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마치 긴 골짜기와도 같아서, 어디로 굽어들든 완전히 새로운 경치를 보여주는 굽이치는 계곡이다."

언젠가는 그에 대해 글을 써보리라 마음 먹고는 있지만 J.R.R.톨킨에 비해 좀더 기독교적인, 아니 기독교인의 본보기 같은 인물이라 C.S.루이스에겐 좀더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기독교인을 부정하거나 싫어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내게는 좀더 이해하기 어렵고, 복합적인 인물로 여겨진 탓이다). "나니아연대기"의 작가이자 현 대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론가이자 저술가 중 한 명이었던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1.29 ~ 1963.11.22)는 아내 조이 데이빗먼(Joy Davidman)과의 애틋한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옥스포드대학 교수이자 이미 유명한 소설가. 기독교 변증법 이론가였던 C.S.루이스에게 1950년 미국의 한 여성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C.S.루이스보다 16살이나 연하의 여성으로 이름은 조이 데이빗먼이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 자유분방한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학그룹의 일원으로 소설가 빌 그레셤(Bill Gresham)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 그리고 시인이었다. 빌 그레셤의 알콜 중독 등 여러 이유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고, 부부는 잠정 별거 상태에 있었다. 1946년 무렵 조이는 기독교로 회심하게 되었는데, 루이스의 저작이 영향을 미쳤다. 조이는 1950년부터 루이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의 편지 교류는 시인이 소설가에게 띄우는 지적 교류의 형식이었다.

1952년 9월 루이스와 조이는 처음으로 만났다. 조이는 이듬해 두 아들을 데리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이주했다. 조이가 빌 그레셤과 이혼한 것은 이듬해인 1954년이었다. 두 사람이 우정을 넘어 본격적인 만남을 시작한 것은 이 무렵의 일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서냉전이 시작되면서 영국 정부는 과거 마르크스주의자 전력이 있는 조이의 비자를 연장해주지 않았다. 조이는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루이스는 조이의 가족이 영국 시민권을 얻게 해주기 위해 법적인 혼인 신고를 하기로 했다. 쉰 살이 넘도록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를 지켜봐왔던 루이스의 친구들 중에는 두 사람의 혼인 신고를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것이 곤경에 처한 조이를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1956년 10월 조이가 골수암으로 쓰러졌다. 의사는 조이의 수명이 몇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선고했지만 C.S.루이스는 그제서야 자신이 조이를 단지 친구가 아닌 한 인간으로, 또 한 여성으로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고 깊은 충격에 빠졌다. 루이스의 어머니도 그가 어렸을 때 암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그의 충격과 슬픔은 더욱 컸다. 1957년 3월 21일, 루이스는 암에 걸린 연인이 입원한 병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때 그의 나이 58세였다. 루이스는 사랑하는 아내의 고통을 자신에게 덜어달라는 기도를 했고, 기적처럼 아내의 병세가 호전되었으나 동시에 그의 다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나 루이스는 이 일을 감사하게 여겼다. 자신의 고통으로 인해 그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4년간 두 사람은 가장 행복하고 슬픈 시간들을 보냈다. 1959년 골수암이 재발한 조이 데이빗먼 루이스는 이듬해인 1960년 7월 세상을 떠난다.

기독교인으로 하느님을 원망하며 깊은 실의에 빠졌던 C.S.루이스는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조이와 사별한 후 인간의 상실과 성숙, 슬픔을 담은 저서 <헤아려 본 슬픔>을 N.W. 클러크라는 가명으로 펴낸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502085&start=s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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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촬영한 알베르 까뮈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는 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 오랑에 페스트가 들이닥치며 시작한다. 시 당국에 의해 도시는 폐쇄되었고 사람들은 작은 도시에 갇혀 스스로의 힘으로 죽음과 맞서 싸워야 한다.

취재를 위해 오랑에 왔다가 갇혀버린 기자 랑베르는 파리에서 기다리는 아내를 위해 불법이라 할지라도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도시에서 탈출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찾는다. 어느 날, 드디어 그를 태우고 오랑을 탈출시켜줄 배편을 구한 랑베르는 부두에 나갔다가 마음을 되돌린다.

심경의 변화를 느낀 랑베르는 오랑을 탈출하는 대신, 도시에 남아 자신도 페스트와 함께 싸우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페스트(죽음)와 맞서 싸우는 의사 리유에게 자신은 이제 오랑을 떠나지 않기로 했다는 결심을 밝힌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리유는 그의 결심을 듣고 차갑게 말한다.

"그러나 리유는 몸을 일으켜 세워 앉으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행복을 택하는 것이 부끄러울게 무어냐'고 말했다."

그러자 랑베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한국전쟁 이후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힌 외국소설 중 하나라고 하는데 이 소설이 전후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끼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헤아릴 길은 없다. 다만, 작가 한승원은 알베르 까뮈의 이 소설이 "독일과의 전쟁과 독일군의 점령 속에서 산 적이 있는 카뮈의 그 소설은 《이방인》이 그렇듯이 일종의 전쟁과 비슷한 상황 소설이다. 가령 광주민중항쟁 당시 계엄군에 의해 시의 외곽으로 나가는 모든 문을 차단해 버렸을 때, 그 안에 갇혀 사는 이런저런 인간군상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이 소설 <페스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목 중 하나는 류와 타루가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말하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뿐이죠."

"늘 그렇죠. 나도 그걸 알아요. 그러나 그것이 싸움을 멈춰야 할 이유는 못 됩니다."

"물론 이유는 못 되겠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이 페스트가 선생님에게는 어떠한 존재라는 게 상상이 갑니다."


"알아요. 끊임없는 패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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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가운데 어느 문장에서 꽂힌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나는 그를 좋아했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의 일이니까. 요즘엔 그의 책을 다시 꺼내보는 일도 거의 없지만, 만약 그가 그 무렵 내 마음을 끌어들일 것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그의 위악과 위선이 빚어내는 신물나는 이중주에 젖어 무심결에 이건 '내 얘기같다'가 아닌 '내 얘기다'로 느낀 대목들이 자주 있었기 때문일 게다. 존 포드에게 있어 존 웨인이 페르소나라면, 마틴 스콜세지에게 로버트 드니로가 그렇다면,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제임스 스튜어트가 그렇다면.... 독자로서 또는 글쟁이로서 내가 내 이야기를 사소설처럼 엮어갈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 다자이 오사무에게 기인한다.

언젠가 나는 A서점의 서재 이벤트로 "욕해달라"는 자학이벤트를 벌여놓고 사람들 말하는 걸 가만보니 누군가 내가 예전에 여러 영화 캐릭터들을 들먹이며 "이건 정말 나다"라고 했던 나의 주장에 거의 전혀 동감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에도 그런 대목이 있다.

그의 모든 행위를 '~ 척 하다'로 받아들인 세상 사람들에 대한 그의 하소연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은 대목이 있다. 이해 받지 못한다는 건, 굳이 본인에게만 슬픈 일은 아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자도 똑같이 슬퍼할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우주가 거절당한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우주가 서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사라져간 것이니까.

이건 누굴 탓하기 위한 건 아니다. 사랑도 소멸한다. 질량을 잃은 미소블랙홀처럼........증발해버리는 것이다.

중력이 무한대가 되면, 모든 관계의 존재감은 파괴된다. 부피는 제로, 밀도는 무한대로 증가할 때 그 사이에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 이 말은 지나친 자기애와 자기혐오 사이에 성립가능한 관계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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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의 여왕

 

- 신지영

 

무릎 사이에
가죽 조각을 끼고
하나하나 이어 붙이다 보면
어둠이 달려와
하늘은 검은 망토를 둘러요

 

깜깜한 밤이 되면
해님을 꿰먀서 하늘에 붙이고 싶어요
더듬더듬 바늘구멍 찾다보면
너덜너덜 캄캄한 웃음이 떨어질 거 같거든요

 

실을 당겨서 휘어진 손가락에
지문은 없어요
잃어버렸다고 울진 않아요
내 지문은 상표보다 선명하게
축구공에 찍혀 있으니까요

 

오늘도 바늘은
서른 두개의 오각형과 육각형 조각을 꿰매서
축구공을 만들어요
매일매일 천육백이십 번의 바느질은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이어 붙여요

 

내가 만든 축구공이
골대를 통과해
축구장 가득
사람들의 함성을 터뜨릴 때
어느덧 나는 바느질의 여왕
사람들 마음을 한 조각도 놓치지 않고
하나로 이어 붙여요


출처: "넌 아직 몰라도 돼 - 청소년을 위한 아주 특별한 시집" l 바다로 간 달팽이 4 - 신지영 (글) | 박건웅 (그림) | 도서출판 북멘토 | 2012-11-26

 

 

* 사실 저는 이 책을 모두 다 읽어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위에서 제가 소개하고 있는 시와 삽화만 보더라도 여러분은 이 시집이 어떤 내용의 어떤 책인지 금방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살짝 펼쳐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이렇게 우리 사회의 아픈 문제를 이야기하는 청소년 시집도 가능하구나란 것이었고요. 두 번째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담긴 시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고요. 세  번째는 박건웅 선생이 이렇게 아름다운 삽화도 그려낼 수 있는 분이었구나 하는 사실에 놀랐어요.

