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의 두꺼비(A Toad for Tuesday) - 러셀 에릭슨 | 김종도(그림) | 사계절출판사 (1997)


 

러셀 에릭슨의 "화요일의 두꺼비"는 아내와 함께 출타 길에 지하철 안에서 다 읽은 책이다. 덕분에 내리는 역을 깜박해서 집사람에게 질질 끌려 내렸다. 러셀 에릭슨은 미국 코네티컷 주 출신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군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아마도 주한 미군으로 근무했던 모양인데, 30대를 넘긴 뒤부터 비로소 동화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역시 "화요일의 두꺼비"이다. 이 책은 초등학교 저학년 생들이 읽기에 적당한 내용과 형식, 120쪽의 짤막하지도 길지도 않은 적당한 분량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뭐 꼭 그러란 법은 없다. 나 같은 사람이 읽어도 감동이 물결친다. 게다가 김종도의 삽화(일러스트)들은 다소 섬뜩할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훨씬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순화시켜 주고 있다.

 

두꺼비 형제 모턴과 워턴은 추운 겨울날 땅 속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형 모턴이 만들어 준 딱정벌레 과자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러니까 동생 워턴이 이 맛난 과자를 툴리아 고모에게도 가져다 드리고 싶다는 얼토당토 않은 계획을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형 모턴은 워턴에게 두꺼비가 한겨울 지상의 숲으로 나가 배고픈 동물들의 습격을 피해 툴리아 고모에게 가는 위험에 대해 설명하지만 워턴은 온몸을 추위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꽁꽁 여민 뒤, 지난 여름에 배운 스키를 타고 가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두꺼비 워턴의 모험이 시작된다.

 

한겨울에 밖으로 나온 두꺼비가 겪는 우여곡절이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축이란 점에서 이 책은 물론 모험담이다. 아이들은 아마도 두꺼비 워턴에게서 지난 겨울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창 밖엔 눈이 내리고 나가서 뛰어놀고 싶은데, 부모는 온몸을 칭칭 감싸고도 안심 못하고, 따라 나서거나 못 나가게 하는 그런 경험 말이다. 워턴은 형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참나무로 만든 스키와 고슴도치의 털을 이용한 막대를 들고 툴리아 고모댁을 향해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워턴은 우연히 거꾸로 처 박혀있는 사슴쥐를 구해주고 친구가 된다. 사슴쥐에게서 빨간 목도리를 얻은 워턴은 다시 스키를 타고 숲 속을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소리없이 날갯짓을 하며 올빼미 한 마리가 날아와 워턴을 덥석 잡아간다. 올빼미는 워턴에게 달력을 보여주며 여섯 밤이 지난 다음주 화요일에 워턴을 잡아 먹을 거라고 알려준다. 그 날이 바로 자신의 생일이란 거다. 포식자 올빼미의 눈에 워턴은 그저 먹잇감에 불과했다. 이름을 묻는 워턴에게 올빼미는 자신에겐 이름 같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기호에 불과한 이름에 우리가 연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름이 사물로부터 자신을 구분하는 첫번째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부여받는다는 것은 김춘수의 시 "꽃"에서 드러나듯 존재를 형성하게 되는 시작에 해당한다. 워턴은 올빼미에게 "조지"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조지라는 이름을 얻은 올빼미는 이전까지는 그저 무수히 많은 올빼미에 불과했으나 이제 올빼미는 그냥 올빼미가 아니라 "조지"였다. 정체성이 생긴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우가 하인 프라이데이를 만나 가장 먼저 한 일이 이름을 붙였다는 것, 그것은 사물과 구분되는 의미를 부여했단 뜻이 된다.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된 조지와 워턴은 밤새도록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동화를 비롯한 모든 내러티브 구조를 가진 이야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캐릭터이다. 만약 올빼미 조지가 스스로의 표현대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가는데 그 어떤 존재도 필요치 않는 존재라면 그것은 가히 절대적인 공포(존재)다. 하지만 조지는 친구를 필요로 하지만 친구의 존재를 스스로 깊이 느껴보지 못했을 뿐이다. 게다가 밤에만 사냥에 나서는 올빼미의 본성에서 어긋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상처를 지닌 자이기도 하다. 워턴은 올빼미의 집을 청소해주고, 뜨거운 차를 끓여주지만 조지가 워턴을 잡아먹기로 한 날짜는 하루하루 줄어든다. 조지는 달력에 X표시를 하며 하루하루를 가슴 졸이게 만든다. 워턴은 탈출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준비를 하지만 올빼미 조지에게 들켜버려 사태는 더욱 악화되기까지 한다.

