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마치 긴 골짜기와도 같아서, 어디로 굽어들든 완전히 새로운 경치를 보여주는 굽이치는 계곡이다."

언젠가는 그에 대해 글을 써보리라 마음 먹고는 있지만 J.R.R.톨킨에 비해 좀더 기독교적인, 아니 기독교인의 본보기 같은 인물이라 C.S.루이스에겐 좀더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기독교인을 부정하거나 싫어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내게는 좀더 이해하기 어렵고, 복합적인 인물로 여겨진 탓이다). "나니아연대기"의 작가이자 현 대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론가이자 저술가 중 한 명이었던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1.29 ~ 1963.11.22)는 아내 조이 데이빗먼(Joy Davidman)과의 애틋한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옥스포드대학 교수이자 이미 유명한 소설가. 기독교 변증법 이론가였던 C.S.루이스에게 1950년 미국의 한 여성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C.S.루이스보다 16살이나 연하의 여성으로 이름은 조이 데이빗먼이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 자유분방한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학그룹의 일원으로 소설가 빌 그레셤(Bill Gresham)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 그리고 시인이었다. 빌 그레셤의 알콜 중독 등 여러 이유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고, 부부는 잠정 별거 상태에 있었다. 1946년 무렵 조이는 기독교로 회심하게 되었는데, 루이스의 저작이 영향을 미쳤다. 조이는 1950년부터 루이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의 편지 교류는 시인이 소설가에게 띄우는 지적 교류의 형식이었다.

1952년 9월 루이스와 조이는 처음으로 만났다. 조이는 이듬해 두 아들을 데리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이주했다. 조이가 빌 그레셤과 이혼한 것은 이듬해인 1954년이었다. 두 사람이 우정을 넘어 본격적인 만남을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의 일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서냉전이 시작되면서 영국 정부는 과거 마르크스주의자 전력이 있는 조이의 비자를 연장해주지 않았다. 조이는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루이스는 조이의 가족이 영국 시민권을 얻게 해주기 위해 법적인 혼인 신고를 하기로 했다. 쉰 살이 넘도록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를 지켜봐왔던 루이스의 친구들 중에는 두 사람의 혼인 신고를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것이 곤경에 처한 조이를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1956년 10월 조이가 골수암으로 쓰러졌다. 의사는 조이의 수명이 몇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선고했지만 C.S.루이스는 그제서야 자신이 조이를 단지 친구가 아닌 한 인간으로, 또 한 여성으로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고 깊은 충격에 빠졌다. 루이스의 어머니도 그가 어렸을 때 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그의 충격과 슬픔은 더욱 컸다. 1957년 3월 21일, 루이스는 암에 걸린 연인이 입원한 병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때 그의 나이 58세였다. 루이스는 사랑하는 아내의 고통을 자신에게 덜어달라는 기도를 했고, 기적처럼 아내의 병세가 호전되었으나 동시에 그의 다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나 루이스는 이 일을 감사하게 여겼다. 자신의 고통으로 인해 그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4년간 두 사람은 가장 행복하고 슬픈 시간들을 보냈다. 1959년 골수암이 재발한 조이 데이빗먼 루이스는 이듬해인 1960년 7월 세상을 떠난다.

기독교인으로 하느님을 원망하며 깊은 실의에 빠졌던 C.S.루이스는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조이와 사별한 후 인간의 상실과 성숙, 슬픔을 담은 저서 <헤아려 본 슬픔>을 N.W. 클러크라는 가명으로 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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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촬영한 알베르 까뮈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는 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 오랑에 페스트가 들이닥치며 시작한다. 시 당국에 의해 도시는 폐쇄되었고 사람들은 작은 도시에 갇혀 스스로의 힘으로 죽음과 맞서 싸워야 한다.

취재를 위해 오랑에 왔다가 갇혀버린 기자 랑베르는 파리에서 기다리는 아내를 위해 불법이라 할지라도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도시에서 탈출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찾는다. 어느 날, 드디어 그를 태우고 오랑을 탈출시켜줄 배편을 구한 랑베르는 부두에 나갔다가 마음을 되돌린다.

심경의 변화를 느낀 랑베르는 오랑을 탈출하는 대신, 도시에 남아 자신도 페스트와 함께 싸우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페스트(죽음)와 맞서 싸우는 의사 리유에게 자신은 이제 오랑을 떠나지 않기로 했다는 결심을 밝힌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리유는 그의 결심을 듣고 차갑게 말한다.

"그러나 리유는 몸을 일으켜 세워 앉으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행복을 택하는 것이 부끄러울게 무어냐'고 말했다."

그러자 랑베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한국전쟁 이후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힌 외국소설 중 하나라고 하는데 이 소설이 전후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끼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헤아릴 길은 없다. 다만, 작가 한승원은 알베르 까뮈의 이 소설이 "독일과의 전쟁과 독일군의 점령 속에서 산 적이 있는 카뮈의 그 소설은 《이방인》이 그렇듯이 일종의 전쟁과 비슷한 상황 소설이다. 가령 광주민중항쟁 당시 계엄군에 의해 시의 외곽으로 나가는 모든 문을 차단해 버렸을 때, 그 안에 갇혀 사는 이런저런 인간군상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이 소설 <페스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목 중 하나는 류와 타루가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하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뿐이죠."

"늘 그렇죠. 나도 그걸 알아요. 그러나 그것이 싸움을 멈춰야 할 이유는 못 됩니다."

"물론 이유는 못 되겠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이 페스트가 선생님에게는 어떠한 존재라는 게 상상이 갑니다."


"알아요. 끊임없는 패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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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드 감독은 매우 가부장적인 인물이었다. 그 앞에서는 헐리우드 스타시스템 최강의 배우들도 함부로 나내거나 감독의 지시를 거부하거나 항변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영화를 제작할 때나 그 이후나 항상 자신이 보스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 권한을 즐겼다.

그의 가부장적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는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시는 매카시즘 선풍이 불어닥쳤을 때였다. 그는 이른바 매카시즘 열기에 사로잡힌 미국의 영화제작 한복판에서 자신의 스텝들 중 '의회반미활동위원회'가 영화제작자들을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에 불러놓고 만들도록 한 '블랙리스트'에 속한 스텝들을 영화제작에서 배제하고 고발하라는 요청을 꿋꿋이 거절했다. 그가 단지 거절만 한 건 아니었다.

존 포드 감독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개소리들 하지마!"
.
존 포드 감독은 가부장적인 마초였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가부장이었던 셈이다.

