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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CY/WORK

시민 - 시민운동 - 시민단체 - <인천일보>(2008. 11.17.)

시민 - 시민운동 - 시민단체



경제위기로 시민들의 후원이 줄어들면서 시민단체들은 운영에 더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활동가들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경제위기 보다 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다. 최근 검찰 수사를 통해 대표적인 시민단체 중 하나인 환경운동연합의 회계부정사건이 터지자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도 있다. 어떤 이들은 최근의 사건들을 정권 차원의 시민단체 길들이기로 보기도 하고, 몇몇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켜 바라볼 수도 있지만 문제의 원인은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데 있다.

시민단체들에 대해 시민 일반이 느끼는 문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오던 것들이다. 우선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다. 시민단체들은 운동에만 집중한 나머지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운동을 기획하지 못했고, 시민들은 후원만 할 뿐 단체의 활동과 운영 등 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 원인은 비정부·비영리기구를 표방하고 나선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음으로써 시민단체의 비정부성이 훼손된다는 의심이다. 사실 시민단체의 재정관리가 문제된 지점도 본의든 아니든 지난 정권들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시민운동에 좀더 편한 환경에서 시민운동이 권력과 자본에 의해 순치된 측면이 적지않다. 거버넌스(governance)의 영역은 반정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므로 단체의 지향에 따라 정부 지원을 받는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정부정책의 합리적인 수립과 집행을 감시한다는 점에서 정부와 시민단체 사이에는 일정한 긴장관계가 형성되어야만 한다. 국제앰네스티 같은 NGO들이 각국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대개의 정부지원이란 경상비가 아닌 사업보조금 형태로 지불되므로 시민단체들은 일부러라도 사업을 벌여야 하고, 사업을 벌이는 만큼 경상비 지출은 늘어나게 되어 있는 구조다. 한편으론 정책수립 및 집행자를 감시하고, 다른 한편으론 각종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시민단체의 독립성은 물론 정당성과 도덕성마저 훼손될 수 있다.

NGO·NPO라고 하는 시민단체가 의사회나 약사회 같은 이익단체와 변별되는 지점은 시민단체가 특정한 이익집단이 아닌 시민이라는 불특정다수를 위해 자발적으로 구성된 시민들의 참여와 후원을 통해 시민사회의 공공선을 증진시키는데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 출현하기 시작한 시민운동은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정부의 합리적인 정책수립과 정책수행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카운터 파트너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시민운동은 대의민주주의 정치 활성화와 기업감시 같은 공공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국가가 스스로 감시할 수 없는 영역을 감시하고, 국가가 앞서 하지 않는 일을 주창하고, 국가 기능의 미진한 부분을 보강하고, 혁신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런 역할과 의미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상근활동가들은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활동비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평생 시민운동가를 꿈꾸다가 현장에 투신한 이들조차 몇년을 버티기 어렵다. 능력있고 전문적인 활동가는커녕 업무를 분담해줄 신규인력을 교육시키고, 훈련할 인력 재생산구조마저 없다보니 깨끗하고 투명한 회계관리는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다. 과거에 비해 기부문화가 발전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도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엄격한 회계관리를 받는 비영리법인 대신 내부규정에 따라 운영되는 임의단체 형태이다.

최근의 사건들로 인해 시민단체의 후원을 중단하려는 마음을 먹은 시민들에게 한 가지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시민단체의 실패는 시민운동가, 시민단체만의 실패가 아니라 동시에 시민사회의 실패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우선 시민운동 스스로의 냉철한 자기반성과 혁신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민운동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 없이는 이같은 위기를 극복할 길도 없기 때문이다.

출처 : <인천일보>, 2008. 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