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없으나 걸어가면 만들어지리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막막했다. “관련분야의 전공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풍부한 소양을 갖추었다고 하기도 뭐한, 그런 분야의 책을 맡을 때는 오랫동안 망설이게 마련이다. …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책은 몇 가지 이유에서 내 손을 거칠 운명이었다.”는 옮긴이의 말이 없었다면 서평을 겸한 에세이 한 편을 써달라는 청탁에 끝내 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관련분야의 전공자가 아니고, 풍부한 소양을 갖췄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몇 가지 이유에서 내 손을 거칠 운명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고전적 지식인과 근대적 지식인

『다른 곳을 사유하자』는 ‘정주하지 않는 지식인의 삶과 자유’란 부제를 통해 더 자연스럽게 설명될 수 있다. 저자는 우리를 “어디에도 멈추지 않고 한없이 달릴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사유의 국제특급열차로 이끈다. 시대적으로는 근대 초 계몽주의 지식인 몽테스키외로부터 탈국가지역담론의 최신이론가 아르준 아파두라이에 이르고, 게오르그 짐멜, 한나 아렌트, 칼 만하임, 발터 벤야민, 피에르 부르디외 같이 우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지식인이 있는가 하면 ‘바벨의 도서관’에서 찾는 것이 빠를 것 같은 낯설고 생소한 이름들이 텍스트 위에 ‘유령의 집’이라도 들어선 것처럼 도처에서 잇따라 출몰한다. 글쓰기의 형식면에서도 저자의 텍스트는 자신의 사적인 체험으로부터 사상사의 한 대목, 때로는 픽션까지 동원하며 경계선상에서, 경계 너머로 자유로운 월경을 마다하지 않는다. 수많은 지식인들의 이름과 사유가 현란하게 호명되지만, 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자기 고장이나 터전을 떠나지 않고도 다른 곳을 사유할 수 있다. 하지만 거리두기, 사회의 규준이나 권력 중추 및 기관들에서 벗어나는 행위는 바로 그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며 그곳의 긴장과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결국 비판적 지식인이란 ‘이동한 사람’이다. 실제적인 의미로는 자신의 배경이나 다소간 고통스러운 역사적 우연 때문에 본디자리에서 떠나야 했던 사람. 하지만 비유적인 의미에서는 인식론적 필요성 때문에 극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떠나야 했던 사람이다. - <본문 26-27쪽>


‘통행, 이주, 이동, 이산, 혼합, 전환’ 등 다양한 열쇠 말들을 통해 분류되고, 호명되고 있긴 하지만 저자가 불러내고 있는 지식인들은, 본래 뿌리내리고 있던 글쓰기의 거처를 떠나 고통스러운 거리두기를 통해 새로운 인식에 도달한 ‘비판적’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교조주의와 불관용, 지배계급의 보수적인 관성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유배하거나 망명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비평적 거리두기를 통해 새로운 길을 내고자 시도한다. 지식인의 정의에 대해 저자는 코저(L. Coser)와 네틀(J. Nettle)의 정의에 입각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저와 네틀은 단순히 개인이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에 따라서 지식인을 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들은 교육의 정도, 새로운 이념이나 사상을 창조했다고 해서 지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판 정신’,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심, 창조하는 이념과 사상의 내용에 의해 지식인을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식인을 하나의 계급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이들 집단이 끝없이 분열되고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역사상 이들이 거의 유일하게 분열되지 않은 채 존재했던 시대가 있었다면(실제로는 이 시대조차 그럴 수 없었지만), 서구의 지적 고향인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 살았던 철학자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진리를 추구하고, 시민을 계몽하며, 정치가들에게 조언을 하는 최초의 지식인이자 동시에 지배계급이었다. 이 시대의 철학자들을 지식과 권력이 결합된 이른바 ‘고전적 지식인’이라 한다면, 프랑스 혁명 이후 출현한 지식인들을 가리켜 ‘근대적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는 계몽(교육)을 통해 누구나 지식인(철학자)이 될 수 있고, 특권적 소수(지배계급)가 지식의 생산과 배분을 담당하는 것에 맞서 공론공간을 확장하고자 했다. 계몽시대의 살롱문화는 봉건시대 절대왕정과 교회로부터 고립된 공간에 갇혀있던 지식인들에게 새롭게 제공되기 시작한 공론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계몽의 이상은 혁명 이후 부르주아의 교양으로 전락해갔다.

