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남자에게 좋아하는 여배우란 캘린더걸처럼 계속 바뀌는 법이긴 하지만, 여배우란 말에서 '여자'를 빼고 '배우'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요근래 배우 중 내게 있어 그런 배우는 "케이트 윈슬렛(Kate Winslet)"이다.





1975년 10월 5일 생이니까, 이제 곧 마흔을 바라볼 나이다. 케이트 윈슬렛을 처음 발견한 영화는 나도 물론 "타이타닉"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의 계보에는 물론 매우 다양한 배우들이 있는데, '오드리 헵번'만큼이나 '캐서린 헵번'을 좋아하고, '캔디스 버겐'을 좋은 배우로 생각하며, 한동안 '미셸 파이퍼'를 참 좋아했다. 물론, 여전히...

미셸 파이퍼가 나온 영화들은 그리 많이 보지도 못했는데,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미셸 파이퍼'만이 여배우 중에서 알 파치노의 카리스마에 대적할 수 있으며 가장 잘 맞는 배우 궁합이다. 두 사람 모두 카리스마가 넘치고, 파괴적이면서도 유리잔처럼 쉽게 상처받는 영혼을 지닌 캐릭터가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또 한없이 처량하고 궁상맞은가 싶으면 동시에 자기 분야의 전문직종 종사자로 변신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캐릭터를 지녔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영화는 "스카페이스"였는데, 이 영화에서 미셸 파이퍼는 알 파치노가 나중에 배신하게 될 보스의 정부(팜므 파탈) 역을 했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몇 편의 영화에서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참 좋았다. 어쨌든 오늘은 미셸 파이퍼 이야기를 하는 날이 아니므로 ... - 하여간 미셸 파이퍼 이야기만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린다능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케이트 윈슬렛이 "타이타닉"에 처음 등장할 때만해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비해 유명하지도 않았고, 워낙 디카프리오 팬층이 두텁고, 열광적이었던 토라 그에 비해 여배우가 너무 밀리는 것 아니냔 평들이 있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알 파치노+미셸 파이퍼'가 좋은 궁합인 것처럼 '디카프리오+캐슬린 윈슬렛'도 좋은 궁합이긴 한데, 알 파치노와 미셸 파이퍼가 서로 막상막하라면, 나는 디카프리오와 윈슬렛 커플의 경우엔 윈슬렛이 좀더 윗길이란 생각이 든다. 디카프리오의 영화를 보노라면 자꾸만 패트릭 스웨이지가 떠오르는데, 아역 출신 배우가 지니는 핸디캡을 디카프리오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과장되고, 넘치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역배우 시절 자신의 이미지를 떨쳐내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국 배우들에겐 미국 배우들에게서는 쉽게 느끼기 어려운 기품이 있는데, 아마도 그건 액센트의 문제도 있겠지만 탄탄한 기본기 때문이기도 할 게다. 케이트 윈슬렛은 조부모대부터 배우의 길을 걸었다고 하니 오죽할까 싶기도... 케이트 윈슬렛은 덩치를 보아도 그렇지만 당당한 스케일이 있다. 아마도 그런 성향이 엿보였기 때문에 "타이타닉"에도 캐스팅되었지 싶다. "타이타닉"은 철저히 재난영화의 스토리텔링을 따르지만 그 안에 담긴 내부의 서사구조는 성장영화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케이트 윈슬렛은 한 여성으로 겉보기에 튼실하고 화려한 부르주아의 삶, 허위와 환멸로 가득찬 "타이타닉" 1등칸의 삶을 과감하게 벗어버린다. 물론 그 과정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의 러브라인이 있지만,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누가뭐래도 케이트 윈슬렛이었다. 그녀가 침몰하는 타이타닉에 갇힌 애인 디카프리오의 손에 채워진 수갑을 도끼로 부숴버리는 장면은 사실 그녀 자신을 옭죄고 있던 족쇄를 부순다는 의미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이후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 배우가 출연작으로 고르는 안목도 있고, 참 훌륭한 배우란 생각을 여러 차례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고픈 영화는 상당히 많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영화 중에서 고른다면 "리틀칠드런(2006)"과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다. 두 영화는 매우 닮은 꼴 영화인데, 두 편 모두 가정 이야기를 다룬 멜로물이다.