 

제가 말씀 드린 세 번째 이유란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박건웅 선생의 팬이기도 할 텐데요. 저도 그렇고요. 하지만 제가 본  박건웅 선생의 그림책들은 대체로 무척 아프고 슬픈 그래서 어두운 그림체의 것들이었거든요. 예를 들어 "삽질의 시대", "나는 공산주의자다", "노근리 이야기" 같은... 부끄럽게도 박 선생의 삽화 일러스트 작업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가 이렇게 아프고 아름다운 삽화들도 하시는구나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수록된 시들은 하나같이 사회적인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위의 '바느질의 여왕' 같은 경우도 축구공과 아동노동의 상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한 편의 시와 한 편의 삽화 그리고 각각 주제에 해당하는 뒷이야기랄까요. 이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짤막한 에세이 한 편이 같이 실려 있습니다.

 

학교나 가정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문학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도록 잘 배려해서 만든 시집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살아있는 글쓰기(문학)' 교육의 교재로 삼기에 참 좋은 책이란 뜻이죠. 밑의 글은 이 글에 수록된 글은 아니고, 제가 쓴 글입니다. 산문도 있는 그대로 옮겨오면 이해가 좀더 편하겠지만 그건 나중에 각자 책을 통해 직접 보시는 편이 더 좋을 듯 하고요. 밑의 글은 제가 2002년 월드컵 무렵에 쓴 글인데 마침 이 시와 관련해 함께 읽으셔도 좋을 듯 해서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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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Fevernova의 비밀
어떤 학자는 말하길 "축구는 현대의 종교"라고 하더군요. 원래 종교에는 크게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하나는 도덕적 정화, 다른 하나는 주술적 엑스터시(ecstasy)를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근대에 이르러 "신은 죽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종교의 다양한 기능 중 주술적 엑스터시 부분은 많이 약화되는 대신 도덕적 정화 기능에 주력하게 되었죠. 축구는 이런 종교가 상실한 주술적 엑스터시라는 부분을 대체할 만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도 일리가 있는 것이 다 같이 하나의 둥그런 물체(축구공)를 쫓아가며 열광하는 광경을 보면 흡사 무슨 종교적 제의라도 치르는 듯 보입니다. 고대 잉카문명에서는 신에게 바칠 인신 제물을 선택하기 위해 현대의 축구와 비슷한 경기를 치르곤 했다고 하니 축구의 제의성은 더욱 두드러져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축구의 역사를 대변하는 산 증인. 축구에 있어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물건인 축구공의 역사와 그 뒤에 숨겨진 비밀들을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죠. 현재의 축구공 모양이 만들어진 것은 1872년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규정을 만들어 가죽공의 시대를 시작하면서부터 였습니다. 축구의 유래에 대해서는 각 문명권에서 제각각의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만큼 축구라는 경기가 원시적인(?) 단순한 룰에 따른 경기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으며 반대로 현대 축구의 열광이 어째서 가능한가를 설명해주는 사례입니다. 어쨌든 현대 축구의 창시자는 분명 영국이었습니다. 그렇게 축구공에 대한 최초의 규정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우리들도 잘 아는 소나 돼지의 오줌보 혹은 기타 등등의 여러 물체들이 축구공의 대용품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제가 20살 무렵 막노동판에서 일할 때 그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 오야지 - 일본말입니다 - 들이 돈을 모아 돼지 한 마리를 잡은 적이 있는데, 그 중 어떤 분이 돼지 오줌보를 이용해 축구공을 만들어서 함께 차고 놀았던 적이 있습니다. 오줌보가 생각보다 질긴 놈이더군요.)

 

1872년 축구공에 대한 최초의 규정이 만들어진 뒤 1963년부터 FIFA가 월드컵 공인구라는 제도를 만들어 매 대회 때마다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축구공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최초의 공인구는 '산티아고'. 그후 축구공 만드는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여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의 '탱고 에스파냐'부터는 완전 방수 기능의 축구공이 만들어졌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부터는 100% 인조 가죽공인 '아즈테카'가 만들어졌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신태틱 폼' - 미세한 공기방울을 축구공의 표면에 규칙적으로 배열하는 첨단 과학 기술 - 을 동원하여 상대적으로 수비 축구가 되어가고 있는 현대축구의 재미를 증가시키기 위해 축구공의 반발력과 스피드를 극대화하는 축구공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든 기술의 최종 집결체가 바로 이번 2002년 월드컵에 사용되는 '피버노바'인 것이죠.

 

월드컵 공인구에 숨겨진 비밀 - 아동노동의 눈물

세계 유수의 스포츠 물품 제조 업체인 미국의 나이키(Nike)사의 창업자가 자신의 모교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최근 그 창업자는 자신의 모교에 엄청난 액수의 학교 발전기금을 희사했기 때문에 열렬한 환영을 받으리라 기대하고 자신의 학교를 방문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야유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제3세계의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 아동노동 등을 통해 고수익을 창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올해 국제노동기구(ILO)는 "현재 전세계 2억5천만 명의 아동이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적어도 6천만 명은 광업과 매춘 등 극한노동에 시달린다"며 "가혹한 아동노동 철폐운동은 경기규칙을 어기는 선수에게 레드카드를 주는 축구정신과 일치한다"고 주장하며 축구용품에 아동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는 뜻의‘비(非) 아동노동(child labor free)’라는 로고를 붙이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도 과연 그런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1996년 FIFA(국제축구연맹)가 FIFA 라이센싱으로 생산되는 축구공과 용품에 이용되는 노동관행과 관련한 기준에 동의한 이후인 1998년에도 프랑스 월드컵 공인축구공 ‘트리콜로’가 아디다스(Adidas) 파키스탄 공장의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어린이들의 고사리같은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져 당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유엔 아동보호기금(UNICEF)과 국제노동기구(ILO)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진상조사에 나서 아디다스는 거액의 아동보호기금을 기부하고 공개해명을 하는 등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최근 FIFA는 2002 월드컵에서 사용될 모든 축구공들은 파키스탄 시알코트 지역의 합법적 생산처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공식발표했다. 또한 축구공과 기타 관련 물품들이 현행 근로기준을 충족시키는 조건에서 생산되고 있음을 모니터하는 체계를 계속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FIFA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불행히도 그리 희망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제민주연대에서 발간되는 <사람이 사람에게> 3.4월호를 살펴보면 파키스탄의 시알코트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되거나 혹은 공식 감사를 거치지 않은 비합법적인 생산처에서 생산된 축구공들이 섞여 있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와 관련된 <사람이 사람에게> 강은지 객원기자의 기사 내용입니다.

 

2002 월드컵 개막을 5개월 앞둔 지난 1월 17일, 인도 뉴델리에서는 ‘월드컵의 그늘에 있는 아동노동’이라는 주제로 한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서는 최근 인도에서 조사한 아동노동의 현황을 담은 사진과 사례들이 소개되었는데 그 내용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인도와 파키스탄 지역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축구공을 바느질하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10cm길이의 바늘을 들고 열심히 축구공을 꿰매고 있던 11살 먹은 소년은 “축구요? 한번도 해 본 적 없어요”라며 시큰둥하게 답했다. 또 한 소녀는 “월드컵이 열리면 그 축구공들도 파키스탄이나 인도에서 만들 거 아니냐”며 일거리가 많아질 것을 기뻐했다. 아이들의 손에 들려있는 오각형과 육각형의 조각들에는 버젓하게 ‘비(非) 아동노동(child labor free)’이라는 로고가 붙어있다. 

 

전 가정이 축구공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지역 스포츠 용품 공장에서 가정으로 하청을 주는 중개업자 역할도 하고 있는 파키스탄의 모한 랄(Mohan Lal) 씨의 증언은 더 직접적이다.

 

“우리가 만든 2002 월드컵에 사용될 물건들은 이미 다 배에 실었어요. 월드컵 로고 바느질에는 물론 아이들도 동원되었지요.”