이런 까닭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적 지식인의 기원을 프랑스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특별한 이견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산업화와 도시화를 유발했고, 대중사회의 도래를 촉발했다. 언론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면서 잡지와 신문을 비롯한 대중매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매체들은 대중교육의 역할(사회화)을 맡으면서 새로운 지식인뿐만 아니라 새로운 대중을 생산했다. 다양한 대중매체의 출현은 지식인들에게 보다 넓은 지식시장을 제공했고, 신문과 잡지들은 근대화된 노동자 대중을 새로운 고객으로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지식인들은 거대한 집단을 형성하고, 매스미디어라는 공론공간을 장악하게 된다. 그 힘을 바탕으로 프랑스 지식인들은 정치권력과 사회권력에 도전하는 드레퓌스 사건 같은 앙가주망의 전통과 신화를 수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곳을 사유하자』는 지식인들의 앙가주망 전통과 신화를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도리어 20세기와 함께 막을 내리고 있는 지식인들의 앙가주망과 역할이 쇠락해가는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과정적 성찰의 세계로 우리들을 이끈다.

방황하는 화란인, 지식인의 저주

비판적 지식인에 이르는 과정적 성찰로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통행, 이주, 이동, 이산, 혼합, 전환’은 그 형태가 어느 것이든 현재에 멈춰있지 않는 상태, 정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화란인(Der Fliegende Holländer)>과 정반대에 위치한다. <방황하는 화란인>은 신의 저주를 받아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유령선을 탄 채 영원히 바다 위를 떠돌아 다녀야 하는 화란인 선장의 이야기이다. ‘망명자이자 통행자이자 경계에 있던’ 칼 만하임을 빌어 말하면 그는 ‘자유롭게 떠도는 지식인(free floating intellect)'인 셈이다. 그는 7년에 단 하루만 육지로의 상륙이 허락되는데, 이날 하루 동안 자신을 영원히 사랑해 줄 순수한 여인을 만나야만 저주가 풀려 죽음을 맞을 수 있다. 고통스러운 방황이 끝나고 안주하는 순간, 지식인은 죽을 수밖에 없다. 어째서 지식인들은 이처럼 끊임없이 방황해야 하는 것일까? 니콜 라피에르는 짐멜의 ‘이방인(etranger)’, 한나 아렌트의 ‘파리아(paria)', 에드워드 사이드의 ‘망명자(exile)' 등을 이용해 설명하고 있다.

짐멜은 이방인의 불편하고도 불안정한 이 상황이 그가 현재 머물고 있는 사회와 좀더 객관적인 관계를 맺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그의 사고는 집단의 편파성이나 특수성에 근거하지 않으므로 ‘객관성’이라는 특정 태도를 취하며 거리를 둘 수 있다. 이 객관성이란 초탈이나 무관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있는 동시에 거리두기, 관심과 무관심이 특수하게 조합되어 이루어진 태도다.” - <본문 76-77쪽>

그녀는 이후로 관념의 세계에 숨어서 진짜 세상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진짜 세상이 아무리 모질고 음험해도 어쩔 수 없었다. 파리아들에게는 정치적 사유와 그에 따른 행동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 본문 <88쪽>

팔레스타인 독립을 옹호하기는 했으나 자신의 나라를 포함하여 어떤 형태의 민족주의도 편들지 않았던 그는 “조금 비껴나 있는 것, 어긋나 있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두 세계 사이를 항해하는 그의 작품 또한 두 가지 모습을 띤다. 하나는 현재의 증인이자 비판자로서 20세기 망명 유럽지식인의 고독한 모습이다. - <본문 121쪽>