퇴근하고서 아내가 저녁을 지을 동안 또는 주말에 집에서 쉴 때 아내에게 개인 휴식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를 데리고 가끔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 나가게 된다. 그곳에 우리 딸 아이 또래의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들은 날 보고 어떤 생각이 들까 싶을 때가 있는데, "리틀 칠드런"이란 영화의 거의 첫 장면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처럼 변호사도 아니고, 우아하고 세련된 차림도 아니지만 ... 굳이 자세한 영화 소개를 하지 않는 이유는 ... 섬세한 스토리라인을 따라갈 필요가 있는 영화라서 그렇다.

둘다 참 좋은 영화이므로, 감상을 권한다. 그렇게 놓고 보니 케이트 윈슬렛은 부르주아지 계급의 유부녀 역할이 참 잘 어울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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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스 쿼텟(Kronos Quartet) - Pieces Of Africa






어제는 편집자문회의가 있었던 데다가 편집위원들이 모두 귀가한 뒤에 한홍구 교수님이 차나 한 잔 하자고 하셔서, 여인들이 있는 카페에 가서 드립커피를 마셨다(정말 드립이더라.  보리차처럼 맑고 투명한, 커피만 마셨다. 믿어라~ 제발!).

요즘 시국 이야기로 시작해 현재의 상황이 지식인(사회)의 소멸로 치닫고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우려까지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집에 돌아가니 12시였다. 만약 예전처럼 파주에 살았다면 더 걸렸을 테지만 지금 우리 집은 인천이니까~ ㅋㅋ

집에 가서 '크로노스 쿼텟(Kronos Quartet)'의 초기 앨범 중 하나인 "Pieces Of Africa"를 오랜만에 들었다. 크로노스 쿼텟(Kronos Quartet)의 이 앨범만 듣노라면 아프리카의 젊은 뮤지션들이 클래시컬한 연주를 한다고 느낄 만큼 아프리카 냄새가 물씬 나는 앨범이지만 이 그룹은 미국의 현대음악 4중주단으로 매우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는 그룹이다.

이들 음악세계의 폭이 하도 넓어서, 가끔은 이 녀석들이 음악으로까지 제국주의를 하는가 싶을 때가 있을 만큼 그 폭이 광대역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지에서 서구 선진 국가들이 '생물학적 탐사(Biological Prospecting)'를 빙자한 '생물해적질Bio-Piracy'을 일삼는 것처럼 이들은 세계 각지의 음악적 전통을 자신들 것으로 가져와 현대음악으로 변주해낸다. 물론, '생물해적질'처럼 악의적으로 말할 성질의 일은 아니다.

K.마르크스가 "양이 질을 변화시킨다"고 했던 것처럼, 가끔은 폭이 깊이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폭 넓게 많이 아는 것[博覽强記]가 항상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때로는 깊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도 나름이다.

최근 지식사회 풍토를 보면 다방면으로 폭이 넒은 것처럼 보여도, 막상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일반 시민만 못한 인식을 보이는 경우도 많은데, 이건 비단 이공계열 지식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계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단 서로 만나질 않고, SNS로만 대화와 소통을 하니 일이 되지 않는 측면도 분명 있을 게다.

어제 한홍구 선생과 나눈 이야기도 그런 것이었다.





어쨌든 크로노스 쿼텟(Kronos Quartet)의 음악은 이처럼 광대역으로 전 세계의 음악적 전통과 자원을 두루 섭렵해 재해석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친다. 그 깊이가 어느 정도 깊이를 가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3세계를 사는 시민이라면 충분히 의심해보아야 할 일이지만 그들은 이런 작업을 제1집 "Winter Was Hard(1990)"부터 해왔다는 사실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란 관념도 궁극적으로는 지역이 아닌가. 난 크로노스 쿼텟(Kronos Quartet)의 이 꾸준한 축적과 탐사의 저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노마십가(駑馬十駕), 둔한 말도 열흘 동안 수레를 끌 수 있다는 뜻으로, 재주 없는 사람도 노력(努力)하고 태만(怠慢)하지 않으면 재주 있는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어제 크로노스 쿼텟(Kronos Quartet)의 음악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http://www.youtube.com/watch?v=VNPn98_9jFM&feature=share&list=PLN83DP26dOxsIMfunwVsaavE3iMiKDI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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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믿어라"
- 윌리엄 E.B. 듀보이스


지금 내 책상에는 삼천리 출판사에서 나온 한 권의 책 "니그로:아프리카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있다. 책을 받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삼천리가 미쳤구나'란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물론 이 말은 나쁜 의미에서 한 말은 아니었다. 이 책의 저자가 '윌리엄 E.B. 듀보이스(William Edward Burghardt Du Bois, 1868~1963)'이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삼천리가 미쳤구나'란 말 속엔 '과연 이 책이 몇 권이나 팔릴까…. 그런데 왜 이 책을 냈을까…. 참 좋은 출판사구나.' 등등의 여러 가지 생각들이 함축되어 있다.  

