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인문학 노트
- 스페인에서 인도까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이현석 (지은이) | 한티재 | 2013-12-09



브루노 베텔하임(Bruno Bettelheim)은 오스트리아 빈출신의 유대계 정신분석학자로 1938년 빈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다하우와 부헨발트에 있는 독일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뒤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줄곧 장애어린이의 심리치료 분야에 종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옛이야기의 즐거움』 같은 책을 썼다. 그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원용해 서구의 어린이 이야기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심리를 분석하면서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어머니의 품을 떠나 낯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어린이들의 두려움과 설렘을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여행기들도 기본적으로는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어(母語)의 나라, 모국(母國)을 떠나 낯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두려움과 설렘이 녹아있지 않은 여행기는 가이드북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라 하는 '길가메시' 서사시도, '오딧세이'도, '서유기'도 결국 고향을 떠나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길을 나선 사람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들은 왜 길을 나선 것일까? 여행은 여행 그 자체로도 목적이 있지만 다른 한 가지는 추구(追求)다. 주인공은 어떤 계기로 집을 떠나 여러 낯선 장소를 이동하며 갖가지 사건과 인물들과 만난다. 길가메시는 엔키두를 만나 결투를 벌인 뒤 친구가 되고, 오딧세우스는 세이렌의 마녀들을 비롯해 갖가지 대상들을 만나 동료들을 잃지만 결국 이타카로 귀환한다. 손오공 역시 삼장법사를 만나고, 사오정을 만나고, 저팔계를 만난다.

이 책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에는 모두 12명의 주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윌슨(마카레나 지구, 세비야, 스페인), 장 에밀리아(김병화박물관, 시온고 마을, 우즈베키스탄), 이브라힘(시와, 이집트), 하루코(치앙마이, 태국), 테리(침사추이, 홍콩), 까말(포카라, 안나푸르나, 네팔), 미스터 빈(구찌터널, 호찌민 시, 베트남), 타리크(페스, 모로코), 줄리안(시저우, 윈난, 중국), 애드리안(전몰자의 계곡, 엘에스코리알, 스페인), 꾼니(벵메알레아, 시엠레아프, 캄보디아), 초투(우타르프라데시, 인도)가 그들인데, 저자 이현석은 이들을 여행 중에 만나 그들의 삶 속에서 사회와 문화, 역사를 만나고 이것을 다시 자신의 사유 속에서 재구조화한다.

그 기억은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과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게 '인문학'이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중략>… 여행지에서 타자와 만나 관계를 맺는 것은 그 자체로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행하는 것이니까요. 때문에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행서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결국 이것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마주했던 사회, 문화, 역사에 대한 재인식의 결과물입니다. <본문 8-9쪽>

이현석의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는 그런 의미에서 낯선 곳을 찾아 떠나고,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는 여행기이지만 동시에 일반적인 여행기와 남다른 측면이 있다. 12명의 인물은 12개의 장소에서 12개의 에피소드가 있고, 최소한 12개 이상의 깨달음이 함께 있다. 그 깨달음의 곁에는 이 책의 말미에 소개되고 있는 책들이 있다. 12개의 이야기가 이와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에가와 타츠야(江川達也)의 만화 『골든보이』를 떠올렸다. 이 만화의 주인공 ‘오에 긴타로(大江錦太郎)’는 내가 꿈에 그리는 이상적인 인생의 롤 모델이다. 그는 도쿄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한 천재인데 책상에서만 하는 공부는 진정한 공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대학을 자퇴한 뒤 ‘진정한 공부’를 하기 위해 자전거로 일본 전국을 여행하며 여행지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난다. 그는 여러 장소에서 여러 사람들을(주로 미인들을) 만나, 업신여김을 당하지만 그는 언제나 이들을 배신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통해 이들을 돕고, 그 자신도 배움을 얻어 새로운 공부를 위해 떠난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배운 것들을 '공부노트'에 상세히 기록한다.

이현석의 그의 공부노트에 기록하고 있는 내용들은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우즈베키스탄에서 김병화박물관의 장 에밀리아 관장과의 만남 이후 과정을 보자.

모국에서 이방인이 되어, 태어난 땅을 뒤로 한 그들은 정착한 곳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민족이라는,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토지·언어·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라는 견고한 ‘관념’ 안에서 살고 있는 다수자인 우리 한국인들이 그녀를 ‘한국인’으로 인식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말을 하거나, 그녀의 말투가 이북 사투리와 닮았다고 하여 ‘북한말’로 생각하는 것 모두 소수자로 살아온 그들에게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언어학자 다나카 가쓰히코(田中克彦)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모어’와 ‘모국어’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모어’란 ‘태어나서 처음 익혀 내부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말’이며 ‘한번 익히면 벗어날 수 없는 근원의 말’이다. 반면 ‘모국어’는 ‘자신이 국민으로서 속해 있는 국가, 즉 모국의 국어를 뜻하며 근대 국민국가가 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가르쳐 그들을 국민으로 만드는 장치’이다. 다나카 가쓰히코의 정의를 대입시켜본다면 장 에밀리아의 모어는 우즈베키스탄이며, 모국어는 고려말인 셈이었다. 사실, 나를 포함해 한국 영토에서 나고 자란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모어와 모국어의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비로소 내 눈앞에 모국어의 풍경이 펼쳐진 것은 장 에밀리아 관장의 일성을 듣고 난 이후였다. <본문 57~58쪽>

저자의 걸음을 좇아 세상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살펴보노라면 1984년 1월 인천 출생의 이현석이란 한 젊은이(?)가 그간 쌓아온 내공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저자의 첫 책을 읽는 일만큼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즐거움은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누군가의 책을 읽을 때, 취하게 되는 몇몇 포지션들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의 책을 읽을 때 독자(讀者), 비평가(批評家), 편집자(編輯者), 저자(著者)의 자아를 갖는다. 앞서 두 가지 입장은 보통 일반적인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취할 수 있는 입장이겠지만 후자의 두 가지 경우는 그리 일반적인 입장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책을 읽을 때 이런 입장들 사이를 널뛰기하며 책을 읽는데 젊은 저자의 책을 읽을 때는 주로 편집자의 설렘을 안고 읽게 되어 가슴 설레는 두근거림을 품게 된다. ‘언젠간 써먹을 테다’라는 마음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의 저작을 저자의 입장에서 읽을 때는 증폭되는 열등감과 자만하는 안도감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읽게 된다. 특히 이 책의 「테리(침사추이, 홍콩)」 부분을 읽을 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밤 11시 12분쯤 그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훌륭합니다. 이 책…. 흡입력 있네요. 그런데 윌슨 선생 이야기를 앞에 배치한 건 본인의 의도인가요? 한티재 의도인가요?”라고 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6월 30일 저녁, 선전을 통해서 들어오는 인민해방군의 행렬이었다. 탱크를 앞세운 인민해방군은 마치 점령군처럼 홍콩으로 진주했다. 다들 어린 나이였지만 그 장면에서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어떤 이의 부모는 나라를 잃은 것마냥 흐느꼈고, 어떤 친구의 아버지는 이미 반환이 되기 훨씬 전부터 뉴질랜드에 가서 취직을 했으며, 어떤 이의 가족은 반환식 일정이 주말과 겹쳐 연휴였던 까닭에 오스트레일리아 가족여행을 다녀왔다고도 했다.
다양한 반응이 있었지만 반환 당시에 장쩌민(江澤民)이 이야기한 “백 년간의 치욕을 씻었다”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없는 듯했다. …<중략>… ”그때는 탱크로 점령했고, 지금은 본토의 대기업으로 점령하고 있어. 걔네들도 잘 알고 있는 거야. 오래전부터 무기는 바뀌었다는 걸.“ <보문 125~126쪽>

내가 갑자기 이걸 물어보게 된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저렇게 현장에서 그곳 사람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지 않고는 쉽게 알 수 없는 현장의 느낌과 감정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고, 이야기 패턴이 조금씩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자 개인의 이야기는 언제쯤 등장할까 기다리다가 그만 참지 못하고 저자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나는 어린이 문학과 여행기의 패턴 사이에 공통된 요소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들의 공통적인 요소는 어떤 경우이든 처음의 사건은 주인공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사건들이 있고, 그 사건을 계기로 주인공이 집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무언가를 찾아 나서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이현석은 왜 길을 떠나게 되었을까? 나는 그의 책 『여행자의 인문학 노트』를 읽으면서 내내 그런 의문을 떨쳐내지 못했다. 책을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 책은 여행을 떠난 순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이 책의 순서가 연대기적 배치가 아니라면 이 책의 이야기들은 어떤 기준으로 배치된 것일까? 나는 이 책의 중반쯤에서 그것이 궁금해졌다.

순전히 재미만 놓고 따지자면 내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제일 앞부분에 놓인 「윌슨(마카레나 지구, 세비야, 스페인)」 편이 가장 재미있었다. 그 이유는 당시 일흔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있던 ‘윌슨’이 머나먼 이국에서 온 젊은이와 나누는 대화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1장 「윌슨(마카레나 지구, 세비야, 스페인)」 편을 이 책의 백미(白眉)로 꼽고 싶다. 그런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음의 인용된 부분에도 있다.