결국 지식인이란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에 적혀있는 “Amicus Plato, magis amica veritas(플라톤은 친구지만 진리는 그보다 더 큰 친구이다)”란 말대로 자발적 선택이든, 상대적인 조건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든 진리 이외의 것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한 존재이다. ‘자기 고장이나 터전’, ‘사회의 규준이나 권력 중추 및 기관’들에서 벗어난다면 지식인으로서의 모든 책임을 다하는 것일까. 만하임은 지식인이 매인 데가 없더라도 책임까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 앞에는 “대립적인 계급들 중 어느 한편에 기꺼이 가담”하여 그 계급의 대변자가 되든가, “지식인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여 사회 전체의 변호사로서 임무를 완수”하든가 둘 중 하나의 운명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이란 개념이 언제나 논쟁적인 까닭은 지식인은 노동자와 달리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위치, 다시 말해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선동가가 되기를 꿈꾸었던 젊은 학위 소지자 린하르트는 작업 속도를 따라잡는 것만이 힘든 게 아니었다. 그는 노동자들의 수동적인 태도와 공포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진 프로파간다’에 지쳐버렸다. 게다가 그가 어디서 왔는지 밝혔을 때에는 심각한 몰이해에 부딪혔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공장에 들어온 사람들이었으니까! - 142쪽


지난 1980년대 우리 사회에서도 청년지식인들은 ‘위장취업’을 통해 노동현장으로 진출했다. 노동자들과 삶의 조건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개선해보겠다는 이들의 노력과 헌신을 통해 우리는 절차로서의 민주화를 성취할 수 있었다. 과거의 청년지식인들은 민변 출신 대통령, 노동운동가 출신 도지사, 학생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진보의 위기’, ‘지식인의 종말’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대면하고 있다. 민중계급 출신의 지식인 제라르 누아리엘은 비록 68혁명의 반체제운동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자신이나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이들은 오히려 “거대한 공장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관건이었다며 쥘 미슐레를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올라가는 게 아니라 올라가면서 자기 모습을 지켜나가는 게 어려운 것이다.”

지식인의 죽음 - 대중의 배신인가, 지식인의 배신인가

볼리비아 산중에서 체 게바라와 함께 포로가 되었던 레지 드브레는 “20세기 초 위풍당당하게 시작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영웅 서사시는 오류와 망상에 빠지더니 급기야 오늘날에는 조롱거리가 됐다. 그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다. 공연을 중단하고 무대를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지식인의 죽음을 말한다. 그는 파리고등사범의 촉망받는 철학자, 알튀세르의 수제자였다가 무장게릴라로, 다시 학자로 돌아와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의 보좌관을 역임했으나 자신도 얼마 전엔 좌파 대신 우파 후보를 지지했었다. 어쩌면 그 자신이야말로 ‘근대의 종언’과 함께 나타나고 있는 ‘지식인의 죽음’이란 현상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인물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질타하고 있는 오늘날 지식인의 5가지 중병(重病), “자신들 속에 갇혀 대중 혹은 민중과 단절되어 있으며(집단자폐증),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면서(현실감 상실증) 여전히 사회의 모럴을 선도한다고 자만하고(도덕적 자아도취증), 들어맞지도 않는 예측을 쏟아놓고(만성적 예측 불능증), 자신의 이름이 자칫 잊혀질까, 매스컴의 리듬에 맞추어 설익은 견해들을 유창한 언변으로 늘어놓는다(순간적인 임기응변증)”는 지적까지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1987년 이후 민주화 20년을 맞아 ‘지식인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 논쟁의 연원은 여야 정권 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 정부는 학력 위주의 지식인 개념을 독창성, 능동성 위주로 확장시킨 ‘신지식인’이란 슬로건을 제시했다. 관이 주도한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평범한 대중이라도 그만한 능력과 식견을 갖추고 있다면 지식인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발상은 계몽주의 시대의 이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가 ‘제2의 건국’ 캠페인과 함께 대대적으로 주도했던 ‘신지식인’이란 것이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는가라는 산업적 측면만 고려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사회적 현실비판과 공적담론의 생산자였던 지식인은 오늘날 대중과 괴리되고, 비판정신이 거세된 채 논문연구업적과 연구비 따내기에 몸 바치는 논문기술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학은 산학연 협력이란 미명 아래 재벌로부터 기부금을 따내고, 그 돈으로 새로운 건물을 짓고 동판에 기업명을 새겨주며 한 몸이 되어갔다. 이 같은 지식인 사회의 위기 속에서 대중은 지식인과 학력을 열망하면서도 이에 대한 혐오 증세를 가중시켜 나갔고, 신정아 사건을 맞아 네티즌들의 연예인 학력검증 사태, 황우석 ․ <디 워>를 둘러싼 반지성적 논쟁으로 분출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현상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 마르크스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인간의 물적 욕망을 과소평가하고, 지배계급의 문화적 헤게모니에 장악된 대중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한 결과일까. 어떤 이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로 자본주의가 세계의 유일한 체제가 되어 역사는 종말을 고했고, 더 이상의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면 제국과 신자유주의가 ‘지구적 규모’로, ‘무의식적 수준’까지 관철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외부가 없으므로 ‘다른 곳’을 사유할 수 없고,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절망의 끝에서 떠나는 여행”의 본보기는 자살이다. 저자는 ‘자살’이란 출구가 없을 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데드 엔드(dead end)'라고 말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하루 평균 35.5명이 자살하는 세계 1위의 자살 국가다.