듀보이스란 이름은 미국의 근현대사, 그중에서도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이름이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이름이다.

그는 1868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그레이트배링턴에서 태어난 흑인(아프로 아메리칸)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을 발표한 것이 1863년 1월 1일의 일이었다. 노예해방이 있은 지 5년 후에 태어나 1895년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고, 이어 피스크대학과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한 뒤 흑인 최초로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애틀랜타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역사학과 사회학, 경제학 등을 가르쳤는데, 1905년 사실상 최초의 흑인민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아가라 운동(Niagara Movement)'을 제창했다. 그는 1903년 "흑인의 영혼(The souls of Black Folk)"을 발표하며, 이전까지 교육을 통한 지위향상을 주장해온 '부커 T. 워싱턴(Booker T. Washington, 1856~1915)'의 온건 노선에 반대했다.

부커 T. 워싱턴은 흑인 민권운동의 '안창호'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노예로 태어난 흑인민권운동 지도자 중 거의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투쟁할 때가 아니다'며 미국 남부 지역의 공공연한 흑백분리 정책 등과 대결을 회피하며 타협했기 때문에 '항복주의 노선'이란 비판을 받았다.  

B.T. 워싱턴의 온건노선에 반대한 듀보이스의 노선은 흑인지식층의 지지를 받았고, 1905년 나이아가라 운동은 1909년 '전국유색인종협회(NAACP)'의 창설로 이어졌다. 그는 1910∼1932년 NAACP의 기관지인 《크라이시스 Crisis》를 편집하면서 흑인민권운동의 기초를 다지는 한편 '범아프리카주의'를 제창했다.

범아프리카주의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인물이 가나의 초대 대통령인 '콰메 은크루마(Kwame Nkurmah, 1909 ~ 1972)'이다. 그는 이른바 '검은 황금(흑인 노예)' 무역의 집산지였던 아프리카 서남부 해안(골드코스트) 출신으로 가나의 독립운동을 지휘하여 1947년 통일골드코스트회의(UGCC)의 서기장이 되었고, 1957년 골드코스트가 가나로 독립하면서 1960년 가나의 초대대통령에 취임한다. 그는 듀보이스로부터 영감을 얻은 '범아프리카주의'를 표방하였는데, 1966년 쿠데타로 실각하여 기니로 망명한다.


콰메 은크루마(Kwame Nkurmah, 1909 ~ 1972)


범아프리카주의(Pan- Africanism)란 백인의 지배에서 탈피해 아프리카의 정치·경제적 연합을 결성하자는 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데, 시몬 볼리바르의 '범라틴아메리카주의'도 이와 비슷한 개념을 추구했다. 사실 범아프리카주의의 기원은 19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그 실질적인 출발은 1919년 윌리엄 듀보이스를 중심으로 파리에서 개최된 제1회 범아프리카회의를 통해서라고 할 수 있었다.

듀보이스는 뉴욕, 파리, 런던, 브뤼셀 등을 중심으로 흑인들과 연대하여 백인과 같은 수준의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운동을 개최했는데, 1930년대 들어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진척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1935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아프리카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국가이자 흑인 왕국) 침략은 범아프리카주의 운동가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고, 전 세계 흑인들에게 범아프리카주의의 필요성을 새삼 부각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개최된 제5차 범아프리카대회에서 듀보이스는 은크루마와 함께 의장직을 맡았다. 범아프리카주의는 서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독립과 민족자결을 위한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범아프리카주의는 조지 패드모어(George Padmore, 1903~1959) 등에 의해 일정하게 공산주의로 경도되는데 그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듀보이스는 인권과 평화, 사회변혁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다른 한편으론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소련의 이익에도 부합하여) 1958년 레닌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듀보이스는 1961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며칠 전(2013년 8월 24일) 마틴 루터 킹 목사 워싱턴 대행진 50주년 기념행사가 NAACP 주도 아래 성대하게 치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후 50주년을 맞이한 듀보이스에 대해서는 부각되지 못한 까닭도 아마 거기에 있으리라.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흑인민권운동의 역사를 기술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마틴 루터 킹 목사나 말콤 엑스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까닭(헬렌 켈러의 생애사가설리번 선생과의 관계라는 초기 역사 기술에 머무르는 까닭도 그녀가 생애 후반기를 사회주의자로 살았기 때문이다)도 거기에 있다. 윌리엄 듀보이스는 1961년 가나의 은크루마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나에 갔고, 그곳에서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가나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가나 아크라에서 정부 후원 아래 백과사전 편찬사업에 몰두하다가 1963년 세상을 떠났다.

