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명품이다 - 조미애 (지은이) | 홍시(2009년)



"이것이 명품이다"란 책이 어쩌다 보니 집구석에 굴러 다녔다. 아마도 아내가 어디서 구해왔을 것이다. 뒹굴거리다 손에 잡힌 이 책을 나는 나름대로 참 재미있게 보았다. 우선 코코 샤넬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트렌치코트의 대명사 버버리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사실 이 책에 실린 내용 가운데 상당수는 시공사에서 나온 "남자의 옷 이야기1.2"를 통해 이미 아는 내용도 있었지만, 명품을 중심으로 꾸려나간 책 이야기는 윤광준 선생이 쓴 책 등이 있긴 하지만 읽어보긴 처음이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브랜드들을 살펴보니 샤넬이나 아르마니, 크리스찬 디올, 휴고 보스, 버버리, 루이 비통 처럼 낯익은 브랜드들도 있고, 에르메네질도 제냐, 에르메스, 세린느, 아 테스토니 처럼 낯선 브랜드들도 있었다. 잘 아는 브랜드라고 해서 내가 이들 제품을 하나라도 써본 적이 있다는 건 아니다. 물론 잘 뒤져보면 어딘가에서 한 두 개쯤은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


책제목이 "이것이 명품이다"라고 해서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명품을 총망라하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패션 전분야를 아우르고 있지도 않다. 대신에 이 책은 저자가 선정한 패션 디자인 분야의 주목해봄직한 브래드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읽는 이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이 책은 명품을 옷장 안에 가득 채워둔 이들보다는 명품을 실제로 소장할 수 없는 세대와 연배를 위한 입문서, 대리만족을 위해 쓰여진 것 같다. 아니면 이제 막 패션 디자인쪽 공부를 시작하고 싶은 이들에게 세계적 디자이너들에 대한 입문서의 용도로 읽을 수 있다. 자신을 잘 가꾸고자 하는 욕망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이며, 구태여 이들에 대해 금욕적인 자세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상식을 좀더 넓힌다고 생각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며 읽기엔 혹평을 들을 이유가 별로 없는 책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중반을 대표하는 여성 디자이너 코코 샤넬에 대한 저자의 글은 아주 읽을 만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코코 샤넬에 대한 일반론을 전개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 뒤에 다루고 있는 디자이너들에 대한 내용도 특별한 폄하나 상찬없이 지극히 일반적인 이야기를 평이하게 전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기사 명품에 대한 책을 내려는데 그만한 거리조절도 못한다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디자이너들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그보다는 디자이너에서 다음 디자이너로 넘어가는 대목 중간 부분에 다루고 있는 복식사의 자잘한 숨은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욱 재미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스트라이프" 무늬는 오늘날엔 남성의 복식에서 가장 흔한 문양이자 기본적인 문양으로 취급받지만 과거에 이런 스트라이프 무늬는 악마의 천으로 비하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중세 시대 스트라이프 무늬의 원조가 광대, 나병환자, 사형집행인, 매춘부 등 소외계층이었기 때문이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갱스터들이나 지골로들이 즐겨 입으며 이들의 유니폼화되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갱스터 무비의 갱들이 스트라이프 무늬를 즐겨입긴 했다.


명품에 대한 책을 읽었다고 해서 대뜸 우리 사회의 소비 양태나 명품에 대한 태도를 두고 설교를 늘어놓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마음을 감추고서 다른 이가 누리는 명품 소비를 비난하는 자세가 과연 허위의식은 아닌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건 명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성에 일조하는 것에 불과할테니 말이다. 사실 명품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생각은 "아라한 장풍대작전"에 등장하는 생활도인의 개념과 어느 면에선 흡사하다. 류승완 감독은 신도시무협이란 새로운 장르를 한국에서 처음 시도해보고 있는데, 이 영화의 코믹한 요소 중 한 부분은 바로 "생활도인"이란 컨셉이다.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오랜 시간을 일을 하고, 공을 들이다보면 공력이 늘어나고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는 능력이 생겨나는데 이들이 바로 생활도인이며, 도(道)란 이렇듯 우리네 일상에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어쩌면 윤광준 선생이 이야기하는 "생활명품"이란 개념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펜을 예로 들어 "모나미153 볼펜"은 명품인가? 아닌가? 만약 이것을 대량생산된 그저 공산품 중 하나라고 본다면 대량생산, 대량소비든, 소품종 소량생산이든 오늘날의 관점에서 진정한 명품은 무엇인가?를 되물어봐야 한다. "기계복제 시대"의 예술품에 대한 질문 말이다. 모나미153볼펜은 1963년 생산이래 지금까지도 계속 생산되고 판매되는 인기제품이다. 이 볼펜은 국내에서 생산하는 모든 공산품 중에서 최장기 베스트셀러에 속한다. 명품인가? 이것이 명품인가?


