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것들의 귀환을 꿈꾸며 - 2007년 12월 21일자 <경인일보>

서구 문명의 기원이자 민주주의의 대명사처럼 이야기되는 그리스는 현대적 의미로 보자면 이민족인 도리아족이 남하하면서 선주민들을 무력으로 복속시켜 만들어진 고대 노예제 도시국가였다. 당시 스파르타에는 ‘포로’라는 뜻의 헤일로타이(heilotai)라 불리는 노예가 시민 1인당 15명의 비율로 존재했는데, 그 수가 25만 명에 이르렀다. 어떻게 소수의 도리아족 시민들이 정치로부터 소외된 다수의 선주민들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도리아족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대신 참정권을 제외한 신분상의 자유와 재산권을 인정받은 중간 계층 페리오이코이(perioikoi)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페리오이코이란 ‘주변인(marginal man)’이란 뜻이다.


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모두 다섯 차례 대통령을 뽑았지만 이번 선거는 역대 선거 중 가장 낮은 투표율(62.9%)을 보였다. 영국 BBC방송은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한 이래 "가장 지저분한 선거 중 하나를 치렀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번 선거는 대통령 당선자가 특검의 수사대상이 되었고, 지지 여부와는 별도로 국민 대다수가 의혹을 제기하는 여론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유권자인 대다수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던 국민들 입장에서는 최선을 대신하는 차선의 선택이 아니라 최악을 피해 차악을 선택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실망감이 고스란히 낮은 투표율로 연결되었다.

현직인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자는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의도 정치의 비주류라는 탈정치적 이미지로 지지를 얻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2년 당시 노무현 후보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꿋꿋한 이미지로 스스로를 기성정치인과 차별화시켰고, 이명박 후보는 정치인이기보다는 성공한 CEO의 이미지를 강조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역설적이게도 한 나라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두 번의 대선에서 대중은 가장 비정치적인 이미지를 선보인 사람을 최고통치자로 뽑았다.

다시 말해 국민들은 기존의 정치와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삼성과 BBK 특검 사태(?)는 대중의 국가기구와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대중의 정치 혐오는 그 뿌리가 매우 깊고 오래된 것이다.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서 기밀 해제된 1956년 2월 13일자 보고서는 한국 국민들의 정치적인 태도에 대해 "파벌주의, 실용주의, 정치적 허무주의, 개인주의, 지도자들에 대한 사적인 충성심, '거물'이 되고자 하는 희망, 통일을 향한 열망, 민족주의 또는 더 정확하게 인정(忍情)의식, 전통적인 유교사상의 영향, 서양 정치이론의 영향들로 인해 새로운 그룹에 표를 던지지 않으며 빨리 불신하게 되는 현상, 단기적인 안전 또는 만족을 위해 이상을 내던져버리는 현상, 즉각적이며, 눈에 보이는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 그룹을 지지하지 않는 현상 등이 나타난다"고 분석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유권자들이 선거를 통해 분출시킨 열망은 선거 이후 실망으로 변하는 주기적 순환을 반복해왔다.

선거를 앞두고 언제나 이벤트처럼 벌어지는 정치권의 이합집산, 단일화, 사표 논쟁은 단임제 대통령을 5년간만 사용하고 싫증나면 버려도 되는 일회용품처럼 만들었고, 이념과 정책 패러다임으로 분화된 민주적 정당구조를 뿌리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정치의 문제가 언제나 현실을 긴박(緊縛)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도 피곤한 당신, 잘 살게 되기를 희망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에게 정치는 더욱더 중요하며 참여 없이는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20년, 오늘 우리가 성찰해야만 하는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작은 성과와 만족 속에 창고에 가둬 둔 일상의 모든 정치적인 것들을 귀환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007년 12월 21일 (금)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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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외고 시험이 끝난 직후 문제가 유출된 것 같다는 게시물들이 해당 학교 게시판에 잇따라 게재되었다. 문제지 유출설의 발단이 된 게시물은 자신을 ‘김포외고 지망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쓴 글이었는데, 서울에 있는 특목고 전문 M학원의 관계자가 시험당일 학원버스에서 학생들에게 시험대비 유인물을 나눠줬다는 것이다. 정확치는 않지만 게시물을 올린 사람은 문제가 된 M학원에 다니지만 그날따라 버스에 타지 못한 중3 학생이라고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해당학교는 발끈하면서 이 학생의 부모에게 항의전화를 했고,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가 시험문제유출이 경찰 수사 결과 사실로 밝혀지자 지난 13일 고소를 취하했다. 경찰의 수사발표가 있기 전부터 많은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증언이 잇따랐다. 이들이 조직내부 사람이 아니란 점에서 ‘내부고발’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이들의 증언 덕분에 우리는 김포외고 시험지 유출사건의 전모에 좀더 다가갈 수 있었다.