이 책 "니그로: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는 단지 미국 내 흑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역사, 백인들에 의해 날조되거나 왜곡된 아프리카와 흑인의 역사, 인종주의가 정치, 윤리적으로는 물론 학문적으로도 결코 올바른 것이 아니란 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하기 위해 쓰인 책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을 1915년에 펴냈는데, 이 책이 나오던 해 미국에서는 D.W.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이 개봉되었다.

* '윌리엄 듀보이스'에 대해 언젠가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에서 다루고 싶었는데 공부는 부족하고, 그와 관련해 읽을 만한 책 한 권이 없어 언젠가는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그의 저작을 직접 만나게 되다니 꿈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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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는 세계 여러 나라 국가들 가운데 가장 잔인한 가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를 혁명 이전의 국가로 되돌려 놓기 위해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프랑스를 침공했고, 프랑스는 혁명을 사수하기 위해 때로는 전파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이 결정된 후인 1792년 4월 25일 스트라스부르에 주둔하고 있던 공병대 대위 루제 드 릴은 스트라스부르 시장인 디트리슈 남작으로부터 군인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는 노래를 하나 작곡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애국심에 충만해 있던 그는 하룻밤 사이에 노래 하나를 작곡하는 데 그 곡이 바로 라 마르세예즈이다. 그런데 스트라스부르에서 작곡한 이 노래에 갑자기 마르세이유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2개월 후 몽벨리에 출신의 프랑수아 미뢰르가 마르세이유의 의용군들과 함께 파리로 행진할 계획이었다. 마르세이유부터 파리까지 800Km를 행군하는 동안 600여명의 의용군들은 목이 터져라 이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있던 파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마르세이유에서 온 사람들이 부른 노래라고 해서 라 마르세예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 의용병들은 유럽 여러 나라의 상비군들에 맞서 조국을 방어하고 마침내 혁명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노래는 혁명의 이상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이 노래가 다시 불린 것은 우리도 얼마 전 영화 <레미제라블>을 통해 보았던 감동적인 장면 1830년 7월 혁명 당시 파리의 바리게이트 앞이었다. 이후 이 노래는 1879년 프랑스 제 3공화국 시절 다시 프랑스의 국가가 된다. 애초 ‘루제’ 대위가 썼던 6절까지의 가사에 나중에 다른 사람이 추가한 7절 가사가 붙은 ‘라 마르세예즈’는 공식행사에서는 1절과 6절만 부른다.  

라 마르세예즈 (La Maseillaise)

나가자, 조국의 자식들아.
영광의 날은 왔도다!
폭군에 결연히 맞서서
피묻은 전쟁의 깃발을 올려라,
피묻은 전쟁의 깃발을 올려라!
우리 강토에 울려 퍼지는
끔찍한 적군의 함성을 들으라.
적은 우리의 아내와 사랑하는 이의
목을 자르러 다가오고 있도다!
무기를 잡으라, 시민동지들이여!
그대 부대의 앞장을 서라!
진격하자, 진격하자!
우리 조국의 목마른 밭이랑에
적들의 더러운 피가 넘쳐흐르도록!

Allons enfants de la Patrie
Le jour de gloire est arrive.
Contre nous, de la tyrannie,
L'etandard sanglant est leve,
l'etandard sanglant est leve,
Entendez-vous, dans la compagnes.
Mugir ces farouches soldats
Ils viennent jusque dans nos bras
Egorger vos fils,
vos compagnes.
Aux armes citoyens!
Formez vos bataillons,
Marchons, marchons!
Qu'un sang impur
Abreuve nos sillons.

