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라는 말을 뜻하는 한자어는 두 가지 모두 표준어로 쓰인다. 하나는 ‘하고자 할 욕(欲)’을 써서 ‘欲心’이고 다른 하나는 ‘욕심, 욕정을 뜻하는 욕(慾)’을 써서 ‘慾’이다. 세속도시에서 신선처럼 살다간 화가 장욱진(張旭鎭)은 늘 입버릇처럼 “나는 심플하다. 때문에 겸손보다는 교만이 좋고 격식보다는 소탈이 좋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뒤이어 나오는 격식과 겸손이 하나의 구(句)를 이루고, 교만과 소탈이 역시 또 하나의 구를 이룬다. 이 말을 다시 풀어보면 ‘나는 심플하다 그러므로 격식을 갖추느라 꾸미는 겸손보다 소탈한 교만이 좋다’는 뜻이 된다. 장욱진의 발언이 지닌 핵심은 단순성(simplicity)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여러 장의 황소 그림을 그려놓고, 자신이 대상을 단순화시키는 과정을 설명한 바 있다. 자세히 묘사된 황소에서 점점 살갗이 벗겨지고 결국 몇 개의 선으로만 묘사되는 황소는 여전히 황소였다. 그런 심정으로 나 역시 약간의 교만을 벗 삼아 말해보려고 한다.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에서 “문화망명지 - 깃발 없는 자들의 모임”으로 커뮤니티가 ‘분리’되었다. 분리란 표현이 마음에 좀 걸리긴 하지만 액면 그대로 ‘분리’라는 속성도 분명히 지니고 있다. 이걸 좀더 좋게 표현하면 발전이랄 수도 있는데, 나는 발전이란 표현보다는 진화 혹은 진보란 표현이 더 마음에 든다. 지난 2007년 연초에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는 정보트러스트어워드란 상을 받았다. 나는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는 현재 이미 완성된, 다시 말해 ‘welll-made’된 사이트가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해가는 사이트”라고 말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물학적 입장에서 진화(evolution)란 ‘돌연변이’에 의한다. 문화망명지의 진화 역시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돌연변이의 원인은 크게 내부적인 요인(자연발생적) 즉 유전물질의 복제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하거나 방사선이나 화학물질 등과 같은 외부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하는데 문망의 입장에서 보자면 바람구두라는 한 개인이 지향하고 주장해온 방향성에 공감하는 이들의 마음으로 전이(轉移)되고 수용(收容)되는 과정에서 변이(變異)를 일으키는 것을 내부적 요인에 빗댈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의 변화 혹은 각자가 살아온 과정, 경험, 문화적 체험의 차이로 우리 모두 제각각의 다른 인격체일 수밖에 없는 모든 망명자들의 합(合) 역시 내 입장에서만 보자면 나와는 다른 존재, 변이일 수 있다.

문화망명지의 진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이 마음 썼던 것을 잘 안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어느 측면에선 침울해지기도 했고, 아쉬움도 진하게 남았다. 본래 내 것이었고, 나로부터 비롯되었으니 내 것이라고 말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변화를 선택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중 하나는 인간은 하나의 점(點)에 불과하다는 내 평소 소신도 작용했다. 점과 점을 잇는 가장 짧은 선을 우리가 직선이라 부르듯 직선이든 곡선이든 모든 선(線)은 점과 점으로 이루어진다. 점은 그 자체로는 하나의 위치(point)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소실(消失)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가 이곳에서 꿈꾸는 것은 물론 문화망명이다. 그러나 ‘문화망명’이란 행위 역시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문화망명 조차도 나에겐 하나의 방법론이지 그 자체로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어쩌면 그 목적지를 상징하는 것이 ‘깃발’일지도 모르겠다. “~ism”이 하나의 이념이 되기 위해 지향점이 있어야 하겠지만 나에겐 목적보다는 그 과정에 이르는 행로(行路)만이 존재한다. 점과 점으로 연결된, 연대하는 인간의 선(‘관계’라 부를 수도 있는), 어쩌면 나에게 목적은 그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이 '깃발 없는 자들의 모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길 위에 서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누구도 멈출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길 위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나는 삶의 완성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점으로 시작되었고, 결국에 가서 다시 하나의 점으로 소멸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바람구두의 소실을 이야기하고, 안타깝게 여긴다고 말하지만 나를 움직이는 마음(慾心)은 그런 바람구두라는 하나의 점이 소실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는 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나는 당신이 있어야 비로소 직선이든 곡선이든 만들어가며 움직일 수 있다. 내가 당신보다 좀더 큰 점이라고 치자. 그래도 점은 점일 뿐 선이 될 수 없다. 우리가 하나의 선이 되기 위해 나는 나라는 점을 버리고 당신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반칠환 시인은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노랑제비꽃 화분이다”라고 노래하지 않던가.

“나는 심플하다. 때문에 나는 지금 누구보다 교만하게 말하고 있다. 한 송이 제비꽃이 피어나기 위해 지구가 통째로 필요한 것처럼 나라는 하나의 점이 온전히 유지되기 위해서도 당신들이 통째로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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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기획Ⅴ_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다리 놓을 교육은 뭘까



도정일·최재천, 『대담』, 휴머니스트, 2005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라는 다소 거창해 보이는 부제이긴 하지만 인문학자 도정일(경희대 영어학부 교수, 비평이론) 선생과 자연과학자 최재천(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생물학) 선생의 『대담』은 부제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밀도 있는 대화를 책 속에담아내고 있다. 『대담』은 지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벌인 10차례의 대담과 4차례의 인터뷰를 엮은 책으로 얼마 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파동과 맞물리면서 우리 사회에서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교류와 문제의식이 얼마나 소중한 만남인지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계기로 주목받았다. 이 책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서로 다른 담론체계와 배경문화를 가진 두 사람이 만나 유전자와 문화, 복제와 윤리, 창조와 진화, DNA와 영혼, 육체와 정신, 신화와 과학, 인간과 동물, 아름다움과 과학, 암컷과 수컷, 섹스·젠더·섹슈얼리티, 종교와 진화, 사회생물학과 정신분석학 등 13개 장章에 이르는 방대한 대화를 통해 소통을 도모한 내용을 담고 있다.

얼마 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진위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을 무렵,모 국립대학의 물리학과 교수로 계신 분과 함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차이와 요사이 유행하는 인문학이 자연과학의 용어와 개념을빌려 오는 문제에 대해 나름 진지하게 토론한 적이 있었다. 그때 미리 전제했던 것은 흔히 사회과학은 확률과 통계를, 자연과학은 정의定意와 확증을 통해 진리(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인문학은 무엇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일까라는 의문이었다. 과연 인문학은 학문, 과학이 될 수 있을까. 서구에서 과학은 ‘Science’인데, 이 말은어떤 ‘사물을 안다’는 라틴어 ‘scire’에서 유래된 말이다. 넓은 의미에서 과학을 의미하는 서구의 Science는 동양의 배울 학學과 연계될 수 있는 말이고, 그 자체로 학문學問을 의미한다. 그에 비해 동양의 과학科學이란 말에서 ‘科’는 곡식을 의미하는 ‘禾’를 말 ‘斗’로 헤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약간의 논리적 비약을 감수하고 말한다면, 서구에서의 과학이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동양의 과학은 ‘헤아린다’는 뜻이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서양에서 과학이 인식의 학문이라면 동양에서의 과학은 이해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사람의 눈에 ‘무지개’는 일곱 색깔이지만 과학자의 눈에는 빛의 파장이 400nm(나노미터)에서 700nm 사이의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빛이다. “하늘에 무지개 바라보면 / 내 마음 뛰노나니, / 나 어려서 그러하였고 / 어른 된 지금도 그러하거늘”이라고 노래했던 시인 워즈워드에게 ‘무지개’는 또 그 이상의 다른 존재였다. 자연과학의 눈으로 보면 “400nm에서 700nm 단위의 빛의 파장”을 지닌 무지개는 언제나 같은 현상이지만, 시인의 눈, 시시각각 변화해가는 인간의 감정으로 바라본 무지개는 늘 다른 무지개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는 1미터의 10억분의 1 단위를 다루는 나노미터 이상의 복잡성을 지니게 된다. 이와 같이 복잡한 ‘인간을 공부하는 동물’인 우리는 지금도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를 나누어 교육하는데, 어릴 적부터 서로 다른 세계로 구분된 교육 체계 속에서 두 집단은 서로를 낯선 세계에 속한 존재로 치부한다.