이에 대한 답을 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는 자본과 노동이 따로 떼어져 살 수 있는 사회인가를 묻고 싶다. 우리 사회는 자본과 노동의 적절한 동거 방식을 아직까지 창출해내지 못했으며, 이런 방식을 실험해 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자본의 일방적 독주 체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 노동은 천시되고, 자본은 각광받는다. 이렇듯 불합리한 동거 체제 속에서 노동은 끊임없이 사회 불안을 야기할 것이고, 자본은 위험상황에 노출될 것이다. 에드워드 팔머 톰슨은 명저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노동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피동적 계급이 아니라 스스로 사상과 문화를 창조한 주체적 계급"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반론, 비판의 여지는 있겠으나 그가 영국이란 특수한 구조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노동계급의 역사를 피동적인, 사회구조에 따른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닌 주체적 계급이라 주장한 것은 의미심장한 해석이다. 종종 영국 영화에서 블루컬러(노동계급)들이 지닌 놀라운 자부심에 경탄할 때가 있었고, 전통적인 노동계급 출신 아버지가 보수화된 정치인 자식을 일갈했다는 뉴스를 볼 때 그들의 자부심이 부러웠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노동계급의 체념이나 포기로 읽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자세를 스스로 깨닫고 낙향하여 자연을 벗삼아 살았던 어떤 이들(스콧 니어링 같은)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한다. 우리 역시 지난 80년대 많은 이들이 출세라는 궤도에서 스스로 일탈해 노동자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나? 그런 이들의 선택을 희생이라고 말하는 건 지나치게 도도하고, 거만한 태도가 아닐까? 노동으로 사는 삶이 멸시되고, 천시받아야 한다면, 우리 사회는 병든 것이다. 노동자가 좀더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을 품는 것은 당연지사겠지만, 노동자로 사는 일을 부끄럽게 여겨야 할 필요 또한 없지 않은가? 만약 우리 사회의 노동이 그런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당당한 주체계급의 인식과 그에 합당한 실제 역할이 이뤄지고, 대접받는 사회라면 명품은 좀더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성이란 명품에 대한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이 증명하듯, 종종 욕망의 일원화로 귀결되는 파탄의 상황을 의미한다. 모두가 부자만을 꿈꾸는 사회에서 부자가 되기 위한 욕망의 고속도로만을 지향할 때, 고속도로의 정체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모두가 명품을 지향하는데, 명품을 얻지 못할 때 소위 짝퉁이 등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욕망의 다원화는 그 욕망이 지탄받지 않고,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뤄진다. (노동자로서의 삶이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때, 나 같은 사람에겐 그런 순간의 자본주의가 가장 무섭긴 하다.) 루이 비통이 명품일 수 있는 이유가 모나미 153볼펜에도 똑같이 해당되지만, 어느 것은 명품이고, 다른 하나는 명품이 아닌 차이 또한 거기에 있는 건 아닐까?


 

쓰다보니 흥분하는 버릇은 올해 들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내가 이 책을 왜 읽게 되었더라. "신강균의 사실은"이란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이젠 "있었다"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미디어 비평'이란 성격상 다소 딱딱해지기 쉬운 프로그램이었지만 생각외로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으며 방영되던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기자가 구찌 핸드백이란 명품 선물을 받는 스캔들에 휩싸이며 프로그램 자체의 존폐를 불러왔다. 우리 언론의 여건상 시도하기 힘들고, 성공하기 힘든 것이 보도탐사 분야다. 실제 언론선진국들에서도 가장 힘들어 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매스미디어의 특성상 대량으로 쏟아지는 뉴스 거리들 속에서,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보도 탐사 분야는 들어가는 공에 비해 주목받기는 참 어려운 분야다. 다른 뉴스 프로그램들이 뉴스를 받아서 전하는 것이라면 보도 탐사 분야는 자신들이 뉴스를 만들어내는 분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선 사람들은 다른 기자들에 비해 더 많은 전문성과 도덕성, 청렴성을 요구받기도 한다.


이 두 사람이 받았다는 소위 명품 "구찌" 핸드백은 얼마나 하는 걸까? 이들말고, 다른 기자들. 서울 시장의 외국 순방에 혜택을 받으며 따라갔다던 시청 출입 기자들의 외유 비용에 비해 더 비싼 핸드백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신강균, 이상호 씨의 경우 나는 이들이 처신을 크게 잘못했다기 보다는 이들에게 요구되었던 엄격한 잣대가 다른 이들의 잘못보다 더 많은 처벌을 요구한다는 생각에서 안 되었단 마음이 들었다. 부디 이번 일이 이들 자신에게도 우리들 모두에게도 새로운 마음의 각오를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이런 이들이 한 번의 실수로 영영 우리 곁을 떠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 이 책은 2002년에 '시지락'이란 출판사에서 나왔던 책의 개정판으로 내가 읽은 것은 구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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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교실 : 코오롱등산학교 이용대 교장의 배낭 꾸리기부터 해외 트레킹까지 - 이용대  | 해냄(2006)


신춘의 계절이다. 겨우내 좁은 방 안에서 오락가락하던 사람들도 봄이 오면 신발장에서 먼지 묻은 등산화를 꺼내보고, 옷장에서 배낭을 끄집어내 만지작거리게 된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니 철쭉이 만개한 강화 고려산 언저리라도 다녀올 일이다. 이용대의 『등산교실』은 이제 막 산(山)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은 물론 이미 수십 년씩 산에 다닌 사람들도 모두 흡족하게 읽어볼만한 등산의 귀중한 노하우와 ABC를 두루 갖추고 있는 책이다.


한 조사기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주 5일 근무의 확산과 더불어 매주 산을 찾는 사람들이 200만을 헤아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산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데 반해 정작 산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곳이나 산을 오르는 등산을 가르치는 곳은 많지 않다. 아마도 그 까닭은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70%가 산이라 누구라도 태어나면서부터 산을 가까이하며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삼면이 모두 바다라고 해서 누구나 수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등산을 올바르게 배우지 못한다면 건강을 위해 시작한 산행(山行)이 도리어 건강을 해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등산교실』을 펴낸 이용대는 한국 산악계를 대표하는 알파인 칼럼니스트이자 오랫동안 등반교육현장을 지켜온 교육자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개별산악회를 통해 등반기술 중심으로 펼쳐지던 등반문화가 1985년 코오롱등산학교의 개교와 더불어 등반윤리를 수반한 자연보호의 차원으로 승화된 것도 개교 이래 계속해서 교장을 역임한 이용대의 공로가 크다. 이 책은 그가 월간 <산>에 지난 10년 동안 최장기 연재 기록을 세운 <이용대의 산행 상담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칼럼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산행 초보자들이 궁금해 하는 등산의 기초지식부터 등산 장비 다루는 법, 산행 중 만나게 되는 여러 상황에 대한 대처 방안 등 경험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등반기술과 원리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내용들을 20여 년에 이르는 등산 교육 현장에서 얻은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개하고 있다. 무미건조한 설명식 나열이 아니라 묻고 답하기의 형태를 띄고 있어 독자의 흥미를 북돋우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가장 첫 페이지는 “배낭을 잘 꾸리는 법은?”이란 제목으로 “배낭을 꾸릴 때 내용물을 어떤 순서로 넣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충 챙겨보니 배낭이 한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등판이 울퉁불퉁해져 다시 짐을 풀어야 했어요. 침낭, 쿡세트, 식량, 옷 등을 어떤 순서로 넣어야 하나요? 또 배낭 무게는 얼마나 되는 것이 적당할까요?”라고 물으면 그에 대해 답하는 방식이다. 한두 마디에 그치는 간단한 질문에도 하나당 3쪽 내외의 페이지를 할애해 설명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될 때는 그림을 이용해 설명하는 형식이다.

