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 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 을유문화사(2002)

벌핀치, 오비디우스의 『그리스로마신화』를 보노라면 천지창조, 신과 영웅이야기 그리고 트로이 전쟁의 세 가지 구분으로 나뉨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인도의 『바가바드 기타』를 읽어볼 생각으로 세 권의 『바가바드 기타』 관련서적을 구입했다. 함석헌 선생이 옮긴 『바가바드 기타』(한길그레이트북스 18권)와 간디의 해설로 된 기타를 이현주가 옮기고 당대에서 펴낸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간디가 해설한 바가바드 기타』 그리고 비노바 바베가 짓고, 김문호가 옮겨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천상의 노래』가 그것이다. 내 생각엔 이 정도면 ‘인도 정신의 꽃’이라는 『바가바드 기타』를 읽기 위한 준비 작업이 나름대로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좀 수월하게 읽을 생각으로 비노바 바베의 『천상의 노래』를 펼쳐들었는데, 웬걸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뭐든 순서가 있는 법인데 마음만 급해가지고 기지도 못하는 놈이 뛸 생각부터 한 거였다. 제대로 읽자면 함석헌 선생이 옮긴 『바가바드 기타』를 읽고, 그런 뒤에 간디와 비노바 바베를 비교해가며 읽는 것이 정석일 게다. 그런데 인도인이 아닌 내가 『바가바드 기타』를 더 잘 읽으려면 『우파니샤드』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걸 또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우파니샤드』란 건 또 대관절 뭔가? 이건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에 속하는 것으로 베다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적 제식 문학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거다. 그러니 『우파니샤드』를 잘 읽으려면 또한 『리그 베다』도 읽어두는 편이 좋은 거다.


아마도 근대 초기에 처음 『그리스로마신화』를 접한 사람들의 심경이 지금의 나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흔히 서구 정신세계의 깊은 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정신 두 가지를 일컬어 그리스로마신화로부터 기원한 헬레니즘과 유대교 전통에서 출발한 헤브라이즘을 꼽는데, 지금이야 서구식 사고가 동양적 사고를 밀어내고 교육부터 시작해서 실생활의 전반부에 자리하고 있으니 이들 이야기를 받아들이는데 별 어려움이 없지만, 근대 초반기만 하더라도 그리스로마 신화와 기독교 정신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고 이해는 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머리로만 이해되는 것이지 속속들이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인도인이 아닌 한 베다와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를 읽기조차 힘든 것과 마찬가지 일이다. 이를 역으로 보면 서구인들의 시각으로 『삼국유사』는 참 읽기 힘든 책이다.


어떤 이는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삼국유사』? 그렇게 간단하고 읽기 쉬운 책이 뭐가 어렵단 말인가 하며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리들은 누구라도 사찰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 특별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사찰에 놓인 불상이 대충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다. 제 아무리 기독교 모태신앙을 가지고 태어난 이라도 자기도 모르게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문화이므로 그런 것들이 익숙한 탓이고, 그것이 비록 기복신앙이란 비난은 듣더라도 한국 기독교 내부엔 이미 충분할 만큼 샤머니즘적인 기복신앙으로 가득하다. 과거에 한국인들이 마을 뒷산의 작은 암자나 바위에 치성을 드리기 위해 새벽녘 찬물로 목욕재계하고 치성 드리러 가는 것처럼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은 100일 치성이 변화된 100일 새벽기도를 다닌다.


그 기도의 내용이 자신의 영혼을 구제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위, 가족의 평안과 세속적 출세를 은연중에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어떤 점에서 보자면 기독교가 한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 샤머니즘이 기독교 내부로 들어가 틀 잡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수천수만 년을 이어 내려온 그 깊은 정신세계가 단시일 내에 없어지지 않는다는 건, 외래 종교인 불교가 수천 년의 세월을 거쳐 토속신앙인 칠성당과 산신당을 사찰 구조 내부로 받아들인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요소들이 삼국유사로 표상되는 한 권의 책에 전부 담겨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현존하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가장 기본적인 책이 이것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것으로 유명한 군위군 고로면 인각사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우리 민족의 가장 오래된 고대 서적으로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일찍이 육당 최남선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여야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의미는 반감되지 않을 것이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1206∼89)이 신라와 고구려, 백제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두루 모아서 지은 책으로 오랜 기간 여러 전란을 겪으며 민족의 문화유산이 망실되는 가운데 다른 문헌들의 내용을 유추해 살펴볼 수 있는 근거로 남은 유일한 서책이기도 하다.