 

위기감은 점점 고조되고, 읽는 사람은 작가가 대관절 결말을 어찌낼 것인가? 함께 가슴 조리게 된다. 물론, 이야기 구조 자체는 뻔하다면 뻔하지만 워낙 이야기에 대한 몰입할 수 있는 장치들을 잘 꾸려 놓아서 그런 생각 같은 건 할 겨를이 없다. 드디어 조지의 생일날이 닥쳤다. 아침부터 조지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워턴은 최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뜻밖의 곳에서 구원의 손길이 닥친다. 사슴쥐가 둥지 안 구멍 사이로 고개를 내민 것이다. 사슴쥐 씨이에게 구원받은 워턴은 둥지 안에 흩어져있던 제 짐들을 꾸려 함께 탈출한다. 워턴은 사슴쥐 무리와 함께 스키를 타며 신나게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때 워턴의 눈에 한 마리 올빼미가 여우에게 공격당하는 모습이 보였다. 조지였다. 워턴은 사슴쥐가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조지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어쩔 수 없이 사슴쥐 무리들도 함께 나서서 조지를 구출해주었다. 하마터면 여우에게 당할 뻔한 조지는 워턴에게 어딜 가는 중이냐고 도리어 묻는다. "어딜 가긴 탈출하는 중이지" 워턴의 대답을 들은 조지는 깜짝 놀라 자기가 남겨둔 쪽지를 보지 못했느냐고 묻는다. 그 쪽지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쪽지 내용을 알려주는 건 스포일러다)

 

이 책의 결론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했던 말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그녀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세상과 자연, 우주에 대해 함께 기뻐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여길 때 비로소 우리의 인간성이 유지될 수 있다. 현실정치는 우리가 무엇을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에 따라 달리 형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나와 똑같은 고통과 슬픔, 기쁨과 희망을 지닌 사람으로 받아들일 때, 그들이 나와 같이 세상과 자연, 그리고 우주에 대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그런 가치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가 우리의 인간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함께 이 세상과 자연, 우주에 대해, 봄을 맞이한 들판에 피어난 꽃과 새들의 지저귐에 대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웃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로서 상대방을 느끼고 존중할 때 비로소 우리들의 인간성도 유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엘리베이터 안에 탑승하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을 인간이 아닌 하나의 사물처럼 느끼는 순간에, 연휴를 맞이해 오랜만에 찾은 야외에서 북적이는 인파를 만나 온통 짜증으로 점철되는 순간에,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노동자와 마주쳐 지나가게 될 때 간혹 우리는 상대를 나와 같은 양심과 지각을 가진 인간으로 느끼고 생각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좁은 공간에서 그저 부담스러운 존재로, 야외의 복잡함을 더하는 짜증스런 집단으로, 혹시나 나에게 위해를 가해오지나 않을까 하는 잠재적 공포로 상대를 대할 수도 있다.

 