내가 갑자기 이 노래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박근혜 정부가 5.18기념식을 위한 새로운 추모곡을 공모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지난 이명박 정권 때 정부는 5.18추모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을 연주시켜 국민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기념과 추모는 결국 기억을 위한 투쟁이다. 올바르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는 멀리 현해탄 건너 일본의 교과서 문제만이 아니다. 바로 오늘 우리 앞에서도 역사 왜곡 시도는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역사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성(진실)을 가지고 오랫동안 추모곡으로 불려오던 노래가 있는데 새로 추모곡을 만들어 이를 대체하려는 시도야말로 역사 앞에 부끄러운 짓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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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구정은 기자의 '할머니를 죽인 것은 누구였나(http://me2.do/FIhV9c4r )'는 좋은 글이다. 제목도 의도했는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기막히다. 미셸 폴라레프의 노래는 5월 광주를 노래한 '오월의 노래' 원곡이기도 했는데....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Qui A Tue Grand-Maman)

Il y avait du temps de grand-maman
Des fleurs qui poussaient dans son jardin
Le temps a passe, seules restent les pensees
Et dans tes mains il ne reste plus rien

Qui a tue grand-maman, est-c’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Il y avait du temps de grand-maman
Du silence a ecouter
Des branches sur les arbres,
Des feuilles sur les branches
Des oiseaux sur les feuilles
Et qui chantaient

Qui a tue grand-maman, est-c’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e bulldozer a tue grand-maman
Et change ses fleurs en marteaux-piqueurs
Les oiseaux pour chanter
Ne trouv’ que des chantiers
Est-ce pour cela que l’on te pleure?

Qui a tue grand-maman, est-c’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Qui a tue grand-maman, est-c’ le temps
Ou les hommes qui n’ont plus l’temps
D’ passer le temps?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예전 할머니 시절에는
정원에 꽃들이 피어 나고 있었어요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는 마음만 남아있지요
그리고 두 손에는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
시간인가요?
아니면 이제 더 이상 세월을 보낼
시간이 없는 사람들인가요?


예전 할머니 시절에는
나무의 가지들과, 가지에 매달린 잎새들과
그 가지 위에서 노래하는 새들의 소리를
들을 만큼의 고요함이 있었어요


불도저가 할머니를 죽였어요
그리고 꽃들을 굴착기로 바꾸어 버렸지요
노래하려던 새들은
공사장밖에 찾을 수가 없었죠
그런 이유로 사람들이
당신을 잃은 것을 그리 슬퍼하는 건가요?


프랑스 샹송가수 미셸 뽈라레프의 <Qui A Tue Grand Maman?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 가 한국에서 5.18광주항쟁을 기린 '5월의 노래'의 원곡이란 건 잘 알려져 있는 편이지만 이 노래가 사실은 프랑스의 한 재개발 지역에서 재개발에 저항하며 자신의 정원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가 목숨을 잃은 Lucien Morrisse라는 이름의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1971년에 만들어진 노래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하다.


http://youtu.be/7a1eNTmIk5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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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유하는 모든 것
-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
제이 월재스퍼 (엮은이) | 박현주 (옮긴이) | 검둥소 | 2013-02-28 | 원제 All That We Share (2010년)




미국의 발명가이자 철학자인 벅민스커 풀러는 "존재하는 현실과 싸우는 것으로는, 결코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뭔가를 변화시키기 위햐서는, 현존 모델을 쓸모 없게 만드는 새로운 모델을 세워라"라고 말했다. 정확히 요즘 한국의 현실을 말하는 듯 하다.

"우리교육"에서 서평을 부탁해서 읽고 있는데, 제목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개럿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이란 오래되었으나 현재까지 보수주의, 신자유주의 논자들의 강력한 근거가 되는 사회과학 논문이었다.

1968년 12월 13일자 『사이언스』에 실렸던 하딘(G. J. Hardin)의 논문은 개인주의적 사리사욕 추구는 결국 공동체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는 주장을 모두에게 공유되고 개방되어 있는 목초지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한다. 일종의 게임이론인 셈인데...

