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만난 20th C : 매그넘(MAGNUM) 1947~2006 - 매그넘 (지은이) | 에릭 고두 (글) | 양영란 (옮긴이) | 마티(2007)





20세기 최고의 프리랜서 사진가 집단 “매그넘”


『현장에서 만난 20th C』는 “우리는 그들의 사진으로 세계를 기억한다”는 의미심장한 부제를 달고 있다. 선언적 어투로 쓰인 이 말을 만약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진집단이 했다면 아마 우리는 매우 거만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누구인가? “MAGNUM” 사진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모를 수 없는 보도 사진가들의 집단이 바로 매그넘이다. 매그넘은 좀체로 넘어서기 어려운 중세의 길드 같다는 느낌을 준다. 어쩌면 프리메이슨 같은 비밀스러운 입교식을 치르지나 않을까 싶을 만큼 신비로운 매력을 선사하는 이들이 바로 매그넘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라이프> 등 포토저널리즘의 전성기를 경험한 사진작가들은 편집자들의 의도와 요구에 따른 작업 방식에 많은 불만을 품게 되고, 그들이 촬영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촬영하고, 그들이 의도하는 대로 게재해주는 매체에 그들의 사진을 제공해주는 방식의 사진작가 에이전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오랜 친구 사이이기도 했던 프랑스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시무어 등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창립한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집단이 바로 매그넘이다. 이들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문으로 하여 이후 세계를 대표하는 엘리트 사진 집단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지난 1993년과 2001년, 국내에서도 매그넘의 대규모 사진전시회가 있었기 때문에, 또 최근엔 로버트 카파 사진전이 열리기도 해서 국내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나 역시 매그넘에 소속된 사진작가들 가운데 로버트 카파는 물론이고, 베르너 비쇼프, 유진 스미스(한동안 ‘매그넘’에서 활동하다가 탈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엘리어트 어위트, 요제프 쿠델카, 필립 할스만 등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매그넘과 관련된 몇 권의 원서 사진집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지닌 최고 미덕 중 하나는 이전의 다른 책들에서는 보기 힘든 사진들이 제법 많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건 정말 큰 미덕이다.)

한․불에서 거의 동시에 출간된 『현장에서 만난 20세기』
- 그러나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편집레이아웃

국내에서 지난 2007년 10월에 출간된 『현장에서 만난 20세기』는 인터넷으로 검색한 결과로는 프랑스보다도 한 달 정도 먼저 국내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은 1947년부터 2006년까지 주요 사건들을 매그넘의 사진작품을 통해 바라보고, 에릭 고두(Eric Godeau)의 글이 해설을 다는 형태로 꾸며져 있다. 이미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이 『현장에서 만난 20세기』의 편집과 레이아웃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막상 직접 책을 읽어보니 이들의 지적은 모두 사실이었다. 일단 10년 단위로 내지를 붉은색, 주황, 올리브그린, 노랑, 남보라, 민트그린 등의 테를 둘러 구분하고 있는데, 사진들이 온갖 요란한 색채의 방해를 받는다. 거기에 사진 캡션으로 들어가는 문장들은 그야말로 종횡무진(縱橫無盡)이라 가뜩이나 요란한 색채들로 인해 저해된 가독성은 더욱 떨어진다.

