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의 패스트푸드 : 죠닌의 식탁, 쇼군의 식탁』 - 오쿠보 히로코 |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2004)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도쿄이야기』를 읽고, 나는 묘한 질투심에 사로잡혔었다.  1921년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태어나 컬럼비아·하버드·도쿄 대학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한 벽안의 외국인이 빠져든 '미시마 유키오, 다니자키 준이치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어떤 존재들이었을까. TV에는 종종 한국에 빠져든 외국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직까지 우리 문화의 진수랄까, 내면을 깊숙이 이해하고 그에 대해 책을 쓴 외국 학자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그뿐이라면 질투심이라고 하기엔 미약한지도 모르겠다. 서양사가 미시사까지 속속들이 이를 수 있는 바탕엔 작은 도시 시청 지하실의 문서고에 저장된 중세 서민의 출생신고 서류뭉치를 비롯한 시의 장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 사실상 유일하게 외국의 침탈이나 식민지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본이기에 문화의 단절을 경험하지 않은 일본이기에 외국인인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가 도쿄이야기』 같은 책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질투심이란 어쩌면 그런 류의 것이리라.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면 조선이란 확신에 찬 도학자들의 국가는 양대 왜란(임진, 정유년)과 양대 호란(정묘, 병자년)을 겪으며 국가의 중추가 부러지는 최악의 국가 위기 상황을 맞이한 뒤 결국 이를 회복하지 못하고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근대의 경험이 주체적인 것이 되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분명히 이렇듯 국운융성기가 아닌 국운쇠퇴기에 들이닥친 외부적 요인들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가적 에너지와 능력이 쇠퇴한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어찌되었든 기록을 중시했던 조선시대의 자료들조차 양대 전란을 겪으며 미처 회복하기도 전에 다시 국가를 빼앗기는 사태가 빚어지고 우리 역사는 커다란 굴절을 겪게 된다. 조선시대의 양대 전란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과도기에 각각 조선을 상대로 벌인 전쟁이라 할 수 있지만, 한국전쟁은 이데올로기적인 관점말고 단순히 정치역학적인 관계로만 보았을 때는 한반도를 전장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격돌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은 그나마 보존되던 우리 사료를 또 한 차례 불살라버리고 만다.


 덴푸라(天ぷら) 같이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 역시 에도시대 죠닌들의 주요 간식 거리가 발전한 것이다.

일본단기대학 생활과학과 교수인 '오쿠보 히로코' 『에도의 패스트푸드- 죠닌의 식탁, 쇼군의 식탁』은 에도 시대(도쿠카와 시대, 1603-1867)의 일본 '에도(도쿄)'를 풍미한 음식들 덴푸라(天ぷら), 스시(すし), 소바(蕎麦) 등을 바탕으로 당시 일본의 생활사를 짚어보이고 있는 책이다. 부제격인 죠닌의 식탁, 쇼군의 식탁에서 알 수 있듯 상하귀천의 음식 문화를 일본인 특유의 섬세한 시각으로 들여다 본다. 마치 우리가 에도의 번화가 뒷골목 포장마차에 앉아 소바 그릇을 놓고, 덴푸라를 먹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에도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정이대장군(세이이다이쇼군, 征夷大將軍)에 임명되어 도쿠가와 막부(幕府)를 개설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장장 260여년간 지속된 에도 시대는 막부 성립 이후 100년간을 전기, 18세기 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를 중기, 그 이후 막부의 멸망에 이르는 과정을 후기로 본다.


오늘날 중국의 전통 복장이나 풍속 중 상당수가 만주족이 세운 나라인 청(淸)의 것인 것처럼, 우리에게 조선은 아주 먼 과거 우리 민족이 세운 여러 나라들 중 하나가 아니라 지금도 단절과 굴절, 변화와 지속을 거듭하며 이어지는 나라이다. 에도시대를 주목해보아야 할 이유는 우리에게 조선이 식민지시기를 거치며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르는 것처럼 일본에게 있어 에도 시대는 역시 그들이 현재 탈아입구하여 서구화된 바탕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일본적인 것들의 원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인구 백만에 이르렀던 거대도시 에도(江戶)는 쇄국이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260여년간 지속된 막부체제가 빚어낸 일본 문화가 있다. 비록 쇄국이라고는 하지만, 중국, 조선은 물론 네덜란드 등의 나라들과 교류를 계속하며 이 시기 일본은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갔다.

 

『에도의 패스트푸드』는 단순히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음식이란 사람이 먹는 것이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에도 시대 죠닌들의 생활사라고도 할 수 있다. 에도 시대의 패스트푸드들이 등장한 까닭을 보자. 그것은 워낙 에도 시대의 죠닌들이 바쁘게 살았고, 또 인구 백만의 대도시답게 흥성했기 때문이다. "에도의 패스트푸드"는 '제1장 에도 패스트푸드의 활약상'을 통해 에도 특유의 음식문화가 사회의 변천과 어떻게 결부되어 발전해가는지를 덴푸라, 스스, 소바 등의 역사를 따라가며 추적한다.



일본에서 소바를 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한것은 덴쇼(1573-1592)시대 조선에서 건너온 승려 원진이 일본 도다이지에 전파해준 이후부터라고 한다. 에도 시대 일본에선 엄청난 소바 열풍이 불어 승려들이 소바를보고자 월담하는 사태까지 생겨 일본 불교 사찰 중엔 지금까지 소바를 금지시킨 곳도 있다고 한다.  


