 실은 배가 내 머리까지 차올랐다 내려갔다 하고. 술 마시고 머리 아픈 내가 또 그 강을 바라보기도 하고. 손잡이를 내 쪽으로 세게 당겨야 열리는 창문 앞에 나는 서 있기도 한다. 호텔이 숨을 쉬고, 맥박이 뛰고, 복도론 붉은 카펫 위를 소리나지 않는 청소기가 지나고, 흰 모자를 쓴 여자가 모자를 털며 허리를 펴기도 한다. 내 가슴속 호텔의 각 방의 열쇠는 프런트에 맡겨져 있고, 나는 주머니에 한 뭉치 보이지 않는 열쇠를 갖고 있지만, 내 마음대로 가슴속 그 호텔의 방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없다. 아, 밤에는 그 호텔 방들에 불이 켜지든가? 불이 켜지면 나는 담요를 들치고, 내 가슴속 호텔 방문들을 열어제치고 싶다. 열망으로 내 배꼽이 환해진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방문이 열리지 않을 땐 힘센 사람을 부르고 싶다. 비 맞은 고양이처럼 뛰어가기도 하는 호텔. 나를 번쩍 들어올려, 창밖으로 내던지기도 하는 그런 호텔. 그 호텔 복도 끝 괘종시계 뒤에는 내 잠을 훔쳐간 미친 내가 또 숨어 있다는데. 그 호텔. 불 끈 밤이 되면, 무덤에서 갓 출토된 왕관처럼 여기가 어디야 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자다가 일어나서 보면 내가 봐도 낯선 호텔. 내 몸 속의 모든 창문을 열면 박공 지붕 아래, 지붕을 매단 원고지에서처럼 칸칸마다 그대가 얼굴을 내미는 호텔. 아침이 되면 강물 속으로 밤고양이처럼 달아나 강물 위로 다시 창문을 매다는 그런 호텔.


*

이 시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추억에 잠긴다. 시 때문에 생긴 추억이 아니라 시인 때문에 생긴 추억들이 내게는 너무도 많다. 아름답고, 고상하고, 멋있는 그래서 그녀의 손아귀에 잡힌 채 마녀의 도가니에 들어가는 약재가 되어도 좋다는 미망에 사로잡혔던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있었는가?


이 시는 굉장히 많은 이미지들로 꾸며져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몇 개의 이미지들이 계속되는 변주를 통해 '참 오래된 호텔'이라는 단일한 이미지들을 꾸며내고 있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나는 이 '참 오래된 호텔'이라는 시가 인간의 영혼이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육신을 노래한 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 육신은 다만 '고기'로서의 육신이 아니라 밥 먹고, 섹스하고, 잠자고, 그리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기뻐하는 영혼이 담긴 육신이다.


내가 살아낸 육신은 1992년과 1993년 사이에서 시인을 아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맛보았다. 그녀가 머물고 있는 호텔방 인근 방에는 시인의 사랑이 머물기도 하고, 자신의 육신은 영혼을 담기도 하고, 영혼이 육신에 머물기도 한다. 그래서 그녀의 삶은 피곤하다. 이 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런 것이다.


시라는 것은 언어를 매개로 하는 것인 만큼 읽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정의 같은 것은 필요 없지 않은가? 이 시는 독자로 하여금 시에 푹 빠져들게 하지 않는다. 시인과 독자는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 거리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손을 뻗치면 그 '양모같은 주름이 잡힌 강물'에 손가락을 담글 수 있는 정도의 거리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에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있다. 지금 당신은…


이 시는 그렇게 당신에게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읽으며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해되고 저절로 보여지는 시. 그게 바로 마녀. 김혜순의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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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골목에서는

- 박재삼


골목골목이 바다를 향해 머리칼 같은 달빛을 빗어내고 있었다. 아니, 달이 바로 얼기빗이었었다. 흥부의 사립문을 통하여서 골목을 빠져서 꿈꾸는 숨결들이 바다로 간다. 그 정도로 알거라.
사람이 죽으면 물이 되고 안개가 되고 비가 되고 바다에나 가는 것이 아닌 것가. 우리의 골목 속의 사는 일 중에는 눈물 흘리는 일이 그야말로 많고도 옳은 일쯤 되리라. 그 눈물 흘리는 일을 저승같이 잊어버린 한밤중, 참말로 참말로 우리의 가난한 숨소리는 달이 하는 빗질에 빗어져, 눈물 고인 한 바다의 반짝임이다.

*

박재삼 시인의 <가난의 골목에서는>이라는 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재삼 시인의 서정성을 좋아합니다. 그분의 시를 읽는 것은 '그럴 연(然)자'를 읽는 기분이 듭니다. 이 시에서는 특히 "그 눈물 흘리는 일을 저승같이 잊어버린 한밤중....눈물 고인 한 바다의 반짝임이다"라는 마지막 부분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저승같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데 박재삼 선생은 과연 어떤 기분으로 저런 싯구를 옮길 수 있었을까요? 가난의 골목에서 사는 일과 삶은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야 만 얻어질 수 있는 그런 것임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눈에는 '가난한 숨소리'가 골목에서는 달이 빗는 빗질에 바다의 반짝임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박재삼 시인의 서정성이 빛나는 대목은 거짓의 꾸며진 서정이 아니라 항상 우리 삶 주변에서 몸소 체득한 서정이기 때문에 그 빛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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