최근 우리는 한 사내가 양심을 걸고,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 내부의 치부와 범죄 사실을 낱낱이 드러내는 내부고발을 목격하고 있다. 내부고발이라 하면 우리는 버릇처럼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리지만 우리에게도 역사의 고비마다 중요한 내부고발이 있어 왔다. 지난 90년 10월 5일 윤석양 이병은 NCC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양심선언을 했다. 양심선언 직후 그는 특수군무이탈혐의로 긴급수배되어 2년간의 도피 생활 끝에 체포되었고, 2년간의 옥살이 끝에 지난 1994년 11월 만기출소했다. 당시 국방부는 1,300여명에 이르는 민간인 사찰 명단 등 증거 공개에도 불구하고, 전시나 비상시에 적 또는 불순분자로부터 사회 요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인명록이라고 발뺌했다. 그러나 민간인 사찰을 목적으로 서울대 앞에 현역 군인들을 동원해 위장술집까지 운영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보안사는 해체된다. 지난 92년 3월 22일 14대 총선을 이틀 앞두고 공명선거실천협의회에서는 당시 육군 9사단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이지문 중위가 군 내부의 투표부정행위에 대해 양심선언을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그는 곧바로 군수사기관에 연행되었고, 파면되어 이등병으로 전역했다가 지난 95년 2월 대법원으로부터 파면 취소 판결을 받아 중위로 명예전역할 수 있었다. 그의 양심선언 이후 군부정투표행위에 대한 제보가 잇따라 쏟아졌고, 군부재자투표제도가 개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양심에 따라 내부고발에 나섰던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냉정했다. 올해 초 모일간지 기사에 따르면 지난 90년 이후의 내부고발자 20명 가운데 80%(16명)가 징계와 해고를 경험했고, 이 가운데 11명은 아직도 무직 상태에 놓여있다고 한다. 내부고발자들은 집단따돌림 으로 인한 우울증, 불면증, 대인기피증, 편집증 같은 정신질환과 소화불량, 신경성 장염, 급성 간염 등을 앓기도 했다. 심지어 지난 2003년에는 사학비리를 내부고발했던 사람이 청부살인을 당하기도 했다.

사회의 공공선을 증대시킨다는 차원에서 조직과 사회의 이해가 항상 합치되는 것은 아니며, 조직에 속한 개인과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개인은 조직의 이해와 공공선의 증대라는 차원에서 누구라도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설 수 있다. 만약 공동체가 그들을 보호하지 않고, 사회적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개인은 그 나름으로 가장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 즉, 자신의 양심과 도덕에 따른 의무를 다할 때 내가 피해를 본다면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침묵하는 것이 낫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내부고발은 사회의 성역에 대한 도전이다. 20년 전 겨울공화국을 살아가던 우리들에게 독재권력, 정치권력이 성역이었다면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경과한 지금 우리는 기업권력, 경제권력이라는 새로운 성역 앞에 서 있다. 분개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의 선택이 남았다.

<2007년 11월 23일 (금)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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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사는 세상 iTV 경인방송”이란 로고송을 마지막으로 지난 2004년 12월 31일 경인지역의 유일한 지상파 TV였던 iTV 경인방송의 전파송출이 중단되었다. 경인방송은 허가 취소 이후 라디오 방송(SUNNY FM)만 남아 올 10월로 개국 10주년을 맞이했지만 TV방송은 정파(停波) 이후 3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시민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1997년 당시 인천방송 iTV가 출범하기 전까지 인천은 방송의 철저한 사각지대였다. 1995년 대구, 부산, 대전, 광주에서 민방이 출범하고도 2년 뒤에야 전주, 울산, 청주와 함께 인천 민방설립이 허가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공보처는 인천이 서울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서울의 방송사들과 방송 지역이 중복된다며 경인지역 민방설립에 반대했다. 이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역민방이 허용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이 벌인 2년여의 민방설립운동과 77.5%에 이르는 높은 지지 덕분이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중심의 인력에 저항하며 100% 자체제작 프로그램을 방송했던 iTV는 설립 초기부터 만성적인 재정적자 등 여러 어려움에 시달렸다. 여러 난관들 속에서도 iTV는 비디오 저널리스트들이 참여하는 6mm 다큐 프로그램과 다양한 시청자 참여프로그램들을 통해 젊고 참신한 방송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그 무렵 우리 방송환경에서는 낯설고 새로운 시도를 도입하고 정착시킨 것이 iTV였다. 그러나 대다수 시청자들에게 iTV는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경기를 중계했던 방송사로 기억된다. 젊은 방송의 도전정신과 공정한 방송이라는 소임은 때때로 지역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재정적자라는 현실에 밀려나기도 했다. 방송의 공공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이해부족 등과 같은 여러 어려움들이 겹친 결과 iTV의 방송사업권이 취소되면서 경인지역 시민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방송주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방송허가 취소 이후 노조원들은 재취업 대신 희망조합을 결성해 장장 880일간 풍찬노숙을 마다 않으며 허가권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해왔고, 지난 4월 12일엔 방송위의 허가추천서를 교부받아 5월 18일 정보통신부에 기술허가를 접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통부는 10월 25일 현재 160일간 허가를 내주지 않아 경인지역 40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로 이루어진 ‘경인지역 새방송 창사준비위원회’와 OBS 경인TV가 1400만 시청자들과 약속한 11월 1일 개국 일자를 맞출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제주민방(JIBS)이 68일, 강원민방(GTV)이 78일 만에 허가를 받은 것에 비해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 정통부가 내세우는 입장은 예전에 경인지역 민방 설립에 반대했던 공보처의 논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OBS 경인TV는 과거 iTV 시절 인천 수봉산에 있던 아날로그TV 주송신소를 계양산으로 옮겨 디지털과 아날로그 두 가지 방식으로 송출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정통부는 전파월경을 문제 삼아 계양산이 아닌 제3의 지역에서 테스트를 실시해본 뒤 이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공공재인 전파의 월경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는 행위야 말로 실은 전파 낭비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정통부가 주장하는 전파혼선 문제 역시 각기 다른 채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만약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정통부가 지난 2004년 한국전자파학회의 전파월경 검토결과를 토대로 iTV의 계양산 디지털TV 송신소 설치를 허가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결과적으로 정통부는 과거 iTV의 개국 이래 지금까지 단지 수도 서울에 인접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새 방송을 염원하는 경인지역 1400만 시청자들의 방송주권과 열망을 묵살하고 있는 것이다. 경인지역 시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사회적 공공 이익의 증대에 공헌하는 방송을 가질 권리가 충분하다. 우리는 OBS 경인TV를 기다린다.