과연 역사는 종말을 고했고, 우리들은 새로운 외부를 상상할 수 없는 것일까.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갖지 않는다”란 테제의 의미를 그것이 역사를 갖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반대로 이데올로기가 모든 역사에 걸쳐 어디서나 나타나고 역사를 관통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다른 곳을 사유하자”는 방식으로 바꿔보면 진보는 모든 역사에 걸쳐 어디서나 나타나고 역사를 관통하므로 “진보는 역사를 갖지 않는다”, “진보는 축적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진보는 언제나 현재를 고민하는 가운데 출현하며, 그것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현실 속에 모순이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을 사유하는 일, 문화망명

이제부터 앞서 이야기했던 운명 혹은 인연에 대해 이야기해보아야 할 텐데, 나는 지난 2000년부터 “사람으로 본 20세기 문화예술사 -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라는 사이트를 현재까지 8년 동안 운영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 『다른 곳을 사유하자』가 내 손에 쥐어진 인연 중 하나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저자 니콜 라피에르가 책 속에서 주장하는 ‘다른 곳을 사유하자(pensons ailleurs)’는 말은 끊임없이 걸어가며 묻고 생각하는(과정적 성찰) 행위를 말한다. ‘다른 곳’이 지향하는 바가 반드시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와 그것이 배태하고 생산하는 문화의 바깥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현재와 다른 문화를 꿈꾸고 사유하며 이것을 실천하자는 주장은 내가 생각하는 ‘문화망명’과 닮아있다. 문화란 우리의 외부(세계)와 내부(의식)를 총체적으로 규정하는 본성(뿌리와 근본)이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믿도록 만드는 신화의 체계를 지녔다. 새로운 세상은 기존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주어진 문화에서 벗어나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문화망명’이란 이 같이 외부를 상상할 수 없는 세계체제 속에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주체를 재설정하여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실천에 옮기는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는 20년 전 그토록 힘들고, 아프게 외쳤던 민주공화국이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적자생존의 공포 속에서 재벌권력의 시장형 자기 계발 인재들에 둘러싸여 한없이 추락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마르크스를 변주해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해 보면 우리 인간은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만들어낼 수 없다. 우리는 현실의 조건들을 만들어 내지만, 반대로 우리들 또한 그 결과물이다. 우리는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 과거의 망령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이루고 있는 존재와 싸우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 아니 전 세계적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는 표면적으로는 경제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담론의 위기이기도 하다. 이 위기 속에 길을 만들고, 다리를 놓을 자가 누구인가?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자면 ‘지식인은 지도하지 않는다. 그는 방향을 잡고, 길을 내고, 다리를 놓는다. 그대 길을 내는 자여, 길은 없으나 걸어가면 만들어지리.’