소치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저마다 가능한 한 많은 소를 키우려고 할 것이다. 공유지에 내재된 논리는 비극을 낳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소치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사람들이라면,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암암리에 혹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들 각자는 “나의 소를 한 마리씩 더 늘려 가면 나에게 얼마나 효용이 생길까?”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처럼 개인주의적 사리사욕의 추구가 결국 공동체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주인이 없는 한 목초지가 있을 경우(외부효과) 비용을 들이지 않기 위해 마을 사람들 모두 이곳에 소를 방목하여 풀을 먹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이 목초지는 황폐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소유권 구분 없이 자원을 공유할 경우 나타나는 사회적 비효율의 결과를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가가 경제활동에 개입해 통제하거나 개인에게 소유권을 줘 개인이 관리하도록(사유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우리에게 남을 희생시켜서라도 끊임없이 자기 이익과 권리의 극대화를 추구할 경우, 결과적으로 자신을 포함한 공동체 전부가 피해를 입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 하딘이 처음 이런 논지를 펼칠 때의 본 뜻은 '사유화(우리나라의 경우엔 '민영화'라는 언어 유희로 포장되고 있으나)' 보다 공동체의 효율적 관리에 방점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자들의 사유화 정책의 강력한 이론적 논거가 되었다.

이 책 "우리가 공유하는 모든 것 -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그것에 대한 약간은 때늦은 백신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책을 읽으며 내가 느끼는 문제점 중 하나는 싸이의 말춤, 시건방춤 처럼 이런 논리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좀더 쉬운 말로 딱 집어주는 그럴 듯한 슬로건이 필요하다는 거다. 지난 선거에서도 그렇고, 번번이 한국의 진보는 이 부분을 잘 하지 못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주었던 인간미와 매력, 그리고 손쉬운 이해 같은 ....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04036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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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지난 금요일 울산 선생님들 모임에서 강의를 마친 뒤 몇몇 선생님들과 저녁 식사를 했어요. 그 자리에서 각자 궁금한 걸 제게 물었는데 한 선생님이 제게 "연을 쫒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와 관련해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해 참고할 만한 자료나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 몇몇 책을 추천해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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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프가니스탄을 다룬 영화로는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칸다하르"를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어쩌면 벌써 보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슬람, 특히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우리나라는 지역학 연구가 아직 미진한데다 지역학 연구의 대부분이 경제 중심적이거나 아니면 문학 작품 소개 위주라서 사실 아프가니스탄을 다룬 본격적인 저작을 찾기가 쉽지 않은 편입니다만 그 중에서도 추천드릴 만한 책으로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계신 이주형 선생이 쓰신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 사라진 바미얀 대불을 위한 헌사"가 있습니다.

아프간의 탈레반들이 고대 불교미술의 진수라 할 수 있는 바미얀 석불을 파괴한 사건은 국제적으로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는데요. 고고미술을 전공한 이주형 선생에게도 놀라운 충격이었을 겁니다. 이 책은 1부, 2부로 되어 있는데 전반부는 미술(문화)사적인 접근이고, 후반부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습니다. 별도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다룬 책이 별로 없다는 점을 고려하시면 이만한 책이 없을 듯 합니다.

앞서의 책이 다소 전문적인 통사에 가깝다면 디디에 르페브르와 에마뉘엘 기베르가 지은 "평화의 사진가"는 만화와 사진이 어우러진 책으로 좀더 읽기 쉬운 책입니다. "앨런의 전쟁 - 제2차 세계대전으로 송두리째 바뀐 소년병 코프의 인생 여정"의 작가이기도 한 에마뉘엘 기베르의 그림과 디디에 르페브르의 사진을 통해 당시 국경없는 의사회와 합류해 함께 활동했던 기자의 귀환기를 다루고 있지요.

서구인의 시선으로 그려졌다는 한계는 있겠으나 현장의 이미지와 직접 체험담이란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은 1980년대 후반, 그러니까 소련과 아프가니스탄이 전쟁을 치르고 있던 시점을 기록한 것이므로 전체적인 역사를 조망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크리스토프 드 퐁피이의 "판지셰르의 사자, 마수드"는 소련과의 투쟁을 이끌었던 아프간 북부동맹 사령관 마수드를 중심으로 그가 소련과의 투쟁을 어떻게 이끌었으며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간 내전 당시 미국과 북부동맹, 탈레반 간의 내전 상황들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마수드는 당시 아프간의 중요한 민족지도자 중 한 명이었지만 결국 암살당합니다. (물론 누가 암살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저자는 아마도 미국에게 호락호락한 정치지도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암살당할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해방 정국 무렵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들 처럼 말이죠.)

