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

- 윤성학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조붓한 산길을 오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가릴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을 찾아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편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가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출처 : <창작과비평>, 2003년 여름호(통권120호)



*

내외(內外). 한자어 뜻풀이대로라면 안팎이다. 그런데 이 안과 밖은 떼어놓을 수도, 한데 있기도 까다롭다. 그래서 남녀 사이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고 피하는 일 역시 내외(內外)한다고 말한다. 너무 가까이, 너무 멀리도 안 된다. 딱 그 정도 거리를 유지하기. 세상의 모든 슬픔은 어쩌면 그리 시원하게 내통(內通)치 못한 탓. 내 여자가 일러주는 대로 딱 그만큼만 만날 있다가는 “벼엉신~”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혹은 일러준 대로 하지 않아서 “음흉한~”소리를 듣고 ‘쬧겨’날 수도 있으니 남정네들아 기회가 오더라도 오금이 저리도록 적당히, 적당히 내외통(內外通)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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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구두 windshoes