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여자        


- 마리 로랑생


권태로운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슬픈 여자

슬픈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불행한 여자

불행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버려진 여자

버려진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떠도는 여자

떠도는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쫓겨난 여자

쫓겨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죽은 여자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

잊혀진다는건          
가장 슬픈 일

*

최승자의 <외로운 여자들은>을 읽고 생각난 김에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여성 화가, 프랑스)의 <잊혀진 여자>를 읽는다. 마리 로랑생은 잊혀진 여자가 가장 슬프다고 말했는데, 사람들의 기억 속에 많이 남아있는 구절이지만 마리 로랑생, 스스로가 염려했던 것처럼 정작 이 말을 했던 것이 그녀였다는 사실은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는 편이다. '권태-> 슬픔-> 불행-> 버려짐-> 떠돔-> 쫓겨남-> 죽음-> 잊혀짐' 마리 로랑생이 이야기하는 불쌍한 여자의 순서다. 그녀는 잊혀진다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이라고 했다. 어째서 일까?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화가로서의 마리 로랑생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냥 일반인의 개념으로는 지금도 저 맥락이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얼마 전 모 결혼정보회사에서 미혼남녀 593명을 대상으로 통계를 내어보니 10명 중 8명이 연인과 헤어질 때 거짓말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연인과 헤어질 때 남성의 92%, 여성의 77%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연인과 헤어지는 이유 중 가장 말하기 곤란한 것은 남녀 33.5%가 '다른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이고, 뒤를 이어 26%가 '질려서', 16%가 '사랑한 적이 없다', 14.5%가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불과 7%만이 '서로가 맞지 않는다'로 답했다.

남성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절반에 가까운 46%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라 답했고, 여성의 33%가 '상대방에게 상처주기 싫어서'라고 했는데, 남성이 거짓말하는 이유의 2번째(22%)에 해당하기도 한다. 여성이 거짓말하는 두 번째 이유는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어서(31%)'인데 비해 이 같은 응답비율에 비해 남성은 12%이다. 남녀의 통계수치가 매우 다른 듯 보이면서도 사실 꼼꼼이 따져보고 생각해보면 응답의 형식이나 내용은 달라도 이유는 사실 흡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굳이 별로 신용이 가지도 않는 이 통계를 인용한 까닭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차이를 보이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남성이 거짓말하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상대방의 평가에 연연한다는 것이고, 그에 비해 여성은 상대의 마음이나 처지에 집중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인격적으로 좀더 훌륭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어차피 헤어지려고 꾸며낸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인 데다 여성이 거짓말하는 이유 중 두 번째인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어서(31%)'란 말이나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남성들의 이유나 어찌보면 거기서 거기이긴 하니까. 미묘한 차이이긴 하지만 남성은 여성을 통해 자신을 비춰보고 평가하는 존재란 것이고, 여성은 가치 평가보다 존재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차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마리 로랑생의 시가 이해될 수 있다. 그녀의 시를 역순으로 살펴보면 '존재(存在, being), 그 자체'에게 있어 죽음보다 무서운 일은 '망각'이니까. 사랑했던 사람을 잊겠다고 발버둥쳐 본 사람은 '망각(존재의 죽음)'이 주는 달콤함을 알 것이다. 그래서 '망각'은 에로스가 아니라 타나토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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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찾기


-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 Lozano)


나의 몸에서 너는 산을 찾는다
숲 속에 묻힌 산의 태양
너의 몸에서 나는 배를 찾는다
갈 곳을 잃은 밤의 한중간에서


*


 1937년 무렵의 옥타비오 파스(1914~1998)

나는 정신의 사랑보다 몸의 사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랑의 유물론'쯤이라고 해두자. 이 말은 지금 그대가 내 곁에 없어도 여전히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난 지금 그대가 내 곁에 없어 미칠 것 같고, 죽을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의심받고 엄살로 치부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사랑Eros의 완성체, 진정한 종결자는 결혼, 생식 - 이건 과정일 뿐 - 이 아니라 죽음Thanatos이다.

