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대전략 (Battle Of Britain)
감독 : 가이 해밀턴
출연 : 해리 앤드류즈, 마이클 케인, 트레버 하워드, 커드 저진스
제작 : 1969(영국)
 

 

서구의 몰락과 나치의 유럽 통합 계획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한 대의 허리케인 전투기가 패주하는 영국군과 프랑스 피난민들의 머리 위로 공중제비(소위 "승리의 횡전"이란 비행 포메이션)를 넘으며 멀리 사라진다. 그러자 전차에 올라탄 채 후퇴하고 있던 영국 병사 하나가 쓰디쓴 입맛을 다시며 말한다. "저게 어디서 사기를 쳐."  1940년 6월 5일 아침 몇 명의 독일군 장교가 프랑스의 덩케르크 해안 근처를 산보하듯 거닐었다. 그곳에 독일의 전격전에 휘말려 패전하며 간신히 프랑스에서 철수한 영국군 장비와 미처 후퇴하지 못하고 전사한 영국군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독일은 전유럽을 석권했고, 이제 남은 것은 영국 하나뿐이었다. 영국만 독일에 굴복한다면 유럽의 통합은 오늘날 EU에 의한 것이 아니라 1940년 6월 독일에 의해 이룩될 뻔 했다.

 

어떤 의미에서 분열과 통합을 거듭한 유럽의 역사에서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은 곧 유럽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가 만년에 나치즘에 경사되었던 까닭, 그것은 유럽이 하나의 강력한 문명권으로 재통합하여 다시 세상의 주도 문명(패권)을 이루길 소망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러나 이렇듯 유럽을 힘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로서의 제2차 세계대전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정치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여러 위험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시도되지 않았던 역사 평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보다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사이의 대결로서 더 의미지어져 왔다. 그러나 이런 평가만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완전히 규명해내는데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최소한 1940년 6월까지의 독일은 분명 문제가 많은 폭력적 국가이긴 했으나 특별히 인류의 적이라 규정당할 만큼 사악한 국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독일과 나치즘을 두둔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나 서구문명에서 한 인종에 대한 잔학한 멸종 정책의 원조는 엄밀히 말하자면 나치즘이나 독일이 아니다. 그들이 소위 문명화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성취된 이후에도 혹은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이미 그들은 다른 인종을 멸종시킨 전례가 있다. 그 대부분은 게르만인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앵글로 색슨종에 의한 것이었는데,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인디언 멸종에 이르는 과정,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일어난 애보리진 멸종에 이르는 과정과 비교하자면 독일과 유럽에서 일어난 유대인 말살정책은 오히려 덜 잔인한 측면이 있다. 최소한 독일인들은 유대인들과 대화는 했으니 말이다.

 

 

파시즘이 유럽에서 발호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그보다 더 정교하게 규명해볼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의 유럽 혹은 서구(미국을 포함한)에서 파시즘(나치즘)을 바라본 시각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파시즘을 유럽문명을 수호할 하나의 중요한 정신 혁명으로 보거나, 전혀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거나 최소한 공산주의보다는 덜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런 까닭에 슈펭글러나 하이데거와 같은 역사학자와 철학자들은 나치즘을 지지했고, 독일 이외의 국가들 -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 심지어 미국에서도 나치즘을 지지하는 정당이 만들어졌다.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유대인 혐오와 함께 히틀러를 격찬했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헨리 포드뿐만이 아니었다. 윈스턴 처칠 역시 공산주의에 대한 대단한 혐오를 드러내면서 나치즘과 히틀러를 매우 유능한 인물이자 훌륭한 정치 파트너로서 격찬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나치즘이 지배하는 독일을 소련에 대한 자본주의의 유능한 방패로 인식했고, 독일이 비록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긴 했지만 그만한 지위를 누릴만한 자격과 권리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여겼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목전에 다가오고 있는 새로운 전쟁의 위험을 감지한 소련의 스탈린이 수 차례에 걸쳐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 유화적인 제스춰를 보내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에 대해 연합전선을 만들 것을 요청했음에도 이들 국가들은 도리어 소련을 고립시켰다. 소련이 강력한 반공을 주장하는 독일과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궁지에 몰린 소련의 입장에서는 피치 못할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가 생각했던 것처럼 소련에 대한 파수견 입장보다는 좀더 쓸만하고 구미에 맞는 먹잇감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이었다.