아프간 문제를 세계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 있어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 정치지리의 세계사"란 책이 아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곳을 찾아가기 위해 지도를 보면 대략적인 감이 오는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을 차지하기 위해 열강들이 어째서 치열한 쟁투를 벌이는지 지도를 펼쳐보면 이곳이 얼마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인지 매우 쉽게 보이기도 하거든요. 만약 꼭 한두 권만 추천하라고 하신다면 이주형 선생의 책과 이 책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정치지리의 세계사"를 추천드립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024200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22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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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사마천의 "사기"를 모두 읽는 사람이 있긴 있을까? 드물긴 하지만 간혹 있긴 하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읽어둔 "사기"에 대한 책들을 또 구입한다. 가끔 이런 부류의 열전들을 폄훼하거나 깊이 있는 책이 아니란 식으로서 서평을 써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부류의 독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부류에 속하는지 미처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어렵게 글을 쓰면 대중적이지 못한 저작이라고 비난하고, 대중적인 수준으로 글을 쓰면 이번엔 깊이가 없다고 비난한다. 예전에 나도 그런 독자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추천하는 책은 "처음 만나는 우리 인문학"이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매우 좋게 읽었고, 저자의 박식함과 깊이에 감탄했다. 그런데 A서점의 리뷰들(그리고 별점을 보니, 내가 그 서점에서 리뷰어로 활동할 당시에도 이런 식의 별점 시스템을 비판한 적이 있는데, 비판했던 이유는 이 시스템이 그만큼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에 비해 간혹 말도 안 되는 우스운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을 읽어보니 앞서 이야기했던 잘못을 범한 리뷰들이 상당수였다고 생각한다.

저자인 김경윤 선생에 대한 소개를 보니 아마도 내또래가 아닐까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사 주신 한국전래동화선집과 어린이 세계문학전집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재미나게 읽은 책은《소년중앙》, 《새소년》, 《어깨동무》 같은 어린이 잡지였지요. 청소년기에는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 주며 간식도 많이 얻어먹었어요. 그때 막연하게‘나는 커서 작가가 될 거야’라고 생각했지요. 대학 시절에는 문학을 전공하며 시나 소설도 읽고 동서양의 고전을 많이 읽었어요.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나는 이제부터 결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거든요. 덕분에 글도 쓰고, 책도 여러 권 내게 되었어요. 그리고 도서관이나 학교, 지역 단체에서 인문학 강의도 하고 있지요. 지금은 그동안 읽은 책들을 모아 일산에서 자유청소년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어요."

상재해둔 저서가 9권에 이르는 것을 보면 그간 저술활동도 활발히 해온 편인데 그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상당히 아낄 만한 책에 들어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저술들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반해 이 책은 성인들을 위한 본격적인 교양서의 부류에 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교양'을 쌓는 일은 매우 어렵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교양이 세계의 교양이 되지 못했고,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양이란 고전 시대에는 중국의 교양을 의미했고, 현대에 와서는 영미를 중심으로 한 서구의 교양을 의미한다. 다소 거칠게 말해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고, 그것만 달달달 외워서 무슨 이야기할 때마다 한 구절씩 말해도 교양 있는 척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논어나 중용 정도만 제대로 공부해도 그 비슷한 시늉을 낼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교양이란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멀리 달려야만 하고, 그래봐야 이탈리아 유학갔다 돌아와 같은 한국인들 앞에서 노래 자랑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폄훼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래봐야 어차피 우리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고 내가 국수주의자라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야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교양이 서구나 중국의 그것보다 더 많이, 더 넓게 헤아릴 수 있는 것이 될 가능성은 열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와 흡사한 측면에서 여성성을 남성성에 비해 높이 평가하는데 그 이유는 여성성이란 것이 결국 사회적 약자의 위치를 오랫동안 경험하면서 체득된 것이기에 좀더 개방적이고, 온순하며 화합의 정신을 담아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보아도 즐겁다고 영어권 아이들 만나면 쏼라대는 소리를 한 마디도 제대로 못알아듣겠지만 아시안잉글리쉬 내지는 비영어권 서구인들과의 대화는 영어로도 충분히 가능하더라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어쨌든 이 책은 상당히 매력적인데 그 이유는 이미 우리 인문학을 연구한 여러 학자들, 저자들의 저서를 김경윤이 상당히 폭넓게 꼼꼼하게 씹고 발효시켜 보통 사람들도 읽고 소화하기 쉽게 풀어내고 있으며 거기에 저자 자신의 사유도 함께 녹여냈기 때문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좋은 책이고, 아까운 책인데 그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안타까운 책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권한다.