'제2장 에도의 맛 탄생'에선 에도(일본) 음식하면 떠올리게 되는 특유의 단맛과 짠맛, 일본 과자류하면 달콤짭짜름한 특유의 맛이 생각나는데 이것은 에도 특유의 미각이기도 하다. '제3장 쇼군의 식탁, 죠닌의 식탁'에는 밥상에서 일어나는 봉건제하 계급간의 차별과 차이를 엿볼 수 있고, '제4장 에도의 식도락 붐'에서는 일본의 국물 맛내기의 대명사인 '가츠오부시'와 '화과자'의 세계를 다룬다. 우리말처럼 쓰이고 있는 한자어인 요리(料理)는 사실 일본식 한자어이다. '제5장 에도 최고의 요리집, 야오젠' 일본 외식 산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야오젠의 출현은 비록 신분제의 속박은 남아있지만 신분과  상관없이 돈만 있으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한정식' 혹은 '궁중요리'는 대표적인 한국식 정찬으로 생각되는 것처럼 일본의 정찬으로 평가받는 것은 가이세키 요리이다. '제6장 일본 요리의 완성'은 이런 가이세키 요리의 탄생과 처음엔 귀족들의 향응을 위한 이 요리가 어떻게 서민대중에게까지 널리 퍼지게 되는 지를 보여준다. 중국요리에 영향을 받은 일본 요리와 남만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의 영향을 받은 요리 등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짓는다. 

 

오쿠보 히로코는 이런 에도 시대의 문화 가운데 특히 '패스트푸드'라고 할 수 있는 죠닌(町人)의 식문화(食文化)에 주목하고, 이것을 에도시대 중기 이후 일본의 중요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는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면밀하게 분석한다고 해서 이 책이 학문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음식 이야기인 만큼 흥미를 유발하고, 미각(味覺)을 자극하는 요소들을 적절히 끼워넣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 쇼군(將軍)은 익히 들어 알겠는데, 죠닌은 무엇인가? 그것을 이해하면서 읽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일본은 전후 부흥 과정을 거치며 서구인들에게 "경제동물"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할만큼 장사수완과 그들만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이 밑바탕엔 에도시대 형성된 그들의 장인정신과 상인정신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잘 알려진 '스시'의 유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설이 분분하다. 본래부터 일본에 존재했다는 설부터 동남아시아 전파설, 11세기 중국 송대에 유행했던 초밥이 한반도를 타고 일본으로 전파되었다는 설 등등 여러가지 설이 있다. 기존에 일본에 있었거나 외래에서 전래되었거나 우리는 맛있게 먹으면 될 일이긴 하다. ^^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은 에도 시대 이전 100여년간의 내전, 즉 전국시대를 경험했다. 이를 평정한 것이 오다 노부나가, 오다 노부나가가 암살되고 난 뒤 그의 유업을 이어받아 완성한 것이 토요토미 히데요시이고, 다시 이를 계승하여 봉건제를 기반으로 평화를 지속시킨 것이 도쿠카와 이에야스이다. 전국시대는 거듭되는 전란으로 사회가 불안정하여 상공업이 정착되기 어려웠다. 문화와 상공업은 주로 전쟁과 관련된 것이거나 전쟁과 무관한 평화를 지속한 천황가의 궁중문화만이었다. 전란을 수습하고 에도에 막부를 설치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봉건지배체제를 단단히 하기 위해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실시하고, 신분간 이동 및 직업을 차별하도록 했다. 지배계급인 쇼군과 다이묘(大名)는 그들의 본거지인 성(城) 밑에 죠카마치
(성하정, 城下町)을 두어, 마치 거대 사찰 밑에 사하촌이 형성되는 것처럼 다이묘를 정점으로 이들을 호위하는 무사계층의 거주지를 조성한다.

 

지배계급인 무사계층은 조선 시대의 양반처럼 농사, 제조, 상업에 직접 종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죠카마치 인근에 상인과 공인을 집단으로 거주시켜 자신들의 생활에 편의를 돕도록 했다. 이들이 바로 죠닌(町人)이었다. 지배계급은 죠닌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제공받았고, 이들을 보호 육성함으로써 필요한 재화를 얻기도 했다. 봉건신분상으로 가장 최하층에 속했지만 실제로는 농민이 최하층이었다. 농민은 그야말로 굶어죽기도 어려울 만큼의 식량만을 제공받았다. 이런 사회 환경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죠닌을 중심으로 한 상공업문화가 오늘날 에도 문화, 즉 일본문화의 중추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을 열광시켜 금값으로 대접받던 청화백자나 조선도예의 맥이 끊긴 데 반해 일본의 일생일업(一生一業)에 바탕한 대를 이은 가업 정신은 죠닌들에 의해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도(刀)의 명인으로 손꼽히는 가네코는 25대, 700년을 이어오고, 포목전으로 시작한 미츠이 등은 이후 금융업에 손을 대는 등 사업영역을 확대하여 라면에서 인공위성까지 생산하는 일본 최고의 종합상사가 되었다.

 

이 책의 뒤에는 저자가 참고한 여러 문헌들이 나오고 있는데, 걔중에는 1638년의 것들도 있었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 우리에게도 이런 자료들이 풍족하다면 풍족할지도 모르겠으나 공부가 부족한 나로서는 그런 자료들을 찾는 것은 물론 우리 문화의 여러 단층들을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관찰한 책들이 하루빨리 나와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독서였다.


* 참고로 이런 나의 아쉬움은 책과는 상관없는 것이고, 책의 만듦새는 나무랄 것 없이 좋았고, 번역에도 공이 많이 들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다만 한 가지 남는 아쉬움은 비록 가까운 일본이고, 이것저것 일식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는 있다손 치더라도 도판이 일본 판화만으로 한정되어 있어, 소개되고 있는 요리들을 눈으로 직접 보는 즐거움이 적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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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