또한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들에 의해 이루어진 정사(正史)에 해당한다면,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쓰인 야사(野史)의 성격을 띄고 있다. 비록 책의 구성이나 문체적인 특성은 『삼국사기』에 비해 떨어질지 몰라도, 고조선과 단군 신화, 향찰로 표기된 신라 향가 등을 담고 있어 우리 고대 문학사는 물론 우리 민족의 개국과 관련한 민족적 연원을 따라가는데도 매우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을유문화사판 『삼국유사』는 일연의 『삼국유사』를 건양대 중문과 교수인 김원중이 우리가 요새 읽을 수 있는 말로 옮긴 것이다. ‘왕력(王曆)’ 연표를 부록으로 뒤로 빼고, 『삼국유사』의 전내용을 600여 쪽이 넘는 분량으로 축약 없이 담아내고 있다. 그 외 나머지 구성은 일연의 『삼국유사』와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기이 제1, 기이 제2, 흥법 제3, 탑상 제4, 의해 제5, 신주 제6, 감통 제7, 피은 제8, 효선 제9>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기이 제1에서는 우리 민족의 개국신화인 '단군신화'가 수록되어있고, 우리 민족의 구성 및 삼국의 개국신화가 수록되어 있다. 또 얼마 전 일본의 아키히토 천황이 "천황가는 본시 백제계로서, 한반도를 통해 도래한 집안이다."란 말의 근거 신화가 되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도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다.


<기이 제1과 2>에는 삼국 시대의 여러 일화들을 중심으로 담고 있는데, 이 내용들이 가히 우리 민족의 신화라고 할 만한 내용들이다. 에게게, 이게 무슨 신화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지 몰라 한 마디 쐐기를 박아두자면, 그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신화의 ‘트로이 전쟁’ 이후 편을 유심히 살피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네들이 신화라고 내세우는 것들도 사실 우리 것과 별반 다르지도 않다. 단적인 예로 트로이 전쟁엔 올림푸스의 신들도 두 패로 갈려 각기 다른 영웅들을 돌보아준다. 물론 운명이 다하면 신도 도울 수는 없었다. 그런 까닭에 헥토르는 아켈레우스에게 패하여 숨지고 만다. 이를 『삼국유사』에서 찾아보면
“각간 김서현의 아들인 김유신은 나이 18세에 국선이 되는데, 그의 낭도에 백석이란 자가 있었다. 백석은 김유신이 장차 백제를 멸하고, 고구려를 정벌할 자임을 알고, 김유신에게 고구려를 관찰하러 가보자고  꼬드겨 고구려로 데려간 뒤 그를 해할 심산이었다. 이때 김유신 앞에 세 명의 여인이 나타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밤이 되었는데 백석을 따로 떼어놓고, 김유신만 숲으로 데려가 백석이 사실은 고구려의 밀정임을 알려준다. 잠시 후에 살펴보니 이 세 여인은 신라의 수호신들인 내림, 혈레, 골화였다.”고 서술된다.


이외에도 미추왕과 죽엽군, 만파식적, 처용 이야기 등을 어찌 그리스로마신화보다 떨어지는 이야기라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마치 고흐의 그림은 높이 치면서도 김홍도의 그림은 그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우둔한 후손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삼국유사』는 구 신라 지역의 승려가 저술한 내용이다 보니 한반도 전체에 있어서 중요한 지역이었을 북반부에 대한 이야기들이 소략하게 정리되어 버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거기에 승려란 신분 탓인지 불교적인 이야기와 사상이 깊이 배어있는 측면도 있다. 게다가 간혹 잘못 전해진 이야기들을 그대로 모아서 수록한 것도 눈에 뜨인다. 그럼에도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의 서사시로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사상, 생활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삼국유사』의 가치는 『삼국사기』가 유교적 합리주의로 재단하여 수록치 아니한 우리 고대 기록의 원형들을 담아 후세에 전해주었다는 의미에서 『삼국사기』 이상의 가치를 지닌 민족의 보물단지라 할 수 있다.


물론, 조만간에 인도의 『바가바드 기타』에도 도전해보겠지만, 그런저런 사전 지식을 충분히 갖추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서사시 『삼국유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은 또한 뿌듯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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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황금가지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 이경덕 옮김 | 까치글방(2000)

어떤 학자들의 이름은, 그리고 어떤 학자의 어떤 책들은 다른 이의 책을 읽다가 숱하게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맑스의 원전(독어책을 말하는 건 아님)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딘가에서는 맑스가 이런 얘기를 했다더라. 발터 벤야민의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이란 짤막한 논문을 읽지 않았어도 벤야민이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프레이저 역시 그렇게 정작 그의 저작보다는 인용된 문구를 통해 더 많이, 더 자주 만나게 되는 학자다. 종종 고전이나 명저를 추천해달라는 사람들의 막막함 속엔 그런 알맹이만 쏙쏙 빼먹고 싶다는, 직행하고 싶다는, 나는 앞서고 싶고,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갈망이 숨어 있다. 