----------------- 아래 내용은 내 책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중에서

전후 미국은 매카시즘이라는 ‘빨갱이 광풍’에 휩싸이게 되는데 월트 디즈니는 자발적으로 여기에 동참했다. 1947년 11월 ‘의회반미활동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 HUAC)’가 연예산업에 대한 일련의 재조사에 착수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위원회에 불려가 당대의 가장 유명한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공산당인가? 아니면 한때 공산당원이었던 적이 있는가?” 1947년 11월 24일과 25일에 걸쳐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열린 영화제작자협회 회의에서는 좌파적 성향이 짙은 것으로 평가되던 영화인 10명(이른바 ‘할리우드 10’)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이들을 영구히 추방한다는 내용의 악명 높은 ‘월도프 선언(Waldorf Statement)’이 채택되었다.

미국이 매카시즘 광풍에 휩싸였을 당시 동료 영화인들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지니고 있던 미국노동총연맹 영화배우협회의 회장이었던 로널드 레이건(Ronald W. Reagan)은 가장 먼저 월도프 선언을 지지한다고 선언했고, 그 뒤를 로버트 테일러, 로버트 몽고메리, 조지 머피, 게리 쿠퍼, 잭 워너, 루이스 마이어 등이 따랐다.

월트 디즈니 역시 이들과 함께 우익세력의 선봉에 섰으며, 미키 마우스의 정신적 모델이었던 찰리 채플린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인들과 눈에 가시 같던 직원들 - 그 중에 데이비드 힐버먼(David Hilberman) 등은 디즈니에서 <백설공주>와 <밤비>를 함께 만들었던 동료였다 - 에게 공산주의자 딱지를 붙여 내쫓았다. 매카시즘의 광기에 휘말린 몇몇 영화인들은 결국 자살하거나 심지어 수감되는 등 생계수단을 잃고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월도프 선언’의 내용 중 일부를 옮겨보면 “우리는 아무런 보상없이 우리가 고용하고 있는 그들을 해고 내지 정직시킬 것이며, 모욕죄에 대한 고소가 취하되거나 무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맹세하기 전까지는 그들을 재고용하지 않을 것이다.”란 것이다. - 마이클 엘리어트, 원재길 옮김, 『월트 디즈니 - 할리우드의 디즈니 신화』, 우리문학사, 1993, 270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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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가운데 어느 문장에서 꽂힌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나는 그를 좋아했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의 일이니까. 요즘엔 그의 책을 다시 꺼내보는 일도 거의 없지만, 만약 그가 그 무렵 내 마음을 끌어들일 것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그의 위악과 위선이 빚어내는 신물나는 이중주에 젖어 무심결에 이건 '내 얘기같다'가 아닌 '내 얘기다'로 느낀 대목들이 자주 있었기 때문일 게다. 존 포드에게 있어 존 웨인이 페르소나라면, 마틴 스콜세지에게 로버트 드니로가 그렇다면,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제임스 스튜어트가 그렇다면.... 독자로서 또는 글쟁이로서 내가 내 이야기를 사소설처럼 엮어갈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 다자이 오사무에게 기인한다.

언젠가 나는 A서점의 서재 이벤트로 "욕해달라"는 자학이벤트를 벌여놓고 사람들 말하는 걸 가만보니 누군가 내가 예전에 여러 영화 캐릭터들을 들먹이며 "이건 정말 나다"라고 했던 나의 주장에 거의 전혀 동감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에도 그런 대목이 있다.

그의 모든 행위를 '~ 척 하다'로 받아들인 세상 사람들에 대한 그의 하소연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대목이 있다. 이해 받지 못한다는 건, 굳이 본인에게만 슬픈 일은 아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자도 똑같이 슬퍼할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우주가 거절당한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우주가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사라져간 것이니까.

이건 누굴 탓하기 위한 건 아니다. 사랑도 소멸한다. 질량을 잃은 미소블랙홀처럼........증발해버리는 것이다.

중력이 무한대가 되면, 모든 관계의 존재감은 파괴된다. 부피는 제로, 밀도는 무한대로 증가할 때 그 사이에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 이 말은 지나친 자기애와 자기혐오 사이에 성립가능한 관계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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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친구들에게 '컴뱃'을 아느냐고 물으면 100중 8~90은 바퀴벌레 약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은데, 나 어릴 적 TV에서는 이른바 반공드라마로 '전우'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얼마전에 최수종이 출연해서 다시 만들어진 적도 있는데, 내 기억 속 '전우'의 수준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졸작이었다.

어쨌든 드라마 '전우'는 미국의 TV시리즈 - 그러니까 미드의 원조 격이었던 여러 TV프로그램들이었던 '600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월튼네사람들', '초원의 집', '도망자', '헐크' 등등 - 들 중 하나였던 빅 모로(Vic Morrow) 주연의 <전투(combat)>의 컨셉을 따온 드라마였다. 인터넷쇼핑몰에서 이 시리즈 DVD가 염가에 나왔길래 미친 셈 치고 전 시리즈를 구매했다. 인상적인 오프닝과 귀를 찢는 듯 날카로운 총소리도 여전했다.

빅 모로는 1982년 임권택 감독이 신일룡, 남궁원, 정윤희, 윤양하, 남포동 등과 함께 <아벤고공수군단(Abengo Airborne Corps)>이란 영화에 출연했다. 광고 포스터에는 빅 모로가 마치 주연인 것처럼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특별 출연으로 짤막하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연진의 면면을 봐도 그렇고, 임권택 감독이나 촬영진도 당대 우리 영화계의 특A급 인사들이 총출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전까지 제작되었던 '특공대 반공영화'의 총집합체이면서도 모든 부분이 나사 빠진 듯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온갖 것들이 잡탕이 되었음에도 따로국밥처럼 놀아서 결국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차라리 완전히 액션반공영화로 갔다면 또 모르겠는데 1982년이란 시대상황이 그렇게만 몰고가기엔 애매한 시대였던지 끝까지 애매한 영화로 남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옛날에도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전투>를 보면서 예나지금이나 한결같이 들었던 마음은 - 그때는 어려서 그랬다치고, 지금은 작품성을 위해서(?) - 맨날 미군이 이기니까, 나도 모르게 독일군도 한 번쯤 이겨주었으면 바라는 마음이 들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탓에 이후 수정주의 할리우드 영화들에선 독일군의 시각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반전영화들도 꽤 제작되었다. 전쟁에 나가면 언제나 승리하는 인간적인(?) 미군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그것이 주류에 대한 저항의식의 단초가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패자에게 동정을 보내고(물론 독일군을 동정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것이지만), 패자의 시선에서 다시금 역사를 바라보고자 하는 의식이 생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유황도(이오지마)를 소재로 각기 다른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두 편 다 범작 이상의 수준을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일본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 분명 패전하는 독일군 못지 않게 서글프고 비참함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텐데도 - 그 주인공들에게 충분한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다. 내셔널리즘이란 것에도 거리차란 것이 존재하는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가더라도 과거사가 분명하게 매듭(사과와 용서)지어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이란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 나의 내셔널리즘 탓일지도?
**빅 모로가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바바라 터너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브루클린으. 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에서 열연을 펼쳤던 제니퍼 제이슨 리( Jennifer Jason Leigh)이다. 그러고보니 딸의 얼굴에서 아빠의 표정 얼굴이 엿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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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책을 쓸 때 바츨라프 스밀의 도움을 약간 받았다. 국내에는 두 권의 책이 출간되어 있는 것으로 아는데 하나는 교양서에 해당하는 "에너지란 무엇인가"(삼천리)이고, 다른 하나는 좀더 심도가 깊은 책인 "새로운 지구를 위한 에너지 디자인 - 에너지.경제.환경의 통합적 전망과 대안"(창비)이란 책이다.