<2007년 10월 26일 (금)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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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동아시아의 세계관엔 ‘행복(幸福)’이란 말이 없었다고 한다. 동아시아의 세계관에서 행이란 요행, 다행, 불행처럼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복이란 하늘에 속하여(天福) 나의 복을 남이 빼앗아갈 수도, 남의 복을 내가 빼앗아올 수 없는 것으로 서로 구분되는 개념이었다. 행과 복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의 운명도 서구의 그것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라는 세계, 수많은 인간관계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속에서 주변과 관계하고 감응하며 변화하는 것이었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거나 ‘권불십년(權不十年)’, ‘호사다마(好事多魔)’ 같은 말 역시 상승과 하강, 빛과 그림자가 순환하는 동아시아의 세계관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동아시아에서의 개인이 서구의 그것처럼 명료하게 정리될 수 없는 까닭은 동아시아에서의 개인이란 이처럼 관계에 의해 유동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개인' 혹은 '개인주의'란 데카르트 이후 근대의 발명품이다. 시민혁명을 거치며 자신의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개념이 바로 권리를 가진 개인, 시민의 출현이기 때문이다. 서구적 근대화 이후 우리에게도 서구식 관념인 개인이 출현하게 되었고, 서구식 행복관도 함께 옮겨지게 되었다. 행과 복이 합쳐졌으니 그만큼 더 행복해야 할 테지만, 어느덧 행복이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투쟁해서 얻어내야 할 권리(행복추구권)로 변모했다. 행복을 추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각박한 경쟁 속으로 내몰리게 되었고, 행복이란 가치가 소중하면 할수록 남의 행복과는 타협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얼마 전인 지난 2006년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전 세계 178개국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 평균 수명, 환경적인 요건(에너지 소비, 생존에 필요한 면적)을 계산해 '행복한 지구지수(Happy Planet Index)'란 것을 발표했다. GNP, GDP만이 행복의 바로미터라고 생각해왔던 우리들에게 이 조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항상 순위에 민감한 우리들이지만 'HPI 지수'에서 한국은 전체 국가 가운데 102위, 아시아 24개국 중에서도 19위를 한 일본에 이어 최하위권인 21위에 머물렀다. 한국은 평균수명에서만 겨우 낙제점을 면했을 뿐, 삶의 만족도와 환경적인 요건에서 낮은 점수를 얻었다. 행복이 경제력과 상관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나라들이 후진국들인데 비해 경제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이 108위, 캐나다는 111위, 프랑스는 129위, 미국은 150위를 했다. 우리들은 아시아에서도 가장 살기 힘든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 모 주간지에서 전국의 시민 642명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가 발표돼 다시 한 번 입맛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불행한 나라 대한민국에서도 스스로를 가장 불행하다고 느끼는 시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경기·인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으로 삶의 가치를 행복 그 자체에 놓지 말고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되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 성취하도록 노력하라고 조언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돈과 권력에 대해 자신만의 분명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줄 알고, 무엇보다 늘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당시(1948년) 1인당 국민소득 50달러였던 최빈국에서 2006년 현재 1만6천달러에 육박하는 나라가 되었다. 절대빈곤을 벗어났으니 그럭저럭 행복해질 법도 한데, 지금 우리들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대신 무한경쟁의 절대강자를, 행복을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들 대신 학력서열화와 안정된 출세에 꿈과 현실을 저당 잡힌 결과, 우리들 모두가 행복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하고 싶은 낙타가 된 것은 아닐지 한 번쯤 되돌아 볼 때다. 밤새 안녕하신지 물을 것이 아니라 당신은 지금 행복하냐고 물을 일이다.

