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생각? 생각? 생각?

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은이) | 제정임 (엮은이) | 김영사 | 2012-07-19


우리 사회의 ‘멘토’라는 법륜 스님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 단일 후보로 문재인이 아니라 안철수로 단일화되었다면 선거에서 승리했을 거라고 말했다는데, 비록 법력 높은 분의 말씀이긴 해도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아마도 법륜 스님의 말씀에 담긴 속내는 잘해야 민주당이 ‘안철수로 헤쳐모여’ 할 수 있을 만큼의 쇄신을 이룩하길 바란다는 덕담쯤 되지 않을까 싶다.

출마자가 다양한 총선 때 만큼은 아니더라도(총선 때는 선거자금 마련과 후보의 홍보를 위해 게다가 책 한 권쯤 낸 저자로서의 권위가 여전히 유용하다는 판단에서 후보자 개인의 자비 출판이 홍수를 이룬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자 자신이 직접 쓰거나 후보와 관련한 내용을 다룬 책들이 붐을 이루며 출판되는 것이 상례(常例)가 되었다. 물론 이렇게 나온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일반적이진 않았다. 특히 안철수 당시 교수가 제정임 교수와 함께 펴낸 『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는 드물게 대중의 호응을 얻은 책이기도 하다.

‘베스트셀러'를 단순히 많이 팔린 책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말로 하자면 대중으로 하여금 지갑을 열고 책값을 지불하고 싶게 만들 만큼의 매력(대중성과 보편성)을 가진 책이란 뜻이기도 하다. 물론 그 너머에는 남들 다 읽는(혹은 다 구입한) 책을 나만 안 읽었다고 한다면 대화에서 소외될까봐 읽게 되는 다분히 한국적인 현상(왕따)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지난 2012년 7월에 출간된 『안철수의 생각』을 구입한 분들은 대선도 끝난 지금쯤 모두들 이 책을 다 읽었는지 모르겠다.

“저는 지금까지 인생의 큰 전환기마다 ‘내가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에 얼마나 보탬이 될 수 있을까’를 판단 기준으로 삼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런 맥락에서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든, 혹은 직접 나서지 않아도 기성 정치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든, 국민의 열망을 대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책임감을 느꼈어요. 제가 정치에 참여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제 욕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30쪽)

“하지만 저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마다 ‘의미 있고, 열정을 지속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가’의 세 가지만 생각했고 성공 가능성은 고려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같은 입장이고요.” (33쪽)

제목을 누가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때로 어떤 책들은 제목보다 부제에서 더 많은 것을 설명한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부제를 다는 것이지만 『안철수의 생각』에 달린 부제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에서 ‘안철수’의 생각 또는 안철수의 ‘생각’은 ‘우리’로,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미래’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비록 이 시점까지 그는 선거에 참가할지 안할지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지만 이 책을 내는 순간,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에 대통령 선거 출마를 결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정의로운 복지국가’ 혹은 ‘공정한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복지와 정의는 평화가 전제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으니, 남북의 통일을 추구하면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제도 절실합니다. 결국 복지, 정의, 평화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현재의 정치권은 진영 논리에 빠져서 상대의 의견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데, 화합과 소통의 리더십을 통해서 복지, 정의, 평화의 시대적 과제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82~83쪽)

안철수가 생각하는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진영논리’이다. 흔히 안철수를 과거 정치 경력이 없어서 그만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이라 좋아한다고들 하는데 그와 흡사한 맥락에서 안철수의 생각에는 과거(역사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 보인다는 뜻)가 없다. 그의 생각 속에는 어째서 이런 진영논리가 생겨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드물고, 역사적 맥락이 탈색되거나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 대신 등장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믿음’ 같은 이상화된 담론들이다.

“제가 지난해 <경영의 원칙>이라는 책을 썼는데요. 거기에 전쟁과 정치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어떤 분의 설명을 인용했어요. 전쟁과 정치는 적과 싸운다는 점은 같답니다. 그런데 전쟁은 적을 믿으면 안 되는 것이고, 정치는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궁극적인 목적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있다는 기본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적을 믿으면서 싸우는 것, 기본적인 믿음은 가지면서 대결하는 것이 정치라는 얘깁니다. 이런 믿음 위에서 소통의 정치를 추구해야겠죠.”(91쪽)

정치인의 정치적 수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험난한 시대를 살아온 유권자들에겐 참 어려운 일이지만 어쩐지 안철수가 선한 눈매에 어눌한 어투로 말할 때는 설득력을 얻는다. 월터 리프만은 ‘스테레오타입 (stereotype)'이란 개념을 통해 인간의 심리적 지각 과정이 보이는 한 가지 중요한 편향으로 ’보고 나서 정의(first see and define)'하기보다는 “정의하고 나서 본다(define first and then see)'고 했는데, 그래서 정치는 논리 이전에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현실 인식 과정에서 자신의 표준화된, 습관화된, 그리고 미리 정의된 스테레오타입의 강력한 지배를 받게 되므로 직접 관찰보다는 타인의 설명에 높은 타당성을 부여하고, 직접 체험보다는 공상을 더 신뢰하는 경향을 나타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는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다시 말해 ‘희망사항’을 표상한다.