 

이외에도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부딪칠 수 있는 여러 소소한 과정과 문제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제 막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등산복을 구입할 때 다양한 디자인과 고어텍스, 윈드스토퍼, 콘듀잇, 쿨맥스 등 다양한 원단과 원단의 특색을 알 수 없어 중복투자를 하게 되거나 구입해 놓고 막상 입을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책에는 그와 같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질문과 선택 요령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등산교실』의 부제가 잘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배낭 꾸리기부터 해외 트레킹까지” 기초입문 과정부터 준전문가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다루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정상등정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등산문화의 아픈 곳을 꼬집는 대목이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동안 실수로 범하기 쉬운 자연 훼손 등도 상세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저 등반기술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상식으로 보는 등산의 세계>, <역사로 보는 등산의 세계> 등 쉬어가는 꼭지들을 활용해 알피니즘의 역사, 백두대간, 7대륙 최고봉, 등산의 정신과 형식 등에 대해서도 두루 설명하고 있다. 만약 이 책을 통해 가까운 근교의 산으로 가벼운 산행을 떠나고 싶다면 다음의 책을 참고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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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00대 브랜드 사전 
(Die 500 bekanntesten Marken der Welt, 2004)
- 토리 차르토프스키 | 박희라 옮김 | 더난출판사(2006)



혜화동 대학로로 나와요 장미빛 인생 알아요 왜 학림다방 쪽 몰라요 그럼 어디 알아요 파랑새 극장 거기 말고 바탕골소극장 거기는 길바닥에서 기다려야 하니까 들어가서 기다릴 수 있는 곳 아 바로 그 앞 알파포스타칼라나 그 옆 버드하우스 몰라 그럼 대체 어딜 아는 거요 거 간판좀 보고 다니쇼 할 수 없지 그렇다면 오감도 위 옥스퍼드와 슈만과 클라라 사이 골목에 있는 소금창고 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라는 카페 생긴 골목 그러니까 소리창고 쪽으로 샹베르샤유 스카이파크 밑 파리 크라상과 호프 시티 건너편요 또 모른다고 어떻게 다 몰라요 반체제인산가 그럼 지난번 만났던 성대 앞 포트폴리오 어디요 비어 시티 거긴 또 어떻게 알아 좋아요 그럼 비어 시티 OK 비어시티... 


함민복, 자본주의의 약속, <전문> 

함민복의 시 <자본주의의 약속>은 자본주의 시대의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서민들의 삶 속에 자본주의란 체제가 얼마나 깊숙이 침윤해 들어와 있는지 각종 상호와 브랜드(Brand)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잘 보여주고 있다. '브랜드 파워'니, '국가 브랜드'니 해서 요즘 어딜 가든 '브랜드'란 말을 듣는다. 위키백과에는 "브랜드(Brand)는 어떤 경제적인 생산자를 구별하는 지각된 이미지와 경험의 집합이며 보다 좁게는 어떤 상품이나 회사를 나타내는 상표, 표지이다. 숫자, 글자, 글자체, 간략화된 이미지인 로고, 색상, 구호를 포함한다. 브랜드는 특히 기업의 무형자산으로 소비자와 시장에서 그 기업을 나타내는 가치를 나태낸다. 마케팅, 광고, 홍보, 제품 디자인 등에 직접 사용되며, 문화나 경제에 있어 현대의 산업소비 사회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라고 정의하고 있다.  

영화 <기사 윌리엄>에서는 평민 출신인 윌리엄이 기사들만 출전할 수 있는 마상 창시합에 참가하기 위해 가짜 귀족 행세를 하다가 들통이 나가 영국 왕의 특별한 혜택으로 결국 귀족 작위를 받는다는 해피 엔딩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취업을 위한 필수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른바 '스펙(spec)'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인데, 윌리엄 역시 마상창시합에 출전하기 위한 기초 스펙을 채우기 위해 반드시 '귀족'이란 스펙을 채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기사 윌리엄>은 14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작품이라기 보다는 한 편의 경쾌한 팩션을 읽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영화였다. 여성이지만 갑옷 장인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케이트(로라 프레이저)'가 윌리엄을 위해 만들어준 갑옷에 '나이키'를 연상시키는 로고를 각인하는 장면 등이 특히 그렇다. 

그렇다면 '상표(브랜드)'는 언제부터 생겼을까? 어떤 이들은 자신의 소유물인 가축에 낙인을 찍는 것이 브랜드의 시초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가축의 낙인은 생산품(products)이란 의미가 아니라 소유물(property)의 개념이므로 브랜드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다시 말해 브랜드란 소유물이 아닌 생산품의 표징이다. 1266년 영국에서 상표권과 관련한 최초의 법률이 정해졌는데, 상표가 보호해야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들어와서의 일이다.  

오늘날까지 청바지의 대명사인 '리바이스(Levis)'는 오랫동안 경쟁업체들이 자사 제품을 모방하는 통에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청바지(blue jeans)'는 미국의 황금광 시대, 광부들의 모직 바지가 쉽게 닮는 것에 착안한 '레비 스트라우스'가 돛과 포장마차 텐트 천으로 만든 바지가 청바지의 원조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청바지는 처음 만들어졌던 청바지의 천이 아니라 '데님'이란 천을 이용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입고 있는 청바지는 광부들이 입던 바지에 비해 부드럽고 잘 닳는다.  