 

아동노동과 세계평화
미국의 세계 패권 질서 확대의 와중에 분쟁에 휩쓸린 대테러 전쟁 지역 및 오랫동안 지역 분쟁에 시달려온 지역에서 아동의 강제 노동과 소년병 차출 문제는 우리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심각한 정도의 것입니다. UN의 통계에 따르면 매년 30만 명의 아이들이 정규군이나 무장 반군 집단에서 총알받이가 되고 있으며, 지난 10년 동안 전쟁으로 살해된 아이들은 200만 명, 불구자가 된 어린이들은 600만 명, 전쟁고아는 100만 명, 난민 어린이들은 1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심각한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도 약 1천만 명에 달하며 지금도 매달 800명의 어린이들이 지뢰를 밟고, 죽거나 발목 등 신체 일부가 절단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동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숫자가 2억 5천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2002년 월드컵을 우리 민족의 국운 상승의 기회로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이들이 손수 한땀 한땀씩 피를 흘리며 새겨놓은 월드컵 로고를 발로 차면서 열광하며 그 아이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들 중 누구도 더러운 땅을 여의고 깨끗한 땅을 밟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월드컵을 바라보며 흥겨움에 들떠 축구공 하나 사달라고 할 때 그 축구공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알려주어야 하겠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피땀에 젖은 축구공을 차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들이 "부자 아빠를 꿈꾸는" 동안 거리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200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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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웃긴 꽃 ㅣ 문학동네 시집 90
윤희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6월




지난 언젠가 화요일에 나는 선배 박형준 시인과 함께 국밥을 먹었다. 지금 한국의 시인들이 처해있는 다소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꾸역꾸역 국밥을 밀어 넣었다. 밥알을 씹으며 한 편으론 한국의 시인들이 현대미술이 처한 난관과 흡사한 난관에 처했다는 생각을 했다. '형, 문학이 문학 그 자체의 힘을 잃고, 자꾸만 철학이 되고, 정치가 되어 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아직 시 문학은 살아있다. 비록 커다란 변화의 조짐들이 불길한 징조가 되어 연이어 출현하고 있지만. 오늘 아침 출근을 하니 또 한 명의 선배 시인이 새로 시집을 냈다고 시집을 보내주었다. 간만에 읽는 신간 시집이다.


첫 시집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에서 그의 정돈된 시세계가 깔끔하게 읽히긴 했지만 나에겐 어딘지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랄까, 매력이란 측면에서 다소 약하단 생각을 했다. 다시 말해 마치 미인의 얼굴은 보통 사람의 얼굴에 비해 좌우대칭의 균형을 이루지만 이것을 CG(컴퓨터 그래픽)를 통해 완벽한 좌우대칭으로 만들어내었을 때, 미인의 자연적인 얼굴이 CG로 만들어낸 얼굴보다 더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과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윤희상 첫 시집이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다. 크게 흠잡을 데 없이 무난하지만 그 무난함이 덜 매력적이었단 뜻이다.) 

시인 서정주는 <국화 옆에서>를 통해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고 노래했는데, 이때 거울 앞에 섰다는 것은 자신과 대면하는 것을 말한다. 시인이 바라본 것은 누님이자 동시에 자신과 대면하는 누이의 자아이자 곧 자신(독자)이기도 하다. 윤희상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소를 웃긴 꽃』은 근래 보기 드물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시집이었다. 문학이 철학과 다른 것은 로고스가 아닌 파토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일반 독자들 역시 시를 잘 읽어내기 위해 적절한 훈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철학자가 될 필요까지는 없다. 나는 윤희상의 두 번째 시집이 시와 독자, 시인과 독자, 시인과 사회 사이에서 적당한 지점 - 어쩌면 그것이 ‘대면의 소실점’일지도 모르겠지만 - 에 서 있다고 느꼈다.

나와 너의 사이는
멀고도 가깝다
그럴 때, 나는 멀미하고
너는 풍경이고,
여자이고,
나무이고, 사랑이다

내가 너의 밖으로 몰래 걸어나와서
너를 바라보고 있을 즈음,

나는 꿈꾼다

나와 너의 사이가
농담할 수 있는 거리가 되는 것을
(<농담할 수 있는 거리> 중에서)


‘나와 너’는 세상의 전부다. 한겨울의 고슴도치처럼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체온을 나눠야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상의 중력에 끌려들지 않기 위해서 거리를 두면 세상은 곧 풍경이 되어 멀어진다. 불교 『유마경』의 가르침은 “나는 곧 너다”인데, 이 말은 진정한 보리심의 발현은 나와 너를 나누고 구분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대자대비(大慈大悲)는 사랑하되 동정하거나 구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너의 밖으로 몰래 걸어나와서”는 너를 바라본다. “나와 너의 사이가 / 농담할 수 있는 거리가 되는 것을” 꿈꾸고 희망한다. 윤희상은 김수영의 “바로 보마”를 그 나름의 방식으로 변주한다. 윤희상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바로보마,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윤희상의 『소를 웃긴 꽃』을 관류하는 이미지는 이 같은 대면의 이미지이다. 시인은 거리를 두고 바로 보고자 한다. 다만 그 거리(距離)는 냉소도, 뜨거운 참여도 아닌 성찰(省察)의 거리이다.

거울이 여자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하지만 거울이 여자를 숨기고 있다 여자가
오면, 거울이 열린 문으로 여자에게만 숨기고
있는 여자를 보여준다 거울은 온몸으로
문이다 여자는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여자를 본다 들뜬다 그럴 때마다, 거울은
여자의 뒤로 숨는다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침묵한다
(<거울과 여자> 전문)

나에게는 금붕어가
어항 속에 있고,
금붕어에게는 내가
어항 속에 있다
그래서,
금붕어와
나는 밤이 새도록 싸웠다
(<금붕어와 싸웠다> 전문)


윤희상의 시세계에서 대면의 이미지는 여러 형태(거울, 어항 등)로 변주되지만, 대면 자체가 성찰로 고스란히 연결되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것이 정직하다. “거울이 여자를 숨기고 있다” 백설공주를 살해하는데 성공했다고 여긴 계모가 거울 앞에 서서 “거울아, 거울아”를 불러본다. 이때 거울은 계모의 모습을 비추는 것일까? 아니면 계모의 욕망을 비추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거울 자체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거울은 온몸으로 문”이지만 여자는 눈치 채지 못한다. 세상은 보고자 하는 이에게만 그것을 허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계모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계모는 끊임없이 욕망하고, 욕망을 추구하여 결국 거울 속에서 아무 것도, 자신조차 발견하지 못한다. 금붕어와 나는 마주 하고 있지만 ‘어항’이란 자의식, 세계에 갇혀 서로를 진실로 마주 대하지 못한다. 시인은 대면의 이미지를 사용하면서도 그저 대면한다는 것이 실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먼 곳의 길 끝에서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내 친구 9였다

9
(<먼 곳의 길 끝에서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내 친구 9였다> 전문)



나주 장날,
할머니 한 분이
마늘을 높게 쌓아놓은 채 다듬고 있다
그 옆을 지나가는 낯선 할아버지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을 남기고 간다

“그것을 언제 다 할까”

그러자, 할머니가 혼잣말을 한다

“눈처럼 게으른 것은 없다”
(<눈처럼 게으른 것은 없다> 전문)


<먼 곳의 길 끝에서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내 친구 9였다>는 시의 제목과 내용이 반전되어 있다. 대개는 시의 제목이 시의 몸을 드러내고 상징하는데 비해 이 시에서는 시의 제목이 시의 내용보다 길어 시의 몸을 제목이 수식해주고 있다. ‘내 친구 9’는 ‘행인1,2,3’가 마찬가지로 익명(匿名)의 존재다. 그러나 익명이란 스쳐가는 존재인 ‘행인’에게는 어울리지만 친구에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대면의 소실점 저 멀리에 서 있는 친구, 끝끝내 익명으로 남아버린 친구, 그나마 자세히 보아야 내 친구인 줄 알지만, 자세히 본 것만으로 친구의 익명성이 제거되지 않는다. 설령, 시인이 친구의 실명을 거론했다 한들 우리에게 그 이름이 익명 이상의 의미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다는 것, 그저 대면한다는 것은 이처럼 허망한 것이기도 하다. <눈처럼 게으른 것은 없다>가 주는 깨달음은 마치 선사(禪師)들의 선문답 한 토막 같은 짧은 대화가 만들어내는 긴장이 절묘한 시이다. 이 깨달음을 속담으로 옮겨보자면 아마 그런 것일 게다.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는 바라보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삶, 그런 의미에서 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 아는 듯 말하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하고 게으른 것인가를 시인은 말하고 있다.