출처 : 기전문화예술, 2007년 겨울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계몽의 변증법 - 테오도르 아도르노 지음 | 김유동 옮김 | 문학과지성사(2001)


『계몽의 변증법』은 인간을 계몽되지 못한 신화적 세계에서 빠져나오도록 한 ‘이성(理性)의 힘이 왜 오늘날 도리어 야만상태로 인류를 몰아가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정리한 책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d Adorno), M.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은 어렵다는 평을 듣기는 하지만, 한 때 유행했던 포스트모던한 난해함과는 다른 성격의 어려움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읽는 일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첫째는 T. W. 아도르노를 다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과 싸워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책을 읽는 것 못지않게 문장 하나를 읽은 뒤 요구되는 사유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어려움은 첨단 유행을 따지는 우리 사회의 빈약한 지적 풍토(트렌드)와 싸우고, 두 번째는 한 차례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장 하나하나를 차분하게 띄엄띄엄 되새김질하는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전으로 인정받는 대개의 책들이 그러하듯 『계몽의 변증법』 역시 폭넓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으며, 읽기에 따라 사전지식이 요구되는 부분도 있다. 내 나름대로의 독서체험에 따르면 신화학에 대한 공부가 사전에 어느 정도 있다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이 쓰이게 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종종 잊기 쉬운 『계몽의 변증법』 읽기의 한 방법이다. 오늘날 아도르노의 생각 혹은 아도르노에 대한 생각이란 점에서 후학들의 평가는 상이한 편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 2년간 이 책을 세 차례에 걸쳐 다시 읽어야 하는 경험을 했다. 한 번은 신화학적인 입장에서, 다른 한 번은 문화연구(cultural study)적 입장에서, 다시 한 번은 문화경제(cultural economy)적 입장에서(이 책의 2장에 수록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문화산업에 대한 견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읽었다.

 

아도르노에 대한 평가의 변화 역시 우리 사회의 빈약한 지적 풍토를 반영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이는 이제 시대의 조류로부터 멀어졌다고 말하는가 하면, 그 반대로 그의 중요성을 더 높이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확실한 건 이렇든 저렇든 그는 여전히 중요한 이론가이며 특히 문화를 학문적 틀 속에서 사유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결절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1947년에 쓰인 이 저작이 현재까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이다.

 

『계몽의 변증법』, 이 한 권의 책을 두고도 후대의 학자들 - 노명우, 『계몽의 변증법을 넘어서 - 아도르노와 쇤베르크』(문학과지성사, 2002년), 권용선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그린비, 2003년), 이순예 『아도르노와 자본주의적 우울 - 계몽의 변증법에서 미학이론까지 아도르노 새롭게 읽기』(풀빛, 2005년) 등 - 은 계속해서 새로운 연구서들을 펴내고 있으리라. 흔히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을 나치에 의한 지배를 가능하게 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고민한 끝에 펴낸 책이라고들 하는데, 그것이 옳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책의 의미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중요하게 지적하는 부분 중 상당수는 그들이 미국 망명 생활 중 경험한, 자본주의 체제 하의 대중과 문화산업에 의한 대중문화에 기인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을 나치즘 못지않게 위험한 대중선동, 세뇌 장치로 인식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1920~1940년대 러시아 혁명 이후 출현한 소련의 스탈린과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스페인의 프랑코 등 비이성적인 전체주의 세력이 유럽 전역을 장악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념적 좌우를 막론한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전체주의 세력에 의해 장악되었고, 부르주아적 자유주의나 좌파적 노동운동은 비이성적 세력에 저항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상황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노동자계급(대중)에 대한 깊은 절망감을 느끼게 하였고, 원자화된 대중사회는 결국 전체주의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대중문화라는 용어는 마치 대중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문화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위험 때문에, 그것을 대신하는 용어로 문화산업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이들의 문화 연구는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초반에 걸쳐 주로 이루어졌는데 오락산업의 융성, 매스미디어의 급속한 발전, 전체주의 정권에 의한 문화조작, 미국에서의 영화산업과 음반 산업의 급속한 발전 등이 당시 문화적 배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스어로 포만, 교만, 멸망을 의미하는 말로 코로스(kopos), 휘브리스(hybris), 아데(ate)란 말이 있다. 이 세 낱말의 사전적 의미는 코로스는 ‘죄가 많다', 휘브리스는 ’난폭하다', 아데는 ‘파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지나치게 욕망을 추구할 때 저지르게 되는 죄가 휘브리스, 즉 ‘오만'의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신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휘브리스를 범하는 자는 항상 가혹한 벌을 받고,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게 된다. 개별 인간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인식하기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자신에 대해 완전히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이 본질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주체(主體)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휘브리스(hybris)인지도 모른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자유 의지에 의해 움직였지만 결국은 신들이 정한 운명에 따른 결과가 되어 버렸다. 성서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인간이 스스로 자유의지를 따른다고 지나치게 자신하고 있을 때, 신들이 애써 경고한 메시지를 거부할 때, 신들에 의한 운명은 역습을 가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만물의 근원은 신(神)에 의한 것이며, 신들이 만물의 내재적 원인”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애니미즘이 사물을 정령화 했다면 산업주의는 영혼을 물화한다”고 말한다. “진보적 사유라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계몽은 예로부터 인간에게서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계몽의 목표를 추구해왔다. 노아의 홍수라는 자연 혹은 신의 징벌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인간은 바벨탑을 세우려 했고,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죽음의 신 타르타로스를 쇠사슬로 묶었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혜택을 망각하고, 끊임없이 숲을 개간하고, 자연으로부터 얻은 사랑(자원과 기술)을 망각하고 욕보였다. 지식의 목표는 ‘방법’,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고 좀 더 많은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과 인간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 자연을 이용하는 법으로 변질되었다.

