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도 말한 바 있지만 한국에서는 글줄께나 읽었다는 사람일수록 러시아문학의 대표작가로 톨스토이 보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윗길로 놓는 사람들이 많은 듯 싶다. 왜? 톨스토이가 그렇게 만만해? ㅋㅋ
어쨌든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는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였고, 두 사람 모두 러시아문학을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가라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생존 당시 두 사람의 작품 고료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톨스토이가 장당 500루블을 받았던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을 쓰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톨스토이의 10분의 1정도밖에 안되는 고료를 받아야 했다.
명성을 얻은 뒤, 그러니까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조차 장당 300루블에 불과했다. 이처럼 도스토예프스키의 원고료가 쌌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항상 돈에 목말랐기 때문이고, 그가 항상 돈에 목말랐던 까닭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잘 알려진 대로 도박중독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는 유독 도박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1849년 12월 21일 젊은 혁명가를 꿈꿨던 28살의 젊은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대 위에 섰다. 그러나 짜르는 젊은 지식인들을
죽이는 대신 다시는 체제 전복 같은 보람있는(?) 일에 나서지 못하도록 겁만 주고 싶었기 때문에 사형대에 세운 뒤 이들을 다시
풀어주었다. 당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심정은 훗날 그가 펴낸 장편소설 "백치"에 잘 드러나 있다.
이제 죽는구나
생각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눈을 질끈 감았겠지만 그 순간 예정된 구원이 다가왔다. 저 멀리서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며 황제의
특사령을 가지고 달려왔던 것이다. 사형 직전에 목숨을 건지 도스토예프스키는 4년간 시베리아에 유형을 가는 것으로 감형되었고, 그가
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은 형기를 마친 뒤 군대에서 사병 복무까지 마친 뒤인 1859년의 일이었다.
극적으로 사형을 면하긴 했지만 이후 그의 인생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아내가 죽고, 형이 죽고, 잡지 경영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이후 그는 빚쟁이들에게 쫓겨가며 도박에 몰입했지만 도박은 그의 인생을 극한의 빈곤 속으로 처넣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빚을 갚기
위해 출판사와 무리하게 계약을 맺었고, 도박으로 원고료를 탕진하기에 바쁜 데다 마감에 쫓기는 바쁜 일정 때문에 그의 걸작들 중
상당수 "죄와 벌", "도박꾼" 등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 구술필기의 형태로 집필됐다.
사형대 위에서는 "이 세상에서 숨쉴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다. 그 중 2분은 동지들과 작별하는데, 2분은 삶을 되돌아보는데, 나머지 1분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한 번 보는데 쓰고 싶다"던 도스토예프스키였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한국의 글쟁이들은 도박 중독자들도 아닌데 원고료도 안 주면서 글을 쓰게 한다거나 먹고 살기 힘들 정도의 각박한 원고료만 지불하는 상황은 아무리 자기네도 힘들다고 하지만 너무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래서 예술인 소셜 유니온이 꼭 필요한 곳이 한국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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