시집의 전반부가 이처럼 극히 ‘개인적’인 성찰, 그래서 서정적인 의미에서의 성찰을 담고 있다면 시집의 후반부에 이를수록 대면의 이미지는 사회적인 확장 과정을 거친다. 편의상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같은 대면의 이미지들이 사회적으로 확장되어가는 과정은 시집의 전체에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누가 깃발을 붙잡고 있다>, <시인에게, 숲 해설가는 말한다>, <田榮鎭>, <光州 五月團> 등의 시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윤희상 시인의 이번 시집 『소를 웃긴 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의 시 문학이 위기로 내닫고 있다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현실에서 보기 드물게 매우 뛰어난 시집이다. 나 스스로는 ‘입구(口)자 연작시’라고 호명할 만한 세 편의 시(<검색창, 세상에서 가장 큰 입>, <下官을 마친 뒤에 울었다>, <아이들아, 재래식 화장실은 무섭지 않다>)가 보여주는 촌철살인의 비유들이
 이 시집의 매력과 재미를 한껏 높여 준다. 이 가을에 자기만의 견고하고 튼실한 시세계를 구축해가는 시인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 사실 나는 학연이든, 지연이든, 혈연이든 하는 것에 연연하고 싶지 않지만(다시 말해 윤희상 시인과 내가 학연으로 얽혀있다고 해서 그의 시집을 서평하거나 호평을 하는 일은 결코 없지만), 가끔 추억이 겹친다는 점에서 현실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인연의 줄기를 더듬어 보게 되는 일조차 부인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학연이라는 공통된 인연 때문에 더욱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던 시가 ‘최인훈 선생님에게’란 부제가 달린 <참나리꽃이 피는 사연>이다.

순발력이라고나 할까, 빠르게 움직이잖아
기막히게 앞으로 내다본단 말이야
약효가 떨어지면, 재빨리 다른 약을 찾아야지
지금은 마오쩌둥이나, 마르크스도 아니고
레닌도 아니란 것이지
주체사상을 붙잡고 있는 북측이
다시 단군을 붙잡았단 말이야
(<참나리꽃이 피는 사연> 중에서)


나의 오래된 스승인 최인훈 선생과 시인이 나누었을 법한 대화의 한 장면이 연상되면서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떠오른다. 낯익고, 정겨운 장면, 그리하여 너무나 그리운 스승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마도 당신은 지금쯤 한창 북미관계의 변화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계실 터인데,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얼마나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일까. 스승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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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앙드레 고르는 내게 있어 마르크스 이후 발견한 가장 매력적인 사상가 중 하나였다. 이반 일리치를 계승한 정치생태학자로서 그의 사상은 산업문명 전반을 반추해보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다만 생태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남성(sex)으로써 태어난 남성(gender)'이 여성주의자(페미니스트)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생태주의’를 하나의 실천적 이념(정치)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을 규정하고 있는 모든 문명체계(혹은 문화)를 극복하고 매일매일 새로운 인간이 되겠다는 결심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앙드레 고르가 평생의 반려였던 도린에게 보낸 사랑의 메시지이자 동시에 변명의 편지였던 『D에게 보낸 편지』(학고재, 2007)를 읽고 나는 도저히 그가 될 수 없는 두 가지 이유를 발견한다.

첫째는 정치생태학적인 그의 생각을 한 개인이 옮긴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고민이다. 산업물질문명에 기초한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 없이, 다시 말해 마르크스적 아젠다의 수행 없이 신좌파의 정치생태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은 실현될 수 없다는 나의 현실적 판단은 여전하다. 다시 말해 나의 가슴은 프루동과 일리치를 쫓더라도 머리는 여전히 마르크스와 그람시의 제자일 수밖에 없다.

둘째는 앙드레 고르처럼 사랑하며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192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독일군의 징집을 피해 달아났던 그는 60년대 이후 신좌파의 주요이론가로서 ‘68혁명’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일자리 나누기와 최저임금제를 통한 문화사회로의 전이가 자본주의 산업문명이 말하는 진보(?)의 잔인한 흐름을 근본적으로 되돌릴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 여겼다. 당시 이미 그는 80년대 이후 노동을 중심으로 한 산업시대의 종말을 경고했었다.

앙드레 고르는 1947년 처음 만난 영국 출신의 도린과 사랑에 빠져 49년 결혼했고, 아내가 불치병에 걸리자 모든 공적인 활동을 접고 20여 년간 간호했다. 그리고 2007년 9월 22일, 자택에서 아내와 동반 자살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것이 내가 도저히 그처럼 살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아내와의 결혼을 결심하기 전,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것이 과연 잘하는 결정인지 알 수 없었다. 앙드레 고르처럼 ‘결혼을 부르주아 계급의 제도’라는 이념적 반대도 컸지만, 동시에 카프카적인 고민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스스로를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고민이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겁니다.”라고 고백하는 앙드레 고르의 모습은 또한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근본적으로 모든 것을 회의하고, 버릇처럼 매일매일 허무에 빠져드는 한 남자, 자신조차 해부대 위에 올려놓고 관찰하길 더 즐기는 사람이 사랑이라니. 나는 나조차도 책임질 수 없는데….

그때 나에게 용기를 준 사람은 세 명의 여인이었다. 한 사람은 어머니를 대신해 오랫동안 날 길러준 작은 어머니였다. ‘결혼이란 너만의 선택이 아니라 상대의 선택이기도 하므로 네가 모든 걸 책임지려 하는 건 오만이다.’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흡사한 조건에서 자란 내 누이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들어 놓고, 자신은 그로부터 빠져나가겠다는 건 비겁한 짓이다. 그럴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연애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 붙잡은 사람은 아내였다. 하지만 내 마음의 결정은 이미 그 전에 나와 있었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와 평생토록 맺어진다면, 그건 둘의 일생을 함께 거는 것이며, 그 결합을 갈라놓거나 훼방하는 일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거예요. 부부가 된다는 건 공동의 기획인 만큼, 두 사람은 그 기획을 끝없이 확인하고, 적용하고, 또 변하는 상황에 맞추어 방향을 재수정해야 할 거예요. 우리가 함께할 것들이 우리를 만들어갈 거라고요.”<본문 24-25쪽>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도린의 말이 그를 붙잡은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자신이 도린 없이 살 수 없는 상태였기에 저 말에 붙잡힌 것이란 뜻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누구나 확신과 불안 사이를 오간다.

“떠나면서 당신은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난 온전히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사는 것보다 나 없이 살 때 더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당신은 누구의 도움 없이도 이 세상에서 당신의 자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에게는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권위가 있었고, 대인관계와 조직에 대한 감각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편안했고, 또 남들을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어서 당신은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속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되었지요. 당신은 남들 문제를 직관적으로 놀라울 만큼 빠르게 파악하고, 남들이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본문 30-31쪽>

결혼 전 잠시 헤어져 있는 동안 연인은, 혹은 연인이었던 사람은 상대방이 나보다 우월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는 모양이다. 나는 견딜 수 없는데, 당신은 이 상황을 잘 견딜 뿐만 아니라 심지어 즐길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건 아마도 탯줄을 끊고 나온 아기가 어미를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로, 아니 절대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상황과 흡사하다. 말 그대로 앙드레 고르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도린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당신이 나를 알게 된 이후로, 내가 어떤 것보다도 우선시했던 일에서 실패한 것을 어떻게 당신이 감당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거기서 벗어나보려고 나는 얼마동안이 될지 몰라도 당분간 몰두할 수 있을 만한 새로운 일에 눈 질끈 감고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흔들리지 않았고 조바심을 내지도 않더군요. 당신은 누누이 내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삶은 글을 쓰는 거예요. 그러니 글을 써요.” 내 소명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당신의 소명인 것처럼요. <본문48쪽>

문득 이 장면에서 나는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베티블루 (Betty Blue 37.2 Le Matin)>이 떠올랐다. 소설가를 꿈꾸었으나 계속해서 거절당하던 ‘조르그’에게 ‘베티’는 영감의 원천이자 유일한 희망이었다. ‘도린’과 ‘베티’. 두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한 사람은 영화 속 인물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실존했다는 것이다.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즘 들어 나는 당신과 또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밤이 되면 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 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 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본문 89-90쪽>

앙드레 고르는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시절의 오만을 사죄하는 길고 긴 편지를 썼다. 그의 회고 속에서 ‘도린’은 여러 모습으로 생생하게 기억된다. “삶이 없는 한 풍요도 없다(There is no wealth but life.)” 하지만 사랑이 없는 삶은 또한 의미가 없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 순간만 진정한 삶을 사는 것이다. 문득 그 시절의 나를 결심하게 만든 것은 ‘나를 포함한 온 세상을 저주하는 동안에도 어느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이율배반의 모순’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세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이다.