아르놀트 하우저는 “모든 진리는 일정한 현실성을 지닐 뿐이며 특정한 상황에서만 통용된다. 그것 자체로서는 정당한 주장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그것이 어느 무엇과도 연관을 갖지 않기 때문에 전혀 무의미한 주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면 이 두 주장은 하우저의 말대로 무의미한 주장에 그칠 수 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추구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지녔음에도 각기 다른 길을 추구한 결과 이제는 서로간의 이해와 소통마저어려워진 두 영역 사이에 다리를 놓아줄 매개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도정일과 최재천, 두 사람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통으로 논의하는 주제 “문화와 예술”이 아닐까 싶다. 어차피 학문의 경계란 인위적인 방법론에 불과하다. 미하일 바흐친의 말처럼 “존재한다는 것은 소통”한다는 것이며, 이제 학제 간[inter] 연구의 단순한 조합을 뛰어넘어 트랜스trans해줄 수 있는 가교이자 매개로서의 교육이 필요한 때다. 그것이 문화예술교육이다.




출처: 기전문화예술, 2006년 9.10월호 Vol.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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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없으나 걸어가면 만들어지리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막막했다. “관련분야의 전공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풍부한 소양을 갖추었다고 하기도 뭐한, 그런 분야의 책을 맡을 때는 오랫동안 망설이게 마련이다. …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책은 몇 가지 이유에서 내 손을 거칠 운명이었다.”는 옮긴이의 말이 없었다면 서평을 겸한 에세이 한 편을 써달라는 청탁에 끝내 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관련분야의 전공자가 아니고, 풍부한 소양을 갖췄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몇 가지 이유에서 내 손을 거칠 운명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고전적 지식인과 근대적 지식인

『다른 곳을 사유하자』는 ‘정주하지 않는 지식인의 삶과 자유’란 부제를 통해 더 자연스럽게 설명될 수 있다. 저자는 우리를 “어디에도 멈추지 않고 한없이 달릴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사유의 국제특급열차로 이끈다. 시대적으로는 근대 초 계몽주의 지식인 몽테스키외로부터 탈국가지역담론의 최신이론가 아르준 아파두라이에 이르고, 게오르그 짐멜, 한나 아렌트, 칼 만하임, 발터 벤야민, 피에르 부르디외 같이 우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지식인이 있는가 하면 ‘바벨의 도서관’에서 찾는 것이 빠를 것 같은 낯설고 생소한 이름들이 텍스트 위에 ‘유령의 집’이라도 들어선 것처럼 도처에서 잇따라 출몰한다. 글쓰기의 형식면에서도 저자의 텍스트는 자신의 사적인 체험으로부터 사상사의 한 대목, 때로는 픽션까지 동원하며 경계선상에서, 경계 너머로 자유로운 월경을 마다하지 않는다. 수많은 지식인들의 이름과 사유가 현란하게 호명되지만,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자기 고장이나 터전을 떠나지 않고도 다른 곳을 사유할 수 있다. 하지만 거리두기, 사회의 규준이나 권력 중추 및 기관들에서 벗어나는 행위는 바로 그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며 그곳의 긴장과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결국 비판적 지식인이란 ‘이동한 사람’이다. 실제적인 의미로는 자신의 배경이나 다소간 고통스러운 역사적 우연 때문에 본디자리에서 떠나야 했던 사람. 하지만 비유적인 의미에서는 인식론적 필요성 때문에 극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떠나야 했던 사람이다. - <본문 26-27쪽>


‘통행, 이주, 이동, 이산, 혼합, 전환’ 등 다양한 열쇠 말들을 통해 분류되고, 호명되고 있긴 하지만 저자가 불러내고 있는 지식인들은, 본래 뿌리내리고 있던 글쓰기의 거처를 떠나 고통스러운 거리두기를 통해 새로운 인식에 도달한 ‘비판적’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교조주의와 불관용, 지배계급의 보수적인 관성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유배하거나 망명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비평적 거리두기를 통해 새로운 길을 내고자 시도한다. 지식인의 정의에 대해 저자는 코저(L. Coser)와 네틀(J. Nettle)의 정의에 입각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저와 네틀은 단순히 개인이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에 따라서 지식인을 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들은 교육의 정도, 새로운 이념이나 사상을 창조했다고 해서 지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판 정신’,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심, 창조하는 이념과 사상의 내용에 의해 지식인을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식인을 하나의 계급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들 집단이 끝없이 분열되고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역사상 이들이 거의 유일하게 분열되지 않은 채 존재했던 시대가 있었다면(실제로는 이 시대조차 그럴 수 없었지만), 서구의 지적 고향인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 살았던 철학자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진리를 추구하고, 시민을 계몽하며, 정치가들에게 조언을 하는 최초의 지식인이자 동시에 지배계급이었다. 이 시대의 철학자들을 지식과 권력이 결합된 이른바 ‘고전적 지식인’이라 한다면, 프랑스 혁명 이후 출현한 지식인들을 가리켜 ‘근대적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는 계몽(교육)을 통해 누구나 지식인(철학자)이 될 수 있고, 특권적 소수(지배계급)가 지식의 생산과 배분을 담당하는 것에 맞서 공론공간을 확장하고자 했다. 계몽시대의 살롱문화는 봉건시대 절대왕정과 교회로부터 고립된 공간에 갇혀있던 지식인들에게 새롭게 제공되기 시작한 공론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계몽의 이상은 혁명 이후 부르주아의 교양으로 전락해갔다.

이런 까닭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적 지식인의 기원을 프랑스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특별한 이견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유발했고, 대중사회의 도래를 촉발했다. 언론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면서 잡지와 신문을 비롯한 대중매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매체들은 대중교육의 역할(사회화)을 맡으면서 새로운 지식인뿐만 아니라 새로운 대중을 생산했다. 다양한 대중매체의 출현은 지식인들에게 보다 넓은 지식시장을 제공했고, 신문과 잡지들은 근대화된 노동자 대중을 새로운 고객으로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지식인들은 거대한 집단을 형성하고, 매스미디어라는 공론공간을 장악하게 된다. 그 힘을 바탕으로 프랑스 지식인들은 정치권력과 사회권력에 도전하는 드레퓌스 사건 같은 앙가주망의 전통과 신화를 수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곳을 사유하자』는 지식인들의 앙가주망 전통과 신화를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도리어 20세기와 함께 막을 내리고 있는 지식인들의 앙가주망과 역할이 쇠락해가는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과정적 성찰의 세계로 우리들을 이끈다.