어쨌거나 리바이스는 경쟁업체들의 모방을 따돌리기 위해 천을 데님으로 바꾸고, 인디고 염료를 이용하는 등 여러 궁리와 시도를 했지만 경쟁업체들은 리바이스를 따라했다. 결국 리바이스는 바지의 주머니에 구리 리벳을 박아 주머니를 고정시키는 기술에 특허를 냈고, 경쟁업체들은 더이상 리바이스의 기술을 흉내낼 수 없었다. 그러나 특허에는 시효가 있다. 리바이스의 구리 리벳 특허는 20세기가 되기 전에 이미 끝났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떤 청바지 회사도 생산량이나 매출실적에서 리바이스를 능가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특허에는 시효가 있지만 상표권에는 시효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브랜드(상표)가 지닌 진정한 힘은 시효 만료 없이 스스로가 만들어낸 브랜드의 가치, 파워에 따라 자본의 수익을 가능하게 만든다는데 있다. 토리 챠르토프스키가 지은
"세계500대 브랜드 사전"은 사실 매우 간단한 발상에서 출발한 책이다. 영문 알파벳에 따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500대 브랜드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말 그대로 브랜드 사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전'이란 필요한 사람의 실용성이란 측면에선 모든 책 가운데 으뜸이지만, 필요 없는 독자에게 이보다 지루한 책은 세상에 또 없는 법이다. 또 모름지기 사전이란 수록된 색인의 개수에 의해 좌우되는 법인데 세계에 브랜드가 어디 500개밖에 없겠는가? 그런 차원에서 생각하자면 이 책은 사전으로 읽기엔 색인이 너무 적고, 재미로 읽기엔 사전이라서 딱딱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세계 500대 브랜드 사전""현대인이 꼭 알아야 할 브랜드 이야기"란 부제에게 걸맞게 엄선된 500대 브랜드로 충실하게 채워져 있기 때문에 비록 이 책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몇몇 브랜드들로서는 아쉽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수록된 브랜드들 중 어느 하나를 빼고 이 브랜드는 반드시 들어가줘야 한다고 자신있게 말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충실도를 보인다. 그렇다면 사전이 지닌 서술의 딱딱함이 문제가 되어야 하는데, 저자의 높은 공력 덕분인지 책을 모두 읽어내는데 하루의 시간도 필요치 않을 만큼 술술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A: Adidas에서 Z: Zippo까지 이 책은 그 브랜드와 그 브랜드의 상품들이 어째서 세계 500대 브랜드 안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네슬레(Nestle)'의 경우, 이 브랜드가 어떻게 해서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1초당 약 3천 잔의 네스카페가 소비될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유래부터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사전이라는 분량의 한계 안에서 최대한 충실하게 담아낸다
(네슬레는 세계 최초로 인스탄트 커피를 상품화한 회사다). 내가 특히 재미있게 읽은 브랜드들은 Apple, Boeing, Chiquita, Citibank, CNN, De Beers, Diners Club, Disney, Dunlop, Esso, Ford, Gatorade, Google, Hilton, IBM, Intel, Jeep, Kalaschnikow(음, 왜 끝이 'w'로 표기된 거지? 독일어 표기라 그런듯), Levi's 등이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SAMSUNG, LG, HYUNDAI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굳이 이런 책(경영이나 마케팅)을 읽어야 할까?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특히, 현대 사회를 소비 자본주의 사회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나를 포함해서) 이런 부류의 책들을 눈 아래로 깔고 보거나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두 발을 땅에 딛고 세상을 보고자 한다면 최소한 자신이 비판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이름(브랜드) 정도는 알고 나설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필자가 소개하고 있는 'Chiquita(치키타)' 브랜드의 첫 단락을 살펴보자. 

이 유명하고 악명 높은 바나나기업만큼 기업의 역사 내내 악명을 떨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기업은 중부 아메리카에서 수십 년 동안 국가 안의 국가로 군림해왔다. 유나이티드 프루츠 컴퍼니United Fruits Company의 경영자들은 기업의 정책에 따라서 대통령을 권좌에 올려놓았다가 다시 끌어내리곤 했다. 그렇게 호의적이지못한 '바나나공화국'이라는 말은 유나이티드 프루츠의 일 처리 방식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중남미의 독재자들은 미국의 비호 아래 어떤 짓이든 저지를 수 있었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녹색의 교황'이라고 불렀던 이 전지전능한 바나나 회사를 손봐주려고 할 때에는 그들도 불안감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의 경영진 및 주주 중에는 앨런 덜레스(1953-1961년까지 CIA국장), 그의 형 존 포스터 덜레스(1953-1959년까지 미 국무장관) 같은 명망이 높은 일련의 고위 미국 정치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본문 88-89쪽> 

부끄럽지만 나는 유나이티드 프루츠 컴퍼니와 바나나 공화국에 대해 몇 차례의 글을 쓴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키타'가 이 기업의 브랜드인 줄 몰랐다. 혹시 '코스트코'나 다른 수입식품 매장에 갔을 때 중남미 전통 복장을 입고 있는 작은 소녀, 치키타를 발견하시거든 물품을 구매할 때 한 번 더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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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 레베카 블러드 | 정명진 옮김 | 전자신문사(2003)



 

웹로그 탄생 10주년

2007년은 인터넷, 웹, 사이버공간의 역사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10년이다.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뒤이어 수소폭탄을 개발할 때까지도 미국은 자신들이 세계를 주도해나가는 우위의 군사력과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뒤이어 소련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개발하고, 1957년 10월 4일엔 미국보다 앞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까지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미국은 우주를 제압당했다는 공포와 소련이 발사에 성공한 로켓에 대륙간핵탄두미사일(ICBM)을 이용해 선제공격을 가해올지도 모른다는 이른바 ‘스푸트니크 공황’에 빠졌다.

1958년 미국 국방부는 소련의 선제 핵공격 뒤에도 살아남아 보복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선 통신과 정보전달 분야에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첨단연구계획국(ARPA : Adve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을 신설했다. ARPA는 메인컴퓨터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보조컴퓨터를 연결해 선제 핵공격으로 한두 곳의 컴퓨터가 파괴되더라도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곳의 컴퓨터를 작동시켜 정상적으로 반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제안했다. 이 같은 공포는 최근의 영화들 <트랜스포머>, <다이하드 4>를 비롯해 많은 영화들에서 인터넷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시스템을 해킹당한 뒤 단파 무선을 이용하거나 아날로그적 액션을 통해 반격하는 형태로 무한 반복된다.