 

 

제2의 정복왕 윌리엄을 꿈꾼 히틀러

거기에는 동시에 두 곳에서 전선을 만들지 않는다는 제1차 세계대전의 교훈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어찌되었든 독일은 서부 유럽의 패자이자, 유럽을 석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프랑스를 단번에 패퇴시키는 위용을 거두었고, 독일 공군(Luftwaffe)는 일찌기 찰스 린드버그가 말했던 것처럼 "독일의 공군력은 전유럽 제국을 합친 것보다 강력"했고, 유럽 최강을 넘어 세계 최강이었다. 영국은 우군 하나 없이(미국은 이 당시 참전하지 않고 있었다) 세계 최강의 육군국이자, 공군국인 독일을 상대로 고립된 상태에서 전쟁을 벌여야 했다.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자신의 방공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방에서 나는 전투를 지휘하겠다. 그리고 만일 침공이 시작된다면 이 의자가 내가 앉을 자리이다. 우리가 독일인들을 격퇴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내 시체를 끌어낼 때까지 나는 저 자리를 고수하겠다." 이 말은 당시 영국이 처해 있던 고립무원의 상황을 너무나 적확하게 보여준다.

 

이 무렵 독일은 영국진공계획인 "강치(시라이온) 작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 작전은 도버 일대의 벼랑 동쪽에 있는 램즈 게이트에서 와이트도 서쪽의 라임만까지 거리로 약 320km에 달하는 장대한 영국의 해안선에 25만명의 독일군을 상륙시키는 것이었다. 이곳은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이 소수의 노르만 기사들을 이끌고 영국 정복에 나설 때 상륙한 바로 그곳이었다. 독일은 영국 점령 이후 체포할 유명인사들 - 영국수상인 윈스턴 처칠을 비롯해 작가인 올더스 헉슬리, 버지니아 울프 등 - 의 리스트까지 작성해 논 상태이고, 독일공정부대원들 가운데 일부에게는 버킹검궁 강하 직후 체포할 영국왕에게 건넬 인사말까지 준비시켰다. 모든 것은 치밀한 독일인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로 착착 진행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도버 해협을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필수적인 요소들이 보장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선, 폭이 40km에 불과한 도버해협이긴 했지만 이 해협을 건너기 위해서는 제해권과 제공권이 보장되어야 했는데, 제해권을 장악하는데는 필수적으로 제공권을 장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배틀 오브 브리튼의 시작 - 제공권을 잡아라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공군들을 섬멸해야 했다. 히틀러에 이어 독일의 2인자였던 헤르만 괴링에게 이건 닭을 비트는 일보다 쉽게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는 스페인 시민전쟁 때부터, 폴란드 침공, 프랑스 점령에 이르는 기간 동안 무적의 전투 경험을 쌓은 강력한 공군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 공군은 1선에 배치된 항공기만 4,500대에 이르렀지만, 영국은 제2선급 항공기(여기에는 수송기, 중폭격기)까지 모두 긁어모아야 고작 2,900대 공군기만 보유하고 있었다. 단지 산술적으로만 보더라도 평균 2:1의 약세에 처해 있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독일 공군의 파일럿들은 스페인 시민전쟁을 비롯한 수않은 전투에서 경험을 쌓은 에이스들인데 비해 영국 공군 파일럿들은 그런 경험이 전무한 애송이들이었고, 그나마 파일럿의 숫자는 비참할 정도로 모자라 보유하고 있는 항공기들을 공중에 모두 띄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간단히 살펴보더라도 도저히 영국은 독일의 거센 공격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만약 영국인들이 이런 비교만으로 전쟁의 승패를 가늠했더라면 제2차 세계대전은 1940년 6월에 끝났을 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오늘날 세계의 모습은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협상을 권유한 독일의 제의를 거절했고, 그로부터 독일의 가혹한 대공습을 견뎌내는 "불의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오늘날 "Battle of Britain"이란 말은 단순히 우리 말로 번역한 "영국의 전투"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말은 1940년 6월부터 시작해서 1941년 5월 10일까지 영국 상공에서 벌어진 공군대 공군 사이의 대혈전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된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때를 다룬 영화이다.