방황하는 화란인, 지식인의 저주

비판적 지식인에 이르는 과정적 성찰로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통행, 이주, 이동, 이산, 혼합, 전환’은 그 형태가 어느 것이든 현재에 멈춰있지 않는 상태, 정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화란인(Der Fliegende Holländer)>과 정반대에 위치한다. <방황하는 화란인>은 신의 저주를 받아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유령선을 탄 채 영원히 바다 위를 떠돌아 다녀야 하는 화란인 선장의 이야기이다. ‘망명자이자 통행자이자 경계에 있던’ 칼 만하임을 빌어 말하면 그는 ‘자유롭게 떠도는 지식인(free floating intellect)'인 셈이다. 그는 7년에 단 하루만 육지로의 상륙이 허락되는데, 이날 하루 동안 자신을 영원히 사랑해 줄 순수한 여인을 만나야만 저주가 풀려 죽음을 맞을 수 있다. 고통스러운 방황이 끝나고 안주하는 순간, 지식인은 죽을 수밖에 없다. 어째서 지식인들은 이처럼 끊임없이 방황해야 하는 것일까? 니콜 라피에르는 짐멜의 ‘이방인(etranger)’, 한나 아렌트의 ‘파리아(paria)', 에드워드 사이드의 ‘망명자(exile)' 등을 이용해 설명하고 있다.

짐멜은 이방인의 불편하고도 불안정한 이 상황이 그가 현재 머물고 있는 사회와 좀더 객관적인 관계를 맺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그의 사고는 집단의 편파성이나 특수성에 근거하지 않으므로 ‘객관성’이라는 특정 태도를 취하며 거리를 둘 수 있다. 이 객관성이란 초탈이나 무관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있는 동시에 거리두기, 관심과 무관심이 특수하게 조합되어 이루어진 태도다.” - <본문 76-77쪽>

그녀는 이후로 관념의 세계에 숨어서 진짜 세상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진짜 세상이 아무리 모질고 음험해도 어쩔 수 없었다. 파리아들에게는 정치적 사유와 그에 따른 행동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 본문 <88쪽>

팔레스타인 독립을 옹호하기는 했으나 자신의 나라를 포함하여 어떤 형태의 민족주의도 편들지 않았던 그는 “조금 비껴나 있는 것, 어긋나 있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두 세계 사이를 항해하는 그의 작품 또한 두 가지 모습을 띤다. 하나는 현재의 증인이자 비판자로서 20세기 망명 유럽지식인의 고독한 모습이다. - <본문 121쪽>


결국 지식인이란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에 적혀있는 “Amicus Plato, magis amica veritas(플라톤은 친구지만 진리는 그보다 더 큰 친구이다)”란 말대로 자발적 선택이든, 상대적인 조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든 진리 이외의 것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한 존재이다. ‘자기 고장이나 터전’, ‘사회의 규준이나 권력 중추 및 기관’들에서 벗어난다면 지식인으로서의 모든 책임을 다하는 것일까. 만하임은 지식인이 매인 데가 없더라도 책임까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 앞에는 “대립적인 계급들 중 어느 한편에 기꺼이 가담”하여 그 계급의 대변자가 되든가, “지식인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여 사회 전체의 변호사로서 임무를 완수”하든가 둘 중 하나의 운명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이란 개념이 언제나 논쟁적인 까닭은 지식인은 노동자와 달리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위치, 다시 말해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선동가가 되기를 꿈꾸었던 젊은 학위 소지자 린하르트는 작업 속도를 따라잡는 것만이 힘든 게 아니었다. 그는 노동자들의 수동적인 태도와 공포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진 프로파간다’에 지쳐버렸다. 게다가 그가 어디서 왔는지 밝혔을 때에는 심각한 몰이해에 부딪혔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공장에 들어온 사람들이었으니까! - 142쪽


지난 1980년대 우리 사회에서도 청년지식인들은 ‘위장취업’을 통해 노동현장으로 진출했다. 노동자들과 삶의 조건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개선해보겠다는 이들의 노력과 헌신을 통해 우리는 절차로서의 민주화를 성취할 수 있었다. 과거의 청년지식인들은 민변 출신 대통령, 노동운동가 출신 도지사, 학생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진보의 위기’, ‘지식인의 종말’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대면하고 있다. 민중계급 출신의 지식인 제라르 누아리엘은 비록 68혁명의 반체제운동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자신이나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이들은 오히려 “거대한 공장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관건이었다며 쥘 미슐레를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올라가는 게 아니라 올라가면서 자기 모습을 지켜나가는 게 어려운 것이다.”

지식인의 죽음 - 대중의 배신인가, 지식인의 배신인가

볼리비아 산중에서 체 게바라와 함께 포로가 되었던 레지 드브레는 “20세기 초 위풍당당하게 시작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영웅 서사시는 오류와 망상에 빠지더니 급기야 오늘날에는 조롱거리가 됐다. 그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공연을 중단하고 무대를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지식인의 죽음을 말한다. 그는 파리고등사범의 촉망받는 철학자, 알튀세르의 수제자였다가 무장게릴라로, 다시 학자로 돌아와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의 보좌관을 역임했으나 자신도 얼마 전엔 좌파 대신 우파 후보를 지지했었다. 어쩌면 그 자신이야말로 ‘근대의 종언’과 함께 나타나고 있는 ‘지식인의 죽음’이란 현상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인물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질타하고 있는 오늘날 지식인의 5가지 중병(重病), “자신들 속에 갇혀 대중 혹은 민중과 단절되어 있으며(집단자폐증),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면서(현실감 상실증) 여전히 사회의 모럴을 선도한다고 자만하고(도덕적 자아도취증), 들어맞지도 않는 예측을 쏟아놓고(만성적 예측 불능증), 자신의 이름이 자칫 잊혀질까, 매스컴의 리듬에 맞추어 설익은 견해들을 유창한 언변으로 늘어놓는다(순간적인 임기응변증)”는 지적까지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1987년 이후 민주화 20년을 맞아 ‘지식인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 논쟁의 연원은 여야 정권 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 정부는 학력 위주의 지식인 개념을 독창성, 능동성 위주로 확장시킨 ‘신지식인’이란 슬로건을 제시했다. 관이 주도한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평범한 대중이라도 그만한 능력과 식견을 갖추고 있다면 지식인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발상은 계몽주의 시대의 이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가 ‘제2의 건국’ 캠페인과 함께 대대적으로 주도했던 ‘신지식인’이란 것이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는가라는 산업적 측면만 고려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사회적 현실비판과 공적담론의 생산자였던 지식인은 오늘날 대중과 괴리되고, 비판정신이 거세된 채 논문연구업적과 연구비 따내기에 몸 바치는 논문기술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학은 산학연 협력이란 미명 아래 재벌로부터 기부금을 따내고, 그 돈으로 새로운 건물을 짓고 동판에 기업명을 새겨주며 한 몸이 되어갔다. 이 같은 지식인 사회의 위기 속에서 대중은 지식인과 학력을 열망하면서도 이에 대한 혐오 증세를 가중시켜 나갔고, 신정아 사건을 맞아 네티즌들의 연예인 학력검증 사태, 황우석 ․ <디 워>를 둘러싼 반지성적 논쟁으로 분출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현상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 마르크스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인간의 물적 욕망을 과소평가하고, 지배계급의 문화적 헤게모니에 장악된 대중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한 결과일까. 어떤 이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자본주의가 세계의 유일한 체제가 되어 역사는 종말을 고했고, 더 이상의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면 제국과 신자유주의가 ‘지구적 규모’로, ‘무의식적 수준’까지 관철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외부가 없으므로 ‘다른 곳’을 사유할 수 없고,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절망의 끝에서 떠나는 여행”의 본보기는 자살이다. 저자는 ‘자살’이란 출구가 없을 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데드 엔드(dead end)'라고 말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하루 평균 35.5명이 자살하는 세계 1위의 자살 국가다.