"내 생각에는 어릴 때 좋은 아버지를 두었던 사람이 나중에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못했기 때문에 좋은 아버지가 되기 어렵다. (...) 우리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도린이 아이에게 쏟는 사랑을 질투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독차지하고 싶었다."

앙드레 고르는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나는 정말 그가 정직한 사내였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생겨나는 아이는 축복이라고 세상 모든 인간이 그리 생각하지만 오랫동안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한 사내는 간신히 한 여인과의 사랑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었기에 그 여인을, 그 사랑을 비록 자신의 아이라 할지라도 나눌 수 없었다.

"도린은 나로 하여금 나 자신과 화해하도록 도왔습니다. 이는 성공적이었는데, 그건 내가 도린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가능했지요."

죽음은 삶의 종말이 아니라 삶의 완성이다. 앙드레 고르는 생의 마지막 순간, 사랑하는 여인 도린 앞에서 정직해지고자 했다. 나에게도 아이가 생겼다. 결혼한지 10년만에, 이제는 더이상 내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시도를 포기했을 때 자연스럽게 들어선 아이다.

모든 예술가는 세상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이상을 품었을 때만 예술가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비록 예술가는 아니지만 글쟁이로서 그런 이상을 품었었다.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에 등장하는 주인공 '오스카'처럼 오랫동안 나는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여 더이상 늙지 않겠노라 결심했었다. 그러나 스스로 나이 먹기로 결정한 순간 갑자기 밀어두었던 세월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까지 17살 어린아이였던 내가 어느날 갑자기 마흔 살의 중늙은이가 되어버렸다. 급격한 파도처럼 이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지난 4월 산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아무래도 임신한 것 같다고 전화를 한 순간 나는 희열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곤두박질쳤다. 세상에 나 같은 인간이, 나 하나도 책임질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 진정으로 책임져야만 하는 인간이 생겨난 것이다. 나는 아직도 외로운데, 외롭다고 누군가의 품에 징징대고 파고 들 사람이 필요한데, 내 문제만이 아니라 세상의 문제가 여전히 내 가슴을 돌덩이처럼 짓누르는데, 어느날 갑자기 미련없이 이 세상을 하직해도 후회가 없는데, 지금도 비바람불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데, 흙강아지 마냥 뛰어놀다 낯선 여자랑 눈맞고 싶은데... 이젠 그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어떤 이는 나에게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하며 축하를 건넨다. 나 역시 집사람과 함께 병원에서 처음 본 아이의 모습을 보며 감동했고, 눈시울이 붉어졌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제 겨우 10센티미터도 안 되는 아이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선 가느다란 탄성이 터져나왔다. 도저히 이 세상 일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한 편으론 이제 나에겐 더이상 나만의 여자가 없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혼자 웃었다. '참, 한심한 사내로구나. 너란 남자는.'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앙드레 고르도 그랬구나 생각하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 앙드레 고르의 대표작인 "에콜로지카 Ecologica : 정치적 생태주의, 붕괴 직전에 이른 자본주의의 출구를 찾아서 | 생각의나무(2008년)"와 함께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 사회주의를 넘어 | 생각의나무(2011년)"도 최근에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니 함께 읽어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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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강 / 1997년 3월


"죽음이란 생을 낭만화하는 원리이다. 생에 로맨틱(낭만적) 차원을 주는 원리이다" - 노발리스


 

희랍어 "아포리아"는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없는 난관을 의미하는 말로 막다른 길이란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의 논리를 아포리아 상태에 빠뜨리는, 무지의 자각이란 교육법으로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대화에서 로고스의 전개로부터 필연적으로 생기는 난관을 일컬어 아포리아라고 말한다. 아포리아란 철학의 막다른 길은 아니지만 말이 끊기는 곳에서 사유가 꽃핀다는 점에서 가장 "끊을 절 + 입구 = 철학"적이다. 


내가 위치한 지점(혹은 입장)을 어느 순간부터 자각하게 되었는가? 그 시기는 잘 알 수 없으나 그것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부터 나는 망명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한반도, 이론상으로는 대륙으로도 해양으로도 원하는 어느 방향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음에도 내가 살고 있는 남한, 대한민국은 대륙의, 그리고 해양의 섬이다. 바다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어느 곳에도 이를 수 없다. 그로부터 내 막연한 답답함과 로망이 시작되었다.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대구, 대전, 천안을 거쳐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열차를 터고, 개성, 평양, 신의주 그리고 다시 블라디보스톡과 사할린을 따라 모스크바나 키에프를 거쳐 폴란드 크라코프와 바르샤바를 지나 베를린에 이르는 대륙횡단열차를 타보고 싶다는 열망 말이다. 내가 갇힌 것이 아니라 대륙의 한 끝에 살고 있으며 내 사유의 연장이 휴전선 철책이나 현해탄을 건너야만 다른 세상으로 건네지는 것이 아닌 자유로운 분출과 두 발로 디디며 갈 수 있는 무한대의 경험을 나는 꿈꾸었다. 소박하게는 부산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막힘없이 한반도를 건너 대륙으로 그리고 유럽으로 통하는 대륙횡단철도를 이용해보는 것이고, 크게는 그 막연한 답답함의 뿌리인 분단과 냉전의 잔재와 금기들로부터 자유롭게 내 사고를 맘껏 풀어버려도 상관없는 시대를 살아보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태어난 조선인 가운데 디아스포라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망명을 경험한 이는 과연 누구인가? 작가, 철학자가 자신의 모국어를 버리는 경험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 한 명의 사람이 있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났으나 젊은 시절 모국어인 루마니아말을 버리고 평생을 미혼으로 살아가면서 파리의 어느 다락방에서 짤막하지만 깊숙한 사유를 이어간 사람. 에밀 시오랑. 내가 그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작가세계"를 통해서였다. 작가세계는 국내 작가 1인과 외국 작가 1인을 지정해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기획을 특장점으로 하는 계간지였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에밀 시오랑이었다. 나는 그 잡지를 통해 에밀 시오랑을 처음 접하고 숨이 막히는 기분을 경험했었다.


그리고 때마침 출간된 에밀 시오랑의 이 책 "절망의 끝에서"를 구해 읽을 수 있었다.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철학자? 수필가? 그의 글을 특징짓는 형태는 아포리즘(aphorism)이다. 우리에겐 그저 짤막한 경구 정도로 이해되는 아포리즘은 격언이나 명언, 명구와는 다른 것이다. 이들 사이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작가의 창작 유무이다. 에밀 시오랑은 아포리즘 형태를 빌어 그가 사유한 모든 것들을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로 옮겨 두었다. 일설에는 지난 세기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한 문장가였다고 하는데, 프랑스와 루마니아는 그리 가까운 나라라 할 수 없다. 모국어를 버린 망명자의 글을 사랑한 프랑스인들과 모국어를 스스럼없이 버린 에밀 시오랑.


그는 1911년 4월8일 루마니아의 라시나리에서 태어나 1995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는 늘 절망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자살을 말했지만 오래 살았다. 그에겐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절망의 시작이자, 그를 절망의 꼭대기로 올리는 일이었다. 부카레스트와 베를린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베르그송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는 구실로 26세에 파리로 건너간다. 그러나 에밀 시오랑은 논문을 완성하지 않았다. 33세 되던 어느날 에밀 시오랑은 노르망디 해안 도시 디에프의 한 여관 방에서 말라르메의 시를 루마니아어로 번역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무도 읽어줄 사람 없는 모국어에 절망한다.


유럽이란 세계 문화의 수도에서 살았으나 그는 변방인이었다. 그는 늘 철학적인 통찰이 돋보이는 글을 썼으나 철학자로 대접받지 못했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그의 직업란엔 언제나 대학원생 혹은 번역가, 출판사의 객원편집자로 적혀 있었다. 그의 절망은 짤막한 신음처럼 잠언으로 터져나왔다. 그의 문장들은 푸른 빛이 어린 날카롭고 예리한 비수였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의 문장은 무엇보다 인생의 비의에 대해 논하는 것들이었다. 그는 절망의 소크라테스였다. 에밀 시오랑은 젊은이들에게 인생에 기대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깨달음을 가르쳤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났다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달아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철학이란 번민과 괴로움을 위장하는 기술"이다. 그것은 번민과 괴로움 속에서 움트기 때문이다. 어쩌면 움이 튼다는 것은 생명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에 그릇된 생각일지 모른다. 삶이 죽음보다 아름다울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만, 나는 살아간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죽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죽지 않았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청춘의 어느 연대기에 삶과 죽음이란 극명하게 갈리는 인생의 순간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에밀 시오랑은 인터넷 모 자살사이트처럼 죽음을 포장하거나 도피처로 권하진 않는다.  에밀 시오랑은 ‘죽음이 없다면 생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그의 말이 자살을 권장하진 않는다. "절망의 끝에서" 중에서 자살의 의미를 논한 그의 글을 보자.