일흔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있던 이에게, 당시 이십대 중반에 불과했던 나의 이야기가 과연 얼마나 흥미로웠을까? 그럼에도 그는 매일 밤마다 이렇게 옥상에 앉아 이국에서 온 젊은이가 어설픈 영어로 말하는 것을 인내심을 가지고 - 하지만 문법과 미국식 단어에 대한 지적은 멈추질 않으며 - 들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마치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가 된 것처럼, 세비야 구경을 마치고 돌아온 매일 밤마다 내 이야기를 시간 순서에 따라서 윌슨에게 들려주었다. 고등학교 때 이야기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일반계 고등학교 2학년 때 230명 중 200등에 가까울 만큼 열등생이었던 이야기 - 씨름부만 40명이었으니 사실상 '전업 학생' 중에서는 꼴찌였던 이야기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언제나 인상적인 시작을 장식하기 때문이다. <본문 29쪽>

그가 책 속에 살짝 풀어놓은 자기 인생의 ‘인상적인 시작’은 상당히 흥미롭다.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전교 석차 바닥을 기던 인물이 대학에 갔고, 상경 이후 영화판과 시위 현장을 전전하다가 갑자기 귀향해서 공부를 시작해 의과대학에 들어갔고, 의외로 무탈하게 졸업까지 했다. 게다가 그가 이렇게 여행을 떠나게 한 계기는 분명 ‘실연(失戀)’ 때문이었다고 추측된다. 그런데 책을 아무리 읽어도 나머지 부분에는 더 이상 이렇게 재미난 저자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여행은, 특히 배낭을 짊어지고 홀로 나서는 여행은, 스스로를 자발적인 국외자로, 자발적인 이산자로 만듭니다. 그러니까 여행은 내가 존재하지 않던 사회에 '나'라는 이질적인 존재가 투입되면서 그곳의 사람들과 만나고 충돌하도록 만들어줍니다. 만남을 통해 이해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공통적인 속성과 완벽하게 다른 습성을 체득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들과 나 사이에 충돌과 화해가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일상으로부터 탈주를 꿈꾸었던 우리는 스스로 쌓아올린 벽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본문 12쪽>

갑자기 벽(壁)과 마주선 기분이 들어 난감했다. 물론 이것이 브레히트의 소격효과(疏隔效果) 같이 작가가 독자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책을 중립적(?)으로 읽어주길 바란 결과일 수도 있긴 하겠지만, 난 그것이 그다지 성공적인 장치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행기도 일종의 에세이라고 했을 때, 저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독서를 지속하게 만들어주는 한 가지 동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책에 실린 거의 대부분의 여행(물론 아닌 것도 있지만)은 저자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떠났는지, 왜 그곳이었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매우 불친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고백한다. 한 편으로는 저자의 다채로운 여행지와 만남이 탐나고 부러웠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에선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 저자의 이야기 엮어가는 솜씨와 글 솜씨가 시샘을 느낄 만큼 훌륭했기 때문이다. 다소 꼰대(?)스럽게 말하면 과거 어떤 시절의 젊은이들이 농활이니, 공활이니 하는 것으로 청춘의 한 시절 타인을 만나서 성장했다면(나는 지금도 이것이 ‘진정한 공부’ 중 일부였으리라 여기지만, 정작 나 자신은 먹고 살기 위해 노동해본 기억밖에 없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엄기호의 말을 빌리면 군대 또는 해외를 나가는 것이 하나의 통과의례, 진짜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 된 듯싶다.


겉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롭고 여유 있어 보이지만, 양계장에서 키워진 닭처럼 부모가 대신 선택하고, 대신 살아주는 이 시대의 풍속이 청춘으로 하여금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최대의 장애가 되어버린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현석은 이 시기들을 매우 치열하게 보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만난 이현석은 ‘꼴통’이다. 내가 이현석을 감히 ‘꼴통’이라고 부르는 건 아마도 권혁태 선생이 나보고 ‘또라이’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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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한국의 재발견
- 임재천 (지은이) | 눈빛 | 2013-11-25







임재천의 사진집 "한국의 재발견"은 한국의 '재발견'이 아니라 한국의 '대발견'이다. 그것은 이 사진집의 첫 장만 넘겨보아도 바로 알 수 있다. 제일 첫머리에 등장하는 곳은 부산 영도인데, 순간적으로 나는 이곳에서 쿠바의 말레콘(Malecon)을 보았다.

1.
사진은 최초 탄생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몇 안되는 예술장르 중 하나다. 사진의 태초는 프랑스의 니에프스가 자연 풍경을 최초로 고정한 헬리오그라피(Heliography)를 완성한 것이 1826년의 일이었다. 태초의 사진은 풍경이었다. 물론 태초의 사진이 풍경이 된 이유는 당시 기술력으로 상을 정착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8시간이라는 긴 노출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니에프스의 사진에는 8시간 동안에 해가 움직여서 해가 지나간 자리만 남고 실제 해는 나타나지 않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훗날 기술적으로 진일보한 다게레오 타입의 사진을 발명한 다게르가 촬영한 거리는 마치 핵전쟁 이후의 지구를 연상시키듯 사람들은 모두 사라진 뒤 텅 빈 거리만 남아 있었다.

나는 니에프스와 다게르가 남긴 최초의 '헬리오그라피'들이 사진이라는 한 예술의 범주가 감추고 있는 철학적 본질의 대부분을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사진을 의미하는 영어 'photography'란 단어는 잘 알려진 대로 라틴어 'phos(빛)+graphos(그리다)'의 합성어로 1839년 영국의 허셀(Herschell)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해 오늘날 사진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포토그래피(photography)란 말을 풀어보면 '빛으로 그리다'란 뜻이 되는데, 이 말은 자연으로서의 '빛'과 인위적인 행위로서의 '그리다'는 행위의 이항대립으로 구성된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풍경은 인물사진과 함께 사진의 가장 오래된 기본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의 역사는 170여 년 정도인데, 사진이 그만큼 젊은 예술 분야인 탓도 있지만 유럽에서 동양으로 전파된 시기를 헤아려보면 사실상 동양과 서양에서 거의 동시에 등장했다고도 볼 수 있다. 최초의 서구 문물이 등장할 때 그에 따른 번역어를 고민한다는 것은 당대의 지식인들이 이 문물 혹은 제도를 어떤 것으로 생각했고, 고민했는지 잘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寫眞)'이란 말을 해체해 보면 동양적 사고 속에 사진이란 무엇이었는지를 재구성해볼 수 있다.

'사(寫)'란 '베끼다, 옮겨놓다'라는 우리가 잘 아는 의미도 있지만 '떨어버리다, 덜어 없애다'란 뜻도 있다. '진(眞)'은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참, 변하지 아니하다, 생긴 그대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사진은 우리가 아는 대로 본래의 참된 모습을 생긴 그대로 베끼거나 옮겨놓는 기능도 있지만 다른 한 측면에서 보면 본래의 '모습(眞)'을 덜어 없애거나 떨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예술은 태생적으로 논쟁적인 의미를 지니지만, 사진처럼 그 자체로 예술인가 아니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마이크로웨이브 오븐' 같이 단순한 과학적 산물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던 사례는 없었다.





2.
1911년 이탈리아의 비평가이자 영화운동가 리치오토 카뉘도(Ricciotto Canudo)는 「제7예술론Club des Amis du 7e Art」을 통해 영화를 ‘제7의 예술’이라고 선언했다. 그가 주장한 바에 의하면

제1의 예술 연극
제2의 예술 회화
제3의 예술 무용
제4의 예술 건축
제5의 예술 문학
제6의 예술 음악
제7의 예술 영화
제8의 예술 사진
제9의 예술 만화

그는 영화를 '제7의 예술'로서 그 유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며 앞서 6가지 종류의 예술을 총화 시킨 예술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영화가 단지 ‘촬영되어진 연극’일 뿐이라는 편견"에 도전하기 위한 주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기적으로도 니에프스와 다게르에 의한 사진의 탄생(1826년~1838년)이 뤼미에르 형제에 의한 영화의 탄생(1895년) 보다 앞서며, 기술적으로도 사진이 탄생한 뒤에 비로소 영화가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영화에 뒤이어 제8의 예술이 된 이유는 사진이 걸어야 했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은 1862년 프랑스 파리 법원의 판결에 의해 비로소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발명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프랑소아 아라고(Francois Jean Dominique Arago, 1786 ∼ 1853)는 “사진은 진보에 기여하고, 민주주의에 이바지하며, 누구나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며 사진을 예술로 받아들이도록 주장하기도 했다.

다시 앞서의 이야기로 돌아가 사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발터 벤야민이긴 하지만, 나는 좀 다른 맥락에서 보자면 그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이란 담론으로 인해 사진의 본질에 대한 오해(?)가 강화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란 오해에 대해 동양의 사유는 사진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지만 동시에 본래의 '모습(眞)'을 덜어 없애거나 떨어버리는 것이라는 주장도 함께 담고 있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와는 사진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인 화가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다른 한 편으로 사진에 비해 유화가 지닌 예술성에 대한 자신감이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초보자들은 희생시켜야 할 것을 희생시키는 중요한 기법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라고 했는데, 이런 주장의 저 편에 서 있는 당시 다게레오 타입의 사진들은 '희생시켜야 할 것들을 희생시키지 못하는 초보적인 작품'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3.
디지털 기술이 사진의 물성(物性)까지 변화시키고 있는 현대, 특히 풍경사진은 여전히 그런 오해를 받고 있으며, 나는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에도 풍경은 여전히 천지(天地)이고, 풍경사진은 지천(至賤)이기 때문이다.