과연 역사는 종말을 고했고, 우리들은 새로운 외부를 상상할 수 없는 것일까.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갖지 않는다”란 테제의 의미를 그것이 역사를 갖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반대로 이데올로기가 모든 역사에 걸쳐 어디서나 나타나고 역사를 관통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다른 곳을 사유하자”는 방식으로 바꿔보면 진보는 모든 역사에 걸쳐 어디서나 나타나고 역사를 관통하므로 “진보는 역사를 갖지 않는다”, “진보는 축적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진보는 언제나 현재를 고민하는 가운데 출현하며, 그것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현실 속에 모순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을 사유하는 일, 문화망명

이제부터 앞서 이야기했던 운명 혹은 인연에 대해 이야기해보아야 할 텐데, 나는 지난 2000년부터 “사람으로 본 20세기 문화예술사 -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라는 사이트를 현재까지 8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 『다른 곳을 사유하자』가 내 손에 쥐어진 인연 중 하나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저자 니콜 라피에르가 책 속에서 주장하는 ‘다른 곳을 사유하자(pensons ailleurs)’는 말은 끊임없이 걸어가며 묻고 생각하는(과정적 성찰) 행위를 말한다. ‘다른 곳’이 지향하는 바가 반드시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와 그것이 배태하고 생산하는 문화의 바깥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현재와 다른 문화를 꿈꾸고 사유하며 이것을 실천하자는 주장은 내가 생각하는 ‘문화망명’과 닮아있다. 문화란 우리의 외부(세계)와 내부(의식)를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본성(뿌리와 근본)이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믿도록 만드는 신화의 체계를 지녔다. 새로운 세상은 기존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주어진 문화에서 벗어나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문화망명’이란 이 같이 외부를 상상할 수 없는 세계체제 속에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주체를 재설정하여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실천에 옮기는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는 20년 전 그토록 힘들고, 아프게 외쳤던 민주공화국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적자생존의 공포 속에서 재벌권력의 시장형 자기 계발 인재들에 둘러싸여 한없이 추락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마르크스를 변주해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해 보면 우리 인간은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만들어낼 수 없다. 우리는 현실의 조건들을 만들어 내지만, 반대로 우리들 또한 그 결과물이다. 우리는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 과거의 망령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이루고 있는 존재와 싸우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 아니 전 세계적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는 표면적으로는 경제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담론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위기 속에 길을 만들고, 다리를 놓을 자가 누구인가?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자면 ‘지식인은 지도하지 않는다. 그는 방향을 잡고, 길을 내고, 다리를 놓는다. 그대 길을 내는 자여, 길은 없으나 걸어가면 만들어지리.’




출처 : 기전문화예술, 200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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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이 무렵부터 아카이브에서 다루는 인물들의 개별 타이틀을 만들기 시작했다.
"딜런 토마스"는 아주 초창기에 만들어진 것인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글도, 타이틀도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무척 사랑하는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사진을 찾아 그의 개인 타이틀을 만들다 느낀 것인데
카메라에 담긴 그의 표정은 거의 언제나 궁색해보인다.
이때의 궁색이란 그가 가난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는 작품이 아니라 실제의 얼굴 자체도 세상을 향해
어떤 표정을 내어보여야 할지 늘 고민하는 흔적이 보인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의 얼굴은 그가 가지고 있던
여러 카드 패 혹은 가면들 중 하나였을 것 같다.

다자이 오사무 - http://windshoes.new21.org/novel-dazai.htm
딜런 토마스 - http://windshoes.new21.org/poem-dyla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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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어느새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어쩌면 실제로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들 마음속에는 오래전부터 핵폭탄 하나쯤, 핵미사일 하나쯤 이미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화가 이현세가 겉으로는 반군국주의를 표방하며 발표했던 "남벌(南伐)"이 1994년, 이때 이미 우리들은 마음속으로 일본을 핵공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품 속에서 이현세는 일본에게 모두 12조의 항복문서를 받는다. 그 중 일부만 소개해보면 "<제8조> 독도와 그 반경 200해리를 완전한 한국영토로 인정한다. <제10조> 경도 130도에서 140도상, 위도 345도상의 바다를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표기할 것을 명문화하고 이를 전세계에 통보한다. <제11조> 방어적 개념 외의 자위대 군사기구를 대폭 축소하고 일 년에 한 번씩 한국 측의 공식 사찰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남북한이 합동으로 일본을 공격(공격의 내용 중에는 핵공격도 포함되어 있다)해 항복을 받아낸다는 만화의 내용은 심정적 좌우익을 막론하고 대중의 혐일 감정에 편승해 화제가 되었고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상처 입은 우리 민족에 대한 비틀림을 바로 잡고... 청소년들에게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고, 김태흥(독도수호 및 일본교과서 왜곡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추천사를 통해 "청소년들에게는 자부심과 희망을 주고, 다시금 침략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는 일본에게는 준엄한 경고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보다 조금 앞서 1993년엔 이휘소 박사의 이야기를 드릴러물로 변부한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3백만부가 팔려나갔다. 이 소설의 내용 역시, 박정희 대통령의 핵개발을 돕던 천재적인 재미 핵물리학자가 미첩보국의 음모로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국립묘지에 묻히지만 한 기자의 끈질긴 추적으로 10여 년만에 전모가 밝혀진다는 내용이다.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는 일본에 의해 한반도가 공격당하고, 그에 맞서 남북한이 일본에 핵공격을 가한다는 내용이 다뤄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내면 깊숙이 감춰진 곳에서 핵폭탄은 이미 개발완료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북한의 민족주의가 대동단결하여 성취한 유일한 결과는 독재와 핵개발이다.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가장 소중한 이데올로기일까? 나는 그것이 이데올로기 시장에서 가장 값싸게 팔리는 박리다매 상품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주의는 누가 팔아먹든 잘 팔린다. 마치 닌텐도 DS의 작동법과 게임 내용이 단순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처럼...

* 당시 대문 이미지에 사용된 그림은 파블로 피카소의 판화 작품이다. 국제앰네스티에서 사용하는 것을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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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BGM : John Lennon - Imagine


우리 말 "속절없다"에서 "속절"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사전에도 잘 나와있지 않다. 다만 "속절(俗節)"이란 말은 제삿날을 제외하고도 세시나 추석, 한식, 단오 같이 철마다 조상을 받드는 제사를 의미한다. 예나지금이나 조상님 받드는데 으뜸인 민족이지만 예전에는 한다하는 집안에서는 달달이 돌아오는 '속절'에도 제사를 모셨다. 조상님 받들고자 하는 마음이야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매일반이겠으나 끼니조차 거르는 형편에 속절까지 챙기기 어려웠으리라.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속절에 조상님 모시는 일을 단념하거나 차라리 속절이 없었다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속절없이", "속절없다"는 말은 그렇게 나온 말이리라...