같은 의미에서 옥타비오 파스의 "서로 찾기"가 말하는 사랑은 '에로스'다.

몸의 사랑. 여자는 남자에게서 산을, 남자는 여자에게서 배를 찾는다. 여자는 남자를 만나 머무를 곳을 찾고 남자는 여자를 만나 떠날 곳을 찾는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애타게 찾지만 만남(절정)은 잠시이고 엇갈림은 영원히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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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사람은


- 고트프리트 벤



혼자 있는 사람은 또한 신비 속에 있는 사람,

그는 언제나 이미지의 밀물 속에 젖어 있다.
그 이미지들의 생성, 그 이미지들의 맹아,
그림자조차도 불꽃을 달고 있다.
     
그는 모든 층을 품고 있고
사색에 충만하며 그것을 비축해 두고 있다.
그는 파멸에 강하며
남을 부양하고 짝을 맺어주는 모든 인간적인 것에 강하다.
     
대지가 처음과는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것을
그는 아무 감동 없이 바라본다.
더는 죽을 것도, 더는 이루어질 것도 없이
조용한 형식의 완성이 그를 지켜 보고 있을 뿐.


<고트프리트 벤 시집 『혼자 있는 사람은』(이승욱 옮김, 청하, 1992)>


*

종종 혼자 있을 수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해보지만,
혼자 머무는 시간 동안엔 절대 그걸 꿈꾸지 않는다.

"혼자 있는 것이 조용한 형식의 완성이 될 수 있다."
고 시인은 말한다.
"더는 죽을 것도, 더는 이루어질 것도 없이"란 말은 결국 죽음.

"혼자 있는 것은 죽음이다."라고...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엔 절대적으로 홀로 있을 수 없음을...
시인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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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鬪牛)처럼
Como el toro


- 미겔 에르난데스(Miguel Hernandez)


투우(鬪牛)처럼 죽음과 고통을 위해
나는 태어났습니다.
투우처럼 옆구리에는 지옥의 칼자국이 찍혀 있고
서혜부에는 열매로 남성(男性)이 찍혀 있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이내 가슴 전부는
투우처럼 보잘 것 없어지고
입맞춤의 얼굴에 반해서
그대 사랑 얻기 위해 싸우겠습니다.

투우처럼 나는 징벌 안에서 자라나고,
혀를 가슴에 적시고
소리 나는 바람을 목에 걸고 있습니다.

투우처럼 나는 그대를 쫓고 또 쫓습니다.
그대는 내 바램을 한 자루 칼에 맡깁니다.
조롱당한 투우처럼, 투우처럼.


출처 : 미겔 에르난데스, 양파의 자장가, 솔

*

"라틴" 하면 어째서 먼저 '태양'이 떠오르는 걸까.
그 뜨거움이 먼저 내 몸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걸까.
그 모든 것이 뜨거울까.

그 이유를 나는 이 시에서 본다.
"그대 사랑 얻기 위해" 싸우겠다는 남자.
"징벌 안에서 자라나", "소리나는 바람을 목에 걸고 있"는 남자.

그 모든 걸 조롱당한 투우처럼,
어쩌면 '조롱'보다는 '농락'이란 말이 더 적합한 번역일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조롱당한 투우처럼 자신의 이 모든 소망을
당신 손에 들린 한 자루 칼에 걸 수 있는
.....................
이 모든 게 뜨겁다, 뜨겁다, 뜨겁다 말고 달리 무슨 표현을 찾을 수 있을까.

