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은 "첼로무반주모음곡(Bach suites for solo cello No.1)"과 더불어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바흐의 음악일 것이다. 아마도 바흐의 기악곡들 가운데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오르간곡'들이라고 생각하지만,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하는 입문자들에게 친숙한 곡들은 "G선상의 아리아"를 제외하고는 앞서 말한 두 개의 곡이 아닐까 싶다.

첼로무반주모음곡과 파블로 카잘스에 얽힌 일화에 대해선 내 홈피(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파블로 카잘스 편)에 소개되어 있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첼로무반주모음곡의 경우엔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라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존재하기에, 로스트로포비치를 비롯한 수많은 첼리스트들이 도전하더라도 여전히 첼로무반주모음곡하면 일단 파블로 카잘스를 이야기한 뒤 다른 연주자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이름하여 '절대명반'인 셈이다.

그에 비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많은 연주자들의 뛰어난 연주(완다 란도브스카, 칼 리히터, 로잘린 투렉,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안드라스 쉬프, 머레이 페라이어 등)가 각축을 벌이는 격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만하더라도 글렌 굴드의 연주(연도별 녹음)을 비롯해 여러 연주자들의 다양한 버전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가지고 있는데, 같은 작곡가의 같은 곡이라도 어떤 연주자이냐에 따라 해석도 가지각색이라는 것이 클래식 음악 감상의 묘미이기도 하다(물론, 내게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단 한 장만 가져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무조건 글렌 굴드, 굴드다. 그 다음엔 아마도 어떤 굴드일 것인가로 고민하며 머리가 터지겠지만).





바흐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작곡할 무렵엔 이미 피아노가 나와 있었으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피아노가 아니라 악기로서는 아직 좀더 시일이 걸려야 만 하는 미완성 상태에 머물렀기 때문에 바흐는 집에서는 '클라비코드(Clavichords)'를 주로 연주했고, 일반적인 독주나 협주곡 등에서는 하프시코드, 클라브생, 클라비쳄발로라고도 불리는 '쳄발로(cembalo)'를 즐겨 사용했다.

바로크 시대의 가장 인기있는 건반악기 중 하나였던 클라비코드는 단순한 단현 악기(monochord)에서 발전된 것으로 당대의 가장 예민하고 감응력이 있는 건반악기였지만 이 악기는 음량이 작았기 때문에 조용한 가정에서 독주 악기로 적절했다. 그러나 바흐는 이 클라비코드 특유의 섬세한 음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클라비코드는 훗날 가정용 건반악기 자리마저 피아노에 넘겨주던 18세기까지 인기를 누렸다.

우리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둘러싼 잘 알려진 일화는 이 곡이 드레스덴 주재 러시아 대사였으며 바흐에게 평소 많은 관심과 배려를 베풀었던 카이저링크 백작이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곡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화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바흐의 초기 전기 작가인 포켈에 의한 것인데, 그에 따르면 카이저링크 백작을 모시고 있던 음악가 고틀리프 골드베르크는 잠 못 이루는 자신을 위해 편안하고 경쾌한 곡을 작곡하라는 백작의 지시를 받고 고민 끝에 스승 바흐를 찾아가게 되었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던 바흐는 즉시 작곡을 시작해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불면증에 시달리는 백작은 커녕 잠이 쏟아지던 사람도 깨울 만큼 아름답고 때로는 시끄럽다고 말해야 할 정도의 음악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후세의 음악사가들은 포겔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포겔의 주장을 받아들이던 그렇지 않건 간에 1741년이나 1742년에 '다양한 변주곡과 아리아'라는 딱딱한 이름으로 출판되었던 작품집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란 다소 간편한 이름으로 바뀐 점만큼은 골드베르크와 카이저링크 백작에게 신세를 진 셈이리라(실제로 카이저링크 백작은 이 곡을 '나의 변주곡'이라 부르며 애호했다고 하는데, 바흐에겐 거금의 작곡료를 지불해 당시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있던 바흐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작품의 공식 표제 "Aria mit verschiedenen Veraderungen vors Clavicimbal mit Manualen"이 말해주듯 이 작품은 '두 단의 건반을 지닌 쳄발로'를 위해 쓴 곡이다. 30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 열 곡은 두 단의 건반을, 열 다섯 곡은 한 단 그리고 세 곡은 둘 또는 한 단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고, 남은 두 곡에는 아무런 지시도 없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대표적인 건반악기인 피아노는 한 단의 건반밖에 없으므로 사실상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자장가라는 설을 불식시키는 또 하나의 증거는 이 악곡 자체가 가지고 있는 뛰어난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바흐는 이 작품의 구조를 '주제(Aria) - 30개의 변주 - 주제(Aria da Capo)'라는 틀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리아를 뺀 30개의 변주는 놀라울 만큼 치밀한 수학적 논리로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어 수미쌍관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32개의 곡들은 16번 변주곡을 기준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그러나 이 곡이 가진 진정한 아름다움, 바흐라는 한 작곡가의 위대함을 엿보이게 만드는 것은 대위법도, 수학적 엄밀함도 아닌 30번 변주에서 쏟아져 나오는 파격에 있다. 정교한 도미노 퍼즐처럼 겹겹이 포개어 놓았던 구조적 엄밀함을 후반부(30번 변주)에 가면 당시 독일에서 유행한 민속적 선율이 등장하면서 한 번에 허물어뜨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이 인간 바흐의 참 얼굴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완전무결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고, 예술의 매력이자, 개성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본래 쳄발로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었지만 훗날 피아노 연주를 위한 편곡을 부조니가 진행했지만 20세기 들어 폴란드 바르샤바 태생의 완다 란도브스카(Wanda Landowska)에 의해 원전 연주가 시도되면서 이 곡 역시 새롭게 각광 받기 시작했고, 이후 수많은 피아노 연주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내가 어제 들은 피에르 앙타이(Pierre Hantai)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완전 디지털 녹음이자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쳄발로 원전연주란 점에서 비록 'OPUS111'이란 마이너레이블에서 발매되긴 했지만 이후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음반을 처음 CD플레이어에 장착하면 쏟아져나오는 쳄발로의 영롱한 음색과 풍부한 잔향에 저절로 귀가 솔깃했진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답고 투명하며 명징한 소리가 있다니'라는 감탄이 절로 든다. 프랑스 출신의 쳄발로(하프시코드) 주자답게 피에르 앙타이는 매우 유려한 선율과 찰랑거리는 소리에 빠져들게 만들지만 문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뭔가 조금 지겹다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는 아쉬움이 있다.

뒷심이 달린다는 건 아마 이럴 때 쓰는 말 같다. 후반부로 가서도 여전히 뛰어난 기교와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뭔가 조금 지루하고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그것은 아마도 이 음반을 녹음(1993)할 당시만 하더라도 피에르 앙타이가 아직 젊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연주적으로 뛰어난 소리와 우아한 멜로디, 고운 음색의 찰랑거리는 즐거움을 주긴 하지만 다른 대가들의 연주에 비해선 '심지'가 없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http://youtu.be/ZLI8oh8wY6A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이 주는 음악적 쾌감과 이제는 대가로 성장한 피에르 앙타이의 젊은 시절 연주를 소장한다는 측면에서 권할 만한 음반임에는 틀림 없다. 앞의 것은 OPUS111 레이블의 1993년 녹음, 뒤의 것은 Mirare MIR 9945 레이블의 2003년 녹음으로 음악적 완성도를 따진다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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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