프랑스판과 거의 동일한 시기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내심 프랑스판과 거의 동일한 표지와 내지 레이아웃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막상 프랑스판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국내판 책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내지 레이아웃을 확인할 수 있는 이미지를 구하지 못해 내지 편집의 차이는 알 수 없었다). 처음에 나는 이 책이 싱가포르에서 인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다. 사실 사진집의 경우 외국에서 인쇄해오는 일이 그렇게 드물진 않다. 작년에 열화당에서 출간된 『내면의 침묵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은 시대의 초상』은 독일에서 인쇄한 것이다. 매그넘에서 제공한 사진의 질이 특별히 카르티에 브레송보다 나빴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지만 『현장에서 만난 20세기』의 인쇄 질감이 앞서 언급한 책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마도 용지 선택 문제와 인쇄의 질이 전체적으로 사진의 질을 떨어뜨린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카파가 매그넘을 결성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로버트 카파를 비롯한 “매그넘”의 사진작가들이 독자적인 사진집단, 에이전시를 창설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당시 권력집단의 보도통제는 물론, 편집이라는 권력(편집권)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었다. 나 자신이 한 명의 편집자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편집이란 생각하기에 따라 대단한 권력자이기도 하다. 지배계급(권력)은 자신들이 지배하는 세계와 일상의 권력을 합리화하고 영속화시키기 위해 일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미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부자연스러움’과 ‘어색함’ 예를 들어 클래식 공연장에서 느끼게 되는 공연한 주눅, 박물관 마다 일정한 방향과 동선을 지시해주는 화살표들과 같이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기존의 세계(지배권력)가 교묘하게 직조한 틀(매트릭스)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의 부제는 “우리는 그들의 사진으로 세계를 기억한다.”이다. 이 말은 절반은 맞는 말이지만 꼭 그만큼의 진실은 유보된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한 장의 사진으로 기억하는 역사적 사건들이지만 사진 그 자체는 하나의 스펙타클(spectacle)한 이미지 기호일 뿐이다. 우리에게 그 한 장의 사진이 진정한 의미로 기억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해석(단순하게 말하면 ‘캡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이 존재해야만 한다. “사진 한 장이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말을 한다.”는 이야기는 도상성(iconicity)이 지닌 위력을 설명해주는 훌륭한 사례다. 사진은 누가 뭐래도 강력한 시각적 이미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사진의 이미지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하고, 우리들에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켜 허구적인 객관성과 신뢰성을 얻어낸다. 그러나 사진은 결코 대상의 객관적인 반영이 아니며, 주관성을 객관성으로 손쉽게 가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은 도리어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시각기호인 사진은 그 자체로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도사진들의 경우에 우리는 사진 이미지 밑에 가로 놓인 해석(캡션)을 읽고, 이미지를 해독하는 과정을 거친다. 사진 속에서 총을 들고 있는 병사가 광폭한 살인마인지, 전란 속에 생명의 위협을 받는 난민들을 구호하기 위해 파견된 병사인지 우리는 사진만으로 해석할 수 없으며, 좀더 복잡하게는 병사가 띄고 있는 정치적 의미, 사회적 의미를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롤랑 바르트는 거친 바다 위에 배가 닻을 내려 선체를 고정시키듯, 언어기호는 시각기호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특정한 범위 내로 한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정박(anchorage)’의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그런 의미로 보았을 때 우리는 이 책에 글을 쓰고 있는 저자(혹은 편집자) 에릭 고두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괜찮은 내용의 그런 데로 괜찮은 번역 그러나 몇 가지 결함으로 독자에게 불친절한 책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책을 다 읽고 난 뒤 책의 어디에도, 아니 책의 뒤표지에 적혀있는 몇 줄의 글만으로 저자가 어떤 사람이며,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발간하게 되었는지 유추해내야 했다. 우리는 그가 선별해낸 300장의 사진과 보도사진가의 전설이라는 ‘매그넘’을 통해 역사를 이미지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자신은 문서보관소에 기록된 수많은 사진들을 일일이 헤집고, 자신이 나름대로 설정한 기준에 따라 1947년부터 2006년까지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지만, 정작 그의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 그는 장막 저 편에 서 있다.

나는 이 책의 가장 큰 문제가 가독성을 해치는 편집레이아웃에도 있지만, 이처럼 독자들에게 상세한 정보(예를 들어 저자에 대한 정보, 옮긴이의 말 등)를 제공하지 않는 불친절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인터넷 서점 아마존(프랑스)에서 이 책은 23.75유로(38,000원)에 판매되고 있으며, 인터넷상으로 이 책에 수록된 사진의 이미지들이 보고 싶다면 매그넘의 포토아카이브 사이트를 찾아가면 좋을 것이다. (물론 사진의 크기가 좀더 작고, 화질도 좋은 편은 아니지만)
( http://www.magnumphotos.com/archive/C.aspx?VP=Mod_ViewBoxInsertion.ViewBoxInsertion_VPage&R=2TYRYDK5YSOX&RP=Mod_ViewBox.ViewBoxThumb_VPage&CT=Album&SP=Album )

끝으로 한 마디 더 나는 가끔 사진집단 매그넘의 저런 선언적인 어투에서 삼성의 CF카피 같은 선정성을 느낀다. 그건 매그넘 작가들 탓일까? 아니면 기획사들 탓일까? (어쨌거나 비키니 편에서 '달리다'와 '칼 사강'이란 불어식 번역은 좀 웃겼어요.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 열화당미술문고 213』 - 장소현 | 열화당(2000)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잔느 에퓌테른느


굳이 우리나라와 일본만 그런 것은 아니고, 전세계적인 분위기이긴 하지만 미술 사조상 특정한 화풍에 대한 선호도로 따지자면 단연 '인상주의'풍의 그림들이 사랑받는다. 그러나 모딜리아니는 인상주의 화풍에 속하지 않음에도 인상주의 화가들 못지 않은 사랑을 받는다. 1884년 7월12일 이탈리아 토스카나지방의 리보르노에서 출생한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수없이 복제된다. 누구라도 그의 그림을 보면 자신의 벽 어딘가 액자에 담아 걸어두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만큼 그의 작품들은 사랑스럽고, 따스하다. 