한나 아렌트는 바로 그 순간에 파괴되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만이 아니라 나의 인간성도 똑같이 공격받고, 피해입음을 이야기한다. "화요일의 두꺼비"는 우화 속에 등장하는 은혜 갚는 짐승 이야기라는 흔하디 흔한 여러 버전들 가운데 하나다. 흔하다는 건 그만큼 익숙한 이야기 구조이고, 그만큼 진부하여 재미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화요일의 두꺼비"는 그 모든 내용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아니 거꾸로 결론부터 읽고 본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감동을 경험할 만큼 잘 짜여진 이야기다. 게다가 교훈 역시 결코 작지 않다. 어른이 읽어도 그렇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교훈을 가장 뼈저리게 느껴야 할 대상은 바로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이나 군 위안부 문제를 이미 해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극우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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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크리스마스(Christmas)에 대해 알고 싶은 서너 가지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크리스마스는 어린 시절 한 번쯤 산타클로스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보게 만드는 명절 아닌 명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선 우리나라에 국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의 종교적 행사를 어째서 국가공휴일로 지정(?)했는지 시비 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기독교 신자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성스러운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어째서 상업적인 행사인 양 떠들썩하게 치러져야 하는지 불만을 품고 크리스마스, 본래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예수 탄생 이후 300년간 박해받았던 기독교
성탄절을 의미하는 크리스마스(Christmas)는 본래 ‘그리스도의 미사(Christes maesse)’에서 유래한 말로 그리스도교의 축일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예수가 12월 25일에 탄생했다는 근거는 성서를 비롯한 어디에도 없습니다. 신학자들은 물론 역사학자들도 이 날이 그리스도교의 축일은커녕 로마의 이교(異敎) 축제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고 있는데요. 로마의 역서(曆書)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336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 초기의 박해사에 대해서는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들을 비롯해 여러 매체들을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예수 탄생 이후 거의 300여 년간 박해받았던 기독교가 공인된 것은 313년 2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반포한 밀라노칙령을 통해서였습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50년간 18명의 황제가 교체되었던 극심한 혼란을 끝내기 위해 방대한 로마제국을 네 명의 황제들에게 분할하여 통치하도록 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였던 헬레나는 독실한 기독교도였기 때문에 콘스탄티누스 황제 자신은 기독교도가 아니었지만 기독교에 대해 관용의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임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과거 로마의 영광을 복원하기 위해 로마의 전통적인 다신교를 숭배했고,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미 제국의 하층민들뿐만 아니라 귀족, 학자, 군인 등 지배층에까지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제국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제국을 분할해 네 명의 황제가 통치하게 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퇴위하자 로마제국은 서로 황제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일어났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가장 강력한 숙적 중 한 명이었던 막센티우스와의 결전을 앞둔 312년 10월 28일, 콘스탄티누스는 “정오의 태양 위에 빛나는 십자가가 나타나고, 그 십자가에는 ‘이것으로 이겨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환영을 보았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는지 아니면 후세에 만들어진 전설인지에 대해선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는 명확합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 세력의 지지를 얻어 막센티우스의 군대를 물리쳤고, 서로마 전체를 지배하는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죠. 황제는 즉위 직후 밀라노 칙령을 내려 로마제국 내에서 종교의 자유를 승인했고, 그 덕분에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중지될 수 있었습니다. 역사학자 존 노리치는 『비잔티움 연대기』에서 “역사상 그 어느 지배자도, 알렉산드로스도, 앨프레드도, 샤를마뉴도, 예카테리나도, 프리드리히도, 그레고리우스도, 콘스탄티누스만큼 ‘대제’라는 칭호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인물은 없다.”고 평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탁월한 정복전쟁을 했거나 뛰어난 통치술을 발휘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했다는 업적을 높이 평가한 것이었습니다.


▶ 기독교 순교자의 마지막 기도(The Christian Martyr's Last Prayer) 장-레온 제롬(Jean-Leon Gerome)


이교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날에서 출발한 크리스마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 탄생 이후 300여 년간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십자가형에 처해지거나 산채로 불에 태워지고, 사잣밥으로 던져지는 등 모진 박해와 수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다신교를 숭배하던 로마의 사제들은 그리스도교 박해에 앞장섰는데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자 이번엔 그 반대의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초대 기독교 시대에는 어떤 이유나 목적에 관계없이 전쟁은 원칙적으로 죄악(Evil Sin)이라 하여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이로 보여준 비폭력, 무저항, 사랑, 희생의 정신으로 상징되는 종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한 후부터 전쟁에 관한 교리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서로마제국 교회에서는 상당 기간 전쟁을 악으로 간주해 왔었는데, 성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 이르면 ‘정당한 전쟁’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병사들의 전쟁 참여와 살상을 수용하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후 그레고리 1세 대교황 시대 서로마에서는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이나 이단자들을 합법적으로 기독교도로 강제 개종시켜도 된다는 이론을 채택합니다. 전쟁에 대한 기독교 교리의 변화가 교회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과 무관하게 기독교가 공인된 직후부터 전통적인 로마 다신교 신전과 사제들이 기독교 사제들과 기독교 신자들에 의해 공격받았고, 점차 세가 위축되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 프란치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사트루누스(Saturn), 1820-23, Oil on plaster, Prado Museum, Madrid

당시 로마에서는 농경사회 대부분이 그러하듯 추수가 끝난 뒤인 12월 24일부터 다음해 1월 6일까지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is solis invicti)'이라 하여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념하는 축제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 겨울이 유난히 길고 혹독한 지역에서는 동지를 전후해 커다란 축제가 연이어 벌어지기도 하는데 당시 로마의 ‘동지제(冬至祭)’ 축제 역시 범국가적인 행사로 거대하게 치러지는 행사였습니다. 동지는 낮 동안 해가 하늘에 머무는 시간이 가장 짧은 날로 이 날을 기점으로 점차 해가 길어집니다. 그런 까닭에 이 날을 태양의 탄생일이자 빛의 날로 기념하고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곧 봄이 올 것을 알리는 기쁜 날이었기 때문에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Saturn)에게 경배하는 날이었습니다.

