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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WORK

문화웹진, 마이너리티와 제도권 사이 - <플랫폼>, 2008년 1,2월호(통권 7호)

2000년대 문화웹진의 흥망성쇠
- 자발적인 마이너리티에서 제도권으로


2004년 연세대 문헌정보학과에서 실시한 대한민국의 인터넷 콘텐츠 보존 실태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 하루에 생성되는 인터넷 페이지는 1,500만 페이지에 이르지만 수명은 고작 70일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난 1996년 창간되어 국내 최초의 웹진으로 기록된 문화비평 웹진 <스키조(Schizo,  target=_blank>http://webarchive.or.kr/schizo)>는 한때 하루 방문자수가 10만 명에 육박할 정도의 인기를 누렸으나 24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어 사이트 운영이 중지되었고, 정보트러스트센터 등의 도움으로 현재 일부만이 복원되어 남아있는 상태다. 최초의 웹진인 <스키조>의 흥망성쇠는 오늘 하루 동안에도 생겨나고 사라지는 1,500만 페이지의 인터넷 페이퍼들과 함께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웹진의 현황을 살펴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검색엔진을 이용하는 것이지만, 실제 링크를 따라가면 한두 호를 내고는 더 이상 업데이트를 하지 않는 웹진이나 엉뚱한 사이트로 링크되는 경우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나마 제도권(오프라인)에서 이미 발간되고 있는 잡지의 온라인판이라 할 수 있는 웹진과 정부 조직의 지원을 받는 일부 웹진의 경우엔 상황이 현저하게 나은 편이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현재 웹진 일반이 처한 상황에 적용시키기는 어렵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기존의 제도권 매체들 역시 인터넷 공간에 둥지를 틀었지만 오프라인상에서의 인기와 권위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단지 웹상에 존재하고 운영된다는 것만으로 웹진의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 웹진의 정신은 무엇일까? <스키조>는 창간문에서 자신들을 주류질서에 반기를 들고 소란을 피우는 소수의견의 대변자로 자임하고 있다. “기존 문예지들의 현학과 요설에 대항해 우리는 ‘철학자들이 우글거리는 운동장에 떨어진 하나의 폭탄’같이 선명하고 확실한 글들”을 생산하길 원한다고 말하면서 “글솜씨가 모자라도 좋다. 논리가 조금 빈약해도 좋다. 무언가 남들과 다른 그리고 새로운 생각들을 열심히 하고 과감하게 소리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실제로 <스키조>는 폐간에 이르기까지 동성애, 민족주의, 과학기술, 개발독재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신선한 문제의식들을 끄집어냈다.

웹진의 생산자들 중 다수는 스스로를 ‘자발적인(?)’ 마이너리티로 규정한다. 제도권 잡지들이 상업성, 이념적 제약, 체득해온 역사와 권위에 안주한 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길 머뭇거렸거나 진지한 사유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았던 분야를 중심으로 이들은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 공간에서 그들의 주장을 널리 전파시켜나갔다. 제도권 매체들에 비해 자본과 검열, 제도권의 인습화된 권위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점도 이들의 강점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강점은 동시에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현재 비제도권에 속하는 웹진들이 처한 문제를 대략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해 본다면 첫 번째는 수익구조(하드웨어의 구축, 디자인, 저작권 문제), 두 번째는 생산력(전문필진 부재, 독창성, 일정한 수준의 유지), 세 번째는 소비자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문제들은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므로 구분 없이 이야기해도 무방해 보인다. 대개의 웹진들이 지속적으로 콘텐츠 생산에 매진할 수 없는 까닭은 바로 수익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웹진들은 배너광고와 독자들의 회비에 의존하는 형태로 유지된다. 웹진 생산이 비교적 소규모 자본 혹은 콘텐츠 - 독자이자 동시에 필자인 - 생산자들의 대가 없는 집필에 의존한다고 해도 수익의 빈곤은 장기적으로 유능한 필진의 유입과 지속적인 발간을 어렵게 만든다.

이 같은 수익구조의 빈곤은 서버 임대 등 웹진 발간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구축하는데 있어 장애가 되고 있다. 더 나아가 해외의 유명 웹진들 - 애드버스터즈, 유트니 리더 등 - 은 아트디렉터 같은 전문가 집단의 협력 속에서 디지털 매거진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인터넷 강국이라는 국내의 웹진들은 이 같은 협력 체계를 상상할 수 없다. 웹의 특성상 한 번 인기를 얻은 매체라 할지라도 이후 비슷한 유형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해내는 유사매체들이 손쉽게 난립할 수 있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독창적인 콘텐츠 생산은 그만큼 쉽지 않다. <스키조> 이후 등장해 ‘딴지폐인’, ‘똥침정신’이란 신조어를 만들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딴지일보>의 경우 한때 기업화 단계까지 이르렀으나 현재는 독창성을 잃고 예전의 인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웹진의 생산자들은 접속하는 독자들 개개인이 웹진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만으로 스스로의 가치관을 바꿀 것이라고 손쉽게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인의 사회정치적 가치들은 인터넷에 접속하기 이전에 가정과 학교, 직장을 비롯한 사회화 과정에 뿌리 깊이 착근해있다는 사실을 이미 깨우치고 있기 때문이다. 웹진의 생산자들은 스스로를 주류질서에 저항하는 ‘인디’, 자본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새로운 문화적 ‘대안’을 모색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자임한다. 위선적인 주류체제와 권위적인 질서에 대한 저항의식을 내세워 때때로 반지성적인 언술을 표방하지만 그들 스스로는 청년지식인들이고, 웹진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명성자본을 축적하게 되며, 운영을 위해 일정하게 체제내화되는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현재로서는 웹진의 생명력을 좌우하는 큰 관건이다.

웹진은 미디어의 역사에서 가장 젊은 매체에 속한다. 필자와 독자로 구분되는 이분법적인 지식 담론 생산 체계가 아니라 창조와 소비가 동시에 일어나는 미디어 공간에서 웹진이 지속적으로 대안매체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 공간이 젊은 시절 한 때의 반지성적 혈기를 토해내는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대안을 모색하고 창출한다는 시대적 소임을 자각해야 한다. 또한 기존의 매체들 역시 이들의 작업을 한낱 아마추어리즘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공담론의 장을 형성하는 능동적인 역할을 인정하며 그들에 대한 제도화된 지원과 협력의 손길을 고민해볼 시점이다.

<플랫폼 - 2008년 1,2월호(통권 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