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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WORK

2005년의 책과 사건 5 - 월간 <함께 사는 길>, 2005년 12월호(통권 150호)

 


1. 이건희와 비정규직 노동자

첫번째는 “이건희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상징되는 노동과 자본 그리고 국가의 위기이다. 이와 관련해 강준만의 『이건희 시대─우리는 정말 이건희를 알고 있는가?』(인물과사상사, 8월)와 최장집 외 여러 학자들이 참여한 『위기의 노동─한국 민주주의의 취약한 사회경제적 기반』(후마니타스, 3월)을 놓고 고민한 끝에 『위기의 노동』이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노동의 위기,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문제에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접근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선정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감정의 기저는 ‘불안’이다. 나, 가족, 민족, 국가라는 정체성이 과도하게 강조되어온 사회에서 국가부도위기는 ‘나’라는 개인의 존립과 정체성 자체를 위협하는 사건이었기에 철부지 어린이부터 지팡이에 의지해야 하는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금 모으기 운동에 앞 다퉈 나섰다.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맸고, 정리해고도 감내했으나 문제는 위기 극복 이후에도 여전히 고용불안정, 비정규직 문제가 해소되지 못하고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차례 권력포기를 시사했으나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권력은 이제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그의 표현대로 지금 현재 대한민국을 좌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이 아니다. 모두가 신자유주의에 따른 시장논리를 구원의 주문이라도 되는 양 외쳐댄다. 시장의 주문에 걸려든 사회는 과도한 경쟁으로 내몰린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60퍼센트가 비정규직 노동자인 현실에서 과도한 분배가 시장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주장은 아사 직전의 환자에게 다이어트를 처방하는 것과 같다. 시장논리의 주문에서 깨어나는 것, 시민의 재정치화만이 위기에 처한 한국의 민주주의를 구원하는 길이라고 저자들은 이야기한다.


2. 광복 60주년과 한일관계
광복 60주년과 패전 6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한국과 일본은 서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였으나 양국은 도리어 이전보다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물론 문제는 우리에게도 있으나 그보다 근본적인 책임은 일본의 우경화, 일본헌법 제9조의 개정 움직임과 일본의 책임 있는 정치인들(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한)의 연이은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있다. 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국내 출판계에서도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여러 출판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목해보게 될 변화는 일본의 양심 있는 학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들이 많이 나왔다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반전, 반차별, 반식민주의’를 내걸고 등장한 계간 『전야』(前夜)의 공동대표이자 양심적 지식인인 다카하시 데쓰야의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역사비평사, 10월)와 이토 나리히코의 『일본 헌법 제9조를 통해서 본 또 하나의 일본』(행복한책읽기, 5월)이다.

특히 데쓰야 교수는 천황의 신사 야스쿠니의 기능은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이 겪는 자연스러운 슬픔을 신(神)이 되었다는 기쁨으로 180도 전환시키는 감정의 전이를 통해 국가주의에 맹목적인 복종을 초래하게 된다고 비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범 분류인 A급, B급, C급은 전쟁범죄의 경중에 의한 것이 아닌 국제군사재판소의 헌장 제A항, B항, C항의 위반을 따진 것으로 일부에서 주장하듯 A급 전범의 분사만으론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감정적 분노와 비판은 일본의 전통문화를 가장하고 있는 국가주의에 도리어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멀고도 가까운 한일관계, 감정보다는 이성적이고 평화적인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이 지닌 의미는 소중하다.


3. 국가보안법, 강정구 그리고 맥아더
지난 2004년 연말 우리는 국가보안법 폐지 및 4대 개혁입법의 추진이 무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나라의 힘세고 오래가는 수구보수와 개혁보수란 배터리 시스템의 위력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광복 60주년이자 동시에 미군 주둔 60주년을 맞이한 올해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과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6.25 민족해방전쟁론이 맞물리면서 해결해야 할 때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어떻게 뒤통수를 치는지 실감하게 해준다. 이와 관련해 박태균의 『한국전쟁─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책과함께, 6월)은 전쟁과 분단이 우리 사회의 심리구조를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가를 실증적인 자료들과 함께 잘 분석하고 있다. 누가 죽은 맥아더를 오늘의 한국 땅에 부활, 재림케 하며, 이토록 극렬한 반응을 불러오게 하는가?