바츨라프 스밀에 대한 소개는 ...




"캐나다 매니토바대학 환경지리학과 교수. 캐나다 왕립과학아카데미 회원. 1943 년 체코에서 태어나 프라하 카를로바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에너지와 환경, 식량, 인구, 경제, 역사, 공공정책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연구와 강의를 해 오고 있으며 유럽연합을 포함한 국제기구의 정책 자문을 맡았다. 2010년 11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발표한 ‘지구적 사상가 100명’에 선정되었다. Energy Myths and Realitie(2010), Why America is Not a New Rome(2010), Energy at the Crossroads(2005, 《새로운 지구를 위한 에너지 디자인》, 창비, 2008), Feeding the World(2000) 등 학술서와 대중교양서 30여 권을 펴냈다."


"에너지란 무엇인가"의 번역자인 윤순진 교수는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를 "내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과 계획’이란 과목을 열고 있는데, 학생들 대부분이 에너지란 용어 자체에는 익숙하지만 에너지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여 보다 총체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여러 곳에서 에너지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는데, 실제로 에너지를 아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에너지란 무엇인가"는 에너지에 대한 대중을 위한 교양서라서 그런 점에서 분명 도움이 된다. 다만, 이 책을 뭔가 화끈한 대안이나 세상을 뒤집어 엎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점철된 책이라고 생각해서 펼치는 것은 이 책을 가장 재미없게 읽는 방법이다. 그는 과학자이고, 과학자로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이 읽을 만한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렇다고 바츨라프 스밀이 반생태론적인 입장에 서 있는 과학자란 뜻은 아니다. 다만 온도차가 있다는 말이다. 일단 그는 화석연료 자체를 전면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어떤 의미에선 그것이 현실적인 입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바츨라프 스밀은 1970년대 이래 석유시대의 종말과 에너지 위기에 대한 경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런 비관적인 전망이 반드시 옳은(이건 정치적으로 옳고 그르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망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세계 유수의 에너지 기관과 각종 연구소들이 가지고 있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정도의 예측모델로는 세계의 1차 에너지 수요 및 가격 등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계량적 예측 혹은 예언은 세계 경제와 각국의 에너지 정책에 혼란과 혼선을 빚었고, 석유시대의 종말론, 에너지 위기 경고는 마치 늑대소년의 이야기처럼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틀린 예측이었을까? 바츨라프 스밀은 큰 틀로 보았을 때는 그런 주장 자체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극적이라 대중을 손쉽게 경각시킬 수 있는 비관적 전망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에너지 연착륙 정책(소프트랜딩)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바츨라프 스밀은 지구자원의 본질적인 불가지성, 에너지 문제와 긴밀히 결부된 정치, 경제, 국제안보의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단지 (화석)에너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맞히는 예측게임 같은 방식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존엄과 적절한 삶의 질의 유지, 생물권의 대체 불가능한 통합성의 보전을 목표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예방하고 그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예측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 출판된 시기를 보면 창비에서 나온 "새로운 지구를 위한 에너지 디자인"이 조금 더 빠르지만 에너지 문제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초심자라면 "에너지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새로운 지구를 위한 에너지 디자인"으로 넘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898018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12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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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의 여왕

 

- 신지영

 

무릎 사이에
가죽 조각을 끼고
하나하나 이어 붙이다 보면
어둠이 달려와
하늘은 검은 망토를 둘러요

 

깜깜한 밤이 되면
해님을 꿰먀서 하늘에 붙이고 싶어요
더듬더듬 바늘구멍 찾다보면
너덜너덜 캄캄한 웃음이 떨어질 거 같거든요

 

실을 당겨서 휘어진 손가락에
지문은 없어요
잃어버렸다고 울진 않아요
내 지문은 상표보다 선명하게
축구공에 찍혀 있으니까요

 

오늘도 바늘은
서른 두개의 오각형과 육각형 조각을 꿰매서
축구공을 만들어요
매일매일 천육백이십 번의 바느질은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이어 붙여요

 

내가 만든 축구공이
골대를 통과해
축구장 가득
사람들의 함성을 터뜨릴 때
어느덧 나는 바느질의 여왕
사람들 마음을 한 조각도 놓치지 않고
하나로 이어 붙여요


출처: "넌 아직 몰라도 돼 - 청소년을 위한 아주 특별한 시집" l 바다로 간 달팽이 4 - 신지영 (글) | 박건웅 (그림) | 도서출판 북멘토 | 2012-11-26

 

 

* 사실 저는 이 책을 모두 다 읽어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위에서 제가 소개하고 있는 시와 삽화만 보더라도 여러분은 이 시집이 어떤 내용의 어떤 책인지 금방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살짝 펼쳐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이렇게 우리 사회의 아픈 문제를 이야기하는 청소년 시집도 가능하구나란 것이었고요. 두 번째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담긴 시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고요. 세  번째는 박건웅 선생이 이렇게 아름다운 삽화도 그려낼 수 있는 분이었구나 하는 사실에 놀랐어요.

 

제가 말씀 드린 세 번째 이유란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박건웅 선생의 팬이기도 할 텐데요.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제가 본  박건웅 선생의 그림책들은 대체로 무척 아프고 슬픈 그래서 어두운 그림체의 것들이었거든요. 예를 들어 "삽질의 시대", "나는 공산주의자다", "노근리 이야기" 같은... 부끄럽게도 박 선생의 삽화 일러스트 작업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가 이렇게 아프고 아름다운 삽화들도 하시는구나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수록된 시들은 하나같이 사회적인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위의 '바느질의 여왕' 같은 경우도 축구공과 아동노동의 상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한 편의 시와 한 편의 삽화 그리고 각각 주제에 해당하는 뒷이야기랄까요. 이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짤막한 에세이 한 편이 같이 실려 있습니다.