"자살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느낌은 일시적인 변덕이 아니라 몸서리쳐지는 내적 비극에서 온다.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삶의 긍정이라고 그래도 우기겠는가? 더욱이 자살의 서열을 정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유의 숭고함이나 천박함에 따라 자살을 분류하고자 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이유를 따지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명을 제거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충격적이지 않은가? 사랑 때문에 자살한 것을 비웃는 사람들을 나는 아주 경멸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실현될 수 없는 사랑이란 자신을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존재의 완전한 상실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완전한 사랑에 대한 욕구는 존재의 분열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내가 경탄해 마지 않는 인간들의 범주는 둘뿐이다. 어떤 순간에도 미칠 수 있는 사람들과 매순간 자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또 그중에 두 번째 범주의 사람들만이 내게 깊은 인상을 주는데, 그들만이 강한 정열과 큰 변화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만족하면서, 순간순간의 확신 속에서 긍정적인 방식으로 삶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나는 존경할 수밖에 없다. 이면의 현실과 끊임없는 접촉을 유지하는 사람들만이 내게 진실로 감동을 준다.


왜 나는 자살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내게는 삶만큼 죽음도 혐오스러우니까. 나는 내가 왜 이 지상에 존재하는지 전혀 모른다. 나는 지금 우주를 놀라게 할 울부짖음을 토하고 싶은 절박한 욕구를 느낀다. 전에 없던 포효가 내 안에서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그 포효가 터져나와 세상을 뒤덮어버리지 않고, 나를 무 속에 삼켜버리지 않는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나는 나 자신이 역사 속에 존재했던 가장 끔찍한 존재, 불꽃과 어둠으로 가득 차 넘치는 참담한 짐승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무한히 수축하고 팽창하며, 죽으면서 동시에 성장하고, 무에 대한 희망과 모든 것에 대한 절망 사이에서 흥분하며, 향기와 독약을 들이켜고, 사랑과 증오로 불타오르며, 빛과 암흑으로 압살된, 그로테스크한 미소를 짓는 야수다. 나를 상징하는 것은 빛의 죽음이며 죽음의 불꽃이다. 내 속의 짧은 번득임은 꺼져 천둥과 번개로 다시 태어난다. 내게서 타오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에밀 시오랑의 『절망의 끝에서』중 '자살의 의미'>


그가 절망의 꼭대기에서 자발적인 추락의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자살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언제라도 자발적인 선택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막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자살은 그에게 열린 가능성(동시에 죽음 역시 혐오스러운 것이었으므로)이었고, 그의 생을 연장시켜 주었다. 우리는 언제라도 죽을 수 있으므로 살아간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서른의 나이에 프랑스로 귀화한 이 사람은 죽음에 대한 어떤 철학적. 종교적 설명도, 위안도 믿지 않았다. 죽음에는 어떤 형이상학적 의미도 들어 있지 않다. 삶이란 그저 죽음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 있는 고속도로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 사이에는 아무런 장벽도, 장애도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은 생생한 육체의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허무를 약속할 따름이다. 말하자면 죽음은 끝이다. 거기엔 아무 것도 없다. 이 치명적인 진실을 뿌리치지 않고 대면하면서, 천국이든, 지옥이든, 신이든, 악마든 기댈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해낸 뒤 이를 대면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에밀 시오랑을 그런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언젠가 "자살"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있었다. 철 나기 훨씬 전의 일이긴 하지만 나고, 살고, 죽고의 문제를 존재의 문제로 치환해서 고민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체질적으로 그런 류의 고민에는 취약한 의식구조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자살을 생각했던 것은 87년을 경험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조차 죽으려는 시도를 절박하게 궁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아주 일찌감치 깨우쳤으므로, 현세의 삶에 대해 고민하면 할수록 그냥 이 길의 끝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죽을 것을 미리 앞당길 필요는 없겠단 편리한 생각 덕이다. 죽는 문제가 내게 중요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내게는 언제나 사는 문제가 사무쳤기 때문이다.


에밀 시오랑은 있는 그대로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의 글들은 비극적이지만, 그와 같은 이유로 희극적이다. 그의 글들이 뿜어내는 염세주의와 허무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을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절망의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당신이 늙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설령 늙었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한 몸이 되어 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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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문학읽기 - 영화로 보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와 문화
송병선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01년 2월


지난 한 해 우리 영화는 세계 3대 영화제를 사실상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70년대 우리 문화 자장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 문학, 그 가운데서도 소설이었다면, 80년대는 시와 사회과학이었을 것이고,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은 영화다. 나 역시 한동안 영화를 꽤 열심히 보았고, 영화를 만드는 상상을 했었다. 한 사회의 문화적 에너지가 어느 한 분야에 집결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겠으나 이를 잘되는 집안꼴이라고 칭찬하기도 어렵다. 우리 영화 흥행의 그림자가 워낙 넓고 짙은 까닭도 있지만, 문화란 것이 특정한 한 분야의 성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학은 죽었다, 살았다, 문학의 생존, 가능성 여부를 놓고 말이 많다. 이때 말하는 문학이란 아마도 근대성 혹은 근대의 생성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지닌 장르 소설을 놓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학동네> 지난 겨울호에 실렸던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말"은 여러가지 시사점을 보여준다. 그는 지난 2000년 서울에서 열린 한 문학행사에 참가해 "일본에서 문학은 죽었다"는 극언을 해 좌중에게 충격을 준 바 있는데, 그에 비해 한국에서만큼은 문학의 역할이 좀더 강화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 그가 불과 4년여만에 한국의 문학 역시 끝났다는 논지의 글을 쓰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대학에서 교수들은 자기 전공 과목의 강의에 영화를 도입하기 시작한다. 늘 들려오는 말이기도 하지만 요새 대학생들 너무 공부 안 한다는 한탄과 함께 예전엔 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에서 인용해오던 강의 소재를 좀더 많은 학생들이 보았음직한 영화에서 소재를 찾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는 "포디즘"을 설명하기 위해, "데드맨 워킹"은 사형제도를 공부하는데 좋은 재료가 된다. 그러다보니 영화 "트로이"에서 헥토르가 아킬레스에게 죽는다는 신문 기사가 최악의 스포일러로 지탄받는 현상까지 빚어진다.


가라타니 고진이 문학은 죽었다고 단언하게 된 이유는 문학이 사소해졌다는 것인데, 원래 문학이란, 소설이란 사소한 이야기를 하는 장르가 아니었던가?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문학이 사소해졌다는 이야기는 "역사적 이념도 지적 도덕적인 내용도 없이 공허한 형식적 게임에 목숨을 거는 생활양식"을, "전통지향도 내부지향도 아닌, 타인지향의 극단적인 형태"로서의 문학, "타자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만 존재하는 문학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문학이 왜소해졌다는 것이다.


송병선 교수의 이 책은 2001년에 나왔다. 그는 국내에 마뉴엘 푸익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해온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의 문학읽기"라고 제목은 붙어 있지만 표지 상단엔 조그맣게 "영화로 보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와 문학"이라고 되어 있다. 내 생각엔 너무 작은 글씨로 인쇄되어 잘 보이지 않는 부제가 책의 내용을 좀더 잘 표현해내고 있단 생각이다. "영화 속의 문학읽기"가 다루고 있는 영화와 문학은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를 비롯해 이사벨 아옌데의 "사랑과 어둠에 관하여"까지 모두 18편의 영화와 소설을 다룬다. 뒷 표지의 광고문구는 더 걸작이다. "영화와 문학의 근친상간적 만남!"이라... 문학과 영화가 서로 근친교배하면 뭐 안 되나? 과연 내러티브를 지닌 장르끼리의 결합이란 점에서 근친상간적 요소가 있기는 하다.