 

 

자유를 수호한 영국의 찬가

미국에게 "지상최대의 작전"이 파시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진영을 사수한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그들 나름의 찬가라면, 영국에게 "배틀 오브 브리튼(공군대전략)"은 그들이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유럽과 자유 진영을 사수하기 위해 악전고투한 그들만을 위한 찬가이다. 그런 까닭에 "지상최대의 작전"에서 미국과 할리우드가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제작한 영화라면, "배틀 오브 브리튼"은 영국이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제작한 영화이다. 감독은 "007시리즈"로 유명한 "가이 해밀톤(Guy Hamilton)"이 맡았고(아마도 이 영화의 제작자가 007시리즈의 제작자인 탓인지도 모르지만),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 역시 영국 출신의 쟁쟁한 주연급 배우들이 앞장서고 있다(이 영화의 서플먼트에 따르면 이 배우들은 모두 제각각 가장 적은 출연료라도 감수하면서라도 이 영화에 출연하고자 했다고 한다).

 

마이클 케인 (Michael Caine), 트레버 하워드 (Trevor Howard), 커드 저진스 (Curd Jurgens), 해리 앤드류스(Harry Andrews), 이안 맥쉐인, 케네스 모어, 나이젤 패트릭, 크리스토퍼 플러머,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랄프 리처드슨, 로버트 쇼, 패트릭 위마크, 수잔나 요크 등 모두 주연급으로 한가락씩 하는 배우들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주인공은 영국 공군 대장역을 맡았던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경이었다. 그는 이 영화에 출연할 당시 이미 암이 발병한 상태였으나 이 사실을 숨기고 출연해 "배틀 오브 브리튼"의 명장 "휴 다우딩(Hugh Dowding)" 역을 맡았다. 로렌스 올리비에 경의 연기에 대해 여러 찬사들이 있으나, 이 영화 역시 "지상최대의 작전"처럼 수많은 유명배우들이 존재감 없이 등장했다 사라지지만 그 가운데 유일하게 존재감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역시 로렌스 올리비에 경의 연기는 탁월하다는 찬사를 바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승리 요인들

이 영화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영국이 어떻게 독일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가를 살피고 있다. 그 요인들은 우선 로렌스 올리비에 경이 연기한 휴 다우딩 장군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전략에 있었다. 다우딩은 프랑스의 패배를 예견하고, 처칠에게 더이상의 영국 공군을 도버 너머로 파병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 이 때 처칠은 프랑스 수상에게 더 많은 영국 공군의 파병을 약속해 논 상태였지만, 다우딩의 권유를 받아들인다. 그 덕분에 영국은 더이상의 공군력 손실없이 다가오는 전쟁을 대비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다우딩은 영국의 모든 공업력을 항공기, 그 중에서도 전투기 제작에 최우선을 두도록 했고, 독일 공군의 폭격에 도시를 내어주면서까지 자국의 공군력을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운영해 최후의 순간까지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비축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 전투는 영국 상공에서 벌어진다는 우위를 철저히 이용했다.

 