미국이 오랫동안 이라크에 금수조처를 취한 결과 수많은 어린이들이 영양결핍과 예방접종 등 기본적인 공중보건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숨져갔다. 그렇게 오랫동안 미국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는 구실로, 이라크에서 대량살상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드디어는 이라크를 침공했다. 온세계가 이것을 불의의 침략이라고 규탄했으나 우리는, 우리 정부는 이것을 승인했고, 지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제와 서구 제국주의의 침탈로부터 독립한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미국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고, 친미국가로 줄을 서고자 했던 것처럼 9.11테러 이후 세계는 다시 한 번 미국 앞에 줄을 섰다.

친구가 아니면 모두가 적(敵)이라는 무자비한 겁박 앞에서 우리는 국제연합(UN)의 승인도, 국제관계의 상식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윤리도 팽개치고 미국의 친구가 되기 위해 앞장섰다. 그 앞에서 나는 속절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자라서 속절없이가 아니었다. '속절없이'란 말은 자신이 그것을 행할 수도, 막을 수도 없어 체념하고 단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설움이 담긴 말이다. 나는 이미 벌어진 침략전쟁 앞에서 속절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다만 나는 이라크침략에 반대한다는 내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이라크 어린이들의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찾았다.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나의 무기력과 국제사회의 무력함 앞에 다시 한 번 가슴이 메어지는 듯 했다. 드디어 이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는 순간... 아니, 사진 속의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분노와 슬픔으로 목이 메어 책상에 머리를 박고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나는 썼다.

"나는 전범이다."
"무엇으로도 속죄할 수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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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누가 만들어주었는지 기억이 정확치 않은데...

문화망명지가 처음 생긴지 1주년을 기념하여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기념 배너다.

당시만 하더라도 바람구두연방공화국이라 불렀던 모양?
아니면 그 친구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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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앞서 이야기했던 것과 거의 동일한 경로로 만든 대문이었다.

닉네임을 '바람구두'로 정한 것은 좋았는데 그에 합당한 이미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무척 고심했었다. 지금처럼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몰랐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비가 와도 우산을 들고다닌 기억이 거의 없다. 늘 비를 맞고 다녔다. 아마도 그런 기억이 나에게 "바람구두"의 이미지로 장화를 택하게 만든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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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깊고 푸른 것이 어디 몸에 물든 멍뿐이겠습니까?
- 내 마음의 모래바람에게 보내는 여섯 번째 편지

혹시 내가 하고 있다는 문화망명지에 가보았을 테지. 그곳에 가면 망명신청이라고 회원가입을 위한 게시판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밝혔듯이 난 긴 글이 좋아. 만약 세상이 책이라면 난 세상을 벌써 다 읽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아주 어렸을 적에 나는 세상을 다 알아버렸어. 건방진 얘기라고 해도 하는 수 없다는 거, 그대가 뭐라 하건 세상의 바닥을 이미 보아버렸다는 내 느낌, 조금도 변함이 없을 거라는 거 그대도 이미 알겠지.

그래서 그래, 긴 글을 원하는 건. 내가 아직 읽지 못한 것이 있다면 당신이니까. 내게 그것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그것이 아니라면 난 이미 다 읽었으니 네가 읽은 걸 나에게 보여달라고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아마 둘 다일 가능성이 제일 클 거 같네.

나는 '광기' 혹은 '몰입'을 사랑해. 그 감정 자체를 사랑하지. 며칠 전 서재 페이퍼에 한 줄짜리 글을 올린 적이 있었어. 지금은 지워버렸지만, 거기엔 아마 이렇게 쓰여 있었을 거야. “내가 미친 듯이 일에 열중하는 건 잊기 위해서”라고.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이든 그것이 내가 도전하기 힘겨운 일이듯 무언가 미친 듯이 몰입하고 싶어. 아마도 그 까닭은 어린왕자가 도착했던 ‘술주정뱅이의 별’에서 주정뱅이가 술을 마시던 이유와 비슷할 거야.

그 다음 별에는 술꾼이 살고 있었다. 그 방문은 매우 짧았지만 어린 왕자를 깊은 우울에 빠뜨렸다.
"뭘 하고 있어요?" 빈 병 한 무더기와 술이 가득 차 있는 병 한 무더기를 앞에 놓고 말없이 앉아 있는 술꾼을 보고 그가 말했다.
"술을 마시지" 침울한 표정으로 술꾼이 대꾸했다.
"왜 술을 마셔요?" 어린 왕자가 그에게 물었다.
"잊기 위해서지" 술꾼이 대답했다.
"무엇을 잊기 위해서요?" 측은한 생각이든 어린 왕자가 물었다.
"부끄럽다는걸 잊기 위해서지" 머리를 숙이며 술꾼이 대답했다.
"뭐가 부끄럽다는 거지요?" 그를 돕고 싶은 어린 왕자가 캐물었다.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이렇게 말하고 술꾼은 침묵을 지켰다.
그래서 난처해진 어린 왕자는 길을 떠나 버렸다.
"어른들은 정말 참 이상하군" 하고 어린 왕자는 여행을 하면서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대가 내미는 손길은 술주정뱅이를 돕고 싶었던 어린왕자의 관심 같은 걸지도 몰라. 영화 <라스베거스를 떠나며>에서 창녀 세라는 술꾼 벤을 사랑하지만 그를 술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었지. 벤에게 필요한 것이 여자였을까? 벤에게 필요한 건 대화 상대였을 뿐이야. 그런데 이게 재미있어. 벤에게 필요한 건 정말 대화상대일 뿐일까. 처음엔 벤이 세라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거든. 그가 영혼의 친구를 알아보는 재주가 있었건 아니건 간에 벤에게 세라는 영혼의 친구였다는 생각이 들어. 영혼의 친구라고 해서 구세주가 되는 건 아니야. 벤은 이미 세상의 바닥을 보았고, 더 이상 깨어있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벤은 세라에게 조건을 내걸지. 자신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지 말 것. 동시에 그도 세라의 몸을 파는 직업에 대해 참견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사람들은 이것을 마치 동종의 거래이거나 대등한 관계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사랑이 뭐지? 사랑이란 지독한 참견이거든. 내가 너의 삶에 개입하고 싶다는 의사표현이란 거지. 그런데 벤은 세라보고 자신이 술을 마시며 스스로를 파괴해 가는 걸 방치하라고 말하는 거지. 반대로 세라가 몸을 파는 것도 참견하지 않겠노라고. 이게 대등한 관계설정일 수 있을까? 벤이 세라를 사랑했을까? 난 대등한 관계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사랑했다고는 생각해. 무어라 설명할 순 없지만 난 그걸 너무 잘 알 수 있거든. 어떤 사람들은 반문할 수도 있을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고 말이야. 난 그런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어. 대관절 사랑이 뭔데? 사랑하면 구원받을 수 있어? 사랑하면 인생이 달라지나? 사랑하면 이 지겨운 삶이 갑자기 연분홍빛으로 변하기라도 한데?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란 거야. 어떤 종류의 인간에겐 그런 환상을 더 이상 품을 수 없을 만큼 세상은 지독한 경험을 선사하지.

