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12.01 강은교 - 망와(望瓦)
  2. 2010.11.07 강은교 - 사랑법 (1)
  3. 2010.09.14 강은교 - 별


망와(望瓦) 

- 강은교

한 어둠은 엎드려 있고
한 어둠은 그 옆에 엉거주춤 서 있다
언제 두 어둠이 한데 마주보며 앉을까
또는 한데 허리를 얹을까

*

가끔 내 안의 또다른 나와 분투를 벌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만화의 한 장면처럼 천사와 악마가 나타나 다투는 건 아니어도 우리는 매순간 수많은 생각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또다른 나와 그 또다른 나를 의식하며 존재하고 있는 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출몰한다. 우리가 프로이트에게 고마워 해야 할 것은 '내 안의 또다른 나'를 더이상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악귀나 악령이 아니라 그 어둠조차 또한 나라는 것을 긍정할 수 있도록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다.

강은교 시인의 <망와(望瓦)>에서 어둠은 서로 포개어진 기와 한 쌍이란 점에서 같은 존재이면서 개별적으로 호명된다. 이 어둠들은 내 안의 또 다른 나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남녀일수도 있고,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엎드려 있는 기와와 엉거주춤 서 있는 기와는 아직 포개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 시를 아무 이유나 근거도 없이 '
현실 속에서 권력을 지닌 자들이 어깨를 겯는 어둠의 연대'를 연상하여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서로의 잇속을 챙기는 일에 그들은 어쩌면 그리도 빠짐없이 일사불란한 한통속인지 말이다. 시는 짧다. 긴 시도 세상에 비하면 여전히 짧다.  무망하여 무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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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사랑법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진부(陳腐)하다"는 말이 있다. 케케묵고 낡았다는 뜻이다. "늘어놓을 진"에 "썩을 부"를 쓴다. 두 글자 모두 "묵은"이란 뜻이 있다. 가령, 내가 누군가와 10년을 사귀었다면 그는 나에게 오래 "묵은" 사람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진부한 사람이다. 강은교 시 <사랑법>을 오늘의 관점에서 읽으면 다소 진부해 보인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라는 첫 연은 이 시의 유명세만큼이나 낯익다. 낯익어서 진부해보일 지경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하고 반문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오랜 시간을 두고 이어져 내려온 고전이란 것들을 읽지 않고 미리부터 아는 척 하는 이들을 쉽사리 만날 수 있다. 남들이 읽어 버린 독후감, 시평, 비평들을 손쉽게 얻어 읽을 수 있는 "복제의 시대"라 할지라도 우리가 직접 해내지 않고서는 우리 것이 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때 진부해진다. 썩은 것들, 낡은 것들을 늘어놓으면서도 그것이 마치 자신의 것인양 스스로에게 아첨하고 아양 떨 때 그 사람은 진부하다.

강은교 <사랑법>이 진부하다면 먼저 이 시를 먼저 제 가슴 열어젖히고 처절하게 읽어볼 각오를 먼저 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음 연을 보자.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리고 "실눈으로 볼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손쉽게 하는 말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단지 첫 연의 낯익음에 홀려 나머지 구절들을 쉽게쉽게 넘기는 사람은 시인이 마지막에 가서 툭하고 던져놓은 저 무서운 말을 흘려버리게 된다.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는 이 놀라운 발언을 하기 위해 시인은 각 연의 첫 행을 둘씩 겹치게 해서 교묘한 리듬 속에 쉽게 읽어내려가는 느낌을 독자로 하여금 갖게 한다.  1연의 1,2행은 "떠"로 3,4행은 "잠" , 2연은 모두 "또"로 시작된다. 5연의 첫 3행은 모두 "쉽"으로 시작하고 있다. 마치 운을 떼듯 그렇게 편하게 놓인 듯 보이는 시이지만 이 시가 지닌 힘과 파괴력은 결코 작지 않다. 아니, 앞 부분들이 쉽기 때문에 제 힘으로 연구해 가며 읽은 독자라면 마지막 연이 주는 묵직한 깨달음에 고개 숙이게 된다. 7연에서는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이라고 1연이 동어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이 때 가장 중요한 시어는 "홀로"가 된다.