한 편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요 1:9)’이라 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곧 세상의 빛이 탄생한 것이었기 때문에 로마의 이교도들이 12월 25일 ‘태양의 탄생일’로 정한 것처럼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과 일치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교도들의 축제를 자신들의 축제로 전환시킴으로써 선교를 좀더 쉽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도들의 축제일인 이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12월 25일은 단지 이교도들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었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동방 지역에서는 12월 25일보다 1월 6일을 하느님이 예수의 탄생과 세례 때 나타난 날로 기념했고, 예루살렘에서는 탄생만 기념했습니다. 그러나 4세기경에 이르면 동방교회의 대부분이 점차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함께 기념하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크리스마스를 반대하던 예루살렘 교회 역시 결국 크리스마스를 예수의 탄생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교회는 12월 25일 대신 1월 6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기념했습니다. 로마가 동서로 분열되었던 것처럼 기독교 역시 동서로 분열되어 각각의 입장과 교리에 따라 예수 탄생일을 기념했는데 동방교회는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지키게 된 뒤부터 1월 6일을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는 주의공현대축일(주현절[主顯節], Epiphany)로 지켰으나 서방교회에서 주의공현대축일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날을 기념하는 축일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트리와 카드, X-MAS 그리고 캐럴과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의 상징물 중 가장 대표적인 크리스마스트리 관습 역시 기독교 본래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력 설날에 로마 사람들은 자기 집 안팎을 푸른 나무와 등불로 장식하는 관습이 있었고, 자녀들과 주변 이웃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나무를 신성하게 여기는 관습은 이집트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게르만족들은 신성하다고 여기는 떡갈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8세기 경 게르만족들에게 선교를 위해 파견된 선교사들이 떡갈나무를 신성하게 여기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 이들의 관습을 역으로 이용해 전나무를 가지고 돌아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하기 시작한 것에서 크리스마스트리의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나무는 전나무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구상나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그 구상나무가 완전히 한국산 토종은 아니고, 한국산 토종의 종자를 가져간 미국과 유럽의 종자회사들에서 종자개량을 통해 생육조건을 변화시켜 전 세계에 팔아먹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로열티 한 푼 받을 수 없으며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우리나라로 역수입되어 로열티를 지불해야만 하는 실정이긴 하지요.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가까운 친지와 이웃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풍습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다른 풍습들이 유례가 불분명한 것들이 많지만 카드만큼은 유례가 명확한 편인데요. 1843년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 새로 관장으로 부임한 헨리 콜경은 너무 바빠서 크리스마스 편지를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편지 대신에 짤막한 메시지를 담은 카드를 만들게 되었는데 자신이 카드 속지에 쓸 편지를 쓰는 동안 미술가인 존 호슬리에게 크리스마스의 풍경들을 묘사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의뢰했습니다(사실 그럴 여유가 있었다면 편지를 쓰는 편이 훨씬 더 간소했을 텐데요). 이렇게 만들어진 카드를 복사해서 보냈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3년 뒤 미국에 무료 우편제도다 신설된 뒤 독일에서 이민 온 루이스 프랑이 미국의 크리스마스 카드 산업을 일으켰는데, 그는 바이에른에서 채석한 석회석을 사용하는 사치스러운 인쇄공정을 채택했는데 그 덕분에 그림 한 장에 17가지 색을 입힐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사업은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오늘날에도 크리스마스 카드는 가장 화려한 인쇄물 중 하나가 되었죠.