작품이 그럴진대 작가의 따스함은 오죽할까.

모딜리아니는 동료와 친구를 비롯해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많이 그린 화가로도 유명하지만, 유독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것은 단 한 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다른 화가들의 관례처럼 자화상을 그린 것과 비교했을 때 그는 자화상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나는 나를 향해 마주보고 있는 살아 있는 인간을 봐야만 일을 할 수 있다.'던 이른바 '만남의 화가'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그가 이 작품처럼 매우 조심스러운 붓 놀림으로 자화상을 그렸다는 건 후대의 사람들을 위해 다행한 일이었다. 그는 죽기 일년전에야 비로소 유일한 자화상(1919년)을 남겼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의 저자인 장소현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이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동양미술사를 전공했으면서도 그의 직업은 극작가, 언론인, 방송진행자이다. 그는 몇 편의 희곡과 시집, 콩트집, 단편집을 발행하기도 했는데, 그런 덕분인지 책 속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그의 작품 속 누드 여인들이 그런 것처럼 발그레한 홍조를 띠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장소현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열화당 문고본 중 하나이므로 판형은 핸드북 정도의 크기로 작지만, 알찬 책이다. 모딜리아니에 대해 연대기순으로 따라가면서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함께 조망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모딜리아니 아메데오(Modigliani, Amedeo) 1902년경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모딜리아니는 어려서부터 천부적인 예술적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 그의 재능에 가장 큰 위협이 된 것은 중학 시절 앓았던 늑막염이었고, 늑막염은 폐렴으로, 폐렴은 다시 폐결핵이 되면서 그의 건강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요양을 위해 나폴리, 로마 등을 여행하던 중 마주치게 된 카마이노의 조각들은 그로 하여금 평생동안 자신의 조국 이탈리아와 예술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는 문학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단테Dante, 페트라르카Petrarch, 레오파르디Leopardi, 카르두치Carduchi, 다눈치오Dannunzio 등 이탈리아의 위대한 고전 시인과 니체, 쉘리,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로트레아몽 등의 시를 줄줄 암송하곤 했다고 한다. 그에게 이탈리아는 자신의 작품의 원천이자 영감이었던 셈이다.


1906년 22세 때 모딜리아니는 세계 문화예술의 수도 파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그는 세잔느의 작품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이후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단순하면서 우아한 곡선들은 세잔느의 영향력을 그나름대로 내면화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모딜리아니는 피렌체 미술학교 시절부터 회화보다는 조각가의 길을 걷고자 했다. 그는 파리에서도 브랑쿠시풍의 간결한 조형 양식을 발전시킨 독자적인 조각작품을 만들었지만, 어렸을 때 앓았던 병의 후유증으로 약해진 체력과 폐는 조각이라는 육체적 노동을 감내할 수 없었다. 결국 몽파르나스로 거처를 옮긴 모딜리아니는 에콜 드 파리의 화가들, 키슬리와 수틴 등과 사귀게 된다.

◀ 파리 시절의 모딜리아니, 1909년경


파리에서 모딜리아니는 많은 친구들의 사랑을 받았고, 잘 생긴 외모 덕에
(내가 아는 서양 화가들 가운데 최고의 미남) 여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모딜리아니는 천성이 이방인이었고, 보헤미안이었다. 고향을 떠나 파리에 정착했으나 그에게 명성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고, 예술적 성취에 대한 집념과 경제적 안정을 동시에 이룰 수 없었던 모딜리아니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는 술집에서 술집으로 전전하며 삶과 건강을 소진했다. 그는 항상 가난했지만 자존심만은 팔지 않았고, 그림도 멈추지 않았다. 평생 병약한 육체와 가난에 시달리며 예술혼을 불태운 모딜리아니에게 고흐의 동생 테오와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그는 즈보로프스키였다. 즈보로프스키는 모딜리아니를 자신의 아파트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의 예술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 주었다. 