 

신성이 깃든 자연으로부터 우리는 아주 멀리, 아주 높이 날아올랐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지혜를 얻고, 무리를 지어 기술을 전수했으나 이것은 자연과 더불어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사회를 일구고, 자연을 배신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계몽의 합리성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인간의 공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고,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부정하는 탈신화화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어쩌면 계몽의 제물이 된 신화도 이미 계몽의 산물이었다. 신화는 모든 가르침의 출발이었기 때문이다. 신화적 상상력에 반대하는 계몽의 원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가 되었고, 하늘 아래 더 이상 아무 것도 새로울 것이 없었던 인간은 자신들의 이성을 통해 이미 세상의 모든 진리를 깨우쳤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발견했으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신화가 죽은 것을 산 것과 동일시한다면 계몽은 산 것을 죽은 것과 동일화한다.(신화의 세계, 자연, 사물을 생명을 지닌 대상으로 취급한다면 계몽은 자연을 죽은 것으로 취급하여 이용과 정복의 대상으로 대한다.) 나는 아도르노의 이런 문제의식이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entropy)』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제레미 리프킨은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지리와의 합일을 도모하여 여기서 얻는 만족으로부터 비롯되는 인간적인 해방감을 체험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400여 년 전 베이컨과 데카르트, 뉴턴에 의해 구축된 ‘객관적 지식이 있으면 인간은 자연계를 지배할 수 있다.’세계관(패러다임)을 통해 산업혁명이 가능했고, 끊임없는 성장과  한계 없는 진보라는 신화가 만들어졌다. 리프킨은 문명비판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할 것을 제의한다.

 