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장식물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Christmas'라고 쓴 것도 있지만 좀 짧게 'X-MAS'라고 쓴 것도 있을 겁니다. 크리스마스가 ’그리스도의 미사‘란 뜻이란 것은 앞서 말씀드렸지만 ’X-MAS‘는 'X'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하고 그냥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말하는 ’X‘자는 영어 알파벳의 X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어인 헬라어의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첫 자인 '크스'자로 이 뒤에 미사를 뜻하는 MAS를 붙인 겁니다. 그래서 표기는 ’X-MAS‘로 하더라도 읽을 때는 '크리스마스'라고 해야 맞습니다.

또 크리스마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습 중 하나가 캐럴(carol)인데 캐럴이란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대표적입니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아리랑처럼 사람들이 모여 둥글게 원 형태로 춤을 추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원무(圓舞)를 지칭하는 말 캐럴(carole)에서 유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세 후기 영국의 전통적인 노래 형식을 지칭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겁니다. 본래 영국의 캐럴은 절(V)이 하나의 후렴(B)과 교대하는 형식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날의 캐럴은 모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노래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것이지만 14세기 무렵 영국에서 만들어진 캐럴들은 민중들이 만들고 부르는 종교적인 노래인 것은 맞지만 그 내용이 반드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캐럴을 지칭하는 말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데 독일에선 크리스마스이브의 노래란 뜻에서 바이나흐트 리트(Weihnacht lied) 라 하고, 프랑스에서는 노엘(Noël)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종교적인 노래로 불리어지다가 종교개혁 이후부터는 민중적 종교 음악이었던 캐럴이 사라지고 교회에서 정식으로 작곡된 찬송가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7세기에 영국과 스코틀랜드 등의 청교도들은 엄격한 교리 원칙에 따라 모든 종교적인 축제를 부정했고, 크리스마스 축하행사 역시 금지시켰었는데, 지나치게 엄격한 탓이었는지 몰라도 청교도 세력이 약해지면서 크리스마스 축제가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지역의 장로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지내지 않는 대신 1월 1일을 가장 큰 축제로 삼았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신년예배를 드리는 것 역시 이런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만큼 크리스마스를 떠들썩하게 보내는 나라도 없지만 청교도들이 나라를 처음 세웠을 무렵엔 오늘날과 같은 크리스마스는커녕 크리스마스 자체를 기념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크리스마스 캐럴도 없었지요. 그러나 1857년경 미국의 J.H. 흡킨스(Hopkins) 목사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작곡하면서부터 서서히 캐럴의 전통이 복원되기 시작했습니다.


▶ 1942년에 만들어졌던 영화 <홀리데이인(Holiday Inn)>의 삽입곡 'White Christmas'가 크리스마스 캐럴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1954년 빙 크로스비, 로즈마리 클루니가 함께 주연을 맡아 영화 <White Christmas>로 제작되기도 했다.

오늘날 캐럴은 교회에서 부를 수 있는 캐럴과 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캐럴로 구분되는데 거리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상업적 캐럴의 대부분은 1942년 할리우드 음악영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홀리데이인(Holiday Inn)>이 성공하면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들입니다. 아카데미 영화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이 영화 속엔 우리가 잘 아는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가 수록되어 있었지요. 이때부터 1950년대까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Santa Claus coming to town>,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 등 캐럴의 대부분이 만들어지는 캐럴의 홍수가 일어나게 되지요. 오늘날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수많은 대중가수들이 캐럴을 만들어 부르지만 교회에선 이 노래들을 상업적인 캐럴이라 하여 부르지 않는데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오늘날 만들어지는 상업적인 캐럴이 도리어 과거 민중적인 캐럴의 전통과 맥을 잇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산타클로스의 유래에 대해선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어째서 빈민구제에 앞장섰던 성 니콜라우스가 빨간 옷의 뚱뚱보 할아버지로 이미지 변신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모양입니다.

산타클로스의 탄생과 키즈 마케팅(Kids Marketing)

