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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인물/평전

위대한 남자들도 자식때문에 울었다 - 모리시타 겐지 | 양억관 옮김 | 황소자리(2004)

위대한 남자들도 자식때문에 울었다 - 모리시타 겐지 | 양억관 옮김 | 황소자리(2004)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겠는가"하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면 공식적으로 드러난 생활들 말고, 사생활의 일면을 보여주는 책들은 어떤 한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더군다나 그 관계가 부부관계와 같이 보다 내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아주 사생활에 속하는 부분도 아니라고 하겠다. 우리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가 선천적으로 장애(중증 뇌장애)를 가진 아들 히카리(일본말로 '빛'이란 뜻)에게 정성을 기울여 작곡가로 키워낸 이야기와 같은 사례는 지금도 우리들의 귀감이 된다. 그러나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가 당대의 거장으로 널리 알려졌던 오귀스트 로댕이 함께 작업해보자는 제의를 거절하면서 했다는 말 "큰 나무 밑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경우들은 비록 부자지간은 아니었지만 이 책이 주장하는 바와 의미가 상통한다.

 

그것은 이 책의 일본 원제가 '불초자不肖子'이기 때문이다. "아닐불, 닮을초"의 이 말은 본래 "닮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대개는 스스로를 낮춰 어리석은 사람이라 표현하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스스로를 낮출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 말은 어머니에 의한 자식 교육의 대명사인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맹자(孟子》〈만장편(萬章篇)〉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내용인즉 요(堯) 임금의 아들 단주는 불초하고, 순(舜) 임금의 아들 역시 불초하며, 순 임금이 요 임금을 도운 것과 우 임금이 순 임금을 도운 것은 오래되었으며, 요와 순 임금이 백성들에게 오랫동안 은혜를 베푸셨다(丹舟之不肖 舜之子亦不肖 舜之相堯 禹之相舜也 歷年多 施澤於民久).” 중국의 가장 훌륭한 황제이자 성군의 대명사로 칭송 받는 요, 순 임금은 그들 자식들이 현명하지 못했기에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지난 19세기로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세계사를 풍미한 위인, 예술가들과 자식들의 삶을 통해 부자간의 관계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조지프 케네디와 아들 에드워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아들 그레고리, 윈스턴 처칠과 아들 랜돌프, 토마스 에디슨과 아들 토마스 주니어, 마하트마 간디와 아들 할리랄, 폴 고갱과 아들 에밀, 조지 5세와 아들 에드워드 8세, 존 D. 주니어 록펠러와 아들 넬슨, 막시밀리안 2세와 아들 루트비히 2세,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아들 루돌프, 후계자 페르디난트 대공 등 10명의 아들 혹은 후계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러 신문들이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서평엔 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그의 아들 그레고리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의 사례로 다룬다.  헤밍웨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헤밍웨이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가 딸처럼 옷을 입히고 양육한 탓에 그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을 것이다란 추측을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2001년 9월의 어느날 미국 마이애미주의 도로에 69세의 할머니가 발가벗은 채 하이힐과 옷을 양손에 들고 서 있다 외설혐의로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글로리아 헤밍웨이. 하지만 그의 본명은 "그레고리 헤밍웨이"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아들이었다. 그는 1995년 네번째 아내와 이혼한 뒤 성전환수술을 하여 여성이 되었고, 이 사건 이후 얼마 뒤  여성구치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기다리던 중 병사했다. 그는 로스트제네레이션, 행동주의 작가로 널리 알려졌던 남성미의 대명사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셋째아들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잘 알려진 대로 여러 차례 결혼했지만 결혼 생활은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고, 작품생활을 위해 스페인, 쿠바, 아프리카 등을 전전한 탓에 자식들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양육권마저 박탈당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라면서 자신이 성취한 업적과 인격으로 평가되지만, 간혹 그렇지 못하고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유명해지는 경우가 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스타 부부 커플의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집중되는 스포트라이트를 볼 수 있다. 찰스 황태자비와 다이애나 황태후 사이에 태어난 왕자 윌리엄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위인들의 자식 역시 그런 하중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에는 10명의 위인들이 처한 각기 다른 삶의 환경과 그들의 태도에 따라 자식들이 성장해가면서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를 보여준다. 때로 케네디가의 셋째 에드워드 케네디 전 상원의원처럼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의 지나친 돌봄에도 불구하고 엇나간 경우도 있지만, 모한다스 K. 간디처럼 자신의 이상을 자식에게도 고스란히 투사하여 결국 자식이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여 스스로 엇나가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에서 특히 재미있게 읽은 부분들은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그의 아들 루돌프, 조카이자 후계자 페르디난트 대공의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앞서의 인물들의 경우엔 그나마 개인적인 불행에 그치고 말았지만 이들의 경우엔 세계사를 혼돈 속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큼 자식 교육에 공을 들이는 나라가 어디 흔한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번영 역시 따지고 보면 그런 열렬한 교육열 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자식이 꼭 부모의 성취를 그대로 되밟을 수도 없으며, 그래야 행복한 것도 아니란 교훈을 준다. 아버지의 이상이 곧 자식의 이상이 아니며, 아버지의 반성과 성찰이 고스란히 아들에게 전가되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인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