"홀로가고, 홀로 잠든다." <중용(中庸)>에는 "莫見乎隱이며 莫顯乎微니 故로 君子는 愼其獨也니라.(숨는 것보다 더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미미함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이 없으니, 군자는 그 홀로 삼가는 것이니라.)" 란 말이 있다. "가장 큰 하늘이 우리 등 뒤에 있다"는 강은교 시인의 말을 나는 "신독"으로 해석해 본다. 우리는 누구라도 속일 수 있지만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가장 큰 하늘은 우리 등 뒤에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사랑하든 타인을 사랑하든 사랑은 "서둘지 말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고, 실눈(비판적인 시선)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이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법일 테니까.... 난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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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TAG 강은교
2010.09.14 13:41

  
- 강은교

새벽 하늘에 혼자 빛나는 별
홀로 뭍을 물고 있는 별
너의 가지들을 잘라 버려라
너의 잎을 잘라 버려라
저 섬의 등불들, 오늘도 검은 구름의 허리에 꼬옥 매달려 있구나
별 하나 지상에 내려서서 자기의 뿌리를 걷지 않는다  

*

1945년 함남 홍원 출생.연세대 영문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문학 박사. 동아대 국문과 교수. 제 2회 한국 문학 작가상 수상. 1968년 '사상계'신인 문학상에 '순례자의 집'이 당선되어 등단함. 윤상규, 임정남, 정희성, 김형영 등과 '70년대' 동인으로 활동함. 주요 시집으로는 '허무집'(1971), '풀잎'(1974), '빈자 일기'(1977), '소리집'(1982), '붉은 강'(1984), '우리가 물이 되어'(1986), '바람 노래'(1987),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1989), '벽 속의 편지'(1992)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붉은 강'(1984), '누가 풀잎으로 다시 눈뜨랴'(1984) 등이 있다.

-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시인으로 산다는 것. 개인적으로 나는 강은교 시인을 좋아한다. 그 시인을 만난 적은 없지만 전화 통화를 한 번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이제는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하는 사실조차 가물가물하지만 분명히 통화를 한 것 같다. 시인과 통화를 한다는 것. 혹은 그 대상을 직접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작은 균열을 의미한다. 내가 시집이라는 것을 처음 손에 집어들었을 때가 몇 살 무렵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아마도 중학교 진학하기 전 졸업과 입학 사이의 시간차를 두고서가 아니었던가 싶다. 방학도 아니고, 그렇다고 맨투맨 영어(성문기초영문법을 따라잡은 영어교재)를 붙잡고 한 시절을 보내기엔 이제 막 시작되는 하이틴 시즌이 우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시집 몇 권을 들춰보기 시작했는데 그 첫 시집은 김남조와 김후란의 시집이었다. 그 시집들을 읽었던 내 솔직한 감흥은 누이가 일기장에 끄적여 놓은 시들과의 차이를 발견하지 못하겠더라는 것이다. 시적 기교나 긴장, 형상화 등 여러 맥락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시를 읽어낼 만한 공부가 부족한 탓이었지만, 그 보다는 한 소녀의 일기장에 적힌 낙서 같은 시들과 두 시인의 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여성적 정조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여성 시인 중에서 여류 시인이라는 호칭을 즐겁게 받아들일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 여류라는 말은 어느새 '삼류' 혹은 '촌스러운 지칭'의 느낌이 배어나오는 말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류 시인과 여성 시인의 차이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는 각자가 생각하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결국 그 기본이 되는 것은 결국 여성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의 문제에서 나는 한 세대 이전의 시인들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 여성시인으로의 자각으로 첫발을 내딛은 새로운 세대의 첫 시인으로 강은교 시인을 생각한다. 강은교로부터 이어지는 여성시인의 계보는 최승자, 고정희, 김혜순 등에서 다시 황인숙, 허수경 등으로 이어진다. 시인의 이름 앞에서 여류라는 호칭이 떼어지고 여성이라는 젠더의 개념이 붙기까지 우리나라에서 근 100년의 역사가 필요했다. 다시 그 앞에서 여성이라는 말이 떨어질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는 시인들의 몫이기도 하다.

강은교 시인의 시를 처음 읽게 된 것은 그후 고등학교 때 무렵이었고, 강은교 시인의 시는 그동안 여성 시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편견에 균열을 일으켰고, 도리어 여성성이 표출되는 시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시인이 바라보는 별은 "새벽 하늘에 혼자 빛나는 별"이다. 당신에게 불필요한 가지와 잎을 잘라버리라한다. 그러나 그 별은 뿌리채 뽑아버리라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모든 여성들이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을 동안엔 결코 편안해서는 안되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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