* 다만, 편집자로서 이 책의 표지 디자인은 잘못되었단 생각이 든다. "처음 만나는 우리 인문학"이란 책 제목 답게 표지에 문고리를 하나 그려놓고 거기에 저자의 이름을 문패처럼 달아놓았던데 문고리 이미지가 아파트 실내 문고리처럼 서양식 문고리였다.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이 책의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정, 문고리 디자인을 이용하고 싶었다면 중국식도, 서양식도 아닌 한국식 미닫이 문고리를 했어야 의미가 정확하게 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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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별로 좋아하는 저자도 학자도 아닌 사람이지만 그가 다루고 있는 분야가 흥미로운 탓에 어쩔 수 없이 읽게 되는 저자들이 있는데, 내 경우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이다. 그에 대한 소개다.

"세계사적 전환의 시점에서 최근 경제 위기를 예측하면서 국내외 언론에서 활발한 조명을 받았다. 폴 크루그먼과 조지 프리드먼의 최대 경쟁자로 꼽힌다.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용어로 중국과 미국의 공생관계를 설 명해냈으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관한 수정주의 시각으로 유명하다. 그는 1964년 글래스고에서 태어나 1985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했으며, 현재 하버드 대학 역사학 교수이자 비즈니스 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옥스퍼드 대학 지저스 칼리지와 스탠퍼드 대학의 후버 칼리지 선임 연구교수도 겸하고 있다.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올랐다. 1987년 저널리스트인 수잔 더글라스와 결혼했다.

영국 B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Ascent of Money’의 진행을 맡으면서 2007년부터 시작된 금융 위기의 실체와 주식시장의 폭락 원인을 파헤쳐 큰 반향을 일으켰다(한국에서는 KBS 2TV에서 <돈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주요 저서로 <제국>, <현금의 지배>, <종이와 쇠>, <실제의 역사>, <전쟁의 연민>, <콜로서스>, <금융의 지배>, <하이 파이낸셔>,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 등이 있다. "



이쪽 방면의 저자 소개들이 대체로 뭔가 거창하다. 이 출판사의 저자 소개에 따르면 니얼 퍼거슨은 폴 크루그먼이 조지 프리드먼과 맞짱뜰 수 있는 정도의 학자로 자체 평가(?)하고 있는데 그 사실 유무야 내가 이 방면 사람은 아니지만 뭔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저자 소개 같은 느낌은 피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사람에 대해서 좀 깬다, 아니 많이 깬다고 느낀 이유 중 상당 부분은 민음사에서 펴낸 "증오의 세기"란 책에도 원인이 있었다. 이쪽 방면의 책들은 거의 빼놓지 않고 쫓아가려고 하는 편인데... 좀더 심하게 말해서 나는 이 책을 읽고 욕지기까지 느낄 정도로 니얼 퍼거슨에 대해 화가 났었다.

그 이유를 구구절절 쓰고 싶은 마음조차 별로 없는데 마침 내 심정과 흡사한 이유를 댄 서평이 있어서 링크(http://blog.aladin.co.kr/pressian/4602354)를 걸어본다. 이 책에 대해 상당수 독자들이 별 넷에서 다섯을 주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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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필요하다면 나는 이상을 위해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쿠누에서 태어난 넬슨 만델라는 1944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합류하면서 정치인이자 법조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2년 그는 흑인을 차별하는 남아공 백인 정부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반대하다가 체포되어, 파괴행위와 관련해 네 가지 혐의로 기소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전 세계에서 그에 대한 석방 여론이 일면서 1990년 2월 11일 풀려났고, 1993년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F.W.데 클레르크와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듬해에는 흑인과 유색인종들에게 주어진 남아공 최초의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에 대한 가장 큰 업적은 무엇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협상을 통해 백인들에게서 권력을 이양받았으며 국민의 단합을 이룩해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그가 전격적으로 중재에 나서기 전까지 불가능해보인 일이었다. 다음의 인용문을 그가 피고석에 서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말했던 매우 긴 진술(1만 1,000단어가 넘는다) 중 극히 일부이자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인 넬슨 만델라의 쾌유를 빈다.

"나는 평생 아프리카 사람들의 이 싸움에 헌신해 왔습니다. 나는 백인 지배에 맞서 싸워왔을 뿐 아니라 흑인 지배에도 맞서 싸워왔습니다. 나는 모두가 함께 조화롭게 생활하면서 평등한 기회를 누리는 자유로운 민주주의 사회의 이상을 소중하게 여겨왔습니다. 그 이상을 위해 살면서 그 이상을 달성하는 것이 나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나는 이상을 위해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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