마케팅 전문가들은 로버트 우드러프가 청소년들이 미래의 새로운 소비자이며 , 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환상적인 이미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는 점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코카콜라의 경영자였던 로버트 우드러프는 광고담당자들에게 코카콜라가 뭔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하며, 코카콜라를 통해 이상적인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라고 다그쳤는데,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코카콜라는 단순한 탄산음료가 아니라 꿈과 환상의 아이디어를 파는 드림 웨어(dream ware)여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가장 미국적이며 세계적인 이미지로서의 산타클로스였지요. 1931년 코카콜라가 붉은 색 산타복장을 한 뚱뚱한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전까지 산타클로스는 구세주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산타클로스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3세기 경 소아시아에서 출생한 니콜라스(St. Nicholas) 성인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인데요. 현재 터키 지역의 주교를 지낸 그는 특히 어린이들을 사랑하여 어린이들 모르게 선물을 주었다고 하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성 니콜라스의 축일인 12월 5일에 즈음해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코카콜라는 상업용 일러스트 전문 화가였던 하든 선드블롬(Haddon Sundblom)에게 코카콜라를 위한 산타클로스를 그려달라고 의뢰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오늘날 성탄절의 대명사가 된 산타클로스였습니다. 이처럼 코카콜라에 의해 재탄생한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 레드(Coca-Cola Red)' 빛깔인 붉은 색 외투에 흰색 털을 단 옷을 입었고, 종교적인 인상 대신에 풍성한 흰 수염에 얼굴 가득 홍조를 띤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선드블롬이 탄생시킨 산타는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뒤 휴식을 위해 코카콜라를 마셨고, 착한 어린이들은 산타가 선물을 넣어주는 양말 속에 감사한 마음으로 코카콜라를 담아두었습니다. 전통적으로 탄산음료의 비수기인 겨울철 매출 증진을 위해 구상된 코카콜라의 판촉 전략은 전 세계의 크리스마스 문화와 풍경을 변화시켰습니다. 어린이들은 종종 뚱뚱한 산타가 어떻게 굴뚝을 타고 내려와 자신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지 궁금하게 여기는데, 사실 뚱뚱한 산타가 어떻게 굴뚝을 통과해서 내려와 선물을 주고 갈 수 있는지 그 비법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지만 그가 왜 그렇게 뚱뚱해졌는지는 누구나 알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코카콜라를 많이 마셨기 때문이지요.




자, 크리스마스에 대해 궁금한 몇 가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12월 25일에 세상에 오셨든, 아니든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오늘 그 분이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해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고 스스로 우리들의 죄를 짊어지고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인 십자가를 짊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분의 삶을 올바르게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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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떠돌이 개 - 가브리엘 벵상, 열린책들(2003)



김중식의 시집 <황금빛 모서리>에는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이라는 다소 장황한 제목의 시 한 편이 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시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마다/ 하루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육체와/ 동시 상영관 두군데를 죽치고 돌아온 내 피로의/ 끝을 보게된다 돈 한푼 없이 대낮에 귀가할때면/ 큰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 나는 정확하게 20년간 헤어져 살던 어머니와 처음 대면했다. 그 이전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3살 때, 그리고 국민학교 1학년의 기억 속에 단 두 번 그렇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따라 천호동 423번지로 들어갔다. 1층에서는 창녀들이 붉은 등을 밝혀놓은 쇼윈도에서 호객행위를 하고, 2층의 닥지닥지 붙은 벌집에서 여자들은 남자의 정액을 온몸으로 끌어내는 일을 했다. 나는 그 윗층에 살았다. 423번지 골목을 따라 내가 사는 집까지 걸어가는 길은 불과 20여 미터였지만, 그 20여 미터를 걸어가는 일이 내게는 세상 더할 것 없이 굴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에게 내 낯을 익히라고 권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팔에 안겨 왔다. 나는 그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내 나이 23살의 여름이 그렇게 사창가 3층 옥탑방에서 저물어 갈 줄은 몰랐다. 김중식은 "옐로우 하우스 33호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집 안인데/ 거기보다도 우리집이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로 들어가는 사내들보다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내들이/ 더 허기져 보이고 거기에 진열된 여자들보다 우리 집의/ 여자들이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난 그 기분을 알듯 모를 듯 하다. 나는 그들보다 허기져 보이지 않았고, 우리 집 여자들이 그들보다 더 지쳐 보이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나는 차라리 더 견딜만 했을 것이다. 우리 집에 한 명 뿐인 남자가 되어버린 나는 어느 순간, 어머니에게 매일 용돈을 타 가는 사내가 되었고, 나는 기생 품에 안긴 이상처럼 그렇게 매일 얼마간의 돈을 타서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서는 이 세상 더할 수 없는 고결한 시인들의 시를 배웠고, 작가 세계에 대해 논했다. 그리고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나의 하교길은 사창가로 향했다.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상의 끝에 있는 집,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내게 현실은 늘 너무나 구체적인 진실이었다. 나는 사창가에 살고 있는 18살짜리 여자 애를 알았고, 그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두 번이나 애를 떼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곳에서는 더이상 기둥 서방 오래비들이 포진해 있지 않았고, 기둥서방 아저씨들이 외곽 경비를 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곳을 지키는 남자들의 연령은 그대로인데 그곳의 상품인 여자 아이들의 꽃은 아직 채 영글기 전에 팔려야 했다. 아니, 그래야 팔릴 수 있었다. 내게 세상은 상상할 여지가 별로 없는 곳이었다. 똑바로 서서 뛰어다니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어머니에게 버림받았고, 아버지의 널찍한 등판을 기대보기 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벌집 방에서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를 들으며 나는 밤새 수음을 했다. 