앞서 안철수에게는 과거(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했지만 『안철수의 생각』 중에는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

“저는 국사뿐 아니라 세계사도 필수과목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동물의 경우 주어진 그 순간만 생각하고 반응하지만, 사람은 그전에 일어났던 일과의 맥락(context) 속에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점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세계 시민으로서 국사와 세계사를 모르고 지금 당장 필요한 지식만 익히는 접근방법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197쪽)

좋은 생각이고 동의하지만 문제는 딱 거기까지 만이었다는 거다. 『안철수의 생각』은 300쪽이 채 안 되는 얇다면 얇은 책이고, 이 책이 공약정책집도 아니기에 우리는 이 책 한 권으로 그의 생각(박근혜 당선인이 TV토론에 나와서 한 말로 널리 회자된 “그래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거잖아요.”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을 모두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갈증에 시달린 사람들이 나 말고도 더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 『안철수의 생각』 이후에 『안철수의 생각을 생각한다』거나 『안철수의 진짜 생각』, 그리고 『안철수의 생각과 다른 생각』 같이 마치 생각의 존재론이나, 생각의 인식론을 떠올리게 만드는 거창한 제목의 책들이 연이어 출판되기도 했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 작품의 예술성이라 하기엔 다소 뭣하지만 예술의 중요한 미덕 중 하나는 해석의 확장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미학적으로 보든, 사회과학적으로 보든 예술 작품의 가치('가치'와 '가격'을 같은 말이라고 해석하지는 말자! 이 글에서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이해를 돕기 위한 차원이니까)가 생산 즉시 생산되는 것이라면 예술 작품의 가치는 불변이겠지만 예술 작품의 가격과 가치는 장(場)에 의해 변동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예술작품의 가치를 변동시키는 속성 중 하나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해석의 확장성이다. 다시 말해 시공간에 따라 여러 의미로 변주(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 뛰어난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의미이다. 의미 값이 고정된 작품은 해석의 여지가 좁기 때문에 장이 개입할 여지가 그만큼 줄어들뿐더러 시간과 공간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반감되기 쉽기 때문이다.

안철수 혹은 『안철수의 생각』을 생각하기 위해 이토록 많은 변주(출판물)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안철수의 생각이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한 좋은 생각들로 가득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치는 예술작품처럼 독자(상대)의 해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때로 정치인 스스로 능동적인 선택을 하고, 그에 따라 현실을 해석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은 이것을 ‘시대정신(Zeitgeist)’라고 거창하게 주장하기도 하지만 어떤 정치인도 시대정신이라는 모호한 주장만으로 집권에 성공하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 안철수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 시대(정치)가 만들어 낸 스테레오타입이라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의 가장 큰 딜레마이기도 하다. 그가 현실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해석의 결과에 따라 선택하면 할수록 그의 가치는 점점 더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말이다. 정치인으로서 안철수는 네덜란드의 튤립이 그러했던 것처럼 수많은 거품 속에 피어났다. 이제 앞으로 5년, 그가 거품을 거둬내고도 그만한 역량과 가치를 지닌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보여야 할 시간들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안철수의 생각이 구체적인 미래를 얻게 되지 않을까? 안철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타입인 거죠.”(39쪽)


안철수는 선거 이후에 앞으로도 정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가 만약 이번 선거에서 실수한 것이 있다면 다음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이 책은 인터뷰집인데, 지은이는 안철수이고, 엮은이는 제정임이다. 이 책보다 한 해 먼저 나온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에서도 지은이는 김어준이고, 지승호는 엮은이이다. 지난 2000년에 나온 에릭 홉스봄과 안토니오 폴리토의 『새로운 세기와의 대화』(원제 Interview on the New Century)도 앞의 두 책과 비슷한 구조지만 이 경우 에릭 홉스봄과 안토니오 폴리토는 공동 저자로 대접받는다. 한국 사회(출판계)에서 저자와 엮은이(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어떤 위계적 질서에 놓이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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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