소박한 풍경의 기록으로 시작된 풍경사진은 처음엔 단순한 풍경의 기록이라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풍경을 좀 더 미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창조의 욕구가 싹트면서 초기의 사진가들은 회화를 선진예술로 생각해 사진을 통해 이를 모방했다. 훗날 사진을 미술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했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조차 초기의 작품들은 회화를 모방하는 ‘예술사진(Pictorial photography)’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했다.

풍경사진은 장엄한 자연의 풍광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만든 역사적 건축물, 마을의 정경, 일상적 풍경, 주민들의 자연스러운 생활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관계를 담아내려는 풍토적 정경의 사진들, 또는 작가 자신의 주관적 내면세계를 반영시키는 작품에 이르는 등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으며, 근대화 이후 여가 생활의 증대를 반영해 유행하기 시작한 엽서사진과 관광 목적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지천이다. 심지어 안개가 한창 아름답게 피어날 이맘 때 경기도 양평의 두물머리 근방에 나가보면 마치 낚시꾼들이 포인트를 찾듯 좋은 사진의 포인트로 알려진 근방을 배회하는 사진가들로 득시글거린다.

그렇다면 임재천의 사진이 그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프랑스의 으젠느 앗제(Jean Eugene Auguest Atget)는 근대사진의 보석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생전의 그는 평생 가난에 시달리며 파리 시정의 일상적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치중한 아마추어 사진가였다. 본래 그는 초야에 묻혀 있었던 무명의 사진작가였다. 잘 알려진 대로 앗제를 세상에 알린 사람은 만 레이(Man Ray)와 그의 조수로 일하던 버레니스 애보트(Berenice Abbott)였다. 앗제는 당시 만 레이의 이웃으로 몽파르나스에서 살고 있었는데, 1926년, 앗제가 죽기 직전 만 레이는 그의 작품을 초현실주의 기관지에 게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미국의 여성 사진작가 애보트는 앗제의 사진이 지닌 가치를 알아차렸고,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앗제의 초상사진을 촬영했다. 앗제는 애보트가 초상사진을 촬영하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애보트는 그때부터 앗제의 작품들을 모으기 시작해 이후 40년 동안 앗제의 포트폴리오와 아카이브를 만들어, 1981년 MoMA에서 그에 관한 전시회를 열면서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나는 임재천의 사진을 앗제에 비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이 임재천의 사진이 지닌 진정한 가치일지도 모르겠다. 임재천의 풍경사진들은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새롭지 않다. 그의 사진들은 기법적으로 보자면 미묘한 광선(光線)의 뉘앙스를 추구하는 한국 살롱사진(풍경사진)들의 전통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디 전통적이란 것은 낯익은 것, 낯익은 것은 진부한 것이고, 진부한 것들은 마음의 평정을 선사하긴 하지만 감동을 주지 못하기 마련이다.





4.
근대의 여행은 8시간 노동제와 함께 시작되었다.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가져다 준 여유를 이용해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 자신이 일하던 곳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과거의 여행이 생(生)과 사(死)의 일대사(一大事) 인연(因緣)을 걸고 진리(經典)를 찾아 머나먼 천축(天竺)으로 떠나는 삼장법사와 손오공의 모험이었다면 근대 이후의 여행은 여흥(餘興)을 찾아 떠나는 것이 되었다. 여행의 필수품으로 관광가이드북이나 누군가 먼저 다녀온 사람의 여행기를 찾아 읽는 이유는 낯선 곳에서 낯설고 싶지 않다는 안정과 평온에 대한 추구이다. 에드워드 W. 사이드는 그와 같은 이유에서 여행을 하는 자들의 정서와 심리는 기본적으로 ‘텍스추얼(textual)'한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낯선 장소, 낯선 시간을 찾아 떠나지만 그들의 마음과 감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언설화(言說化)된 지식과 이미지로 충만해 있다. 결국 이들이 찾아간 곳은 낯선 시간과 공간이 아닌 그들의 마음속에 이미 굳건한 권위를 지닌,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이 직접 대면하게 될 진짜(real) 현실보다 현실화된 권위를 지닌 텍스트들, 다시 말해 굳어진 대상들뿐이다. 이것은 온갖 첨단문명으로 도배된 현실의 여행이 지닌 한계이자 오늘날의 풍경사진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사진의 탁월한 현실 묘사력은 ‘텍스트로서의 사진’이 지닌 텍스추얼한 권위를 더 한층 강화시켰고, 이후의 사진들은 과거의 사진들이 만들어 놓은 권위와 경쟁해야만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사진집이 아닌 사적인 계기로 인연을 맺은 최초의 사진가는 얼마 전 타계한 김영갑 선생이었다.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를 통해 당신과 인연을 맺었고, 당신이 사인해서 보내준 사진집을 받았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찍는 사진을 분명 풍경사진이라 할 수 있지만 궁극에는 다큐멘터리일 수밖에 없다. 왜냐면 오늘의 이 풍경은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은 자신이 가진 뛰어난 장점 중 하나인 대상을 사실대로 묘사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기록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고, 필연적으로 다른 사진, 이전의 사진들이 남긴 기록들과 투쟁해야만 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기록이 가지고 있는 기록이라는 속성의 중요한 가치를 두고 ‘시간성’의 개념을 도입해 강화하고자 한다. 기록은 시간(세월)이란 긴 여행, 소멸을 염두에 두고 현재를 남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내가 임재천의 사진을 높이 평가하는 지점들이 한 부분은 분명 거기에 있지만, 나는 그것에 의존해 임재천의 사진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1년에 한두 번 이상 역사기행의 명목으로 전국의 명승지를 살펴보는 일을 17년째 하고 있으며, 굳이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나의 닉네임이 ‘바람구두(windshoes)'란 것에 걸맞게 돌아다니는 일에 익숙하다. 그가 사진집에 담고 있는 곳들은 나도 대부분 다녀본 곳들이며, 나 역시 사진기를 손에 잡은 지도 어느덧 그만큼의 연륜이 쌓였다. 그래서 그의 사진들, 그의 사진들이 담아내고 있는 풍경들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또 그만큼 그의 사진들은 나를 낯설게 한다. 낯익은 장소가 경이(景異)하게 보이기에 나는 그의 사진들이 경이(驚異)롭다.

그의 작업들은 한국의 전통적인 풍경사진의 전통과 맥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일정하게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런데 나는 그가 앞으로 여기서 좀 더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 땅에 대한 경험과 기억들을 ‘tabula rasa’의 상태로 몰아 부칠 수 있는 힘이 그에게 있지 않을까 감히 기대해보게 되는 것이다.





* 임재천은 계간 "황해문화" 2011년 여름호(통권71호)의 포토에세이를 장식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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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숀 코네리와 캔디스 버겐 주연의 영화 "바람과 라이언"은 제국주의 시대의 풍경을 낭만적인 이국주의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은 비판해야겠지만 영화 자체는 상당히 유쾌한 편이다. 고민을 배제한 스펙타클 영화이기 때문인데 아마도 실화일 거라고 오랫동안 추측만 하다가 찾아냈다.

종군기자였던 제임스 빈센트 시언은 1925년 프랑스군과 스페인군의 감시를 피해 모로코의 리프족 반군 진영의 지도자 압 델 크림과 압 델 라이슐리 형제를 인터뷰하는데 성공했다. 바로 압 델 라이슐리가 숀 코네리가 연기했던 그 실존 인물이었다. 그는 1904년 그리스 출신 미국인 갑뷰 이온 페다카리스를 납치한 것으로 유명해진 인물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배경을 뒤져보는 일은 참 흥미롭다.

숀 코네리, 캔디스 버겐 주연의 "바람과 라이언" 이야기를 했더니 뜬금없이(?)는 아니고 사실 비슷한 시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제목마저 비슷한 안소니 퀸 주연의 "사막의 라이언"과 착각하는 분이 있어서(누구라고 말 못함) 말난 김에 이 영화 이야기도 조금 하자면....





2.
시대 배경상으로는 "바람과 라이언"이 1904년으로 20세기 초엽의 사건이었고, "사막의 라이언"은 대략 1910년대에 일어나 1931년 9월 16일에 종결된 하나의 사건에 대한 영화다. "바람과 라이언"이 이국적인 풍광과 문화를 배경으로 한 엑조틱한 액션 스펙터클이라면 "사막의 라이언"은 그보다 훨씬 진지한 영화란 차이가 있다.

존 밀리어스 감독의 영화 "바람과 라이언"을 연출한 존 밀리어스 감독은 원래 영화 대본을 쓰던 작가 출신인데,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영화 <더티 해리>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 등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아마 1973년의 <딜린저>가 처음 영화감독 데뷔작인 듯 싶은데, 이후에도 영화 연출과 함께 각본, 제작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가 연출한 영화들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영화는 사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에게도 가장 잘 어울렸던 영화 <코난-바바리안(1981)>이었다. <바람과 라이언>은 그의 두 번째 연출작이었다.