독일 공군의 주력기인 Me-109는 먼거리를 비행해 영국 상공에 이르렀을 때는 최소 10분에서 최대 20분의 시간 동안만 머물 수 있는 짧은 항속거리를 가지고 있었던데 비해 영국 공군은 레이더의 지원을 받아 독일 공군이 프랑스의 기지에서 이륙하는 순간부터 대기하였다가 그네들이 도착한 시점에 비로소 요격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에 독일 공군은 늘 시간과 연료에 쫓기며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영국 공군은 독일이 보유하지 못한 신형 무기인 레이더 기술에서 훨씬 더 앞서 있었으므로, 독일 공군은 영국 공군의 레이더 기술에 걸려 기습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영화는 "지상최대의 작전"과 마찬가지로 세미 다큐멘터리 형식을 갖추고 있다. 실제 전쟁에서 쓰였던 전투기와 폭격기들을 동원해 실제로 공중전을 방불케 하는 고도의 기동전술, 편대 비행, 전투 기술을 보이면서 촬영된 영화이다. 더군다나 그 모든 것이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실제 전투기(일부 모델)를 공중에서 폭파시키는 방식으로 촬영된 실사 영화이다. 그렇게 고증에 철저한 이 영화에서 언급하지 않는 유일한 승리의 요인은 당시 영국군은 독일군의 군사암호를 모두 해독하고 있었다는 사실 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승리의 요인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영국 공군 파일럿들의 헌신적인 희생과 불굴의 정신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처칠은 "배틀 오브 브리튼"이 끝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소수의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할 때는 없었다"고 말한다. 영국인들에게 "배틀 오브 브리튼데이"는 그들이 세계를 구원한 영광스러운 날로 기억된다. 1941년 5월까지 독일이 영국에 가한 대규모 공습만 127회였고, 이 때 영국 민간인 총 6만명이 사망했으며, 8만 7천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영국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보다 더 많은 공습과 폭탄을 독일에 떨어뜨려렸고, 무차별폭격을 가해 더욱 많은 독일의 도시들을 불태웠고, 더 많은 민간인들을 희생시켰다.

 

 


그 이후 바뀌지 않는 민간인 학살 - 무차별폭격의 역사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기 승무원으로 독일 상공을 비행했다. 그는 훗날 자신이 폭격했던 지역을 여행하며 공중에서 내려다 볼 때는 다만 한 개의 점으로 보였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는 군인 신분으로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었지만 그가 떨어뜨린 폭탄이 민간인이 거주하는 도시에 떨어져 일반 시민이 사망했다는 사실에 깊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하워드 진은 폭격 임무 참여할 당시 폭격기 날개 밑에서 터지는 고사포탄의 검은 색 구름을 제외하면 자신이 누군가를 죽이고 있다는 생각은 물론 적진을 비행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영국인들에게 "배틀 오브 브리튼"은 자유에 대한 전체주의에 대한 도전에 대한 승리의 의미를 지닐 것이고, 이것은 분명 부인할 수 없을 만큼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벌어진 이 엄청난 항공전의 승리는 그 뒤에 치뤄질 무지바한 대량공습과 무차별폭격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전쟁수행방식의 전초전이기도 했다. 이제 전쟁은 더욱 가혹해졌는가? 물론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더욱 가혹해졌는가? 그것은 전방의 군인들이 아니라 후방의 민간인들에게 더욱 가혹한 것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전선의 병사보다 후방의 민간인 사상자 수가 압도적으로 증가하게 되고, 이런 전쟁 수행 방식은 이후부터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수와 양을 능가했고, 베트남전은 다시 이를 경신한다.

 

 

* 이 DVD는 두 장의 타이틀로 구성되어 있다. 한 장은 본 영화를 다른 하나는 영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몇 가지 점에서 두 번째 타이틀 역시 매우 재미있다. 하나는 당시 전쟁에 참전했던 파일럿들의 생생한 증언, 영화 제작과정의 에피소드, 그리고 당시 생존해 있던 휴 다우딩 장군과 독일의 에이스이자 나폴레옹 이후 유럽 최연소 장군이었던 아돌프 갈란드의 인터뷰가 삽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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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쥐를 가지고 놀 때, 쥐를 얼마쯤 도망치게 버려두기도 하고 쥐에게서 등을 돌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쥐가 고양이의 권력의 테두리 안에 있다는 것에는 다를 바가 없다. 만일 쥐가 그 테두리를 뛰쳐나오면 고양이의 권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잡힐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기 전에는 그 권력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다. 고양이가 지배하는 공간, 고양이가 쥐에게 허용하는 희망의 순간들, 그러나 잠시도 눈을 딴 데로 돌리지 않는 면밀한 감시와 해이해지지 않는 관심, 그리고 쥐를 죽이려는 생각. 이것을 모두 합친 것, 즉 공간, 희망, 빈틈없는 감시와 파괴적인 의도를 권력의 실체, 좀더 단순히 말해 권력 그 자체라고 부를 수 있다." - 엘리아스 카네티



◀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805, 루브르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길가는 사람을 절벽으로 내몰아 죽이고, 돌림병에 시달리던 테베를 구원했지만, 결국 제 아버지를 죽이고 제 어머니와 붙어먹은 인간이었으므로 테베의 시민들에게 버림받았다.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을 영국의 승리로 이끌었으나 전후 치러진 선거에서 수상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대규모 융단폭격으로 독일의 전쟁 수행 능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고, 현대적 전략폭격의 개념을 창시했던 이른바 폭격기 해리스로 불렸던 영국의 공군사령관 아더 해리스는 전후 '학살자 해리스'라 하여 훈장도, 기사 작위도 수여받지 못했다.

