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눈이 없다면 내 눈은(Mis ojos, din tus ojos)


- 미겔 에르난데스(Miguel Hernandez)


그대의 눈이 없다면 내 눈은 눈이 아니요
외로운 두 개의 개미집일 따름입니다.
그대의 손이 없다면 내 손은
고약한 가시 다발일 뿐입니다.

달콤한 종소리로 나를 채우는
그대의 붉은 입술 없이는 내 입술도 없습니다.
그대가 없다면 나의 마음은
엉겅퀴 우거지고 회향 시들어지는 십자가 길입니다.

그대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내 귀는 어찌 될까요?
그대의 별이 없다면 나는 어느 곳을 향해 떠돌까요?
그대의 대꾸 없는 내 목소리는 약해만 집니다.

그대 바람의 냄새,
그대 흔적의 잊혀진 모습을 쫓습니다.
사랑은 그대에게서 시작되어 나에게서 끝납니다.

*

종종 내가 시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참말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마 내가 시인이었다면 어느 순간 내 심장은 폭발해서 산산이 부서졌을 테니까요. 한 인간이 동시에 두 개의 심장을 지녔다면 몰라도 어떤 상황들은 내 한 개뿐인 심장을 헐떡이게 만듭니다. 두 개의 심장은 두 개의 마음, 두 개의 사랑을 용납해줄 런지요. 저는 막 살아 버리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립니다. 그것이 내게 정직한 것이란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치 두 개의 심장을 지닌 사내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종 이 마음은 거대한 위선으로 달려갑니다. 두 개 혹은 세 개, 무한대의 심장을 지닌 사내처럼. 심장의 갯수와 무관하게 마음은 하나라는 사실. 비루먹은 개처럼 헐떡이는....

내 심장은 마주하고 있는 동안엔 절대 포개지지 않습니다. 등 뒤에 섰을 때만 심장이 포개진다는 건 언제나 잊혀진 뒤에 오는 진실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두려운 까닭 아시겠는지요. 돌아선 사람이 더 그리운 까닭은 그를 향한 나의 심장이 같은 쪽에 놓인 까닭이겠지요. 두 개의 심장, 세 개의 심장, 열 개의 심장을 모두 한데 모은다고 하더라도...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은 운명이 바람처럼 내 곁을 스쳐간 어느 겨울 밤 이미 내 심장이 멎은 탓이려니 합니다.

* 미겔 에르난데스는 스페인 사람, 스페인 시인, 스페인시민전쟁 당시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에 저항하다 결국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두고 알라칸테의 옥중에서 죽어간 남자.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투우(鬪牛)처럼
Como el toro


- 미겔 에르난데스(Miguel Hernandez)


투우(鬪牛)처럼 죽음과 고통을 위해
나는 태어났습니다.
투우처럼 옆구리에는 지옥의 칼자국이 찍혀 있고
서혜부에는 열매로 남성(男性)이 찍혀 있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이내 가슴 전부는
투우처럼 보잘 것 없어지고
입맞춤의 얼굴에 반해서
그대 사랑 얻기 위해 싸우겠습니다.

투우처럼 나는 징벌 안에서 자라나고,
혀를 가슴에 적시고
소리 나는 바람을 목에 걸고 있습니다.

투우처럼 나는 그대를 쫓고 또 쫓습니다.
그대는 내 바램을 한 자루 칼에 맡깁니다.
조롱당한 투우처럼, 투우처럼.


출처 : 미겔 에르난데스, 양파의 자장가, 솔

*

"라틴" 하면 어째서 먼저 '태양'이 떠오르는 걸까.
그 뜨거움이 먼저 내 몸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걸까.
그 모든 것이 뜨거울까.

그 이유를 나는 이 시에서 본다.
"그대 사랑 얻기 위해" 싸우겠다는 남자.
"징벌 안에서 자라나", "소리나는 바람을 목에 걸고 있"는 남자.

그 모든 걸 조롱당한 투우처럼,
어쩌면 '조롱'보다는 '농락'이란 말이 더 적합한 번역일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조롱당한 투우처럼 자신의 이 모든 소망을
당신 손에 들린 한 자루 칼에 걸 수 있는
.....................
이 모든 게 뜨겁다, 뜨겁다, 뜨겁다 말고 달리 무슨 표현을 찾을 수 있을까.

미겔 에르난데스는 스페인 시인이다.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에 저항한 시인이지요.
그는 결국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두고 알라칸테의 옥중에서 병사한다.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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