그에 비해 "사막의 라이언"을 연출한 무스타파 아카드 감독은 시리아 출신의 미국인 감독으로 이후 감독으로서보다는 <할로윈> 시리즈의 제작자로 더 많은 명성을 쌓긴 했지만 초기만 하더라도 감독으로서 그의 연출작들은 이슬람권에 대한 서구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진지한 작품들이었다. 1976년 "에언자 마호메트"에서 안소니 퀸과 인연을 맺고, 그가 연출한 두 번째 작품이 "사막의 라이언"이었다.

영화 연출에 능력이 있었던 그가 이후 영화 연출보다는 제작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이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제작하려고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의 첫 번째 영화와 두 번째 영화 모두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데 여러 장애와 방해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그는 더이상 영화 연출을 하기 어려웠고, 이후 제작에만 전념하다가 2005년 11월 요르단 암만에서의 이슬람 폭탄 테러에 희생당해 그의 딸 리마 아카드와 함께 사망했다.





3.
"사막의 라이언"은 20세기 초 이탈리아와 리비아 사이에 실제로 벌어졌던 리비아 국민들의 20년 항쟁이 실제 배경이 되었다. 이 영화의 내용은 대부분 실화이며 등장인물들 역시 실존 인물의 실명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는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당시 영국은 이집트를, 프랑스는 튀니지아를, 스페인은 모로코를 점령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부터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와 에디오피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당시 리비아는 오스만제국의 식민지였다. 이탈리아는 터키의 발칸 전쟁 개입을 계기로 1911년 9월 29일 오스만제국에 선전포고를 한 뒤 10월 3일 함대를 리비아의 해안도시 트리폴리에 보냈다. 당시 이탈리아 함대 사령관 파라펠리는 리비아에 주둔하고 있는 오스만 제국 군대의 즉각적인 항복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 전체가 파괴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터키군은 트리폴리에서 퇴각했지만 항복하지 않았고, 이탈리아 함대는 3일간 함포사격을 가해, 트리폴리를 함락시켰다.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정복하여 식민지화하는 일은 어린아이 팔목을 비트는 일만큼 손쉬운 일인 듯 보였다.

결국 오스만투르크는 리비아에서 철수했지만, 이때부터 전쟁은 새로운 식민지배자인 이탈리아 점령군과 오마르 알 무크타르가 이끄는 저항군 간의 전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영화에도 잘 드러나지만 오마르 무크타르는 본래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꾸란을 가르치는 교사(이맘)였다. 다른 아랍 국가들이 그러하듯 리이바의 저항군들 역시 부족 중심이었고, 이들은 사분오열되어 각자 자신의 왕국을 추구하거나 이해관계에 따라 이탈리아군에 협력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오마르 무크타르는 비타협적이었고, 다른 부족의 게릴라들에 비해 근대민족 지도자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저항 세력은 점차 그를 중심으로 뭉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전쟁을 치른 롬멜이나 몽고메리 장군의 회고나 증언을 살펴보면 사막에서 전쟁을 치른다는 것은 육군의 전략보다 해군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막이 곧 바다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광활한 사막에서는 땅을 차지하는 것보다 먼저 적을 찾아 먼저 공격하고, 궤멸시킨다는 해군의 전략이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탈리아군은 전형적인 육군의 전략을 구사했으므로 사막의 유목전술을 구사하는 무크타르의 게릴라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리비아의 저항전쟁은 어느 일방도 확실한 우세를 점하지 못한 채 1929년까지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1921년 뭇솔리니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이탈리아는 리비아를 과거 로마의 영광을 재현할 성지로 보았고, 새로운 지휘관으로 에티오피아 전선에서 명성을 쌓은 그라치아니 장군을 파견한다.

4.
그라치아니 장군은 초반만 하더라도 오마르 무크타르를 시골 촌부 정도로 생각하여 가볍게 여겼으나 점차 그의 탁월한 지도력과 게릴라 전술에 휘말려 치욕적인 패배를 경험한다. 그 뒤 그라치아니와 이탈리아군은 새로운 전술을 동원하는데, 한 편으론 무크타르에게 평화협상을 제안하고, 다른 한 편으론 이른바 청야(淸野)작전을 펼쳤다. 게릴라들의 바다가 될 수 있는 민중들을 제거하는 청야전술은 무자비했지만,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탈리아군의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는 동안 무크타르는 사막과 산악 지대에서 현대병기로 무장한 이탈리아군을 계속 패퇴시켰지만, 그 사이 이탈리아군은 리비아 사막에 수천 명의 인부를 강제로 동원해 수천 톤의 가시철조망을 설치했다.

12만 5천여 명의 민간인들이 살인적인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고, 사막을 통행하려는 이들은 사살당했다. 결국 '리비아의 태양'이라 불렸던 오마르 무크타르는 이탈리아군에게 부상당한 채 생포되었는데, 이탈리아 정부는 그가 탈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70세를 넘긴(사막 유목민의 정확한 나이는 알기 어렵지만) 오마르 무크타르의 손과 발에 족쇄를 채워 전리품처럼 전시했다. 그들은 늙은 반군 지도자를 재판했지만, 그의 입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말은 한 마디도 얻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도대체 누가 누구를 재판하는 거냐"는 반문만 들어야 했다.

도리어 이 늙은 죄수의 높은 인격은 이탈리아 간수들에게도 커다란 감명을 주었고, 그의 굳은 의지에 압도당했다. 이탈리아는 오마르 무크타르를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했는데, 형장에서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느냐는 질문에 꾸란의 한 구절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신에게서부터 왔고, 언젠가는 다시 신에게로 돌아간다."

20여년을 끌어오던 항쟁은 1931년 9월 16일 그의 사형과 함께 사실상 종결되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적의 손에 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별히 영화 이야기를 별도로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영화는 사실을 충실하게 재현하려고 하고 있는데,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이 영화에 대한 리뷰는 별도로 해볼 생각이다(음, 여태한 건 뭐야?). 그의 초상은 리비아의 10디나르 화폐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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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트루스(A Dark Truth, 2012)





다미안 리 감독의 "다크 트루스"에서는 오랜만에 앤디 가르시아가 진지한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이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케빈 두런드와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일단 나오면 그만한 정도는 항상 보여주는 포레스트 휘태커, 다미안 리 감독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킴 코티스 등등 조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기본은 해준 영화다.

영화의 내용은 제3세계에서 '상수도 민영화'를 추진하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 에콰도르의 타이카란 지역에서 상수도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정수시설이 오염되면서 이 지역에 집단적으로 티푸스가 발병하자 다국적 기업과 결탁한 지역의 군사령관이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집단학살하는 사건을 둘러싼 갈등과 진실의 문제를 다룬다.

앤디 가르시아는 은퇴한 전직 CIA요원으로 남미에서 반체제농민운동의 지도자 프란시스코 프란시스(포레스트 휘태커)를 체포하고, 그의 조직을 와해시키는 공작을 펼쳤던 잭 베고시언으로 등장한다. 그는 청문회에 출두해 CIA로부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위증할 것을 부탁 받았으나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까지 시인하면서 조직으로부터 축출당해 지금은 작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진실"이란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조직에겐 내부고발자로 낙인 찍혔고, 일반 대중에겐 남미에서 살인공작을 펼친 전직 비밀요원으로 여전히 그의 정체를 의심받는 잭 베고시언은 가정에도 편안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만, 조직에서의 일은 여전히 말할 수 없는 비밀이고, 비밀은 부부 사이를 멀게 갈라놓고 있다. 또 그는 아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몰라서 아들과 아버지는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




영화는 잭 베고시언의 일상과 함께 과거 '농민의 희망'이란 무장단체를 이끌었으나 베고시언에게 잡혀 감옥생활을 거친 뒤 이제는 평화적인 농민운동가가 된 프란치스가 다국적기업의 음모와 군부의 학살을 피해 밀림으로 달아나는 과정을 교차하며 보여준다.

문제는 다미안 리 감독의 연출력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밋밋한 연출에 무엇 하나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던 탓인지 제대로 된 사회고발 영화로서도, 휴먼 드라마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영화의 기본 갈등은 제3세계에서 상수도 민영화 사업을 하는 다국적 기업과 에콰도르의 학살당하는 농민 사이의 갈등이지만, 작게 보면 등장인물들 간에 세 가지 갈등이 있는데 하나는 앤디 가르시아와 사회(혹은 가정)의 갈등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전직 CIA비밀공작요원 잭 베고시언과 농민운동가 프란시스코 프란시스와의 갈등, 마지막으로 다국적 기업을 이끄는 사업가 오빠 브루스 스윈톤(킴 코티스)와 여동생 모건 스윈톤(데보라 카라 웅거)의 갈등이다.

프란시스코 프란시스는 한때 무력항쟁을 이끈 인물이었지만 잭 베고시언의 공작에 의해 조직이 와해되고, 감옥에 다녀온 뒤 "마오는 틀렸고, 간디가 옳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며 자신을 구출하러 온 잭 베고시언과 손쉽게 화해한다.

선대가 물려준 기업 클리어벡을 이끄는 두 사람, 오빠 브루스는 성실한 사업가지만 선대의 기업을 잘 키워야 한다, 조직의 논리에 젖어 제3세계에서의 학살이 심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 틀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한다. 동생 모건은 철따라 결혼하고, 이혼하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며 기업의 폼나는 일들(자선사업)만 해왔지만 어느날 갑자기 자기 앞으로 찾아와 에콰도르에서의 학살을 고발하며 자살해버린 한 청년 때문에 충격을 받고 잭 베고시언을 고용해 프란시스코 프란시스를 미국으로 데려오도록 시킨다.