딜리아니의 정신은 정처없이 떠도는 보헤미안이었으나 그의 심성은 연약한 식물성이었다. 그는 대상을 물리적인 시선으로 관찰하기 보다는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어했다. 모딜리아니 시대의 초상화, 인물화는 더이상 회화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사진의 출현으로 회화에서 인물화는 사진과 경쟁할 수 없었다. 도구로서의 렌즈는 물리적이고, 광학적인 특성을 갖는다. 하지만 그 도구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도 사람이요, 그 대상도 역시 사람이다. 따라서 렌즈를 통해 본 세상 역시 한 인간의 모습을 닮고 담아내게 된다. 사진이 예술일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도 거기에 있다. 모딜리아니 역시 그런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았다. 비록 가난하고, 보잘 것 없더라도 모델의 삶과 인생을 가까이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자신의 작품을 통해 모델과 대화를 나눈다. 차가운 시선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모딜리아니의 마음이 가난과 병마 속에서도 따스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영원한 사랑 잔느 에뷔테른느 덕이었다. 모딜리아니가 33세일 때, 잔느는 19세의 미술학도였다. 잔느의 집안은 독실한 가톨릭이었으므로, 가난한 유대인인 모딜리아니와의 결혼에는 극심한 반대가 따랐다. 잔느와 모딜리아니의 사랑은 모든 장애를 뛰어넘었다. 두 사람은 결혼한 이듬해 딸을 낳는다. 모딜리아니는 딸의 이름을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따서 잔느라고 지었다
.(이 딸 잔느가 후일 성장하여 미술사가가 되어 모딜리아니 연구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아 만든 평전 『모딜리아니:인간과 신화』의 저자가 된다) 이 시기가 모딜리아니의 인생에서 짧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1919년 무렵 모딜리아니는 파리에서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잔느는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모딜리아니의 음주벽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고,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그림 <잔느 에뷔테른느>(1919년작)는 이때에 그려진 것이다. 임신한 잔느의 모습은 왠지 처연하다. 그 눈동자 없는 눈은 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담아 슬프게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1920년 1월 24일 창 밖으로 삭풍이 불어오지만 가난한 이들이나 머무는 자선병원. 여러 환자들이 누워있는 병실 하나 남은 난로마저 온기를 잃고 있을 무렵, 얼음장 같이 차가운 마루에 한 남자가 피를 토한 채 쓰러져 있다. 쓰러진 남자 옆에 만삭의 몸을 한 여인이 남자의 손을 당겨 잡는다. 그녀는 남자를 조용히 내려다 본다. 이제 여인은 남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조금전 죽음의 사신을 피해 버둥대다 침대 밖으로 떨어진 그의 침대 주변에는 몇 개의 빈 포도주 병과 반쯤 얼어버린 정어리 통조림이 뒹굴고 있다. 지저분한 침대 시트에는 남자가 토해낸 붉은 선혈로 흥건하다. 

여인은 떠나가는 남자에게 말한다.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줄 께요…"
남자는 잔느를 바라보며 ... 단 한 마디를 남겼다.
"그리운 이탈리아!(카라 이탈리아)"
(이때 이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말하는 많은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데 일설에는 모딜리아니가 자신의 아내인 잔느에게 "천국에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했다는 말도 있고, 잔느가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주겠다"고 말했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다. 다만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란 임신 9개월의 여자가 남편을 따라 투신자살한 사건은 인간도 동물인 이상 뱃속의 아기를 지켜야 한다는 모성 본능을 초월한 일대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 부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1920년 1월 24일 20세기 서구회화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틀 뒤인 1월26일 그의 아내 잔느 에뷔테른느가 남편을 따라 투신자살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나는 조금 전 긴 복도에서 소독약 뿌리는 사내와 마주쳤다. 그는 긴 복도 회랑에 양철 소독통을 들고 복도의 양 옆 벽에 무색의 소독약을 뿌리며 나와 지나쳤다. 나는 이 글을 씀으로써 그를 잠시동안 기억하겠지만 그는 영국식 검은 군용 스웨터에 짙은 회색 목도리를 칭칭 감고 스쳐간 나를 아마도, 아마도 기억하지 못할 테지.