<2007년 09월 28일 (금)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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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무엇으로 사는가

지난 7월 19일 23명의 한국인 인질들이 탈레반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이 있었다. 인질 가운데 2명이 비극적으로 살해당했고,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석방 기회를 동료에게 양보했다는 보도가 우리를 감동시켰다.

피랍사태가 발생한 뒤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위험한 정세를 감안해 한국 언론인들의 현장 취재를 제한했다. 정부는 또 다른 납치사건을 방지하고, 피랍 인질들의 안전과 무사귀환을 위해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에도 석방교섭과 관련해 민감한 보도의 자제를 촉구했다. 그 결과 우리는 한국 국민의 생사가 담긴 기사를 외국 언론을 통해 들어야 했다. 기자는 현장이 생명이란 말대로 현지로 달려가고 싶었던 기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부의 보도통제 혹은 보도자제 요청은 지난 2003년 8월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도 있었다. 명분 없는 전쟁 파병이란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정말 파병부대의 안전을 위한 탓인지 몰라도 3천여명의 젊은이들이 국가의 명으로 파병되면서도 환송식마저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국방부가 요청한 엠바고 요청을 파기한 언론사와 알력도 있었다. 정부의 강경한 분위기 탓인지 파병 직후 자이툰 부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언론에서 사라져버렸다.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언론의 취재활동이 제약당한 얼마 뒤, 미군 군납업체 직원이었던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피살되었다. 우리 언론은 그가 살해되기까지 교섭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미숙한 대응과 외교력 부재를 파헤쳐 연일 질타를 가했다. 어쩌면 지금 나머지 인질들의 무사귀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정부의 적극적 대응이 성공한 것이지만 거슬러 오르면 당시의 대처방식을 질타했던 언론 덕택이기도 하다. 이처럼 언론과 권력이 불편할 때 진정한 국익에 보탬이 된다.

최근 정부는 기자들의 취재를 '지원'하겠다며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언론을 통제하고 싶은 욕망은 권력의 당연한 속성이지만 이를 둘러싼 정부와 언론, 정치권의 갑론을박은 다른 한 편으로 공허하다. "공무원의 언론 취재활동 지원은 정책홍보 부서와 협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한 총리훈령 11조는 명백하게 언론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출현한 신규 언론사들과 뉴미디어의 진입장벽을 해소한다는 긍정적인 측면 역시 지니고 있으며, 이런 상황을 과거 독재정권의 언론 통제정책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문제는 이런 논란이 좀 더 다급한 언론의 위기를 은폐하기 때문에 더욱 큰 문제다.

지금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정치권력이기 보다 기업권력이다. 얼마 전 우리는 삼성과 권력의 유착 관계를 폭로한 기자가 도리어 재판정에 서는 것을 보았다. 삼성 관련 기사 삭제에 맞서 편집권 사수를 외친 '시사저널' 기자들이 몸담았던 직장에서 쫓겨나 스스로 잡지를 창간하는 과정을 보았다. 최근 새롭게 부활하는 OBS 경인TV 역시 '공익적 민영방송'을 위해 조합원들이 2년 반에 걸친 실업자 생활을 피눈물로 감내해야 했다.

뉴미디어의 도전으로 위기에 빠진 신문업계의 상황을 대표적 사양업종인 석탄산업에 빗댈 만큼 기업으로서의 언론, 특히 신문업계의 상황이 날로 악화되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에 대한 언론의 광고비 의존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미디어를 일컬어 '제4의 권력기관'이라고 하지만,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미디어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를 선정하고, 그것을 사회에 판매하는 '언론기업'이기도 하다. 만약 언론이 판매하는 것이 사회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정론(正論)이 아니라면 언론이 판매하는 것은 바로 구독자수와 구독자들 그 자체가 된다. 그리고 언론의 상품인 구독자를 구입하는 것은 기업이다. 그 순간 언론은 자본의 프로파간다가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언론 독립의 가치가 소중한 까닭이다.


