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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SY/한국시

강희안 - 탈중심주의(脫中心注意)

脫中心注意

- 강희안


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는은 중하요지 않고, 첫째번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것는이 중하요다고 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창망의 순서로 되어 있지을라도 당신은 아무 문없제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왜하냐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하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

너는 전후에 존재한다. 고로 나는 가운데토막이다.

출처 : 강희안, 『나탈리 망세의 첼로』, 천년의시작


*

언젠가 TV의 과학상식 프로그램에서 우리의 감각능력이 얼마나 쉽게 혼돈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험을 본 적이 있다. 그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실험은 피실험자에게 입만 벙긋벙긋하여 소리내지 않으면서 '아' 소리를 보여주면서 녹음된 소리로 실제 들려준 발음이 '자'이거나 혹은 어떤 소리이든 상관없이 다른 소리를 들려주면 우리의 귀 혹은 뇌는 그 말을 '차' 혹은 '바'와 같이 인식의 교란을 가져오더라는 것이다.

교정․교열로 밥 빌어먹은 지 어느덧 15년차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 학급신문 편집장, 중학교 때 교지 편집장, 고등학교 때 교지 편집에 언더그라운드 페이퍼 제작자, 대학 들어가 다시 교지 편집 일을 한 것까지 헤아리면 아니, 헤아리기 싫다. 너무 오랜 시간이기도 하고,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알 수 있는 것들, 눈에 너무나 번연히 보이는 실수조차 때때로 반복해가면서도 지금도 어디가면 직업을 편집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부끄럽다.

착오, 착시를 비롯해 우리의 감각이란 얼마나 쉽게 교란되는 것인지 실험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데, 
지금도 강희안의 <탈중심주의(脫中心注意)>를 과연 옳게 적었는지 일일이 대조해보기 전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 하지만 이 시의 오탈자나 띄어쓰기, 맞춤법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애초에 시인이 의도하는 바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교정을 하다보면 번연히 아는 글자조차 틀리기가 일쑤고, 너무나 당연하여 틀리게 되는 말들도 있는데, 그 원인은 시인의 말대로
“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는은 중하요지 않고, 첫째번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것는이 중하요다고 한다”이기 때문이다.

이 글자는 당연히 이렇게 적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실수를 만들기도 하고, 혼자서만 잘못 안 것을 몇 년씩이나 바로 잡지 못하고 여전히 그것이 맞는 말인 것처럼 우겨가며 쓰는 경우도 있다. 나중에라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얻어진다면 다행이지만 평생 그것이 옳은 일인지 알고 살아갈 수도 있고, 그릇된 지식을 맞는 것으로 알고 살아갈 수도 있다. 강희안의 시 <탈중심주의(脫中心注意)>는 시 한 편으로 우리들에게 그것을 멋들어지게 알려주고 있다.

다만, 너무 ‘탈중심’에 집중하다가는 목욕통에 든 아이까지 내다버릴 수 있으니 주의하시라!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시의 구조나 형식에만 취하면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간과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시의 제목이 어째서 탈중심주의일까? 탈중심주의의 놀라운 성과에만 주목하다 정작 중요한 다른 걸 놓칠 수 있으니 주의하란 뜻이다.


*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분은 이 시를 소리내어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술술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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