벤이 세라의 곁에 머물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였어. 절대,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라고 말하지 말 것이 아니라 절대, 절대로 사랑하지 말 것이었지. 세라가 벤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이상, 사랑하니까 네 삶에 개입하고 싶다거나 안타깝게 바라보지 않는 한 벤은 세라 곁에 머물 수 있지. 왜냐하면 벤은 인생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았거든. 하지만 세라는 벤을 사랑하고, 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 나는 모든 대화란 기본적으로 섹스와 같다고 생각해. 아니 반대로 섹스도 대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야 옳을까. 또 섹스를 한다고 모두 아기를 만드는 것도 아니지만, 섹스 한다고 해서 꼭 사랑하는 것도 아니니까. 사랑 없이 어떻게 섹스를 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 섹스가 곧 사랑인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 그런 경우도 마찬가지겠지. 사랑을 통해 인생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 가치있는 삶으로의 질적인 변화를 꿈꾼다고 하자고. 그건 대화도 마찬가지지. 어쨌거나 둘 사이의 공통점이 있다면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대화하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하거나,(독서 혹은 정신과 상담처럼) 아니면 상대를 호감의 대상으로 판단한 결과인 거지. 싫어도 억지로 하는 섹스가 강간인 것처럼 싫어하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말을 거는 것도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폭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

벤은 죽기 직전에야 세라와 마지막으로 섹스를 하지만 영화적 장치로서 극적인 장면이긴 해도 그것이 반드시 사랑의 표현이랄 수는 없다고 생각해. 내 입장에서 보자면 벤은 오래전부터 세라를 사랑했으니까. 잔말이 길었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좋았던 이유는 네게 편지를 쓰는 동안엔 내가 괴롭지 않았다는 거야. 나는 해마다 겨울나기가 무척 고통스러워. 왜 그런지, 나 스스로는 잘 알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는지는 몰라도 내게 꼭 필요했던 사람들이 꼭 겨울에 떠났거든. 징크스라고 말하는 게 아냐. 겨울에 안 좋은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있다는 말을 하는 거지.

그대는 나에게 망망대해에 유리병편지를 띄우는 사람이라고 말했지. 그리고 그대의 안부가 반갑냐고도 물었지. 물론이야. 참견하는 걸 병적으로, 지독히 싫어하지만 누군가와 대화하는 걸 난 섹스만큼 좋아해. 둘 중 어느 걸 더 좋아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좋아하지. 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대신, 일하는 걸 무척 좋아해. 만약 이 일이 - 글 쓰고 읽는 것도 - 말하는 것과 같은 것, 최소한 흡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해하기가 더 쉽겠지만... 누군가와 대화할 수 없을 때가 많았어. 그 상대(그 상대가 꼭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세상일 수도 있는 거니까)가 마음에 안 들 때도 많았고, 그래서 나는 혼자 글을 쓰고, 남의 글을 읽는 걸 좋아해. 왜냐하면 그 동안엔 날 잊을 수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어린 왕자가 찾아간 별에서 만난 술꾼 같은 거야. 어느 날 어린 왕자가 날 찾아와서 "뭘 하고 있어요?" 다 읽어서 한쪽으로 쌓아놓은 책 한 무더기와 앞으로 읽어내야 할 책 무더기를 앞에 놓고 말없이 앉아 있는 나에게 어린왕자가 만약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책을 읽지"라고 침울한 표정으로 대꾸했을 거야. "왜 책을 읽어요?" 어린 왕자가 나에게 묻는다면 물론 "잊기 위해서지"라고 답하겠지. "무엇을 잊기 위해서요?"라고 그가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면 "날 잊기 위해서지"라고 고개를 숙이며 답했을지도 몰라. "뭐가 부끄럽다는 거지요?" 어린 왕자가 날 돕고 싶은 마음에 캐물었다면 "책만 읽는 게 부끄러워!" 라고 답한 뒤엔 입을 닥칠지도 모르겠어. 솔직히 책을 읽는 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지. 그것만큼 의미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어. 하지만 내가 처음 책을 읽게 되고,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술꾼의 그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어. 일찌감치 부모와 헤어진 뒤 작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얹혀살면서 난 내내 스스로를 기생충처럼 생각했거든.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야. 87년의 기억이 그 뒤에 또 병풍처럼 서 있거든. 그렇다고 이 두 가지만 알게 되면 나에 대해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는 아니길 바래.

어쨌거나 그걸 잊고 싶어서 책을 읽었고, 책을 읽고 남들 앞에서 내가 읽어낸 지식들을 토해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동안엔 내가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어도 내가 존재할 이유가 있고, 어딘가에 속한 자라는 느낌 같은 건 만들어낼 수 있었어. 하지만 그런 자기존재감 같은 건,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 같은 거였지. 책장을 덮거나 글을 쓰다가 중도에서 멈춰버리면 그런 느낌은 어느 사이엔가 생생하게 다시 살아나곤 했으니까. 그런데 이쯤에서 밝혀두고 싶은 건 그렇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묻는 사람들 때문에 피곤해지곤 한다는 거야. 그래서 앞서 먼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란 영화 이야기를 한 거야.

나도 사랑이 구원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 아니, 솔직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소설가 최인훈 선생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던가? 최인훈 선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지. "참여냐 아니냐의 문제는 그러므로 각자가 인간을 미래로, 열려진 지평으로 인식하느냐 닫혀진 지평 속에서 환상의 초월만이 가능한 존재로 보느냐는 데에 귀착된다. 얼핏 생각에 개체로서의 인간은 한정된 역사적 시간이라는, 갇혀진 지평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인간을 그렇게만 본다면 인간에서 '부정'의 계기를 간과하는 것이며, 인간은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탈출하려는 존재이며, 그렇지 않다면 물체에 지나지 않으므로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부단히 현실을 부정하여 나날이 새롭게 사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만이 구원일 수 있는지에 대해 나는 단언할 수 없어. 사랑하기 위해선 또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하니까. 내가 세상을 다 보아버렸다거나, 읽어버렸다고 하는 느낌과 인식은 여전해. 하지만 최 선생 말씀대로 그렇다고 해서 내 지평을 부정할 수 있는 계기를 버릴 수도 없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그러하듯, 내가 온전하게 '나'이기 위해서도 나는 부단히 현실을 부정하여 나날이 새롭게 살아갈 방도를 궁리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가끔 나는 내가 이승에 별로 욕심이 없단 생각이 들어. 이승에 맺힌 것, 남긴 것이 별로 없어서일지도 모르지만 그 보다는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이 세상에 나 하나 없어도 별로 문제될 게 없다는 걸 안다는 거야. 그 의미를 누가 부여해줄 수 있겠어? 나도 내가 다 아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늘 반문하곤 해. 하지만 난 가끔 날 사랑하는, 혹은 내가 사랑하게 된 이들에게 무척 소홀한 사람이란 이야기를 듣곤 하지. 붙잡을 수 없을 것 같다고도 하고.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 게 맞느냐고 번번이 확인하듯 되묻는 말을 들어. 그럴 때마다 난 정말 떠다니는 먼지가 되는 기분이야. 어쨌든 그대가 나를 앞으로 오십년쯤은 사랑해주어도 괜찮을 사람이라고 말해주었을 때 기분은 좋아지더군.