인간의 역사에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풍습은 단순히 상대의 육신을 취하는 카니발리즘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인류공동체는 필요에 따라 최고 권력자들도 희생양으로 요구한다. 그것이 군중과 권력의 진정한 관계이다. 

말벌 한 마리는 원하기만 한다면 수만 마리의 꿀벌을 순식간에 죽일 수 있다. 말벌은 학살대상자를 찾아 정탐 말벌을 내보내 벌통을 확인하는 순간 페로몬을 발산해 동료 말벌들을 불러들인다. 정탐꾼의 페로몬 향기에 이끌린 30마리의 말벌은 벌통 하나에 있는 30만 마리의 꿀벌을 유유히 학살한 뒤 꿀벌이 애써모은 꿀과 애벌레들을 이용해 수주일 동안 살아간 뒤 다시 새로운 벌통을 찾아 학살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어떤 꿀벌들은 벌통을 정탐하기 위해 찾아온 말벌 한 마리가 미처 페로몬을 발산하기 전 순식간에 수만 마리의 꿀벌들이 동시에 한 마리의 말벌을 에워싸고 군무를 춘다. 꿀벌은 체내 온도가 48도까지 올라도 견딜 수 있지만 말벌은 47도까지만 견딜 수 있기 때문에 말벌 한 마리를 에워싸고 벌어지는 꿀벌들의 군무는 자신들의 체온을 높여 말벌을 쪄 죽이려는 속셈이다. 꿀벌들이 집단적으로 추는 춤은 자신들의 공동체를 파괴할 타자에 대한 방어이자 개인적으로는 탁월한 능력을 자랑하는 한 개체를 희생시킴으로써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여러 군체들이 생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작은 어류들이 집단을 형성해 포식자에게 대항하는 모습을 잘 알고 있다. 

한 개체로 수만 마리의 꿀벌을 순식간에 살해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인 말벌이지만 꿀벌들의 집단방어체제에 갇힌 말벌은 꿀벌의 아름다운 춤이 빚어내는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숨진다. 인류의 집단적 지혜가 숨겨져 있는 신화 속의 수많은 영웅들, 반신반인의 초인적 능력을 갖춘 영웅들이 결국 사소한 질투와 시기로 인해 혹은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결국 비참한 몰락을 맞이하는 까닭은 평범함 군체들의 자기보호본능, 공동체를 핑계로 벌어지는 카니발리즘이다. 영웅은 죽음 이후 최고의 장례로 받들어지지만 살아 생전엔 결코 인정받지 못한다. 

사람은 육신으로 이루어졌고, 육신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의 목숨을 빼앗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의 업보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업보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업보다. '바보 노무현'은 우리가 부추겨 올린 줄에 올라 한바탕 권력을 누렸다. 그 뒤 줄에서 떨어지자 다시 우리 손에 잡아먹혔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내는 애도 역시 '악어의 눈물'에 불과하다. 


▶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 1905~1994)


엘리아스 카네티는 <군중과 권력>에서 권력을 고양이와 쥐의 관계에 비유했지만 나는 가끔 실제로 벌어지는 사회현실을 해석하기 위해 그동안 내가 해 왔던 정치학적인, 사회학적인 학습이나 훈련보다 꿀벌이나 개미 같은 곤충의 생태학, 늑대나 침팬지, 오랑우탄 같이 군체를 이루는 포유류에 대한 생태학 학습이 더 절묘하게 들어맞는 순간들을 발견하곤 한다.