모든 질문 가운데 가장 어려운 질문은 예를 들면 이런 류의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첫학기, 개강 때 교수의 간단한 설명이 끝난 뒤 의례적으로 갖는 질문 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 예를 들어 철학 시간이라고 하자.
"교수님! 철학이 뭡니까?" 라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같은 것 말이다. 그렇게 쉽게 말로 해서 정의되고, 알 수 있는 내용이라면 그 교수가 무엇때문에 머리가 반백이 되도록 철학이란 화두를 붙잡고 있겠는가? 가장 쉬운 질문인 듯 싶으면서도 그것이 가장 어려운 질문을 그 학생은 겁도 없이 던진 거다. 대개 이런 질문이 터져나온 강의실 분위기는 요샛말로 싸해진다. 

나는 한 인간의 사유가 발전해가는 건 도표의 곡선이 보여주듯 그렇게 우아한 상승 형태를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멀리서 피라밋을 바라볼 때 형태가 마치 사선을 그리며 올라가듯 보이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계단 형태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인간의 사유가 발전하는 것이 맞다면, 그리고 그것을 가까이 바라보면 필경 계단을 놓고 하나하나 쌓아 올라가듯 하는 것이지 절대로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상승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독서란 것도 무수한 갈림길과 사잇길을 통한 실패의 미덕이지, 중요한 몇 권의 저서를 통해 알고자 하는 것이 저절로 체득되는 경로를 통하지 않는다. 많이 실패한 자만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 자신이 몸소 체험하지 않는 한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다는 건, 이 세계만의 미덕은 아닐지라도 이 세계의 확실한 율법이다.



제임스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의
"황금가지(The Golden Bough)"는 피해갈 수 없는 입구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출신인 프레이저는 리버풀 대학에서 한 학기동안 사회인류학을 가르친 것을 제외하곤 평생 케임브리지에서 살았다. 그는 E. 타일러, W. 스미스의 영향으로 인해 비교종교학에 관심을 가지고 1890년에서 1915년 사이에 13권에 이르는 "황금가지"를 저술한다. "그림으로 보는 황금가지(The Illustrated Golden Bough)"의 서론에서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는 프레이저의 유년기에 대해 "아버지는 매일 성서의 한 구절을 가족에게 읽어주었지만...<중략>... 이 어릴 때의 체험은 평생 종교심에 대해서 존경의 마음을 잊지는 않았지만...<중략>...틀림없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가 그의 왕성한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프레이저는 인간과 같이 분노하고, 질투하고, 원한을 품고, 싸우는 신화에 감춰진 인간을 닮은 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들은 인간과 닮았으나 결코 인간은 아닌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품는 의도와 삶은 "
논리적이지 않으며 연관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프레이저는 그 수수께끼를 푸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는다. 그 시작이 바로 "황금가지"였다. 황금가지는 이탈리아의 작은 숲에서 시작된다. 디아나(아르테미스)를 모시는 성스러운 숲 가운데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나무 주위에는 핏발선 눈으로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손에는 누군가를 죽인 칼이 쥐어져 있다. 

그는 디아나 여신을 섬기며 나무를 보호하는 운명을 가진 사제였다. 사제의 지위를 갖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 이전의 사제를 살해하고, 대신 사제가 되는 길뿐이다. 그 역시 후계자에 의해 살해될 것이다. 그 나무는 참(떡갈)나무로 황금가지는 추측컨데 그 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였을 것이라 한다
.(황금가지는 오비디우스의 시의 한 행에 붙어 있는 이야기라 하는데, 별로 주목하는 사람도 없는 이야기였다.) 프레이저는 "살해되는 신"이라는 테마를 위해 "황금가지"를 골랐고, 이를 연구하기 위해 전세계적인(심지어 우리나라의 사례까지도 포함해서) 사례들을 수집해들였다. 신이 백성을 위해 죽는다. 그것을 모방하여 죽음과 부활을 흉내내는 것이 토템이고, 제의다. 따지고보면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토템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가?(다소 불경하게 들릴지라도) 구세주이신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삼일만에 부활하여 그후로 신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약속(New Testament)가 맺어진다. 미사(mass)의 성찬 의식은 이 약속을 반복적으로 회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조셉 니덤의 책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 그렇듯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는 모두 13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다. 그런 까닭에 일반인이 이 책에 접근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 모두를 한 권으로 축약한 두 개의 판본이 있는데 하나는 1922년의 맥밀런판이고, 다른 하나는 1994년의 옥스퍼드판이다. 옥스퍼드판은 지난 2003년 한겨레신문사에서 "황금가지(The Golden Bough : A Study in Magic and Religion)" 란 제명으로 번역 출간했다. "그림으로 보는 황금 가지"는 영국의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가 세이빈 맥코맥(Sabine McCormack)과 함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170여 장의 도판을 곁들여 정리한 것이다(책 중간에 16쪽의 컬러도판을 수록하고, 본문에도 여러 도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일반인이 읽기엔 가장 무리가 없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는 브라질 원주민들과 직접 생활하면서 지은 책이지만,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현장 연구를 통해 보완되지 않은 그래서 "안락의자의 인류학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어떤 점에서 제국 전성기 말엽의 영국제국이므로 가능했던 일이다. 참고로 칼 맑스가 "자본론"을 처음 펴낸 것은 1867년의 일이다. 두 사람 모두 대영제국 도서관의 덕을 보았다 할 수 있다). 그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네미의 디아나 신전으로부터 시작해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관해 축적된 문헌과 여행기, 지인들의 견문을 통해 "황금가지"라는 대저술을 남긴다. 그러나 프레이저의 연구는 무수한 비판 속에서 아니, 그런 비판들과 함께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이 분야의 살아있는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연구는 전세계의 민간에 퍼져있는 전설, 신화, 민담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연구에 이용함으로써 인간의 보편적인 사고, 생존 방식을 전해준다. 제임스 프레이저의 비교인류학적인 연구는 칼 구스타프 융의
"집단 무의식"과 결부되면서 20세기 문학연구, 신화연구, 문화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제임스 프레이저는 "황금가지"를 통해 인간의 역사는 마(주)술의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종교의 시대로, 그리고 다시 과학의 시대로 발전해갔다고 말한다. 모든 과학자의 원형은 사실 주술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예술가들 역시.... 훌륭한 예술 작품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면 명저란 정답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명저는 더 많은 오솔길을 일러주고, 독자로 하여금 더 많은 자극을 통해 미로의 입구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호기심에 못이겨 뛰어들게 만드는 걸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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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공자가 말씀하길 “말을 교묘하게 꾸미고 얼굴빛을 좋게 하는 자는 어진 이가 드물다”