영화의 엔딩에 이르자 양심의 가책을 느낀(그리고 기업을 살리기 위해 모든 책임을 지고) 브루스는 자살해버리고, 모건은 오빠를 대신해 앞으로 윤리적 경영을 하겠다며 기업을 물려받는다. 잭은 자신의 라디오 방송에 프란시스코 프란시스를 특별 손님으로 초대해 이런 상황에 대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 누군가 브루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며 그에게 묻는다. "돈의 탐욕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지른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돈 때문만은 아니라고..." 그러자 전화한 사람이 "그럼 무엇 때문이냐"고 되묻는다. 그는 이런 일은 여러 가지 이유가 겹쳐서 생기는 것이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답한다. 아마도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다크 트루스(흑막)'일 게다. 영화는 볼만한 수준으로 좋은데, 연출이나 서사의 힘이란 측면에서 딱 그 정도 수준으로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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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학교다
- 산길, 강길, 바닷길에서 만나는 세상의 모든 역사

조지욱 (지은이) | 낮은산 | 2013-10-28

나는 '길'을 사랑한다.

그러나 인간에겐 문명과 소통을 상징하는 길이 생명에겐 죽음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길을 걸을 때마다 가끔이라도 그 길의 무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부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치고 있는 조지욱 선생의 책 "길이 학교다"를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펼쳤다.

그저그런 청소년 상식 증진용 도서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마감 뒤끝의 심심파적 읽을거리 정도로 시작했는데 "청소년들을 독자로 겨냥한 듯 난이도 자체는 높지 않지만, 깔끔한 문장과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내용에 담긴 수준 높은 통찰이 돋보이는 훌륭한 지리(地理) 입문서"였다고만 정의하고 넘기기엔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사실, 김두식 선생의 책 "다른 길이 있다"를 먼저 읽을지 이 책을 먼저 읽을지 하다가 "황해문화" 창간 20주년 기념호가 이 책처럼 인터뷰집은 아니어도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기에 지금의 내 심리상태로는 지금 읽기에 버겁게 여겨진 탓에 이 책을 먼저 들었다.

세상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조지욱의 책 서문에 해당하는 "길이란 무엇일까?"는 세상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는 정의로부터 시작한다.

"어디 가는 길이니?"
"아프리카의 배고픈 어린이들을 구하는 길은 무엇일까?"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마라."

하나는 이동통로로서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방법으로서의 길이오, 또다른 하나는 도리로서의 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큰 맥락에서 이 세 가지 길을 하나로 아우르는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저자의 속깊은 관점과 이것을 통합해낼 수 있는 탁월한 역량이 없었다면 이 작업은 아마도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을 읽노라면 그 길(세 가지 길)을 함께 걷는 듯 하고, 함께 걷고 싶어지게 만든다.

"경상북도 문경에는 '토끼비리'라는 아슬아슬한 벼랑길이 있다. '비리'란 강가나 바닷가의 낭떠러지를 뜻하는 사투리이다. 지금도 토끼비리를 지날 땐 긴장하고 주의해야 한다. 까불면 절대 안 된다는 뜻이다. 토끼비리는 폭이 30cm가 채 되지 않는 곳도 있다. 이 길이 조선 시대에 서울과 부산을 이어주던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했던 길이다." (24쪽)

그런데 이 길은 1,100년 전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에게 쫓겨 목숨을 빼앗길 뻔한 그곳에서 시작된다. 견훤에게 패해 쫓기던 왕건이 이곳까지 쫓겨왔으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토끼가 벼랑을 타고 가는 것을 발견하여 뒤쫓아가서 살아난 길이다.

"초한지"에서 유방이 항우에게 쫒겨 척박하고 후미진 촉땅으로 들어갔다가 되돌아나와 천하를 쟁패하기 위해 벼랑 끝에 닦은 길을 '잔도(棧道)'라고 하는데, 국내 유일의 잔도가 바로 '토끼비리'란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길이다. 그는 이처럼 역사적인 길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동서양의 문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가하면 색다른 유래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예를 들어 나는 '노가다'란 말을 지금까지 일본어로 'dokata[土方]'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았는데, 이 책에선 경인선을 건설할 당시 일본인 반장이 구호를 부칠 때 일본말로 "노(좋다, 으뜸)"라고 구호를 부치면 조선인 일꾼들이 "가다(덩치, 모양)"라고 후렴을 붙이며 무거운 것을 들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물론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산을 넘는 길

우리 역사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지명 '철령'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새롭게 느끼고,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통해서다.

"14세기 말은 고려가 문을 닫고 조선 시대가 열리는 시기였다. 힘 빠지는 고려를 지켜보고 있던 명나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철령 북쪽 땅(지금의 함경도)을 먹겠다'고 선전포고한다. ...<중략>... 이에 고려 우왕은 명나라의 요구를 거부하고, 이성계 장군에게 5만 군사와 함께 출전하여 고구려의 옛 땅인 요동지역까지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잠깐, 왜 명나라는 철령 남쪽만을 고려로 인정하려 했을까?

철령은 태백산맥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산의 길목에 해당하는 고대다. 철령은 우리 땅의 척추이자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인 백두대간의 등허리에 있다. 북쪽 백두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오면 남쪽 태백산맥 능선으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철령은 이토록 중요했기에 그곳에 '철령관'이란 관문이 있었고, 이 관문은 지역 간 경계가 되어 철령관 동쪽 강원도 땅을 관동, 서쪽의 평안도 일대를 관서, 북쪽의 함경도 땅을 관북 지방이라고 한다."(67-68쪽)

해마다 한두 차례씩 우리나라의 역사유적을 찾아가 공부를 하는데, 살아있는 역사기행이 되기 위해선 단지 현장의 문화유적을 살펴보고 '아! 좋구나. 아름답구나'하고 돌아오는 정도론 부족하다. 살아있는 역사기행이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마음이 되어 보는 일이다. 그런 마음 공부 없이 그저 가서 아름다운 경치와 맛난 향토 음식에 젖었다가 돌아오는 건 그냥 관광이다.

철령은 천혜의 요충지로 우리 군대가 함경도 땅을 지나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자 반대로 중국이 한반도로 내려올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요충이기도 했다. 삼국시대 당나라가, 고려시대 명나라가, 조선시대 이여송이, 한국전쟁 당시 팽덕회의 중국인민해방군이 어디쯤에서 멈추고자 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이 부분에 대해선 소설가 유하령 선생이 전에 말씀하신 부분도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다).

이처럼 역사적인 길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하면 생태적인 길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진화론의 섬, 생태의 보고 갈라파고스 제도가 인간의 발걸음에 의해 망가지고 있는 현실, 그곳을 찾은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는 비행기와 자동차 행렬에 치어죽어가고 있는 생명체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가 하면 수에즈, 파나마 운하에서 시작해 운하사업으로 진행되었던 4대강과 경인아라뱃길의 허상에 대해 조목조목 질타하고 있다.

댐이란 말이 네덜란드에서 유래된 말이란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같이 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의 도시들 지명에 유난히 담이 많은 이유가 그것이었던 거다. 그런데 이 댐은 여러 가지 유용한 면도 있지만 자연생태와 인간의 삶에 끼치는 폐해도 만만치 않다. 그렇기에 미국이나 프랑스는 댐이 이익보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문제가 더 크가며 지을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댐들을 해체하고 있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 길이 진리다

그는 미국 키시미 강의 사례를 든다. 1928년 미국 플로리다의 대홍수로 2,000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미국은 그 원인을 분석했다. 문제는 운하 때문이었다. 자연적인 강의 흐름을 무리하게 직선화하고, 강바닥을 파내고 갑문을 설치하면서 문을 열어야만 물이 흐르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또 높은 둑으로 수중 생물이 육지와 하천을 오갈 수 없게 된 것은 물론이요. 육상 생물들이 물을 찾아오는 길도 끊겨버렸다. 그런데도 미국은 1971년까지 23년간 3천만 달러를 들여 키시미 강 운하를 만들었다.

이곳을 찾던 철새들의 95%가 발길을 끊었고, 결국 하천 주변에 살던 주민들도 이곳을 떠났다. 자연히 지역 간 왕래가 줄었고, 운하는 불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이곳을 자연 상태로 복원하는데 3억 달러를 들이고도 아직까지도 완전히 복원하지 못했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되묻고 있다.

걷기 좋은 올레길이 좋은 길일까?
속도가 무제한인 아우토반 고속도로가 좋은 길일까?

아마도 좋은 길이란, 좋은 생각으로 만드는 길과
좋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마음으로 보이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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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추안 감독의 영화 <초한지: 영웅의 부활(2012)>은 영어 제목 'The Last Supper'가 영화의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유방 역을 맡은 '류예', 항우 역을 맡은 '오언조, 한신 역을 맡은 '장첸'의 연기는 물론 여씨 부인역을 맡은 '진람'의 연기가 기존 중국 배우들의 과장되고 기름진 연기와 달리 기름기를 거둬내 담백한 편이다.