 

학교나 가정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문학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도록 잘 배려해서 만든 시집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살아있는 글쓰기(문학)' 교육의 교재로 삼기에 참 좋은 책이란 뜻이죠. 밑의 글은 이 글에 수록된 글은 아니고, 제가 쓴 글입니다. 산문도 있는 그대로 옮겨오면 이해가 좀더 편하겠지만 그건 나중에 각자 책을 통해 직접 보시는 편이 더 좋을 듯 하고요. 밑의 글은 제가 2002년 월드컵 무렵에 쓴 글인데 마침 이 시와 관련해 함께 읽으셔도 좋을 듯 해서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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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Fevernova의 비밀
어떤 학자는 말하길 "축구는 현대의 종교"라고 하더군요. 원래 종교에는 크게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하나는 도덕적 정화, 다른 하나는 주술적 엑스터시(ecstasy)를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근대에 이르러 "신은 죽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종교의 다양한 기능 중 주술적 엑스터시 부분은 많이 약화되는 대신 도덕적 정화 기능에 주력하게 되었죠. 축구는 이런 종교가 상실한 주술적 엑스터시라는 부분을 대체할 만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도 일리가 있는 것이 다 같이 하나의 둥그런 물체(축구공)를 쫓아가며 열광하는 광경을 보면 흡사 무슨 종교적 제의라도 치르는 듯 보입니다. 고대 잉카문명에서는 신에게 바칠 인신 제물을 선택하기 위해 현대의 축구와 비슷한 경기를 치르곤 했다고 하니 축구의 제의성은 더욱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축구의 역사를 대변하는 산 증인. 축구에 있어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물건인 축구공의 역사와 그 뒤에 숨겨진 비밀들을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죠. 현재의 축구공 모양이 만들어진 것은 1872년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규정을 만들어 가죽공의 시대를 시작하면서부터 였습니다. 축구의 유래에 대해서는 각 문명권에서 제각각의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만큼 축구라는 경기가 원시적인(?) 단순한 룰에 따른 경기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으며 반대로 현대 축구의 열광이 어째서 가능한가를 설명해주는 사례입니다. 어쨌든 현대 축구의 창시자는 분명 영국이었습니다. 그렇게 축구공에 대한 최초의 규정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우리들도 잘 아는 소나 돼지의 오줌보 혹은 기타 등등의 여러 물체들이 축구공의 대용품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제가 20살 무렵 막노동판에서 일할 때 그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 오야지 - 일본말입니다 - 들이 돈을 모아 돼지 한 마리를 잡은 적이 있는데, 그 중 어떤 분이 돼지 오줌보를 이용해 축구공을 만들어서 함께 차고 놀았던 적이 있습니다. 오줌보가 생각보다 질긴 놈이더군요.)

 

1872년 축구공에 대한 최초의 규정이 만들어진 뒤 1963년부터 FIFA가 월드컵 공인구라는 제도를 만들어 매 대회 때마다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축구공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최초의 공인구는 '산티아고'. 그후 축구공 만드는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여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의 '탱고 에스파냐'부터는 완전 방수 기능의 축구공이 만들어졌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부터는 100% 인조 가죽공인 '아즈테카'가 만들어졌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신태틱 폼' - 미세한 공기방울을 축구공의 표면에 규칙적으로 배열하는 첨단 과학 기술 - 을 동원하여 상대적으로 수비 축구가 되어가고 있는 현대축구의 재미를 증가시키기 위해 축구공의 반발력과 스피드를 극대화하는 축구공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든 기술의 최종 집결체가 바로 이번 2002년 월드컵에 사용되는 '피버노바'인 것이죠.

 

월드컵 공인구에 숨겨진 비밀 - 아동노동의 눈물

세계 유수의 스포츠 물품 제조 업체인 미국의 나이키(Nike)사의 창업자가 자신의 모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최근 그 창업자는 자신의 모교에 엄청난 액수의 학교 발전기금을 희사했기 때문에 열렬한 환영을 받으리라 기대하고 자신의 학교를 방문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야유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제3세계의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 아동노동 등을 통해 고수익을 창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올해 국제노동기구(ILO)는 "현재 전세계 2억5천만 명의 아동이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적어도 6천만 명은 광업과 매춘 등 극한노동에 시달린다"며 "가혹한 아동노동 철폐운동은 경기규칙을 어기는 선수에게 레드카드를 주는 축구정신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축구용품에 아동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는 뜻의‘비(非) 아동노동(child labor free)’라는 로고를 붙이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도 과연 그런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1996년 FIFA(국제축구연맹)가 FIFA 라이센싱으로 생산되는 축구공과 용품에 이용되는 노동관행과 관련한 기준에 동의한 이후인 1998년에도 프랑스 월드컵 공인축구공 ‘트리콜로’가 아디다스(Adidas) 파키스탄 공장의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어린이들의 고사리같은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져 당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유엔 아동보호기금(UNICEF)과 국제노동기구(ILO)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진상조사에 나서 아디다스는 거액의 아동보호기금을 기부하고 공개해명을 하는 등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최근 FIFA는 2002 월드컵에서 사용될 모든 축구공들은 파키스탄 시알코트 지역의 합법적 생산처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공식발표했다. 또한 축구공과 기타 관련 물품들이 현행 근로기준을 충족시키는 조건에서 생산되고 있음을 모니터하는 체계를 계속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FIFA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불행히도 그리 희망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제민주연대에서 발간되는 <사람이 사람에게> 3.4월호를 살펴보면 파키스탄의 시알코트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되거나 혹은 공식 감사를 거치지 않은 비합법적인 생산처에서 생산된 축구공들이 섞여 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와 관련된 <사람이 사람에게> 강은지 객원기자의 기사 내용입니다.

 

2002 월드컵 개막을 5개월 앞둔 지난 1월 17일, 인도 뉴델리에서는 ‘월드컵의 그늘에 있는 아동노동’이라는 주제로 한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서는 최근 인도에서 조사한 아동노동의 현황을 담은 사진과 사례들이 소개되었는데 그 내용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인도와 파키스탄 지역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축구공을 바느질하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10cm길이의 바늘을 들고 열심히 축구공을 꿰매고 있던 11살 먹은 소년은 “축구요? 한번도 해 본 적 없어요”라며 시큰둥하게 답했다. 또 한 소녀는 “월드컵이 열리면 그 축구공들도 파키스탄이나 인도에서 만들 거 아니냐”며 일거리가 많아질 것을 기뻐했다. 아이들의 손에 들려있는 오각형과 육각형의 조각들에는 버젓하게 ‘비(非) 아동노동(child labor free)’이라는 로고가 붙어있다. 