"인간이 먹이를 구하는 방법은 교활하고 피비린내가 나며 끈덕지다. 수동적인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은 온건하게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적이 멀리 있다고 감지하자마자 자기의 적들을 공격한다. 그리고 인간의 공격용 무기는 방어용 무기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다. 인간이 자신을 '보존'하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동시에 자신의 보존을 위해서 불가피한 다른 것들을 원한다. 인간은 다른 것들보다 오래 살아남기 위해 그것들을 죽이기를 원한다. 인간은 다른 것들이 자기보다 오래 살아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살아 있으려 한다."

"살아남는 최후의 인간이 되는 것, 이것이 모든 권력자가 원하는 것이다."
라고 엘리아스 카네티는 말했지만 가장 최후에 살아남는 인간, 다시 말해 최후까지 살아남는 권력자는 노무현이나 이명박 같이 특정한 개인의 이름으로 호명되는 존재가 아니란 점이다. 우리는 모두가 남을 박해하는 존재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 나보다 약한 자를 살해하고 괴롭힘으로써 생존하지만 그 결과 죄와 불안은 더욱더 커진다. 우리는 죄와 불안으로부터 구원되기 위해 자신을 박해받는 자와 일치시키려고 한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면서 '애도'란 그런 것이다. 애도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닌 산 자를 위한 것,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산 자의 영혼을 위무하기 위한 것이다.

마피아의 법칙,
"살인자가 가장 큰 목소리로 애도한다." 노무현의 장례식은 이명박 정부에 의해 국민장으로 치러진다. 인간사의 보고로 일컫는 <삼국지>에는 제갈공명이 한 번은 상대의 죽음을, 그 다음엔 자신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첫 번째 장면에서 제갈공명은 자신의 계교로 죽음에 이른 주유의 장례식에 참석해 크게 곡하고 조문한다. 너무나 서럽고 애닯게 조문하는 제갈량의 모습에 감동한 오나라 사람들은 저처럼 자신을 잘 알아주었던 제갈량을 질시하다가 결국 스스로의 죽음을 자초한 주유를 협량한 인사로 여겼다. 

두 번째 장면에서 제갈공명은 사마중달의 공세로 위기에 처한 정국에서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임을 알고 자신의 사후에 벌어질 일련의 사태 진전까지 염두에 둔 계교를 꾸민다. 그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사마의는 제갈량이 죽었다는 첩보를 접하자 후퇴하는 촉나라 군대를 급습한다. 그러나 이를 미리 예견했던 제갈량은 자신을 꼭 닮은 목각 인형을 만들고 성문을 활짝 열어 사마중달의 의심을 부추긴다. 자신의 꾀에 자기가 빠진 사마의는 더이상 촉나라 군대를 쫓지 않고 후퇴한다. 이것이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쳤다'는 <삼국지>의 일화다. 

그러나 '바보 노무현'의 죽음에서 <삼국지>의 제갈공명과 주유, 사마의 중달을 떠올리는 것도 부질없는 짓 같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서는 애도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에 대해서는 별로 애도하고 싶지 않다. 그를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세상 바람처럼 와서 풍운에 따라 국가권력의 정상까지 올랐다가 떠나매, 전국민의 애도 속에 한 시대의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니 그로서도 후회가 없진 않겠으나 떠나는 마당에 담배 한 개비 이외 무엇이 아쉬웠으랴. 부디 잘 가시길...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업보 속에 또 무엇을 애도하랴. 

"삶의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Beyond life nothing g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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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위대한 남자들도 자식때문에 울었다 - 모리시타 겐지 | 양억관 옮김 | 황소자리(2004)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겠는가"하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면 공식적으로 드러난 생활들 말고, 사생활의 일면을 보여주는 책들은 어떤 한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그 관계가 부부관계와 같이 보다 내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아주 사생활에 속하는 부분도 아니라고 하겠다. 우리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가 선천적으로 장애(중증 뇌장애)를 가진 아들 히카리(일본말로 '빛'이란 뜻)에게 정성을 기울여 작곡가로 키워낸 이야기와 같은 사례는 지금도 우리들의 귀감이 된다. 그러나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가 당대의 거장으로 널리 알려졌던 오귀스트 로댕이 함께 작업해보자는 제의를 거절하면서 했다는 말 "큰 나무 밑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경우들은 비록 부자지간은 아니었지만 이 책이 주장하는 바와 의미가 상통한다.