비록 핵전쟁의 공포로부터 출발한 연구와 노력이었지만 결과는 세계 인류를 컴퓨터 앞에서 지구촌 마을(earth village)의 주민으로 만들었다. 1991년 제네바에 소재한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의 팀 버너스 리에 월드와이드웹(WWW : World Wide Web)의 형태로 현실화된다. 이후 월드와이드웹은 네트워크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전달 기능을 충족시키며 발전해왔다. 최초의 인터넷 브라우저인 모자이크를 만들어냈던 기술진들을 중심으로 1994년 ‘넷스케이프’사가 창립되었고, 이들을 통해 출시된 상용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통해 일반인들도 쉽게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대가 개막되었다. 인터넷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1997년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블로그(blog)’라 부르는 ‘웹+로그(weblog)’가 탄생했다. 2007년은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이 자기만의 홈페이지로 이용하고 있는 블로그가 탄생한지 10주년이다.

 

새로운 것이 새롭게 존재할 틈을 주지 않는 속도의 시대

『블로그』의 저자, 레베카 블러드(Rebecca Blood)는 지난 1999년 4월부터 <레베카의 포켓(www.rebeccablood.net)>이라는 대중적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그 자신이 블로깅(blogging)을 즐기는 블로거(bloger)다. 『블로그』는 원제명 『The Weblog Handbook : Practical Advice on Creating and Maintaining Your Blog』란 이름처럼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고 지속하는 과정에서 부딪치게 되는 실질적인 문제와 태도에 대한 실용적인 조언을 담고 있다.

우리에게 인터넷 세상은 불과 20~30년의 짧은 역사적 체험이었지만, 급속한 기술발전과 변화의 속도는 우리가 ‘새로운 것’이란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이미 ‘낡은 것’이 되어 있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는 ‘광(光)랜(LAN)’ 스피드의 시대는 ‘남겨진 시간의 넉넉함’을 의미하는 여유(餘裕) 속에서만 가능한 ‘성찰’적 사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유하기 이전에 빠르게 달아나는 속도와 변화를 쫓아가기도 바쁘다. 이른바 ‘웹1.0’의 사유에 도달하기도 전에 기술은 이미 ‘웹2.0’으로 달아나면서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고 외친다.

비록 2002년에 나와서 현재의 시점에서 보자면 어느새 낡은 책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블로그』는 그런 의미에서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웹1.0의 시대,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은 웹페이지 혹은 DB형태의 게시판을 통해 텍스트를 올렸고, 사람들은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듯 그 사이트 속에 구축된 정보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흡족했다. 어떤 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사이버공간 속에서 자신의 회원이나 지인들에게 자신이 업데이트한 내용이나 정보를 이메일의 형태, 메일진(mail-zine)의 형태로 알렸다. 아니면 자신이 즐겨찾기한 웹 사이트의 URL을 북마크로 남겼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은 그것을 좀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HTML같은 복잡한 코딩 과정을 통하지 않고도 자신만의 인터넷 공간을 만들고, 일일이 찾아다니며 링크를 걸고, 메일을 띄우지 않더라도 자신의 텍스트를 타인에게 읽힐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했다. 그 결과 출현한 것이 바로 ‘블로그’다.

본래 로그(log)란 말이 ‘일지(日誌)’란 뜻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초기의 단순한 블로그들은 매일매일 쓰는 일기처럼 구성되거나 자신이 웹서핑 중에 필요하다고 생각해 긁어모은 자료들을 한데 모은 노트북형(notebooks) 블로그가 대다수였다. 초기 블로거들은 블로그를 일종의 개인적인 일기로 생각했기 때문에 링크나 태그를 통해 좀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문제, 다시 말해 자신의 글이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접하게 될 <온라인저널>, <1인 미디어>로서의 속성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날 블로그가 <일인 미디어>로 평가되는 가장 큰 이유는 포털사이트 혹은 블로그와 블로그를 연결해주는 메타 블로그의 역할 때문이다. 하나의 블로그에 올라간 페이퍼는 링크와 태그를 통해 무수하게 많은 블로거들과 연결된다. A가 올린 페이퍼에 B가 태그와 링크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다시 C가 이를 읽고 자신의 의견을 첨언할 수 있다. 한 개인은 작은 존재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 인터넷 세상의 여론이 형성되고, 이같은 여론은 다시 오프라인 세상에 반영된다.

 

왜 블로그인가?

레베카 블러드는 블로거들에게 묻는다. 왜 블로그인가? 그는 “블로그는 좋은 작가를 만든다. 블로그는 자의식을 형성한다. 블로그는 비평가를 만든다. 블로그는 평판을 구축한다. 블로그는 기업 내 결합을 촉진한다”고 말한다. 이 말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보면 글을 되는 대로 쓰는 것은 쉽지만, 블로거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매일 같은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매일 같이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 무언가 쓰기 위해선 무언가 계속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자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또한 블로거는 그 과정에서 비판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비판적인 사고를 담아 글을 쓰다보니 그 나름의 평판이 구축된다. 다른 말로 명성자본을 축적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명성자본이 축적되다 보면 레베카 블러드처럼 자신의 책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들과 다른 탁월한 글쟁이, 탁월한 블로거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레베카 블러드는 우선 자신이 블로그를 하는 목적을 명확히 하라고 설정하라고 말한다. 반드시 구체적일 필요는 없지만 블로그를 통해 친구 및 가족과 연락을 지속하거나 자신의 사업을 홍보하거나 여론에 영향을 주거나 심리치료방법을 공유하거나 무엇이 되었든 꾸준하게 지속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만 계속 블로그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독자는 이름 모를 다양한 블로거들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독자다. 그 사람만이 자신의 사이트를 가장 흥미롭고, 신선하며 멋진 사이트로 만들어 줄 수 있다. 그 한 사람의 독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저자는 '자기 자신을 지속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에게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남의 글을 링크시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여러 사람의 글(링크)을 검토한 뒤 자신만의 완성도 높은 에세이로 발전시키는 도전을 한다. 또 한 가지 주제만으로 작업을 지속한다면 스스로도 지칠 수 있으므로 자신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 탁월한 블로거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관대해지자'고 말한다. 