미겔 에르난데스는 스페인 시인이다.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의 파시스트 군에 저항한 시인이지요.
그는 결국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두고 알라칸테의 옥중에서 병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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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사막을 지나(A travers Mers et Desert)

- 앙리 미쇼(Henri Michaux)


효력 있다 숫처녀와 씹하듯
효력 있다
효력 있다 사막에 물이 없듯
효력 있다 내 행동은
효력 있다

효력 있다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따로 서 있는 배반자처럼
효력 있다 물건을 감추는 밤처럼
효력 있다 새끼를 낳는 염소처럼
조그맣고 조그맣고 벌써 비탄에 잠긴 새끼들

효력 있다 독사처럼
효력 있다 상처를 낸 단도처럼
그걸 보존하기 위한 녹과 오줌처럼
강하게 하기 위한 충격, 추락, 동요처럼
효력 있다 내 행동은

효력 있다 결코 마르지 않는 증오의 대양을 가슴에 심어주기 위한 모멸의 웃음처럼
효력 있다 몸을 말리고 넋을 굳히는 사막처럼
효력 있다 내팽개쳐 논 시체를 뜯어 먹는 하이에나의 턱처럼

효력 있다
효력 있다 내 행동은

<출처> 앙리 미쇼, 김현, 권오룡 옮김, 바다와 사막을 지나, 열음사(1985)

*


앙리 미쇼의 시집을 오랜만에 들춰보다가 '빙긋' 웃음 짓는다. "효력 있다 숫처녀와 씹하듯" '빙긋', 혹은 '벙긋' 그리고 '봉긋'... 뭔가 에로틱하다. 그러므로 "효력 있다"는 "효력 있다".


앙리 미쇼는 1899년에 태어난 시인이다. 세기말에 태어나 세기말에 죽었다. 오래 살았다. 그의 시어들은 반복된다. 반복하며 확장한다. 김현이든, 권오룡이든 왜 이 사람들은 굳이 "씹하듯"이라 했을까? 난 짖궂게도 혹은 10대 소년처럼 그 이유가 궁금하다.

김현은 "적대적인 세계와 자아 사이의 절망적인 싸움"을 벌인 시인으로 앙리 미쇼를 해석하고 있는데, 나는 앙리 미쇼보다 김현에게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이 간다. 당신은 왜 구태여 "씹"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바슐라르'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점잖은 불문학 교수이자 수많은 시인을 발굴해낸 문학평론가인 그가 어째서?

난 그 이유는 오로지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건 그가 우리 문학사에 보기 드물게 '진짜'였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자기의 생각, 자기의 언어를 가진 사람만이 저렇게 당당하게 옮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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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곱하기 둘


- 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

동지여, 감방에서
그 방까지
몇 걸음 걸리는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오.

스무 걸음이라면
화장실로 그대를 데려가는 게 아니라오.
마흔다섯 걸음이라면
운동하라고
그대를 데리고 나가는 건 절대 아니라오.

여든 걸음을 세고 나서
장님처럼 고꾸라지듯이
층계를 오르기
시작하면
오, 여든 걸음이 넘는다면
오직 한 군데가 있을 뿐이오
그들이 그대를 끌고 갈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군데가 있을 뿐이오
오직 한 군데가 있을 뿐이오
그들이 그대를 끌고 갈 수 있는 곳은
이제는 오직 한 군데밖에 없다오


출처 : 아리엘 도르프만, 이종숙 옮김,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 창작과비평사, 1998.

*

내 주변엔 감옥에 다녀온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에게서 감옥살이 이야기 듣는 것이 친구들에게서 군대 이야기 듣는 것처럼 익숙하다. 4.19세대로 5.16군사법정에 섰던 한 사람은 비록 정치깡패이긴 했지만 당당했던 이정재가 사형을 언도받은 뒤 사형대에 설 때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리엘 도르프만의 시처럼 그 역시 ‘여든 걸음’ 너머의 세계로 끌려갔다. 서대문형무소에는 면회소 가는 길과 사형대 가는 길이 서로 이어져 있었으므로….