밤의 세상과 낮의 세상 사이에서....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스스로를 학대하는 일밖에 없었다. 모든 스무살 짜리 남자는 20년이 흐른 뒤엔 40살의 남자가 된다. 스무살의 남자는 분명 마흔살의 남자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스무살의 남자는 선인을 알고, 악인을 미워할 줄 안다. 진실의 언어와 가식의 언어를 구분하는 법도 알고 있다. 스무살의 남자는 지미 헨드릭스도, 짐 모리슨도, 제니스 조플린도 알지만 마흔살의 남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더이상 순수하다고 할 수 없는 마흔 살의 남자는 스무살의 남자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침묵하는 법을 배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누군가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아의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자아의 무게를 견뎌낼 수 없는 사람은 불행히도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른다. 나는 오랫동안 그 무게를 견디는 법을 배우고자 했지만 아직도 익숙하지 못하다. 나는 사랑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일이 여전히 편하다. 가브리엘 벵상 (Gabrielle Vincent)의 일러스트로 꾸며진 한 권의 책이 여기 있다. 동화책이라고 해야할까? 글쎄, 만약 버림받는 공포를 되새기고 싶은 자학증세가 있는 어린이가 아니라면 이 책을 즐거워하며 보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에게 말 안들으면 이렇게 버릴테다. 하고 겁주기 위함이 아니라면 이 책은 동화책이라기 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책이다. 



인간이 가장 처음 버림받은 경험을 하는 것은 언제일까? 아마 그 때는 어미의 자궁으로부터 억지로 밀려나와 탯줄이 끊기는 순간이 아닐까? 어쩌면 인간에게 있어 버림받는 경험은 그토록 원초적인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공녀, 소공자"와 같은 동화를 고전이라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읽도록 한다.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동화와 달리 현실 속의 우리들이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므로 우리들은 소공자, 소공녀를 통해 돈많고, 자상한 보호자를 상상한다. 부모에게 버림받이본 경험이 있는 자식의 상상력이란 늘 그렇게 음울한 구석이 있는 법이다. 따스함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부재하는 상상력 말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그토록 완전하게 주변과 단절된 경험을 하게 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때로 어머니가 없는 아파트 현관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는 경험은 그토록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경험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가브리엘 뱅상은 이 책에서 글을 통해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버림받은 기분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작가는 그림 속에서 색채를 제거한다. 우리는 단조로운 모노톤의 세계에 펼쳐진 막막함, 대책없는 기분을 절감한다. 그는 이 막막함과 대책없음을 구질구질하게 드러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는 최대한 냉정하고 절제된 표현으로 이 모든 것을 끌어낸다. 크로키처럼 자유자재로 순식간에 그려낸 듯 그림이지만 그 안엔 냉혹할 정도로 섬세한 관찰이 들어 있다. 첫 장을 펼쳐보면 차창 밖으로 던져진 개가 등장한다. 죽어라 달려보지만 자동차는 어느새 저만큼 영화 속 롱테이크(Long take)의 한 장면처럼 멀어져 간다. 힘을 다해 달려가보지만 지친 개는 이윽고 멈춰설 수밖에 없다. 꼬랑지를 다리 사이에 집어넣은 채 잔뜩 움츠린 표정의 개를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연상해보는 일이란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본래 고독한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렇게 완전하게 단절된 속에서도 불가사리 새살 돋듯 새로운 인연을 시작한다. 비록 버림받은 인간이라도 영원히 버림받는 법은 없다. 삶이 지속되는 동안 인간은 누구라도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버림 받아본 짐승들이 그러하듯 버림 받아본 인간 역시 마음을 모두 내어주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어쩌면 평생의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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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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