 

블로거로 살아가기, 블로거로 처신하기

레베카 블러드의 『블로그』는 이 처럼 단순히 블로그란 어떤 곳인지를 설명해주는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모두가 자신의 블로그 한 둘쯤 가지고 있는 시대에 자신의 블로그를 좀더 의미있게 유지하고 운영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마음가짐을 일러주는 책이다. 이것은 반드시 블로그 커뮤니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끊임없이 읽고,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차원에서 필요한 것들이기도 하다. 특히 주목해볼 만한 것은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

1) 다른 블로그 공격하기 - 다른 블로거들을 관심을 끄는 가장 빠른 방법은 타인의 블로그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격받는 희생자가 블로그 커뮤니티 내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사람일지라도 이 같은 행위는 별로 권장할 만한 행동이 아니며 그 결과 당신의 악명도 높아질 것이다. 블로그 커뮤니티는 일종의 공공장소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중한 반대의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불필요한 개인적인 공격은 멍청한 일이며 그 같은 일에 동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 불꽃 공방에 대해선 무시하라 - 블로그 커뮤니티의 논쟁은 마른 덤불에 불 붙듯 신속하고 화끈하다. 블로그 불꽃공방에 대한 내 대응책은 간단하다. 무시하라!! 첫째, 블로그 커뮤니티 회원이 아닌 독자가 있다면, 그 독자는 내전을 지켜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둘째, 아주 극소수만이 그 소동에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클릭한다. 셋째, 참가자들 중 아무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넷째, 진중한 사람들 중엔 당신을 편들면서까지 사소한 소동에 나섰다고 불꽃이 튀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반사회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어째서 시간을 낭비하는가? 블로그 세계에서 클릭 횟수는 돈이며, 링크를 삭제함으로써 불만을 표시할 수 있다. 지나는 행인에게 공연히 시비를 걸어 싸움을 일으키는 잡상인을 상대할 필요가 없다.

3) 조회수에 대해 불평하지 마라 - 사이트 방문자 수가 거의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타인을 공연히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다. 자신이 인기 없음에 대해 끝없는 넋두리를 늘어놓은 사람에게 그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중에라도 그런 사람에게 초대를 받는다면 그의 초대를 꺼리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블로거들을 불평하고, 싸움에 끌어들이고, 조회수에 대해 넋두리하고, 당신이 한 만큼 다른 사람도 똑같이 해야 한다고 요구하게 되면, 결국엔 커뮤니티에서 외면당하고 독자들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든다.

블로그의 윤리, 블로거의 윤리학

또 이런 것도 있다. “1) 사실이라고 믿는 것만 그대로 발표하라. 2) 자료가 온라인상에 있다면 참조할 때 그 자료에 링크하라. 3) 잘못된 정보는 공개적으로 정정하라. 4) 변경되지 않도록 글을 써라. 어떤 글이든 내용을 첨부하기는 해도 다시 고쳐 쓰거나 삭제하거나 하지는 말라. 5) 대립의 소지가 있는 문제는 모두 노출하라. 6) 의심스럽고 편향된 소스는 주의하라.” 이 중에서 특히 5번은 이런 뜻이다. 자신이 특정 분야에서 독자층의 신뢰를 얻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그동안 보여 온 분야의 전문성 덕분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최신 운영시스템의 장점에 관한 잡지 기사를 분석할 때, 그 사람의 논평이 특별한 무게를 얻는 것은 그의 전문적 지식 탓이다. 블로그 독자층은 신뢰를 바탕으로 구축되기 때문에 금전적인 문제나 충돌이 예상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내용을 병행해서 미리 소개하란 말이다. 특정출판사에 대한 리뷰를 썼는데, 사실은 그 자신이 해당 출판사의 직원이라거나 혹은 음반사로부터 공짜로 받은 음반을 리뷰하고 있는 중이란 사실은 공개적으로 언급하여 독자로 하여금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6)은 정치적인 편향, 주관적인 취향의 작용을 경계하란 말이다. 전문적인 지식의 약탈자들은 여러 가지를 종합해 판단하는 경향이 있지만 모든 독자들이 늘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반 독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자신이 집필한 에세이의 정보 출처가 어떤 편향을 지닌 것인지 아는 부분까진 소개해주는 배려를 아끼지 말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월스트리트저널>과 <가디언>은 같은 외신이라도 지향하는 바가 다르지 않느냔 뜻이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일부는 이미 네티즌들이 일반적으로 지켜나갈 에티켓이 되었고, 일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된 깨달음도 있다. 만약 당신이 블로그를 현재 운영하고 있거나 앞으로 블로그를 통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그 출발점에서 한 번쯤 이 책을 읽고 고민해본 일이 필요할 것 같다. 블로깅을 통해 당신이 좋은 평판을 쌓고 싶다면 더욱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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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마이 텐트 - 한형석/ 중앙books(2008)

 

『논어(論語)』의 「爲政(위정)」편에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그 뜻을 확고히 세웠으며, 마흔에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아니 하였고, 쉰에 하늘이 내린 뜻을 알았고, 예순에는 남의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고, 일흔이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르더라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子曰十有五而志干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從心所欲 不踰矩)”라는 말이 있다. 그로부터 동양에서는 나이 열다섯을 지학, 서른을 가리켜 이립(而立), 마흔을 불혹이라 부르게 되었다.