몇 해전부터 열화당에서 새로운 사진집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데, 그 중 첫 번째 시리즈로 열 권의 사진집 중 도로시아 랭과 유진 스미스, 가브리엘레 바질리코 등의 사진집을 새로 출간했다. 포장을 뜯고 집에 들고 가서 읽었다. 옛날 열화당 사진문고 시리즈에 비해서는 월등히 뛰어난 인쇄 질과 판형, 그리고 자세한 캡션들, 비평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인쇄잉크 냄새를 킁킁 맡으며 나는 신간들이 풍기는 예리한 냄새, 그것은 마치 추운 날 햇빛에 잘 내어 말린 빨래의 차갑고, 뽀송뽀송한 느낌 같은 것이다. 종이는 아직 손때가 묻지 않아 한국은행에서 갓나온 지폐처럼 빳빳하고,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미지의 사진들이 나의 시선을 교란한다. 

그리고 나는 낸 골딘의, 나는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름이 매우 낯익음에 대해 의아해 한다. 그 낯익음은 파리대왕의 작가. 윌리엄 제랄드 골딩 때문이었다. 이름 뒤에 g자 하나의 차이다. 낸 골딘의 사진집을 들고 복도를 서성이며 그녀의 사진들을 본다. 우선 그 풍부한 디테일에 놀라고, 놀라운 스냅샷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그녀의 포트레이트 사진조차 스냅샷의 기운이 느껴진다. 낸 골딘의 사진집을 보면서 오랫동안 업무 이외에 나의 즐거움을 위한 봉사는 그만 둔 카메라를 꺼내 다시 만지작거린다.


우습지 않은가.

낸 골딘의 사진을 보며 풍성하다는 표현을 하다니..... 친구의 성교 장면, 동성애자, 이성애자, 메마르고 때로 앙상하기 까지 한 인물들의 모습을 담아낸 그녀의 사진에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디테일을 말한다. 사진에서 드러나는 육신은 이미 인간의 몸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피사체.................. 사진이 만약 인간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면 사진은 다만 인간의 앙상한 육신을 담아 올린 요리 접시가 아닐까. 그녀의 사진이 풍성해 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영혼이 혹은 감정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진과 그녀의 인생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 자살한 언니. 히피 생활. 나도 그런 생활을 염두에 둬 본 적이 있다. 되는 대로 자라난 수염과 빡빡 민 머리. 사람들은 거친 미소에 흠칫 놀라 뒤로 한 발씩 물러난다. 아니 그들은 물러나는 것이지만 내게는 그들이 밀려나는 것으로 혹은 물리치는 것으로 보인다. 높은 성은 그 높음, 위세당당함으로 인해 늘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공격 본능을 자극하지만 바닥에 푹 퍼진 더러운 오물의 진창은 그 낮음으로 인해 늘 사람들을 물리치고, 스스로를 방어하도록 만든다.

사람에게는 과연 희망이 필요한가? 아니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환상인가? 환상이 필요한 사람은 환상이 허구임을 깨닫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것은 라 그랑드 일루젼이다. 인간은 필요하기 때문에 환상을 만들어간다.나는 환상이 깨질 때 비통해 하는 인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환상이 깨졌다고 자살하는 인간을 만난 적은 없었다. 그는 또다른 환상을 만들어내거나 아니면 또다른 환상을 따라 함께 뭉친다.

환상을 만드는 인간들이란 대개 간교하고 세속적이다. 그들은 잠시도 고통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늘 환상에서 다른 환상으로 끊임없이 이동해 간다. 마치 세렝게티 평원을 달리는 누 떼처럼..... 환상은 누떼가 생존본능을 따라 이동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생존본능이다. 그래서 희망은 늘 곤란하다. 그래서 희망에 환상이 덧 대어지면 종교가 된다. 그런데 소독약을 뿌리고 지나간 사람은 날 기억할까?

 


낸 골딘(Nan Goldin)은 뉴 다큐멘터리(new documentary) 사진으로 매우 유명한 사진가이지만 국내에 소개된 것은 이번이 사실상 거의 처음인 것으로 안다. 그녀의 사진에서 풍겨나오는 풍성함이란 사진 속의 피사체들과 하나의 삶 속에서 살아갔기 때문이다. 피사체는 그녀를 포토그래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하나의 풍경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사진이 담고 있는 풍경은 황량하나 그녀의 사진에서 인물의 풍성함을 느낄 수 있다. 가령 소독약을 뿌리고 지나친 사내는 날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그와 함께 십년째 소독약을 뿌리고 한집에서 거주하고  그의 생활 속 깊은 일부가 된다면 나는 그를, 그는 나를 기억할 것이다. 낸 골딘의 사진은 그렇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