출처 : <경인일보> 2007년 08월 31일 (금)  <프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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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9일 한나라당은 대선 예비후보 검증청문회를 정당사상 최초로 진행했다. 비록 정책대결보다는 상대 후보의 흠결을 따지는 네거티브 방식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대목이 있었지만, 정당 스스로 후보의 정책과 도덕성을 검증하고, 유권자들에게 후보의 자질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후보들이 검증에 필요한 자료를 충분히 제출하지 않았고, 제기된 의혹에 대해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하거나 부인으로 일관해 아무 것도 검증하지 못한 면피용 부실청문회였다는 평가도 있었다. 검증청문회가 있던 다음날 퇴근길에 한 라디오 방송의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이 문제에 대한 양측 대변인의 열띤 토론을 들었다.

평범한 시민들도 전화 참여를 통해 각자 의견을 제시했는데, 청취자들은 청문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도덕성 문제만이 부각되어 능력에 대한 검증을 할 수 없었다며 아쉬움을 표했고, 결국 도덕성의 문제라면 두 후보 모두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니냔 의구심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현실이 과거의 비도덕성이나 특혜, 비리 연루에 연연할 수 없을 만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난국에 빠진 불행한 현실을 개탄했다. 대부분의 청취자들이 내린 결론은 능력만 있다면 과거의 잘잘못이나 도덕성을 따질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처한 솔직한 현실이자 정치 감각일 것이다. 선거 때마다 이념이나 정견에 상관없이 철새 정치인들이 난무하고, 각종 정치 의혹이나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도 지역감정에 힘입어 번번이 재선에 성공한다. 어째서 시민단체의 감시와 고발에도 불구하고 정당에선 이런 정치인들에게 공천을 해줄까?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선거에서 여전히 경쟁력 있는 정치인들이고, 우리 사회가 유독 정치인들에 대해 관용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문제가 되었던 신정아 씨의 경우만 하더라도 어떤 이는 이 같은 일들이 빈발하는 원인으로 학벌사회의 폐해를 들기도 하고, 지식인 사회의 도덕 불감증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황우석 전(前) 교수의 논문 데이터 조작 사건,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황라열의 가짜 이력, 한동안 미술계의 베스트셀러 제조기였던 한젬마의 대리집필,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정지영의 대필 번역, KBS 굿모닝팝스 진행자였던 이지영의 학력 위조 사건 등을 모두 그렇게만 바라볼 수 있을까? 의혹의 시선은 위로는 대학총장에서 아래로는 학생회장에 이른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자조 섞인 우스개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우스개가 유난히 뼈아프게 들리는 까닭은 이것이 비단 미술계만의 문제도, 특정대학만의 문제도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구조적 병리현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상부구조를 이루는 시민들의 의식·가치관·문화·도덕 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이토록 심각한 훼손을 일으켰을까? 그 원인은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시장을 통한 이윤창출, 경쟁력 강화란 지극히 단순한 원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경쟁력이란 시장에서의 능력을 의미하며 비싸게 팔릴 수 있는 능력은 모든 도덕적 규범을 뛰어넘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짜 신정아가 진짜 큐레이터보다 실력은 오히려 뛰어났다”는 이야기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오게 되었고, 황우석 교수의 논문 데이터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뒤에도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라는 이야기가 거침없이 나온다. 보복폭행 사건을 일으킨 재벌 총수를 풀어주라는 의견도 결국 경쟁력 강화가 명분이다. 법이나 도덕 보다 시장에서의 능력이 우위에 설 때,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가 맺어야 할 건강한 관계는 병들고, 관계에 대한 신뢰는 실종된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느냐고 남에게 물을 일이 아니다. 그 까닭은 우리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들 스스로가 속고 싶어 하는 것(Mundus vult decipi)은 아닌지.

출처 : <경인일보> 2007년 2007년 08월 03일 (금) <프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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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부산에 갔다가 아는 사람으로부터 요즘 인천 사람들은 살맛 날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근래 인천은 송도신도시 건설, 2014 아시안게임, 2009 인천세계도시엑스포, 자기부상열차 시범도시 선정 등 다른 도시 사람들이 들으면 배 아플 만한 뉴스들로 범벅이다. 그런데 막상 인천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최근 인천은 도시재생이란 측면에서 논쟁적인 사건 두 가지가 진행 중이다. 하나는 ‘만국공원 복원 프로젝트’이고, 다른 하나는 ‘배다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 문제다. 만국공원 복원 프로젝트는 자유공원에 위치한 맥아더동상과 한미수교백주년기념탑을 이전하고, 그 자리에 존스톤 별장과 세창양행 사옥 등 인천의 근대 건축물들을 재현하자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몇 가지 점에서 논쟁적이다. 우선 사진 몇 장만 남은 채 멸실된 근대건축물을 다시 세우는 것이 과연 복원인지, 냉전과 민족상잔의 비극을 기리는(?) 역사 기념물을 대체하는 방편으로 식민지 시절의 건물을 다시 세우는 것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았던 인천 중구의 구(舊)조계지 일본풍 덧씌우기 공사처럼 이것 역시 문화적 접근이기보다는 문화산업적 논리에 치우친 것 아니냔 의구심이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른 하나는 인천 중․동구 지역에 거주하는 토박이들의 표정을 어둡게 한다. 인천 중․동구 지역 이른바 ‘배다리’라 불리는 지역을 관통하여 산업도로(폭 50m, 10차선)를 건설하겠다는 프로젝트가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도심재개발 사업과 매우 다른 풍경이다. 단순히 생각해볼 때 도심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 인근 지역의 주택이나 토지 가격이 상승하고, 지역주민들이 반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째서 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것일까. 최근 인천은 청라와 송도경제자유구역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려 하고 있다. 송도신도시 개발과 맞물린 구도심의 균형발전이란 점에서 특히 낙후된 중․동구 지역 도시재생 사업은 필요하다. 또 경제적인 측면에서 남북으로 위치한 경제자유구역을 잇는 도로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문제는 인천시가 이를 추진하는 방식과 배다리가 지닌 문화적 상징성에 있다.