요즘의 기준으로 나이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기도 어렵지만, 나이 서른에 뜻을 세워 확고하게 섰다고 말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나이 서른에 바로서기는커녕 일어나기도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베이비붐 세대치곤 행복한 세대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독재체제 아래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대학생이 될 무렵엔 군부 독재 만큼은 벗어났고, 개인적으론 척박한 삶이었지만 1980년대 3저 호황의 풍요를 누린 셈이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까지 집 한 채도 없고, 10년을 훌쩍 넘긴 오래된 연식의 중고차 한 대를 애지중지 끌고 다녀야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지금의 나는 실업자도, 구직자도 아니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마흔이 된다. 생각해보면 사회에 나온 이래 사회초년생 시절 직장을 옮기면서 3개월 정도 쉬어본 것을 빼놓고는 16년 동안 한 번도 스스로에게 휴식이란 것을 주어본 기억이 없다. 늘 직장 생활에 바빴고, 늘 이루고 싶은 무엇인가를 쫓아 갈망하며 달려왔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내가 뒤쫓았던 것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달일지언정 부귀영화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름 괜찮게 살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다 문득 올해 대학원을 수료하면서 이 시점에서 한 번쯤 나에게 휴지기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주말마다 촛불시위에 나가거나 시사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다가 문득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 사회적 책임 같은 도의적 의무감이 발목을 잡았다. 그런 것들을 죄다 뿌리치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또한 40년 가까이 살아온 나란 사람일 터이니. 그러나 이젠 좀 쉬엄쉬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바삐 걷던 걸음을 잠시 멈추기로 했고, 그날부터 캠핑동호회에 가입해서 이것저것을 알아보고 장비들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넘어가던 무렵엔 작은 텐트와 코펠을 가지고 나도 산에 갔고, 그곳에서 밤하늘의 별을 벗 삼아 지내기도 했었다. 그 기억들이 나를 다시 이끌었다. 하지만 이제 불룩하게 튀어나온 뱃살과 가늘어진 종아리(?) 근육으로는 산길을 탈 자신이 없었다. 결국 적당하게 타협한 것이 캠핑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7월에서 8월까지 장비만 사들였을 뿐 아무 곳에도 가지 못했다. 명색이 ‘바람구두’란 닉네임을 사용하는 사람이 사는 모양치곤 우습다. 정부의 야영금지조치 이후 사람들의 ‘아웃도어 라이프’도 많이 변했다.


예전엔 비록 ‘행락객’ 수준이긴 했지만 저마다 소박한 텐트와 코펠을 들고 산으로, 들로, 강으로 나갔다. 본래 캠핑이란 다녀간 흔적을 최소화하는 것이 기본 예의지만 지난 시절 우리들은 계곡의 넓적한 돌이란 돌마다 삼겹살 판으로 애용했으니 야영금지조치 같은 것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정부의 야영금지 조치 이후 일부 자연은 되살아났지만 그 덕분에 산과 들, 바다, 강가엔 모텔과 펜션들로 가득 찼다. 자연휴양림 속 방갈로, 펜션 한 번 빌리기가 하늘에 별 따기이고, 일박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어쩌면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도 단순히 금지하면 된다는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과 시책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이 세계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동안 캠핑 문화도 많이 바뀌었고, 나는 어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생초보가 되어 있었다. 동호회도 뒤져보고 여러 가지 정보들을 인터넷으로 수집해봤지만 결국 나는 책을 읽어야 해갈되는 사람이었다. 관련한 책자들을 찾아보니 해외여행 정보서나 안내서는 지천이었지만(질은 둘째로 하고), 국내여행서는 태부족인 상황이었다. 거기에 야영지 안내나 야영문화에 대한 글을 담은 책은 아마도 이 책이 거의 유일한 것처럼 보인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실용서이지만 실용 정보보다는 오랫동안 야영생활을 즐겨온 한 사람이 자신이 경험담과 추억담을 약간의 정보들과 함께 버무린 책이다. 많은 점에서 초보캠퍼가 되려는 사람에겐 좀더 많은 실용정보가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어쩌면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캠핑이란 반드시 편리함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캠핑이란 자연을 내 안으로 불러들이는 일이 아니라 내가 자연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비록 달팽이처럼 내 집을 내가 짊어지고 가야하고, 잠시 머물다가 돌아오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삶의 무게일지도 모르겠다.



* 캠핑 에세이를 겸한 캠핑 서적이므로 실용적인 정보를 구하려면 다른 책을 읽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지만 캠핑이란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즐기는 것인지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이 책을 미리 읽어두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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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 강제욱, 노순택, 이상엽, 임재천 지음 | 이미지프레스 기획 | 청어람미디어(2004)

내 소유의 카메라가 생긴 건 지난 1997년의 일이었을 게다. 구입하기 까지 특별한 기억이 없을리 없건만 그런 사실을 구구절절 밝히는 건 재미없는 일이겠다. 그래도 몇 마디 하자면 대개 제법 가격이 나가는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꼼꼼하게 물어보거나 따져보는 편인 나이지만 카메라 구입에 관해서만큼은 특별히 누군가에게 문의해본 기억이 없다. 대학 시절 아는 사진과 녀석이 사용하는 카메라를 보고 오래전부터 탐내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 놈은 캐논 EOS-5 였다.  무엇이든 처음의 기억은 오래 가는 법인데, 중간에 기기변경의 유혹을 느끼긴 했지만 가격을 고려해봐도 그렇고, 이 녀석을 사용하면서 특별히 아쉬움을 느낀 적이 없어서 지금까지 대략 7년여의 기간 동안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디지털 카메라를 넘어서 폰카메라까지 횡행하는 편의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이 녀석에 대한 나의 애정은 변함이 없다. 그것이 꼭 남성에게 국한되는 일은 아니지만 종종 어떤 물건들은 성인이 된 남성들에게 여전히 특별한 장난감이다. 가령, 자동차, 오디오, 카메라 같은 물건들은 그것들 본래의 용도를 넘어선 특별한 애정관계가 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의 성별이 남성인 것은 굳이 여성들의 눈치를 보지 않더라도 당연해 보일 지경이다. 글쎄, 어머니들이 만들어낸 신화일지는 모르겠으나 남자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특별한 물건들에 애착을 보인다. 영화 "나홀로 집에"에서 매컬리 컬킨이 아버지와 형의 면도기를 이용해 면도 시늉을 하고, 스킨 로션을 바른 뒤에 지르는 비명처럼 말이다.

