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의 여왕

 

- 신지영

 

무릎 사이에
가죽 조각을 끼고
하나하나 이어 붙이다 보면
어둠이 달려와
하늘은 검은 망토를 둘러요

 

깜깜한 밤이 되면
해님을 꿰먀서 하늘에 붙이고 싶어요
더듬더듬 바늘구멍 찾다보면
너덜너덜 캄캄한 웃음이 떨어질 거 같거든요

 

실을 당겨서 휘어진 손가락에
지문은 없어요
잃어버렸다고 울진 않아요
내 지문은 상표보다 선명하게
축구공에 찍혀 있으니까요

 

오늘도 바늘은
서른 두개의 오각형과 육각형 조각을 꿰매서
축구공을 만들어요
매일매일 천육백이십 번의 바느질은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이어 붙여요

 

내가 만든 축구공이
골대를 통과해
축구장 가득
사람들의 함성을 터뜨릴 때
어느덧 나는 바느질의 여왕
사람들 마음을 한 조각도 놓치지 않고
하나로 이어 붙여요


출처: "넌 아직 몰라도 돼 - 청소년을 위한 아주 특별한 시집" l 바다로 간 달팽이 4 - 신지영 (글) | 박건웅 (그림) | 도서출판 북멘토 | 2012-11-26

 

 

* 사실 저는 이 책을 모두 다 읽어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위에서 제가 소개하고 있는 시와 삽화만 보더라도 여러분은 이 시집이 어떤 내용의 어떤 책인지 금방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살짝 펼쳐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이렇게 우리 사회의 아픈 문제를 이야기하는 청소년 시집도 가능하구나란 것이었고요. 두 번째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담긴 시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고요. 세  번째는 박건웅 선생이 이렇게 아름다운 삽화도 그려낼 수 있는 분이었구나 하는 사실에 놀랐어요.

 

제가 말씀 드린 세 번째 이유란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박건웅 선생의 팬이기도 할 텐데요.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제가 본  박건웅 선생의 그림책들은 대체로 무척 아프고 슬픈 그래서 어두운 그림체의 것들이었거든요. 예를 들어 "삽질의 시대", "나는 공산주의자다", "노근리 이야기" 같은... 부끄럽게도 박 선생의 삽화 일러스트 작업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가 이렇게 아프고 아름다운 삽화들도 하시는구나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수록된 시들은 하나같이 사회적인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위의 '바느질의 여왕' 같은 경우도 축구공과 아동노동의 상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한 편의 시와 한 편의 삽화 그리고 각각 주제에 해당하는 뒷이야기랄까요. 이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짤막한 에세이 한 편이 같이 실려 있습니다.

 

학교나 가정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문학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도록 잘 배려해서 만든 시집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살아있는 글쓰기(문학)' 교육의 교재로 삼기에 참 좋은 책이란 뜻이죠. 밑의 글은 이 글에 수록된 글은 아니고, 제가 쓴 글입니다. 산문도 있는 그대로 옮겨오면 이해가 좀더 편하겠지만 그건 나중에 각자 책을 통해 직접 보시는 편이 더 좋을 듯 하고요. 밑의 글은 제가 2002년 월드컵 무렵에 쓴 글인데 마침 이 시와 관련해 함께 읽으셔도 좋을 듯 해서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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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Fevernova의 비밀
어떤 학자는 말하길 "축구는 현대의 종교"라고 하더군요. 원래 종교에는 크게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하나는 도덕적 정화, 다른 하나는 주술적 엑스터시(ecstasy)를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근대에 이르러 "신은 죽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종교의 다양한 기능 중 주술적 엑스터시 부분은 많이 약화되는 대신 도덕적 정화 기능에 주력하게 되었죠. 축구는 이런 종교가 상실한 주술적 엑스터시라는 부분을 대체할 만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도 일리가 있는 것이 다 같이 하나의 둥그런 물체(축구공)를 쫓아가며 열광하는 광경을 보면 흡사 무슨 종교적 제의라도 치르는 듯 보입니다. 고대 잉카문명에서는 신에게 바칠 인신 제물을 선택하기 위해 현대의 축구와 비슷한 경기를 치르곤 했다고 하니 축구의 제의성은 더욱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축구의 역사를 대변하는 산 증인. 축구에 있어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물건인 축구공의 역사와 그 뒤에 숨겨진 비밀들을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죠. 현재의 축구공 모양이 만들어진 것은 1872년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규정을 만들어 가죽공의 시대를 시작하면서부터 였습니다. 축구의 유래에 대해서는 각 문명권에서 제각각의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만큼 축구라는 경기가 원시적인(?) 단순한 룰에 따른 경기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으며 반대로 현대 축구의 열광이 어째서 가능한가를 설명해주는 사례입니다. 어쨌든 현대 축구의 창시자는 분명 영국이었습니다. 그렇게 축구공에 대한 최초의 규정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우리들도 잘 아는 소나 돼지의 오줌보 혹은 기타 등등의 여러 물체들이 축구공의 대용품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제가 20살 무렵 막노동판에서 일할 때 그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 오야지 - 일본말입니다 - 들이 돈을 모아 돼지 한 마리를 잡은 적이 있는데, 그 중 어떤 분이 돼지 오줌보를 이용해 축구공을 만들어서 함께 차고 놀았던 적이 있습니다. 오줌보가 생각보다 질긴 놈이더군요.)