까짓거 문학이 좀 왜소해지면 안되나? 라고 반문하고 싶을 수도 있다. 문학이 죽었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들려왔지만 아직도 글을 쓰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라고 말하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다. 과연 문학은 죽었는가? 글쎄, 나는 그런 말을 할 만한 공부를 하지 못했고, 이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된 의견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말"이 문학의 종말이 아닌 "근대" 문학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이제까지 우리가 생각해오던 문학, "지적/도덕적 요구를 감당할 수 있을 때만 문학으로 존립할 이유가 있으며 그러한 과제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진다면, 문학은 단지 오락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의 문학 읽기"에서 다루는 18편의 영화들은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문학작품들은 지역적으로는 라틴아메리카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라틴 아메리카의 이야기를,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이 써낸 이 작품들을 영화화한 건 라틴 아메리카가 아니란 거다. 마누엘 푸익 원작의 "거미여인의 키스"는 미국과 브라질 합작 영화고, 보르헤스 원작인 "거미의 계략"은 이탈리아에서 베르톨루치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에비타"는 앨런 파커에 의해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영화들은 몇 편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라틴 아메리카 이외의 지역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송병선 선생은 그런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싸구려 문학작품이 아닌, 소위 고급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영화들이다. 물론 이 중에는 잘된 영화도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다. 그러나 정말 형편없는 영화는 한 편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잘못된 영화 속에서도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나 정치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이 영화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영화는 때로 형편없는 작품을 걸작으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너무나 뛰어난 작품을 형편없는 졸작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혹자는 영화를 접하고 그 원작이 된 작품에도 흥미를 느껴 읽게 된다고 말한다. 영화를 통해 문학작품을 읽도록 할 수는 있어도 문학을 통해 영화를 보도록 할 수는 없다는 딜레마가 생긴다. 내러티브를 갖춘 어떤 작품이 영화로 전이될 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영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본래 작품이 지닌 아우라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먼저 본 사람은 소설을 읽을 때 소설의 문자들이 영화 속 이미지로 변환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미지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송병선 선생의 이 책은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영화와 문학의 비율도 적절하고, 전문적인 비평과 대중적인 재미도 골고루 안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두 가지 점에서 허망하다. 한 가지는 그가 문학교육을 위해 채택한 영화가 과연 독자들에게 문학 작품 읽기로 나아가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허망함이고, 다른 한 가지는 "라틴 아메리카"라는 문화의 보고가 우리에겐 너무 멀리 있다는 허망함이다. 한 예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문학 작품은 물론, 영화들조차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이래서는 영화를 먼저 볼 것이냐, 책을 먼저 읽을 것이냐 하는 즐거운 고민도 할 수 없기에 허망하다.


다시 가라타니 고진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문학을 지나치게 협애한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시, 소설 그리고 좀더 봐주어서 비평을 포함한 글로 본다. 그렇기에 서구에서는 문학의 범주 안에 혹은 우리의 문사철 전통에 어울릴 법한 글들도 제외되고 만다. 가령, 철학적 에세이들, 풀어쓴 역사이야기, 르포르타쥬 등은 문학에서 제외시켜 버리는 것이다. 고진이 말한 김종철, 아룬다티 로이와 같은 인물들을 문학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과연 온당한 일일까? 문학의 본령은 물론 시와 소설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지평을 좀더 넓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는 이대로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종말을 지켜봐야 하는 걸까?


*

이 책 이외에도 영화를 통한 세상 읽기를 시도하고 있는 몇 권의 책이 있어 소개해본다.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1,2권)는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과 역사를 비교해주고 있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희생된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는 책이다. "야만의 시대"는 영화로 본 세계분쟁사라 할 수 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역은 누락되어 있고, 부분적으로 관점에 동의하긴 힘들지만 영화를 통해 20세기와 21세기에 걸친 세계 분쟁을 살펴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김성곤 교수의 "영화 속의 문화"이다. 문학과 영상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성곤 선생은 이전에도 영화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여온 학자다. 그가 서울대출판부의 독립채산제 실시 이후 대중교양서 시장을 염두에 두고 베리타스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영화 속에 나타난 미국의 문화(저자는 살림총서 가운데 하나로 "영화로 보는 미국"을 펴낸 적도 있다), 유럽문화, 한국문화, 유전공학 등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평론가 이효인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문화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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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길이다 - 루쉰 | 이철수(그림) | 이욱연 옮김 | 예문(2003)

나는 "루쉰" 선생을 존경한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지만 존경한다는 건, 다른 말로 "나도 당신처럼 살고 싶어요"란 뜻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음속으로 존경만 하고 그의 삶을 본받지 않는다면 존경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를 지니겠는가란 뜻에서 한 말이었다. 문제는 정작 말만 그렇게 하고 나 역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일 게다. "희망은 길이다"란 책을 나는 지금까지 근 10여 권 넘게 구입했다. 내가 이 책을 그렇게 많이 구입한 것은 내가 한 권을 읽고 난 뒤 나만 읽지 않고 좀더 많은 이들에게 루쉰의 글을 읽게 하고 싶다는 욕심에 그리한 것인데, 오늘 살펴보니 그간 이 책을 선물 받은 이들이 죄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는지 이 책에 대한 간략한 리뷰 한 줄 없는 것이 안타까와 올려본다.


영미권 고전 가운데 90%는 재번역이 필요하다는 최근의 기사도 있지만, 루쉰에 관련한 꽤 많은 종의 책들이 있지만 번역 상태가 좋은 책들이 많지 않다고 들었다. 이 책을 번역한 이욱연 선생은 소장파 중국학자로 이 책의 번역 상태는 내 나름으로는 믿을 만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번역이 가장 좋은 책은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라고 들었다).


"희망은 길이다"
"루쉰 아포리즘"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데, 엄밀히 말해 루쉰 자신이 아포리즘으로 따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이욱연 선생이 루쉰이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하고 있는 글들 가운데 엄선해 편역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얼마전 리뷰했던 생텍쥐페리의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있을까"와 같은 형식의 책인 셈이다. 하지만 유혜자 편역의 그 책과 결정적인 차이는 판화가 이철수 선생의 판화작품들을 컬러 도판으로 삽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까지 감안해보면 책값을 비싸다고 할 수 있을까. 루쉰 선생의 글에, 이철수의 판화, 이욱연의 번역이라면 불경하옵게 자본주의 상품으로 보더라도 진경(眞景)에 속한다.


사실 국내 시인, 작가들의 이름으로 나온 아포리즘들 가운데 읽을 만한 것을 그리 많이 발견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에밀 시오랑의 아포리즘들을 좋아하고,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 준 감동을 잊을 수 없는 나로서는 뭔가 태부족이거나 아쉬움이 남았는데,  그것은 이전의 생텍쥐페리의 글에서 따온 아포리즘을 읽었을 때도 매한가지였다. 문제는 아포리즘이 문학적 글쓰기 행위의 일부란 것을 철저하게 느끼지 못한 이들의 책임도 따를 것이다. 아포리즘에 대한 인식이 책을 읽다가 그저 좋은 구절에 밑줄 긋고, 이를 옮기는 것이거나, 시인들이 시상을 떠올렸으되 이를 시로 옮기지 못한 시작 메모를 책으로 엮어도 좋을 그런 만만한 행위로 느낀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이 책 "희망은 길이다" 역시 본질적으론 그런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루쉰의 글이란 것이다. 루쉰은
"피로 쓴 문장은 없으리라. 글은 어차피 먹으로 쓴다. 피로 쓴 것은 핏자국일 뿐이다. 핏자국은 물론 글보다 격정적이고, 직접적이며 분명하다. 하지만 쉽게 변색되고 지워지기 쉽다. 문학의 힘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루쉰은 20세기 중국문학의 핵심이었다. 마오쩌뚱은 루쉰을 일컬어 "위대한 문학인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이자 혁명가였다"라고 평한다. 물론 루쉰의 문학적 정수들은 그의 소설들에서 표출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루쉰을 루쉰으로 만든 것은 우리가 흔히 잡문(雜文)이라 치부하는 컬럼, 기고문, 편지와 같은 것들에서 등푸른 생선의 지느러미처럼, 숫돌에서 것 벼려낸 칼날처럼 시리게 날 선 짤막한 문장들이었다. 루쉰의 글들은 피로 쓴 문장보다 더 짙은 향기와 생명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기에 한동안 루쉰의 글들, 산문들(소설은 제외)은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었다. 이 책의 제목이
"희망은 길이다" 이기도 하지만, 그는 유독 희망과 절망을 대비시켜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에서도 나오지만 중국적인 혹은 동양적인 사유 체계 안에는 이렇듯 대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러하듯이."


"나그네의 뜻은 편지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즉 앞길에 무덤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기어이 가는 것, 바로 절망에 대한 반항이다. 절망하지만 반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희망으로 인해 전투를 벌이는 사람보다 훨씬 용감하고 비장하다고 본다."


"정치는 현상을 유지시키고 통일시키려 하고, 문학 예술은 사회 발전을 촉진시키고 점차 사회를 분열시킨다. 문학과 예술이 사회를 분열시키지만 사회는 그래야만 발전한다. 문학과 예술은 정치가들에게는 눈엣가시가 되고, 추방당할 수밖에 없다."