 

그것은 이 책의 일본 원제가 '불초자不肖子'이기 때문이다. "아닐불, 닮을초"의 이 말은 본래 "닮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대개는 스스로를 낮춰 어리석은 사람이라 표현하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스스로를 낮출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은 어머니에 의한 자식 교육의 대명사인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맹자(孟子》〈만장편(萬章篇)〉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내용인즉 요(堯) 임금의 아들 단주는 불초하고, 순(舜) 임금의 아들 역시 불초하며, 순 임금이 요 임금을 도운 것과 우 임금이 순 임금을 도운 것은 오래되었으며, 요와 순 임금이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은혜를 베푸셨다(丹舟之不肖 舜之子亦不肖 舜之相堯 禹之相舜也 歷年多 施澤於民久).” 중국의 가장 훌륭한 황제이자 성군의 대명사로 칭송 받는 요, 순 임금은 그들 자식들이 현명하지 못했기에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지난 19세기로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세계사를 풍미한 위인, 예술가들과 자식들의 삶을 통해 부자간의 관계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조지프 케네디와 아들 에드워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아들 그레고리, 윈스턴 처칠과 아들 랜돌프, 토마스 에디슨과 아들 토마스 주니어, 마하트마 간디와 아들 할리랄, 폴 고갱과 아들 에밀, 조지 5세와 아들 에드워드 8세, 존 D. 주니어 록펠러와 아들 넬슨, 막시밀리안 2세와 아들 루트비히 2세,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아들 루돌프, 후계자 페르디난트 대공 등 10명의 아들 혹은 후계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러 신문들이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서평엔 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그의 아들 그레고리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의 사례로 다룬다.  헤밍웨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헤밍웨이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가 딸처럼 옷을 입히고 양육한 탓에 그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을 것이다란 추측을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2001년 9월의 어느날 미국 마이애미주의 도로에 69세의 할머니가 발가벗은 채 하이힐과 옷을 양손에 들고 서 있다 외설혐의로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글로리아 헤밍웨이. 하지만 그의 본명은 "그레고리 헤밍웨이"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아들이었다. 그는 1995년 네번째 아내와 이혼한 뒤 성전환수술을 하여 여성이 되었고, 이 사건 이후 얼마 뒤  여성구치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기다리던 중 병사했다. 그는 로스트제네레이션, 행동주의 작가로 널리 알려졌던 남성미의 대명사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셋째아들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잘 알려진 대로 여러 차례 결혼했지만 결혼 생활은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고, 작품생활을 위해 스페인, 쿠바, 아프리카 등을 전전한 탓에 자식들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양육권마저 박탈당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라면서 자신이 성취한 업적과 인격으로 평가되지만, 간혹 그렇지 못하고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유명해지는 경우가 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스타 부부 커플의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집중되는 스포트라이트를 볼 수 있다. 찰스 황태자비와 다이애나 황태후 사이에 태어난 왕자 윌리엄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위인들의 자식 역시 그런 하중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에는 10명의 위인들이 처한 각기 다른 삶의 환경과 그들의 태도에 따라 자식들이 성장해가면서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를 보여준다. 때로 케네디가의 셋째 에드워드 케네디 전 상원의원처럼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의 지나친 돌봄에도 불구하고 엇나간 경우도 있지만, 모한다스 K. 간디처럼 자신의 이상을 자식에게도 고스란히 투사하여 결국 자식이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여 스스로 엇나가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특히 재미있게 읽은 부분들은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그의 아들 루돌프, 조카이자 후계자 페르디난트 대공의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앞서의 인물들의 경우엔 그나마 개인적인 불행에 그치고 말았지만 이들의 경우엔 세계사를 혼돈 속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큼 자식 교육에 공을 들이는 나라가 어디 흔한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번영 역시 따지고 보면 그런 열렬한 교육열 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자식이 꼭 부모의 성취를 그대로 되밟을 수도 없으며, 그래야 행복한 것도 아니란 교훈을 준다. 아버지의 이상이 곧 자식의 이상이 아니며, 아버지의 반성과 성찰이 고스란히 아들에게 전가되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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