내가 전에 말했지. 깊고 푸른 것이 어디 몸에 물든 멍뿐이겠느냐고. 사람들은 바다, 깊은 것을 심연(深淵)이라 하지만 그것도 한자풀이로 따져보면 기껏해야 지구라는 별에 놓인 한낱 깊은 연못에 불과하지. 바다가 제 아무리 깊어도 말이야. 글을 쓰는 자가 세상을 다 읽어낸 자는 아닐 거야. 하지만 세상과 끊임없이 겨루고 견주어가며 도달할 수 없는 곳을 향한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길 위의 여행에 미친 자라 생각해. 신영복 선생이 말한 지남철처럼 그것이 파르르 바늘 끝을 떨고 있는 동안엔 믿어도 괜찮아. 난 어차피 확신을 갖고 살아가기 보단 나 자신조차 도마 위에 올려놓고 끊임없이 살펴보는 자니까. 그래서 가장 행복할 때조차 후회하고, 반성하잖아.

한 고비 넘기면 또 한 고비. 삶과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과 많은 말들을 듣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은 충고를 하고 듣고 살아왔지만 사랑에 대해 유일한 진리가 있다면 곁에서 마지막까지 버텨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비록 제 몸과 마음이 온통 멍투성이, 상처투성이라 할지라도 떠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텨주는 거. 사랑도 사람의 일이고 사람의 하고 많은 감정 중 하나인데 변하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남들 하는 거, 다른 감정들처럼 배신도 하고, 별별 거 다하겠지. 그래도 남는 게 사랑이고, 곁에 남아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냐고. 울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랬다는 군. 너희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느냐고. 지금도 드는 생각이지만 정말 어떻게 눈을 감으셨다니? 그러니 오래 버텨줬어야지. 누이가 6학년, 내가 3학년 때 일이야. 그리고 올해 내 나이가 딱 울 아버지 돌아가실 때 나이지. 이만하면 올해 내가 유난히 우울해도 괜찮은 이유가 되지 않을까. 올해만 넘기면 내가 아버지보다는 좀 더 이승에 머문 셈이니까.

이런 편지를 술도 안마시고 쓸 수 있을 만큼 난 냉정해. 그런 인간이니 내가 날 좋아하는 일이라고 쉬울까, 안 그래! 흐흐. 어쨌든 내 결론은 그래. 사랑 같은 거 하지 않아도 좋고, 사랑 같은 거 해주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저 곁에 오래 머물러 달라고 말하는 건지도.

* 추신 : 내일 읽어보면 지워버릴 것 같아서 지금 그냥 보낸다. 소심한 구석도 있잖아. 내가...아마도 이 편지는 나에 대해 내가 쓴 글 중에 가장 정직한 글이란 생각이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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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내 마음의 모래바람에게 : 네 번째 편지
- 오세영의 시 <나를 지우고>를 읽으며 든 생각들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를 지운다는 것은 곧
너를 지운다는 것,
밤새
그리움을 살라 먹고 피는
초롱꽃처럼
이슬이 이슬을 지우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안개를 지우면
푸른 하늘이 되듯
산에서
산과 더불어 선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내 마음의 모래바람에게...

이상하게도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착 가라앉아 버립니다.
마치 내 안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반성문을 쓰고 있는 듯이...


늙은이에게 젊은이는 더이상 아무 것도 배우려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나이 먹은 교수는 그저 나이 먹은 교수일 뿐 그가 평생을 쌓아온 학문적 업적 같은 것은 쇠락해버린 초가에 덩그마니 얹힌 박 같이 허울만 좋은 이름일 뿐 특별한 권위는 바랄 것도 없고, 존경은 더할 말이 없는 시대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경쟁력이 으뜸인 시대에 고려장 지낼 날이 멀지 않다는 증빙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너희들도 언젠가 늙을 것이란 말은 충고도, 선언도 아닌 악담인 게지요.



내가 아직 '문학은 나의 힘'이라 외치며 술잔을 높이 들던 시절, 아직 고왔고 아름다운 시인이자 나의 은사에게
"시인은 늙기 전에 죽어야 합니다."라며 호기롭게 떠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시인이었던 은사는 여전히 살아 제자들을 가르칩니다. 머리가 많이 새었지만 여전히 멋있을 겁니다. 1942년생인 시인 오세영의 시를 읽습니다. 당신의 이 시를 읽노라니 문득 『장자(莊子)』 「달생(達生)」에 나오는 ‘목계지덕(木鸂之德)’의 고사가 떠오릅니다. 다들 잘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중국의 어느 왕이 투계를 몹시 좋아하여 기성자란 사람에게 최고의 싸움닭을 구해 최고의 투계로 만들도록 합니다. 기성자란 인물은 당시 최고의 투계 사육사였는데, 왕이 맡긴지 십일이 지나 기성자에게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라며 묻습니다. 기성자는 단호히 대답하길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아직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라 했습니다.


다시 십일이 지나 왕이 또 기성자를 불러 물었습니다. 그러자 기성자는
“아직 멀었습니다.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도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라 했습니다. 왕은 다시 십일이 지나 기성자에게 묻습니다. 기성자는 역시 “아직 멀었습니다. 조급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입니다. 그 눈초리를 버려야 합니다.”라 답합니다. 다시 십일이 지나 왕이 또 묻자, 기성자는 그제야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 완전히 마음의 평정을 찾았습니다. 나무와 같은 목계가 되었습니다. 어느 닭이라도 이 모습만 봐도 도망갈 것입니다.”라고 답했다는 고사입니다.


얼마 전 케이블 TV에서 해주는 영화 <미션>을 다시 보았습니다. 오래전 문망의 영화 코너에 글을 올린 적도 있었던 영화입니다. 그 사이 내가 늙어 유순해진 것인지 어렸을 적엔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 신부보다 로드리고(로버트 드니로) 신부가 더 좋고, 더 잘 이해되었었는데 이번엔 가브리엘 신부의 마음도 알 것 같더이다. 누군가에 대해 잘 알기 위해선 그 사람이 있는 곳보다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 사람에 대해 들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운명이란 것도 때로는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곳보다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이루어질 때가 더 많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듯합니다.



시인 오세영은 늙었고, 나는 아직 젊습니다. 그 말은 내가 더 진보적이란 말이 아니라 내가 당신에게 배울 것이 더 많다는 뜻이란 걸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이란 걸 알 것 같습니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란 구절에서 나는 나무가 홀로 나무일 때는 결코 숲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자신의 존재를 지울 때만 비로소 숲을 이룰 수 있다는 걸 배웁니다.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라는 당신의 가르침을 전부 알 수는 없겠으나 내 나름으로 살아가며 더 깨우칠 일이겠지요.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고서야 어찌 밀밭을 이룰 수 있을까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로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말이 또한 이와 흡사하겠지요. 말 그대로 해석하면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숨어 있다는 뜻이지만 이때의 진(塵)이란 속세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겸손하란 뜻도 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자신이 지닌 능력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이를 내세우지 말고, 세상의 속된 사람들에게 눈높이 맞추란 뜻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말은 오늘날 고립되어 가는, 위기에 처한 진보, 좌파를 자임하는 (저 같은)사람들이 귀담아 들을 만한 구절이란 생각이 듭니다. 리저호우(李澤厚)는 『고별혁명(告別革命)』이란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개량으로 혁명을 대체한다」는 글을 썼습니다.