루쉰의 글들 가운데는 지금의 관점에서 읽노라면 분명 논쟁이 될만한 것들도 적지 않다. 가령, 중국 책은 읽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거두절미하고 실려 있는 걸 보면, 대관절 무슨 이야기인지 어리둥절할 수도 있지만 당시 루쉰이 살아가던 무렵의 중국의 현실을 떠올려보면 그가 어떤 의미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루쉰에게 접근하는 최초의 책으로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의미가 있다. 좀더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희망을 품고자 하는 이들에겐 희망으로, 절망 속에 있는 사람에겐 그 나름의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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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바이야트 -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 민음사(1997)


오마르 카이얌(Omar Khayyam)은 11세기 중엽 페르시아 동북부 지방 코라싼주의 나이샤푸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나 출생연대는 정확치 않다. 오마르 카이얌이 살았던 시대는 셀주크 투르크 왕조가 문화적으로도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던 시대였다. 기독교인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순례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오마르 카이얌이 언제쯤 숨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교황 우르바누스2세가 처음 십자군을 일으킨 1096년 이전에 숨지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오마르 카이얌의 이름도 정확하게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루바이야트>는 11세기경에 살았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역사학자, 철학자(당시의 지식인이란 존재를 생각해볼 때 이렇듯 다방면으로 재주를 보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였던 이가 오마르 카이얌('카이얌'은 천막제조업자란 뜻)이란 필명을 써서 4행시 "루바이"를 쓴 것이다. 위에 인용된 구절들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그의 루바이들은 매우 교훈적이면서도 생의 찰나적 흐름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훈적이라고는 하지만 허무의 냄새가 묻어나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이슬람 문명권을 통칭해서 아랍이라 말하지만, 아랍은 단지 아라비아 반도의 지리적 호칭이고, 이슬람이나 무슬림은 종교적 명칭이다. 원래 아랍이란 말은 좁게는 아라비아 반도 일대만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아라비아 반도를 세력 기반으로 하여 일어난 마호메트의 지지자들에 의해 사상적, 정치적으로 포섭된 페르시아 지역까지 아랍이라고 통칭했다. 나중엔 그 의미가 점차 확대되었다.

 

"루바이야트"는 4행시의 복수형으로 "4행시집" 이란 뜻이다. 우리의 시조처럼 정형화된 율격이 있지는 않으므로 형식상은 자유시이겠지만, 4행이 한 연을 이루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루바이야트는 모두 101수의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4행이 하나의 연이면서 독립적인 시 한 편이 된다. 각각의 시들은 모두 다른 주제를 노래하면서도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일반적인 정서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민중적 현세관을 담고 있다. 그런 현세관과 더불어 오늘에 충실하라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그네들의 시가 현세적인 풍요를 추구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들은 오랫동안 낙타를 타고 사막을 누비던 중개무역상들이 아니었던가?

 

7.
오라, 와서 잔을 채워라, 봄의 열기 속에
회한의 겨울옷일랑 벗어 던져라
세월의 새는 멀리 날 수 없거늘
어느 새 두 날개를 펴고 있구나.

 

일곱번째 루바이에서 시인은 "세월의 새는 멀리 날 수 없거늘/ 어느 새 두 날개를 펴고 있구나"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이는 동양의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과 대등한 시구라 할 수 있다. 사막의 석양은 분명 보기 드물게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 해는 또 순식간에 저버리고 밤의 사막은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하게 했을 것이다.

 

20.
살아나는 풀잎이 뒤덮은 강둑,
그 위에서 노닐 때에는 조심을 하오.
그 옛날 귀한 이의 입술 위에서
몰래 핀 풀인지 누가 알리요

 

20번째 루바이에서 시인은 풀잎 하나라도 조심하라고 말한다. 그 까닭은 강둑을 무심히 뒤덮은 풀잎 하나조차 과거 영화를 누렸을 어느 인물이 죽은 뒤 흙으로 돌아가 풀로 피어난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머지 시편들 역시 시에서 드러나고 있는 이미지들은 비록 화사하고 아름다운 것들일지라도 그 이면엔 역시 현세의 삶에 대해 충실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은 마땅히 즐겨야하는 것이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25.
오늘만을 위해서 사는 이 있고
내일을 지켜보는 사람 있지만
암흑의 탑에서 들려오는 저 목소리
"바보여, 그대의 보답은 어디에도 없으리."

 

25번째 루바이의 마지막은 종종 많은 곳에서 인용된다. "바보여, 그대의 보답은 어디에도 없으리." 오늘을 위해 살든 내일을 위해 살든 누구에게나 죽음은 공평하고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페르시아의 유명한 우화 '죽음을 피해 달아난 사내' -  한 사내가 점장이에게 점을 보았다. 점괘에 따르면 오늘밤 안으로 그 사내가 죽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사내는 마치 괴테의 "마왕"처럼 죽음의 사자를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시간, 죽음의 사자는 테헤란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사내를 찾고 있었다. 죽음의 사자는 말한다. "이 녀석이 오늘 중으로 테헤란에서 죽기로 되어 있는데 아직 안 보이는군." 죽음의 사자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사내는 말을 달려 죽음의 사자 앞을 달려간다. 죽음의 사자는 그를 보고 달려가 목숨을 빼앗아 버린다. 죽음의 운명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죽음은 누구에게도 별다른 보답을 주지 않는다. 죽는다는 것은 그저 죽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47번째 루바이를 비롯해 여러 편의 루바이들에서 반복되고 있다.

 

47.
그대와 내가 함께 장막을 지나가도
이 세상은 오래오래 살아 남으리
바닷물에 밀리는 조약돌 인생
머물다 간다 한들 아는 체할 세상인가

 

이렇듯 삶과 죽음에 대한 현실적이고도 냉정한 관찰은 오랫동안 대상 무역에 종사하거나 유목을 위해 사막을 횡단하며 체득한 삶의 방식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양떼를 방목하는 그들로서는 노동력을 발휘할 수 없고 체력이 약한 노인들은 짐이 되기에 어떤 유목민들은 새로운 방목지로 떠나기에 앞서 늙은 부모를 위해 작은 천막을 지어준다고 한다. 20여일치 정도의 식량과 더불어 그들이 즐겨 사용했던 물품 몇가지를 함께 놓아둔다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 삼대가 할아버지를 천막으로 모시고 갔다가 아버지와 아들만 돌아오는 것이다. 

 

35.
행여나 삶의 비결 찾을까 하고
초라한 술항아리 입술을 찾네
입술에 입술 대고 속삭이는 항아리
"마셔라, 살아 생전, 한 번 가면 못오리"

 

우리들 농경민족에게 삶과 죽음은 언제나 고정된 장소에서 익숙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사막의 유목민들에게 있어 삶과 죽음이란 언제나 낯선 환경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랍 저편으로 사라질 뻔한 "루바이야트"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빅토리아 왕조시대 영국의 상류계급이었던 "에드워드 피츠제랄드"의 공로이다. 그는 취미 삼아 번역을 즐겼는데, 오마르 카이얌의 시 75편을 번역해 주변의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이 시를 읽고 감동한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는 자신의 친구이자 시인인 스윈번(Charles Swinburne)에게 다시 이 책을 소개했고, 입에서 입으로 퍼져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피츠제랄드는 이런 반응에 힘입어 35편의 루바이를 덧붙이고, 다시 번역하여 모두 101편의 루바이로 묶은 것은 1879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번역은 반역이란 말도 있듯 피츠제랄드의 번역을 두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제법 논쟁이 있었다. 그가 오마르 카이얌의 원시에 충실하게 번역한 시들은 불과 49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고, 심지어 이중 8편 가량은 피츠제랄드가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들을 제 멋대로 덧대거나 생략하여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오마르 카이얌의 시가 빅토리아 왕조 시대 영국에서 크게 유행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바대로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온갖 근엄한 도적과 엄숙하기 그지 없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의 뒤안에서 상류계층 사람들끼리 온갖 불륜과 부도적한 일들이 벌어졌던 시대로 알려져 있다. 그런 시대에 현세적이면서도 허무한 세계관을 4줄의 짤막한 시행들로 표현하고 있는 루바이들은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충격이면서 동시에 기쁨이었을 것이다.

 

따지고보면 서양에서도 이런 전통은 로마 이래로 "오늘을 즐겨라!(Carpe Diem)"이란 구호에 따라 충실하게 진행되어 오지 않았던가. 21세기 새로운 노마드(유목인)들에게도 여전히 "오늘"은 불확실하고, 내일은 확실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이 시집을 읽으며 오늘을 즐기는 일도 그다지 나쁘진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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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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