영화 속에서 만찬은 영화의 앞 부분과 뒷 부분에 두 번 반복된다. 앞의 한 번은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인 장락궁을 함락시킨 뒤 권력과 환락에 눈이 어두워진 나머지 장량의 조언을 듣지 않고, 불필요하게 항우를 자극시켜 죽음 직전의 위기에 내몰리게 되는 '홍문의 연(鴻門宴)'을 겪은 뒤 극적으로 생존하는 만찬이다. 항우와 유방은 진을 멸망시킨다는 공동의 대의로 뭉쳤으나 이후 천하쟁패를 위해 투쟁하는 관계가 되는데,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가 '홍문의 연'이었다.

뒷 부분의 만찬은 항우를 제거하고 천하를 차지한 유방이 자신의 권력을 후대에 안정적으로 전해주기 위해 오랜 맹우이자 또 한 명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한신'을 처단하기 위해 마련한 만찬이다. 교활한 토끼가 잡히고 나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게 된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은 중국 춘추시대 월(越)나라 재상 범려(范蠡)의 말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이 말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한나라를 창업한 한 고조 유방이 한신을 비롯해 견마지로를 다했던 개국공신들을 차례로 겁박해 숙청했던 사례를 통해 더욱 유명해졌다.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등장하진 않지만 한신 역시 토사구팽의 세태를 한탄하며 죽었다는 일화로 이 고사성어에 빛과 그늘을 더해주기도 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중국 당국에 의한 검열에만 5개월여가 소요되었다고 하던데, 내 생각에 그 이유는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최근 중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보시라이'의 실각 사건 같은)를 주는 등 범상치 않기 때문이다. 보시라이는 잘 알려진 대로 중국을 건국한 혁명 주역들의 2세인 '태자당(혁명 원로 및 고위 간부 자제 그룹)' 출신으로 시진핑과 같은 계열이고, 리커창(후진타오)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이다. 이 구도를 고스란히 '귀족(항우) vs. 평민(유방)'으로 놓을 수는 없지만 - 그렇다면 '여씨 부인(상하이방)'인가? -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한신을 숙청하기 전 여씨 부인의 입을 통해 이런 대목이 두드러지는데, 여씨 부인은 자신이 만나본 인간들 중에 가장 고귀한 인격을 지닌 사람은 '항우(귀족)'였다며, 자신도 인질로 잡고 있어 죽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죽이지 않고 놓아 주었으며 유방도 여러 차례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항우는 백골이 되었다고 말한다.

평민 출신의 '유방'은 "왕후장상에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느냐(王侯將相寧有種乎)"라고 외치며 귀족 출신인 항우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지만 정작 그 자신이 권력을 잡고나자 바로 자신이 내세웠던 '이데올로기'에 의해 겁박당하는 상태가 되었다. 역사가로서 사마천은 현대의 지평으로 바라보았을 때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사마천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것은 평범한 농민 출신의 혁명가 '진승'을 역대의 제후들을 올리는 자리인 〈세가〉의 반열에 둠으로써 그를 역대의 제후들과 동렬(同列)로 평가했다는 사실이다.

"주나라가 그 도(道)를 잃자 (공자는)<춘추>를 지었다. 진나라가 정치를 잘못하자 진섭(진승)이 봉기하고 제후들도 난을 일으켰는데, 그 기세가 풍운을 일으키면서 끝내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천하를 다투는 발단이 바로 진섭의 반란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훗날 반고가 저술한 《한서》가 기본적으로 《사기》를 그대로 초록(抄錄)한 것임에도 진승을 열전에 넣고서도 그를 찬양하는 말을 모두 빼버린 것과 비교할 수 있다. 또한 사마천은 성공과 실패로 영웅을 논하지 않았으니 '항우'를 <본기>에 넣은 것도 후세인으로서 찬탄을 금할 수 없게 만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유방이 천하를 쟁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새로운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나라의 시황제가 일찌감치 멸망한 까닭에 대해 중국인들이 느끼는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은 시황제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 진의 수도 함양(장락궁)을 차지한 유방에게 진의 마지막 황제 '자영'은 천하통일의 패업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대목이 있다.





장예모 감독의 <영웅(2002)>에서 천하의 자객들을 무릎 꿇게 만든 '천하'론은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는데, 진 시황제가 멸망한 까닭은 그의 대의가 그릇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급진적이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항우는 이런 시대적 흐름을 간과한 복고주의자로 역사적 반동인 셈이었다. 일찌기 공자는 "順天者는 存하고, 逆天者는 亡한다"고 하였는데, 이때의 하늘을 민중의 '시대정신'이라 보았을 때, 항우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민중의 열망과 진나라가 이룩한 변화된 세상의 구조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항우가 공자가 흠모한 주나라 문왕의 도를 따랐다기 보다는 귀족 출신의 신분적 한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

<초한지: 영웅의 부활(2012)>을 보는 내내 일본판 <멕베스>로 구로자와 아키라의 <거미의 성>이 있다면, 이것은 중국판 <맥베스>가 아니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내용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루 추안 감독이 상당히 서구적인 감감과 감수성을 지닌 감독임에 틀림 없어 보인다. 최근 중국 영화들을 볼 때마다 여러 고민들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은연 중에 미국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처럼, 중국 영화들 역시 중국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들 때문이다.

마치 우리 박근혜 대통령이 코리안시리즈 3차전 시구에서 하고 많은 브랜드 중에 굳이 일본 브랜드 신발인 '아식스'를 신고 나온 것에 대해 여러 추측을 하게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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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 일본 트라우마의 비밀을 푸는 사회심리 코드
권혁태 (지은이) | 교양인 | 2010-08-20


권혁태의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는 지난 2010년에 나오긴 했지만, 그 해에 나온(다시 말해 그해 나온 책들 중에 내가 접해본) 책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책일 뿐만 아니라 내가 읽어본 일본 관련 서적 중 가장 빼어난 책으로 손꼽는 책이다.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일본의 최근 행보들을 일본의 근현대사를 고찰함으로써 그 이면에 감춰진 일본이란 국가의 욕망과 의도에 대해 사회과학적 분석을 가하고 있다. 분석의 내용과 형식이 매우 정치(精緻)한 책인데, 어떤 까닭에서인지(교양인은 심리학 저서들도 많이 내고 있다) 이 책의 출판사인 교양인은 책제목은 물론 헤드카피까지 '일본 트라우마의 비밀을 푸는 사회심리코드'라고 심리학 서적 냄새가 물씬 나는 느낌으로 밀어서(그 결과 한 마디로 책을 베려버렸다) 이 책이 지닌 여러 미덕을 훼손시켜버린 느낌이다.

그런 탓에 이 책은 마치 일본에 대한 그저 그런 인상비평 책들 ‘느그들이 일본을 알어?’ 같아 보인다. 게다가 머리를 풀어헤친 표지 이미지 속 여인은 정말 ‘안습’이다. 표4의 카피 역시 '일본의 집단 심리를 읽는 네 가지 코드 불안, 분열, 트라우마, 그리고 자기기만'이다. 이래서야 이 책은 그저 그런 심리학자의 일본탐방기 같아 보일 수밖에. 저 네 개의 단어가 물론 이 책의 열쇠말일 수도 있지만,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 단어들이 사용된 까닭은 역사적 기반을 가지고 도출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표4에 이용된 느낌은 마치 선험적으로 주제를 정해놓고, 일본에 대해 접근한 것처럼 오인하도록 만든다. 게다가 노란 색 표지라니….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한 편의 우월감과 다른 한 편의 열등감을 떠나 일본과 우리의 근대는 일본이란 어머니(아버지)이자 자매를 미국이 근친교배시킨(이건 내 입장에선 굉장히 순화시킨 단어 선택이다)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는 까닭은 '한국과 일본의 근대'가 미국이란 공통의 DNA를 강제로 물려받은 까닭이 크다. 그런 까닭에서라도 우리는 일본을 좀더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하기사 내게 안 그런 분야가 하나라도 있겠냐만).

그것이 이 책을 단지 일본 우경화에 대한 고민으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정치의 맥락에서 일본은 역사적으로, 전통적으로 중국과는 등거리 외교를 해왔지만 한국은 대륙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대륙(중국)의 역사에 더 깊은 영향을 받아왔다. 아마도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입장이 좀더 명확하게 갈리는 부분은 이 대목이 될 것이다.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는 건 일본의 불안을 읽는 것이지만 동시에 한국의 불안과 미래를 읽어내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한 예를 들어 이 책에는 일본 내의 좌파 정당과 정치세력의 몰락 과정에 대해 섬세하게 묘파하면서도 중요한 맥들을 짚어주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일본 좌파의 ‘분열’ 과정이다. ‘우치게바’를 우리말로 옮기면 ‘내부 폭력’쯤 될 터인데,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의 경우엔 적군파를 통해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이지만 1980년대 운동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형태는 다소 완화되어 있지만 우리 역시 이와 비슷한 형태의 여러 내부폭력들이 존재했고, 경험했다. 일본과 비교해 조직 내 위계, 성역할 분담을 가장한 차별과 성폭력 등등의 문제란 점에서 좀 더 봉건적이고 가부장적 형태의 폭력이었다.