인천 사람들에게 ‘배다리’는 단순히 개발이 더디고, 낙후된 지역이 아니라 삶의 공동체가 살아있는 공간이며,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헌책방 골목이 있고, 80년 된 막걸리 공장, 인천 최초의 가마보꼬(어묵) 공장, 인천 근대교육(영화, 인명, 창영학교)의 발원지였다는 여러 기억들이 축적된 곳이다. 이 일대는 개항장 시절 조계지역을 차지한 외국인들과 일제시대 식민지배계급에게 밀려난 조선인 노동자들의 거주지였고, 해방 이후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민초들이 가난한 노동으로 뿌리를 내린 터전이다. 한때 좋았던 과거로 회상하기에 개항장 시절의 인천은 식민잔재라는 역사적 원죄와 더불어 멸실된 과거라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배다리 인근은 비록 이국적인 풍경은 아닐지라도 인천에 뿌리내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들고 정붙인 공간으로의 기억을 함께 하고 있다.

과거 식민지 시절 개항장의 역사적 복원은 중시하면서도 현재를 살고 있는 시민들의 기억과 정주공간을 파괴하려는 인천의 모습은 어쩌면 21세기 명품도시를 지향한다는 인천이 선택하는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일지 모른다. ‘만국공원 프로젝트’가 지닌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나 인천시가 현재의 삶과 기억을 파괴하는 대신 과거의 역사를 안일하게 소환하는 모습이 과거 일제와 근대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으로 느껴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제 개항장의 역사는 기껏해야 ‘문화재’의 형태로 존속하면서 인천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좋았던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자본주의적 관광상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재현된 탈역사적 공간 앞에서 인천의 기억은 영원히 봉인된 채 역사의 진정한 의미도 함께 묻힐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배다리 프로젝트’다.

출처 : <경인일보> 2007년 07월 06일 (금) <프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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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어렸을 적 부모님을 따라 공중목욕탕에 다녀온 뒤 동네 슈퍼에서 얻어먹는 바나나우유만큼 달콤한 기억이 또 있을까. 당시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란 노래가 있었던 것처럼 바나나는 당도가 높고, 맛있는 과일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바나나 1개(100g 기준)에는 93Kcal의 열량과 단백질 1.1g, 지방 0.1g, 당류는 22.5g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그러나 비만의 요인이 되는 과당은 사과, 포도의 30%에 불과해 다이어트용으로도 사랑받고 있다. 이밖에도 무기질과 칼륨의 보고이며, 소화에 무리를 주지 않기 때문에 노약자들의 보양식, 아기들의 이유식으로도 즐겨 사용된다. 그런데 이 맛좋은 과일의 대명사인 바나나가 향후 10년 이내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어째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BBC방송 인터넷판에서는 프랑스에 위치하고 있는 '바나나 개량을 위한 국제네트워크(INIBAP)'의 벨기에 출신 과학자 에밀 프리슨 박사의 말을 인용해 질병과 해충이 점점 우리가 먹고 있는 바나나를 위협하고 있다며 경고하고 나섰다.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바나나는 열매는 맺지만 씨 없는 작물이 된지 오래다. 바나나는 밀과 쌀, 옥수수에 이어 세계 4번째로 많이 재배되는 작물이지만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는 국가간 거래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의 바나나는 우리가 쌀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했던 것처럼 간식거리가 아니라 주식으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남미에서 바나나는 과거 '바나나 공화국(Republic of Banana)'이란 불명예스러운 말이 있었던 것처럼 여전히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의 플랜테이션 방식으로 바나나를 재배한다.