그것은 한국전쟁의 경험이 남북한 지배집단의 국민국가형성과 정당성 창출의 근거가 되었음을 먼저 인식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맥아더는 소박하게는 무속신앙의 장군님으로부터 거대하게는 남한 지배집단의 수호신으로 자리한다. 비록 박태균의 주장은 여러 곳에서 강정구 교수의 주장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그와는 다소 다른 길을 가고 있으나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며 분단 상황이 남북한 지배계급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적대적 공범자란 사실에 대해 인식을 같이한다. 이외에도 한국전쟁과 관련해 주목해볼 만한 책들은 김경학 외 『전쟁과 기억─마을 공동체의 생애사』(한울, 10월), 류춘도의 『벙어리새─어느 의용군 군의관의 늦은 이야기』(당대, 9월) 등이 있다.


4. 위험사회-성, 가족, 군대, 국가
올해는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1년여의 시점에 도달했고, 호주제 폐지 법안이 지난 3월 2일 국회를 통과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 있던 한 해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식민지였던 가족의 해체를 염려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 남성노동자가 중심인 사회(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정은 출산을 통해 노동력 재생산과 (남성)노동자에게 평온과 안정, 건강관리 등 많은 부분을 가사노동으로 충당하도록 강제해왔다.

비록 가족 해체의 원인을 단순히 자본의 변화된 생산구조에서만 찾을 수는 없겠으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 가족 해체 징후는 노령화, 출산율 감소문제와 더불어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오랫동안 남성중심적 시선에 의해 은폐되어 왔던 성과 생식의 문제는 이제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의 문제가 된 지 오래되었다. 이런 여성주의의 시선을 통해 평화와 군사주의, 남성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권인숙의 『대한민국은 군대다』(청년사, 8월)와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11월)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기하고 있다.


5. 생명의 기반을 흔드는 복제기술의 윤리
다섯 번째는 원래 “삶의 기반을 흔드는 먹을거리 산업”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글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불거져 나온 난자 불법매매와 황우석 교수의 ‘세계줄기세포허브’의 윤리성 문제가 제기되어 “생명의 기반을 흔드는 복제기술의 윤리” 문제가 더 시급한 현안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엔에 의해 제정된 세계인권선언의 제4조는 “어느 누구도 사람을 노예처럼 다루거나 물건처럼 사고 팔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한 난자의 불법매매는 과정의 불법성은 물론 “어차피 난자는 매달 나오는 거고, 돈이 필요해서 팔았을 뿐 그렇게 해서 태어나는 아이가 내 아이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는 판매자의 말에서 우리는 생명윤리의식 부재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판매자의 윤리의식만이 아니라 불법매매에 의한 것인 줄 알면서도 시술해준 이들이 우리 사회의 의료를 책임지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란 사실이다. 정부 역시 이런 사실을 알고도 묵인해준 혐의가 제기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황우석 박사와 함께 세계줄기세포허브 프로젝트에 참가해온 미국의 새튼 교수가 난자 취득의 윤리문제를 제기했다. 그 진위 여부는 좀더 시간이 걸려야 해결되겠으나 2004년 줄기세포 연구 발표 후부터 난자 출처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돼왔다는 사실은 생명산업의 선도적 지배라는 이익 앞에 우리 사회의 눈이 얼마나 어두워졌는가를 반증한다. 도미니크 르쿠르는 『인간 복제 논쟁─인간 복제 이후의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지식의풍경, 11월)를 통해 기술과 인간본성의 위기 사이에 서 있는 인간복제문제를 제기한다.


이외에도 한일관계가 해마다 과거 역사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는 것처럼 한·중이 해마다 먹을거리의 안전성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는 일도 이제는 연중행사가 되었고, 이와 맞물려 쌀협상국회비준반대 투쟁 등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산적해 있다. 또한 20여 년을 끌고 온 방폐장 부지 선정 주민투표는 그 과정의 온갖 구설과 후유증 속에서도 여전히 핵발전을 고집하는 우리의 에너지 체계를 되돌아보게 해주었고, 경기도 최전방 GP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교원평가제 도입 논란 등 2005년 한 해는 해결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을 내년의 과제로 남겨둔 채 저물어가고 있다.



출처 : <함께 사는 길>, 2005년 12월호(통권 1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