“세상은 갈수록 혼돈의 와중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떤 일도 제대로 되어가는 게 없어서 여기저기서 끝없는 수선과 짜깁기의 연속이다.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사건이 터진다.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 모두를 몰아 붙여 탓해 보아도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기만 한다. 정치권의 리더나 누구 대단한 사상가라 할지라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풀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붕괴로 몰고 가는 냉혹한 기운이 세계를 잠식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세계관에 대해 냉철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세상을 병들게 하고 그 속의 모든 것을 오염시키는 주범은 바로 우리들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아도르노가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가한 이성에 대한 비판은, 신화에 대한 계몽이 그 자체로 신화가 되어버린 상황(파시즘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계몽에 대한 재계몽의 기획으로서의 비판(이론)이다. 비록 그가 제시한 사유 방식은 어둡기 그지없으나 우리가 그 길을 외면하는 것은 빛(enlightenment)을 보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아도르노,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사용하기 시작한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는 앞서 말했듯 대중문화의 생산 과정을 지칭하는 말로서 사용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이전 세대의 연구자들은 문화를, 산업과는 별개의 혹은 산업과는 완전히 대립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산업이란 용어를 이해하는 것은 고도의 도구적 합리성과 관료제화한 자본주의 사회의 변화된 물질적 기반을 그들 나름대로 분석하고, 이해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물질화할 수 없는 것까지 시장 기능에 의해 사물화(reification)한다. 사용가치(소비자가 상품에서 얻는 효율성)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을 변형하고, 왜곡시키는 데 기여한다. 당시 출현하기 시작한 라디오와 인쇄매체 등의 매스 미디어와 광고의 결합은 새로운 자본주의적 생태(lifestyle)을 만들어냈고, 결국 자본주의 초기에 인간에게 주어졌던 자율성과 주체성은 상실되어 버렸거나 자본주의적(에 적합한) 주체성으로 변질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주장하는 문화산업에 의해 생산된 문화의 상품화, 예술이 대량 상품화됨으로써 예술의 탈예술화, 즉 예술만의 고유한 자율성을 상실하고 말았다는 주장은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대중의 반역』이나 『예술의 비인간화』 등에서 주장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하의 문화산업은 ‘교환될 수 있는’ 상품으로서, 예술의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완전히 대체해 버렸다. 문화산업은 자본주의의 경제논리에 따라 항상 동일한 것을 대량으로 제공한다. 그것은 계획, 통제되고, 예견 가능하며 계산 가능한 상품들만을 생산한다.

 

두 사람은 결국 예술이 문화산업의 메커니즘에 구속당함으로써 관리되는 사회의 총체적인 물화에 빠져든다고 보았다. 문화산업의 메커니즘 속에서 대량생산된 작품 아닌 열등한 상품들은 이전의 고유한 진정성을 지닌 예술 작품들을 모방함(이 과정에서 대량생산에 적합하도록 규격화)으로써 사회적 위계질서에 대한 복종을 조장하고, 이를 은폐한다(부자도, 빈민도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다). 문화산업은 대중들을 사회의 총체성 안으로 끌어들이도록 기만하는 술책이며, 사회적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만들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자연스럽게 순응하도록 길들인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상이 현대의 대중문화가 지닌 도구적 합리성을 비판하면서 그것이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자본주의의 허위의식을 주입하여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지배 체제를 정당화하고 재생산하게 만든다고 본 비판엔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비판이론과 자율예술은 대중의 보편적 정서를 담아내지 못하고, 이들을 결집시킬 수도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논리는 반대중적 엘리트주의란 비판을 받게 된다. 이들이 바라보는 대중은 근본적으로 조작의 대상일 뿐이지 혁명을 추동할 수 있는 동력을 갖지 못한 자들이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를 살다가 불운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발터 벤야민에게서 아도르노를 비롯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와는 완전히 다른 견해를 발견하게 된다. 벤야민은 아도르노가 주목했던 문화산업에 의해 대량 생산된 복제품에 의해 상실된 진정성(authenticity), 아우라(aura)의 상실이 도리어 문화적 민주주의를 부추기는 기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과연 문화산업을 통해 생산된 산출물에는 진정성이 존재하지 않는가? 우리가 예술작품으로부터 느낀다고 하는 진정성 역시 과거로부터 주어진 것(교육받은 것)이 아닌가? 대중문화에는 자율적인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가? 실제로 도시화와 대중문화로 인해 도시의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의 지배질서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계급의 문화가 창조되지 않았는가(E.P.톰슨)?

 

대중은 단순히 문화적 조작의 대상이 아니며 그들 나름의 문화적 해독능력을 갖추고 있고, 우리들의 해독능력 역시 증가하고 있다. 즉, 창과 방패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우리는 아직까지는 아도르노의 비관과 벤야민의 낙관 사이를 오가며 의지의 낙관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