교언(巧言)이란 말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고, 영색(令色)이란 낯빛을 좋게 꾸미는 것을 말한다. 어디선가 신사와 바람둥이는 한 끗 차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이왕이면 같은 이야기라도  듣기 좋게 이야기해주고,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그 표정을 숨길 줄 아는 사람이 편하다. 세상을 너무 곧이곧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위인전에서 읽을 때는 좋지만 실생활에서 맞닥뜨리거나 함께 일하게 된다면 그런 사람만큼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도 드물다. 공자가 말하는 교언영색이란 말을 꾸미거나 낯빛을 좋게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진실하게 처신하란 말이다.


『논어(論語)』 자로(子路)편 27에는 인(仁)에 대해 “剛毅木訥近仁”이라 하여 인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좀더 자세히 소개하는 대목이 있다. 강(剛)이란 사사로운 욕심 없이 강직한 것을 의미하고, 의(毅)란 뜻이 굳세어 의연하다는 것을 뜻한다. 목(木)이란 꾸미지 않아 질박한 것을, 눌(訥)이란 말이 어눌한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곧 인이라 하지는 않았다. 다만 비록 이것이 인은 아닐지라도 인에 좀더 가까운 품성이라는 뜻이다.

앞서 공자에게 있어 인(仁)이란 ‘내 안의 본성을 깨우쳐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소박하게 정의한 적이 있다. 공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생각하는 성선설(性善說)에 가까운 편이었다. 물론 그는 기본적으로 현실적인 합리주의자였지만….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말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쉽고 간단한 말이지만, 막상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본성을 지녔다고 입증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당장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조차 품지 못하는 인간도 세상엔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공자는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한 자는 남을 사랑할 수 없으며, 남과 더불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여겼다.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이켜볼 때 그다지 본성이 선한 존재라고 여기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우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깨우치지 못한 자로서 내 안의 본성이란 쉽사리 온갖 욕망과 잡념들로 들끓고, 유혹에 쉽사리 흔들리고 만다. 거친 바다처럼 출렁이는 마음 밭 속에서 영혼은 언제나 낮은 포복 중이다.

‘인’을 남녀의 사랑으로 치환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라 해보면 교언영색의 의미는 좀더 명확해진다. 최소한 내 경험으로 보아 사랑이란 말을 이루는 주성분의 99.9%는 헛된 맹세였다. 사랑이 깨진 뒤에야 비로소 나의 모든 말이 교언이었으며, 나의 좋은 낯빛은 영색이었음을 알게 된다. 나의 사랑만큼은 진실하다고 말할 수 없다면 그는 공자가 말하는 세상의 어진 이가 아닌 셈이다. 그래서 공자는 세상에 어진 이가 드물다고 했는지 모른다.

스스로의 본성을 깨우치는 일조차 어렵거늘, 그와 같은 마음으로 나뿐만 아니라 남도 사랑하라는 공자의 가르침 속에 나타나는 인(仁)이란 실천하기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인간의 진심(眞心)과 진심 사이에도 벽이 있나니, 사랑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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