난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노동 운동이 도덕적으로도 파탄났음을 드러낸 장면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97년 IMF를 앓고 이 땅은 '구조조정-정리해고'라는 강요를 순리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미쳐도 곱게 미치란 말이 있고, 프로야구에서도 비록 오늘 경기에서는 패하더라도 내일의 경기를 위해선 오늘 어떤 모습으로 패할 것인지가 중요한데 1998년 여름의 현대자동차노조는 ‘구조조정-정리해고’에 맞서 30여일이 넘는 투쟁을 하면서 추하게 미쳤고, 추하게 패했다.

약간의 살점을 얻는 대신, 척추가 부러진 것이다. 당시 노조는 많은 수의 사람들을 정리해고 시키지 않고, 가장 적은 사람들을 정리해고의 대상에 올리는 것에 합의함으로써 투쟁을 일단락지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대상이 사업장에서 열심히 밥 짓고, 파업현장에서도 역시 열심히 밥 짓던 식당노조 아주머니들이었다는 것이다. 30여일이 넘는 시간을 함께 싸워왔지만, 사태가 일단락되고 나서는 누구도 아주머니들과 함께하는 이들이 없었고, 그들의 고통을 아는 체 하는 이들도 없었다. 사측이 노조에게 그랬던 것처럼, 노조 또한 아주머니들의 분노와 절규를 외면했던 것이다. 1998년 현대자동차노조는 함께 연대 투쟁하던 이 아주머니들을 한때 ‘운동의 꽃'이라고 추켜올렸다. 그런데 운동의 꽃을 꺾어 바친 것은 누구였을까?

이 사건은 비록 적군파의 ‘우치게바’와 형태는 다르지만, 이후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살인 못지않은 파괴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그 폭력성과 위선이란 측면에서 사실 훗날 나타나게 될 용산참사나 쌍용차노조에 대한 살인적인 진압의 징후였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쌩얼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이후 노동운동은 현재까지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때의 각인효과는 일베의 출현에 이르기까지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잠이 안와서 뒹굴거리다 문득 눈에 띄어 다시 펼쳐 읽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들이다. 내가 책을 쥔 채 다시 잠들지 않은 것만 봐도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 책인지 다들 알겠지? ㅋㅋ

*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전교조가 해직노동자를 버리지 않으면 법외노조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도 안되는 정부의 요구에 맞서 투쟁하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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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은 "첼로무반주모음곡(Bach suites for solo cello No.1)"과 더불어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바흐의 음악일 것이다. 아마도 바흐의 기악곡들 가운데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오르간곡'들이라고 생각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하는 입문자들에게 친숙한 곡들은 "G선상의 아리아"를 제외하고는 앞서 말한 두 개의 곡이 아닐까 싶다.

첼로무반주모음곡과 파블로 카잘스에 얽힌 일화에 대해선 내 홈피(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파블로 카잘스 편)에 소개되어 있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첼로무반주모음곡의 경우엔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라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존재하기에, 로스트로포비치를 비롯한 수많은 첼리스트들이 도전하더라도 여전히 첼로무반주모음곡하면 일단 파블로 카잘스를 이야기한 뒤 다른 연주자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이름하여 '절대명반'인 셈이다.

그에 비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많은 연주자들의 뛰어난 연주(완다 란도브스카, 칼 리히터, 로잘린 투렉,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안드라스 쉬프, 머레이 페라이어 등)가 각축을 벌이는 격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만하더라도 글렌 굴드의 연주(연도별 녹음)을 비롯해 여러 연주자들의 다양한 버전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가지고 있는데, 같은 작곡가의 같은 곡이라도 어떤 연주자이냐에 따라 해석도 가지각색이라는 것이 클래식 음악 감상의 묘미이기도 하다(물론, 내게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단 한 장만 가져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무조건 글렌 굴드, 굴드다. 그 다음엔 아마도 어떤 굴드일 것인가로 고민하며 머리가 터지겠지만).





바흐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작곡할 무렵엔 이미 피아노가 나와 있었으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피아노가 아니라 악기로서는 아직 좀더 시일이 걸려야 만 하는 미완성 상태에 머물렀기 때문에 바흐는 집에서는 '클라비코드(Clavichords)'를 주로 연주했고, 일반적인 독주나 협주곡 등에서는 하프시코드, 클라브생, 클라비쳄발로라고도 불리는 '쳄발로(cembalo)'를 즐겨 사용했다.

바로크 시대의 가장 인기있는 건반악기 중 하나였던 클라비코드는 단순한 단현 악기(monochord)에서 발전된 것으로 당대의 가장 예민하고 감응력이 있는 건반악기였지만 이 악기는 음량이 작았기 때문에 조용한 가정에서 독주 악기로 적절했다. 그러나 바흐는 이 클라비코드 특유의 섬세한 음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클라비코드는 훗날 가정용 건반악기 자리마저 피아노에 넘겨주던 18세기까지 인기를 누렸다.

우리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둘러싼 잘 알려진 일화는 이 곡이 드레스덴 주재 러시아 대사였으며 바흐에게 평소 많은 관심과 배려를 베풀었던 카이저링크 백작이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곡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화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바흐의 초기 전기 작가인 포켈에 의한 것인데, 그에 따르면 카이저링크 백작을 모시고 있던 음악가 고틀리프 골드베르크는 잠 못 이루는 자신을 위해 편안하고 경쾌한 곡을 작곡하라는 백작의 지시를 받고 고민 끝에 스승 바흐를 찾아가게 되었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던 바흐는 즉시 작곡을 시작해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불면증에 시달리는 백작은 커녕 잠이 쏟아지던 사람도 깨울 만큼 아름답고 때로는 시끄럽다고 말해야 할 정도의 음악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후세의 음악사가들은 포겔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포겔의 주장을 받아들이던 그렇지 않건 간에 1741년이나 1742년에 '다양한 변주곡과 아리아'라는 딱딱한 이름으로 출판되었던 작품집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란 다소 간편한 이름으로 바뀐 점만큼은 골드베르크와 카이저링크 백작에게 신세를 진 셈이리라(실제로 카이저링크 백작은 이 곡을 '나의 변주곡'이라 부르며 애호했다고 하는데, 바흐에겐 거금의 작곡료를 지불해 당시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있던 바흐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작품의 공식 표제 "Aria mit verschiedenen Veraderungen vors Clavicimbal mit Manualen"이 말해주듯 이 작품은 '두 단의 건반을 지닌 쳄발로'를 위해 쓴 곡이다. 30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 열 곡은 두 단의 건반을, 열 다섯 곡은 한 단 그리고 세 곡은 둘 또는 한 단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고, 남은 두 곡에는 아무런 지시도 없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대표적인 건반악기인 피아노는 한 단의 건반밖에 없으므로 사실상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자장가라는 설을 불식시키는 또 하나의 증거는 이 악곡 자체가 가지고 있는 뛰어난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바흐는 이 작품의 구조를 '주제(Aria) - 30개의 변주 - 주제(Aria da Capo)'라는 틀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리아를 뺀 30개의 변주는 놀라울 만큼 치밀한 수학적 논리로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어 수미쌍관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32개의 곡들은 16번 변주곡을 기준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그러나 이 곡이 가진 진정한 아름다움, 바흐라는 한 작곡가의 위대함을 엿보이게 만드는 것은 대위법도, 수학적 엄밀함도 아닌 30번 변주에서 쏟아져 나오는 파격에 있다. 정교한 도미노 퍼즐처럼 겹겹이 포개어 놓았던 구조적 엄밀함을 후반부(30번 변주)에 가면 당시 독일에서 유행한 민속적 선율이 등장하면서 한 번에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이 인간 바흐의 참 얼굴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완전무결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고, 예술의 매력이자, 개성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본래 쳄발로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었지만 훗날 피아노 연주를 위한 편곡을 부조니가 진행했지만 20세기 들어 폴란드 바르샤바 태생의 완다 란도브스카(Wanda Landowska)에 의해 원전 연주가 시도되면서 이 곡 역시 새롭게 각광 받기 시작했고, 이후 수많은 피아노 연주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내가 어제 들은 피에르 앙타이(Pierre Hantai)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완전 디지털 녹음이자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쳄발로 원전연주란 점에서 비록 'OPUS111'이란 마이너레이블에서 발매되긴 했지만 이후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음반을 처음 CD플레이어에 장착하면 쏟아져나오는 쳄발로의 영롱한 음색과 풍부한 잔향에 저절로 귀가 솔깃했진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답고 투명하며 명징한 소리가 있다니'라는 감탄이 절로 든다. 프랑스 출신의 쳄발로(하프시코드) 주자답게 피에르 앙타이는 매우 유려한 선율과 찰랑거리는 소리에 빠져들게 만들지만 문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뭔가 조금 지겹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는 아쉬움이 있다.

