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시
- 김지하
새벽 두시는 어중간한 시간
잠들 수도 얼굴에 찬 물질을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다
공상을 하기는 너무 지치고
일어나 서성거리기엔 너무 겸연쩍다
무엇을 먹기엔 이웃이 미안하고
무엇을 중얼거리기엔 내 스스로에게
너무 부끄럽다. 가만 있을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새벽 두시다
어중간한 시간
이 시대다
*
나에게는 한 권의 오래된 시집이 있다. 조태일의 국토라는 시집이다. 1975년 5월 20일 인쇄, 1975년 5월 25일 발행이라는 판권에 적힌 세월만큼 낡고 시들해진 시집이다. 책값은 600원. 거기에 적힌 창작과 비평사의 전화번호는 국번이 두 자리다. 장난삼아 조태일이라는 시인의 고명한 이름을 "좆털"이라 불렀던...아, 이젠 고인이 된 시인의 시를 보면서...그의 시 후기에 실린 시인의 말을 읽으며....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시인과 시대에 대해 문득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김지하.
솔직히 나는 김지하를 용서하지 않았지만, 그의 시를 읽으며 한 인간이 한 시대에 제몫을 하며 산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건 <역사는 변하고 만다>는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의 근작을 읽으며 그 서문에 적힌 그의 심경의 일단을 되새김질하며 증폭된다.
어떤 이는 살아가면서 평생 역사라는 말을 가슴이던, 머릿속이던 새겨둘 일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 삶이라고 무시할 수 있는 삶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곳을 통해 무수한 말들을 뱉아내면서도 내가 과연 역사의 맥락에서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하는가 두려워질 때가 있다. 따지고 보면 이곳에서 내가 혼잣말처럼 지껄여대는 것에 무슨 부담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하 세월 지나 돌이켜 보며 부끄러워질 생각을 하면 아무 말도 예사로이 지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김지하가 누구냐.
그는 70년대를 그야말로 일세를 풍미한 시인이 아닌가. 김수영의 풍자는 옳았다 그러나 그에게 민중은 스쳐가는 바람에 눕는 풀이 아니었던가. 김지하에 이르러 우리는『黃土』에 배인 비명을 읽게 되었다. 남도를 가보라! 거기 어디엔들 붉은 땅이 없는가? 한 때 살아있는 불온문서였던 김지하. 수화기를 타고 전해오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칼칼하건만....그의 목소리엔 여전히 힘이 실려 있건만.....난 그의 초기 시에서 느꼈던 그런 붉은 맥박을 더이상 느끼지 못하였더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새벽 두시다/ 어중간한 시간/ 이 시대다
그런데 왜 난 남들 모두 잠든 새벽 두시에 문득 이 시를 읽다가 왜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거냐. 왜 이리 서러운 거냐. 새벽 두시에.... 과연 우리는 여전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거냐. 때로는 오래 산다는 것도 욕이 되는 세상이다.
- 김지하
새벽 두시는 어중간한 시간
잠들 수도 얼굴에 찬 물질을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다
공상을 하기는 너무 지치고
일어나 서성거리기엔 너무 겸연쩍다
무엇을 먹기엔 이웃이 미안하고
무엇을 중얼거리기엔 내 스스로에게
너무 부끄럽다. 가만 있을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새벽 두시다
어중간한 시간
이 시대다
*
나에게는 한 권의 오래된 시집이 있다. 조태일의 국토라는 시집이다. 1975년 5월 20일 인쇄, 1975년 5월 25일 발행이라는 판권에 적힌 세월만큼 낡고 시들해진 시집이다. 책값은 600원. 거기에 적힌 창작과 비평사의 전화번호는 국번이 두 자리다. 장난삼아 조태일이라는 시인의 고명한 이름을 "좆털"이라 불렀던...아, 이젠 고인이 된 시인의 시를 보면서...그의 시 후기에 실린 시인의 말을 읽으며....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시인과 시대에 대해 문득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김지하.
솔직히 나는 김지하를 용서하지 않았지만, 그의 시를 읽으며 한 인간이 한 시대에 제몫을 하며 산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건 <역사는 변하고 만다>는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의 근작을 읽으며 그 서문에 적힌 그의 심경의 일단을 되새김질하며 증폭된다.
어떤 이는 살아가면서 평생 역사라는 말을 가슴이던, 머릿속이던 새겨둘 일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 삶이라고 무시할 수 있는 삶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곳을 통해 무수한 말들을 뱉아내면서도 내가 과연 역사의 맥락에서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하는가 두려워질 때가 있다. 따지고 보면 이곳에서 내가 혼잣말처럼 지껄여대는 것에 무슨 부담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하 세월 지나 돌이켜 보며 부끄러워질 생각을 하면 아무 말도 예사로이 지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김지하가 누구냐.
그는 70년대를 그야말로 일세를 풍미한 시인이 아닌가. 김수영의 풍자는 옳았다 그러나 그에게 민중은 스쳐가는 바람에 눕는 풀이 아니었던가. 김지하에 이르러 우리는『黃土』에 배인 비명을 읽게 되었다. 남도를 가보라! 거기 어디엔들 붉은 땅이 없는가? 한 때 살아있는 불온문서였던 김지하. 수화기를 타고 전해오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칼칼하건만....그의 목소리엔 여전히 힘이 실려 있건만.....난 그의 초기 시에서 느꼈던 그런 붉은 맥박을 더이상 느끼지 못하였더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새벽 두시다/ 어중간한 시간/ 이 시대다
그런데 왜 난 남들 모두 잠든 새벽 두시에 문득 이 시를 읽다가 왜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거냐. 왜 이리 서러운 거냐. 새벽 두시에.... 과연 우리는 여전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거냐. 때로는 오래 산다는 것도 욕이 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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