지난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누구나 ‘개량주의자’란 지적을 마음 한 구석에선 치욕처럼 느낍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제 개량주의자였음을 자백하는 고해성사를 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혁명가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그와 같은 현실이 슬픈 사람입니다. 리저호우는
“1895년, 갑오해전에 패배한 이후로 중국은 줄곧 ‘혁명의 길’과 ‘개량의 길’ 사이의 논쟁에 휘말려 있었다. 전자는 ‘돌변突變’ 즉, 계급투쟁이라는 극단적인 방식(폭력수단)으로 국가기구를 전복시켜 역사의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점변漸變’ 즉, 계급협력의 비폭력 수단으로 국가적, 사회적 자아의 경신을 추구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좌파와 진보를 단순히 민주노동당이나 참여연대, 민주노총 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이 그나마 가장 대표적인 집단인 건 사실이겠지요. 이들 중 누구도 ‘혁명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류 좌파(진보)는 모두 개량주의자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답답하게 여기는 것은 이들 중 누구도 솔직하게 개량주의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니, 어쩌면 모두가 그 사실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여기기에 말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미 수차례 말했는데 저만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것이 어찌되었든 우리나라의 좌파들, 진보들은 아직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선 개량주의에 대한 혐오와 혁명에 대한 동경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듯 보입니다. 이건 남의 이야기라 하기 좋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저 자신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 끝에 나온 말입니다. 그것이 ‘돌변’이든, ‘점변’이든 추구하는 바를 리저호우의 말에서 빌리면 결국 국가적, 사회적 자아의 경신에 있습니다. 대체로 국가적 자아의 경신에 실패하는 경우, 국가와 지배계급이 택하는 손쉬운 해결책은 역사 이래 전쟁이었던 경우가 많았고, 피지배계급이 택하는 해결책은 폭동이나 혁명이었습니다. 전쟁은 자본가들의 혁명, 우파들의 혁명인 셈이지요. 역사가 한 개인이나 집단의 공과를 심판한다는 믿음을 버리고 났을 때, 역사는 그저 냉정하고 잔인한 기술(記述) 방식의 하나일 뿐입니다.



저는 중국식 유물론의 효시를 관자(管子)로 봅니다. 그는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였고, 후세 제갈량이 닮고 싶다고 말했던 관중(管仲:?~BC 645)입니다. 관중하면 우선 “관포지교(管鮑之交)”만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관중은 제나라 민중들이 영웅처럼 떠받들던 재상이기도 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통해 마치 일종의 제왕론을 펼친 사람으로만 오해되는 것처럼, 관중 역시 그와 흡사한 사람으로 오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는 『관자(管子)』 「목민편(牧民篇)」에 이르길
“광에 먹을 것이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榮辱)을 안다(倉凜實則 知禮節, 衣食足則 知榮辱)”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유물론의 본질을 지극히 천한 것으로 끌어내린다는 오해를 감수하고라도 말하자면, 결국 유물론은 인간이 정신만으로 살 수 없다는 현실주의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한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예수의 말에 반대하는 주의, 주장은 아닙니다. 도리어 그 반대에 가깝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은 빵만으론 살 수 없지만 빵 없이는 살 수 없다’가 우선인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급진은 명분이 아니라 개량주의자들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일은 아닐런지요. 아니, 명분만 내세운 채 거짓희망을 주느니 차라리 보다 철두철미한 개량의 길로 가는 것이 도리어 급진의 길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비판의 말만 앞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개량의 길로 질질 끌려갈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앞서 성찰하고, 개량하고, 개혁하고, 보수하여 실현가능한 희망, 급진을 실천해내는 것이 좀더 효과적인 전략이 아닐까 고민하게 됩니다.


1987년 이후 20년이 흘렀고, 1997년 이후 10년이 흐르고 있습니다. 프란츠 파농은
“민중에 대한 아첨을 경계하라”고 말했는데, 오늘 이 땅의 지식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여전히 민중에 대해 아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1980년대를 휘감았던 민중주의는 역사와 민중을 지혜로운 심판자, 추상적인 진리로 추어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 때 말하는 민중이란 언제나 결국 각성한 민중으로서의 소수자였을 뿐임을 이제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절차적 민주화라고 현재의 민주주의를 폄하하지만,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입니다. 지금 돌변의 방식을 택하자고 외치는 진보도, 좌파도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좌파는 여전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개량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으며, 도리어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 더 많은 존경이 돌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 민주노총에 등을 돌리고 있을까를, 아니 지지하지 않는 것일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어째서 민중들이 자신의 계급을 배신하는가, 지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론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와 체제, 교육, 언론 등 수많은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것이 모두 타당하다는 사실은 아마 아는 이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좀더 솔직하게 고백할 때입니다. 1980년대의 분열을 오늘까지도 그대로 끌고 왔으며, 우리들의 현실을 비판하는 일에 능숙한 반면, 현실적인 대안이나 희망을 제시하는데 있어서는 그간 얼마나 서툰 존재들이었는지 말입니다. 거기에 더해 과거 전대협 의장을 비롯한 학생운동권 중 상당수가 결국 아무런 명분도 없이 현실정치에 투항해버렸고, 민주노총은 도덕성에 상처를 받았으며, 시민단체들은 정권교체 이후 하나둘씩 체제내화 되는 과정에 있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민중에게 아무런 희망도, 비전도 주지 못한 채, 과거와 같은 방식의 운동, 명분이 옳으니까, 정치적으로 올바른 싸움이기 때문에 혹은 우리가 언제는 언론의 지지를 받고 싸운 적이 있냐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교만이고, 자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지우고 나무, 숲, 산이 되는 희생, 싸우지 않고 이기는 나무 닭의 덕,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는 대신 자신을 낮춰 세상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겸손, 관자의 실용주의, 태산과 같은 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미FTA 타결 이후 평소 조용하기가 산과 같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허세욱 선생이 분신을 하고, 예천에서는 농민 한 분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마을 사람들에게 공기총을 쏘았습니다. 사는 건 앞으로도 힘이 들겠지요. 하긴 우리 네 사는 세상이 한 번이라도 살기 좋았던 적은 없습니다. 오늘 아니면 내일, 내일 아니면 모레가 더 좋은 세상 만들어보자고 다들 고생하시는 거 압니다. 다만 마르크스주의는 고정된 말씀에 얽매이는 종교가 아니라 언제나 변화하는 세상에 가장 적절하게 대응해온 철학이기도 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예전에 제가 썼던 글을 반복하는 것으로 이 지루한 고해성사를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독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데도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방어할 힘도 없는 가엾은 사람을 뭉개버리는 인간들은 누구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선량하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그저 단순하게 선량하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다 아우른다. 이것은 어떤 지성보다도, 옳다고 주장하는 우쭐함보다도 더 우월한 것이다.” 사회주의는 양심의 기억이자, 동시에 패배의 기억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회주의는 우리들의 양심이 늘 손쉽게 욕망에 굴복할 수도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건 어제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불행히 미래에도 그럴 것 같습니다. 비록 우리의 희망이 저 멀리, 지금은 비록 그 길이 보이지 않으며 우리가 향하는 길 양 편으로 무수한 무덤들이 실패를 증명하지만, 그 길이 우리의 양심이 손가락질하는 방향인 이상 그리로 갈 수밖에 없겠지요. 그 길 위에서 외로운 한 명의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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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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