 

전 가정이 축구공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지역 스포츠 용품 공장에서 가정으로 하청을 주는 중개업자 역할도 하고 있는 파키스탄의 모한 랄(Mohan Lal) 씨의 증언은 더 직접적이다.

 

“우리가 만든 2002 월드컵에 사용될 물건들은 이미 다 배에 실었어요. 월드컵 로고 바느질에는 물론 아이들도 동원되었지요.”

 

아동노동과 세계평화
미국의 세계 패권 질서 확대의 와중에 분쟁에 휩쓸린 대테러 전쟁 지역 및 오랫동안 지역 분쟁에 시달려온 지역에서 아동의 강제 노동과 소년병 차출 문제는 우리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심각한 정도의 것입니다. UN의 통계에 따르면 매년 30만 명의 아이들이 정규군이나 무장 반군 집단에서 총알받이가 되고 있으며, 지난 10년 동안 전쟁으로 살해된 아이들은 200만 명, 불구자가 된 어린이들은 600만 명, 전쟁고아는 100만 명, 난민 어린이들은 1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심각한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도 약 1천만 명에 달하며 지금도 매달 800명의 어린이들이 지뢰를 밟고, 죽거나 발목 등 신체 일부가 절단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동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숫자가 2억 5천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2002년 월드컵을 우리 민족의 국운 상승의 기회로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이들이 손수 한땀 한땀씩 피를 흘리며 새겨놓은 월드컵 로고를 발로 차면서 열광하며 그 아이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들 중 누구도 더러운 땅을 여의고 깨끗한 땅을 밟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월드컵을 바라보며 흥겨움에 들떠 축구공 하나 사달라고 할 때 그 축구공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알려주어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피땀에 젖은 축구공을 차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들이 "부자 아빠를 꿈꾸는" 동안 거리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200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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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생각? 생각? 생각?

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은이) | 제정임 (엮은이) | 김영사 | 2012-07-19


우리 사회의 ‘멘토’라는 법륜 스님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 단일 후보로 문재인이 아니라 안철수로 단일화되었다면 선거에서 승리했을 거라고 말했다는데, 비록 법력 높은 분의 말씀이긴 해도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아마도 법륜 스님의 말씀에 담긴 속내는 잘해야 민주당이 ‘안철수로 헤쳐모여’ 할 수 있을 만큼의 쇄신을 이룩하길 바란다는 덕담쯤 되지 않을까 싶다.

출마자가 다양한 총선 때 만큼은 아니더라도(총선 때는 선거자금 마련과 후보의 홍보를 위해 게다가 책 한 권쯤 낸 저자로서의 권위가 여전히 유용하다는 판단에서 후보자 개인의 자비 출판이 홍수를 이룬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자 자신이 직접 쓰거나 후보와 관련한 내용을 다룬 책들이 붐을 이루며 출판되는 것이 상례(常例)가 되었다. 물론 이렇게 나온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일반적이진 않았다. 특히 안철수 당시 교수가 제정임 교수와 함께 펴낸 『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는 드물게 대중의 호응을 얻은 책이기도 하다.

‘베스트셀러'를 단순히 많이 팔린 책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말로 하자면 대중으로 하여금 지갑을 열고 책값을 지불하고 싶게 만들 만큼의 매력(대중성과 보편성)을 가진 책이란 뜻이기도 하다. 물론 그 너머에는 남들 다 읽는(혹은 다 구입한) 책을 나만 안 읽었다고 한다면 대화에서 소외될까봐 읽게 되는 다분히 한국적인 현상(왕따)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지난 2012년 7월에 출간된 『안철수의 생각』을 구입한 분들은 대선도 끝난 지금쯤 모두들 이 책을 다 읽었는지 모르겠다.

“저는 지금까지 인생의 큰 전환기마다 ‘내가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에 얼마나 보탬이 될 수 있을까’를 판단 기준으로 삼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런 맥락에서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든, 혹은 직접 나서지 않아도 기성 정치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든, 국민의 열망을 대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책임감을 느꼈어요. 제가 정치에 참여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제 욕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30쪽)

“하지만 저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마다 ‘의미 있고, 열정을 지속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가’의 세 가지만 생각했고 성공 가능성은 고려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같은 입장이고요.” (33쪽)

제목을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때로 어떤 책들은 제목보다 부제에서 더 많은 것을 설명한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부제를 다는 것이지만 『안철수의 생각』에 달린 부제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에서 ‘안철수’의 생각 또는 안철수의 ‘생각’은 ‘우리’로,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미래’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비록 이 시점까지 그는 선거에 참가할지 안할지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지만 이 책을 내는 순간,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에 대통령 선거 출마를 결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정의로운 복지국가’ 혹은 ‘공정한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복지와 정의는 평화가 전제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으니, 남북의 통일을 추구하면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제도 절실합니다. 결국 복지, 정의, 평화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현재의 정치권은 진영 논리에 빠져서 상대의 의견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데, 화합과 소통의 리더십을 통해서 복지, 정의, 평화의 시대적 과제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82~83쪽)

안철수가 생각하는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진영논리’이다. 흔히 안철수를 과거 정치 경력이 없어서 그만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이라 좋아한다고들 하는데 그와 흡사한 맥락에서 안철수의 생각에는 과거(역사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 보인다는 뜻)가 없다. 그의 생각 속에는 어째서 이런 진영논리가 생겨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드물고, 역사적 맥락이 탈색되거나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 대신 등장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믿음’ 같은 이상화된 담론들이다.

“제가 지난해 <경영의 원칙>이라는 책을 썼는데요. 거기에 전쟁과 정치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어떤 분의 설명을 인용했어요. 전쟁과 정치는 적과 싸운다는 점은 같답니다. 그런데 전쟁은 적을 믿으면 안 되는 것이고, 정치는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궁극적인 목적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있다는 기본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적을 믿으면서 싸우는 것, 기본적인 믿음은 가지면서 대결하는 것이 정치라는 얘깁니다. 이런 믿음 위에서 소통의 정치를 추구해야겠죠.”(91쪽)

정치인의 정치적 수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험난한 시대를 살아온 유권자들에겐 참 어려운 일이지만 어쩐지 안철수가 선한 눈매에 어눌한 어투로 말할 때는 설득력을 얻는다. 월터 리프만은 ‘스테레오타입 (stereotype)'이란 개념을 통해 인간의 심리적 지각 과정이 보이는 한 가지 중요한 편향으로 ’보고 나서 정의(first see and define)'하기보다는 “정의하고 나서 본다(define first and then see)'고 했는데, 그래서 정치는 논리 이전에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현실 인식 과정에서 자신의 표준화된, 습관화된, 그리고 미리 정의된 스테레오타입의 강력한 지배를 받게 되므로 직접 관찰보다는 타인의 설명에 높은 타당성을 부여하고, 직접 체험보다는 공상을 더 신뢰하는 경향을 나타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는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다시 말해 ‘희망사항’을 표상한다.

