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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27 이면우 - 소나기
  2. 2010.12.22 이면우 - 그 나무, 울다

소나기


- 이면우


숲의 나무들 서서 목욕한다 일제히
어푸어푸 숨 내뿜으며 호수 쪽으로 가고 있다
누렁개와 레그혼, 둥근 지붕 아래 눈만 말똥말똥
아이가, 벌거벗은 아이가
추녀 끝에서 갑자기 뛰어나와
붉은 마당을 씽 한바퀴 돌고 깔깔깔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와 몸을 턴다
점심 먹고 남쪽에서 먹장구름이 밀려와
나는 고추밭에서 쫓겨나 어둔 방안에서 쉰다
싸아하니 흙냄새 들이쉬며 가만히 쉰다
좋다.


*


나이 먹고 제일 많이 달라진 게 있다면... 비 맞는 일이 줄었다는 거다. 비 오는 날... 나갈 일도 없고, 비가 와도 우산 없이 다닐 일도 별로 없다. 게다가 비 온다고 젖어들, 손바닥만한 맨 땅도 도시에선 구경하기 힘들다. 이제 비오면 맨먼저 비릿하게 달려들던 흙 냄새 대신 콘크리트 냄새와 열기가 먼저 후욱 하고 달려드는 도시의 삶. 태어나면서부터 도시인이었으나 나는 흙과 콘크리트의 경계에 섰던 변방인이었기에 양쪽의 냄새를 알고 있다. 


누렁이를 앞세워 논두렁을 달려본 기억과 학교 앞에 라면박스 안에 들어있던 레그혼 새끼들을 길러 본 경험이 함께 유년의 기억 속에 늘어서 있다. 태어나 한 번도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서본 경험이 없는 나는 산 속에서 비를 맞을 때 생생하게 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알고 보면 나도 식물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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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그 나무, 울다

- 이면우

비오는 숲 속 젖은나무를 맨손으로 쓰다듬다
사람이 소리없이 우는 걸 생각해봤다
나무가 빗물로 목욕하듯 사람은 눈물로 목욕한다!
그 다음 해 쨍하니 뜨면
나무는 하늘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고
사람은 가뿐해져서 눈물 밖으로 걸어나오겠지

출처 : 이면우,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 물길시선 1 | 북갤럽

*

가끔 ‘슬픔’은 식물성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사람들은 곧잘 식물에 정성을 기울인다. 말없이 고요하게 화분에 담겨있는 식물의 잎사귀에 물을 대주고, 마른 걸레로 젖은 물기를 닦아내며 내 안에 가득한 슬픔으로 축축한 습기들도 함께 닦아내면서 우리도 그와 함께 말을 잊는다. 식물은 말을 하지 않으며 몸을 피하지도 않지만 벼가 부지런한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비록 좁디좁은 화분에 갇힌 화초들이라 할지라도 분명한 건 정성 들인 그대로를 화답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과 함께 오래된 농부들은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농사 중에 사람 농사가 가장 힘들다. 그래서 나는 종종 마음의 거름을 얻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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