반공주의와 북진통일 이외에 모든 것은 친북좌파이던 시절 당당하게 평화통일론을 펼쳤던 죽산 조봉암은"법이 그런 모양이니 별수가 있느냐. 길가던 사람도 차에 치어 죽고 침실에서 자는 듯이 죽는 사람도 있는데 60이 넘은 나를 처형해야만 되겠다니 이제 별수가 있겠느냐, 판결은 잘됐다. 무죄가 안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 정치란 다 그런 것이다. 나는 만사람이 살자는 이념이었고 이 박사는 한 사람이 잘 살자는 이념이었다. 이념이 다른 사람이 서로 대립할 때에는 한쪽이 없어져야만 승리가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를 하자면 그만한 각오는 해야한다."라고 했다. 그는 사형언도를 받은 직후 곧바로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인혁당 등 수많은 사람들이 법으로 이름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른바 법살(法殺)이었다. 엊그제(2008. 9. 26) 60주년을 맞이한 사법부의 수장 이용훈 대법원장이 과거 사법부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이제 세월을 지내놓고 보니 내가 감옥은커녕 유치장에도 가보지 못했던 것은 좋은 시대를 살았던 덕분이 아니다. 다만 운이 남들에 비해 조금 더 좋았을 뿐이었다. “스무 걸음, 마흔 다섯 걸음, 여든 걸음이 내 앞에도 여전히 놓여있다. 나는 다만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 운이 좋았을 뿐이다.

죽산은 교수대 앞에서 목사에게 마지막으로 성경의 <누가복음> 23장 22,23절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재판장인 빌라도가 말한다. 나는 그의 죄를 찾지 못하겠다. 그러나 처형을 외치는 군중의 소리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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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 


            로버트 블라이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풀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헛간도, 가로등도
그리고 밤새 황량한 작은 중앙로도



Love Poem


         Robert Bly

        

When we are in love, we love the grass,

And the barns, and the lightpoles,
And the small mainstreets abandoned all night.


*

어릴 적 사랑에 빠졌을 땐 그것이 가능하리라 믿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더이상 외롭지 않을 것이라거나 혼자라는 느낌 같은 거 갖지 않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외롭거나 혼자라는 느낌이 지독하면 지독할수록 사랑은 더욱더 강력한 구원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사랑이 깨어졌을 때, 그리고 다음의 사랑이 허망하게 지나갔을 때, 내가 버림받는 것뿐만 아니라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다음 번 사랑을 만나서도 여전히 똑같은 고민, 우리가 영원히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유일하게 영원할 수 있는 것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나는 아주 편하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영원한 것은 고독이며 결국 혼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무한할 것만 같았기에 더욱 큰 고통이었던 사랑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부터 놓여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너이지만 그러나 너는 너이고, 나는 나여야만 또한 사랑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풀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시인이 된다고 합니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게 됩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더 많이 아프고, 더 많이 기쁘게 되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길이 쓸쓸하고 고독한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그 길로 걸어갑니다. 밤새 황량한 작은 중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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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듣는 아침...
불현듯 브레히트의 이 시가 읽고 싶어졌다. 가끔 전혜린이 잘 이해되는 밤이 있고, 그리고 아침이 있고, 또 한낮이 있다. 과거 자연과학자들은 남성이, 백인이 타인종, 여성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었다. 여성은 생태학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며, 본래 자연계의 다른 생물들을 살펴보더라도 여성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식의 그런 것들을 입증해 내기 위해 노력했다. 흑인종은 어째서 대뇌가 백인 남성에 비해서도 작은가? 혹은 백인 여성에 비해서도 작은가? 대뇌의 크기가 마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라도 될 수 있는 양, 초창기 IQ검사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지능지수가 높게 나오는 일이 빈발하자 IQ검사의 문항 자체를 남성에게 유리한 것으로 고친 적도 있다.

사람들은 수학적 진실 혹은 진리를, 과학에도 고스란히 대입시켜 과학도 역시 진실, 진리에 가깝다는 믿음을 오래도록 가져왔다. 그러나 그것도 인간의 일이니 어찌 실수가 없고, 감정이 없으며, 그릇된 판단이 없을까. 오늘날 여성시대 혹은 여성의 입김을 의식한, 아니 전복적인 이라고 해두자. 과학자들은 이젠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한 생물학적 진실을 찾아 헤맨다. 부디 그 모든 것이 진실이길 바란다. 나역시 오래도록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한 존재일 것이란 추측을 해왔고, 그런 추측에 과학적인 논리를 제시하고 싶어서 생물학의 몇 가지 근거를 들이대곤 했다. 가령, 어려서 양성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 남성을 제거한 경우가 훨씬 생존율이 높다거나 훗날 성장해서도 성징이 나타날 때도 정상적인 성감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요사이 내 생각은 그렇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생물학적인 우월성을 논하려는 과학들은 과거 남성중심이 과학이 유행에 불과한 것이자, 필연적으로 우생학이 되는 것처럼 이도 그런 혐의가 보인다는 것이다.