앞서 안철수에게는 과거(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했지만 『안철수의 생각』 중에는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

“저는 국사뿐 아니라 세계사도 필수과목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동물의 경우 주어진 그 순간만 생각하고 반응하지만, 사람은 그전에 일어났던 일과의 맥락(context) 속에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점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세계 시민으로서 국사와 세계사를 모르고 지금 당장 필요한 지식만 익히는 접근방법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197쪽)

좋은 생각이고 동의하지만 문제는 딱 거기까지 만이었다는 거다. 『안철수의 생각』은 300쪽이 채 안 되는 얇다면 얇은 책이고, 이 책이 공약정책집도 아니기에 우리는 이 책 한 권으로 그의 생각(박근혜 당선인이 TV토론에 나와서 한 말로 널리 회자된 “그래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거잖아요.”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을 모두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갈증에 시달린 사람들이 나 말고도 더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 『안철수의 생각』 이후에 『안철수의 생각을 생각한다』거나 『안철수의 진짜 생각』, 그리고 『안철수의 생각과 다른 생각』 같이 마치 생각의 존재론이나, 생각의 인식론을 떠올리게 만드는 거창한 제목의 책들이 연이어 출판되기도 했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 작품의 예술성이라 하기엔 다소 뭣하지만 예술의 중요한 미덕 중 하나는 해석의 확장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학적으로 보든, 사회과학적으로 보든 예술 작품의 가치('가치'와 '가격'을 같은 말이라고 해석하지는 말자! 이 글에서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이해를 돕기 위한 차원이니까)가 생산 즉시 생산되는 것이라면 예술 작품의 가치는 불변이겠지만 예술 작품의 가격과 가치는 장(場)에 의해 변동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예술작품의 가치를 변동시키는 속성 중 하나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해석의 확장성이다. 다시 말해 시공간에 따라 여러 의미로 변주(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 뛰어난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의미이다. 의미 값이 고정된 작품은 해석의 여지가 좁기 때문에 장이 개입할 여지가 그만큼 줄어들뿐더러 시간과 공간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반감되기 쉽기 때문이다.

안철수 혹은 『안철수의 생각』을 생각하기 위해 이토록 많은 변주(출판물)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안철수의 생각이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한 좋은 생각들로 가득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치는 예술작품처럼 독자(상대)의 해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때로 정치인 스스로 능동적인 선택을 하고, 그에 따라 현실을 해석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은 이것을 ‘시대정신(Zeitgeist)’라고 거창하게 주장하기도 하지만 어떤 정치인도 시대정신이라는 모호한 주장만으로 집권에 성공하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 안철수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 시대(정치)가 만들어 낸 스테레오타입이라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의 가장 큰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가 현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해석의 결과에 따라 선택하면 할수록 그의 가치는 점점 더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말이다. 정치인으로서 안철수는 네덜란드의 튤립이 그러했던 것처럼 수많은 거품 속에 피어났다. 이제 앞으로 5년, 그가 거품을 거둬내고도 그만한 역량과 가치를 지닌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보여야 할 시간들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안철수의 생각이 구체적인 미래를 얻게 되지 않을까? 안철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타입인 거죠.”(39쪽)


안철수는 선거 이후에 앞으로도 정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가 만약 이번 선거에서 실수한 것이 있다면 다음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이 책은 인터뷰집인데, 지은이는 안철수이고, 엮은이는 제정임이다. 이 책보다 한 해 먼저 나온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에서도 지은이는 김어준이고, 지승호는 엮은이이다. 지난 2000년에 나온 에릭 홉스봄과 안토니오 폴리토의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원제 Interview on the New Century)도 앞의 두 책과 비슷한 구조지만 이 경우 에릭 홉스봄과 안토니오 폴리토는 공동 저자로 대접받는다. 한국 사회(출판계)에서 저자와 엮은이(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어떤 위계적 질서에 놓이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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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74
존 버닝햄 글, 그림 | 이주령 옮김 / 시공주니어 / 1997년 1월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중에 마치 할아버지의 기다란 수염에 대한 천진난만한 손주의 질문, "할아버지는 잘 때 수염을 어떻게 해요? 이불 속에 넣고 자나요? 이불 밖으로 빼놓고 자나요?" 처럼 별로 고민할 일이 아님에도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 의미란 것이 별 것도 아니면서 사람의 심리를 집요하게 잡아끄는 힘이 있다. 어떤 인간도 자신의 인생을 매순간 의미로 가득채우고 싶어 안달이란 점에서 인생에 무의미한 일이란 없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존 버닝햄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한 편의 시이자, 아름다운 의미론이기도 하다. 산타클로스는 자본주의적으로 보자면 비효율의 상징이다. 1년 12두달 내내 놀다가 12월 24일 하루만 일하는 노동자란 점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그러나 1년 12달 내내 밤마다 돌아다니는 산타클로스를 상상할 수는 없다. 기다림이 없는 산타클로스에게 어떤 매력을 찾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산타클로스가 1년에 단 하루 노동한다고 해서 나머지 시간 동안 놀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머지 시간 동안 산타클로스는 우리가 즐겨 부르던 크리스마스 캐롤처럼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를 살피고, 그에 합당한 선물을 준비하는 존재다. 산타클로스에 의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선행에 대한 당장의 보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산타클로스는 아이들의 퇴행(다시 어려지고자)하고자 하는 집요한 욕구를 성장시키는 존재다.