물신주의(Fetishism)란 말은 특정한 사물과 신체(특정부위)에 대한 애착을 넘어선 집착을 일컫는 말로 통용된다. 원래 페티시즘의 어원은 15-16세기 해양무역을 독점한 포르투갈인들이 서아프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배워온 것이라 한다. 그네들이 돌이나 나무 등 특정 대상물에 대해 예배하는 것을 보고, '부적'이란 의미의 라틴어 "팍티키우스(facticius)"에서 기원한 포르투갈어인 "페이티소(feitico)"라 불렀다. "페이티소"란 말에는 '인공적인', '마술에 걸린 대상', '마술'을 의미한다. 이 용어를 학술적으로 다시 부활시킨 것은 마르크스의 공로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자본(즉, 돈)에 대한, 자본주의적 생산체제 아래에서 인간과 물건(자본, 돈)의 관계를 이와 같이 신앙의 대상, 또는 숭배의 대상으로 표현하면서 이를 물신주의라 비판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통찰"이 없었다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니체의 표현법을 빌어 말하자면 현재의 우리는
"신을 죽였으나 새로운 신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물신이다. 이 책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는 우리가 숭배하는 특정한 물신(카메라)에 대한 숭배의 방식을 보여 주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적 물신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의 물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모 통신회사의 핸드폰 광고 카피는  ‘이츠 디퍼런트(It’s different)’ 이다. 해석하자면 "이것은 다르다" 정도가 될까? 오늘날의 우리들은 남과 동일한 방식과 수준으로 살지 못하면 그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증폭되는 시대에 살면서 동시에 남과 조금이라도 다른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지 못해 안달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책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는 어떤 의미에서 디지털(남과 다르지 못함, 동일한 복사가 무수히 가능한 몰개성)이 폭주하는 시대의 나만의 자아를 찾아 떠나는 아날로그(핸드메이드, 마이너리티의 즉 개성적인)에 대한 송가이다.  바로 그런 이유때문에 이 책 역시 ‘이츠 디퍼런트(It’s different)’ 를 부추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동시에 절반의 실패 속에 놓여 있다. 이들이 정의하는 "
나의 아름다운 클래식 카메라"는, 과거 장인들의 아름다운 손길이 묻어나는 아날로그 시절의 카메라는 이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들이 낡은 카메라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어찌보면 모든 것이 빠르게 발전해가는 이 시대를 거스르는 도전이다. 이들의 정의에 따르면 마이스터들의 열정과 도전 정신이 빚어낸 예술품으로서의 카메라 시대는 "Leica M3"에 그친다. 이후 만들어진 카메라는 거대 다국적 자본이 찍어낸 기성품에 불과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렇게 자본이 폭주하는 시대에 대중에게 잊혀졌으나 여전히 아름다움을 촬영하는 오래된 카메라의 진가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보다 많은 이들이 잊혀져가는 이들 물건을 사랑해주기 바란다.

- 라이카 M3

일반인들에게 카메라는 그것도 똑딱이라 불리는 자동카메라가 아닌 완전 수동의, 하나하나 손으로 조작해야 하는 카메라는 일부 전문가들이나 사용하는 카메라이다. 그 일부 전문가들이 앞장서서 그런 대중의 인식을 불식시키고 싶어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친절하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카메라들
- 라이카 M3, 콘탄스2, 니콘F2, 키에브, 조르키, 캐논F1, 롤라이플렉스TLR, 하셀블라드500CM, 롤라이35SE, 자이스 이콘타, 미놀타 하이매틱, 올림푸스 펜, 폴라로이드 - 등은 몇 가지 기종을 제외하고는 디지털 카메라 염가판을 구입할 정도의 금액이면 누구나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에 속하고, 그만큼 대중적(?)인 카메라들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저마다 자신과 카메라, 자신과 카메라 촬영여행 중에 일어난 일화를 읽기 쉬운 대중적인 감성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에세이의 역할을 감당한다. 

아마 이 책의 저자들은 이 책이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길 그리 희망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한때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여행기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가 본의는 아닐지라도 실제로는 문화 유산을 파괴(?)하는데 이바지한 것처럼 이네들이 소개하고 있는 아름다운 클래식 카메라가 품귀 현상을 빚길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1711년 영국의 할리 백작이 세운 '남해회사' 는 남아메리카 광산 등에 대한 개발독점권을 따내면서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한다. 실제 이 회사의 경영실적은 소문만 무성했을 뿐 실적은 거의 없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이 회사의 주식을 사들인다. 얼마 뒤 이 회사의 주식은 폭락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하고 만다. 그때 큰 손해를 본 인물 중 한 사람이 우리에게 만유인력을 발견한 인물로 유명한 '뉴턴'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희귀한 꽃 튤립에 대한 인기가 점차 높아지면서 어느 순간 이를 투자 대상으로 삼으려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 결과 황소 한 마리의 가격이 120플로린 하던 시절에 40뿌리의 튤립의 가격이 10만 플로린에 이르렀다
.<찰스 맥케이 지음, 이윤섭 옮김, 대중의 미망과 광기, 창해, 2004>

물론 나는 이 책 한 권이 그런 파장을 불러일으킬리 없다고 생각한다. 첨단 디지털 시대의 편리함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쉽게 수동 카메라의 불편함으로 회귀할리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이 책에서 우리 시대의 물신을 아름답게 길들이는데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을 보다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이들의 소망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일지를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욕망은 점차 자본의 속도와 초월성을 닮아간다. '얼리어댑터'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는 시대에 낡은 시대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구는 아름답지만 그래서 위험하다. 다른 이들의 훌륭한 리뷰를 읽어보니 나는 갑자기 이 책의 부분들을 소개하는 것보다는 나의 이런 괜한 염려를 옮기고 싶어졌다.

* 2006년에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 단순하고 아름다운 시선, 필름 카메라"도 나왔다. 두 권을 연계해서 읽어보는 것도 카메라와 사진을 즐기는 이들에겐 즐거운 체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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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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