 

1872년 축구공에 대한 최초의 규정이 만들어진 뒤 1963년부터 FIFA가 월드컵 공인구라는 제도를 만들어 매 대회 때마다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축구공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최초의 공인구는 '산티아고'. 그후 축구공 만드는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여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의 '탱고 에스파냐'부터는 완전 방수 기능의 축구공이 만들어졌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부터는 100% 인조 가죽공인 '아즈테카'가 만들어졌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신태틱 폼' - 미세한 공기방울을 축구공의 표면에 규칙적으로 배열하는 첨단 과학 기술 - 을 동원하여 상대적으로 수비 축구가 되어가고 있는 현대축구의 재미를 증가시키기 위해 축구공의 반발력과 스피드를 극대화하는 축구공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든 기술의 최종 집결체가 바로 이번 2002년 월드컵에 사용되는 '피버노바'인 것이죠.

 

월드컵 공인구에 숨겨진 비밀 - 아동노동의 눈물

세계 유수의 스포츠 물품 제조 업체인 미국의 나이키(Nike)사의 창업자가 자신의 모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최근 그 창업자는 자신의 모교에 엄청난 액수의 학교 발전기금을 희사했기 때문에 열렬한 환영을 받으리라 기대하고 자신의 학교를 방문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야유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제3세계의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 아동노동 등을 통해 고수익을 창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올해 국제노동기구(ILO)는 "현재 전세계 2억5천만 명의 아동이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적어도 6천만 명은 광업과 매춘 등 극한노동에 시달린다"며 "가혹한 아동노동 철폐운동은 경기규칙을 어기는 선수에게 레드카드를 주는 축구정신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축구용품에 아동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는 뜻의‘비(非) 아동노동(child labor free)’라는 로고를 붙이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도 과연 그런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1996년 FIFA(국제축구연맹)가 FIFA 라이센싱으로 생산되는 축구공과 용품에 이용되는 노동관행과 관련한 기준에 동의한 이후인 1998년에도 프랑스 월드컵 공인축구공 ‘트리콜로’가 아디다스(Adidas) 파키스탄 공장의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어린이들의 고사리같은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져 당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유엔 아동보호기금(UNICEF)과 국제노동기구(ILO)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진상조사에 나서 아디다스는 거액의 아동보호기금을 기부하고 공개해명을 하는 등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최근 FIFA는 2002 월드컵에서 사용될 모든 축구공들은 파키스탄 시알코트 지역의 합법적 생산처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공식발표했다. 또한 축구공과 기타 관련 물품들이 현행 근로기준을 충족시키는 조건에서 생산되고 있음을 모니터하는 체계를 계속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FIFA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불행히도 그리 희망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제민주연대에서 발간되는 <사람이 사람에게> 3.4월호를 살펴보면 파키스탄의 시알코트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되거나 혹은 공식 감사를 거치지 않은 비합법적인 생산처에서 생산된 축구공들이 섞여 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와 관련된 <사람이 사람에게> 강은지 객원기자의 기사 내용입니다.

 

2002 월드컵 개막을 5개월 앞둔 지난 1월 17일, 인도 뉴델리에서는 ‘월드컵의 그늘에 있는 아동노동’이라는 주제로 한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서는 최근 인도에서 조사한 아동노동의 현황을 담은 사진과 사례들이 소개되었는데 그 내용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인도와 파키스탄 지역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축구공을 바느질하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10cm길이의 바늘을 들고 열심히 축구공을 꿰매고 있던 11살 먹은 소년은 “축구요? 한번도 해 본 적 없어요”라며 시큰둥하게 답했다. 또 한 소녀는 “월드컵이 열리면 그 축구공들도 파키스탄이나 인도에서 만들 거 아니냐”며 일거리가 많아질 것을 기뻐했다. 아이들의 손에 들려있는 오각형과 육각형의 조각들에는 버젓하게 ‘비(非) 아동노동(child labor free)’이라는 로고가 붙어있다. 

 

전 가정이 축구공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지역 스포츠 용품 공장에서 가정으로 하청을 주는 중개업자 역할도 하고 있는 파키스탄의 모한 랄(Mohan Lal) 씨의 증언은 더 직접적이다.

 

“우리가 만든 2002 월드컵에 사용될 물건들은 이미 다 배에 실었어요. 월드컵 로고 바느질에는 물론 아이들도 동원되었지요.”

 

아동노동과 세계평화
미국의 세계 패권 질서 확대의 와중에 분쟁에 휩쓸린 대테러 전쟁 지역 및 오랫동안 지역 분쟁에 시달려온 지역에서 아동의 강제 노동과 소년병 차출 문제는 우리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심각한 정도의 것입니다. UN의 통계에 따르면 매년 30만 명의 아이들이 정규군이나 무장 반군 집단에서 총알받이가 되고 있으며, 지난 10년 동안 전쟁으로 살해된 아이들은 200만 명, 불구자가 된 어린이들은 600만 명, 전쟁고아는 100만 명, 난민 어린이들은 1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심각한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도 약 1천만 명에 달하며 지금도 매달 800명의 어린이들이 지뢰를 밟고, 죽거나 발목 등 신체 일부가 절단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동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숫자가 2억 5천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2002년 월드컵을 우리 민족의 국운 상승의 기회로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이들이 손수 한땀 한땀씩 피를 흘리며 새겨놓은 월드컵 로고를 발로 차면서 열광하며 그 아이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들 중 누구도 더러운 땅을 여의고 깨끗한 땅을 밟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월드컵을 바라보며 흥겨움에 들떠 축구공 하나 사달라고 할 때 그 축구공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알려주어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피땀에 젖은 축구공을 차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들이 "부자 아빠를 꿈꾸는" 동안 거리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200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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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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