어느날 아침...
나는 불현듯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저 싯구가 떠올랐다.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브레히트는 소문난 오입쟁이이자, 바람둥이였다. 그의 보기 드문 연애시는 그렇게 입에 닳고 닳은 허구였을까? 남자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은 "당신이 필요해요"다. 우습지 않은가? 필요라니... 소중도 아니고.... 어쨌든 이 남자는 그래서 말년 병장처럼 떨어지는 빗방울도 두려워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필요성을 충족시켜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맞아 죽는 일은 없어야 하겠기에...

그러다 문득 내 생각이 구체적인 누군가에게 미쳤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 내가 필요하다고 절박하게 외칠 수 있는 단 한 명의 사람,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말을 건네 보았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때 나는 느꼈다. 아, 이 .... 이기적인 감정.... 난 당신이 필요해. 필요하다구. 필요해... 정말.... 그 상대방의 이기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어쩌면 "사랑"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날 깍아내고, 희생시켜서라도 너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 싶다는 그 마음이 어쩌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더이상 날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는 사라지지 않으마. 그 마음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널 위해 날 사랑하마. 너로 인해 내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러자 불현듯 눈물이 고였다.

나 당신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아니 당신 때문에.... 당신 덕으로 이렇게 살아가고 있군요.... 하고 말이다.

사랑이 과학일 수 있을까? 과학은 사랑일 수 있어도 사랑은 과학일 수 없을 것 같다. 이때 사랑은 과학보다 큰 학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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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클래스 블루스
 
-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우리는 불평할 수 없다.
우리는 할 일이 있다.
우리는 배부르다.
우리는 먹는다.
 
풀이 자란다.
지엔피가 자란다.
손톱이 자란다.
과거가 자란다.
 
거리는 한산하다.
종전 협상은 완벽하다.
방공경보는 울리지 않는다.
다 지나갔다.
 
죽은 이들은 유언장을 썼다.
비는 그쳤다.
전쟁은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그것은 급할 것이 없다.
 
우리는 풀을 먹는다.
우리는 지엔피를 먹는다.
우리는 손톱을 먹는다.
우리는 과거를 먹는다.
 
우리는 감출 것이 없다.
우리는 늦출 것이 없다.
우리는 할 말이 없다.
우리는 있다.
 
우리는 무엇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가?
 
시계가 다시 돌아간다.
상황은 정돈되었다.
접시는 씻겼다.
마지막 버스가 지나간다.
 
버스는 비어있다.
 
우리는 불평할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는가?



*

가끔 그 놈의 중산층 허위의식이란 것이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나를 쳐다본다. 범고래가 물 위에서 자신을 관찰하는 과학자들을 자신도 관찰하기 위해 가끔 수면 위로 머리를 들어올릴 때처럼 그렇게....

누군가 문장 뒤에 말 줄임표를 많이 쓰는 사람을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뭔가 불만많은 불안하고 심약하며 혹은 우쭐하고 우울하며 공격적인, 저 기만적이고 허위로 가득한 폐를 헐떡이며 성공의 지름길을 달려가는 중산층의 저 사내. 할 일이 있으므로 불평할 일이 없고, 우리는 배부르게 먹는다. GNP를 먹고, 과거를 먹어치운다. 뒤돌아보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번성한다. 가끔씩 엇박자로 돌아가는 이 불쌍한 중생들..... 마지막 버스가 지나갔으므로 우리는 기다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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