다국적기업들에 의해 대량생산되는 바나나는 균일한 당도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상품으로 관리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식용 바나나는 열매는 맺지만, 씨 없는 작물이 되었다. 마치 종우나 종돈, 종마처럼 바나나 역시 우수한 품질을 갖춘 나무에서 씨 없이 뿌리나 줄기로 접을 붙여 번식시키는 방식(유전자 변형도 가해지지만)으로 품질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뜩이나 유전자 정보가 단순한 바나나인데, 유전자 종 자체가 이렇듯 단일하다는 데 있다. 이럴 경우 특정한 종에만 발생하는 전염병에 극히 취약한 구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만약 바나나에 이 같은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인류가 미처 손써 보기도 전에 바나나란 과일은 지구상에서 전멸할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우리들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지구촌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의 좁아진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다. 어느 한 지역에서 발생한 작지만 치명적인 전염병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세계의 산과 들판을 다니며 야생 바나나의 유전자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수한 품질과 상품성을 위해 다양한 유전자를 강제로 희생당한 바나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또 있다. 바로 지난 3월18일 국제법으로 효력이 발생한 문화다양성협약이다. 이 협약은 세계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국제협약으로 정식 명칭은 '문화콘텐츠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를 위한 협약'이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다자간투자협정의 틀로는 문화와 같은 비무역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각국이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유지·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문화다원주의의 차원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200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채택된 문화다양성협약은, 2006년 12월 전세계 30개국의 비준 완료를 통해 3월18일부터 국제법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문화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 법안이 언제 비준될지는 감감무소식이다. 미국식 영어에서 '바나나'엔 '겉과 속이 다른 놈, 미국식 사고를 가진 동양인'을 가리키는 속뜻이 있다고 한다. 세계화 시대, 우리는 그 바나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출처 : <경인일보> 2007년 06월 08일 (금) <프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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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현재 대한민국 영화계 최고의 트렌드는 재벌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납치사건과 구태여 연관짓지 않더라도 '아버지'다. 지난 4월 배우 송강호를 앞세운 영화 '우아한 세계'의 개봉 이후, 박광수 감독의 신작 '눈부신 날에', 배우 정진영이 출연한 '날아라 허동구', 배우 이대근의 캐릭터를 활용한 '이대근, 이댁은', 장진 감독의 '아들', 최근 개봉 예정인 '성난 펭귄', '마이 파더', '귀휴'까지 8편에 이르는 영화들이 모두 아버지를 주제로 삼고 있다. 바야흐로 아버지 전성시대다. 5월이 가정의 달이므로 가족영화가 만들어지고, 개봉된다고 치부하기엔 편수가 너무 많다. 어째서 이 같은 기현상이 빚어지게 된 것일까?


사실 아버지들의 잦은 스크린 외출이 올해만의 현상은 아니다. 지난 2004년 개봉된 '효자동 이발사'를 비롯해 '파송송계란탁'(2005년), '괴물'(2006년) 등 최근 몇 해 동안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아버지가 등장하는 이들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은 마치 아버지의 귀환이라 해도 좋을 만큼 오랫동안 가족을 떠나 있었거나 아니면 여러 이유로 아비 구실을 하기 어려웠거나 부끄러운 처지에 있던 이들이란 거다. 영화 속 아버지들은 그간 못했던 아비 노릇을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반복하고, 아버지로서 가족에게 이해 혹은 용서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관객들의 감동을 유도한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파이더맨 3'와의 경쟁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아버지들의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전통적 유교사회였던 한국사회는 공적인 영역에서는 '君師父一體'라 하여 국가체제와 사회적 훈육체계를 실제의 아버지와 동일시 해 왔고, 사적인 영역인 가족구조 안에서는 '嚴父慈親'이라 하여 성별 분업을 내면화했다. 엄격한 아버지상은 아버지로부터 아들, 다시 손자에게 이어지는 전통적이고,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가정과 교육을 어머니에게 맡긴 채, 이 땅의 아버지들은 1970년대와 80년대 숨 막히는 산업화와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우리는 그 결실로 OECD 가입을 통해 드디어 선진국 대열에 가세하는 줄로만 알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의 아버지, 대한민국은 결정적인 추락을 경험한다. 국가로서의 아버지가 추락하면서, 계급과 사회구조의 재생산(훈육)을 담당하던 교육은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뒤집어쓰게 되었고,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당면한 과제만이 유일한 목적으로 제시되었다.

국가로서의 아버지는 전 지구화의 물결 속에 더 이상 든든한 민족국가의 울타리 노릇을 하기에 버겁고, IMF의 살벌한 경쟁과 도태를 경험한 중산층은 그간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모래성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뜩이나 살벌한 교육 열기에, 마지막까지 남는 최후의 경쟁력은 오로지 교육이라 생각한 학부모들은 붕괴한 대한민국의 교육시스템을 원망하면서 해외원정교육으로 내몰렸다. 그 결과,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갈 다음 세대는 해외에서 위탁교육 중이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그것이 국가이든, 교육이든, 실제의 아버지이든 그들의 가족(공동체)과 진지하게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나마 가족의 마음도 그들을 떠난 지 이미 오래다.