이 책의 원제는 "하비 슬럼펜버거의 크리스마스 선물(Harvey Slumfenbuger`s Christmas Present)"인데, 제목만 보더라도 작가 존 버닝햄이 얼마나 짖궂을 정도로 위트가 넘쳐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아이의 성(性)을 보자 "슬럼(Slum)"펜버거다. 우리는 이 이름만 보더라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빠짐없이 전달했다고 생각한 산타클로스가 어째서 순록이 너무 지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비행기 사고를 겪고, 자동차 사고를 겪고, 오토바이 사고를 겪고, 스키 사고를 겪고, 자일을 타고 등산을 하면서까지 반드시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하려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존 버닝햄의 그 천재성에 고개가 절로 떨구어진다. 이 짧은 동화에서 그는 어쩌면 이토록 많은 의미들을 담아낼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이토록 빠짐없이 담아낼 수 있을까. 거기에 재미까지 선사할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를 앞둔 밤. 산타클로스는 온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골고루 선물을 나눠주었다. 순록은 밤새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선물을 전하느라 지쳤고, 이제 산타클로스도 잠옷으로 갈아 입고 하룻동안의 피곤을 씻기 위해 잠자리에 들 찰나 한 명의 어린이에게 선물을 전달하지 못한 사실을 깨닫는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못 받는 아이가 있다니... 산타클로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특유의 빨간 산타 복장을 갖춰 입고 길을 나선다. 한 명의 어린이를 위해 온 세상이 움직인다. 비행기를 갖고 있는 조종사는 비행기를,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이는 자동차를, 오토바이를 가지고 있는 오토바이를, 스키를 가지고 있는 이는 스키를, 등산용 자일을 가지고 있는 등산가는 등산용 자일을 아낌없이 선사하여 산타클로스의 사명을 다하도록 돕는다. 천신만고 끝에 산타클로스는 하비 슬럼펜버거의 굴뚝으로 들어가 잠들어 있는 하비의 머리맡에 놓인 양말에 준비해간 선물을 넣어준다. 그러나 존 버닝햄은 끝끝내 선물의 내용이 무엇일지 독자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짖궂지 않은가? 그러나  버닝햄은 결코 짖궂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하비 슬럼펜버거에게 주어진 선물의 내용이 무엇일지 알고 있다. 친절한 버닝햄 씨는 이미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로 우리들에게 그 선물의 내용을 알려주었다.


예수는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한가지 비유를 가지고 설명하자.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있다. 중요한 장기가 병들었든, 손끝에 가시가 하나 박히든 그 중요성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인간의 육체는 심장이 손가락을 소외시키는 일이 없다. 육체라는 것은 상당히 이상적으로 우정과 사랑, 나와 너가 하나인 대단한 사랑의 조직체이다. 그러나 어떤 국가·사회·제국도 그렇게 순수한 육체의 조화로운 통일과 같은 유기성은 없다는 데 문명의 모순이 있다. 가령 어떤 사회에도 ‘천국이 따로 없다’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기본적인 물질적·정신적 보장조차 못받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물론 한쪽이 억압받는다고 해서 전체로서의 사회나 국가가 어떤 일다운 일을 못하거나 생산력을 발휘할 수 없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한쪽은 병들어 있으면서도 몸 전체는 위대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부인할 수 없는 유산도 남길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사회에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나머지 부분인데 그 부분을 어떻게, 어느 정도 아파하느냐 하는 것이 인류역사 발전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는 작가 최인훈의 말을 떠올려 보자. 만약 "인간의 육체"가 "심장이 손가락을 소외"시킨다면 그 손가락은 당장 오늘부터라도 썩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2004년 8월 현재 대한민국 전체 임금노동자의 60%가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이 통계 수치는 선진국의 2배에 이르는 수치이며 비정규직 임금노동자의 소득은 정규직의 50%미만이며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매우 취약한 상황이어서 사회보험가입율이 정규직은 82%인데 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30%를 간신히 넘어서고 있다. 이외에도 퇴직금, 상여금, 시간외수당, 유급휴가 등 노동조건의 적용 수준도 정규직의 82%에 비해 14%에 불과하다. 사회의 한쪽에선 한해 평균 1만여 명의 사람이 해외로 원정진료를 떠나 1조원 이상을 소비하고, 다른 한쪽에선 건강보험 지역가입 체납가구수가 약 170만 세대에 이른다. 한 세대 당 3-4인이라고 했을 때, 무려 700만에 이르는 사람(2005. 8.11. 연합뉴스 - 우리나라 빈곤층 716만명, 전체인구의 15%)들이 기초 사회복지라 할 수 있는 건강보험 혜택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손가락 하나가 썩는 정도가 아니라 몸통이 썩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부와 이 땅의 지배계급은 아니 당신과 나는, 복지는, 분배는 시장을 먼저 살려놓고 나서 그 때 돌아봐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과 친밀한 적대 관계다.


버닝햄은 가난하고 소외된 한 명의 어린이에게 사랑과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온세상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본의 효율성이란 인간의 논리가 아니란 사실을 새삼 깨울칠 수 있다. 마더 테레사의 이야기,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란 말을 단순히 한 명의 성자(聖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로 생각할 때, 우리는 결국 손가락을 소외시킨다. 노조 대표가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관계만을 반영한 분배투쟁에 앞장설 때, 우리는 하나의 손가락을 소외시킨다. 교육 노동자가 자기 학교에 있는 비정규직 교사를 차별할 때 우리는 하나의 손가락을 소외시키고, 남성이 여성을, 한국인 노동자가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할 때 우리는 또 하나의 손가락을 소외시킨다. 가장 급진적인 것은 어떤 경우에도 선언에 의한 것이 아니며, 가장 실천적인 것은 이론에 의한 것이 아니다. 누구도 자신의 주변에 눈물 흘리는 사람을 소외시키고는 급진적일 수도, 실천적일 수도 없다는 작고 소박함, 그 원칙에서 세상의 모든 급진은 꽃핀다. 꿈꾸고 사랑하라!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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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쥐 -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1958년 무렵 뉴욕 레고 파크. 여름이었다고 기억된다. 내가 열 살인가 열 한 살이었을 때…. 난 하우이, 스티브와 어울려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는데 그만 스케이트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야! 얘들아! 기다려.”
“꼴찌다! 꼴찌! 하하하”
“같이 가! 얘들아.”
아버진 마당에서 뭔가를 고치는 중이셨다.
“마침 들어오는구나. 이리 와서 이것 좀 잠깐 잡아주렴.”
“훌쩍, 네?”
“아티, 그런데 너 왜 우는 거니? 나무를 잘 붙들려무나.”
“제가 넘어졌는데요. 친구들이 절두고 가버리잖아요.”
아버진 톱질을 멈추셨다.
“친구? 네 친구들?”
“그 얘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
<1권 본문 5-6쪽>


아트 슈피겔만의 『쥐(Maus)』는 모두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은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의 청년기인 1930년대 중반부터 1944년 폴란드의 유대인 게토에 머물던 시기를 다루고, 2권은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작가는 ‘마우슈비츠’란 익살을 부리기도 하지만) 수용소에서 극적인 생존에 이르는 시기를 다룬다. 그러나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과거사를 연대기적으로 구성하는 단순한 회상투로만 구성되진 않는다. 우리는 『쥐』를 통해서 작가인 아들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 블라덱 사이에 놓인 경험의 차이, 감정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 이유는 작가가 『쥐』를 통해 일정하게 의도하는 바가 성공적이었음을 뜻한다.