뒷심이 달린다는 건 아마 이럴 때 쓰는 말 같다. 후반부로 가서도 여전히 뛰어난 기교와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뭔가 조금 지루하고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그것은 아마도 이 음반을 녹음(1993)할 당시만 하더라도 피에르 앙타이가 아직 젊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연주적으로 뛰어난 소리와 우아한 멜로디, 고운 음색의 찰랑거리는 즐거움을 주긴 하지만 다른 대가들의 연주에 비해선 '심지'가 없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http://youtu.be/ZLI8oh8wY6A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이 주는 음악적 쾌감과 이제는 대가로 성장한 피에르 앙타이의 젊은 시절 연주를 소장한다는 측면에서 권할 만한 음반임에는 틀림 없다. 앞의 것은 OPUS111 레이블의 1993년 녹음, 뒤의 것은 Mirare MIR 9945 레이블의 2003년 녹음으로 음악적 완성도를 따진다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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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 유희, 축제, 카니발, 연희"는 각기 다른 개념이지만 비슷한 개념이며 따로 떼어놓기 어려운 개념들이기도 하다. 장 뒤비뇨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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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주 '놀이와 '축제'를 혼동한다. 놀이는 규칙의 수용을 이야기하며 과격한 근육행위에 기호를 부여하고 자연적인 행위로부터 분리되어 스펙타클(spectacle: 연행적인 방법을 통해서 어떠한 행위를 펼쳐보이며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지각 가능하도록 하는 것)로 통합되는 것이다. 반면에 축제는 규칙을 위반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모든 규칙을 파괴하는 것이다. 위반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축제 때 일반적으로 보이는 '규칙 없음'이나 '방탕'을 의미하는 것과는 다르다.

축제는 기호나 규칙을 파괴하는데, 이것은 축제가 그것들을 인식하면서 침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탈문화된 세계, 즉 규범이 없는 트레멘덤(tremendum)과 같은 공포의 공간을 생성시키는 세계와 대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중략>... 축제는 문명들이 변화하는 순간에 그 문명들의 틈새에 살며시 끼여든다.
<장 뒤비뇨, 류정아 옮김, "축제와 문명", 한길사, 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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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주 놀이와 축제를 혼동한다. 뒤비뇨의 말을 부정하진 않지만 '놀이와 축제, 놀이와 예술, 놀이와 창조, 놀이와 상상력, 놀이와 사회, 놀이와 인간'은 구분되지 않는 가운데 수만 년을 함께 해왔을 것이다. 그래서 축제와 놀이는 종종 문화인류학의 범주 안에서 연구되며, 문화인류학과 사회학은 종종 혼동된다.

다음의 책들은 축제와 놀이 또는 그밖에 혼동되는 것들에 대한 책이다. 만약 누군가 놀이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다고 내게 조언을 구한다면(아마도 그건 내 나름 특별한 인연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지만) 다음의 책들을 추천한다.






 
축제 이론 : 류정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3년 2월
- 류정아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축제 연구의 대가'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펴내는 커뮤니케이션 관련 총서 중 하나로 매우 실용적인 문고본이다. 이 방면에 관심이 있고, 이제 막 입문하려는 분들이라면 참고할 만한 시리즈로 가치가 높다.

1.아널드 반 제넵: 통과의례
2.마르셀 모스: 증여론
3.에드먼드 리치: 시간의 패러독스
4.빅터 터너: 리미날리티와 코뮤니타스의 창조성
5.하위징아: 호모 루덴스
6.로저 카유아: 놀이와 인간의 정체성
7.바흐친: 반(反) 구조적 카니발과 소통시스템
8.마리안느 메스닐: 민속학에서 민족기호론으로
9.장 뒤비뇨: 문명과 판타지 그리고 자유로움
10.리처드 셰크너: 퍼포먼스와 스펙터클

이중에서 마르셀 모스, 빅터 터너, 하위징아, 로저 카유아, 바흐친, 장 뒤비뇨 등은 국내에 저서가 한두 권 정도는 소개된 적이 있지만 사실 노동중독사회, 과로사회 등으로 호명되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나머지는 거의 잘 알려져 있지 못하다. 기초 이론을 다진다는 측면에서 먼저 읽을 만하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6808867)

놀이의 반란 - EBS 다큐프라임 화제작! : EBS <놀이의 반란> 제작팀 (지은이) | 지식너머 | 2013년 6월
- 이 책은 EBS에서 방영해서 화제가 되었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교육적인 의미에서 '놀이'에 대해 반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실제 교육현장(물론 영유아가 중심에 있긴 하지만)에서 벌어지는 현장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69392)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 진중권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05년 3
- 이 책이 나온지도 벌써 꽤 되었다. 읽은 사람들도 많고 여전히 잘 팔리는 책이라 별도의 소개가 필요할까 싶기도 한다만 굳이 말하자면 예술 작품 속에 등장하는 20가지 놀이를 7가지 범주로 나눠 미학적으로 사유해본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0331)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 생각하는 인간에서 놀이하는 인간으로 창조와 상상력의 원천으로서의 놀이 탐구 :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지은이), 이상원 (옮긴이) | 에코의서재 | 2008년 7월
- 이 책은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 시인, 교사 그리고 컴퓨터 아티스트이며 심리학과 문학을 공부한 저자가 상상력과 창조의 원천으로 '놀이'를 바라본 것이다. 어찌보면 놀이의 기능과 의미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현장에서의 여러 예시들을 통해 놀이가 가지고 있는 창조력의 원천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717113&start=slayer)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
- 우울한 현대인이 되찾아야 할 행복의 조건

스튜어트 브라운 | 크리스토퍼 본 (지은이) | 윤미나 (옮긴이) | 황상민 (감수) | 흐름출판 | 2010-05-18 | 원제 play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872901)

앞서의 책들 중 첫 번째 책을 제외하고는 이론서라고 하기엔 다소 소프트한 편인데 비해, 지금 소개하는 네 권의 책은 '놀이'와 '축제'에 대한 본격 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놀이에 관한 책이 이론서라고 딱딱하기만 하다면 모순일 수 있겠다. 아래의 책들이 쉽냐고 묻는다면 나로선 그렇다고 대답하겠다만, 분명 어렵다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게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냐. 필요하면 봐야지. ㅋㅋ

놀이와 인간 - 가면과 현기증 (Le masque et vertige) : 로제 카이와 (지은이), 이상률 (옮긴이) | 문예출판사 | 1994년 4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02335)

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 요한 하위징아 (지은이), 이종인 (옮긴이) | 연암서가 | 2010년 3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054057)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 미하일 바흐찐(철학자) 저 | 이덕형 역 | 아카넷 | 2001.05.30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103401)

축제와 문명l 한길컬처북스 21 : 장 뒤비뇨 (지은이) | 한길사 | 1998-05-25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0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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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
- 히틀러 대 스탈린, 권력 작동의 비밀
리처드 오버리 (지은이) | 조행복 (옮긴이) | 교양인 | 2008-12-25 | 원제 The Dictators






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로버트 서비스 (지은이) | 김남섭 (옮긴이) | 교양인 | 2012-07-05 | 원제 Comrades: A World History of Communism (2007년)







속삭이는 사회 1.2
- 스탈린 시대 보통 사람들의 삶, 내면, 기억
올랜도 파이지스 (지은이) | 김남섭 (옮긴이) | 교양인 | 2013-08-30



  





나타샤 댄스
- 러시아 문화사
올랜도 파이지스 (지은이) | 채계병 (옮긴이) | 이카루스미디어 | 2005-06-30 | 원제 Natasha's Dance (2002년)






* 책 한 권을 잘(?) 읽기 위해 반드시 많은 준비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최신간인 올랜도 파이지스의 "속삭이는 사회 1.2"를 잘 읽기 위해선 약간의 워밍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교양인이 "스페인내전" 이후 출간하는 책들의 흐름이랄까 기획 방향이 엿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교양인이 최근 펴내고 있는 책들은 저자들끼리도 매우 가까운 사이이다. 이건 학문적으로 그렇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도 가까운 듯 보인다. 서로서로 추천사를 써주는 사이들이니까 말이다.

먼저 "독재자들"에 대한 로버트 서비스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리처드 오버리의 책 "독재자들"에 대해 "도발적인 통찰력으로 흘러 넘치는 책"이라고 했다. 이번엔 리처드 오버리가 로버트 서비스의 책 "코뮤니스트"에 대해 한 말을 살펴보자.

"로버트 서비스는 이 흥미진진하고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책에서 역사를 공정하게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일을 해냈다. 완전히 빠져들게 만든다."

이것들이 서로 상대방 책을 최고라고 추천하고 있는 거다.

"속삭이는 사회"는 누가 추천했나 한 번 볼까? 아니나 다를까... 같은 교양인 출판사에서 펴낸 "스페인 내전"의 저자 앤터니 비버다.

앤터니 비버는 올랜도 파이지스의 책 "속삭이는 사회"에 대해 "이 책의 가치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다. 저자와 그가 이끄는 연구 팀은 일기와 회고 기록을 발굴해내고 수백여 명의 생존자들과 직접 인터뷰했다. .... 조심하여라. 이 책을 읽으면 읽으면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현대 러시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저작임이 틀림 없다."

ㅋㅋ

이 사람들 모두(앤터니 비버, 리처드 오버리, 로버트 서비스, 올랜도 파이지스) 영국에서 요즘 잘 나가는 역사학자들이다. 서로서로 칭찬해주는 분위기를 나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어쩐지 약간 낯이 뜨거워지는 건... 올랜도 파이지스의 책 "나타샤 댄스"는 러시아 문화사에 대한 상당한 재미를 주는 수작이므로 일독을 권한다. 물론 위에 이야기한 책들은 모두 한 번쯤 읽어둘 만한 것들이다.


다만, 이것이 대처 이후 영국의 역사학계의 흐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좌파를 묘사할 때 냉정하고 객관적인 기술과 냉소적이고 주관적인 기술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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