모든 꿈이 현실 속에 부재하는 것들에 대한 소망이라면 꿈의 산업인 영화는 이것을 영상으로 재현하는 예술이다. 1930년대 미국인들은 '무지개 너머'를 꿈꾸었던 어린 도로시가 온갖 고초 끝에 '세상 어디에도 집 만한 곳은 없다'며 돌아오는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가 주는 위안을 통해 대공황을 견뎌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 극장가에 범람하는 아버지 영화들은 아버지의 진정한 귀환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구조조정의 공포에 시달리는 우리들에게 다만 아버지로 상징되는, 든든한 울타리와 안정, 후원의 이미지를 판매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도, 교육도, 아버지도 현실 속의 '나'에게 더 이상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 없는 현실이 실재하지 않는 아버지를 강제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꿈의 안팎에서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출처 :  2007년 05월 11일 (금) 경인일보 <프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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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0일 요미우리와 요코하마의 시즌 개막전에서 4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전한 이승엽은 팀이 1-2로 뒤진 4회초 통쾌한 동점 홈런을 터뜨렸다. 이승엽은 홈런 아시아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며 일본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려 이른바 '승짱'이란 애칭까지 얻고 있다. 그런데 비슷한 시각,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지닌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어 순위 1위는 이승엽도, 승짱도 아닌 '부평 얼짱 윤주현'이었다. 부평 얼짱 윤주현이 누구이기에 이승엽의 개막전 홈런 소식을 누르고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평 얼짱 윤주현은 실체가 없는 인물이다. 본인이 그 부평 얼짱이라고 자임하고 나서는 이가 있거나, 설령 부평에 살고 있는 실명 윤주현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 검색어 순위에서 1위를 한 부평 얼짱 윤주현은 아니다. 왜냐하면 부평 얼짱 윤주현은 이승엽의 개막전 홈런 소식을 알리는 인터넷 뉴스 기사에 달린 허위 댓글, 일명 '낚시 글'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은 IMF 사태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지만, 인터넷의 역사로 보았을 때, 올해는 '웹+로그=블로그' 탄생 10주년이다. 아마도 미래의 어느 순간엔가 역사학자는 블로그의 탄생을,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역사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게 바라볼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386세대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대중매체를 접하며 성장해온 미디어 1세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디어 1세대가 주로 접한 매체는 TV, 라디오, 신문 같은 올드미디어로, 오늘날 신세대들이 즐기는 뉴미디어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신문, 방송, 영화, 음반, 책과 같은 올드미디어의 생산자는 전문화된 소수 그룹이었고, 이를 수용하는 이들은 대중이라 불리는 다수였다. 그러나 뉴미디어의 대표 격인 인터넷의 출현으로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일반 대중이 일대 다수, 다수 대 다수의 매체를 소유하고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올드미디어는 매체를 장악한 생산자(자본 또는 창작자)에 의해 주도되는 수직적 체계다. 그에 비해 뉴미디어 혹은 멀티미디어는 디지털 혁명에 의해 출현한 새로운 개념으로 콘텐츠는 플랫폼으로서의 매체와 분리되어 수용자에 의해 수평적으로 수용된다. 과거 하나의 매체는 하나의 콘텐츠를 가졌으나 뉴미디어는 수없이 분할되고 통합되는 다중의 콘텐츠를 가진다. 이와 같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산업적인 차원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사고방식 자체를 변화시킨다. 오늘날 뉴미디어는 급속도로 성장해 올드미디어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문사 하나씩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 같은 현상을 가속화시킨 것이 블로그다. 네티즌들은 직접 뉴스를 생산하고, 뉴스를 소비한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네티즌들은 주류언론에서라면 보도하길 꺼릴 수 있는 금기에도 과감히 도전하고, 이에 호응하는 네티즌들을 결집시켜 사회적 파급력을 얻기도 했다. 앨빈 토플러가 말했던 권력이동(power shift)이 가장 확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가 바로 미디어 권력이다.

'개방·소통·공유'로 대변되는 사이버스페이스의 미덕은 종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상업적인 판단이나 권력의 검열 욕구에 의해 제한되거나 훼손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등장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반복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여론조작을 의도한 '알바 논란'이다. 종종 우리 언론의 역사를 가리켜 '오보의 역사'라고 말하는 비판적인 학자들도 있지만, 기성 언론의 경우엔 그나마 이를 걸러낼 수 있는 안전장치(gatekeeper)가 준비되어 있고, 그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부평 얼짱' 같은 해프닝은 책임 소재를 따질 수 없다는 근원적인 한계가 있다. 뉴스, 콘텐츠의 생산자이자 동시에 소비자가 만들어 가야할 세계최고의 IT강국 대한민국에 뉴미디어에 대한 개념 정립, 미디어 기호학을 통한 올바른 미디어 독해에 대한 학습이 필요한 까닭이다.



출처 :  2007년 04월 13일 (금) 경인일보 <프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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