무엇보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가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작품들과 다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 작품이 과거와 현대를 번갈아 가며 대비시키고 있는 구조를 취하는데서 발생한다. 즉,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작가)와 과거 아우슈비츠에서 생환한 아버지 블라덱 사이의 현재적 갈등 구조는 끝내 해결되지 않지만, 작가는 『쥐』의 작업을 위해 사이가 결코 좋을 수 없는 아버지를 정기적으로 방문해야만 한다. 두 사람의 사이가 좋을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궁극적인 원인은 앞서 인용하고 있는 『쥐』의 첫 도입부에서 이미 극명하게 드러난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체험을 나에게 최초로 각인시켜준 인물은 우리에게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빅토르 프랑클(Viktor E. Frankl) 박사였다. 그는 이 책에서 죽음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실제로는 가스처형실을 갖춘 유대인 최종해결시설)에 갇힌 수인들에 대해 외부인들은 선입견을 가지기 쉽다고 말한다. 그들은
“죄수들 사이에 불붙는, 생존을 위한 격렬한 투쟁”에 관해 거의 모르고 있으며, 매일 끼니와 자기 자신을 위한, 친구를 위한 무자비한 투쟁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수용소에 갇힌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이 구원받으면 다른 한 명의 희생자가 채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이름이나 자기의 친구를 희생자 명단에서 지우려고 아우성을 쳤다는 사실 말이다. 빅토르 프랑클은  결국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수년간 끌려 다닌 끝에 삶을 위한 투쟁에서 도의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수인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잔혹한 폭력, 도둑질, 심지어는 친구까지도 팔아 넘겼다.


아버지 블라덱이 바로 그런 경험들을 통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전후 세대인 아들 아트와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아버지 블라덱 사이에는 이렇게 경험하지 않으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있었고, 이 두 사람의 간격을 회복하기 어렵게 만든 것은 아트 슈피겔만이 스무 살 때 겪은 어머니 안나(아냐)의 자살이었다. 물론 어머니의 자살이 블라덱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을 묶어주던 하나의 울타리가 무너진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 『쥐』가 단순히 히틀러의 만행을 그림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홀로코스트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는, 좋은 의도를 지니고 있으나 그만큼 그저 그런 교훈적인 유형의 만화가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의도
(그런 의도도 있겠지만)로 그려진 것이기 보다는 아트 슈피겔만이 아버지 세대와의 일정한 단절과 소통, 이해를 위해, 다시 말해 스스로의 정리를 위해 그린 작품이란 느낌이 더욱 강렬하다.


그는 자신과 다른 체험을 가지고 있는 부모 세대와 대화함으로써 끝끝내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았던 아버지 블라덱을 이해하게 되고, 단절을 경험한다. 추측컨대 아마도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성장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아버지 블라덱의 삶에 대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살아온 과정이 너무나 각박했던 이들 가운데 블라덱이 거쳐 온 극단적인 체험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와 흡사한 태도를 지닌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당장 우리의 조부모 세대, 부모 세대 혹은 앞으로 우리들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와 흡사한 이야기를 할지 모른다.


나 역시 생활보다는 생존을 우선해야 했던 체험이 있었고, 이 무렵 내가 즐겨 입에 담던 경구
“강한 자이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한 것이다.”란 경구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말이었다. 일단 살아남는다는 것, 그것은 어떤 비굴이나 치욕, 폭력도 감내할 만한 가치 있는 일로 여겼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와 같은 태도만이 현실적이고, 어른스러운 자세라고 여겼던 것이다. 아픔과 슬픔을 극복하는 냉혹함만이 삶의 진정한 자세라고 여기는 동안, 나는 주변에서 순수나 소박한 낭만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얕잡아 보았고 경멸했다. 그들은 삶의, 현실의 냉혹함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 같은 존재들이라 여겼고, 결국엔 삶의 과정에서 도태될 것이라 믿었다. 아버지 블라덱이 어린 아들 아트에게 했던 말 “친구? 네 친구들? 그 얘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 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와 같이 말이다.


그러나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공개할 필요 없을, 어찌 보면 아우슈비츠를 드러내는데 도리어 군더더기 같은 대목들에서 도리어 진실을 보여주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와 자식의 갈등, 아버지가 청년기에 했던 연애 이야기, 어머니의 자살, 그리고 아버지 블라덱 자신이 유대인이란 이유로 가스실에 보내질 뻔 했던 경험에도 불구하고 흑인종에 대해 지닌 편견들, 마트에 가서 이미 개봉한 음식물을 바꿔오는 인색함 등등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는 블라덱과 아들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로, 그들의 이야기가 지난 한 시대의 과거사가 아닌 오늘에도 이어지는 이야기일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더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잔혹한 시대를 살더라도
“인간의 구원은 사랑으로, 그리고 사랑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빅토르 프랑클이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존립하는 것이다. 나의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러한 사실을 알았다는 것에 조금도 구애되지 않고 그녀의 모습을 관조함에 여전히 내 자신을 송두리째 바쳤을 것이며, 그녀와 나의 정신적 대화는 전과 다름없이 생생했을 것이며 만족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그대의 가슴에 새겨주소서. 그러면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해지리다.” 그는 F. 니체의 말을 인용해 (비록 강제수용소에서의 삶과 죽음의 과정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긴 했으나)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 말은 “살아갈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삶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다. 그렇기에 우리가 삶의 도상(途上)에서 받게 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은 대개 “어떻게”가 아닌 “왜”이다.


아버지 블라덱의 냉정하고, 각박한 심성과 삶의 자세를 우리는 『쥐』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여러 조건들 속에서 그의 기대를 배신했거나 믿음을 버림받았던 무수한 경험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된다. 아우슈비츠의 유대인들이 숱한 배신과 희망의 박탈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것을 어찌 과거의 일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 임금 노예로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채 살아가길 강요당하는 현실에서도 역시 배신과 희생은 반복된다. 그러나 블라덱이 끝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던 까닭은 바로 그의 사랑하는 아내 ‘아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물론 블라덱의 이런 태도를 지긋지긋한 가족주의의 발현이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이 아닌 타인
(가족을 포함해서)과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자만이 타인의 종이 되기를 거부할 수도 있는 법이다. 지금은 비록 아우슈비츠가 인류에게 별다른 교훈을 주지 못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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